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환을 질펀한 노래로 한바탕 털어버리는 밴드 크라잉넛(CRYING NUT). 1996년 12월 데뷔한 이들은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말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명동콜링', '룩셈부르크' 등 쉬지 않고 노래를 발표하며 대중과 호흡해 왔기에 그들의 기념일이 더욱 뜻깊어 보인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이들의 작업실 '드럭레코드'를 찾아 다섯 멤버 박윤식(메인보컬, 기타),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와 25년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나눴다. 

재밌어서 한 일이 직업 될 줄이야
 

크라잉넛, 코로나19에 맞선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왼쪽부터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 드럼 이상혁, 베이스 한경록, 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냥 즐거워서, 노는 거밖에 없었다. 출세하겠다 이런 게 없었다. 직업이 될 줄 몰랐다." (한경록) 

"그날그날 공연하고 술 먹는 게 재밌어서 했다." (이상혁) 


김인수를 제외하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네 멤버는 1993년 크라잉넛을 만들었다. 밴드의 결성까지 과정은 이랬다. 중학교 때 서로 모여서 테이프를 틀고 음악 듣던 걸 좋아하던 사인방 중 이상면이 먼저 기타를 샀다. 기타라는 새로운 악기에 신난 이들은 서로 돌려가며 치고 저가 앰프를 구해 옥상에서 연주하며 놀았다. 청소년의 놀이문화라는 게 오락실 외에 딱히 없었던 그때, 이들은 오락기 대신 음악을 갖고 논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크라잉넛이란 이름의 밴드가 결성됐다. 이상면은 당시를 회상하며 "친구 생일이어서 라이브클럽에 가자고 해서 홍대 '드럭'이란 클럽에 갔다. 그 조그마한 클럽에서 어떤 팀이 공연을 하고 있더라. 너무 재밌어서 울 뻔했다"고 말했다.

'드럭'에서의 충격을 계기로 이들은 서로의 집에서 혹은 옥상에서 미친 듯이 공연을 펼쳤다. 그러다 고3 때 홍대 클럽에 갔다가 오디션을 보게 되면서 1995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홍대를 무대로.  

"합주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이게 되네? 싶으니까 너무 신나더라. 초창기 때 실력이 부족해도 기죽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의식을 안 했다. 그땐 립싱크 문화가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저희에게는 살아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가 노래를 직접 하고 연주를 직접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당당하고 즐거웠다." (한경록)

그렇게 1996년에 첫 번째 앨범 <아워네이션>이 발매됐다. 한경록은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마케팅도 유통도 모르고, 그런 상황에서 결과물이 딱 나오니까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되짚었다.  

펑크라는 장르로 유행을 선도하다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 이정민

 
크라잉넛은 펑크라는 장르를 우리나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최초의 밴드라고 불린다. 왜 하필 펑크였을까, 그들에게 물었다. 이에 이상혁은 "펑크 음악은 단순하고 접근하기 쉽다"며 "저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싶었(웃음)고 그런 자유로운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했다"라며 이유를 밝혔다. 한경록은 "펑크라는 게 음악장르일 수도 있지만 문화현상이기도 하다"며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이란 주제로 국한돼 있었는데 펑크는 사회적인 메시지, 분노 등 살면서 느끼는 걸 넓은 범위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더라.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해방감과 쾌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말에 펑크가 나왔잖나. 당시 한국은 모든 걸 찍어 내리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처럼 독재가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펑크록이란 음악이 대중음악에 포함이 안 됐다. 그런 사회적 배경들로 인해 1990년대에 와서야 한국에서 펑크록이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김인수)

이어 박윤식은 "펑크 음악을 들었을 때 노래가 짧으면서도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더라"며 "여러 가지 음악 장르가 있지만 특히 펑크는 관객들과 같이 놀 수 있어서 그것에 끌렸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펑크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은 앞서 한경록이 언급했듯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음악도 그렇다. 하지만 마냥 신나고 해방의 자유만 있는 건 아니다. 한경록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나지만 그렇다고 그게 끝이 아니다"라며 "가사를 생각해봤을 때 여운이 남고 그 안에 슬픈 느낌도 있는 노래들을 부르고자 했다"며 크라잉넛의 음악 색깔을 소개했다.    

