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17년 만에 찍은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도시>로 약 700만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고, 2년 만에 차기작을 내놓은 강윤성 감독은 여전히 배고파 보였다. 흥행 욕심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포 건달이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 이번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아래 <롱 리브 더 킹>)은 감독의 그런 갈망과 애정이 집대성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원작 웹툰을 보진 않았다고 한다. 원작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를 본 후 이야기와 캐릭터에 매료되어 연출을 맡았다. 이를 두고 강윤성 감독은 "재료가 좋았고, 제가 요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표현했다. 
 
"웹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으로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아서다. 웹툰은 웹툰으로 두고, 웹툰 독자들 기대에 맞추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초고를 봤을 때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는 플롯이 좋았다. 장세출(김래원)은 직선적 남잔데 요즘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순수한 사람을 소환하면 지금 때에 더 신선할 것 같았다. 내 주변에 이런 작은 영웅이 여럿 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정치인 나오지만 정치 영화 아냐"

아무래도 주인공이 건달이고 원작 특성도 있기에 <롱 리브 더 킹>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뻔한 조폭물의 부활 아니냐'는 비판 또한 있었다. 강윤성 감독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감독은 오히려 멜로 코드와 지역색을 강조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그런 우려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조폭으로서의 장세출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시나리오 초고에서도 처음부터 순수한 조폭으로 등장한다. 공간 배경이 우리나라 남쪽 끝에 있는 목포라는 게 좋았다. 선거구가 너무 크면 큰 화두를 던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더욱 한국 상황을 대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복잡한 정치 논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순수하고 정직한 인물. 강윤성 감독이 장세출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이었다. 영화에선 국회의원으로 나가게 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오락 영화로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거 과정이 나오고, 지역 소도시라는 특성이 있기에 취재 또한 꼼꼼해야 했다. 감독은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을 꽤 만났다. 실제 선거 시기에 어떻게 일하는지를 조사했다"며 "목포는 사실 영화 찍기 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고칠 때부터 목포에 내려가 시민들을 만나면서 어떤 선입견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롱 리브 더 킹>이 "정치영화가 아닌 멜로에 가까운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멜로다. 그리고 주된 흐름은 휴머니즘이다. 장세출의 성장기가 중심인데 그 안에 유머를 넣은 식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특정 장르영화가 아닌 그냥 오락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의 한 장면.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촬영 당시 모습.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강윤성 감독의 영화관

늦은 데뷔, 그만큼 오래 기다렸기에 현장에서 조급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강윤성 감독은 오히려 차분한 편이다. 촬영을 할 때도 시나리오에 갇히지 않고 적극 배우들과 소통한다. 그래서일까. 그와 작업한 배우들은 열에 아홉 또 다시 함께 하고 싶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김래원 역시 인터뷰에서 "모든 게 감독님 덕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과 다시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현장 리더십을 묻는 말에 강윤성 감독은 "제가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저 제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영화 속 캐릭터라는 걸 감독이 정해주는 걸 전 반대하는 편이다. 캐릭터는 배우와 논의하며 자식처럼 키워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래원씨나 원진아(극중 변호사이자 장세출의 보좌관을 맡는 소현 역)씨가 어떻게 표현할지 저 역시 모르기에 함께 얘기하면서 임했다. 김래원씨가 참 잘해주셨다. 저도 인연이 된다면 그와 다시 작업하고 싶다. 다만 전 작품을 쫓는 사람이지 배우를 쫓는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에 맞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오랜 기간 영화를 준비하며 명확하게 생긴 영화관과 연기관이 있다. 궁극적으로 메소드 연기를 지향하는데 배우에게 그걸 주문하진 않는다. 보통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잘 표현하려는 관습이 있는데 전 그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당 인물이 처한 현장에서 어떻게 얘기할까가 더 중요하다. 저와 작업하시는 배우들은 제가 현장의 공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셔서 거기에 맞게 협조해주신다. 그러면 본인도 모르게 메소드 연기를 한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대사가 바뀌거나 추가되어도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지."


