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 말고 <사바하>만 검색해서 계속 본다. 이런 적 처음이다.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계속 찾아보니까 감독님이 '지분 있느냐' 물으시더라."

배우 박정민은 지금 <사바하>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라서 애정이 넘친다기 보단, 힘 있고 재미있는 <사바하>란 이야기 자체에 순수한 팬심을 갖고 있었다. 내 연기가 어땠고 사람들이 내 연기를 어떻게 봤을까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사바하>를 어떻게 봤을까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고백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사바하>의 어떤 점이 그를 이토록 매료시켰을까.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에서 미스터리한 정비공 정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을 개봉 당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박정민이 <사바하>에 반한 이유
 

박정민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 박정민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CJ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볼 때 나한이고 뭐고 안보고 이야기만 봤다"며 그만큼 재밌었다고 털어놓았다. 완전히 몰입해서 추리소설을 읽듯 빠져든 그는 시나리오를 덮으며 "안 하면 백프로 후회하겠네" 싶었고 그렇게 나한 역을 맡았다.

그가 이 대본에 그토록 끌린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박정민은 두 가지를 꼽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이야기의 새로움. "단서를 싹 흩뿌려 놓고 뒤에 가서 싹 모은 다음 인물의 감정을 살짝 보여주고, 그러고 메시지를 툭 던져주고 영화가 끝나는데 그 방식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또 "이야기가 정말 새로웠다"며 "감독님이 다 만드신 이야기인데도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저는 이 영화가 또 좋은 게, 감독님이 어디에 무엇을 숨겨놓았는지 모르는데 조금만 찾아보면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다는 거다. 숫자 6의 의미라든지 까마귀, 동물들이 상징하는 것이라든지 그런 흥미로운 수수께끼들이 너무 많다."

박정민은 자신이 맡은 나한에 대해선 '나약한 아이'라고 표현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나쁜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고 자기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속이 너무 시끄러운 아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해주는 한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한이 "가여웠다"며 연민의 마음도 드러냈다.

제법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박정민에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처음 경험하게 해준 것이 많아서였다. '박정민' 대신 '사바하'를 검색하게 한 것도 처음이지만, 연출적 마인드로 연기에 임하게 한 것도 처음이다. 

"이전 작품까지는 연출적인 마인드로 인물을 대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바하>는 이 신의 역할이 뭔지, 그 신에서 나한이 정확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 연출자적인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편집 리듬, 카메라 앵글 등 감독님과 연출적인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다." 

"이정재 선배님 너무 좋아" 

 

박정민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 박정민ⓒ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 박정민은 박목사 역의 배우 이정재와 함께 주인공이지만, 닿는 신이 적어 두 사람이 주고받은 호흡은 많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그는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선배님과 오래 호흡할 수 있는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며 "짧게 짧게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원래도 선배님을 좋아했지만 함께 영화를 하며 이정재 선배님에게 반했다. 선배님과 같이 있을 때 말 안하고 있어도 편하다."

이정재의 여유롭고 유쾌한 모습을 사랑하는 그에게,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훗날 박정민이 '선배'가 됐을 땐 어떨지 물었다. 후배들로부터 어떤 선배로 이야기되어지길 바라는지 묻자 박정민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꽤 오래 고민했다.  

"제가 존경하고 꿈꿔왔던 선배님들의 필모그래피를 종종 찾아본다. 이 선배님들은 내 나이 때 무엇을 하셨나 찾아보는 그런 버릇이 있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참 묵묵히 한국 영화를 위해서 걸어오셨구나, 정말 영화만을 위해서 걸어오셨구나, 길을 닦아놓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제가 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면, 그때 후배분들이 저에 대해 하는 판단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묵묵히 영화 열심히 한 선배."

염세는 나의 원동력

 

박정민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 박정민ⓒ CJ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의 지난 영화들을 보면 자신을 혹사시킨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고난도의 클래식 곡들을 연습해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한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런 방식이 괴롭지 않은지 묻자 그는 "괴롭다. 예전에는 머리 싸매고 제가 저를 공격하면서 '왜 그거 밖에 못해' 하던 시절이 길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바하>가 고마운 게, 저를 괴롭히는 버릇은 여전히 있지만 지금은 괴로움 자체가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 현장에 가서 배우라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원이라고 생각하니까 소통하면서 질문하면서 하게 되더라. 그 과정이 즐거웠다. 예전에는 혼자서 뭔가를 해결하려고 끙끙댔다면 이젠 안 그렇다. <사바하>가 많은 면에서 내게 긍정적인 도움을 줬다."

