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MBC < PD수첩 > 녹화현장에서의 한학수 PD

지난달 MBC PD수첩 녹화현장에서 만난 한학수 앵커ⓒ 이정민

   
"< PD수첩 >이랑은 인터뷰 안 합니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한반도 대운하 논란, 검사와 스폰서 폭로 보도... 200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슈의 중심에는 늘 MBC < PD수첩 >이 있었다. < PD수첩 >의 고민이 곧 한국 사회의 고민이던, 그야말로 황금기. 2000년대 초반 MBC를 향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의 상당 부분은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기 위해 성역 없는 취재를 지향하던, < PD수첩 >의 보도 덕분이었다. 

하지만 2011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보도와 한반도 대운하 관련 보도 이후, 이명박 정부의 집중 탄압이 시작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보도했던 이춘근·김보슬 PD는 체포됐고, 4대강 사업을 취재하던 최승호 PD(현 MBC 사장)은 해고 됐다. 남북 경협 중단을 취재하던 이우환 PD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쫓겨났으며, 정부 비판적인 아이템을 취재하던 작가들은 일괄 해고되기까지 했다. 정부의 언론 탄압에 손과 발이 묶인 < PD수첩 >의 긴 침체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 PD수첩 >이라서', '< PD수첩 >이니까'라는 말로 무거운 입을 떼던 제보자들과 취재원들은 프로그램의 큰 자산이었고, 존재 의미였다. 하지만 긴 암흑기 동안 '< PD수첩 >이라서' 보도할 수 있었던 아이템들은 '< PD수첩 >이라서' 보도할 수 없었고, '< PD수첩 >이니까' 말해준다던 제보자나 취재원들은 '< PD수첩 >이랑은 말 안 한다'며 외면했다.

7년 암흑기 끝낸 PD수첩의 변화  

그들의 암흑기를 상징하던 '< PD수첩 >이랑은 인터뷰 안 한다'는 이 말이, 최근 다시 등장했다. 물론 같은 말이라도 그 뜻은 확연하게 다르다. 지난 기간에는 '제대로 취재하지 못할 게 뻔하니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면, 요즘은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이 질문을 피하려 이 말을 한다. 같은 워딩, 상반된 의미. 7년 간 이어진 긴 암흑기를 끝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상이다. 

최근 < PD수첩 >은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하는 한국PD대상 최고상인 '올해의 PD상'을 받았다. 지난해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제작 거부로, KBS 새노조 파업영상제작팀과 함께 받았던 것에 이은 2년 연속 수상. 하지만 직접 취재한 콘텐츠로 '올해의 PD상'을 받은 것은 2012년 '검사와 스폰서' 편 이후 7년 만이다.

2017년 12월 12일, < PD수첩 >은 이 7년의 시간을 반성하는 'MBC 몰락, 7년의 기록' 편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지난 약 1년 5개월의 시간 동안 한국 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과 대형 교회들의 비리를 파헤쳤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폭행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소리 박사 배명진의 진실', '사립유치원은 법이 없습니다',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 편 등이 일으킨 후폭풍도 엄청났다. 

긴 공백을 메우고 시청자들의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 그사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위상이 추락한 MBC와 < PD수첩 >의 현실. 이 간극 사이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같은 우려를 몇 개월 만에 떨쳐버렸다. 그들의 지난 1년이 궁금했다. 지난달 말 <오마이뉴스>는 녹화 현장을 찾아 박건식 CP와 한학수 앵커를 만났다. 

억울한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프로그램
 

'PD수첩' MBC < PD수첩 >의 박건식 CP

지난 4월 MBC PD수첩 녹화현장에서 만난 박건식 CPⓒ 이정민


- 지난 2018년 1월, 새 출발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보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그 목표는 얼마나 이뤄졌나. 
한학수 앵커(아래 한) : "만족할 만큼은 아니라도, 상당 부분 달성되고 있다. 초반에는 제보의 양도 적고, 질도 좋지 않았다. 제보를 받고 연락해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 많았다. 하지만 방송이 거듭될수록 '< PD수첩 >이니까 이야기하겠다'는 분들이 늘었다. 양적으로도 늘었고, 질에 있어서도 심도 있는 제보들이 많아졌다. 제보자들이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억울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 PD수첩 >이길 바란다." 

