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오른쪽)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포스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영화를 많이 봐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영화 <에움길>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2000년대 초부터 20년간 할머니들을 촬영한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오른쪽)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포스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영화를 많이 봐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영화 <에움길>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2000년대 초부터 20년간 할머니들을 촬영한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유성호

 
2003년 6월의 어느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일부가 머물던 나눔의 집 앞 좁은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할머니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넋이 나갔고 활동가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한 할머니는 직접 삽을 들고 난장판이 된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당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이후 우호전선의 기조를 유지하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만난 한일 양국 정상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성명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 해결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청와대에 항의 의사를 전달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집 앞에 큰 구덩이가 생긴 것이다. 당시 고 김순덕 할머니는 "우리는 집단도 아니고 달랑 6명이다. 왜 못 가게 하냐"고 따졌지만 할머니들을 둘러싼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영화 <에움길>에는 당시 낙담한 할머니들의 표정과 울분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19일 오후 광화문에서 만난 이승현 <에움길> 감독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관객들을 향해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봐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20일 개봉한 영화 <에움길>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2000년대 초부터 20년간 할머니들을 촬영한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지난 2010년 개봉해 35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귀향>과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다. <귀향>에서 착한 일본군 '다나카' 역을 연기했던 배우 이승현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으며 조정래 감독은 제작을 담당했다. 

나눔의 집이 소장하고 있던 영상들을 보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처음 제안했다는 이승현 감독은 "피해자로서 투쟁하는 모습 말고, 지극히 일상적인 할머니들의 모습을 대중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친근하고 평범한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해보고 싶었다는 것.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 문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피해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이제 90세가 넘었고 생존자는 21명뿐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4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해결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위안부' 합의안에 서명했고, 당시 피해 할머니들은 합의안에 '법적 책임과 배상'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1월 21일 합의안 이행을 위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공식 해산했고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 엔도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재단 해산에 항의하고 합의안 이행을 요구하는 등 양국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눔의 집'에서 20여 년 동안 문제 해결에 힘 써온 안신권 소장은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을 예로 들며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소장이 <에움길> 제작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제작을 도왔던 이유다.
 

▲ 영화 '에움길' 이승현 감독 “우리 할머니,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많이 봐달라”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이 문제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피해자들은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그래서 성공한 것이다. 독일에서 만난 유대인이 내게 그러더라. '당신이 아는 한 일본이 전쟁 범죄 성 노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것 같나? 절대 안 할 것이다. 우리처럼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자료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배포해야 한다'고 하더라.

빌리브란트 독일 총리가 홀로코스트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도 했지만 (유대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그 정도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안신권 소장)


아래는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어떤 목적으로 나눔의 집에서 20여 년 동안 영상을 찍은 것인가.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을 텐데.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하고 청와대 직원들이 영화 <에움길>을 한번 봐 주시면 정말 할머니에게 큰 힘이 될 같다”고 말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하고 청와대 직원들이 영화 <에움길>을 한번 봐 주시면 정말 할머니에게 큰 힘이 될 같다”고 말했다.ⓒ 유성호