박정민은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며,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좀 더 이야기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크한 사람이라서 샤방샤방하진 않지만 예전보다는 더 밝아졌고 기운이 생겼다. 염세적이고 냉소적이었는데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그런데 염세, 그게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족을 못하고 계속 뭔가 불만이 있고 그래서 그런 걸 해소하려면 제가 움직여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니까. 대신에 자기만족이 없으니까 그게 옛날엔 괴로웠다면 요즘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진심 어린 바람대로 <사바하>는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상처 없는 순항 중이다.

  

박정민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 박정민ⓒ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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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했던 큰 인기... '김주영쌤' 김서형의 걱정과 불안

[창간 19주년 기념 인터뷰] < SKY 캐슬 > 김주영 역의 배우 김서형

비(非)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의 신기록을 쓴 JTBC < SKY캐슬 >. 드라마의 높은 인기는 시청률로만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부 감수하시겠습니까?"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인기의 척도'라 불리는 패러디가 쏟아졌다.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부터 예능인 유재석·서장훈·안영미, 가수 바다 등 인기 스타들도 그 열풍에 가세했다. 이들은 모두 한 올 흐트러짐 없는 올백 머리에 고압적인 듯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의 김주영 선생을 흉내냈다. < SKY캐슬 >의 신드롬급 인기 중심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생 캐릭터', '제2의 전성기', '신드롬급 인기'... 지금 김서형의 높은 주가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지난 9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형은, 불안함과 걱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인기를 기쁘게 누리기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 같았다. 마치 김주영이 극 중 예서(김혜윤 분)에게 주입시키듯 말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 김서형의 이런 의심은 상처에서 비롯됐다. 10년 전, 긴 무명 끝에 만난 <아내의 유혹>(2008) 신애리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너무 센' 캐릭터를 '너무 잘' 해낸 탓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았던 기억. 그래서 김서형은 신애리 못잖게 강렬하고 센 캐릭터 '김주영'으로 받는 10년 만의 관심을 마냥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누릴 수 없었다. 지난 1일 방송된 <연예가중계> 인터뷰 중에는 눈물까지 쏟았다. "아,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다음 작품, 이후 행보 묻는 말에 답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지더라. 지금은 <아내의 유혹> 때처럼 어리지도 않고, 그때만큼 (바로 뭔가 될 거라는) 기대도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순간 덜컥 겁이 나더라고. 방송이 나간 뒤 너무 창피했다. 이런 시기를 나만 겪는 것도 아닌데, 다른 배우들은 금방 털어내고 잘만 이겨내는데 마치 나만 힘들었던 것처럼 징징거린 것 같아서. 그래서 <한밤> 녹화 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갔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인터뷰 당시) 아직 방송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또 너무 가볍고 방방 뜬 모습으로 나가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궁금해 죽겠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도 있다. 사람들이 '김주영'이 아니라 '김서형'에 대해 이야기하니 더 멈칫하게 된다. 원래 난 거침없는 사람인데 갑자기 더 조심해야 할 것 같고... 김주영과 김서형은 다른 사람이다. 이 갭을 대중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줄까? 김주영에 대한 기대치를 나라는 사람이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 이상의 뭘 보여줄 수 있을까? 다음 작품이 정말 중요할 텐데, 섣불리 고르지 못하겠다." 김주영, 신애리 이후 10년의 완결판 "이야기 속에서 악역으로 규정되더라도, 나는 그 인물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내가 맡은 캐릭터들의 행동을 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김서형이라는 사람은 평범한 한 개인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캐릭터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려 할 때마다 늘 내 한계를 시험받는 느낌이다. 굉장한 스트레스지만, 이게 또 굉장한 희열이기도 하지. 한계에 부딪히는 고통도 즐긴다는 마음으로 연기한다. 하지만 김주영은 내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외로움의 끝. 내가 맡았던 역할 중 제일 고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주영은 언뜻 보면 차분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가슴 속엔 누구보다 끓는 분노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냥 침착한 게 아니라, 감정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 다음, 표출하는 게 아니라 억눌러야 했던 거다. 이게 너무 힘들었다. 감정 소비, 에너지 소비가 컸다." "김주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지, 사실 연기하는 건 쉬웠다. 지난 10년 동안 만난 캐릭터들의 감정들이 여기 많이 포함돼 있었거든. 예를 들면 <샐러리맨 초한지> 때 이덕화 선생님을 죽이고 웃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서진(염정아 분)이 곽미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 그 장면을 떠올리며 연기했다.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도 모가비의 감정을 이해하기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는데, 그때 치열했던 고민이 도움이 되더라." "어떤 사람들은 내가 늘 비슷한 캐릭터를 맡는다고 이야기한다. 김서형이라는 사람이 세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른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잘난 척이 아니라, 배우로서 내 직업의식이다.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 비슷하다면 외형이라도 달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특히 스타일링을 정말 열심히 했다. 이번에 올백 머리를 했던 것도, '감수하시겠습니까' 이 대사를 계속 연습하다 보니 왠지 사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쪽을 지진 못하더라도 고전적인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빈틈도 없어 보이는 캐릭터 성격과도 잘 맞았고. 너무 끌어올려 묶어서 두통에 견인성 탈모까지 왔지만, 내가 생각한 김주영을 표현하기 위해 참았다. 아무리 바빠도 대본 펼쳐두고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하며 의상 하나하나를 골랐다. 이 모든 건 < SKY캐슬 >이라서, 김주영이라서가 아니었다. 난 매번 이렇게 해왔다. 시청률이 잘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없이. 