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박해진 ⓒ 이희훈

 
시작은 2010년이었다. 데뷔 5년 차였던 당시 박해진은 서울 강남의 아동복지센터와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물적, 심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 뒤늦게 알려진 그의 선행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구룡마을 연탄배달, 서울 용산 지역 복지센터인 혜심원 지원, 부산 수해 피해자 성금 지원, 중국 상해복지센터 지원 등 그는 다양한 방면에서 국적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마음을 쏟아왔다.

몇몇 언론을 통해 꾸준히 선행하는 이유를 밝혔던 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만난 그에게 자세히 물어봤다. 

한 해도 쉬지 않고,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닌 여러 곳과 인연을 이어오는 그의 행동은 작품 활동과는 별개로 분명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지난 7년간 그가 기부한 금액만 17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남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처음엔 저도 그걸 알리는 게 꺼려지긴 했다. 굳이 자랑하는 것 같잖나. 마음이 동해서 한 일일 뿐인데 '나 이런 일 했어요' 하는 게 낯부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한 일을 알림으로써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행
 

 박해진

박해진 ⓒ 이희훈

 
여러 활동 중 박해진은 "아무래도 강남의 한 아동복지센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배우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 선행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저와 비슷한 상처를 입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 더욱 마음이 갔다"고 분명한 이유를 밝혔다.

"어렸을 때 어떤 학대나 폭행을 당해 그에 대한 상처가 있는 친구들이다. 처음엔 한 번에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심리적으로 다친 친구들이 많아서 억지로 다가가려 하면 마음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주기적으로 다가갔고, 함께 영화도 보면서 거리를 좁히려 했다. 그들을 만나며 저 역시 어린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가 제게도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무서웠거든. 저도 몰랐는데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 어머니가 아파하는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더라. 그때 제 주변엔 절 감싸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기를 지난 뒤 (복지센터의) 그 친구들을 보는데 그 아픔을 누가 감쌀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지.

세월호 같은 큰 사건도 있었고, 명예소방관 활동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상처를 겪은 친구들을 만날 때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티 없이 맑게 웃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 제게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사회적인 사건 사고에도 당연히 관심 갖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겠지만 (이후로도) 우선적으로 이런 아픔이 있는 친구들에 대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상처를 고백하다
 

 박해진

박해진 ⓒ 이희훈

 
박해진이 언급한 트라우마는 다름 아닌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 초등학생 때 서류상 이혼한 부모님, 그 가정에서 박해진은 입에 담기 어려운 여러 일을 겪었다. 몇 가지 사연이 보도되긴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집에 사는 게 너무 이상한 나머지 친구에게 '넌 부모님과 같이 살아?'라고 물어본 건 이젠 유명한 일화다.  

"이미 이혼 상태였지만 저와 누나 때문에 부모님이 같이 살았던 거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지.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나중에 데리러 올게'라는 편지만 남기고 집을 나가셨다. 그때부터 이집 저집을 옮겨 다녔다. 외할머니, 친할머니 집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살게 됐다. 

항상 누군가가 돈을 받으러 찾아오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스스로는 남들에게 비행 청소년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우리 엄마를 욕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나름 되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 가졌던 생각 때문에 지금의 (선행)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리를 잡은 이후 어머니와 재회한 박해진은 현재 누나와 매형,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 누나 결혼식에도 아버지 대신 본인이 직접 손을 잡고 입장했을 정도로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지만,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후 그 몰래 아버지가 그의 소속사나 어머니를 불쑥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들 이름을 빌미로 타인에게 생활비를 빌리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로 인해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역시 소속사에 전화하거나 언론에 그 일을 흘리는 일도 이어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박해진이 입을 열었다. 

"천륜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하시는데 어머니가 (아버지로 인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제가 잘 알잖나. 아버지가 벌인 일을 어머니가 수습하는 일이 많았다. 누나의 월급도 아버지가 가져가곤 했고. 그때부터 아버지라는 글자를 마음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연예인이 되기 한참 전의 일이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취한 상태로 어머니 가게에 찾아온 적이 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돈을 해드린 적이 있는데 그게 제가 본 그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 없을 때 가게에 또 찾아오셔서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더라. 원망스러운 존재가 돼 버렸다. 어머니랑 누나는 약한 분들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전전긍긍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특별한 치유
 

 박해진

박해진 ⓒ 이희훈

 
이런 이유들로 박해진은 자신이 기부하고 마음을 주는 일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올 한 해 참 지치는 한해였다. 힘든 만큼 성과가 보이면 마음의 보상이라도 받는데 성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해였다"며 속마음을 내비치면서도 그는 봉사와 선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 초부터 명예소방관 활동을 시작한 것도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팬분들 소원을 들어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떤 팬이 아버지가 소방관이라며 소방관분들을 제가 만났으면 좋겠다고 글을 썼더라. 그래서 함께 식사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팬분의 오빠도 소방공무원을 준비 중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강하게 반대하셨고, 제가 중재를 해달라는 거였는데 직접 찾아뵈니 많이 우시더라. 결국 아들도 소방관이 됐다." 

이 정도면 주위의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을 그냥 못보고 지나가는 성격 같다. 박해진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다 도울 순 없겠지만 힘이 닿는 한 돕고 싶은 마음"이라며 "난 뭘 위해 살까 생각하다가 제가 돕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일종의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선행을 하면서) 스스로 힘을 얻는 부분이 크다. 배우 일이라는 게 작품을 하면 수개월 간 다른 인물에 빠지게 되잖나. 드라마가 끝나면 '시청자 여러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바로 다음 작품이 방영되는데 종종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심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허하다. 그럴 때마다 저와 인연이 된 친구들을 떠올리며 '아, 이 맛에 연기하고 있지!'하고 생각하지."
  

 박해진

박해진 ⓒ 이희훈

    
물론 그의 본업은 배우다. 그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앞서 살짝 언급한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한해였다"는 말은 사실 드라마 <사자> 등의 이슈에 대한 그만의 아쉬움을 암시한 것이기도 했다. 계약 만료시점까지 해당 드라마는 촬영을 끝내지 못했고, 박해진은 결국 하차를 택했다. 이후 <사자>는 관련 사안으로 법적 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라 박해진은 자세한 입장을 전하기엔 조심스러운 상황.

그래도 묻지 않을 순 없었다. 이에 그는 "열심히 준비한 작품을 결국 시청자들께 못 보여드리게 된 것에 누구보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책임지고 할 도리는 다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은 저 혼자만으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선행도 좋지만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는 게 우선"이라며 그는 "올해 얼굴을 많이 못 비쳤던 것 이상으로 내년엔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최근 중국에서 드라마타이즈 광고를 찍어 다시금 중국 활동 재개 역시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인터뷰①] "노란 팔찌 찬 채 청와대로..." 박해진의 의미 있는 행보http://omn.kr/1fdvs

박해진 선행 중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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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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