안신권 소장(아래 안): "처음에는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영상으로 남기는 게 기록이고 역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나눔의 집에는) 다른 일도 많은데, 누군가 한 사람은 카메라를 전담해야 했다. 그래서 영상을 정말 다양한 사람이 편하게 찍었다. 잠깐 왔다 간 스태프들도 찍고 오래 일한 활동가들도 찍었다. 카메라도 좋은 게 아니라서 화질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의 손길과 숨결이 녹아있는 곳이지 않나. 할머니들이 고민하고, 또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증언하고 그런 수많은 시간을 편집해서 영화화하는 작업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 그동안 영상을 공개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것 같다. 20년 만에 신인 감독인 이승현 감독에게 영상을 맡긴 이유가 있다면?
안: "사실 그동안 여러 번 (공개를) 시도했다. 필름을 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귀중한 필름을 드렸던 적도 있다. '이건 딱 하나밖에 없는 영상이고 복사본도 없고 영원히 나눔의 집에 있어야 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셔도 꼭 필요한 영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영상 100여 개를 드렸는데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직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정래 감독의 <귀향>이 흥행에 성공했다. 그때 조정래 감독과 이야기 하다가 영상 얘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아날로그 필름의 백업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고 조 감독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면서 이승현 감독을 소개했다. '<귀향>에서 일본군 다나카 역을 했던 이승현씨가 영상에도 관심 있다고 맡겨보려 한다'고 하더라. 그때 이승현 감독이 영상을 다 보고 디지털로 백업 작업도 다 했다. 그때 이승현 감독이 '소장님, 영상을 보니까 귀중한 영상들이 진짜 많던데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승현 감독(아래 이): "<귀향>을 통해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알게 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만 내게도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피해자는 과거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완벽한 피해자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들을 보면서 그 편견이 완전히 깨졌고 그렇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의지도 대단하셨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할머니의 일상에는 아픔도 슬픔도 있지만, 즐거움도 웃음도 행복도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연출이지만 꼭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내가 그 영상을 다 봤기 때문이었다. 내 편견이 깨지면서 할머니들을 정겹고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내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 흥행에 성공한 <귀향> <허스토리> <아이캔스피크>부터 곧 개봉할 다큐멘터리 <김복동> 등 최근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많아졌다. 뭔가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나.
: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은 실제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중은 언론을 통해서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접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할머니들은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이옥선이다', '나는 이용수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인의 이름을 찾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시는 것이다. 영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또한 할머니의 이름을 구성하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할머니의 일상과 개인적인 습관이나 특성, 말투 같은 사소한 것들 또한 할머니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큰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곧 우리 영화를 시작으로 <김복동>이나 <주전장>까지 관심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 좋은 영화들이 모여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역사 설명은 자막으로 대체됐고 음악도 거의 쓰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어떤 걸 의도한 선택이었나.
이: "가장 먼저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다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이 나오지만 아예 역사 문제를 짚지 않는다면 관객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 또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아예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한 어린 학생들 중에서는 이(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도 역사의 큰 흐름을 어느 정도까지는 파악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서 자막으로만 넣었다.

대신 음악이나 (전문적인 내레이션) 등 역사적 사실을 가공한다는 느낌은 빼고 싶었다. 음악이라는 것도 결국은 관객의 감정을 의도하고 유도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고집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할머니들의 실제 모습,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처음 취지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음악이나 효과, 영상 기술들을 배제하고 작업했다."

- 앞서 조정래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영화 <귀향>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에 주목한 극 영화였다. 반면 <에움길>은 완전히 다른 방향인데 혹시 제작을 담당한 조 감독이 반대하진 않았나.
이: "조정래 감독님은 내가 '고집이 세다'고 말씀하시더라. '고집 좀 줄여'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처음부터 감독님은 '나는 너의 연출에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너의 연출을 존중하고 너를 믿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해주겠다'고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조 감독님의 연출 도움을 받았다면 내가 보여드리고자 했던 걸 (그대로 밀고가도 되나) 고민하고 더 흔들렸을 텐데, 믿어주셔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게 '형으로서 도와줄게'라고 그러셨다. 겉모습은 형과 동생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일지 몰라도(웃음). 

처음에 다듬어지지 않은 1차 편집본을 보여드렸을 때 많이 실망하신 것 같더라. 아니라고는 하는데 표정에서 느껴졌다. 제가 공부하면서 만들다시피 한 상황이라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부족했다. 또 (조 감독과 나는)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더라. 그런데도 그때 쓴소리를 안 하셨다. '네가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가라'고 믿음을 주셨다. 덕분에 내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었다. 조 감독님은 그저 다른 연출자의 시선으로, 관객의 입장으로 조언하시며 도움을 주셨다."

- 2017년부터 6개월여 추가 촬영을 했는데, 20여 년 동안 찍은 영상에 더해 추가 촬영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 "촬영할 때는 뭘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2017년 3월부터 제작에 들어갔고 촬영은 한 달 정도 지난 다음에 시작됐다. 구성안이 계속 바뀌다 보니까, 일단 할머니들을 그냥 따라다니면서 찍었다. 찍으면서 옛날 영상도 확인하고 맞춰가면서 촬영했다. 당시에는 여러 (한일 '위안부' 합의안 관련한) 상황 때문에 복잡했지만 할머니들의 일상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긴 시간 동안 할머니들과 일상을 함께 할 기회가 없지 않나. 그런 걸 우리는 경험해본 것이다. 그래서 내겐 6개월의 촬영기간이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불편해하셔서 촬영을 안 했다. 할머니들이 '찍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막상 카메라와 조명과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으니 (할머니들이) 불편해하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카메라와 장비들을 다 물리고 그냥 가서 얘기하고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그랬다. 박옥선 할머니는 또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고 그러면 나도 함께 노래 부르고. 촬영 스태프들이 다 내 또래다.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일 안 하는 한량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친근하게 시간을 보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 할머니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나.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막연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로 봐 주시고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막연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로 봐 주시고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호