이런 나를 그저 까탈스럽고 예민하다고,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생각하는 매니저들도 있었다. 좀 쉽게 쉽게 하라고, 좀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보여줄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10년 동안 매번 지지 않고 싸웠고, 덕분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지금은 좋은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만났다. 이런 내 고집을 잘 이해해준다. 지금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더 일찍 만났다면 더 빨리 성공했을 텐데. (웃음)" 두 번 거절한 이유? "이럴 줄 알았거든!" "내가 이럴 줄 알았거든! 하하하. 김주영이 어떤 캐릭터로 진화할지,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느낌이 왔다. 그래서 소속사 대표에게 '난 분명히 아플 거야', '너네한테 짜증 엄청 낼 수도 있어' 경고까지 했다. 함께 출연하는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번에는 선택을 더 망설이게 한 이유였다.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또 비슷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 좋은 배우들 속에서 내 색깔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미 많이 했던 역할이니 설렁설렁해야지 하는 성격도 못 되고, 보나마나 난 또 세상 스트레스 혼자 다 받는 것처럼 힘들게 연기할 테니 끙끙 앓을 게 뻔했다. 내가 그런 내 꼴을 보기 싫었다. 무엇보다 <이리와 안아줘>를 하면서 감정과 체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소속사 대표가 조현탁 감독님 한 번 믿어 보라더라. 유현미 작가님과는 <그린로즈>에서 같이 일해 본 적이 있었고, 이후 작품들도 챙겨 봤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다.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건 망설인 이유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조건이기도 했고. 사실 감독님에 대해 이번 작품 전까진 잘 몰랐다. 대표가 믿어 보라 할 때도 반신반의였는데, 첫 방송 보고 바로 '전적으로 믿어 봐?' 싶더라. 특히 (김)정란 언니 죽는 장면은 정말...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당연히 잘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영화처럼 멋있게 담아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첫 방송 시청률은 1%대였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이 멋진 배우들과 훌륭한 스태프들 사이에서 한 번 제대로 불태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작품을 할 때마다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배운다. 정아 언니는 그 많은 분량을 감당하면서도 티도 안 내고 다 견뎌냈다. (윤)세아도, (오)나라도, (이)태란이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다들 티도 안 내고 버텨내더라. 나는 촬영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촬영이 딜레이된 적도 있었는데... 다들 담백하게 견뎌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유난스레 티를 내나, 왜 눈물까지 쏟았나, 싶어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했다." "모르겠다.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해도 이렇게 힘들어 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감독님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사실 중반부에 시청자가 내 연기를 지루해 하면 어쩌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김주영은 접촉하는 사람도 제한적인 데다, 대화 구도나 패턴이 늘 비슷하니까. 그때마다 감독님이 '이게 맞다'고 확신을 줬다. 그게 김주영이라고. 13회 엔딩에서 김주영이 자기 집에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들으며 한서진을 기다리는 장면이 있는데, 방송을 보다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저렇게 연기했나 싶더라. 김서형은 없이 김주영만 있더라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톱스타도 아닌 날 믿어준 팬들, 실망시키지 않겠다 "김주영은 신애리 이후 10년 연기 생활의 완결판 같은 느낌이다. 걸크러시도 좋고 카리스마도 좋지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젠 새로운 캐릭터가 주어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사실 서운한 마음도 있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변신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변할 수가 없잖나.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면 더 많은 기회가 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미 했던 것, 이미 보여준 것에 대한 제안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내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할 순 없고, 피할 수 없으면 해내야 한다. 또 비슷한 역할만 들어온다면, 나만의 색깔을 더하고 이전 캐릭터들과 변주를 주면서 또 열심히 해야지." "맞다. 영화는 몰라도, 드라마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도 많다. 여성 중심 드라마의 장르와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제한적인 게 문제지, 단지 숫자 문제가 아니다. 난 배우는 성별이 중요치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만들어진 작품에 캐스팅돼 연기하는 건데, 남자 배우, 여자 배우가 달라진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변해야 할 건 시장이고, 만드는 사람들이다.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지금은 고릿적 시절이 아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 SKY캐슬 >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미약했다. 하지만 나조차도 몰랐던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발견해 캐스팅해준 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황태후, 정치인, 변호사, 그리고 김주영까지, 강단 있고 대단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나도 같이 성장했다. 본의 아니게 세고 대단한 역할들을 맡아오면서 나도 같이 세진 것 같달까? (웃음) 비슷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걸크러시, 너무 좋다. 이 분야에선 김혜수 선배님 다음에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하지만 배우니까, 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다. 나도 내가 뭘 더 잘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난 자뻑이 좀 있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는 건 알고, 이 매력을 최대한 잘 포장해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매번 열심히 했고, 나만의 영특함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믿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이런 '자뻑'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거다. 내게는 톱배우도 아닌 나를 믿고 응원해준 골수팬들이 있다. 요즘 바빠진 내 스케줄을 나보다 더 기뻐하고 있다. 당장 김주영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모르겠다'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변치 않고."

