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영화제 출품작 <유령을 찾아서> 권은비 감독.

DMZ영화제 출품작 <유령을 찾아서> 권은비 감독.ⓒ 권우성

 
여기, 1년 간 애타게 북조선인을 기다린 이가 있다. 저 먼 유럽 땅에서, 더군다나 분단에서 통일을 이룬 독일 땅에서.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잔존하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그 '북한 사람'을 '찾아 나서기'보다 '기다린' 이가 바로 영화 <유령을 기다리며>의 권은비 감독이다.
 
2005년 남북대학생 상봉 모임에서 만난 동년배 북한 대학생이 그리도 기억에 남았단다. 아마도 운명일지 모른다. 그 대학생을 그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대회에서 다시 만난 것은. 그에 앞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대학 내에 '갇혀' 살아야 했던 학교 선배의 모습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도대체 국가보안법이 무엇이길래?
 
한국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아트 인 컨텍스트'를 전공한 권은비 감독이 하필 독일에서 유학한 것 역시 운명이라면 운명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 앞서 분단을 넘어 통일을 경험한 독일 사회야말로 한국의 분단 상황에 관심이 지대했고, 자연스레 권은비 감독 역시 쉬이 만날 수 없는 북한 사람들에 대해 더더욱 궁금증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권 감독은 1년 동안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사람과의 '공식 만남'을 기다리기에 이른다. 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민만이 북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지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을 품은 채로. 그렇지 않았겠는가. 독일인이든 누구든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북한 대사관을 유일무이하게 한국인들만 꺼려해야 하는지, 그 '북한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왜 불법인지 말이다.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유령을 기다리며>는 남북의 정상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평화체제 구축을 이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더욱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이 32분여의 짧고 굵은 다큐는 바깥(독일)에서 안(남한)을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작업인 동시에 타국어를 통해 되짚어 보는 모국(어가 주는 괴리)의 분단 현실에 대한 날카롭지만 슬픈 호소이자 분단 상황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다음은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권은비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권은비 동무!", 그 운명적인 만남
 

 영화 <유령을 기다리며> 스틸컷

영화 <유령을 기다리며> 스틸컷ⓒ DMZ국제다큐영화제


- 원래 남북 분단이나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지 궁금하다.
"2005년에 남북대학생 상봉 모임에 참여하면서 관심은 쭉 있었다. 그때 기억이 너무 강렬했다. 반공 교육을 열심히 받던, 반공 포스터에서 북한 사람을 악마로 그리면 1등을 하던 세대인데, 처음으로 북측 대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북측 대학생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그해 열린 남북축구대회를 보러 갔는데 누가 뒤에서 '권은비 동무!'라고 부르더라.
 
돌아보니 상봉 모임 때 봤던 친구였다. 뭐지? 운명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이후 조사를 해 보다가 북에 갔었던 대학생이 있었다더라. 그게 베를린을 통해 북에 갔던 임수경이었고. 그러면서 베를린이 각인됐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베를린 여행을 갔는데 북한 대사관이 있더라. 만났던 한인들에게 북한 사람들도 산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럼 그때 그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요만큼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왜 그 만남이 그리 강렬했을까. 당시 북측 대학생들을 만났던 이들은 많았을 텐데, 이렇게 데뷔작으로 독일에서 다큐멘터리까지 찍었을 정도로.
"누군가를 만났는데 다시는 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런 인식을 하는 순간 더 간절함이 생기더라. 그러고 나서 베를린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서 계속 자기 소개를 하게 되잖나. 코리안이라고 소개를 하면 꼭 한 번씩 더 물어보더라. '북이야, 남이야?'라고. 독일에서 더 (남북 분단을) 일상적인 질문으로 생각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 다른 경험이 더 있었을 것 같다. 국가보안법이란 어찌 보면 무뎌질 수 있는 소재를 건드린 걸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걸 처음 알게된 계기가 컸던 것 같다. 대학 새내기 때 미대 작업실에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설날 연휴인가 새벽 4시쯤 4학년 여자 선배가 한겨울에 머리를 말리면서 나오더라. '뭐하세요' 여쭤 봤더니 '학교에서 살아!' 그러는 거다. 온수도 안 나오던 때였는데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더라. 그때가 참 충격적이었다.
 
왜 같은 과 이 선배는 집에 못 가고 학교에서 지낼까. 그 이후에도 학교를 못 나가는 상황이었고, 학교 밖을 나가려면 최소한 100명 이상의 학생들과 나가야 했다. 그 선배가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다.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그때가 2002년 월드컵이었나? 모금을 하러 다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모금함을 던져버리면서 '이 빨갱이 새끼들아' 그러는 거다. 그때부터 국가보안법에 대해 고민을 가졌던 것 같다."
 
- 그때 국가보안법이 철폐됐다면 이 작품이 세상에 안 나왔을 수도 있겠다.
"물론이다. 그랬다면 아마 (이 영화를) 안 만들었겠지(웃음). 그때 재판에도 갔었는데, 그 선배 앞뒤로 선 피고인들이 다 강간범이고 흉악범들이더라. 그게 너무 이해가 안 됐다. 왜 저런 사람들이랑 그 선배가 재판정에 서 있었어야 하는지. 그런 질문이 계속 남아 있다가 베를린으로 넘어간 이후 이 작업을 하게 된 것 같다."
 
