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40주년 기념전 <다시, 건너간다>를 찾은 건 지난 26일, 봄비가 미세먼지를 싹 씻어낸 청명한 아침이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약속한 인터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붓글 작품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작품의 주인이 나타났다. 정태춘은 전시실을 천천히 걸으며 자신이 쓴 붓글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친절을 보였다. 

마음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로 채웠다는 붓글과 이에 대한 해설은, 곧바로 진행된 인터뷰보다 오히려 정태춘의 본질을 더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말보다는 노래로, 붓글로, 시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온 가수 정태춘. 그는 요즘 아내인 가수 박은옥과 함께 데뷔 40년을 돌아보는 콘서트, 앨범, 전시, 출판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사회운동가, 시인인 정태춘은 1978년 자작곡을 담은 앨범 <시인의 마을>로 가요계에 첫 발을 디디며 포크가수로서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그러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그는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노래들을 부르며 음악인생의 변곡점을 지난다. <아, 대한민국...> 등의 앨범을 선보이며 한국 사회의 모순과 산업 문명에서 인간 소외에 대한 성찰을 보여왔다.

2004년에는 <노독일처>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고,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전교조 지지 순회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붓글 작품으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대중음악계의 음유시인'이자 실천적 예술가로 불리는 그는 '떠나가는 배',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 '북한강에서' 등의 노래로 사랑받았으며, 아내 박은옥은 정태춘의 노래들을 탁월하게 소화한 가수다. 30일에는 정태춘-박은옥의 7년만의 새 앨범 <사람들 2019>가 온라인 음원 사이트와 오프라인 음반 판매점에서 동시에 공개된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그와 나눈 인터뷰를 전한다.

정태춘의 담담한 자기반성
 

 가수 정태춘

가수 정태춘의 인터뷰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됐다. ⓒ 이정민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소회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질문에 정태춘은 자신의 붓글처럼 담담한 대답을 꺼내놓았다. 

"40주년을 맞은 특별한 소회는 없다. 정말 나이 많이 먹었구나, 이젠 정리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정리하면서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콘서트표가 쉽게 매진되는 상황, 언론의 관심, 이런 것들을 보며 내가 너무 과한 환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 

정태춘은 이러한 환대가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며 "특히 세상과 불화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더 이상은 반복해서 말하지 않으려 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작품을 통해 산업문명의 윤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반성 중이기도 했다. "시장이 야만적이지 않으냐, 파렴치하지 않으냐하며 기준을 들이대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의 삶을 그렇게 엄격하게 통제하며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며 "싸우려면 엄격하게 내 삶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싸울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며 마음 속의 갈등을 드러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문명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이라며 "충분히 하기도 했고,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공감도 얻지 못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늙은 사람의 투정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때
 

 가수 정태춘

직접 쓴 붓글 작품 앞에 선 정태춘. ⓒ 이정민

 
한국 포크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그에게 긴 세월 노래해오며 가장 뜨거웠던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질문에 그는 "1990년대 초반"이라며 "1980년 이후에 우리 사회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에 나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노래를 했다. 모순이 누적될 대로 누적돼서 스스로 폭발하려는 기운 속, 그런 시대를 내가 지나온 건 행운"이라고 답했다. 이어 "지리멸렬하게 모순이 쭉 이어지는 그런 시대를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것보다 역동적인 시대를 산 게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사적 정의로 치열하게 살 수도 있지만 공적 이상과 가치를 가지고 사람들과 연대해서 실천하고 움직인다는 건 인간의 여러 매력 중에서 아주 특별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은 군사독재시절, 광주항쟁 등 시민들의 저항이 있던 때를 거치며 중요한 변곡점을 맞았다. 그 뜨거웠던 시절에 노래하며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모든 개인들이 결국 사회적 삶을 사는 건데, 자기 눈앞의 환경뿐 아니라 역사나 사회전체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무엇인가 문제의식들을 뽑아내고 그것들에 관한 해결책을 공유하고, 저항하고 싸울 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나온다. 자기 헌신도 있고, 튼튼한 연대가 형성되고 집단의식도 생기고 그 속에서 힘차게 나아갔다. 그런 기억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갖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역사의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세대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그 시절이 힘들고 어둡고 우울한 기억이었을 거라 생각한 나는 그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태춘은 소용돌이처럼 격정적인 역사를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불렀고, 저항하고 벽을 깨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연대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의 화양연화는 다름 아닌 저항의 날들인 듯했다.

"두 번째 변곡점... 조용히 소진되고 싶지만"
 

 가수 정태춘

가수 정태춘 ⓒ 이정민


대화 후반,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에 대한 좀 더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빨리 빠져야 하는데 여기까지 왔다는 게 불편하다"며 "어떤 사람이 가진 상상력을 이렇게 많이 이야기한 사람도 드물만큼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세상과의 관계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소진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의 초기 노래는 사적인 일기였는데, 어떤 변곡점에서 내 노래가 바뀌었다. 그렇게 세상과의 관계가 30년 있었다. 이제 거기서 또 바뀌는 삶을 맞이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다. 내가 더 이상 무엇도 생산하지 않는 변곡점을 지나야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수다쟁이라서(웃음)."

음악은 정태춘에게 어떤 것일까. 이 물음에 그는 "음악이 나에게 온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며 "그 음악을 통해서 난 내 삶을 구현했다"고 답했다. 이어 "노래로 툭툭 던지는 것들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그게 나한테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며 "노래는 계속 하겠지만 노래를 만드는 일은 이제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음악이 싫어서 그것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고 밝혔다. 노래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만약 계속 창작을 하게 된다면 노래를 만드는 대신 붓글 등 가능한 쉬운 방법으로 자기 안의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다.   
 

 가수 정태춘

항상 자신의 이름이 먼저 불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정태춘은 아내의 이름을 앞에 놓고 붓글을 쓰기도 했다. ⓒ 이정민

     
끝으로 오랜 시간 함께한 아내 박은옥에게 한마디를 해 달라고 부탁하자 다음처럼 말했다.

"박은옥씨는 특별한 표현력을 가진 좋은 가창자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맞는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건 정태춘이라서 받을 수 있는 노래다' 하는 걸 못 만들어줘서 그걸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붓글 작품에도 담겨 있었다. '박은옥 정태춘 40'이라고 쓴 붓글 앞에서 그는 "아내의 이름을 먼저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은옥씨가 보고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툭 던지듯 말하더라"는 그의 덧붙인 말에서는 남편을 향한 박은옥의 마음도 느껴졌다.
 

 가수 정태춘

정태춘은 이날 마침 인터뷰 중 전시를 찾은 개그맨 전유성과 반갑게 인사했다. ⓒ 이정민

    

 가수 정태춘

가수 정태춘 ⓒ 이정민

정태춘 박은옥 인터뷰 붓글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