- 황금기를 이끈 스타 PD들이 돌아왔지만, 오랜 기간 현업에서 배제돼 있던 PD들이기도 하다. 공백 기간 동안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트렌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박건식 CP(아래 박) : "개인적으로는 젊은 세대들과 우리의 다른 고민 지점을 느끼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젠더 문제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5.18 유공자들을 '세금 축내는 괴물집단'이라고 표현해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김순례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반발에 철회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규탄 성명에 반발한 학생들의 주장이, 가뜩이나 여성 국회의원이 적은데 왜 우리가 앞장서서 여성 국회의원을 비판해야하느냐는 것이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함께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김진태 규탄 성명을 내지 않는데 왜 숙대만 먼저 나서냐, 이런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맞다 틀린다가 아닌 다른 생각의 틀, 젠더적인 관점에서 사안을 보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흐름이라면 우리는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할지 고민된다. 쉽지 않은 문제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트렌드 
 
- 지상파의 위기라곤 하지만, 케이블과 종편에 주도권을 빼앗긴 예능·드라마와 달리, 시사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여전히 지상파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은 시사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 데다, 과거 황금기를 그저 옛날이야기처럼 여길 것이다. 이런 딜레마 사이에서, 제작진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 "지난 한 해 동안은 적폐와 거악, 구조적인 문제를 피하지 않고 다뤘다. 그랬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상도 받았고,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거악과만 싸울 수는 없지 않나. 우리의 모토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역 없이 싸운다'는 것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의 문제, 학교의 문제, 안전의 문제, 젠더의 문제... 젊은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의 문제를 외면하고 거대한 구조적 문제만 이야기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거다. 일상의 문제를 작은 문제라 여기지 않고, 구조적 문제가 우리 삶에 녹아들어 생긴 구체적 사례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MBC의 영광을 모르는 세대에게, MBC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만을 가진 세대에게 과거에 이랬다저랬다 말로 설명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긴 싸움이 되겠지만, 20대의 고민을 20대의 화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점차 저변이 넓어질 거라 본다. 그래야 프로그램도 풍성해질 거라 본다. 우리의 과제다." 
 
: "프로그램의 기본 정신을 견지하면서도,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2019년의 고민이다. '정의'라는 한 단어에도 우리가 7~8년 전에 가졌던 사회적 공감대와, 지금 20대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사회적 어젠다,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의제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면, 지금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과거에는 시사 프로그램이 변사사건이나 미스터리를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 선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내가 억울한 범죄를 당했을 때 귀 기울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소시민의 피해를 조명해주는 것이 더 정의롭게 느껴질 거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가 소수자, 약자의 대변자라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우리가 변화한 세상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그 역시 우리가 함께 움직여야할 지점이다. 최근 우리도 디지털 도어락 관련 '문고리를 흔드는 손' 편이나, '의대 어디까지 가봤니' 편처럼, 젊은 세대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민도 담았다. 다만 아직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덜 축적돼 시도 단계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고민할 생각이다." 

지난 1년 간 소송만 20여 건... "부담되지 않는다"  
 

'PD수첩' MBC < PD수첩 > 녹화현장

MBC PD수첩 녹화현장ⓒ 이정민


최근 < PD수첩 >은 상복도 많았지만, 소송복도 많았다. 제작 거부 후 5개월 만에 첫 방송이었던 'MBC 몰락, 7년의 기록'은 김현종 전 시사제작국장으로부터 정정 보도 청구 소송을 당했고,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은 당사자인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명예훼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등 소송에 내몰린 것만 20여 건이 넘는다. 대부분 승소해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지만, 소송은 그 자체로 성가시고 부담되는 일. 하지만 프로그램 책임자인 박건식 CP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고 했다.  

