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17년 만에 찍은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도시>로 약 700만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고, 2년 만에 차기작을 내놓은 강윤성 감독은 여전히 배고파 보였다. 흥행 욕심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포 건달이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 이번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아래 <롱 리브 더 킹>)은 감독의 그런 갈망과 애정이 집대성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원작 웹툰을 보진 않았다고 한다. 원작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를 본 후 이야기와 캐릭터에 매료되어 연출을 맡았다. 이를 두고 강윤성 감독은 "재료가 좋았고, 제가 요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표현했다. 
 
"웹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으로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아서다. 웹툰은 웹툰으로 두고, 웹툰 독자들 기대에 맞추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초고를 봤을 때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는 플롯이 좋았다. 장세출(김래원)은 직선적 남잔데 요즘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순수한 사람을 소환하면 지금 때에 더 신선할 것 같았다. 내 주변에 이런 작은 영웅이 여럿 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정치인 나오지만 정치 영화 아냐"

아무래도 주인공이 건달이고 원작 특성도 있기에 <롱 리브 더 킹>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뻔한 조폭물의 부활 아니냐'는 비판 또한 있었다. 강윤성 감독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감독은 오히려 멜로 코드와 지역색을 강조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그런 우려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조폭으로서의 장세출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시나리오 초고에서도 처음부터 순수한 조폭으로 등장한다. 공간 배경이 우리나라 남쪽 끝에 있는 목포라는 게 좋았다. 선거구가 너무 크면 큰 화두를 던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더욱 한국 상황을 대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복잡한 정치 논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순수하고 정직한 인물. 강윤성 감독이 장세출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이었다. 영화에선 국회의원으로 나가게 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오락 영화로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거 과정이 나오고, 지역 소도시라는 특성이 있기에 취재 또한 꼼꼼해야 했다. 감독은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을 꽤 만났다. 실제 선거 시기에 어떻게 일하는지를 조사했다"며 "목포는 사실 영화 찍기 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고칠 때부터 목포에 내려가 시민들을 만나면서 어떤 선입견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롱 리브 더 킹>이 "정치영화가 아닌 멜로에 가까운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멜로다. 그리고 주된 흐름은 휴머니즘이다. 장세출의 성장기가 중심인데 그 안에 유머를 넣은 식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특정 장르영화가 아닌 그냥 오락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의 한 장면.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촬영 당시 모습.ⓒ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강윤성 감독의 영화관

늦은 데뷔, 그만큼 오래 기다렸기에 현장에서 조급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강윤성 감독은 오히려 차분한 편이다. 촬영을 할 때도 시나리오에 갇히지 않고 적극 배우들과 소통한다. 그래서일까. 그와 작업한 배우들은 열에 아홉 또 다시 함께 하고 싶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김래원 역시 인터뷰에서 "모든 게 감독님 덕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과 다시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현장 리더십을 묻는 말에 강윤성 감독은 "제가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저 제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영화 속 캐릭터라는 걸 감독이 정해주는 걸 전 반대하는 편이다. 캐릭터는 배우와 논의하며 자식처럼 키워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래원씨나 원진아(극중 변호사이자 장세출의 보좌관을 맡는 소현 역)씨가 어떻게 표현할지 저 역시 모르기에 함께 얘기하면서 임했다. 김래원씨가 참 잘해주셨다. 저도 인연이 된다면 그와 다시 작업하고 싶다. 다만 전 작품을 쫓는 사람이지 배우를 쫓는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에 맞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오랜 기간 영화를 준비하며 명확하게 생긴 영화관과 연기관이 있다. 궁극적으로 메소드 연기를 지향하는데 배우에게 그걸 주문하진 않는다. 보통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잘 표현하려는 관습이 있는데 전 그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당 인물이 처한 현장에서 어떻게 얘기할까가 더 중요하다. 저와 작업하시는 배우들은 제가 현장의 공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셔서 거기에 맞게 협조해주신다. 그러면 본인도 모르게 메소드 연기를 한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대사가 바뀌거나 추가되어도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지."