끝판왕 '염라' 넘어 목사로, 이정재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인터뷰] <사바하>에 대한 이정재의 정의, "종교 영화 아닌 스릴러"

약간 껄렁한 목사. 여러모로 혼란을 안겨주는 영화 <사바하>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처음으로 혼란을 주는 요소가 있다면 '이정재'일 것이다. 이정재가 연기한 '박 목사' 말이다. 배역 이름을 보면 엄연한 목사인데 뭔가 좀 이상하다. 목사를 연기한 것도 그렇지만, 껄렁한 목사를 연기한 것도 다 이정재의 '새 도전'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재를 만나 그의 도전의식이 묻어난 영화 <사바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상적인 캐릭터 맡고 싶었다" 박 목사는 앞서 말했듯 좀 껄렁한 느낌의 인물이기에 이정재가 찾던 무겁지 않은 일상스러운 매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이정재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이 장르를 보고는 '어? 나한테 없었던 영화인데?' 싶었다"며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딱이겠구나" 싶었다. 박 목사는 마치 이야기 바깥에서 이야기를 풀어주는 화자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무겁게 가면 시종일관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 캐릭터를 가볍게 시작하자고 감독님이 이야기하셨고, 시나리오도 그렇게 써 놓으셨다"며 "감독님이 그린 박 목사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특히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선을 잡아가는 데 많이 신경 썼다"고 말했다. 장재현 감독이 직접 대본 전체 연기해 박목사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묻는 말에 이정재는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감독님이 대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직접 연기했고 그걸 이정재가 휴대폰으로 찍어서 계속 봤다는 것. 각본을 쓴 장본인이 장 감독이기에 <사바하>라는 세계를 가장 잘 알고, 박목사의 특질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장 감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직접 연기로써 보여준 것이다. "<사바하>는 '잘 만든 스리러물'" 이정재는 <사바하>의 대본을 읽었을 때 '범죄 수사물' 같은 느낌이 강했고, 독창적인 시나리오라고 느꼈다고 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싶은 미스터리가 있다보니 스릴러 장르물 치고는 아주 신선하고 독특하게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스릴러의 몰입감 그 자체로 충분하지만 굳이 주제라는 걸 찾는다면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이 이야기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 같다"며 "인간이 인간을 믿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나한(박정민)이 자기의 손을 잡아준 자를 믿으면서 이 사건이 시작되는 거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불교도 나오고 기독교도 나오지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드라마 복귀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이정재는 "그럼요"라고 망설임 없이 긍정하며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했다. 2시간을 훨씬 넘어가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요즘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본다는 영화광 이정재에게 그럼 드라마도 즐겨보느냐고 묻자 그는 역시 망설임 없이 긍정했다. "최근에는 <스카이캐슬>을 재미있게 봤다"며 잠깐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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