- 일선 PD들은 몰라도, 회사나 프로그램 책임자인 CP 입장에서는 소송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 "그 부분에 있어서는 최승호 사장이 우리의 버팀목이라 생각한다. 최승호 사장이든, 다른 경영진이든, 속으로 무슨 고민이 있는지까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내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건 소송이 들어왔을 때, 회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회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으니까. 실제로 김재철 사장 때는 소송 들어오면 부장과 임원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더라. (회사의 달라진 태도에) 후배들도 굉장히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작진을 현장에서 가장 힘들게 하는 소송은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다. 대부분 방송 당일이나 전날, 가장 바쁠 때 들어오기 때문이다. 소송이 들어올 때마다 회사 법무팀과 자문 변호사가 성실하게 도와주면서 현장 PD들이 가능하면 방해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성가시고 힘들긴 하지만 대부분 무난하게 승소하고 있고. 

사실 최근 소송을 많이 당한 이유는, 우리가 실명보도를 해서다. 익명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 소송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제대로된 보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작진이 알고 있고, 그 인물이 공적인 인물이라면 실명보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장도 모 원장이라고 하지 않았고, 김학의도, 윤중천도, 조선일보 방상훈 방용훈 방정오도 다 실명보도했다. 이러한 보도가 반향과 영향력을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소송은 그 반대급부인 거고." 
 

'PD수첩' MBC < PD수첩 > 녹화현장

MBC PD수첩 녹화현장ⓒ 이정민

 
: "맞다. '모 사장', '모 감독' 이렇게 쓰고 모자이크 처리하면 소송은 피할 수 있다. '모 언론사', '모 사장' 이렇게 내보냈는데 소송 걸면 스스로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질 않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실명을 공개해버리니까 소송 거는 거다. 소송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어필하려는 목적도 있을 테고.

사실 소송 당하고 기쁠 사람이 어디 있나. 아무리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아 한다고 해도, 스트레스도 있고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팩트에 문제가 없다면, 소송에 대항할 취재를 분명하게 해두었다면 위축되지 말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 최근 소송마다 전승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보니 우리 안에 자신감도 쌓이고 있다." 

: "처음 소송 들어왔을 땐 회사도 조금 긴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자꾸 이기니까 회사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그 승소 배경에는 한학수 앵커를 중심으로 팩트체크 시스템을 비교적 잘 구축해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소송이 많았는데도 어떻게 전승할 수 있었을까. 이건 PD들의 개인기와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은 데스킹과 팩트체크다. 프로그램 내에서 PD들이 취재한 내용을 축적해나갈 때, 부장과 앵커 등이 계속해서 데스킹 해나간다. 핵심 포인트를 제대로 취재한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없는지, 법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지. 팩트체크팀이 독립된 감사기구처럼 내부에서 계속해서 지적하고 데스킹한다."
 

'PD수첩' MBC < PD수첩 > 박건식 CP와 손정은 아나운서.

MBC PD수첩 녹화현장ⓒ 이정민

 
- 오늘 녹화하고 더빙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한학수 앵커와 박건식 CP가 계속해서 토씨 하나하나까지 다듬으며 체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작가와 PD가 완성해온 대본을 앵커와 협의해 스튜디오 멘트를 만든다. 그리고 이 내용을 부장이 또 지켜보면서 뉘앙스나 오해될 소지가 있는지를 계속해서 체크한다. 제작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감사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PD나 작가가 받는 스트레스와 괴로움이 엄청나게 커진 셈이지만, 강철이 맞으며 단련되듯, 더 엄정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강해지고 있다 생각한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인 김상중은 자신의 역할을 '저널리스트들이 취재한 내용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전달자'이자, '첫 번째 시청자'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 녹화를 지켜보니 한학수 앵커의 롤은 또 한 명의 데스크라는 느낌이었다. 한학수 PD의 역할을 'MC'가 아닌 '앵커'라 명명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MC라는 말 대신 앵커라는 말을 쓴 데는 분명한 함의가 있다. 앵커는 뉴스 보도 시스템 안에서 키맨의 역할을 하는 거다. 실제 우리 부서를 총괄하는 부장(CP)이 선장이라면, 개별적으로 취재하는 PD들은 독립된 돛단배다. 앵커는 부장을 도와 돛단배들을 이끌어나가는 부선장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데스킹과 팩트체크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분명 괴로울 거다. 하지만 결국 장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 지금 PD들과 작가들은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사실관계는 수평적, 수직적으로 계속 교차 검증한다. 수직적 검증과정이 데스킹이라면, 수평적 과정은 팩트체크인 셈이다. 전담 리서처도 있고, 기획안 단계부터 구성안, 대본, 더빙, 종합편집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검증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여러 확인 단계를 거친 팩트들은 한학수 앵커가 구축해둔 데이터 시스템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런 팩트들 덕분에 어떤 소송이 와도 두렵지 않은 자세가 생겼다. 진일보한 거라 생각한다.