철저히 현장 중심이고 이야기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특정 스타 배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 강윤성 감독의 미덕 중 하나인 배우 발굴 또한 그런 영화 철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범죄도시>에서 위성락 역의 진선규를 발굴해 스타덤에 오르게 한 그는 <롱 리브 더 킹>에서도 주연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김래원, 원진아, 진선규, 최귀화씨를 제외하고 전부 오디션을 봤다. <범죄도시> 때도 그렇게 했다. 제가 가진 오디션 개념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보는 게 아닌 영화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걸 찾는 게 아니라 배우가 준비해오신 걸 보며 적합하다 느끼면 함께 하는 것이다. 이번에 1200명 정도 오디션을 봤다. <범죄도시> 때 출연한 윤병희씨 등 조연 분들도 다 오디션을 다시 봐서 합류한 경우다. 작품이 우선이기에 기존 배우들로만 채울 수 없다. 제가 아는 배우로만 채우면 영화는 뻔하게 나올 수밖에 없거든. 작품을 위한다면 새로운 인물을 계속 찾아야 한다."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보통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잘 표현하려는 관습이 있는데 전 그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당 인물이 처한 현장에서 어떻게 얘기할까가 더 중요하다. 저와 작업하시는 배우들은 제가 현장의 공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셔서 거기에 맞게 협조해주신다."ⓒ 이정민

 
"막연하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

시종일관 점잖은 어투였지만 그 안엔 분명한 자기 확신이 있어 보였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본 후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고, 스물일곱 나이에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한 그다. 그로부터 17년간 크고 작은 희망과 절망이 있었다. <범죄도시>를 찍기 직전 강윤성 감독은 친척을 통해 올리브를 수입해 팔 것을 결심하고 영화에 대한 꿈을 접으려고 했다. 이 말에 그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맞다. <범죄도시> 투자가  안됐다면 지금 전 올리브를 팔고 있을 것이다. 근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진 않다. 제가 17년 동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작은 희망이 계속 있어서였다. 한 작품을 준비하는 데 보통 2, 3년이 가거든. 되게 지치게 된다. 근데 놓으려 할 때마다 희망이 생기더라. 투자가 될 것 같다든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든가.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더 이상 못가겠다 하는 지점에서 <범죄도시>를 만난 거지.   

만약 제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생각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누군가가 제게 '17년이 걸릴 겁니다'라고 얘기해줬다면 감독을 안 했을 것이다. 너무 늦고 힘드니까. 사실 오래 달리기 위해선 한 치 앞을 보면서 가야 하는 것 같다. 먼 미래를 보면 너무 힘들거든. 그래서 앞으로 다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굳이 쉬고 싶은 마음이나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일하면서 틈틈이 쉬면 되지."


그렇기에 강윤성 감독은 "촬영 현장 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배우든 감독이든 첫 촬영은 항상 떨리고 긴장되는 법인데 강 감독은 "촬영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전까지 제가 생계형 영상작업을 많이 해서 현장이 두렵지 않다. 카페에서 17년간 글만 썼잖나(웃음).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전 감독이라면 자기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롱 리브 더 킹>도 초고 이후 13번 고쳤다. 일단 전 재밌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작품을 쭉 하고 싶다."

점점 신인감독 데뷔가 늦어지는 한국 영화계다. 개봉 편수는 늘었지만 실력 있는 신진 작가의 등장은 흔치 않다. 검증된 감독과 배우, 검증된 장르물이 범람하는 요즘 한국영화계 흐름에 강윤성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강윤성 감독 영화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가 17년 동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작은 희망이 계속 있어서였다."ⓒ 이정민

 
"오히려 1990년대에 감독이 데뷔하기 쉬웠다. 도제 시스템이었기에 유명 감독 밑에서 조감독만 잘해도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지금은 시스템적으로 신인 감독이 통과해야 할 단계가 매우 많아졌다. 자기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어려운 환경이지. 전에 어떤 강연에서도 한 말인데 전 열심히 하면 저처럼 기회가 온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거짓말이다. 제가 그때 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올리브를 팔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난 17년의 삶은 제게 무의미하게 남았을 것이다. 

