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수진 감독에 대해 두 가지 편견이 있었다. 하나는 사진을 보지 않고 이름만으로 여성 감독일 거라 생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만 보고 상당히 세고 거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둘 다 틀렸다. 12일 늦은 오후 영화 <우상>의 인터뷰차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수진 감독은 약간 지친 기색이었지만 단정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작품으로 먼저 뵀는데, 첫인상이 부드러우신 것 같아요"라고 말을 건네자 이수진 감독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라면서 웃었다.

이수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한공주>와 <우상> 속에 나오는 군상들은 모두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의 악한 민낯을 보여준다. 이수진 감독은 이들의 민낯을 들추면서 카메라에 끝까지 잡아낸다. 러닝타임이 144분에 달하는 <우상>은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테이크를 많이 가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더 좋은 장면이 나오게 하기 위함인가?
"원하는 컷이 있어 이를 찾기 위해 테이크를 많이 가는 것 같다. 영화는 한 명만 잘해서 되는 작업이 아니다. 중심에는 배우가 있지만 기술 스태프도 있고 모든 합이 잘 맞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상의 컷을 찾기 위해 테이크를 간다. 물론 '어? 괜찮은데? 그런데 한 번 더 갈까?'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소소한 것이기 때문에 말 없이 '한 번 더 갑시다' 하고 (촬영을) 들어간다."

-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오케이'를 하면 감독의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그 장면 그대로인가?
"그런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시간상 다음 컷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되도록 '오케이'를 잘 부르지 않는다. '오케이'라는 말이 감독에게는 소중하기도 하고 무서운 말이기도 하고 또 따지고 보면 '오케이'라는 게 없기도 하다. 정말 영화가 완성이 됐을 때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될 때가 '오케이컷'이지 촬영하면서 '오케이'라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 완벽주의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웃음) 그런 마음이 있어서다. 시간을 돌릴 수 없지 않나. 오늘 이후에는 이 장면을 찍지 못하니까 집중하고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 하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

영화 '우상' 스틸 사진 ⓒ CGV아트하우스

 
"영화 <우상>, 장르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 영화 <한공주> 당시에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실제 사건을 재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그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나?
"당시에는 <한공주>가 재연 영화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한공주> 때 약간 실패를 한 것이 영화나 포스터, 전단지에도 실화라는 말은 하나도 없고 실제로 실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되면, 나를 포함해 지금 이 시대에 영화를 본 사람들이 면죄부를 받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야기로만 치부가 되잖나. 앞으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보여야 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면 과거의 이야기로만 보이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화 모티프라는 게) 오픈이 됐다.

<우상>도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서 시작은 했지만 되도록 장르 영화로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르 영화로서 우선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에 (현실과의) 접점이 생긴다면 생각해보면 좋겠지만 내가 먼저 포장을 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면 영화를 볼 때 부담감을 느낄 것 같다. 어떤 소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건 영화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이번 영화의 원칙은 '장르물로서 봐달라'는 것인가?
"원칙까진 아닌데 장르물로서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영화가 끝난 다음에 관객들끼리 이 영화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 영화를 먼저 본 기자나 평론가들 역시 영화에 대해 각자 다른 해석을 갖고 있더라.
"나는 그게 좋은 것 같다.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만큼 재미 없는 게 없지 않나. 두 명이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모든 해석이 다 맞는다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의 해석이 옳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 장르물을 강조한 만큼 러닝타임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고민을 하셨나?
"러닝타임은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나왔다. 시나리오를 보면 분량이 나오니까 140분에서 150분 사이의 영화가 되겠다 싶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나름대로 분명 긴장감이 있고 사람들이 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요소들이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영화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10분에 한 번씩은 사람들이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나 요소들이 영화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분들이 선입견 없이 편하게 영화를 보면 나름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관객분들의 해석이 옳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 이정민

  
- 한석규 배우가 처음 캐스팅이 되고 나서도 이 영화가 과연 만들어질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웃음) <한공주>로 성공을 거두셨지 않나. 물론 성공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대중적인 상업영화가 아니라 <우상>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한공주>를 성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은 기회가 주어진 건 맞다. <한공주>를 많은 관객 분들이 봐주셨으니까. 그런데 다음 작품을 할 때는 상업 영화의 틀 속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상업영화를 하게 됐다."

- 그러니까 <우상>이 상업영화이지만 대중적인 영화의 모습은 아니다.
"약간 차별성이 있다. 우상이라는 영화가 그냥 한 인물에 이입해서 쭉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보통 한 인물에 이입해서 쭉 따라가는 게 편하게 영화를 보는 방식이라면, 이 영화는 세 인물이 나오는데 이입보다는 떨어져서 전체를 바라보며 영화를 볼 필요성도 분명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 <한공주>도 그렇고 <우상>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들이 시나리오를 쓰는 계기가 되는 걸 보면 신문 읽기를 자주 하시는 것 같다.
"일부러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신문을 본다거나 하진 않는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40대 남성이 뉴스를 보는 그 정도의 사람들처럼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본다. 그런데 그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지점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치게 만들기도 하고 사고하게 만든다.

따로 스크랩하거나 그러진 않는데 일기 비슷하게 글은 쓴다. 거의 뭐 난장판이다. (웃음) 욕을 쓸 때도 있고 '영화에서도 안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 '내가 시나리오를 그만 써야지, 시나리오보다 더한 현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데 어떤 시나리오가 이걸 이겨낼 수 있겠어?' 같은 잡다한 말을 쓴다."

