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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9일부터 오는 12월 7일까지 열리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는 국내 경쟁 독립영화제로 극, 실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형식, 길이에 상관 없이 다양한 독립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장이다.

동시에 연말에 열리다 보니 한 해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성격의 영화제가 되기도 한다. 올해 '최다 공모'로 기록을 세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총 116편의 작품이 상영된다(관련 기사 : 블랙리스트 여파 불구... 서울독립영화제 역대 최다 작품 몰려 http://omn.kr/1cl3a).

서울독립영화제의 상징과 같았던 조영각 전 집행위원장이 물러선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을 맡아온 김동현 집행위원장이 넘겨 받았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자신을 스스로 2세대 독립영화인이자 시네필이라 칭했다. 1997년부터 강릉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활동을 시작한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일을 시작해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7년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사퇴한 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 올랐다. 그는 서울독립영화제 최초의 여성 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역시 실무부터 시작해 찬찬히 올라온 독립영화인이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에 있는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김동현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 1년 넘게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소감과 함께 한국 독립영화의 미래를 묻고 들었다. 그는 독립영화의 다소 어두운 전망에 대해 말할 때는 웃지 않았으나 독립 영화 작품들에 대해 말할 때는 누구보다 밝게 미소지었다.

난 2세대 독립영화인... 다 연출하면 누가 작품을 트나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 지난해부터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1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서울독립영화제를 이끌어본 소감을 먼저 말해달라.
"생각보다 그 질문을 많이 안 해주신다. 외부에서는 내가 1년 동안 집행위원장직을 맡은 게 새로워보일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하던 일을 하는 거니 그런 질문을 하진 않으신다. 햇수로 보니 내가 12년 동안 서울독립영화제서 일을 하고 있더라.(웃음)

늘 하던 일이어도 자리가 달라지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특히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프로그래머 역할까지 겸한 점이 컸다. 영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어떤 작품을 트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

지난해는 (프로그래머 역할에) 주안점을 두고 긴장해서 진행했다면 올해는 1년이 지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진행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내가 실무적인 역할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도 해낼 수 있겠구나, 주변에서도 지지와 도움을 보내고 있구나 확인했다."

- 12년 동안 서울독립영화제에 있었다고 했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어떤 매력이 김동현 집행위원장으로 하여금 여기 계속 있게 만들었나.
"좋지 않은 구분일 수 있지만 세대별로 구분을 하자면 1980년대 시작한 독립영화 감독들을 소위 1세대, 1990년대 중반부터를 2세대 독립영화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그 2세대의 출발점에 있던 사람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공론장으로서의 영화, 문화로서의 영화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나도 당시에는 20대 젊은이였다. (웃음) 그 당시 독립영화를 보면서 시야를 확장하고 영화를 통해 관점을 배워나갔다. 내가 본 작품을 더 많은 관객들이 보길 원했다."

- 과거 1990년대 김동현 집행위원장을 사로잡은 독립영화를 말해달라.
"<낮은 목소리> 순회 상영했을 때도 기억나고 <파업전야>도 생각난다. 1990년대에는 서울단편영화제라는 게 있었다. 거기서 임순례 감독님도 배출했다. 아, 내가 이렇게 가능성 있는 영화를 볼 수 있구나, 상업적인 영화와는 다른 감각을 가져다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던 것 같다. 새로운 영화를 우리가 찾아서 본다는 행위가 좋았고 거기서 기획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발은 시네필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서로 만나 토론을 하다가 우리 지역에도 시네마테크를 만들자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시네마테크를 만드는 건 우리끼리만 영화를 본다는 게 아니라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한다는 것을 뜻했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 보통 영화에 빠지면 연출을 공부한다든지 연기를 배워 배우가 되지 않나.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물론 창작을 기본으로 하는 분들이 영화판에서도 숫적으로 가장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다 만들고 다 출연하면 그 작품은 누가 틀지? (웃음) 영화는 상영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매체일 수 있다. 영화를 찾아내고 상영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나의 경우 영화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이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고싶다는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다."

-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다. 요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상업 영화들이 소위 '기차 시간표'처럼 줄줄이 상영된다. 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음... 그냥 '이걸 어떡하나' 하지. (웃음) 참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다. 그래도 문제라고 인식하고 뭐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그 '기차 시간표'를 보면 내가 다윗이 된 기분이 든다. '계란을 던진다고 깨질까' 생각도 하는데 뭐라도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업, 정부, 관객, 그리고 영화인인 우리의 탓도 있다. 일방의 탓을 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풀릴 수는 있어도 슬기롭게 풀릴 수 없다. 내가 독립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다른 가능성을 보고 너무 좋아했듯 그런 관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화인들도 관객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관객들이 이제 똑같은 거 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런 관객 집단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몫인 것 같다."

