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곽우신

 
"초연을 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지만, 부담도 분명 있었어요."

배우 임혜영이 뮤지컬 <레베카>의 '나(I)'로 돌아오는 데는 약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3년 초연과, 2014~2015년 시즌의 재연 때 함께한 이후로 한동안 그를 이 작품에서 볼 수 없었다. 뮤지컬 <레베카>가 그사이 세 번의 시즌을 더 하고, 2021~2022년 6번째 시즌으로 돌아왔을 때, 배우 임혜영은 그의 세 번째 '나(I)'를 맡게 됐다.
 
<레베카>가 지금의 인지도를 갖게 된 데는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의 공이 가장 크지만,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나'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창작이든 라이센스이든, 초연 공연에 서서 그 인물에 숨결을 불어 넣은 배우들은 오래도록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OST 앨범에도 남아 있는 그의 노래와 연기는, 그 이후 시즌에 <레베카>에 합류해 '나'를 소화한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지금의 <레베카>를 만드는 데는 임혜영의 지분도 분명히 꽤 존재한다.
 
그만큼 부담도 분명 컸을 터였다. 7년 전의 임혜영와 지금의 임혜영은 같지만 다른 인물이다. 그 사이의 시간만큼, 배우는 자신의 내면에 나이테를 새기고, 경험을 쌓고, 관록이 생긴다. <레베카>의 위상도 그사이 훨씬 높아졌고, 관객이 거는 기대도 커졌다. 초연과 재연 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재현해야 할 것도 있고, 단순히 반복된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한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상반된 요구를 모두 받아 안아 들고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어떤 배우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배우 임혜영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 자신의 존재를 오늘도 무대 위에서 증명하고 있다. 2013년 LG아트센터에서 봤던 임혜영과 2022년 충무아트센터에서 본 임혜영은 분명히 달랐다. 무대 위에는 중간중간 그가 거쳐 온 배역들을 통해 무기로 삼게 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작품의 다른 인물을 소환해 대체하는 건 아니었다. 그 다양한 모습을 온전히 나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아 자유롭게 펼치고 있는 이 주연 배우는 이 스릴러의 서스펜스를 꽉 붙잡고 있었다. 이름 없는 주인공에게 누구보다 강한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서울 공연의 마무리를 앞둔 지난 1월 말, 배우 임혜영을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오랜만에 만나 작품과 배역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비슷하게 하지만 다르게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임혜영의 욕심 “그런 걸 연습실에서 되게 많이 겪었어요. 무대에 가서 조명을 딱 받으면, 옛날 기억이 참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물론 옛날처럼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죠. 그래도 배우로써 제 욕심이 있잖아요. 감정도 조금 더 쌓아보고 싶고, 연기도 조금 다른 선택을 해서 풍성하게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되게 많은 생각들이 있었고, 내 안의 힘듦을 극복하는 과정이었어요.” ⓒ 곽우신

 
"제 안에서의 내적 싸움이 되게 많았어요. 초연 때와는 다른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죠.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위험하지만, 효과적인 경우도 꽤 있었거든요. <드라큘라>의 미나 때도 그랬고, <젠틀맨스 가이드>의 시벨라를 할 때도 그랬죠. '미나' 때도 데이비드 스완 연출이 디렉션(Direction)을 준 방향과 다른 것들을 많이 시도하면서 더 굳건한 미나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또, 음역대로 보나 제 이전 작품들을 보나 시벨라보다는 '피비'가 더 맞았죠.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연습할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제가 만든 시벨라는 외국 오리지널과는 여러 가지가 다르거든요. 그래서 '시벨라를 참 잘했다'라는 칭찬을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레베카>도 초연 때는 외국 오리지널 영상을 보면서 나만의 생각을 많이 했는데, 7년 만에 만난 '아이(I)'는, 그때와는 다른 게 구석구석 되게 많더라고요. (웃음) 초연하고 재연할 때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표현하고 가져갈 것도 너무 많다 보니 정신이 없었어요. 연출께서 준 노트만 다 잘 수행해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한 작품을 100회 넘게 했으니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제약이 있는 것도 있고, 내 안에서 또 옛날에 했던 것과 부딪히기도 하고…. 머리로는 '새로운 걸 해봐야지' 하고 판단하다가도, 몸은 이전에 하던 대로 저절로 가고 있더라고요. (웃음)"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차기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있지만 확실히 결정된 건 없어요. 어릴 때는 많은 경험을 쌓고 이것저것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을 참 많이 했는데, 지금은 하나를 해도 재미있게 잘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너무 알아버렸어요. 이제는 이것저것 여러 다리 걸칠 체력도 아니고요. (웃음) 한 가지씩 깊게, 하지만 꾸준히 계속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 곽우신