철저히 현장 중심이고 이야기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특정 스타 배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 강윤성 감독의 미덕 중 하나인 배우 발굴 또한 그런 영화 철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범죄도시>에서 위성락 역의 진선규를 발굴해 스타덤에 오르게 한 그는 <롱 리브 더 킹>에서도 주연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김래원, 원진아, 진선규, 최귀화씨를 제외하고 전부 오디션을 봤다. <범죄도시> 때도 그렇게 했다. 제가 가진 오디션 개념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보는 게 아닌 영화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걸 찾는 게 아니라 배우가 준비해오신 걸 보며 적합하다 느끼면 함께 하는 것이다. 이번에 1200명 정도 오디션을 봤다. <범죄도시> 때 출연한 윤병희씨 등 조연 분들도 다 오디션을 다시 봐서 합류한 경우다. 작품이 우선이기에 기존 배우들로만 채울 수 없다. 제가 아는 배우로만 채우면 영화는 뻔하게 나올 수밖에 없거든. 작품을 위한다면 새로운 인물을 계속 찾아야 한다."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보통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잘 표현하려는 관습이 있는데 전 그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당 인물이 처한 현장에서 어떻게 얘기할까가 더 중요하다. 저와 작업하시는 배우들은 제가 현장의 공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셔서 거기에 맞게 협조해주신다." ⓒ 이정민

 
"막연하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

시종일관 점잖은 어투였지만 그 안엔 분명한 자기 확신이 있어 보였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본 후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고, 스물일곱 나이에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한 그다. 그로부터 17년간 크고 작은 희망과 절망이 있었다. <범죄도시>를 찍기 직전 강윤성 감독은 친척을 통해 올리브를 수입해 팔 것을 결심하고 영화에 대한 꿈을 접으려고 했다. 이 말에 그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맞다. <범죄도시> 투자가  안됐다면 지금 전 올리브를 팔고 있을 것이다. 근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진 않다. 제가 17년 동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작은 희망이 계속 있어서였다. 한 작품을 준비하는 데 보통 2, 3년이 가거든. 되게 지치게 된다. 근데 놓으려 할 때마다 희망이 생기더라. 투자가 될 것 같다든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든가.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더 이상 못가겠다 하는 지점에서 <범죄도시>를 만난 거지.   

만약 제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생각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누군가가 제게 '17년이 걸릴 겁니다'라고 얘기해줬다면 감독을 안 했을 것이다. 너무 늦고 힘드니까. 사실 오래 달리기 위해선 한 치 앞을 보면서 가야 하는 것 같다. 먼 미래를 보면 너무 힘들거든. 그래서 앞으로 다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굳이 쉬고 싶은 마음이나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일하면서 틈틈이 쉬면 되지."


그렇기에 강윤성 감독은 "촬영 현장 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배우든 감독이든 첫 촬영은 항상 떨리고 긴장되는 법인데 강 감독은 "촬영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전까지 제가 생계형 영상작업을 많이 해서 현장이 두렵지 않다. 카페에서 17년간 글만 썼잖나(웃음).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전 감독이라면 자기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롱 리브 더 킹>도 초고 이후 13번 고쳤다. 일단 전 재밌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작품을 쭉 하고 싶다."

점점 신인감독 데뷔가 늦어지는 한국 영화계다. 개봉 편수는 늘었지만 실력 있는 신진 작가의 등장은 흔치 않다. 검증된 감독과 배우, 검증된 장르물이 범람하는 요즘 한국영화계 흐름에 강윤성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가 17년 동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작은 희망이 계속 있어서였다." ⓒ 이정민

 
"오히려 1990년대에 감독이 데뷔하기 쉬웠다. 도제 시스템이었기에 유명 감독 밑에서 조감독만 잘해도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지금은 시스템적으로 신인 감독이 통과해야 할 단계가 매우 많아졌다. 자기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어려운 환경이지. 전에 어떤 강연에서도 한 말인데 전 열심히 하면 저처럼 기회가 온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거짓말이다. 제가 그때 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올리브를 팔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난 17년의 삶은 제게 무의미하게 남았을 것이다. 

전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꼭 만들어야지만 행복할까? 만든다 해도 흥행이 안 되면 불행할 수 있거든. 감독을 목표로 열심히 살았으니 꼭 감독이 되어야만 하나? 욕 먹을 수 있는 말인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됐는데 난 되지 말라는 소리냐 그러실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만약 가능성과 희망이 구체화 되기 시작하면 끝까지 버텨보라고.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막연하게 달려드는 거라면 빨리 포기하라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강윤성 롱 리브 더 킹 김래원 원진아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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