"세 번째 작업도 천우희와?..."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우상>으로 베를린영화제에 다녀오셨는데 어떠셨나?
"좋았다. <한공주> 때 많은 해외 영화제에 다녔는데 거의 혼자 다녔다. 처음이다 보니 오라는 데는 거의 다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만이 아니라 배우들도 같이 가고 스태프들도 같이 갔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첫 상영 때 천우희 배우, 설경구 선배랑 영화를 같이 보고 밤에 같이 맥주 한잔 했던 게 참 좋았던 것 같다."

- 천우희 배우는 <한공주> 때 다른 영화제에 같이 안 갔나?
"<한공주>와 전혀 상관없이 마카오 영화제를 같이 시사하러 갔다. 아무래도 영화도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나 혼자 가게 됐다."

- <우상> 시나리오를 처음에는 천우희 배우에게 안 주려고 했다던데?
"안 주려고 한 게 아니다. 기성 배우 중에 내게 1순위가 우희다. 한 번 작업을 했고 따지고 보면 내가 아는 배우가 거의 없는데 그 중에서도 아는 배우가 천우희 배우다. <우상>이 중반까지는 련화(천우희 분)를 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연출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련화를 꽁꽁 숨겨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기성 배우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홍보도 해야 하고 포스터에도 나와야 하고 갖은 활동을 해야 하잖나. 처음에는 그런 걸 안 해도 되는 신인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있었다.

그러다가 '과연 천우희가 아니고서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시나리오를 조금 뒤늦게 줬다. 그러다가 천우희에게 욕먹었다. (웃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해주니 또 이해하더라. 결과적으로 천우희였기에 련화라는 캐릭터가 힘있게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고맙다."

- <한공주>와 <우상> 사이 천우희 배우에게 달라진 점이 있었나?
"많이 달라졌다. 더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배우로서 현장에 있을 때도 그렇고 영화 외적으로도 그랬다. <한공주> 때는 제한된 시간 안에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희라는 배우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면 <우상>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좋다."

- 세 번째 작업을 같이 한다면? (웃음)
"아휴, 뭐 시나리오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들이다."

- 설경구 배우와 한석규 배우와 작업은 처음이었는데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설 선배님의 가장 큰 장점은 기교나 기술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가식적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 연기를 할 때 너무 힘들면 기교를 부릴 수도 있는데 모든 테이크를 진은 빠질 대로 빠지고도 진심으로 모두 한다.

한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제일 큰 형님이다 보니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많이 다독여주고 항상 크게 바라본다. 시간이 초과됐을 때는 조용히 내게 와서 '감독님, 시간 얼마 없어. 오늘 이거 다 찍어야 한다며'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러면 '알았어요. 선배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고 '시간이 없다니까' 이러고 가신다. (웃음)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영화의 이야기를 좋아해주고 지지해준 든든한 지원군들이다."

"사람이 보이는 영화였으면, 단지 소비되지 않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한공주>도 <우상>도 끝까지 가면 무엇이 나올까를 고민하는 작품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두 작품은 예산의 규모나 서사나 상당히 다르지만 어떤 스토리에 매혹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인위적으로 끝까지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개연성이 없다면 그렇게 향해 가지 않을 것 같다. 충분히 납득이 되고 관객에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개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작은 것이지만 중식의 머리가 왜 노랗냐고 물어본다면 멋부림에서가 아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똑같이 노란 머리를 한) 구남(중식의 아들)의 모습에서 중식과의 관계가 바로 연상되지 않나. 그런 개연성이 흥미롭고 재밌다. 지엽적인 부분이지만 말이다. 나 스스로 납득이 돼야지 끝까지 가는 것 같다."

- '인간성의 면에서 끝까지 몰고 가 보고 싶은 게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악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나.
"명회(한석규 분) 같은 경우 막연하게 악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의 인물들이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실의 인물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마음 속에 사실 선도 있고 악도 있는데 우리가 악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잘못된 선택을 하면 뒤바뀌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고 생각했다. 명회 같은 경우에는 선으로 시작해서 악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 사람 안에 선이 없느냐? 내면에는 양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죄책감을 갖지만 다시 선으로 뒤바뀌느냐? 그렇지 않다. 그 과정을 거쳐 극한으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앞으로 작품을 해나가면서 탐구해나가고 싶은 화두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사람이 보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단지 소비되지 않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내게는 영화가 조금 특별한 것 같다. 단지 직업이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직업 그 이상의 무엇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중에 없어지고도 영화라는 건 항상 남지 않나.

또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영화를 통해) 영향을 받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하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한 편 한 편 찍는 게 소중하고 신중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할진 모르겠다. 만약 다시 영화를 하게 된다면 <우상>의 결과를 보고 복기를 해보고 다른 지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로 인해 나도 생각하고 보는 사람도 생각하면 좋은 게 아닐까. 사유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 예산이 확 늘어난 영화를 찍으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거나 그런 건 있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영화를 만드는 자세가 달라지진 않았다. 만약 달라졌다면 <한공주> 때보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 30대하고는 체력이 좀 다르다는 걸 느끼긴 한다. (웃음) 영화를 대하는 건 여전히 똑같다."
 

'우상'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영화를 만드는 자세가 달라지진 않았다. 영화를 대하는 건 여전히 똑같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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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우상 이수진_감독 천우희_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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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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