25년 롱런의 비결은 이것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크라잉넛이 25년 관록의 밴드라고 말하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그렇게 오래 활동했나 싶을 정도로 아직도 젊고 신선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25년 롱런의 비결을 직접 물었는데, 멤버별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이게 직업이면서도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비결인 것 같다. 항상 재밌고 항상 새롭다. 어떤 음악 장르가 요즘 유행이다, 그러면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 장르를 일부러 피해간다. 장르에 기대기보다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걸 팠고, 크라잉넛만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상면)

이어 그는 "음악을 배우지 않은 것도 한몫 한 것 같다"며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너무 많이 배우다 보면 거기에 고착되는데 저희는 그런 게 덜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김인수는 이상면의 말에 덧붙여서 "다른 나라의 유명 밴드 가수들을 보면 음대 출신이 거의 없고 미대 출신이 많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아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밴드들이 보통 앨범이 많이 팔리면 큰 기획사로 옮기기도 하고 클럽공연을 못 하게 되기도 하는데, 저희는 계속 클럽공연을 했다.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게 롱런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박윤식) 

이어서 이상면은 "세금 잘 내고, 병역비리 없고, 준법정신을 가진 덕에 큰 탈 없이 가늘고 길게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멤버들이 입을 모아 똑같이 말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재미'였다.  

"직업처럼 치이면서 했으면 하기 싫었을 텐데 재미있어서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우리끼리 신나는 게 첫 번째였다. 보이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재밌는 게 중요했다. 우리가 만약 직장인이었다면 그래도 밴드를 했을 거다. 돈이 안 나와도.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 목표를 가지고 음악을 한 적이 없다. 그냥 너무 재밌었다." (이상혁)

이렇듯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사는 것에 대해 한경록은 "운이 좋았다"며 "우리가 같이 공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클럽에서 노는 게 재밌다"며 "공연도 하고 뒤풀이도 하고 술도 마시고 관객과 어울리고, 그러면서 남들에게 인정도 받고 위로도 되어주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공연 힘들지만, 25주년 앨범에 모든 것 쏟아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왼쪽부터 베이스 한경록, 기타 이상면,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 드럼 이상혁, 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이 질문에 이들은 "활동해온 기간 중 근래가 가장 힘든 시기 같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잉넛은 "우리만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앨범 이야기로 이어졌다. 

"25주년 베스트앨범을 녹음 중인데, 16곡을 녹음하다 보니까 이게 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공연 때 못 푼 에너지를 리코딩에 쏟아붓고 있다. 저희의 에너지가 꾹꾹 눌러 담겨 있는 느낌이다. 초창기 때와 달리 이번 앨범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모든 작업을 하고 있어서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퀄리티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거창하게 말했나 싶은데... '역시 크라잉넛'이네 싶은 부분이 있을 거다." (한경록)

끝으로 이들에게 멤버들이 모이면 음악 이야기 외에는 어떤 대화를 하고, 무엇을 하며 노는지 물었다. 이에 '주성치'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멤버들 모두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고 주성치의 열혈 팬인 것. 이들은 전에 주성치를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그때 축구 유니폼에 사인도 받고 '성덕'이 돼 황홀한 기분을 만끽했단다.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크라잉넛 다섯 멤버의 표정은 세상 없이 순수했다.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 베이스 한경록, 드럼 이상혁,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크라잉넛, 데뷔 25주년! 데뷔 25주년을 맞은 크라잉넛(왼쪽부터 아코디언 및 키보드 김인수, 드럼 이상혁, 베이스 한경록, 메인보컬 및 기타 박윤식, 기타 이상면)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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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주연배우로 낙점... "몸의 역사는 따라할 수 없어"

