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3>의 권오광 감독

영화 <타짜3>를 연출한 권오광 감독.ⓒ 이정민

 
독이 든 성배였든 일생일대의 기회였든 <타짜: 원 아이드 잭>(아래 <타짜3>)의 권오광 감독은 이 시리즈가 품고 있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무게감을 견뎌냈다. 개봉을 일주일 남긴 시점에 이제 공은 일반 관객에게 넘어가 있다. 인터뷰에 임하는 감독은 꽤 겸허했고, 겸손했다.

내로라하는 감독이 '따로' 있는데 케이퍼 무비(범죄영화 장르)의 상징과도 같은 <타짜> 시리즈에서 그가 메가폰을 잡는다며 의아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케피어 무비 장르가 처음이다. 그렇다고 그의 경력과 내공마저 짧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굿바이 싱글> <소셜포비아> 등 대중이 알 만한 여러 상업영화 및 독립영화에서 그는 각색, 윤색, 각본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기여해 왔다.

4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그는 "영화 외엔 제 사생활이 없었다"며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겸손이다. 권오광 감독을 두고 '외부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기 개성과 능력을 십분 발휘해 온 숨은 조력자'라 말하는 관계자들이 꽤 있었다.

원작과 인기 시리즈라는 무게

<타짜> 시리즈 제작사인 싸이더스 측은 세 번째 시리즈를 맡기기 전 권오광 감독의 '뒷조사'를 했다고 한다. 영화과 재학생 때부터 활동한 이력을 보며 그를 적임자로 낙점하고 작업을 맡겼다. 권오광 감독은 "스무 살,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했던 것들을 알아봐 주셨다"며 "그게 이번 작업에서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물론 수락이 쉬웠던 건 아니다. 권 감독은 "저 역시 <타짜> 시리즈의 팬이었고, 이걸 보며 영화 공부했던 사람이라 시리즈가 주는 중압감이 컸다"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괜히 욕만 먹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고 했다. 다만 "지금 준비가 안 됐다면 나중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합류했고, 그렇게 <타짜3>의 여정이 시작됐다. 2015년 <돌연변이>를 개봉한 뒤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첫 번째 장편 연출이었던 <돌연변이>를 지나면서 여러 일이 있었는데 그걸 정리하며 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영화 일을 할 것인지 고민도 하고. 그 와중에 제안을 받았는데 고민이 있었지. 하지만 결심한 이후엔 바로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실제 타짜들을 만나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도박하는 사람들, 그 부류가 되게 낯설게 보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더라. <타짜> 시리즈는 바로 그 점에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훔쳐보는 재미랄까. 우리와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이는 거지. 그래서 캐릭터가 중요하다. 개성 강한 여러 캐릭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론 무협지 같다고 생각한다. 고수들이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선보이는데 동시에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타짜>는 캐릭터적 재미와 디테일이 중요한 시리즈라고 본다." 

 

 영화 <타짜3>의 권오광 감독

"도박하는 사람들, 그 부류가 되게 낯설게 보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더라. <타짜> 시리즈는 바로 그 점에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정민

 
감독의 변주들, 그리고 캐릭터성

이런 대원칙을 기준으로 권오광 감독은 허영만 작가 원작과는 크게 다른 세계관을 <타짜3>에 구축해놨다. 짝귀의 아들 도일출의 이야기라는 골격을 제외하고 이번 영화는 원작 만화와 크게 다르다. 원작에서 도일출은 대학생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 도일출(박정민)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루저'로 등장한다. 도일출에게 도움을 주는 애꾸(류승범) 캐릭터 또한 원작 캐릭터를 크게 변형한 결과물이다.  

"영화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제 시점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천착한 주제였다. 젊은 세대, 그러니까 제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가 서른셋이었는데 그 또래 친구들의 감수성이랄까. <타짜> 1편과 2편은 지금이라기보단 이전 시대의 얘기였다. 3편에서 전 과감하게 현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1편의 고니나 2편의 대길은 야망이 있다. 마땅한 직업이 없어도 도박으로 먹고살겠다는 일종의 목표의식이 있지. 

근데 3편에선 염세적인 모습이 있다. 자신의 야망으로 달려드는 게 전작의 캐릭터였다면 3편에선 좀 더 망설이고 고민하는 캐릭터가 맞을 거라 생각했다. 제가 느끼는 한 지금의 젊은 세대가 위축된 면이 있다. 제 주변 사람을 보면 약간의 피해의식도 있고. <돌연변이> 찍을 때도 느낀 건데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허영만 선생님도 젊은 청년이 나오는데 왜 그 캐릭터와 지금 청년의 느낌이 다른지 말이다." 