전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꼭 만들어야지만 행복할까? 만든다 해도 흥행이 안 되면 불행할 수 있거든. 감독을 목표로 열심히 살았으니 꼭 감독이 되어야만 하나? 욕 먹을 수 있는 말인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됐는데 난 되지 말라는 소리냐 그러실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만약 가능성과 희망이 구체화 되기 시작하면 끝까지 버텨보라고.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막연하게 달려드는 거라면 빨리 포기하라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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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을 통해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알게 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만 내게도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피해자는 과거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완벽한 피해자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들을 보면서 그 편견이 완전히 깨졌고 그렇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의지도 대단하셨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할머니의 일상에는 아픔도 슬픔도 있지만, 즐거움도 웃음도 행복도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연출이지만 꼭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내가 그 영상을 다 봤기 때문이었다. 내 편견이 깨지면서 할머니들을 정겹고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내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은 실제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중은 언론을 통해서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접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할머니들은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이옥선이다', '나는 이용수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인의 이름을 찾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시는 것이다. 영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또한 할머니의 이름을 구성하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할머니의 일상과 개인적인 습관이나 특성, 말투 같은 사소한 것들 또한 할머니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큰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곧 우리 영화를 시작으로 <김복동>이나 <주전장>까지 관심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 좋은 영화들이 모여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장 먼저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다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이 나오지만 아예 역사 문제를 짚지 않는다면 관객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 또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아예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한 어린 학생들 중에서는 이(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도 역사의 큰 흐름을 어느 정도까지는 파악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서 자막으로만 넣었다. 대신 음악이나 (전문적인 내레이션) 등 역사적 사실을 가공한다는 느낌은 빼고 싶었다. 음악이라는 것도 결국은 관객의 감정을 의도하고 유도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고집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할머니들의 실제 모습,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처음 취지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음악이나 효과, 영상 기술들을 배제하고 작업했다." "조정래 감독님은 내가 '고집이 세다'고 말씀하시더라. '고집 좀 줄여'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처음부터 감독님은 '나는 너의 연출에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너의 연출을 존중하고 너를 믿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해주겠다'고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조 감독님의 연출 도움을 받았다면 내가 보여드리고자 했던 걸 (그대로 밀고가도 되나) 고민하고 더 흔들렸을 텐데, 믿어주셔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게 '형으로서 도와줄게'라고 그러셨다. 겉모습은 형과 동생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일지 몰라도(웃음). 처음에 다듬어지지 않은 1차 편집본을 보여드렸을 때 많이 실망하신 것 같더라. 아니라고는 하는데 표정에서 느껴졌다. 제가 공부하면서 만들다시피 한 상황이라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부족했다. 또 (조 감독과 나는)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더라. 그런데도 그때 쓴소리를 안 하셨다. '네가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가라'고 믿음을 주셨다. 덕분에 내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었다. 조 감독님은 그저 다른 연출자의 시선으로, 관객의 입장으로 조언하시며 도움을 주셨다." "촬영할 때는 뭘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2017년 3월부터 제작에 들어갔고 촬영은 한 달 정도 지난 다음에 시작됐다. 구성안이 계속 바뀌다 보니까, 일단 할머니들을 그냥 따라다니면서 찍었다. 찍으면서 옛날 영상도 확인하고 맞춰가면서 촬영했다. 