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달시 파켓 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 '기생충' 달시 파켓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이정민

  
한국에 온 지 20년을 훌쩍 넘긴 미국 출신 달시 파켓의 직함은 다양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번역가로 최근 알려지고 있지만 그는 1998년 무렵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꾸준히 한국 문화와 말을 공부하며 평론가, 나아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두루 맡고 있다. 

한국에 오래 머물더라도 의사소통을 넘어 외국인이 한 예술 작품의 번역을 맡는다는 건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의 번역 감수 이후 달시 파켓은 <옥자>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의 번역을 맡아왔다. 봉준호 감독뿐이 아니라 나홍진 감독의 <곡성>,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등 상업, 다양성 영화를 막론하고 약 150편에 이르는 작품이 그의 번역을 거쳐갔다.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라는 말에서 그의 자막 작업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1997년 고려대학교 영어 강사로 한국에 발을 딛은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뒤 한국영화에 빠지게 됐고, 이후 취미로 영화 잡지를 두루 찾아보며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1999년 만들어진 이 사이트엔 그가 직접 보고 쓴 약 600편의 리뷰와 해당 작품의 상업적 흥행 수치가 연도별로 정리가 돼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이 러시아였는데 그땐 열심히 공부했었다.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땐 러시아어도 꽤 잘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웃음). 꿈이 5개 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었거든. 그 생각으로 한국어를 혼자 배웠다. 1년 반 지나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됐고, <씨네21> 등을 사서 계속 읽었다. 

그때 참 재밌는 한국영화들이 많았다. <조용한 가족> <넘버3>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정말 이야기가 다양했다. 웹사이트 만드는 걸 좋아해서 본 영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영어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거라도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의외로 해외에서 제 사이트를 더 챙겨보더라."


봉준호는 역시 '디테일'
 

 영화 <기생충> 스틸 컷

영화 <기생충>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애정으로 시작한 일이 발단이 돼 영화 번역 감수까지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그렇게 만나게 된 것.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때 아마 절 감수로 그쪽에 추천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되게 즐겁게 작업했다. 확실히 아이디어와 시선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봉 감독과의 첫 작업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플란다스의 개>를 개봉하고 두 번인가 더 봤다. 제 사이트에도 리뷰를 썼었는데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썼던 것 같다(웃음). 그 뒤에 <살인의 추억> 때 감독님이 제게 (감수가 아닌) 번역을 직접 해줄 수 있냐고 전화하셨다.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내가 맡아도 될까 생각이 들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그게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을 맡은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와이프(달시 파켓은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기자 말)와 함께 작업했고 이후로 친구와 저 와이프가 같이 작업하는 시스템으로 했다. <괴물> 땐 제가 맡았다가 마무리 시점에 해외에 가야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게 아쉽더라(웃음). <마더> 이후로는 제가 쭉 끝까지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달시 파켓은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부분을 언급했다. <마더> 작업 당시 원빈이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에서 영어 자막이 길어질까봐 '도준'이라고 지은 것은 최근 유명해진 일화다. <기생충> 작업은 그가 여태껏 작업한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이 돌려보며(7회), 가장 깊이 감독과 대화한 경우였다. 올해 1월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그는 초고 번역에만 10일을 보내야 했다.   

"직접 감독을 만나 자세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진 않다. 박찬욱 감독님의 <아가씨> 때도 그랬고, 감독님이 영어를 좀 하시면 (자세한 소통이) 가능한데 그게 아닌 경우엔 감독님들이 절 믿고 맡기시는 편이다. 번역하면서 언어적 고민과 작품적 고민을 같이 하니까 같은 대사라도 여러 방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감독님과 만나면 물어볼 수 있으니 좋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수정하면 번역의 질이 높아진다."

회심의 번역
 

'기생충' 달시 파켓 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땐 러시아어도 꽤 잘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웃음). 꿈이 5개 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었거든. 그 생각으로 한국어를 혼자 배웠다."ⓒ 이정민


달시 파켓은 주로 해당 장면에서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를 봉준호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젠 많이 알려진 번역들, 그러니까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이런 거 없니?'에서 의미 전달을 위해 서울대를 '옥스퍼드'로 바꾸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해외에서 더 많이 쓰는 '왓츠앱' 어플로 번역하는 등. 모두 해당 장면의 느낌까지 고려한 결과물이다.