권오광 감독이 잡은 결론은 '막연한 희망'의 유무였다. "허영만 선생님 시대 속 젊은이는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다들 결혼, 취업, 결혼의 순서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며 그는 "요즘은 그런 단계를 밟아나가는 친구들이 많이 줄었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는 한 어차피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전 그 염세적 세계관에 찬성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저변에 깔린 그 분위기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도박 같은 한탕주의에 답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나' 그런 가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타짜라고 말하고 싶었다."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컷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캐스팅의 묘수

그래서 감독에겐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중요했다. "그에겐 지금 시대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며 권오광 감독은 박정민, 그리고 <돌연변이> 때 이후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광수를 언급했다. 이를 잠시 음악에 비유해보다. 전 시리즈의 조승우, 최승현이 일종의 독주 캐릭터라면 달리 박정민은 협주 혹은 협연의 캐릭터다. 주인공이지만 박정민의 도일출은 다른 캐릭터를 적당히 돋보이게 하면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감독의 정확한 의도다.

"맞다. 정민씨와 그 얘길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주연배우란 뭘까 생각이 많았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참 많다. 근데 주연배우는 또 다른 것 같다. 연기의 잘함 못함을 떠나 다른 무게감을 견뎌야 한다. 그걸 잘하냐 못하냐가 주연과 조연의 차이를 만든다고 본다. 박정민씨는 그걸 갖고 있다. 우리 영화엔 물영감(우현), 마돈나(최유화) 등 다양한 캐릭터적 무기가 있다. 무기를 잘 쓰기 위해선 주인공이 바탕을 잘 깔아야 하는데 박정민씨가 그걸 해냈다. 연기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로 관객분들이 정민씨의 그런 면을 발견해주길 바랐다. 

이광수 배우 역시 특별한 모습을 봐주길 원했다. 연기를 잘하는데 대중은 그가 가진 능력에 비해 예능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 어쨌든 예능 출연 역시 그의 선택이니까. 창의적이고 표현력도 좋다. 사람들의 선입견을 뚫고 성장하는 걸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보고 싶었다."


류승범 역시 권 감독이 애초부터 점 찍은 캐스팅이었다. 외국에서 자유롭게 체류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직접 이메일을 썼고, 말레이시아로 만나러 갔다는 후문. 박정민은 감독 편에 손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권오광 감독은 "실제 모습도 그랬고, 시나리오상에서도 애꾸는 스승이자 형의 모습이었으면 했다"며 "한국사회를 떠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며 쌓은 시각이 있기에 제겐 좀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타짜3>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여성 캐릭터 묘사다. 전작들에서 다소 기능적, 소모적으로 그려졌던 여성 캐릭터가 이번 작품에선 보다 입체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베드신, 약간의 노출 장면도 있지만 분명 전작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이 작품을 하기로 했을 때 원작의 세계를 과감하게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였다. (원작에선) 여성 캐릭터가 대상화 돼 있다. 허영만 선생님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만화가 나온 시기가 그랬던 때였던 것 같다. 여성을 무슨 전리품처럼 생각하던 게 강했지. 원작이 그렇다고 지금 시대 대중영화에서도 통용될까? 일단 저부터 거부감이 들어서 표현할 수 없겠더라. 그래서 마돈나 캐릭터에 사연을 준 거다. 그냥 남자를 홀리는 팜므파탈이 아닌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고민이 많았다. 이 장르,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전형적 팜므파탈과 전형적 플롯이 제 역할을 해야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제가 만나본 도박사, 사기꾼들의 세계는 더욱 거칠다. 훨씬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기도 하고. 근데 그걸 대중영화에 그대로 옮길 순 없는 일이다. 실제는 훨씬 더 천박하고 거친데 어떡할까. 자칫 그런 표현을 감독의 생각이나 영화적 주제로 오해할 여지가 커서 많이 고민했다."

 

 영화 <타짜3>의 권오광 감독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나' 그런 가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타짜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정민

 
"기대감에 도전하고 싶다"

단순 오락, 장르 영화라도 이렇게 감독의 고민이 담겨 있는 법. 권오광의 고민 밀도는 훨씬 높아 보였다. 그만큼 그가 현 시대성을 품고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라는 방증일 것이다. <돌연변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역설과 부조리를 코믹하게 풀었던 그는 <타짜3>로는 장르적 재미를 제시했다. "두 영화 사이 내면 갈등이 크지 않았다"며 권오광 감독은 "영화가 오락이냐 예술이냐 혹은 사회적 마이크냐 즐길거리냐 여러 논리가 많은데 개인적으론 그 사이를 오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저 역시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영화에 시대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담기는 것이지 의식하면서 뭔가를 넣으려고 하진 않았다. 이제 장편을 두 편 만들었을 뿐이다. 스스로 이런 감독이라 말하는 것보단 다른 분들이 봐주시면서 말씀해주시는 게 맞는 것 같다. <타짜>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우리 영화 산업에 대해서. 

다음 작품? 어느 정도 써놓은 게 있는데 구체적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주 문제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좀 더 구체화해보겠다. 다만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전 궁금한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타짜>를 찍을 때도 권오광이 찍는다고? 궁금하네 이런 반응이면 감사하지. 저 감독은 이후에 어떤 영화를 만들지 궁금증이 남는 감독이고 싶다. 궁금증은 곧 기대감이겠지. 그 기대감에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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