[인터뷰] JIFF '심사위원 특별언급' 단편 영화 <실> 조민재·이나연 감독

서울 창신동 한 옷가게의 셔터가 드르륵 올라간다. 컴컴한 옷가게에는 이내 불이 켜지고 주인인 명선(김명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옷가게에는 다양한 인종과 성격을 가진 손님들이 방문한다. 옷을 의뢰하려고 방문한 손님, 미싱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방문한 이주여성, 그리고 창신동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명선을 만난 프랑스인까지... 이들은 명선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까. 29분짜리 단편영화 <실(The Thread)>에 나오는 주인공 배우 김명선은 이 영화를 연출한 조민재 감독의 어머니다. 조 감독은 처음부터 어머니를 영화에 등장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배우들이 미싱을 할 줄 모르니 서울 창신동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엄마를 자문 격으로 영화에 초대했다. 하지만 조민재 감독은 깨달았다. 영화에는 실제 배우 김명선이 일하는 창신동 작업실이 그대로 등장한다. 다만 그의 작업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직업 배우다. <실>은 이번 21회 전주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올라 '심사위원 특별언급'으로 호명됐다. 조민재 감독은 영화 <작은 빛>으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독불장군상,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2019)에서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상, 제7회 들꽃영화상(2020)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나연 감독은 영화 <못, 함께하는>으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6) 우수상,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2016)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했다. 5월 24일 조민재 감독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뒤 지난 6일 이메일을 통해 <실>을 공동 연출한 이나연 감독과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족을 영화에 담은 감독 : "어머니가 좋은 경험이니 겪어나가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배우를 따로 섭외하고 미싱 자문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그 몸에 담긴 역사는 결코 따라 할 수가 없겠더라. 무엇보다 어머니가 미싱을 돌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연기라는 건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상대 배우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때 어머니가 포용력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면서도 어머니는 이들을 감싸주듯 연기했다. 어머니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화에 묻어났다. 어머니는 제게 하는 것만큼 자신의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어머니가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창신동이 지난 2015년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외부의 예술가나 활동가가 창신동에 많이 유입됐다. 그런데 제대로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게 되지 않았다. 활동가들이 단발적으로 성과를 내고 싶어서 영상물을 촬영했는데 그게 나는 이미지의 착취라고 느꼈다. 쇠락한 풍경을 영상에 담는 것으로 활기를 채우려 했지만 사실 뭔가를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만드는 영상이 과연 정확할까. 결국 2년 정도 후에도 성과가 안 나오니 서울시가 자금을 끊었다. 그 뒤 대부분 창신동을 떠났다. 2016년부터 <실>의 시나리오를 썼고 2019년 9월에 제작 지원을 받아서 촬영에 들어갔다." : "(영화에서 이주여성으로 등장하는) '흐엉'이 옷 주머니를 예쁘게 달지 못해서 명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에는 '흐엉이 도움을 구하러 온다'는 상황이 적혀있고 현장에서 디테일을 결정해야 했다. 명선 배우가 '이런 장면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각자 공장을 차린 기술자라면 이렇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이 장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실제 봉제 노동자들과 함께 영화를 봐도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이 장면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흐엉이 아이디어를 줘서 장면을 완성했다. 감독으로서 배우와 잘 소통한다는 건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었다. 배우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 "처음으로 하루에 9시간씩 촬영했고 근로기준법에 맞춰서 작업했다. 물론 임금도 최선을 다해서 지급했다. 제작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킬 것을 다 지키고 나니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그렇지만 뿌듯했다. 하나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았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보통 임금에 대해서 당연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창작 행위를 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몸에 담긴 노동을 쉽게 빼앗는 것이기에 고민이 필요하다. 그 어떤 현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모든 게 너무 당연해진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저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엄밀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다. 