이: "그동안 증언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어떤 포인트나 순간이 되면 그런 증언들을 계속 이야기하신다.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다. 그럴 때가 아니면, 편하게 텔레비전 보면서 이야기 하거나 혹은 누워서 얘기했다. 내레이션 들어간 것도 할머니의 인터뷰를 따서 넣은 건데 누워서 말씀하신 내용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 다른 할머니들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저 할머니는 심보가 고약하다 이런 얘기도 하시고, 나는 음식 뭐 좋아하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위안부'라는 표현 대신,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용어정리는 잘 안 되고 있다. 경기도, 인천에서 조례를 개정했지만 국회에서 바뀌지 않았고 대다수 언론도 '위안부'라고 쓴다. 어떻게 바꿔나갈 계획인가.
안 : "외국인들도 나눔의 집에 많이 온다. 역사박물관에서 설명하던 중에 어느 외국 분이 질문하더라. '왜 이분들이 컴포넌트 우먼이냐. 컴포넌트는 좋은 뜻인데.' 그래서 '용어 정리가 아직 안 됐다. 사실은 섹스 슬레이브다'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종군 위안부'라고 했다. 종군도 자발적인 단어고 위안부도 피해자의 자발성이 느껴지는 단어이지 않나.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강제 종군 위안부'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니까 일본 야당 여성 의원들이 입법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전시 성폭력 피해자'라는 단어였다. 그건 피해자 관점의 단어다.

할머니들도 처음부터 인권의식이 있진 않으셨다. 당한 것 자체를 운명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활동을 하시면서 이게 인권침해라는 걸 알게 되신 것이다. 그러면서 한두 분이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아직 통과가 안 됐다. 여야 간 의견 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피해자 중심의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서까지 줬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본군 성 노예 역사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할머니들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하다.
안 : "할머니들이 그동안 정치인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눔의 집에) 와서 할머니들에게 인사도 하고 공수표도 날린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한다.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생각해야 하는데 (말을 할 때는) 그걸 절대 생각하지 않더라. 그래서 할머니들이 여러 번 상처를 받으셨는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합의안이 나오지 않았나. 할머니들이 체결 당일에도 저항을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29일 정부 대표로 총리도 아니고 외교부 차관을 (나눔의 집에) 보냈더라. 이 점에 대해서도 할머니들은 서운하게 여기셨다. 와서 합의안을 밀어붙이려고 하니까. 우리는 이런 걸(합의) 원하지 않고 돈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나눔의 집에 왔다. 할머니들에게 오는 건 좋은데 조용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거철이니까 지역구 의원이나 당직자들까지 다 오지 않겠나. 그런데 그렇게 요청했더니 진짜 인원을 제한해서 왔더라. 그때 이야기를 듣던 김군자 할머니가 '엄지 척'을 들었다. '당신 최고'라고. 이후에 집권하셨고 화해치유재단 해체도 했고 10억 엔을 돌려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할머니들이 신뢰를 보이고 있고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청와대에서 이번에 <에움길>을 한 번쯤 봐주시면 할머니들이 되게 힘이 날 것 같다. 할머니들이 수많은 정치인을 접했지만 김군자 할머니가 엄지 척을 드셨고 이옥선 할머니도 문재인 대통령은 믿는다고 하시더라. 대통령이 지금 남북관계나 한반도 외교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 할머니들도 뉴스 보시니까 아신다. 나눔의 집에 오시지는 못하더라도 어디에서든 영화 한 번 봐주시면 할머니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 일본은 점점 우경화 돼 가고 있고 사과나 배상받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사람도 많다. 할머니들이 우리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안 :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피곤하고 지친 분들은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나눔의 집에 오는 분들마다 '할머니들의 의지가 가장 강하다'고 얘기하더라. 할머니들은 '내가 살아있어도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폄하하는데, 내가 죽고나면 영원히 매춘부로 낙인찍히지 않겠냐'고 걱정하신다. 그게 할머니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한국 정부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 정부가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가 과거 역사 문제에 관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그것 때문에) 일본 아사히TV가 방탄소년단 출연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명) 팬들이 나눔의 집 후원계좌에 800만 원 정도를 입금했더라. 5불, 10불 소액이었다.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팬들이 공감해 준 것이다. 정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자본과 외교력 때문에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다각적인 외교를 해서 할머니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오른쪽)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오른쪽)과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 최근 '한일 양국 위안부 합의안' 공개 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 판결만 남았는데, 어떻게 바라보나.
안 : "나눔의 집은 소송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왜 하냐. 시간 낭비다. 질 것이 뻔하다'고 얘기하지만 할머니들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포기) 하기는 어렵다. 할머니들의 입장은 그게 아니다. 너무 억울해하신다. 자식이 없으신 분들도 많아서 우리라도 해야 한다. 