- 서울독립영화제 차원에서 이러한 독립영화 시장을 개선하고 나아지게 할 아이디어가 있나.
"따지고 보면 예전에는 독립영화전용관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굉장히 활동적으로 독립영화 산업을 확장해나갔단 말이다. 분명 전체 독립영화 관객들은 예전보다 늘었다. 하지만 전체 파이가 확장되면 개별 작품이 만나는 관객들도 동반 상승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독립영화계 역시 약간의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있다. 좀 더 다른 영화를 용기 있게 보는 독립영화 관객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자유롭지가 않은 것이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들만하지 않은 영화도 용기 있게 틀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관객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지속하느냐다. 우리는 늘 단발적인 시도를 해서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개별 단위들이 협업한다면 나는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먼저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관객 분들도 새로운 영화를 보는 근육을 키우고 그 새로운 근육을 단련해 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1년이 좀 넘었으니 김동현 집행위원장의 색깔이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들어갔을 수 있겠다.
"아직까지 내 색깔을 뚜렷하게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서울독립영화제가 한 해를 결산하는 성격의 영화제이기 때문에 중요한 독립영화를 찾아서 발굴하고 틀어야 하는 기본적인 틀이 있다. 또 지난 10년의 기간은 소위 블랙리스트 기간이랑 완전히 겹치기 때문에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잘 버티면서 좋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기본에 충실했다면 지금부터는 독립영화가 보여온 성과를 외부에 어필하고 서울독립영화제 사이즈를 키우면서 방향을 확장해보이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 '여성' 집행위원장이니 다른 점도 있나.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집행위원장이 되고 나서 심사위원 등을 섭외할 때 여성의 비중이 훨씬 더 높아졌다. 물론 조영각 전 집행위원장이 있을 때도 철저하게 여성의 비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가 남성 대 여성이 6:4 정도라면 지금은 반반 정도다. 집행위원회만 해도 7명 중에 4명이 여성이니 절반이 넘는다. 의식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네트워크는 남성인 집행위원장이 가진 네트워크랑 다르다. 독립영화에 대해 고민을 할 때도 여성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런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결과가 도출된다.

한 번은 여성이 100% 심사를 한 섹션도 있다. 사실 예전에는 남성이 100%였기 때문에 여성 비율이 높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그렇게 되니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기존의 독립영화에서 좀 더 확장하는 시선을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진하게도 새 정부 들어 독립영화 예산 나아질 줄 알았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공덕동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 조영각 전 집행위원장이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소위 '독립영화인'으로서는 유일한 일인데, 그런 경우가 없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독립영화에 대한 목소리가 영화진흥위원회 내에서 높아지면 한국 영화에도 더 나은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발하게 활동해주셨으면 좋겠다."

- 이번에 독립영화에 대한 예산이 오히려 삭감됐지 않나. 집행위원장으로서 유감일 것 같은데, 해결방안을 어떻게 구하고 있나.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독립영화 예산은 복원되는 걸 넘어서 더 늘어나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독립영화판이 처참한 상황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예산에 대해 말할 때 절차나 사정이 있다는 말을 앞서서 하더라.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독립영화인들은 새정부가 들어섰을 때부터 당연히 독립영화에 대한 예산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낮춘 적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심사 과정에서 삭감됐다는데 문제 의식을 가졌고 입장도 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에도 문제 제기를 했다.

정상화되는 게 너무 당연한 건데... (결정권자들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사안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지난하긴 하겠지만 멈추지 않고 해야(싸워야) 결과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인사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블랙리스트 사안에 대해 정부가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에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허탈감과 분노다. 그런데 분노만 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이를 극복해서 활동을 잘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요구를 하고 있다. 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적폐청산이라는 게 단순히 기조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 더 목소리를 끊이지 않고 내야한다."

- 얼마 전에 한 영화제 뒤풀이 자리에서 한 남성 감독이 여성 감독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이런 일에 대비하는 대응 방침 등을 가지고 있나
"서울독립영화제는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하는 행사이고 성평등위원회도 있다. 아마 영화계 단체 중에서는 가장 먼저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우선 여성 집행위원장이 있고 대부분 여성 스태프들이다. 저희들끼리 토론도 많이 하고 있다. 긴장을 하고 잘못된 것을 가리지 않고 돌파해나가려는 태도는 다 가져가려고 한다. 저희 독립영화계가 아무래도 치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유지가 되다 보니 술자리가 인상적인 편이다. 거기서 좋은 이야기도 나오고 좋은 관계 형성도 되지만 그런 부분들이 가진 단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네트워킹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것 외에 일상적으로 만나서 네트워킹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영화제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많이 나눠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저희가 창작자 포럼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데 그런 자리에서도 감독들이랑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 끝나고 나서도 창작자들과 이야기 나눠야 할 주요한 의제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낮 시간에."

- 향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갖고 갈 목표가 있다면?
"내가 영화제 안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울독립영화제가 한 해 끝자락에 열리면서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우리를 보고 힘을 냈다고도 생각한다. 왜냐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늘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다음해 개봉을 하면서 관객들과 신나게 만나고 있고 한국 영화에 세대 교체도 일어나니 말이다.