 
횟수로만 치면 같이 캐스팅된 이지혜 배우도 이번 시즌이 세 번째이다. 박지연 배우는 오연에 이어 연속 두 시즌을 함께하고 있다. 최근 시즌을 연이어 소화한 배우들의 '나'와, 초연과 재연 이후 어느 정도의 빈칸을 둔 채 돌아온 배우의 나는, 같은 인물임에도 분명 어디인지 다르다. 각 배우만의 특징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배우 임혜영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찾는 과정도 필요했다.
 
"작품에서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주는 시선들이 참 많아요. 앙상블이나 조연들도 나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 실마리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서 수집했어요. 계속 대본과도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초연 때 연출한테 받았던 것을 기본으로 삼되 그 안에서 더 섬세하게 감정을 가져가자고 결론이 났죠. 그 사이에 더 예민해진 아이라고 할까요? 책을 다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한 아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작은 것에 더 많이 반응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아이를 표현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댄버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에는 단순히 '무서워'였다면, 지금은 '왜 저 여자는 저런 눈빛을 하고 이곳에 이렇게 있게 됐을까?'라고 이유를 찾는 물음표가 많아졌죠. 한 신, 한 신을 할 때마다 항상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해요. 이번 시즌은 연기하면서 상대 인물들의 눈을 더 보게 돼요. 그리고 그들의 눈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막심을 봐도, 반 호퍼 부인을 봐도, 클라리스와 베아트리체를 봐도 그래요. 그래서 내가 정말로 책을 쓰는 작가가 된 것처럼, 내가 책 속의 화자가 된 것처럼 진심으로 그런 느낌을 갖고 처음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여정을 해나가고 있어요."

 
나와 막심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숙제 ”‘여자들만의 (사랑의) 힘’이 아직도 참 어려워요. 그게 참 씩씩한 곡이잖아요. 사실 가사에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들이 숨어 있거든요. 그 부분을 제가 잘 표현하고 있는지 항상 아쉬워요. 관객들이 봤을 때 좋게 잘 봐주시면 감사하죠. 내가 얼마나 힘이 되는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거기서부터 보여주는 건데,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까 항상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어요.“ ⓒ 곽우신

 

잘 알려진 것처럼, 뮤지컬 <레베카>의 주인공은 '레베카'가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레베카는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회자될 뿐, 극 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나'는 이름이 없다. 극 중에서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나 끊임없이 호명되는 레베카와, 존재하지만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나'는 대척점에 있다. 팬들은 그래서 '나'를 독일어 1인칭 주격 대명사인 '이히(Ich)'로 자주 부른다.
 
그의 정체성은 '미세스 드 윈터'이다. 막심 드 윈터의 부인, 드 윈터 가문의 안주인. 순식간에 신분이 상승한 나는 '레베카 드 윈터'가 차지했던 그 자리를, 어쩌다 보니 떠안게 된다. 착하고 상냥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지만, 저택을 책임질 카리스마는 부족했던 그를 하인들은 뒤에서 험담한다.
 
'나'가 극 중에서 겪게 되는 고난은, 댄버스 부인이 '나'를 레베카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시작된다. '나'는 막심을 사랑했기 때문에, 막심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됐을 뿐 처음부터 드 윈터라는 귀족적 지위나 부를 탐했던 것은 아니었다. 막심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굳이 겪지 않았을 고통, 나는 이런 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막심을 사랑했을까? 단순히 백마 탄 왕자였기 때문일까.  

