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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수줍음 많은 관종'. 배우 최유하가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주목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탓에 이 '관종끼'는 오로지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만 발현됐다. 그래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노릇을 하느라 자기 안에 어떤 본능이 끓어 넘치는지도 몰랐던 최유하와, 영화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은 참 많이 닮았다.
 
영화 <이, 기적인 남자>는 아내 미현(최유하 분)과 눈독 들이고 있는 조교 지수(조은빛 분)까지 두 여자 다 내 사람이라 믿고 있던 이기적인 남자 재윤(박호산 분)이 아내에게도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일 서울 도렴동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 배우 최유하를 만났다. 극 중 미현은 사회적 통념과 시선에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10년 째 무뎌진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10년 동안 제멋대로 살아온 남편처럼, 나도 한 번 내 본능대로 살아보자 마음먹은 미현의 결심에서,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갈등은 시작된다.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아 통쾌하다, 꼭 하고 싶다'였어요. 전 미현이의 입장을 100% 이해했거든요. 어떤 분들은 미현을 두고 '바람피운 여자가 뭐가 저렇게 당당해?' 하시겠지만, 미현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지난 10년 동안 반복했던 일들을 한 번 했을 뿐인 거잖아요."
 
직접 쓴 미현의 대사, 연기하며 통쾌했다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결혼하고 나서 나는 없더라. 결혼한 남자, 아내를 가진 남자 이재훈을 완성하고 있는 부품 같은 거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은 내 안에 있는 아이를 당신 아이라면서 혼자 이름을 정하고 나한테 통보하고... 가족을 가진 남자 이재훈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치?"

 
미현의 대사에는 자신이 왜 변했는지, 왜 이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모든 설명이 담겨있다. 최유하는 미현의 이 대사 대부분을 직접 썼다. 당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빠져있었던 최유하는 <채식주의자> 속 영혜와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의 공통점을 느꼈고, 그런 감성과 감정을 이 대사에 담았다고 했다.
 
"제가 <채식주의자>를 재미있게 읽은 것도, <이, 기적인 남자>에 통쾌함을 느낀 것도, 두 캐릭터의 모습에서 모두 저를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공감을 많이 했어요. 가장 무난한 줄 알았고, 무난하게 사는 게 도리인 줄 알았고... 그래서 저 대사를 쓰고, 말하면서 환희를 느꼈던 것 같아요. 다행히 감독님이 생각한 미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주셨어요."
 
영화는 촬영 2년 만에 관객을 만났다. 미현은 연기하느라 오로지 미현의 입장에서만 보이던 모든 상황들이, 개봉을 앞두고 최근 다시 영화를 보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미현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남편 재훈의 대사나 태도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래도 불륜을 저지른 아내인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지만, 끝까지 당당한 미현을 연기한 것에 후회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의미심장한 영화 속 상황들... "조금만 일찍 개봉했다면"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영화에는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한 재훈의 성폭력, 여성들의 연대 등 지난해 미투 운동이 떠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2016년에 이미 촬영을 마쳤고, 2년 만에 개봉된 작품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지난해 미투를 의식해 제작된 영화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개봉이 1년 만 빨랐어도 조금 더 시류를 탈 수 있지 않았을까, 제작 직후 개봉됐다면 관객들에게 더 파격적인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저희가 촬영 때 파격적이고 통쾌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이, 많이 절감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관객 분들이 캐릭터들의 상황과 선택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셨으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시선에 얽매여 자신에게 본능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던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처럼, 최유하 역시 자신의 본능을 뒤늦게 깨달은 케이스다. 성균관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최유하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연극반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입시 때 잠시, 함께 연극하던 친구들처럼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에 바로 꿈을 접었었다. 최유하는 "보수적인 어머니의 교육관에 세뇌당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울고불고 떼쓰긴 했지만, 그땐 엄마의 반대에 이유가 있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어요. 후회가 그득그득했지만, 그땐 엄마에게 지는 게 당연했거든요. 하지만 대학 졸업이 다가오고 직업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땐, 절대 질 수 없었죠. 저도 더 강경해졌고, 엄마는 '그래 니가 얼마나 버티나 보나'는 마음으로 그냥 두고 보시는 상태였어요.
 