또, 이 데이터 안에는 역대 제보와 방송되지 않은 취재 내용, 취재원 정보 등이 잘 정리돼 있다. 과거에는 이런 자료들을 개별 PD,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했다. 방송이 끝나면 이 자료들을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전에 다뤘던 아이템을 다시 다루려면 당시 취재했던 PD나 작가를 찾아가야 했는데, 자료를 잃어버린 경우, 회사를 떠난 경우도 많았다. 연락처도 흩어지고, 취재 내용도 흩어졌다. 한 앵커는 이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뒀다. 방송이 끝나면 자료들을 모두 받아 정리한다. 언제, 어떤 PD가 오더라도 검색만 하면 확인할 수 있다. 시행착오도, 실수도 줄일 수 있고, 불필요한 수고도 덜 수 있게 됐다." 

[인터뷰 ②] "국정원이든 종교든 상대하려면"... 'PD수첩' 제작진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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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에 가입도 거절당해"... '극한직업' 이렇게 만든다

[장수기획⑫]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들"... 벌써 10년 넘어

역대 한국 상업영화 관객수 2위(1600만)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의 탄생 이전에 EBS <극한직업>이 있었다. 배우 류승룡은 영화 <극한직업>이 개봉하기 전에 EBS <극한직업> 제작진을 찾아 내레이션을 하겠다고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만일 성사됐다면 흥미로운 조합이었을 것 같지만 배우이자 성우 윤주상이 2017년부터 <극한직업>의 내레이션을 잘 해내고 있어 정중히 고사했다고 한다. EBS <극한직업> 심예원 피디는 우스갯소리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영화가 이렇게 잘 될 줄 몰랐고 후회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영화 <극한직업>의 제작사 어바웃필름의 김성환 대표 역시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으로 <극한직업>을 꼽았을 정도다. 영화와 교양 프로그램, 단순히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에서 얽힌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EBS <극한직업>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다. 배우들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직업을 연기할 때 <극한직업>을 보고 참고한다. 이성민 배우가 대표적이다. <골든타임>(2012)에서 의사 역할을 맡았을 때 그는 <극한직업>을 보고 참고해 연기했다고 한다. 개그맨 유병재 역시 SNL의 한 코너인 '극한직업'을 맡으면서 EBS <극한직업>을 패러디해 인기 코너로 만들었다. 2008년 2월 27일 조기잡이 현장을 첫 방송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EBS <극한직업>은 10년을 한결같이 직업의 세계를 치열하게 포착해왔다. 비록 10년 동안 촬영 카메라의 기술은 진보했을지라도 몇 개월씩 걸려 섭외를 진행하고 친해지고 직업인을 카메라에 담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과정은 10년째 그대로다. 8년째 <극한직업> 연출을 맡고 있는 KP커뮤니케이션의 노윤구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간혹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가 있어도 <극한직업>의 제작진들은 그저 감사하다. 컴플레인(complain) 전화가 오면 임우식 앤미디어 피디는 다시 전화를 걸어서 시청자와 소통한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시청자들은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에서 나온 업체를 알려달라는 문의를 해온다. <극한직업> 시청자 게시판에 있는 대부분의 게시글이 업체를 문의하는 내용이다. <극한직업> 제작진들은 모두 손수 댓글에 답글을 달아준다. <극한직업> 제작진의 고충 하지만 아이템 회의를 시작으로 업체 섭외, 촬영, 편집, 방송에 내보내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구간 구간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들'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피디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업체 섭외다. 우선 해당 아이템이 얼마나 시의적절한지, 해당 업장이 안전 규정을 지키는 현장인지를 판단한 뒤 해당 제품과 관련이 된 업체를 섭외한다.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란 예를 들면, 겨울철에 '어묵공장'을 섭외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식이다. 하지만 조사를 다 하고 섭외 시도를 해도 어김없이 10건 중에 8건은 거절하는 전화를 받는다는 게 <극한직업> 제작진의 설명이다. 2년 가까이 걸려서 섭외가 되는 경우까지 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현장의 피디들은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매력적이나 이 때문에 정작 섭외가 힘든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 주로 힘든 현장을 다룬다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극한' 업체가 아니"라면서 촬영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럴 때 <극한직업> 제작진이 나서서 시간하고 노력을 들여 편견을 깨면서 섭외 작업에 들어간다. 때로는 섭외를 하다가 '쌍욕'을 먹기도 한다. <극한직업> 방송 초기에는 열악하고 힘든 곳을 많이 찾아다녔다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또 제작진이 원하는 촬영일자와 업장이 원하는 날짜가 다른 경우도 있다. 제작진은 최대한 바쁠 때, 즉 성수기에, 바쁘고 생생한 현장을 담고 싶어한다면 정작 업장에서는 "바쁠 때 오지도 말라"(임우식 피디)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렵사리 섭외에 들어가면 촬영하는 건 좀 수월해야 하는데 촬영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위험한 현장을 담는 날에는 촬영도 덩달아 위험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장에 있는 작업자들이 정작 <극한직업> 제작진들에게 '너희들이 '극한직업'"이라고 말을 거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다. 또 화면이 잘 나오게 만들려 욕심을 내다 보니 장비가 망가지는 일도 있다. '극한직업인'인 <극한직업> 피디들이 일하는 일터를 취재하고자 현장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2월 말 피디들과의 대면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달했다. 피디들은 업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서 역시 조심스러워 했다. 업체로부터 온 최종적인 답변은 '거절'이었다. 대신 피디들은 현장 사진을 보내왔다. 아래는 그 사진이다.

