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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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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좌절된 혁명가 치고 억울하고 분통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동학혁명기의 김개남(金開南, 1853~1894) 장군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학혁명은 전봉준ㆍ김개남ㆍ손화중의 3대 지도자에 의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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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화곧장 한양 진격했다면?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덧붙이는 말] 100년이 넘도록 묻히고 덮히고 잊히고 그래서 잃어버렸던 영웅 김개남 장군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이웃의 고통과 부당한 관권의 수탈에 맞서 세상의 광정에 나섰던 김개남 장군.'백성'이라고 하기에는 근대의식이 깨어있고 '민중'이라기에는 전근대의식에 젖어있던 ...
    20.02.27 18:01 ㅣ 김삼웅(solwar)
  • 77화신영복선생의 '김개남장군 평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7회] "그의 비타협적 의지는 전봉준의 근왕주의적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새는 언제나 나뭇가지에 내려와 앉는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몰라 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 ...
    20.02.26 21:21 ㅣ 김삼웅(solwar)
  • 76화김개남장군의 가묘와 비문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6회] "장군께서는 이제 편안히 여기에 쉬시며 민족통일의 그날을 굽어 보시라"

    김개남장군은 유언 한 마디 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사후 시신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수급은 서울과 전주에서 두 번씩이나 효수되고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많은 세월이 지난 뒤, 지금 정읍시 산내면 동곡리 지금실에 머리털 한 ...
    20.02.25 21:46 ㅣ 김삼웅(solwar)
  • 75화김개남 후손들, 가난ㆍ핍박으로 몰락당해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5회] 김개남이 처형된 이후, 도강 김씨 문중은 쑥대밭이 되었다

    김개남이 처형된 이후 그의 가족과 동학도인들이 많았던 향리의 도강 김씨 문중은 쑥대밭이 되었다.김개남장군의 부인 전주 이씨는 남편이 붙잡힌 이후 열한 살 된 아들 복술(福述)이를 데리고 구고현 두복리(현 임실군 청웅면 두복...
    20.02.24 19:06 ㅣ 김삼웅(solwar)
  • 74화 '왕조타도'의 혁명노선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4회] 김개남 장군은 외세에 밀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피를 뿌렸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대 내면이 아픔으로 꽉 차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하여 선 사람이여. &nb...
    20.02.23 18:16 ㅣ 김삼웅(solwar)
  • 73화 43살, 서울 압송 도중 처형된 김개남 장군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3회] 김개남이 전주감영으로 끌려갈때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나와 애끓는 노래를 불렀다

    김개남 장군을 발고한 임병찬(1851~1916)은 그 공으로 정부로부터 군수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옛 친구를 발고한 죄책감에서였을까. 그는 1906년 면암 최익현과 함께 정읍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일제의 조선 병...
    20.02.22 17:47 ㅣ 김삼웅(solwar)
  • 72화옛 친구의 밀고로 관군에 체포돼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2회] 김개남과 전봉준은 배신자들에 의해 어이없이 체포되었다

    김개남은 청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더 이상의 북상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그동안 많은 사상자가 있었고 병사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져서 재충전의 시간이 요구되었다. 이즈음 황토현에서 패배, 후퇴하고 있던 전봉...
    20.02.21 21:38 ㅣ 김삼웅(solwar)
  • 71화일본군 앞잡이 관군의 만행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1회] 전봉준의 애끓는 '척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박은식은 『조선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동학당은 호미와 곰방메와 가시나무총을 들고 밭고랑에서 분기하여 우리의 관군과 일병을 상대하여 교전한지 9개월 만에 드디어 항복하였다. 이 변란통에 사망자가 30여만 명이나 되었으니 미증유...
    20.02.20 19:20 ㅣ 김삼웅(solwar)
  • 70화일본군, 각처에서 동학농민군 학살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0회] 동학농민군과 동학도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무차별 학살하였다