또한 짜파구리를 'ram-don'(ramen + udon)이라 풀고, 반지하를 'semi-basement', 종북 개그 달인을 'Nobody can imitate North Korea news anchors like you'라고 한 것은 외국에 익숙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의미를 추론하게끔 설명적이거나 준 신조어를 만든 경우다. 이 덕분일까. 칸영화제 상영 당시 한국 기자단이 웃는 타이밍과 외국인 관객이 웃는 타이밍이 대부분 일치했다. 과거 다른 한국영화 상영에선 웃는 포인트가 상당 부분 어긋났던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또 하나 생각난 게 곱등이다. 외국엔 잘 안 보이는 곤충인데 바퀴벌레라고 쓰고 싶진 않았다. <설국열차>에 이미 나오기도 하니까. <기생충> 번역 때 제가 미국에서 작업했는데 부모님 집에 stink bug(노린재)가 많다. 감독님께 물었다. 다른 벌레긴 한데 이게 더 외국에서 익숙하니 괜찮냐고. 그래서 곱등이는 stink bug로 쓰게 됐다. 

곱등이나 램동같은 경우는 제 아이디어였고, 옥스퍼드는 처음엔 서울대로 썼다가 감독님과 고민하는 과정에서 바꾼 것이다. 수석 역시 고민을 많이 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scholar's rocks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해외에선 개념자체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라 landsape rock으로 썼다. 처음엔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하다 좀 더 완성된 버전을 감독님과 함께 앉아서 봤거든. 그렇게 보면 수정할 게 꼭 생긴다(웃음)."


달시 파켓은 대사 자체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 톤도 번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리듬감과 목소리 톤에 따라 써야할 단어가 달라질 때가 있다"며 "편집에 따라 대사가 짧아지면 단어 역시 짧은 걸 택한다"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과 작업을 달시 파켓은 "신났다"고 표현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상태에서는 과연 어떻게 연출하실지 매우 궁금했다. 칸영화제 출국 직전 너무 한국적이라 외국에서 100프로 다 이해할까 모르겠다던 감독님 발언을 뉴스를 통해 접했었는데 '아, 이거 엄살인데. 인기 많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웃음). 영화라는 게 그렇다. 특히 자막 번역에 신경쓰면 한국적이든 어떤 특정 문화의 것이든 상관 없다."

달시 파켓의 날카로운 지적
   

'기생충' 달시 파켓 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처음엔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하다 좀 더 완성된 버전을 감독님과 함께 앉아서 봤거든. 그렇게 보면 수정할 게 꼭 생긴다(웃음)."ⓒ 이정민


<기생충>의 성과에 그 역시 영화인이자 참여한 스태프로서 기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한국영화의 흐름에 대해 걱정하는 바도 컸다. 그가 20년 간 써온 리뷰, 그리고 영화지에 기고해 온 글에서도 그런 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게 <기생충>이 이렇게 성공했는데 아마 다른 감독이 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으면 (영화화가) 안 됐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젊고 재능있는 감독이 자기 스타일의 유니크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요즘같다. 봉준호, 박찬욱,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 등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지만 그 외 대부분 감독님들 상황이 어려운 것 같다.

영화산업적으로 아무래도 다양성이 화두같다. 예술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분명 극장 관객 수는 늘었고, 천만 영화 역시 잘 나오고 있는데 필름 컬처(film culture)는 떨어지는 듯하다. 1990년대 필름컬처가 되게 좋았는데 말이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국내) 개봉작에서도 영문 자막을 넣은 상영관이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근데 아직까지 영문 자막 극장은 스케줄이 불규칙적이다."


2009년 그는 <씨네21>에 '한국영화계에 10억 원 미만 예산의 영화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을 제안했고, 2014년 실현시켰다. 독립영화가 주인공인 '들꽃영화제'가 그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 등 국내 주요 독립영화상과 함께 들꽃영화제 역시 빠르게 성장했고, 자리잡았다. "의미 있는 상이라 생각한다"며 그는 "다른 독립영화제와 다른 게 우린 개봉한 독립영화를 한 번 더 돌아보고 기억하자는 마음"이라 덧붙였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미 그의 높은 한국어 수준과 문화적 이해도에서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영화가 저와 이 나라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도 웹사이트로 '한국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한국영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상상하고 있다'는 메일이 많이 온다. 한국사람들도 다른 나라 영화를 많이 보고 그렇게 영화를 통해 문화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기생충' 달시 파켓 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 이미지 포즈를 취한 달시 파켓.ⓒ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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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보현'이 되기 위해, 그가 보낸 치열한 시간들