엄마의 반대가 여전히 너무 견고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뮤지컬할 때 가끔 보러 오신 적이 있는데 응원 차원이 아니라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마음이셨거든요. 객석에 계신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 얼어붙어서 그 뒤에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때부터 객석을 안 보는 버릇이 생길 정도로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응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제 목표는 '엄마가 인정하는, 엄마가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자'예요."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 싶다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영화계에서는 신인이지만,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사의 찬미><킹키부츠><난쟁이들>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안정된 뮤지컬 무대를 두고 다시 신인이 되어 영화, 드라마에 문을 두드리는 이유를 묻자 "더 많은, 더 넓은 연기를 위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학습 통지서 받잖아요. 거기에 선생님이 '실어증 같다'는 말을 적으실 정도로 극도로 수줍음이 많은, 말도 없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전 그때도 남에게 주목 받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관종'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는 건 알지만, 전 정말 타고난 관종이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는 이 열망을 선보일 수 있었죠. 무대는 제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모두가 날 보고 있는 그 곳이 좋았고, 그런 상황이 재미있었어요.
 
영화, 드라마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싶은 이유도 비슷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봐주는 것도 좋고, 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는 게 좋아요. 제가 해낼 수 있는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꾸준히 활동하다보면 언젠가 부모님도 어느 순간 '잘했다', '좋았다' 해주시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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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겁쟁이에 쫄보"라는 김선호, 그가 자신감 얻은 이유

[인터뷰] <백일의 낭군님> 김선호 "TV 속 내 얼굴, 여전히 어색하다"