당시에는 여러 (한일 '위안부' 합의안 관련한) 상황 때문에 복잡했지만 할머니들의 일상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긴 시간 동안 할머니들과 일상을 함께 할 기회가 없지 않나. 그런 걸 우리는 경험해본 것이다. 그래서 내겐 6개월의 촬영기간이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불편해하셔서 촬영을 안 했다. 할머니들이 '찍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막상 카메라와 조명과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으니 (할머니들이) 불편해하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카메라와 장비들을 다 물리고 그냥 가서 얘기하고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그랬다. 박옥선 할머니는 또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고 그러면 나도 함께 노래 부르고. 촬영 스태프들이 다 내 또래다.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일 안 하는 한량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친근하게 시간을 보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동안 증언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어떤 포인트나 순간이 되면 그런 증언들을 계속 이야기하신다.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다. 그럴 때가 아니면, 편하게 텔레비전 보면서 이야기 하거나 혹은 누워서 얘기했다. 내레이션 들어간 것도 할머니의 인터뷰를 따서 넣은 건데 누워서 말씀하신 내용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 다른 할머니들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저 할머니는 심보가 고약하다 이런 얘기도 하시고, 나는 음식 뭐 좋아하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외국인들도 나눔의 집에 많이 온다. 역사박물관에서 설명하던 중에 어느 외국 분이 질문하더라. '왜 이분들이 컴포넌트 우먼이냐. 컴포넌트는 좋은 뜻인데.' 그래서 '용어 정리가 아직 안 됐다. 사실은 섹스 슬레이브다'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종군 위안부'라고 했다. 종군도 자발적인 단어고 위안부도 피해자의 자발성이 느껴지는 단어이지 않나.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강제 종군 위안부'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니까 일본 야당 여성 의원들이 입법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전시 성폭력 피해자'라는 단어였다. 그건 피해자 관점의 단어다. 할머니들도 처음부터 인권의식이 있진 않으셨다. 당한 것 자체를 운명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활동을 하시면서 이게 인권침해라는 걸 알게 되신 것이다. 그러면서 한두 분이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아직 통과가 안 됐다. 여야 간 의견 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피해자 중심의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서까지 줬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본군 성 노예 역사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그동안 정치인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눔의 집에) 와서 할머니들에게 인사도 하고 공수표도 날린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한다.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생각해야 하는데 (말을 할 때는) 그걸 절대 생각하지 않더라. 그래서 할머니들이 여러 번 상처를 받으셨는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합의안이 나오지 않았나. 할머니들이 체결 당일에도 저항을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29일 정부 대표로 총리도 아니고 외교부 차관을 (나눔의 집에) 보냈더라. 이 점에 대해서도 할머니들은 서운하게 여기셨다. 와서 합의안을 밀어붙이려고 하니까. 우리는 이런 걸(합의) 원하지 않고 돈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나눔의 집에 왔다. 할머니들에게 오는 건 좋은데 조용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거철이니까 지역구 의원이나 당직자들까지 다 오지 않겠나. 그런데 그렇게 요청했더니 진짜 인원을 제한해서 왔더라. 그때 이야기를 듣던 김군자 할머니가 '엄지 척'을 들었다. '당신 최고'라고. 이후에 집권하셨고 화해치유재단 해체도 했고 10억 엔을 돌려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할머니들이 신뢰를 보이고 있고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청와대에서 이번에 <에움길>을 한 번쯤 봐주시면 할머니들이 되게 힘이 날 것 같다. 할머니들이 수많은 정치인을 접했지만 김군자 할머니가 엄지 척을 드셨고 이옥선 할머니도 문재인 대통령은 믿는다고 하시더라. 대통령이 지금 남북관계나 한반도 외교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 할머니들도 뉴스 보시니까 아신다. 나눔의 집에 오시지는 못하더라도 어디에서든 영화 한 번 봐주시면 할머니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피곤하고 지친 분들은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나눔의 집에 오는 분들마다 '할머니들의 의지가 가장 강하다'고 얘기하더라. 할머니들은 '내가 살아있어도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폄하하는데, 내가 죽고나면 영원히 매춘부로 낙인찍히지 않겠냐'고 걱정하신다. 그게 할머니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한국 정부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 정부가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가 과거 역사 문제에 관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그것 때문에) 일본 아사히TV가 방탄소년단 출연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명) 팬들이 나눔의 집 후원계좌에 800만 원 정도를 입금했더라. 5불, 10불 소액이었다.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팬들이 공감해 준 것이다. 