이번 현장에서 그 구조를 만들어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밥 먹을 때 다들 농약 친 제품 먹기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왜 영화는 그렇게 대하지 않나." : "사전에 배우들과 리허설로 관계를 형성하는 걸 중요한 작업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배우들과 한두 번 만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연기 연습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신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서 (지도하는 방식을) 많이 훔쳤다. 비전문 배우들도 있었기에 사전 작업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가진 용감하고 건강한 기운만 믿고 갔다. 배우들이 뭔가를 흉내 내거나 억지로 만들지 않고 편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걸 가장 중요시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 "주인공의 세계만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영화를 볼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물 각자가 다르면서도 어떻게 연결돼있는지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로는 미디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주류'가 누구인지 그 목소리가 어떤 삶을 삭제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실>에서 여성, 이주민, 노동을 키워드로 가져가면서도 그들의 삶을 소수자성 안에서만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으려 했다." : "'공간의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나온다. 네팔이나 베트남인은 창신동에서 굉장히 오래 살았던 근로자들이다. 이주민들이 정착할 곳을 찾던 와중에 창신동에 모이기 시작했고 이주민들이 만든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여성 노동자의 역사가 가려졌다고 생각했다. 창신동을 전태일의 도시라면서 관광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물론 도시의 중요한 상징이지만 현재 사는 사람들이 가려지고 있고 이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있나를 생각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만드는 옷과 공간에 역사가 배어있다고 본다. 창신동이라는 공간의 언어와 역사를 영화에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는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창신동을 촬영하던 프랑스인이다.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미디어는 달콤하게도 정치적인 상황과 역사들을 이렇듯 쉽게 가져온다. 프랑스인은 그래서 영화 속에서 비판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 "처음에는 제가 연출을 맡았고 이나연 감독이 촬영감독이었다. 여성 스태프들로만 이뤄진 영화를 찍자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스태프가 여자였는데 리더로서 아무래도 끌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감수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나연 감독에게 연기 연출을 부탁했다. 저희가 영화에 여성 인권과 노동을 화두로 들고 와놓고 현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왜 영화 현장에서 영화 스태프들의 인권이 낮을까, 분명 권력 문제가 들어가 있다. 촬영감독은 보통 남성들이 많이 하고 임금이 높다. 그러니 현장 내에서도 권력이 강하다. 영화과에서는 매번 비슷한 남녀 비율로 졸업을 하는데 그 여성들이 어디 갔을까. 실력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다. 여성 스태프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줘야 하고 경험을 쌓게 만들어줘야 한다. 여성 스태프만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역시나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 "첫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실>과 마찬가지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이 될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인 여성 창작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많은 여성이 나온다. 저에게는 큰 숙제 같은 이야기라서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놓기만 하고 쓰지 못했는데 하루빨리 촬영에 들어갔으면 한다." :"기본적으로 몸으로 하는 노동은 휘발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만들고 돈을 받으면 몸의 가치가 사라진다. 나는 5년째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나의 경험과 기술을 저렴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몸은 하나고 복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건설 기술자로 살아갈 텐데 내 몸의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반면 미디어를 비롯한 영상물은 끊임없이 복제가 가능하다. 복제되는 가치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지 않나." : "맞다. 한 번은 내가 '투잡 뛰는 영화감독'으로 JTBC 뉴스에 나왔다. (웃음) 나는 건설 현장에서 5년 정도 일했고 기공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나온 것이다. (취재기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드렸는데 '영화감독이 돈을 벌기 위해서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한다'라고 시나리오를 짰더라. 나는 건설노동자고 영화를 하고 있는데, 영화감독이고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바꿔 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나 매체를 접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 다음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영화라는 공간을 만들면 관객들이 잠깐 와서 놀다 가는 것이다. 누구든 그 공간에 들어와서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식벤져스' 아이디어, 코로나19 기사 보고 얻었다"