재판부가 1심에서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합의안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합의안을 보호해서 국가적으로 얻는 이익보다는 공개해서 국민들이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결을 냈는데도 외교부에서는 외교 관계상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라. 모순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과의 외교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일본이 가해자이지 않나. 피해자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해주면 좋을 텐데. 2심 재판부가 오히려 정부 편을 들어줘서 할머니들이 더욱 낙심하셨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나라가 없을 때 끌려가셨는데, 법에서도 패소 판결을 내렸다는 데 대해 너무 실망하셨다. 대법원에 기대고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제발 (공개하라는 판결이 났으면 한다). 할머니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 받고 보장받을 권리가 있지 않나. 정부도 할머니들을 생각해서 공개해줬으면 좋겠다."

- '나눔의 집' 현재 상황은 어떤가.
안 : "나눔의 집에는 이옥순 할머니를 포함해 여섯 분이 계신다. 작년에만 여덟 분이 돌아가셨고 올해 벌써 네 분이 돌아가셨다.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 중에는 스물 한 분이 생존해 있는데, 그 중 여섯 분이 나눔의 집에 있다. 세 분은 거동이 가능하고 세 분은 누워 계신다. 이옥선 할머니도 금년에 93세셔서 증언도 힘들고 방문객 만나는 것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할머니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걸 더 좋아하시더라. 

요즘 '할머니한테 피해가 갈까 봐, 연로하셔서 피곤할까 봐' (나눔의 집에) 못 오시겠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 그렇지 않다. 할머니들은 사람들이 오는 걸 더 좋아하신다. 할머니도 연세도 있으니까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할머니는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신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눔의 집에 와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시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에움길>을 보고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 영화 제작비를 스토리 펀딩으로 해결했다고 들었다. 몇 명이 참여해서 얼마나 모은 건가.
이 : "500만 원 조금 넘게 후원을 받았다.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 금액은 제작비라기보다 전국 상영회 비용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금액은 나눔의 집에 후원했다. 제작비는 조정래 감독님과 귀향에 참여하셨던 임성재 PD님, 그 외 많은 소액 투자자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1억 2천만 원 정도 잡고 있고 제작 기간은 2년 정도다. 작업해주신 분들이 많아서 제작기간이 길어졌고 제작비가 은근히 불어나 버렸다. 손익분기점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5만 명 정도로 알고 있다. 목표 관객수는 10만 정도다."

안: "<귀향> 때는 가족들끼리 '너 <귀향> 봤냐, 그건 꼭 봐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더라. 당시 350만 명 정도 많은 사람들이 봐 주셨으니, 그 분들이 한 번씩 더 봐 주셨으면 한다. 우리 영화의 관객이 늘어날수록 부담을 느끼는 쪽은 일본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끊임없이 이 문제를 축소시키고 감추려 하는데, '그래선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계속 활동하시겠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본 관객수가 일본을 압박할 것 같다."

