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수줍음 많은 관종'. 배우 최유하가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주목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탓에 이 '관종끼'는 오로지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만 발현됐다. 그래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노릇을 하느라 자기 안에 어떤 본능이 끓어 넘치는지도 몰랐던 최유하와, 영화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은 참 많이 닮았다.
 
영화 <이, 기적인 남자>는 아내 미현(최유하 분)과 눈독 들이고 있는 조교 지수(조은빛 분)까지 두 여자 다 내 사람이라 믿고 있던 이기적인 남자 재윤(박호산 분)이 아내에게도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일 서울 도렴동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 배우 최유하를 만났다. 극 중 미현은 사회적 통념과 시선에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10년 째 무뎌진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10년 동안 제멋대로 살아온 남편처럼, 나도 한 번 내 본능대로 살아보자 마음먹은 미현의 결심에서,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갈등은 시작된다.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아 통쾌하다, 꼭 하고 싶다'였어요. 전 미현이의 입장을 100% 이해했거든요. 어떤 분들은 미현을 두고 '바람피운 여자가 뭐가 저렇게 당당해?' 하시겠지만, 미현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지난 10년 동안 반복했던 일들을 한 번 했을 뿐인 거잖아요."
 
직접 쓴 미현의 대사, 연기하며 통쾌했다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결혼하고 나서 나는 없더라. 결혼한 남자, 아내를 가진 남자 이재훈을 완성하고 있는 부품 같은 거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은 내 안에 있는 아이를 당신 아이라면서 혼자 이름을 정하고 나한테 통보하고... 가족을 가진 남자 이재훈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치?"

 
미현의 대사에는 자신이 왜 변했는지, 왜 이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모든 설명이 담겨있다. 최유하는 미현의 이 대사 대부분을 직접 썼다. 당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빠져있었던 최유하는 <채식주의자> 속 영혜와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의 공통점을 느꼈고, 그런 감성과 감정을 이 대사에 담았다고 했다.
 
"제가 <채식주의자>를 재미있게 읽은 것도, <이, 기적인 남자>에 통쾌함을 느낀 것도, 두 캐릭터의 모습에서 모두 저를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공감을 많이 했어요. 가장 무난한 줄 알았고, 무난하게 사는 게 도리인 줄 알았고... 그래서 저 대사를 쓰고, 말하면서 환희를 느꼈던 것 같아요. 다행히 감독님이 생각한 미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주셨어요."
 
영화는 촬영 2년 만에 관객을 만났다. 미현은 연기하느라 오로지 미현의 입장에서만 보이던 모든 상황들이, 개봉을 앞두고 최근 다시 영화를 보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미현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남편 재훈의 대사나 태도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래도 불륜을 저지른 아내인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지만, 끝까지 당당한 미현을 연기한 것에 후회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의미심장한 영화 속 상황들... "조금만 일찍 개봉했다면"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에는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한 재훈의 성폭력, 여성들의 연대 등 지난해 미투 운동이 떠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2016년에 이미 촬영을 마쳤고, 2년 만에 개봉된 작품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지난해 미투를 의식해 제작된 영화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개봉이 1년 만 빨랐어도 조금 더 시류를 탈 수 있지 않았을까, 제작 직후 개봉됐다면 관객들에게 더 파격적인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저희가 촬영 때 파격적이고 통쾌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이, 많이 절감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관객 분들이 캐릭터들의 상황과 선택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셨으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시선에 얽매여 자신에게 본능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던 <이, 기적인 남자> 속 미현처럼, 최유하 역시 자신의 본능을 뒤늦게 깨달은 케이스다. 성균관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최유하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연극반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입시 때 잠시, 함께 연극하던 친구들처럼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에 바로 꿈을 접었었다. 최유하는 "보수적인 어머니의 교육관에 세뇌당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울고불고 떼쓰긴 했지만, 그땐 엄마의 반대에 이유가 있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어요. 후회가 그득그득했지만, 그땐 엄마에게 지는 게 당연했거든요. 하지만 대학 졸업이 다가오고 직업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땐, 절대 질 수 없었죠. 저도 더 강경해졌고, 엄마는 '그래 니가 얼마나 버티나 보나'는 마음으로 그냥 두고 보시는 상태였어요.
 
엄마의 반대가 여전히 너무 견고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뮤지컬할 때 가끔 보러 오신 적이 있는데 응원 차원이 아니라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마음이셨거든요. 객석에 계신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 얼어붙어서 그 뒤에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때부터 객석을 안 보는 버릇이 생길 정도로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응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제 목표는 '엄마가 인정하는, 엄마가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자'예요."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 싶다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 기적인 남자' 배우 최유하 영화 <이, 기적인 남자>의 배우 최유하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계에서는 신인이지만,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사의 찬미><킹키부츠><난쟁이들>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안정된 뮤지컬 무대를 두고 다시 신인이 되어 영화, 드라마에 문을 두드리는 이유를 묻자 "더 많은, 더 넓은 연기를 위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학습 통지서 받잖아요. 거기에 선생님이 '실어증 같다'는 말을 적으실 정도로 극도로 수줍음이 많은, 말도 없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전 그때도 남에게 주목 받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관종'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는 건 알지만, 전 정말 타고난 관종이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는 이 열망을 선보일 수 있었죠. 무대는 제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모두가 날 보고 있는 그 곳이 좋았고, 그런 상황이 재미있었어요.
 
영화, 드라마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싶은 이유도 비슷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봐주는 것도 좋고, 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는 게 좋아요. 제가 해낼 수 있는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꾸준히 활동하다보면 언젠가 부모님도 어느 순간 '잘했다', '좋았다' 해주시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최유하 이, 기적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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