정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자본과 외교력 때문에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다각적인 외교를 해서 할머니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눔의 집은 소송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왜 하냐. 시간 낭비다. 질 것이 뻔하다'고 얘기하지만 할머니들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포기) 하기는 어렵다. 할머니들의 입장은 그게 아니다. 너무 억울해하신다. 자식이 없으신 분들도 많아서 우리라도 해야 한다. 재판부가 1심에서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합의안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합의안을 보호해서 국가적으로 얻는 이익보다는 공개해서 국민들이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결을 냈는데도 외교부에서는 외교 관계상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라. 모순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과의 외교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일본이 가해자이지 않나. 피해자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해주면 좋을 텐데. 2심 재판부가 오히려 정부 편을 들어줘서 할머니들이 더욱 낙심하셨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나라가 없을 때 끌려가셨는데, 법에서도 패소 판결을 내렸다는 데 대해 너무 실망하셨다. 대법원에 기대고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제발 (공개하라는 판결이 났으면 한다). 할머니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 받고 보장받을 권리가 있지 않나. 정부도 할머니들을 생각해서 공개해줬으면 좋겠다." "나눔의 집에는 이옥순 할머니를 포함해 여섯 분이 계신다. 작년에만 여덟 분이 돌아가셨고 올해 벌써 네 분이 돌아가셨다.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 중에는 스물 한 분이 생존해 있는데, 그 중 여섯 분이 나눔의 집에 있다. 세 분은 거동이 가능하고 세 분은 누워 계신다. 이옥선 할머니도 금년에 93세셔서 증언도 힘들고 방문객 만나는 것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할머니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걸 더 좋아하시더라. 요즘 '할머니한테 피해가 갈까 봐, 연로하셔서 피곤할까 봐' (나눔의 집에) 못 오시겠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 그렇지 않다. 할머니들은 사람들이 오는 걸 더 좋아하신다. 할머니도 연세도 있으니까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할머니는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신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눔의 집에 와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시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에움길>을 보고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500만 원 조금 넘게 후원을 받았다.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 금액은 제작비라기보다 전국 상영회 비용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금액은 나눔의 집에 후원했다. 제작비는 조정래 감독님과 귀향에 참여하셨던 임성재 PD님, 그 외 많은 소액 투자자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1억 2천만 원 정도 잡고 있고 제작 기간은 2년 정도다. 작업해주신 분들이 많아서 제작기간이 길어졌고 제작비가 은근히 불어나 버렸다. 손익분기점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5만 명 정도로 알고 있다. 목표 관객수는 10만 정도다." "<귀향> 때는 가족들끼리 '너 <귀향> 봤냐, 그건 꼭 봐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더라. 당시 350만 명 정도 많은 사람들이 봐 주셨으니, 그 분들이 한 번씩 더 봐 주셨으면 한다. 우리 영화의 관객이 늘어날수록 부담을 느끼는 쪽은 일본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끊임없이 이 문제를 축소시키고 감추려 하는데, '그래선 안 되는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계속 활동하시겠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본 관객수가 일본을 압박할 것 같다." "지난 8일 요코하마에서 상영회가 있었고 일본에서 활동하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활동가가 배급을 준비하고 있다.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고 하더라. <귀향>도 국내에서 힘을 받아서 해외로 진출했다. 당시 전 세계 66개국 안 간 곳이 없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댈러스로 가는 길에 애틀란타에서 와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이옥선 할머니와 저는 못 가겠다고 했는데, 조정래 감독은 자비를 들여 거기까지 다녀왔더라. 이번에는 이승현 감독이 해외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희 영화는 할머니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는데, 어떤 분들은 무슨 감정으로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봐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할머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할머니들이 웃으실 때 같이 웃고 우실 때 같이 울고, 할머니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지 않겠나. 영화 속 할머니들의 웃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봐 달라.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로 봐주셨으면 한다. 할머니들이 항상 '나는 가족이 없고 사람이 그립다'고 말씀하시는데 할머니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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