최근 종영한 tvN <백일의 낭군님> 속 정제윤(김선호 분)은 비운의 캐릭터다. 백과사전급 지식과 삼정승 못잖은 식견을 가졌지만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출셋길이 막혔고, 마음에 둔 여인은 갑자기 원치 않는 상대와 혼인을 해버렸다. 거기다 그 상대가 기억을 잃은 왕세자라니. 삐뚤어지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정제윤은 특유의 밝음과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홍심(남지현 분)을 향한 연심과 세자 이율(도경수 분)에 대한 충심으로 둘의 조력자가 되는 길을 택했고, 결국 홍심의 마음 대신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백일의 낭군님> 속 정제윤, 김선호를 7일 서울 도렴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삼각관계가 더 팽팽하길 바라진 않았는지, 너무 맥없이 조력자가 돼 아쉽지는 않았는지 묻자, 김선호는 "차라리 다행"이라며 웃었다. 첫 사극으로 받은 큰 사랑, 행복하다 "방송 보고 정말 놀랐다. 촬영할 때는 모전교 유등신이나 벚꽃신이 그렇게 예쁘게 그려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남지현씨가 사극이 너무 힘든데 방송을 보면 너무 예뻐서 또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주긴 했는데, 그 정도로 예쁘게 담길 줄은 몰랐다. <백일의 낭군님> 촬영할 때,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거기다 너무 더웠고, 처음 도전하는 사극이 어렵기도 했다. 정말 힘들게 촬영해서 '사극은 힘들다'는 선입견만 가질 뻔했는데, 큰 사랑을 받은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도, 주위에서도, 현장에서도 사실 다들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 했다. 대본은 정말 재미있었지만, 대본이 좋다고 시청률이 다 잘 나오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잘 되니 얼마나 더 행복했겠나. 시청률은 하늘의 뜻이라고들 하셔서 신경 안 쓰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꾸 행복해지더라. 기분 좋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완전히 본방 사수했다. 3~4번 정도는 배우들끼리 모여서 보기도 했는데, 촬영장에서 틈틈이 모니터하는 거랑 시청자 입장에서 함께 보는 거랑 다르더라.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자꾸 보이는데 돌이킬 수 없으니 너무 부끄럽고 간지럽더라. 초반에 너무 진지하게 무게를 잡은 것도 그렇고, 컷마다 갓이 삐뚤어져 있는 것도 신경 쓰이고... 너무 한심하고 후회됐다. 더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다음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허전해진 정제윤의 서사, 서운하진 않지만... "작가님이 너무 정극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의 사이를 찾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양쪽 이야기들이 모두 탄탄하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톤이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따로 노력을 많이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송주현은 연기하기 전부터 너무 즐겁고 행복했고, 궁궐은 선배님들이 워낙 무게감을 잘 잡아주신 덕분이었다. 현장마다 이야기의 무게는 달랐지만, 두 곳 모두 굉장히 밝고 재미있었다. 특히 조성하 선배님이 너무 재미있으셨다. 아이스크림을 정말 하루도 안 빼놓고 사주셨다. 대기 시간에는 너무 유쾌하고 즐거웠는데, 촬영 시작되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지시는데 너무 놀랐다. 관록이 이런 거구나 싶고... 송주현에서도 정해균 선배님이나 이준혁 선배님 연기하시는 거 보면서 많이 배웠다. 즐겁게 놀 수 있는 또래도 많고,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선배님들도 많이 계셔서 여러모로 정말 좋았다." "홍심이와 원득이의 로맨스에 힘을 실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서운하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연기함에 있어서는 조금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제윤은 어떤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거나, 어떤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부딪치지 않는다. 캐릭터에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시청자분들이 정제윤의 행동과 선택을 얼마나 이해해주실지 내내 고민했던 것 같다." "감정을 최대한 미니멀하게 표현하는 거? 정제윤은 보통 어떤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설명하는, 일종의 전달자다. 그래서 두 사람이 있어도 정제윤 혼자 말하는 대사가 세 줄이 넘고 그랬다.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세게 들어가면 '쟤는 왜 저렇게 화를 내?', '쟤는 왜 오버야?' 라고 생각하실 것 같더라. 그래서 정제윤의 여러 특징 중 '현감'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최대한 감정은 미니멀하게, 사건을 추리하고 설명하는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 작품 안에는 트러블 메이커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중도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백일의 낭군님>을 통해 알게 됐다. 앞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윤이가 초반에는 싸움을 피하고 도망 다니는데, 마지막 전쟁신에서는 갑자기 검을 들고 싸움을 잘한다. 