- <에움길>이 일본에서도 상영된다고 했다. 일본 외에 추가 해외상영 계획도 있나.
안: "지난 8일 요코하마에서 상영회가 있었고 일본에서 활동하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활동가가 배급을 준비하고 있다.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고 하더라. <귀향>도 국내에서 힘을 받아서 해외로 진출했다. 당시 전 세계 66개국 안 간 곳이 없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댈러스로 가는 길에 애틀란타에서 와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이옥선 할머니와 저는 못 가겠다고 했는데, 조정래 감독은 자비를 들여 거기까지 다녀왔더라. 이번에는 이승현 감독이 해외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 영화에서 관객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다면?
이: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희 영화는 할머니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는데, 어떤 분들은 무슨 감정으로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봐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할머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할머니들이 웃으실 때 같이 웃고 우실 때 같이 울고, 할머니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지 않겠나. 영화 속 할머니들의 웃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봐 달라.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로 봐주셨으면 한다. 할머니들이 항상 '나는 가족이 없고 사람이 그립다'고 말씀하시는데 할머니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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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롱 리브 더 킹' 강윤성 감독의 한풀이... 배우들도 감탄

[인터뷰] <범죄도시> 흥행 이후 두 번째 상업영화... "꾸준히 촬영하고 싶다"

17년 만에 찍은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도시>로 약 700만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고, 2년 만에 차기작을 내놓은 강윤성 감독은 여전히 배고파 보였다. 흥행 욕심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포 건달이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 이번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아래 <롱 리브 더 킹>)은 감독의 그런 갈망과 애정이 집대성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원작 웹툰을 보진 않았다고 한다. 원작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를 본 후 이야기와 캐릭터에 매료되어 연출을 맡았다. 이를 두고 강윤성 감독은 "재료가 좋았고, 제가 요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표현했다. "정치인 나오지만 정치 영화 아냐" 아무래도 주인공이 건달이고 원작 특성도 있기에 <롱 리브 더 킹>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뻔한 조폭물의 부활 아니냐'는 비판 또한 있었다. 강윤성 감독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감독은 오히려 멜로 코드와 지역색을 강조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순수하고 정직한 인물. 강윤성 감독이 장세출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이었다. 영화에선 국회의원으로 나가게 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오락 영화로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거 과정이 나오고, 지역 소도시라는 특성이 있기에 취재 또한 꼼꼼해야 했다. 감독은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을 꽤 만났다. 실제 선거 시기에 어떻게 일하는지를 조사했다"며 "목포는 사실 영화 찍기 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고칠 때부터 목포에 내려가 시민들을 만나면서 어떤 선입견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롱 리브 더 킹>이 "정치영화가 아닌 멜로에 가까운 영화"라고 강조했다. 강윤성 감독의 영화관 늦은 데뷔, 그만큼 오래 기다렸기에 현장에서 조급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강윤성 감독은 오히려 차분한 편이다. 촬영을 할 때도 시나리오에 갇히지 않고 적극 배우들과 소통한다. 그래서일까. 그와 작업한 배우들은 열에 아홉 또 다시 함께 하고 싶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김래원 역시 인터뷰에서 "모든 게 감독님 덕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과 다시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현장 리더십을 묻는 말에 강윤성 감독은 "제가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저 제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철저히 현장 중심이고 이야기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특정 스타 배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 강윤성 감독의 미덕 중 하나인 배우 발굴 또한 그런 영화 철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범죄도시>에서 위성락 역의 진선규를 발굴해 스타덤에 오르게 한 그는 <롱 리브 더 킹>에서도 주연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막연하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 시종일관 점잖은 어투였지만 그 안엔 분명한 자기 확신이 있어 보였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본 후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고, 스물일곱 나이에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한 그다. 그로부터 17년간 크고 작은 희망과 절망이 있었다. <범죄도시>를 찍기 직전 강윤성 감독은 친척을 통해 올리브를 수입해 팔 것을 결심하고 영화에 대한 꿈을 접으려고 했다. 이 말에 그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기에 강윤성 감독은 "촬영 현장 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배우든 감독이든 첫 촬영은 항상 떨리고 긴장되는 법인데 강 감독은 "촬영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점점 신인감독 데뷔가 늦어지는 한국 영화계다. 개봉 편수는 늘었지만 실력 있는 신진 작가의 등장은 흔치 않다. 검증된 감독과 배우, 검증된 장르물이 범람하는 요즘 한국영화계 흐름에 강윤성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구해줘2'는 날 구해준 드라마"... 김영민은 희열을 느꼈다

[인터뷰] OCN <구해줘2> 성철우 목사 역... "그의 비참한 말로, 경각심 주기 충분"