[인터뷰] tvN <그녀의 사생활> 남은기 역, 배우 안보현

큰 키에 서글서글한 웃음. 잘생긴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최근 종영한 tvN <그녀의 사생활> 속 남은기는 인기남의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다. 하지만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덕미(박민영 분)의 마음만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성덕미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그를 연기한 배우 안보현은 시청자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3일 서울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배우 안보현을 만났다. 그는 "아직 은기의 여운을 떨치지 못했다"며 웃었다. "연기하지 마라" 감독이 조언한 이유 홍종찬 감독은 안보현의 캐스팅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연기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즐기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으로 맡게 된 큰 역할에 부담감을 느끼던 그에게 그만한 응원의 말도 없었다.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는 여러 로맨틱 장르 드라마에서 다뤄진 인기 코드다. 남은기가 성덕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지만, 시청자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주어진 상황과 대사 안에서, 어떻게 하면 시청자의 마음을 더 '심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그 고민을 함께 해주고, 답을 찾아준 이는, 성덕미 역의 박민영이었다. 극 후반부에 짧게 등장해 큰 호응을 받은 남은기와 신디(김보라 분)의 러브라인도 애드리브 덕분에 탄생했다. 덕미네 집에서 남은기와 신디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애드리브를 했는데, 이를 본 김미경(덕미 엄마 역)이 '너무 재미있다. 너네 둘이 뭔가 있을 것 같다'며 새로운 러브라인에 힘을 보태줬기 때문이다. 이후 남은기와 신디의 만남이 몇 장면 더 나왔고, 마지막 회에는 둘이 연인이 됐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나왔다. '배우 안보현'이 되기 전, 그가 보낸 시간들 애드리브로 없던 러브라인까지 만들어낸 걸 보면 일찍부터 배우를 꿈꾸고 준비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20대 중반까지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고,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다. 부산체고를 나온 안보현은 10대 시절 복싱 유망주였다. 고3까지 부산시 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아마추어 대회에서 금메달까지 땄다.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던 복싱 소년은, 실업팀이나 체대 대신 대경대 모델학과에 진학해 모델로 진로를 바꿨다. 그렇게 대경대 모델학과에 입학한 그는,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서울컬렉션 무대에 오르며 화려하게 모델로 데뷔했다. 에이전시도 없고 학원도 다닌 적 없는 1학년이, 이렇게 빨리 런웨이 데뷔한 전례가 없었다. 교수님들의 기대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모델 생활도, 5년을 겨우 채웠다. 운동을 오래한 탓에, 몸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강동원, 조인성, 차승원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었고, 학교 선배인 이민기 역시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해 성공한 케이스였다. 자연스럽게 그의 목표 역시, 모델에서 배우로 옮겨갔다. '연기 독학' 안보현의 훌륭한 스승 단 몇 달이었지만 학원의 효과는 분명 있었다. 캠코더로 자신의 연기를 찍어 모니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건, 영화와 TV 속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하면서였다. 여러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내기도 하고, 기존 캐릭터에 '안보현'이라는 색깔을 맞춰 연기해보기도 했다. 짧은 기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연기를 독학해 온 안보현에게, 선배들과의 연기 호흡 맞추는 일은,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한 과외나 다름없다. <그녀의 사생활> 역시 마찬가지. 안보현은 극 중 김미경, 맹상훈 등 선배 연기자들과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다. 안보현이 원하는 수식어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진다.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만큼,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도, 캐릭터도 많다. 그중 지금 가장 도전하고 싶은 건 악역.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종종 그에게 '네 얼굴에는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해주는데, 이런 장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복싱선수를 꿈꾼 10대. 모델로 데뷔한 20대. 배우로서 본격적인 필모를 쌓기 시작한 30대. 언뜻 너무 다른 꿈과 목표를 위해 달려온 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삶과 인생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에게, 지난 시간의 노력은 모두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안보현은 시청자들에게 듣고 싶은 수식어를 묻자, '걔'라고 답했다. '어? 그때 걔네', '전 작품이랑 너무 달라서 얘가 걔인 줄 몰랐어'라는 말이 듣고 싶다면서. 안보현은 "그만큼 이미지 변신을 잘하는 '팔색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너무 옛날 표현인가요?"하고 밝게 웃었다.