그럼 앞에 싸움 못 하는 장면은 어떻게 된 거지 싶더라. 다행히 초반에 무뢰배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재촬영하게 됐는데, 감독님께 대사 하나만 더 해도 되느냐고 여쭤봤다. 그 대사가 '난 사람은 안 때리오'였는데, 내 나름대로 어떤 설정을 넣은 거다. 생각해보니 제윤이는 무관인데 싸움을 못 할 리도 없고. 무예는 출중하지만, 백성과는 싸우지 않는, 전쟁에서는 적이니까 칼을 쓰는 거... 라는 설정이었다. 또, 안면인식장애지만 홍심이만 또렷하게 알아본다는 설정에도, 홍심이가 어머니를 닮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얼굴 못 알아보는 병을 앓고 있더라도, 엄마의 얼굴은 흐릿하게라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가님 의중은 모른다. 그냥 내가 그런 설정을 더했다. (웃음)" TV 속 내 얼굴, 여전히 어색하다 "운이 좋았다. <김과장> 작가님이 지금 <죽어도 좋아> 연출하고 계신 이은진 PD님께 연극배우 추천을 요청하셨고, 그 추천 명단에 내가 있었다. PD님이 내가 출연했던 연극 <클로져>를 보셨다더라.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굉장히 행복하던 시기였다.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고, 배우로서 잘 성장하고 있다는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장의 목표는 아니었다. 그래서 <김과장> 오디션을 보러 가면서도 긴장도 별로 안 했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고, 드라마 오디션장에 가본 것만으로 행복했으니까. 편안하게 오디션을 봤는데 그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사실 <김과장> 끝나고 드라마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바로 무대로 돌아가려 했다. 화면으로 보는 내 얼굴도, 내 연기도 너무 불편하고 어색한 거다. 거기다 공연과 다르게 TV 드라마는 시간 제약이 많지 않나. 모든 게 급하고, 빠르고... 그런 분위기에 스스로 많이 겁먹었다. 삭막하다고 생각했고, 현장에서 늘 혼자인 기분이었다. (나를 추천해 준) 이은진 PD님께 이번 작품만 하고 공연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한 번 더 해봐라, 이렇게 가는 거는 도망가는 거다, 라고 하시더라. 후배들이 뭐라고 하겠느냐고." "그것도 있고... 결정적인 건, 포상 휴가로 세부를 갔는데 너무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외에 가본 거였는데, 물에 떠 있기만 해도 좋고, 모든 게 설레고 좋더라. (웃음) 완벽하게 릴렉스를 한 거지. 그러고 돌아와서 <최강 배달꾼> 오디션을 봤다. 원래 배달부원 중 한 명으로 합격했는데, 오디션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오진규 역할이 됐다. <투깝스>에서도 독고성원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공수창이 됐다. 운이 너무 좋았다." "겁쟁이에 쫄보"라는 김선호, 그가 자신감을 얻은 이유 "여전히 불편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겼나, 눈에 점이 이렇게 컸나 싶고... 얼굴은 처음보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젠 연기가 너무 못나 보인다." "결국 내 안의 어떤 모습을 꺼내 표현한 거니까 비슷한 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캐릭터처럼) 능글맞거나 자신감이 강하진 않다. 현실의 나는 쫄보고 겁쟁이다. 연극할 때도 '이거 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1년이 걸렸을 정도다. 겁이 많고, 겁이 많으니 모든 게 조심스럽다." "작품마다 부족함을 느꼈고, 자책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나를 의심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떤 한 부분을 자책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매달리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드라마를 시작하고 나서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도 계신데 내가 너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이 그분들께 죄송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요즘은 일부러 자신감을 더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테니까. <백일의 낭군님>이 방송되는 동안에도 일부러 촬영지로 여행도 다녀오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면서 좋은 기억들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에서 굳이 나라는 사람, 정제윤이라는 캐릭터를 기억해주실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좋은 분들과 작품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내가 드라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자책했던 목소리도 좋아해 주시고, 평범한 외모도 팬분들은 멋있어 보인다고 해주시더라. 얼마 전에는 '내가 미쳤나. 별로인데 잘생겨 보이네'라는 댓글을 읽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 이런 나를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한 답이겠지만,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런 역할 얘한테 맡겨보면 할 수 있겠다', '저런 사람이 정말 있을 것 같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쌓여, 시간이 지날수록 호감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전화번호부를 가진 여자, 비밀회담 주선하다