[인터뷰] 올리브TV 예능 프로그램 <식벤져스> 김관태 PD

음식물 쓰레기는 최근 환경오염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생활 폐기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뿐더러,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온실가스 등 여러 유해 물질이 대기로 배출되기 때문.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환경통계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의 총량은 약 1만5천여 톤이다(2018년 기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만 해도 연간 8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심각성을 실감하기 쉽지 않다. 6월 24일 첫 방송된 올리브TV 예능 <식벤져스>는 광장시장, 꼬꼬마양배추 농가 등 우리 생활 속 장소들을 찾아 버려지는 식재료들을 직접 카메라에 담으며 그 충격적인 실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아스파라거스 밑동, 꼬꼬마양배추 겉잎, 브로콜리 이파리, 감자 껍질, 죽순 뿌리 등 우리가 당연하게 버려왔던 이 재료들로도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제로 웨이스트' 리얼리티 예능 <식벤져스>의 연출을 맡은 김관태 PD를 만나 기획 과정과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어봤다. "코로나19 관한 기사 보고 '제로 웨이스트' 떠올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 환경 캠페인이다. 해외에서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이나 식당이 많이 도입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다. <식벤져스>는 비록 방송이지만, 한국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식당에 도전했다. 김관태 PD는 "우연히 '코로나 19'에 관한 기사를 보고 '제로 웨이스트'를 떠올리게 됐다"고 털어놨다. 첫 회에 등장한 곳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장시장이었다. 육회, 빈대떡 등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멀쩡한 음식물이 버려지고 있었다. 특히 육회거리에서는 한 달 평균 11만 마리의 낙지 대가리와 연 평균 100만 개의 달걀 흰자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육회 위에는 달걀 노른자만 올리고 낙지탕탕이에는 낙지 다리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주변에 나눠주기도 하고, 직원 식사용으로 소비도 하지만 워낙 양이 많아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김관태 PD는 "작가, 연출진들이 여러 시장에 찾아가고 농가에도 가보고 상인들을 만나뵙고 취지를 설명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취재 과정을 털어놨다. 이어 "처음에는 (상인들이) 저희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인식 자체가 '당연히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 거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조금씩 낙지 대가리, 간, 천엽 등 자투리 식재료들이 나오더라. 현장에서 (버려지는 식재료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리얼리티 예능과는 조금 다르게 연출" 이후 방송분에서는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면서 혹은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버려지는 음식물들도 등장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개량된 꼬꼬마 양배추는 판매하는 알맹이보다 훨씬 많은 겉잎들이 버려진다. 또 코로나 여파로 닭 소비가 줄어들었고, 도살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규격보다 커져버려 판매할 수 없게 된 '닭 19호'도 있었다. 모두 소비자로서는 알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김 PD는 "이건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너무 예능처럼 가볍게 터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자들 역시 한마음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애썼다고 전했다. 방송에서 유방원, 송훈, 김봉수 3명의 셰프들은 자투리 식재료를 활용해 메뉴에 없는 메뉴를 개발해야 했다. 화려한 경력의 셰프들이지만 낯선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때문에 셰프들끼리의 의견 대립도 있었고 제 시간에 음식을 완성하지 못해 쩔쩔 매는 셰프들의 모습도 그대로 방송됐다. 김관태 PD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예상했다"면서도 "처음부터 출연자들에게 '연출을 최소화하겠다, 여러분들이 공간을 채워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마음대로 하실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근사한 요리들이 식탁에 올랐다. 계란 흰자로 만든 머랭만두, 감자껍질을 활용한 아이스크림 등 독특한 아이디어의 음식들이 입맛을 자극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김 PD는 식당에서 준비시간부터 마지막 손님까지 모두 출연진들의 몫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김관태 PD는 촬영 도중 셰프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짓궂게 폭로(?)하기도 했다. 매 회 촬영마다 새로운 식재료들이 식당 앞에 도착하는데,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방송 후 식재료 제공 지자체에서 연락 오기도 힘들기는 홀을 담당한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PD는 "봉태규씨는 사실 몸이 약하다. 처음에는 꼿꼿이 서 있다가 (식당 영업이) 끝날 때쯤엔 등이 굽어 있다. (배우) 문가영씨도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씨도 점점 너무 힘들어서 지쳐가는 게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출연진들이 "너무 힘든데 너무 재밌다"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전했다. 한편 시청자들이 <식벤져스>를 보고 '제로 웨이스트'를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요리법이 너무 전문적이고 복잡했기 때문. 김 PD 역시 "몇몇 음식은 시청자분들이 사실 따라하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면서도 "(음식을) 쉽게 만들려면 그럴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이 식재료가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셰프님들도 그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다. '따라하긴 힘들어도 자투리 식재료로 이렇게 근사한 음식을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PD는 꼬꼬마 양배추 겉잎, 브로콜리 이파리 등을 매년 버려야 하는 농민, 관련 지자체에서 레시피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 명의 셰프들 역시 실생활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이어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총 6부작인 <식벤져스>는 앞으로 두 회 방송분만 남아있는 상태다. 아직 시즌2 제작은 미정인 상태지만, 김관태 PD는 "좋은 콘텐츠이니까 (시즌2)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며 밝게 웃었다. 이어 "지금이 워낙 힘든 시기라서, 우리 예능을 보고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천만다행"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PD는 출연진들과 시청자의 성원에 힘 입어 유튜브 콘텐츠로도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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