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05 08:01최종 업데이트 19.11.0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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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이런 질문을 마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와 우울감을 떠올리곤 한다. 피해의 경험은 우울함을 느끼게 하고 이를 만들어낸 가해자를 향해서 분노가 촉발된다. 하지만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수치스러울까? 잘못한 것은 피해자가 아닌데. 가해와 피해의 구도에서 피해자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이는 다른 범죄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절도나 손괴를 당했다고 수치심을 호소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지 않은가.

그러던 와중에 언젠가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타인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당한 이가 수치심을 느낀다고 호소한 일을, 지인에게 들려주었다. 더불어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지인은 간단하지만 아주 명쾌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당연한 일이야, 상대방으로부터 전혀 인격적인 존중을 받지 못했잖아, 그런 취급을 받으면 누구나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어"

'성적 수치심'이 의미하는 것
 

ⓒ PIXABAY



 
때로 사람들은 '수치심'을 '부끄러움'이나 '수줍음'과 헷갈리곤 한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치심은 단순히 다른 사람 앞에서 작아지거나 스스로를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수치심이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일컫는다.

그리고 성폭력은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루어진 성적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가 의사를 묻지 않고 접촉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혹은 기타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애초에 소통의 과정이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소유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폭력은 성적인 침해 행위이자 동시에 상대방을 물건, 즉 인간이 아닌 것으로 대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이런 맥락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치심을 느낀다. 존중받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이 지닌 가치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확인받고 인정받으며 형성되기도 한다.

가령 나는 나의 존엄성을 주변 사람들이 전하는 보살핌과 애정을 통해 느끼곤 한다. 이는 이러한 가치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즉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낌은 가해자의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통해 피해자의 존엄과 인간성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사건, 제대로 된 해결이 필요한 이유

따라서 피해자가 '회복'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을 되찾고 일상에 복귀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회복이란 손상된 자신의 인간성을 다시 복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다. 피해의 경험을 직시하는 것부터가 힘들다. 스스로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많은 경우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명명하길 주저한다. 어쩌면 내가 유난스러워서 힘들어할지 모른다고, 어쩌면 그것은 폭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아니 어쩌면 그 사건은 그냥 꿈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회유한다. 혹은 모든 것이 스스로의 잘못이고 자신이 겪은 것은 단순한 사고라며 자책한다. 하지만 몸에 남은 흔적과 느낌 그리고 감정은 계속해서 피해의 경험을 환기시킨다. 사고와 감각이 일치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고통스러운 분열의 과정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폭력 사건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 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도 필요하지만, 가해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사건을 제대로 의미화 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 모든 과정을 피해자가 홀로 겪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개인의 인간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또한 회복될 수 있다.

우리가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성폭력은 부당한 폭력이며 피해자가 결코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는 사람임을 확인할 때에, 즉 피해자가 불가침의 인권을 가진 존엄한 존재임을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할 때에 피해자는 회복을 향한 걸음을 제대로 밟을 수 있다. 즉 사법적이건 공동체적이건 성폭력 범죄에 대해 판단을 하고 처분을 내리는 일은 단순히 가해자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빼앗긴 존엄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과정 중 하나다.

법원은 누구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있나?

 

ⓒ PublicDomainFiles.com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일을 얼마나 제대로 해나가고 있을까. 얼마 전 대중교통 안에서 여성의 하반신을 촬영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되어 논란이 일었다. 피해자가 '일상복으로 활용되는 레깅스'를 입었고 그래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상사가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손은 성적 수치심을 주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무엇을 입고 있었으며 가해자가 어디를 만졌는지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거기에 반해 신체 부위를 촬영하거나 만지는 행동은 비인격적인 대우이자 침해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불법촬영은 대표적인 성범죄이며 신체적 접촉은 맥락에 따라서 성적인 함의가 담겨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당연히 '성적 수치심'을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판결을 함에 있어 이런 사안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관점이 소거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는 대체 누구의 시선이 남아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사법부가 피해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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