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의 배우 박지후

영화 <벌새>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후.ⓒ 이정민

 
학교에선 친구들과 관계가 틀어지기 일쑤에 집에선 3남매 중 막내로 늘 뒷전인 중 2 소녀. 영화 <벌새> 속 은희는 사랑받길 원하지만 좀처럼 그게 친구와 가족에게 충족되지 않는다. 관객입장에선 혹여나 이 친구가 엇나가진 않을지 다른 사건을 일으키진 않을지 조마조마하기도 한다. 

기우였다. 학교에서 날라리로 지목받은 은희가 하는 거라곤 노래방 혹은 콜라텍을 가거나 서툴게 흡연하는 행위일 뿐. 영화는 은희라는 아이의 맥락을 따라간다. 제대로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한 번 보라는 듯. 그렇게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이라는 특수한 시대를 배경으로 사랑을 받길 원했던 은희가 자신과 주변 사람을 품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볼매의 비밀

배우 박지후가 은희의 옷을 입었다. 두 편의 단편 이후 <벌새>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된 그는 "가장 솔직해지는 게 맞다" 싶어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감독에게 보였다. 1차 오디션 직후 오디션장을 나가기 직전 던진 그의 한 마디가 마법의 주문이 됐다. "감독님, 저 볼매(볼수록 매력있다는 뜻)예요" 이 말에 김보라 감독은 지후에게 반해버렸다고 훗날 밝혔다. 

"(웃음) 정말 간절했거든요. 단편 두 개를 했는데 어쨌든 연기를 하고 싶었고, 은희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프로필을 내고 1차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거든요. 2차, 3차까지 갔을 때 저보다 잘한 친구가 은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 편한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맡게 된 은희였다. 시대가 1994년이라 삐삐를 사용하는 건 생소했지만 보편적 중학생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고.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어한다거나 남자친구 보고 설레는 건 지금 저희도 그렇다"며 박지후는 "특히 은희의 감정을 느리게 따라가는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대본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연출자인 김보라 감독은 시나리오와 함께 거기에 얽힌 삶의 얘길 배우들과 나눴고, 박지후 역시 자신의 학교생활, 친구 관계, 고민 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촬영장에서도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경우 마지막 테이크는 배우 자신의 감정대로 해보길 권했다는 후문.
 

 <벌새> 스틸컷

<벌새>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은희 감정 전체를 다 공감할 순 없었지만 가장 공감한 부분이 친구와 관계였다. 단짝 친구 지숙과 싸우고 화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로 제가 친구와 싸운 게 생각나서 눈물이 나왔다. 저도 울면서 놀랐다(웃음). 지숙이랑 멀어질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고, 지숙이가 피하지 않고 다가와 주기도 했고. 

은희가 대사가 많은 아이는 아니잖나. 상대를 관찰하고 지켜보는 아이다. 학교에서도 가족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의기소침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소심한 아인 아니고 나설 땐 나선다. 시나리오 보면서 은희와 제 상황을 대입하기도 했고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며 비슷한 감정을 알아보기도 했다. 또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몰입하려고도 했다. 근데 실제로 전 완전 수다쟁이다. 말이 좀 많다(웃음)."


2019년 고등학생들의 현재

촬영 당시 중2였던 박지후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영화에서 담임 선생이 "노래방 가지 말고 서울대 가자!"라는 구호를 아이들에게 외치게 하듯 요즘 학교에서도 그런 성적에 대한 압박 내지는 대학 서열화가 있을까. 이런 우문에 박지후가 현답을 내놓았다. 

"중학생 땐 못 느꼈는데 아무래도 고등학교에 가니 성적도 신경 써야 하고 진로를 정해야겠더라. 물론 전 중학생 때 이미 진로를 정했지만 친구들은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지금이 되니 <벌새> 속 아빠가 오빠에게 '대원외고 합격하도록 다같이 기도하자'는 대사가 현실감 있게 느껴지더라.  

제가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벌새>를 하며 확실히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이 즐거웠고 그 일이 행복하다는 걸 깊게 느꼈다. 엄마와 진지하게 얘기한 뒤 정한 거다. 아직 제가 어리지만 그전까진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진로를 정하고 나니 배우들 인터뷰도 찾아보게 되고, 지금은 좀 더 계획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 <벌새>의 배우 박지후

"은희가 대사가 많은 아이는 아니잖나. 상대를 관찰하고 지켜보는 아이다. 학교에서도 가족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의기소침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소심한 아인 아니고 나설 땐 나선다."ⓒ 이정민

 
<벌새> 속 아빠와 오빠, 그러니까 은희를 무시하거나 종종 폭력을 가했던 가족에 대해 실제 박지후는 "이해하려 애써 노력하진 않아도 은희에겐 일상이 됐으니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며 "은희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들 바쁘니 그렇게 돼쓸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우는 장면에선 낯설면서도 짠했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실제로 전 가족과 친하다(웃음). 언니랑 친한데 지금 기숙사 학교에 있는데도 제가 인터뷰 하면 기사를 다 찾아보더라. 되게 절 자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1994년엔 노래방 가면 날라리하는 인식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학교 마치고 노래방 가는 게 일상이다. 코인 노래방을 가거나 유튜브를 본다거나 SNS에 사진을 올리며 놀곤 한다. 근데 영화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반에 날라리가 누군지 써내라고 하는 건 웃긴 것 같다. 비겁한 일이다(웃음)."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만화로 된 오프라 윈프리 책을 보고 막연하게 아나운서를 장래희망으로 삼던 박지후는 본격적으로 연기자 길을 꿈꾸기 시작했다. "<벌새>에서 은희를 이해하고 응원했던 영지 선생님(김새벽)처럼 제게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제 꿈을 응원했던 선생님이 있다"며 박지후는 꿈을 간직하고 키우게 하는 좋은 어른의 예를 들었다. 

"제가 아나운서가 꿈이라니까 선생님께서 관련 책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최근까지 못 만나다가 무주산골영화제 때 영화를 보러 전주에서부터 오셨더라. 많이 우셨다고 했다. 처음 연기를 접한 게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연기학원에 다니게 됐는데 아나운서가 꿈이니 몇 달 다녀보자 생각했는데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웃음).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아직 제가 10대니까 제 실제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는 그런 10대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좋은 어른의 조건을 물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이라 전제하며 박지후가 답했다.

"제 생각을 말하자면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 그러니까 차별하지 않고 같은 시선에서 바라봐 주는 사람이 좋은 어른인 것 같다. 좋은 가족?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소통을 해야지. 갈등의 순간에 사실 제가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집에서 막내기도 하고, 제가 잘못한 경우가 절반이다(웃음). 일단 사과부터 하고 나중에 다들 기분이 좋을 때 얘기하는 편이다. 그땐 제가 그랬다고. 제가 단순한 편이라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기도 한다."
 

 영화 <벌새>의 배우 박지후

"1994년엔 노래방 가면 날라리하는 인식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학교 마치고 노래방 가는 게 일상이다. 코인 노래방을 가거나 유튜브를 본다거나 SNS에 사진을 올리며 놀곤 한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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