[인터뷰] 배우 전미도의 또다른 변신... 연극 <오슬로>의 노르웨이 외교관 '모나 율'

모나 율과 티에유 로드-라르센 부부는 대학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다. 당시 모나는 학생이었고, 티에유는 국제관계에서 포괄주의 모델을 대신할 점진주의 모델의 적용이 시급하다고 역설하는 교수였다. 결혼 후 모나는 노르웨이 외무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고, 티에유는 응용사회과학연구소 소장으로서 연구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개인적인 동기였다. 그들이 가자지구에서 마주한 소년과 소녀, 겨누어진 총구, 그 아이들의 표정, 눈빛. 모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밀평화회담을 주선하자는 티에유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협상 테이블은 지지부진한 지 오래였다. 모나는 열성적인 티에유가 자칫 지나치게 개입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해보기로 한다. 베를린 장벽조차도 무너지는 시대였으니까. 모나와 티에유는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선 요시 베일린 이스라엘 외무부차관과 아흐메드 쿠리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재무장관에게 은밀히 접촉해 회담 의사를 타진한다. 다행히 노르웨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노르웨이 외무부는 공식적으로 이 회담에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정도 파급력의 회담을 전혀 모른 척하고 민간 연구소에만 맡길 수도 없다. 모나는 한때 대학에서 자신과 사귀었고, 지금은 자신의 상사인 외무부차관 얀을 미리 설득해 묵시적 동의를 받아낸다. 노르웨이는 작은 나라니까. 난로의 불이 꺼지지 않는 따뜻한 장소, 맛있는 음식(특히 와플)과 술, 친구 사이가 되어 나누는 사담들… 회담 장소가 된 연구소에는 평화회담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졌다. 그러나 피와 증오로 얼룩져 온 수십 년의 역사가 단기간에 정리될 수 있을 리 없다. 회담장 밖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는 듯하던 평화회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주선자'인 모나와 티에유가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두 나라 사이의 평화는 결국 꿈에 불과한 이야기였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국제외교사에 영원히 기록될 1993년 '오슬로 협정'이 결국 체결되었음을. 연극 <오슬로>는 25년 전 노르웨이에서 '오슬로 협정'이 탄생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노르웨이 외교관 모나 율이다. 다른 누구가 아닌 전미도가 소화하기에 더욱 더. 전미도와 모나 율 제1회(2017) 그리고 제2회(2018)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배우 전미도. 최근 필모그래피들이 모두 뮤지컬이기는 했지만, 전미도는 극단 맨씨어터 작업과 더불어 연극 무대도 놓치지 않아온 배우이다. 2016년 <비: BEA> 이후로는 약 2년 만에 돌아온 셈. 다만, <닥터 지바고> 이후 선택한 작품이 <번지점프를 하다>도 아니고 <어쩌면 해피엔딩>도 아닌 <오슬로>라니 조금 의외이기는 했다. <오슬로> 연습실 공개 당시 전미도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답한 바 있다. 다종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온 전미도이지만, 이지적이고 냉철한 '모나 율'은 확실히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소화했던 인물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전미도는 "평소의 저는 허술하다"라며 인간 전미도와 극 중 인물 모나 율의 간극이 꽤 컸음을 설명했다. "완전 안 닮아서 진짜 어려웠다"고. 주인공이 아닌... 그러나 지성과 신념으로 무장한 모나는 분명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슬로>를 페미니즘적인 작품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 실제 역사를 각색한 작품이다 보니, 극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남성이다. 서사 내 갈등의 중심 역시 남성 인물들 쪽에 찍혀 있다. 외교적 수사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남성성을 추켜세우는 대사들도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나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모나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수차례 상찬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화번호부"로 대변되는 모나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티에유가 좌충우돌하며 활약할 때, 모나는 중립적인 주선자이자 극의 해설자로 기능하며 이야기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더 아쉽다. 모나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조금 더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극 안에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고생한 끝에 평화회담은 오슬로 협정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백악관 앞에서 각국 정상이 함께 사인하는 역사적인 현장. 티에유는 자신이 앉을 자리가 어디인지 모른다. 가운데는 아니어도, 자신을 위한 자리가 어딘가에 분명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하지만 모나는 우리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저 뒤에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흥분하며 억울해하는 티에유에게 모나는, 티에유가 처음 이스라엘 측 대변인으로 지명되어 온 교수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당신은 주인공이 아니야"라고. 실패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국립극단은 올해 라인업을 정리하면서, 당초 <오슬로>가 아닌 다른 작품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남북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하자 이성열 예술감독은 <오슬로>를 라인업에 올리기로 했다. 자신이 국립극단으로 와서 처음으로 맡는 연출작이기도 했다. 국립극단에서는 <오슬로>를 홍보하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많이 강조했다. 실제로 작품을 본 평단과 관객을 막론하고 자연스레 지금의 우리 처지를 대입해서 보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동시대성을 갖는 건 연극의 큰 힘 중 하나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전미도는 "그렇지 않다"고 즉답을 내놓았다. <오슬로>는 모나와 티에유가 당시 있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연극의 마지막, 실제 역사가 이후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누군가는 암살당하고, 누구는 살아남았다. 정권은 실각하고,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으며, 연속된 위기에 또다시 좌초되고 만다. 2018년 현시점에서 오슬로 협정은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공공연하게 '폐기'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나와 티에유의 노력이 마치 무의미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오슬로 협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연극의 힘 2000년 6월 15일 그리고 2007년 10월 4일, 남과 북의 정상은 함께 만나 웃으며 악수했고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들이 연이어졌다. 그러면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은 실패한 선언일까. 의미가 없었던 걸까. 상황은 또다시 변했고, 2018년의 4‧27 판문점선언을 이루는 기초가 됐다. 인류의 역사는 미시적 퇴보와 진보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그 무수한 퇴보들을 뛰어넘는, 역사 전체를 진보의 방향으로 굴려온 추동력들이 있다. 설사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의지를 갖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 있다. 연극 <오슬로>가 훌륭한 작품인 이유는, 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만도 아니고, 2018년 한국에서의 높은 동시대성 때문만도 아니다. 꿈을 꿈으로 두지 않고 가능한 일로 만들어왔던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사 뒷걸음질하여 다시 어두운 길을 걸어가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다. 한 번 걸어봤으니까, 그 경험을 밑거름 삼아 인간은 더 멀리 걸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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