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31 08:03최종 업데이트 19.12.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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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매체에서 일할 때 일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동료가 말했다. "그 일은 우리 독자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 ~ 2000년 생)의 관심사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가.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사는 뭘까. 밀레니얼 세대는 청년, N포세대 등 여러 이름으로 자주 대상화돼서 밀레니얼 세대인 나도 밀레니얼 세대가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동료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다. 내가 활동하는 <옥바라지선교센터(아래 '옥선'.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연대하는 기독교 단체. 옥바라지 골목, 아현포차에 연대했다. 현재는 서촌 궁중족발과 노량진수산시장에 연대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아닌 이상, 내 또래 밀레니얼 세대가 도시에서 일어나는 강제 철거를 화제 삼은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현장에 가도 청년 연대자가 많지는 않았다. 현장에 가면 투쟁 당사자들, 그러니까 쫓겨날 위기에 처했거나 쫓겨난 사람들이 나를 비롯한 옥선 활동가들(전원이 밀레니얼 세대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라고. 나는 그냥 '쫓겨남'에 반대해서 현장에 간 건데 투쟁 당사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머쓱하다.

우리는 매일 쫓겨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시장에서 쫓겨나 노량진역 근처에서 농성과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 박김성록

 
재개발, 재건축, 도시 재생, 현대화, 젠트리피케이션 등 갖은 이름으로 일어나는 쫓겨남과 강제 철거 등등. 이와 같은 현상을 그저 낡은 동네와 건물을 바꾸는 일로 여기는 건지, 많은 이들이 젊은 청년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연대하기 전까지는 '공사하는구나', '가게가 또 바뀌었네', '여기 있던 집 없어졌네' 정도의 감각 말고는 없었다.

처음엔 '멀쩡한 집과 가게를 왜 부수지?'라는 단순한 의문으로 현장에 갔다. 올해 활동 4년 차다. 이제는 집과 가게가 부서지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쫓겨나는 문제가 밀레니얼 세대인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낀다.

'강제 철거' 하면 대부분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떠올린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소설이다. 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쫓겨난다는 것의 이미지가 난쏘공으로 굳어진 것 같기도 하다.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공장 노동자들만 겪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매일 쫓겨나고 있다.

전셋값이 매년 치솟으면서 2년에 한 번씩 이사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자.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집계된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4억 1773만 원이다. 2년 전 가격인 3억 6675만 원보다 약 5천만 원이 올랐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살려면 집주인에게 5천만 원을 구해다 줘야 한다. 

빚내서 전세 보증금 충당했고 매달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느라 힘든데 전세금은 매년 오른다. 2년이 지나면 아직 덜 갚은 빚 앞에서 또 다른 빚을 내야 한다. 못 내면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이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몸도 지치고 돈도 들지만, 무엇보다 내가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쌓은 것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애지중지 가꾼 집 안 구석구석도 없애야 하고, 일터 혹은 학교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내 모든 생활 동선을 익숙하게 만들어 놨는데, 그런 곳을 또다시 어렵게 구해야 한다. 이렇게 쫓겨나다 보면 내가 살던 곳에서 점점 밀려나게 된다. 내가 살던 집의 전셋값이 올랐는데 옆집이라고 안 오를까. 싼 곳을 찾다 보면 더 멀리 가야 한다. 그래서 자꾸 타협하게 된다. '출퇴근 1시간이라, 넷플릭스 보면 되지 뭐.'

집이 아니라 가게면 앞서 이야기한 것에 더해 단골손님과 상권도 잃게 된다.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물며 '여기에 이 가게가 있다'는 걸 손님들에게 인식시켜 놨고, 이 장소의 상권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쫓겨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

옥바라지골목, 을지로, 아현포차...

내가 연대했던 현장에서 일어난 문제는 위에 언급한 문제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어떤 공간에 살면서 그 공간을 매일 만들어간 사람의 권리보다 그 공간의 땅 혹은 건물을 가진 사람의 권리가 우선시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같았다.

옥바라지 골목이 그렇게 사라졌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식당도 생겼고 여관도 생겼다. 당연히 가정집도 있었다. 재개발 사업을 시행했던 조합은 옥바라지 골목을 '무악 2구역'으로 분류했다. 조합은 원래 살던 사람들과의 협상이 완료되지 않은 채 철거를 밀어붙였다. 투쟁 끝에 협상을 마쳤고 골목에 살던 사람들은 이주했다. 지금 그곳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청계천·을지로에 들어선 대규모 제조업 지구 일부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에는 '제일사', '대진정밀', '현지빠우', '한신정공', '태명기어', '신아주물'처럼 쇠를 붓고 식히고 만들고 깎고 다듬고 칠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6·25 전쟁 이후 기초 산업이 생겨난 곳이니 역사만 50년이 넘었다.

그러나 2018년, 서울시가 이곳 일부의 주거 비율을 기존 50%에서 90%로 높였다. 아파트 지으라고 허가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장들은 옆 가게가 헐리는 걸 보면서 자신의 가게가 언제 헐릴지 몰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는 나도,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꿈꾸기 어려운 비싼 아파트가 사람들을 내쫓으며 지어지고 있다.

30년 역사의 아현포차는 '명품 주거 인프라 구축'을 하느라 사라졌다. 지난 20대 총선 때 서울 마포구갑에 출마해 당선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아현초 일대 포장마차 정비' 공약이었다. '명품 주거'라 불리는 곳은 아파트였고, 아현포차를 밀어내고 구축한 인프라는 '화분'이다. 꽃 심는 그 화분 말이다. 명품 아파트 미관을 위해 쫓겨난 아현포차들 중 두 곳은 현재 경의선 공유지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촌 궁중족발은 전셋값 올리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쫓겨났다. 세입자가 계약을 그대로 이어가자고 요청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몇 달을 앞두고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 건물주는 하루아침에 월세와 보증금을 4배 올렸다. 나가라는 말이었다. 2년을 버텼지만 한밤중 들이닥친 지게차에 속수무책으로 쫓겨나야 했다.

'삶'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야 합니까?
 

청계천을지로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청계천을지로 제조업 지구. 활동가들과 함께 방문했다. ⓒ 박김성록

 
한 장소의 가치는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감정평가사의 가격이나 주변 시세 등을 참고하면 제일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랜 시간 살며 그 지역의 역사를 만들고, 상권을 만들고, 건물과 땅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의 삶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야 하나. 돈이 되는 공간만 만들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원래 살던 사람들을 쫓아낸다. 도시는 쫓아냄과 쫓겨남을 무한 반복해 생긴 가난 위에 세워진다.

올라간 전세금을 주지 못해 2년마다 쫓겨나 반지하와 원룸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것도, 오랜 기간 한 장소에서 살고 장사하던 사람이 쫓겨나 그 자리에 '그놈의' 아파트가 지어지는 걸 허망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도 돈 때문이다.

돈이 되는 공간만 만들려는 도시에서, 우리는 나이를 불문하고 쫓겨나게 돼 있다. 도시는 그렇게 설계된다. 이게 지난 4년간 활동하며 목격한 도시 문제의 핵심이고,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강제 철거 현장에 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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