"국정원이든 종교든 상대하려면"... 'PD수첩' 제작진의 각오

[장수기획⑬] 돌아온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박건식·한학수 인터뷰 ②

: 같은 말, 다른 뜻... "PD수첩이랑은 인터뷰 안 합니다" 프로듀서들이 시사 문제를 취재해 심층 탐사 보도하는 것을 일컫는 'PD 저널리즘'. 1980년대, 정부의 언론 통제와 어용 뉴스, 출입처 중심 보도에 반발해 등장했다. 1990년 첫 방송된 MBC < PD수첩 >의 역사는 PD 저널리즘의 역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D수첩 >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 PD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진수'였으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사이비 저널리즘'이라며 폄하되기 일쑤였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보도 당시에는 보수 정치인들로부터 "이념적 편향이나 정치적 의도로 사실을 왜곡할 위함이 크다"는 비판받기도 했다. "하나 둘 실험하던 시기에 본격적인 탄압 시작됐다" : "2005년 즈음 최승호 사장과 박건식 부장이 PD로 있을 때부터 많이 고민했던 것들이다. 당시는 PD저널리즘의 전성기였는데, 이 내용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과학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개별 PD들의 개인기나 의지 말고, 지속 가능한 취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이 싹트고 하나 둘 실험하던 시기에 프로그램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이 진행됐고, 망가져버렸던 거다." : "< PD수첩 >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들 중 하나가 '기자는 팩트고 PD는 주장이다', '팩트가 부실하다'는 거였다. 우린 동의하지 않지만, 관련 논문도 많이 나왔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다보니 내부적으로 팩트를 더 튼튼하게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최승호 사장이 미주리 대학교에 가서 탐사보도 관련 공부를 하고 왔다. '검사와 스폰서' 편 할 때만해도 전국 검사 인명록을 다 집어넣고, 공무원 인사 청문회나 선거 때면 관련 데이터, 기부금 내역 등등 전부 다 넣었다. 우리끼리 '곧 국정원도 능가하겠다'고 농담할 정도의 빅데이터를 만들고 있었는데 다 망가졌다. 결정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보도 이후 엄청난 홍역을 앓았다. 수많은 공격이 이어졌고, 결국 팩트로 다퉈야 했다. 팩트를 더 단단하게, 작은 빌미도 주어선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제작진은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 기자 말) : "사소한 꼬투리가 얼마나 프로그램을 압박할 수 있는가, 어떤 빌미도 주어선 안 된다는 뼈저린 성찰이 있었다. 이 부분을 넘어서야 한걸음 더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으로 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 "황우석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얼마나 엄청난 공격이 있었나. 제작진에게 묻은 먼지 하나까지 털던 시기였다. 만약 줄기세포가 하나라도 제대로 살아있었다면 한학수 앵커는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 PD수첩 >의 영향력이 한국 사회를 움직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는 이야기이지 않나. 더 엄정하고 엄중하게 사실을 확인해야할 책임을 느꼈다. 그 위력의 크기를 실감한 계기였다." : "칼이 커질수록 더 신중하게 휘둘러야 한다.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팩트체크와 데스킹이 필요했다. 그래야 기무사든, 국정원이든, 종교든, 우리 사회의 거대 권력과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아닌가. 조금만 삐끗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소송과 맞서야 한다." : "소송뿐이 아니다. 조계종 한 번 잘못 다루면 방송 송출이 안 된다. 