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 양기환 대표-이은 대표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공동제작한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와 명필름 이은 대표.

▲ '태일이' 양기환 대표-이은 대표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공동제작한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와 명필름 이은 대표. ⓒ 이정민

 
'열사' 전태일은 두 사람에게 매우 각별하다. 영화 운동 집단 장산곶매 출신인 이은 대표는 <파업전야>(1990)라는 작품으로 당시 노동계 현실을 날 세워 비판했고, 2000년대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운동을 이끌다 이후 관료 출신 인사들의 '자본 먹튀'를 고발한 <블랙머니>를 제작한 양기환 대표는 전태일 재단 일을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전태일의 삶을 다루는 영화는 오랜 숙제이자 바람이기도 했다. 명필름 이은 대표와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의 합심으로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빛을 보게 됐다.

오는 12월 1일 개봉하는 <태일이>는 '열사' 이전에 '사람'이었던 전태일을 주목한다. 그의 유년기와 노동운동을 본격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삶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관객 사이에선 "동화 같아서 더 눈물이 났다"는 반응 등이 나왔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을 불사른 전태일을 2021년을 사는 모든 관객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닌 공감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고 두 사람은 강조해 왔다. 21일 서울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었다.

시민들의 십시일반
 

전태일의 삶과 생각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자는 기획이었다. 최호철 작가의 5권짜리 만화를 많이 의존했다. 5권 중 3권까지가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걸 다 넣기엔 한계가 있었고, 5분 분량으로 축약했다. 그리고 재단사 보조였다가 재단사가 된 후 왜 분신까지 갔는지 그 이유를 넣는 방향으로 하자고 감독님과도 합의했지. (이은 대표)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51년 세월이 흘러 계량적으로 경제적 민주주의 시대가 왔다지만 여전히 노동이 존중받는 분위기는 아니잖나. 노동자분들을 끌어안으면서도 일반 대중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연출자인 홍준표 감독님이 제작 과정에서 스태프들의 노동을 존중하며, 표준 근로 계약서를 지키며 했다더라. 참 고마운 일이다. (양기환 대표)


물론 쉽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기획 제작을 공표한 2018년을 기점으로 박차를 가했으나 기성 투자사의 투자를 받진 못했다. 1990년 <파업전야> 상영이 끝난 뒤부터 전태일 영화를 구상했던 이 대표였다. 그는 "만화책으로 나온 전태일을 보고선 눈물을 왈칵 쏟았고, 그의 이야기를 언젠가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상황에서 제작이 만만친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소셜 펀딩과 시민 후원 모델이 나왔다. 2019년 '카카오같이가치' 크라우드 펀딩으로 목표(1억원)를 넘긴 금액을 모았고, 명진 스님과 송경동 시인,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등 166명의 사회 각계 대표가 '1970인 제작위원'을 제안해 시민들에게 투자를 받았다. 1970명을 목표로 현재까지 모집이 진행 중이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였던 2020년 개봉은 다소 미뤄졌지만, 시민 참여가 늘면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각계로 퍼지고 있다.
 

제작사야 영화를 만들어 내면 되는데 전태일 재단 쪽에선 50주기에 맞추는 걸로 알고 있다가 늦어지니 걱정이 있었다. 명필름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했었는데 그때보다 애니메이션 인력이 훨씬 줄어들기도 했다. 일정이 늦어지긴 했지만 이렇게 시민 투자와 후원 방식이 <태일이>에 맞는 거라 본다. 회수된 투자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쓸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분들이 영화를 알게 되니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이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 대표)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내용인데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스물두 살 청년의 그 높은 정신세계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신자유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이익만 추구하도록 하는데 전태일의 삶을 다룬 책을 보고, 영화라도 하나 본다면 좀 더 인간답게 살 생각을 서로 하지 않을까. 모두가 전태일 백신을 맞아야 한다.

물론 50주기에 개봉했으면 뭔가 기승전결에 맞겠지. 재단 쪽에서도 거기에 맞춰 여러 행사를 준비 중이었거든. 근데 여전히 한국사회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형편없잖나. 더욱 개인은 파편화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짓는다. 영화 개봉이 좀 늦어도 지장은 없다고 본다. 예전과 상황은 다르지 않으니. 전태일의 일기장을 보고 난  후 충격이었다. (양기환 대표) 

 

'태일이' 양기환 대표-이은 대표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공동제작한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와 명필름 이은 대표.

▲ '태일이' 양기환 대표-이은 대표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공동제작한 질라라비 양기환 대표와 명필름 이은 대표. ⓒ 이정민

 
전태일의 숭고함과 공감 능력

목소리 연기로 힘을 보탠 배우들 면면도 짚어봐야 한다. 배우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권해효, 박철민, 태인호 등이 각각 전태일, 모친 이소선, 부친 전상수, 평화시장 재단사 신씨 아저씨 역을 맡았다. 

이은 대표는 "애니메이션 캐스팅 때는 배우의 목소리와 거기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보는데 결국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배우의 판단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영화와 배우의 목소리가 맞는지 여부"라고 전했다.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수 있는 장동윤의 캐스팅에 대해 이은 대표가 말을 이었다.
 

장동윤 배우는 편의점에서 강도를 잡은 이후 배우로 데뷔하게 됐잖나. 그런 점들이 정의로운 태일이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도 태일이와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 (이은 대표) 


제작자와 배우의 의지, 그리고 많은 시민이 함께 참여한 <태일이>는 그 자체로 전태일 정신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끝으로 본인들이 생각하는 전태일 정신에 대해 물었다.
 

결국 공감력이 아닌가 싶다. 전태일 열사도 어렸을 때 심하게 가난해 봤거든. 가난에 대한 공감력이 있어서 재단사 보조로 일할 때 여공들을 그렇게 살뜰하게 챙겼던 거고, 동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한 거지.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을 공감하고 사랑한 것 같다. (이은 대표)

 

숭고함이 아닐까. 우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물이기도 하다. 생존의 본능이란 게 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타자를 위한다는 건 내 욕망을 뛰어넘는 거잖나. 전 그게 숭고함이라고 본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고, 같이 살아야 한다. 지금의 세계가 그렇다. 코로나19가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없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나. 전 지구적으로 하나라고 생각할 때다. <태일이>는 노동자뿐 아니라 정치인, CEO도 좀 보고 역지사지해야 한다. (양기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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