2일 서울 논현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배우 김영민은 성철우 목사처럼 선한 얼굴의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물론 타락하기 전 나긋한 미소로 월추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초반의 성목사처럼. 최근 종영한 OCN <구해줘2>의 성목사는 특유의 친절함과 깊은 신앙심으로 궁지에 몰린 월추리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얻고, 기적을 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성목사는 신의 응답인 줄 알았던 그 모든 기적이, 실은 사기꾼 최경석(천호진 분)의 플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까지 저지른다. 스토리의 변곡점마다 요동친 성목사의 캐릭터와, 소름 끼치는 연기력으로 성목사의 변화를 표현한 배우 김영민. 두 얼굴의 캐릭터 성철우를 연기한 그에게 쏠린 시청자의 관심도 대단했다. "이렇게 많은 기자들과 인터뷰한 건 처음"이라는 그는 "작품이 잘 마무리된 덕분에 받는 관심이라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성철우의 마지막, 더없이 좋았다" <구해줘2>의 마지막은 비극 그 자체였다. 성철우는 자신을 사기극에 이용한 최경석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목숨처럼 여기던 돈, 월추리 주민들의 보상금에 불을 질렀다. 보상금과 함께 타오른 예배당 안에서 생을 마감한 성철우의 마지막 선택. 어떤 이들은 '광기에 휩싸인 성목사의 비참한 최후'라 이야기했고, 어떤 이들은 '사기꾼에게 놀아나 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신과, 사기꾼을 처벌하려는 신앙적 선택'이었다 이야기하기도 했다. 실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성목사의 마지막 선택을 어떻게 보았을까? 성목사와 사기꾼 최경석의 죽음. 그리고 사이비에 현혹된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일상이 파괴된 월추리 주민들. 김영민은 "모든 결말에 만족한다"면서 "월추리 사람들의 씁쓸함을 보여준 장면이 좋았다. 트라우마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월추리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에게 작품의 메시지와 경감심을 심어주기에는 더 없이 좋은 결말"이라고 말했다. 같은 듯 다른, 김영민의 성철우 원작 <사이비>의 성철우와 <구해줘2>의 성철우는 같은 듯 다르다. 김영민은 "원작의 느낌을 많이 가져오고 싶었다"면서도 "<구해줘2>의 성철우는 <사이비>보다 더 적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해줘2>는 김영민 외에도 천호진, 엄태구, 이솜, 임하룡, 우현, 김수진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특히 <내딸 서영이> <황금빛 내인생> 등 여러 가족 드라마에서 소시민 가장의 짠한 아버지 역할을 맡아왔던 천호진은 교회 장로의 얼굴을 쓴 사기꾼 최경석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표현했다. 김영민은 대선배 천호진에 대해 "연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시는, 말 그대로 '선수'이신데도 매번 치열하게 연구하고 준비해오시더라"며 "극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분석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설계한 캐릭터를 연기할 땐 또 본능적이더라. 너무 놀라웠다"고 감탄과 존경심을 쏟아냈다.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많은 드라마 팬들에게 김영민은 2018년 <나의 아저씨> <숨바꼭질>, 그리고 최근 방송된 <구해줘2>를 통해 익숙해진 배우다. 하지만 연극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 연기상까지 받은 대학로 인기스타. 그동안 숱한 대학로 스타들이 일찌감치 TV로, 극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김영민의 드라마 활동은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연극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우유 배달을 한 시절도 있었다는데, 연극 무대를 고수한 이유가 궁금했다. 몇 달 뒤면 그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 50살이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연극을 시작했으니 연기 인생도 30년이 넘은 셈. 20대 때는 "3년 주기로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다. 라면이 없었다면 연극배우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 순간마다 '연기란 무엇인가, 연기가 뭐길래 나는 이 일을 계속하는 걸까' 고민했다는 그에게, 스스로 찾은 답이 뭐였는지 물었다. 아직은 낯선, 그래서 즐거운 30년 넘게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 그이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아직 낯선 세계다. 오랜 기간 준비해 짧은 시간 에너지를 쏟아내는 연극과, 순간적인 집중력이 요구되는 드라마, 큰 화면에서 작은 몸짓까지 신경쓰며 연기해야 하는 영화. 김영민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포인트가 다르더라. 정답을 찾기보다는, 그 다름을 그때그때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그 차이의 재미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영민에게 <구해줘2>가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다소 허무개그 같지만 "좋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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