"막심이 커피 한잔하자고 아이를 앉히고 그 눈을 보게 되는데, 그 눈에서 단순히 '이 사람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을 본 건 아니에요. (웃음) 우리도 누군가를 잘생겨서 좋아하는 나이는 지났잖아요? 막심의 그 눈에서 묘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슬픔과 함께, '이게 뭐지?' 하게 되는 것들이요.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거지?'에서부터 감정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사실 처음 호텔에서 막심이 굉장히 재치 있잖아요. 숙녀라고 처음으로 불러줬고,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아온 아이에게는 따뜻한 햇살처럼 정서적인 위로가 됐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슬픔과 아픔이 있지만 그걸 또 씩씩하게 이겨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막심에게도 나랑 뭔가 비슷할 것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거죠. 너무나 다른 사람이지만, 분명히 낯설지 않은 비슷함. 나에게 예의 바르게 감정을 표현하고, 그래서 또 만나고 싶어지고. 그리고 아이는 습관처럼 이 좋은 걸 한쪽의 병 속에 담아놓는 성격인 거죠. 막심이 '우리 둘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네요'라고 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공감이 있다면, 연상이든 연하든 나이 차 같은 건 상관없어요."


'나'의 독특한 점 역시 막심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막심은 절망하며 '나'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막심과 레베카는 일종의 계약 결혼이었다. 가문의 명예를 지켜야 하는 막심과, 권력이 필요했던 레베카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지만 레베카는 주변인을 장악하며 밀회를 즐겼고, 막심을 기만했으며,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레베카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막심을 파멸시킬 덫을 짜뒀고, 막심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막심 곁에서 그를 지키기로 한다. 끊임없이 레베카와 자신을 비교했던 '나'는 사라진다. 막심이 레베카만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레베카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살인을 고백하는 순간조차도, '나'는 막심의 마음을 확인한 데 안도하고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그렇게 읽힐 수 있고, 많이들 그렇게 해석하시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져가는 해석은 조금 달라요. '나'가 달라지는 포인트가 '막심이 레베카를 사랑한 게 아니었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댄버스가 '나'를 죽이려고 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서서히 강해지고 있었어요. 사람이 위기를 겪고 나면 강해지잖아요.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가, 막심을 찾으러 다니는 때부터 강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크게 티는 안 나지만, 목소리 톤도 이미 바꾸기 시작해요.
 
제가 생각하는 '나'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많은 아이에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막심만이 아니라 반 호퍼 부인도 사랑하고, 댄버스도 사랑해요. 막심의 레베카를 향한 마음과 상관없이, '그냥 곁에만 있게 허락해줘'라고 노래하는 나는 이미 강한 사람이에요. 막심이 레베카를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막심을 사랑하겠다는 말이잖아요. 막심의 고백은 이를 더 단단하게 해주는 확신이자 계기였을 수는 있지만, 만약에 막심이 레베카를 실제로 사랑했다고 고백한다고 나의 태도가 달라졌을까요?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랑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와 댄버스
 

뮤지컬 <레베카>에 다시 돌아온 배우, 임혜영 초연과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나'로 돌아온 배우 임혜영을 지난 1월 28일 서울 도곡동 와인바 '에뚜아르'에서 만났다. 7년 전 초연을 맡았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배우 임혜영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다. 그 나름의 결론을 지금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 하고 싶은 것 “어렸을 때는 여주 원톱 작품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욕심이 정말 많았죠. 제 뜻대로 안 되면 화도 나고 막 울고 그랬어요. (웃음) 하지만, 지금은 정말 그런 욕심은 없어요. 그냥 제 것에 더 충실하고자 해요. 연기 노선을 잘 바꿔보고 싶다, 인물을 너무 여리지만은 않게 표현하고 싶다, 이야기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다…. 다만,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와 루시처럼 경계가 명확한 캐릭터 말고,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작품들이 하고 싶어요. 제가 인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요. 그래서 요새는 창작극도 하고 싶고, 연극도 너무 하고 싶고, 대학로 소극장도 가고 싶어요. 아, <키다리 아저씨>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웃음)” ⓒ 곽우신