나는 우리가 좀 더 판을 넓혀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더 많은 작품을 상영하고 싶다. 지금 많은 국제영화제들에서 독립영화가 중심 키워드가 돼있는데, 우리는 그들에 비해 예산 등에서 경쟁하는 게 힘들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좀 더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한국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영화인들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국 독립영화 진영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네트워킹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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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27살, 32살 연기한 이솜 "어렵거나 두렵진 않았다"

[인터뷰] 배우 이솜, JTBC <제3의 매력>의 영재가 되다

고요하게 웃는 이솜의 얼굴 속에서는 얼마 전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의 영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이솜은 비록 말로 하는 인터뷰였으나 말 같은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손짓 같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더 능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혼자서 배시시 웃거나 스스로 이상한 말을 했다고 생각할 때면 자신의 이마를 '탁' 때려 취재진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참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인터뷰 기사에는 그의 말을 최대한 잘 옮겨보기로 했다. 지난 20일 오후 배우 이솜을 만나 <제3의 매력> 속에서 20살, 27살, 32살의 '영재'를 차례대로 연기한 이솜에게 물었다. '캐릭터 붕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영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표민수 감독님 생각하면 버틸 수 있어" "유독 좋았던 촬영이었다. 스태프들, 배우들, 감독님도 좋았다. 영재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표민수 감독님이 너무 좋으시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현장에 일찍 가기도 한다. 사실 핸드폰 뒷면에 표민수 감독님 사인도 받았다." "늘 배우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주신다. 촬영이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주신다. 감독님 얼굴을 보면 현장에서 힘들어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잠을 못 자도 버틸 수 있었다." "감독님은 디렉션을 줄 때 '여기서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도 있단다' 말씀을 해주시고 연기하게 만들어주신다. 연기를 하고 감독님께 '어땠어요?' 물으면 '응? 좋다. 좋아. 좋아'라면서 (표민수 감독 흉내를 냄) 미소 지으신다. 한 번은 선인장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선인장은 줄기 안에 수분이 가득차 있는데 수분을 지키기 위해서 잎사귀를 가시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겉에서 봤을 때는 안에 눈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런 명언들이 많다. 현장에서 공부를 한 느낌이었다. 감독님 역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좋은 현장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영재... 초반에는 영재라는 캐릭터로, 중반부부터는 배우로, 끝날 무렵에는 이솜이라는 사람을 알게해준 캐릭터였다. <제3의 매력>을 하면서 현장에서 많은 걸 배우고, 힘듦을 겪고,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 촬영을 하면서, 현장에서 감독님과 강준이를 알아가면서 나 역시 공부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감독님이랑 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나를 알게 됐다." "좋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독특한 캐릭터, 안 해본 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내가 연기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드릴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연기한 거 말해도 되나? (웃음) <소공녀>. 그 작품이야말로 사람 사는 이야기지 않나 싶다. "캐릭터 붕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2년이라는 세월을 16회 안에 담는 게 어려운 것 같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도 했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이에 어떤 선택들이 있는데, 그 선택들을 잘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 "붕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를 하시는 분들도 못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님께서는 보통의 연애를 그렸고 사람은 때로는 찌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누구보다 영재의 선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나이지 않을까 싶다. 강해보여도 약한 모습도 있고 기쁨과 힘든 순간들을 왔다갔다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예쁘다." "자신을 찾아가면서 힘들었던 것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 것 같다. 영재의 성격으로는. 으흐흐. 우연히 준영이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7살에 클럽에서 온준영(서강준)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연기를 하면서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알아보지 싶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렇게 뭔가 '탁' 깨지듯 알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게는 아무 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고 그 사람만 보인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본에서 세 가지의 시점을 연기한다는 게 흥미로웠던 것 같다. 처음에 대본을 보고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표민수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웃음) 세 가지 시점이 분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그 나이대에 맞게 하려고 했고, 성격도 20살에는 선머슴 같은 느낌, 27살에는 직업적인 면에서 똑부러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32살은 내가 아직 돼본 적이 없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사람 이솜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어렵거나 두렵진 않았다. 기대가 되고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감정신에 대한 무서움은 없었다. 다만 영재의 상황을 시청자 분들이 이해해주실지, 공감해주실지 고민을 많이 했다. 20살과 27살은 캐릭터를 만들어서 연기해야 했다면 32살에는 상황이 흐르는대로 연기를 한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이솜에게) 우울증 걸리겠다고 하시기도 하는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연기하면서 울다가도 또 웃기도 한다. 이제는 캐릭터에 들어갔다 나왔다 분리가 잘 되는 것 같다." "준영이라는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알게 됐으니 준영이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놓치고 싶지 않다. (웃음) 준영이는 나중에 돌이켜 보면 이 사람이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줬고 사랑을 해줬구나 알게 되는 스타일이다." "똑같을 것 같다. 숫자만 다르지. 그래도 좀 더 여유로워진다고들 하는데. (웃음) 29살은 전혀 안 힘들었고 행복했다.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고 지금처럼 꾸준히 작품하면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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