    일본군의 본격적인 동학농민군 학살은 청ㆍ일전쟁을 통해 청국군을 격파하고 친일정부를 세워 조선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10월 9일(음) 삼례봉기 이후 10월 12일(음) 동학농민군이 공주로 진격하면서 일본군과 ...
    20.02.19 21:18 ㅣ 김삼웅(solwar)
  • 69화엄동설한에 핫바지 차림으로 일본 정규군과 전투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9회]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합동 공격을 당해내기 어려웠던 이유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열악한 무기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현대식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합동 공격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결과는 시산혈해를 이룬 참담한 패배였다.엄동설한에 일본군과 관군은 완전무장한 반면 동학농민군...
    20.02.18 17:54 ㅣ 김삼웅(solwar)
  • 68화동학군, 2만명 중 5백명만 살아남아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8회] 우금치전투는 최대의 희생이고 참담한 패배였다

    잘 훈련된 일본군의 신식 무기에 동학농민군이 훈련도 받은 적 없이 구식 화승총이나 칼, 창으로 대결한 이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오직 '제폭구민(除暴救民)'의 명분과 '척왜(斥倭)'의 의기로 싸...
    20.02.17 17:25 ㅣ 김삼웅(solwar)
  • 67화동학군, 우금치전투에서 참패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7회] 우리나라 전사사상 우금치전투만큼 처절했던 격전은 일찍이 없었다

    김개남이 청주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계속 패퇴의 길을 걸을 즈음, 전봉준은 동학북접군과 협력하여 한때 충청도 일부와 경기도 일원을 장악하였다. 일본군이 조선의 국정을 농단하고 관군을 앞세워 동학농민군의 섬멸에 나서면서 남접은 ...
    20.02.16 16:43 ㅣ 김삼웅(solwar)
  • 66화동학당 근거지 찾아 초절할 것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6회] 일본정부가 학살한 동학농민군은 대체로 30만 명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움직임과 지도자들의 거처를 손바닥처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동학농민군은 적에게 거의 모든 정보를 노출시킨 가운데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다음은 동학군 학살을 위해 파견되는 일본군 ...
    20.02.15 18:22 ㅣ 김삼웅(solwar)
  • 65화동학 거괴들의 인명록 보내다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5회] 정상 전권공사가 이등 병참감에게 보낸 기밀문건

    다음은 1894년 11월 9일 정상(井上) 전권공사가 이등(伊藤) 병참감에게 보낸 기밀문건이다.기밀 제210호 금일자 귀 서한을 받아보았습니다. 동학당 진정을 위해 파견하는 제19대대에 부여할 훈령과 일정표를 보내오니 일람...
    20.02.14 16:29 ㅣ 김삼웅(solwar)
  • 64화일본군의 거미줄 같은 정보망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4회]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전국 각처에 정보원과 밀정을 파견하여 농민군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일본은 밀정들을 약장수로 변장하거나 관광객으로 가장시켜 현지에 투입, 각종 ...
    20.02.13 18:43 ㅣ 김삼웅(solwar)
  • 63화일본군에 밀려 패퇴를 거듭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3회] 청주성 공격에서 패배한 김개남 부대는 후퇴하고

    청주성 공격에서 패배한 김개남은 적잖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였다.11월 13일 밤에는 진감으로 패퇴하고, 여기서는 민보군의 공격에 밀려 다시 연산으로 후퇴하였다.승리의 기세를 몰아 청주를 공략했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
    20.02.12 16:27 ㅣ 김삼웅(solwar)
  • 62화일본군, 스나이더와 무라타소총으로 무장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2회] 동학농민군의 화력과 일본군의 화력은 어림잡아 1: 250의 수준이었다

    동학농민군은 근대식 무기인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여 40~50 차례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그러나 낡은 화승총을 비롯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에 비해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 등 ...
    20.02.11 16:30 ㅣ 김삼웅(solwar)
  • 61화청주성 공격, 일본군에 패배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1회] 참담한 청주성 패배의 주원인은 일본군의 화력이었다

    김개남은 삼례의 2차 봉기에 합류하지 않고 남원에서 머물다가 10월에 전봉준이 북상하자 14일 5만 병력을 이끌고 임실을 거쳐 16일 전주성에 입성하였다.전주성에서 새로 부임해 임지로 오던 남원부사 이용헌을 처형하고 고부군수 ...
    20.02.10 17:02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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