송신소들이 전부 조계종 산하에 세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하인드지만, 조계종 전 총무원장의 비리를 다룬 '큰 스님께 묻습니다' 편 방송 뒤에 조계종에서 MBC 직원들 송신소 출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시청자들의 신뢰다.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한 번 잃은 시청자 신뢰를 다시 얻기도 쉽지 않고." "강제로 쫓겨난 뒤, PD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돼" 한학수 앵커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보도해 < PD수첩 >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 시사 PD였다. 박건식 CP는 치과 치료 중 감염 사례를 보도한 '치과의 위험한 비밀'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명박 정부의 탄압이 시작된 뒤 '저성과자'로 분류돼 현업에서 배제됐었다. : "어두웠던 시절에 귀양살이 몇 년 하다 보니 프로그램 귀한 줄 알겠더라. < PD수첩 >은 시사교양국 안에서도 3D로 불릴 만큼 일하는 동안은 참 힘든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강제로 쫓겨나 일을 못하다보니 내 자신에게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는지, PD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되더라. 조선시대에도 귀양살이하면 책을 몇 권씩 쓴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을 공유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지금도 사실 더할 나위 없이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하다." : "MBC 시사교양 PD들에게 < PD수첩 >은 자부심이자 상징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힘들고, 어렵고, 귀찮기도 했던 프로였다. 그런데 떠나고나니 얼마나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는지 알겠더라. 경인지사에 있는 동안 매일 경의선 타고 출근했다. 앉아서 졸다보면 수색역을 지나 (상암동) MBC가 보였다. 한 달 정도는 매일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지켜만 볼 수 있고, 올 순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때마다 '돌아가면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나는 저널리즘에 있어서, 기자든 피디든, 아나운서든 1인 미디어든, 모두 그 근본은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 PD수첩 >이라는 프로그램에 1990년대에 생긴 배경에는 양비론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 탐구와, 뉴스에서는 듣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 우리 프로그램이 가혹한 조건에 놓였던 시기가 있었다. 뭘 하나 제대로 보도하려고 해도 족쇄가 너무 많았고, 제약이 많았다. < PD수첩 >이 제 역할을 못했던 시기는,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얻어야할 혜택을 빼앗은 시기나 다름없다. 괴로웠던 시기다. 우리는 모두 그 시기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우리는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는) 가해자였다.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못해) 시청자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마음을 다시 얻는 일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을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일 거다. 지난 시간 세상은 많이 변했고, 사회적 관심도 더 이상 우리에게 쏠려있지 않다. 이 시대 변화의 흐름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과제라 여기며 일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다. 사실 지금 내부 구성원들이 모두 지친 상태다. 하지만 2017년 11월, 제작 거부를 끝내고 'MBC 몰락, 7년의 기록'을 준비하던 그때 그 마음을 잃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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