 
 

"착각하지 마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그동안 내내 스스로를 부정해 왔죠. 이제는 아냐. 이 어두운 집안에 빛을 밝힐 거예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손님 노릇은 안 해. 이 집주인은 나야." - 뮤지컬 <레베카> 2막 No.06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중에서

 
변화의 시점과 동기가 다른 만큼, 극 중 표현되는 '나'의 모습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2막에서 '나'는 1막과 달리 적극적으로 레베카의 흔적을 맨덜리 저택에서 지우기 시작한다. 레베카가 남긴 자취를 지키고 싶어 하는 댄버스 부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넘버가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이다. 1막에서 '나'는 댄버스 부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신을 무시하고, 레베카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 지칭해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막에서는 그 앞에서 당당하게 '드 윈터' 부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한다. 하지만 임혜영은 이 장면을 강대 강으로 충돌하기만 하는 양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더 세게도 하려면 할 수 있어요. 처음에 연습할 때는 지금보다 더 세게 하고 싶었죠. 그 순간만큼은 댄버스를 한번 이겨보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너무 세게 하면 연출께서 노트를 주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노심초사하면서 선을 지키려고 해요. '왜 이게 아닐까?'라는 고민도 했어요. 저는 '나'가 단순히 흑화한 게 아니라고생각해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라고 하는 건, 레베카와 같은 선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강한 아이가 되겠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해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의 속뜻은, 댄버스에게 '이제 그 사람을 놔줘.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이제 나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댄버스는 레베카의 흔적을 계속 안고 있잖아요. 레베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댄버스에게, '이제 레베카는 잊어요. 여기 없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놔주고, 이제는 당신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표현을 하려고 해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드 윈터 부인은 이제 나거든?!'하고 느낌표 주는 게 아니라요. (웃음)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더 자상하고 강한 캐릭터죠.
 
그래서 실제로는 아이가 댄버스보다 더 강한 인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상한 게 더 강한 거예요. 진짜 강한 사람은 화를 안 내잖아요? 아이는 절대로 악해질 수 없어요. 쉽게 흑화한다고 표현하잖아요? 아이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고, 그런 나이기 때문에 막심이 끌린 거죠. 착하고 부드러운데, 그 유연함 때문에 강한 사람이요."
 

그렇기에 결국 파멸하고 마는 댄버스 부인의 끝을, '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임혜영은 댄버스의 마지막을 향한 '나'의 감정을 "연민"으로 표현했다. "2막에서는 더 안쓰러워진다"라며 "'나' 자체는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아픔이나 슬픔을 잘 보는 친구고, 그에 대해 마음을 주고 싶어 하는 친구"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댄버스가 '나'에게 공포였겠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초연 때는 거기에 집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왜 내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걸까'하고 생각해요. '레베카에게서 충분히 벗어나도 되는 사람인데, 왜 거기에 갇혀서 살고 있을까'라고 말이죠. 그래서 댄버스에 대해 끝까지 안타까웠을 것 같아요. 에필로그 때도 이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행복하면서도 '나'의 한쪽 구석에는 슬픔과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댄버스 부인에게 레베카를 대신할 다른 추억을 쌓아가는, 레베카의 기억을 지워가면서 행복을 채워가는 엔딩을 바라지 않았을까요?"
 

이번 시즌이 끝나고, 또 임혜영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배우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건 알 수 없는 것이죠"라는 그의 뉘앙스는 미묘했다. 배우 임혜영의 네 번째 '나'를 만날 수 있을지는, 그의 말마따나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다시 <레베카>로 돌아온다면, 그때의 '나'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고, 그를 바라보는 객석의 우리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대 위에 있는 그를 잘 바라보고, 그가 관객에게 준 행복한 기억을 마음 속 병에 담아 보관하는 것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오는 28일 서울 공연을 마친 후, 전주·수원·대전 순의 지방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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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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