20.05.22 08:51최종 업데이트 20.05.2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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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으로 나가는 출입구 ⓒ 권은비

 
오늘은 광장에 섰다. 서울의 대표 광장, 광화문이다. 이곳은 대한민국 권력의 얼굴이다. 사람의 상태를 얼굴 표정으로 알 수 있듯이, 광화문 광장을 보면 한국 권력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바로미터'처럼 알 수 있다.

광화문 광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광화문 광장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얼굴은 국민들의 얼굴일 것이다. 2002년 여중생 압사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2016년 탄핵정국의 촛불집회로 보는 광화문의 얼굴은 천 개, 만 개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정치 권력의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기관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광장을 물리적으로 바꿀 때 생겨났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이 세운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은 현재까지도 광화문 광장을 대표한다. 2008년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대표사업으로 내걸었던 광화문 조성사업 이후 광화문 광장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때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새로 세워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바다 위의 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온 사방이 도로로 둘러쌓인, 미세먼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광화문 광장이라면, 이 배의 가장 맨 앞을 이순신 동상이 지키고 있는 셈이다.

독재자들이 집착한 공간
  

광화문의 이순신동상,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대표적인 공공미술작품이다 ⓒ 권은비

 
광화문 이순신동상에 대한 논란은 건립 시기 때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1976년 4m 높이의 이순신 동상을 만들고 있던 조각가 김세중은 갑작스럽게 동상의 높이를 키우라는 박정희 정권의 의뢰에 다시 6.4m의 동상을 만들어야 했다.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높고 크게 만들려고 하는 권력자의 욕망은 비단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권력가의 전형적인 습성이었다. 어느 나라건 독재자들은 늘 높고 큰 조형물을 도심 한복판에 세웠다. 히틀러는 애초에 3단 탑의 형상을 갖고 있던 전승기념탑을 4단으로 굳이 높였고, 후세인은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에 자신의 동상을 높이 세웠다.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은 국민을 높이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높이고, 조형물은 권력자가 자신의 자아를 광장, 도시, 나아가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탁월한 수단이 되었다.
 
1968년 서슬퍼런 독재정권의 시기, 갑자기 동상의 높이를 높여야 한다는 주문을 받은 조각가 김세중은 당황했을 것이다. 동상 제작을 위해 작업실 천장을 뚫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 동상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는 이러하다.

동상의 크기는 키우되, 고개를 숙이게 함으로서 작업실 천장에 간신히 닿는 높이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완공 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던 이순신 동상에 대해 조각가 김세중은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길" 당부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서 있는 어떠한 것도 정치적인 않은 것은 없다.

지금 광장에 필요한 것
 
그리고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사업으로 몇 개월째 광장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지금의 '고립된 섬' 같은 광화문 광장은 '단절' 그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의 이전 문제 역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광장'을 위해서는 필요해보이는 측면이 있다.

지금 광장에 필요한 것은 우러러 봐야 하는 위인들의 거대한 동상이 아니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시민들의 공론장 역할이다. 그것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심지어 촛불시민이든 태극기시민이든 말이다. 정권과 권력자의 성향에 따라 차별받는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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