외딴 산장에서 정재형이 만든 '앨범' 들은, 유희열의 첫 반응

[인터뷰] 정재형, 9년 만에 정규 5집 < Avec Piano > 발표

가수이자 작곡가 정재형이 새 앨범 < Avec Piano >를 발표했다. 무려 9년만이다. 그는 지난 2010년 피아노 연주곡 앨범 < Le Petit Piano >를 선보였고 그 이후 선보이는 또 한 번의 연주곡 앨범이 바로 이번 신보다. 목소리로 노래하기보단 피아노를 목소리 삼아 감정을 표현하며, 작곡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정재형. 그의 라운드 인터뷰가 지난 5일 오전 그의 소속사인 서울 신사동 안테나뮤직에서 열렸다. 일본 외딴 산장에서 만든 앨범 정재형의 이번 앨범 작업배경이 독특하다. "발코니 밑은 낭떠러지고 보이는 건 온통 바다뿐인 산장"에서 홀로 한 달가량 지내면서 곡들을 만들었다.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서 그는 일본의 가마쿠라에 가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La Mer(라 메르)'다. 프랑스어로 파도, 바다, 바닷가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려고 누워도, 창문을 닫아도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들렸다"며 "처음엔 그게 무서웠는데 어느 순간 심장소리 같기도 하고 마음이 편해지더라. 저는 서핑을 자주 하는데 바다는 잔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갔을 땐 파도의 힘이 세서 훅 밀려나기도 하잖나. 이런 점이 인생이랑 비슷해보였다. 누구나 그의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우리 다들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잘 살고 있다. 거칠고 힘들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자 싶었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욕하기 보단 서로를 응원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외딴 곳에 가게 된 구체적 계기를 묻자 정재형은 "곡을 하도 못 쓰니까 안테나뮤직에서 나를 그곳에 보냈다"며 웃어보였다. 연주앨범 시리즈를 권유한 것도 안테나, 그러니까 유희열이었다. 정재형은 안테나 대표인 그를 언급하며 "연주앨범 시리즈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기획하고 이야기한 게 유희열씨다. 작업을 하면서 '이게 안테나의 힘이겠구나' 생각했다. 뚝심 있게 힘을 실어준 게 유희열 대표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에 대한 유희열의 피드백은 어땠을까. 이 질문에 그는 "구구절절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사이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녹음하는 과정이 어땠을 것이다란 걸 서로 잘 아니까. 처음에 듣곤 '멋있어'라고 말하더라. '이거 피아노 어떻게 쳤어?'라고 묻기도 했다"고 답했다. "클래식 하는 사람?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실내악에 가까운,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편성하여 곡을 만든 정재형은 본인의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다른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았다. "가장 고마웠던 건 연주자들이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라며 "암묵적으로 완벽해야한다는 생각이 모두 있어서, 그 열정으로 실력이 좋은데도 계속 연주를 해주셨고 녹음하시는 분들도 완벽하게 하려고 포기하지 않고 애썼다"고 말했다. 앨범은 피아노와 첼로를 비롯한 오케스트라로 이뤄졌기에 가요앨범이라기 보단 클래식 연주앨범에 가까워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재형이란 가수의 포지션이 독특해보인다"고 묻자, 그는 "저는 제가 대중가수라고 생각하지 클래식쪽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클래식이 깊어졌지만 저는 이게 가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뭔가 규정할 수 없는 포지션인 것 같고, 그런 게 외롭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컬로 돌아갈 생각은 없을까. 이 질문에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베이시스 때를 아름다웠던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생각도 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예능 프로그램 출연 계획은 어떨까. 이 질문에 그는 주저함 없이 "어우, 할 생각이 있죠"라며 의욕을 보였다. 앞으로 계획하는 앨범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없지만 컴퓨터 하나로 혼자 오케스트라 음악을 다 만드는 음반을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이번 새 앨범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는지 묻자 다음처럼 말했다. 끝으로, 꼭 하고 싶었지만 못한 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공연을 계속 하겠습니다"란 외침으로 말문을 연 그는 "외로운 분들, 혼자라서 서글픈 분들, 연인인데 외로운 분들이 혼자 오셔서 서로에게 위로받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다"며 "이번 앨범은 결국 '나'에 관한 앨범인데 저의 앨범이나 공연을 통해 '나를 더 알고 지켜보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안으로 왔을 때 행복한 건 분명이 있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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