- 개인적으론, 32분짜리 작품의 후속편이 궁금할 정도다. 아무래도 국가보안법이란 장벽이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오려나?
"작업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한인들 중에선 '어디서 빨갱이가 와서 이런 걸 하느냐'고 하기도 하고. 베를린은 소문이 금방 퍼진다. 실제로 처음 갔던 시기가 박근혜 정권이 막 당선되고 부정선거 의혹이 일 때였고. 가자마자 선거 관련 집회가 브란덴부르크에서 열렸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놓고 다니고, 집회 사진도 찍고. 사실 영화가 짧고 다루는 이야기는 깊진 않잖나. 사람들 만나고 인터뷰하고 그런 수준인데. 그런데도 과정상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바라본 분단 조국, 그리고 국가보안법
 
 

 DMZ영화제 출품작 <유령을 찾아서> 권은비 감독.

DMZ영화제 출품작 <유령을 찾아서> 권은비 감독.ⓒ 권우성


- 독일 베를린에서 바라보는 '조국의 분단 상황'에 대한 체감은 확실히 남다를 것 같은데.
"일상적으로 분단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다. 제가 베를린 예술대학을 다니는데, 음대도 있고, 미대도 있고 다양한 학과가 있다. 그럼 한 달에 꼭 한 번은 독일 친구들이 '어느 대학에 북한 학생이 있대, 너 만나 봤어?'라고 묻는다. 파티도 많은데 갑자기 연락 와서는 빨리 오라고 하고. 지금 여기 북한 학생 있다고. 그런 경험을 일상에서 많이 겪었다.
 
어쨌든 독일 사람들은 분단을 겪었으니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북에 우리가 못 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남북 사람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선 불법이라는 걸 전혀 모른다."
 
- 영화는 분단 상황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계속 환기시킨다.
"북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1년을 기다렸을 때가 박근혜 정부 시기였다. 영화의 핵심은, 이런 분단의 과정, 지지부진한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런 것들이 해소되기를 일찍이 바라왔으나 계속 지속되고 있잖나.
 
그렇다면 저라는 아무것도 아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혁명을 일으켜야 하나? 혁명은 혼자 하는 건가? 혼자 어떻게 하지? 같이 여럿이 하려면 뭘 해야 하지? 이런 여러 가지 질문이 들다가 기다리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수동적인 건데, 1년 동안 해 보니까 꽤나 능동적인 거였더라."
 
- 제목을 '유령을 찾아서'라고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목에서 언급한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오묘하고 복잡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런 부조리한 면을 꼬집고 싶었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면 되잖나. 근데 만나러 가지 않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었다. 예전에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를 나갔을 때, 촛불을 들고 종로 한복판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 과정이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동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촛불을 들고 앉아 있더라. 그게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상태이지 않을까."
 
- 1년 동안 북한 사람을 기다리며 촬영했던 시기가 2016~2017년이라고 들었다. 그에 비해 요즘은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황스러웠다. 이거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낸 시간이 있는데, (남북 정상이) 너무 쉽게 만났지 않나.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을, 그런 허망함도 있었고(웃음). 정상회담 때는 강의실에서 박수도 받았다. 주변 친구들은 한국 상황을 잘 모르니까, 통일 되는 거냐고 물어 보고. 교수님이 설명 좀 해 달라고 해서 빔 프로젝트 틀어서 설명하고. 벌써 몇 개월 전인데 또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 1년 동안 공원에서 실제로 북한 사람을 기다려보니 어떻던가.
"1년 동안 (북한사람을) 기다리면서, 정말 다양한 국적, 인종, 성별의 사람들을 만났다. 저 앞에서부터 아시아 사람이 다가오면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북한 사람일까, 북한 사람 같은데 진짜 북한 사람이면 뭐부터 얘기해야 하지?
 
또 든 생각이 언어다. 북측 사람과 한국어를 안 하면 선입견 없이 대화 할 수 있더라. 자기 언어를 쓰는 순간 그 언어가 가진 선입견이 있지 않나. 북한이란 말도 우리나 쓰지 그쪽에선 쓰지 않는 말이고. 근데 독일어로 대화하면 경계가 사라지면서 사람과 사람으로 대화할 수 있더라."
 
- 독일 지인들 반응도 궁금하다. 한국 분단 소재로 다큐 작업을 한 것에 대한.
"독일 친구들은 많이 응원을 해줬는데, 한국인 친구들은 하지 말라고 다 말렸다. 실제로 제가 북한 대사관에 못 간다는 걸 알고 자기가 직접 찾아간 독일 친구도 있었고 직접 북한을 찍어준다며 북한 여행 계획을 잡을 독일 친구도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넌 못가? 내가 가줄게? 뭘 물어 봤으면 좋겠어? 라면서.
 
제보자들을 50여 명 정도 만났다. 북측 사람을 만난 사람들, 접촉한 사람들 위주로. 대부분 인터뷰한 분들은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99%가 쓰지 말라고 했고. (남녀를 떠나) 인터뷰한 대부분이 얘기는 해주되 영화에서는 쓰지 말라고 하더라. 그럼 허망한 거지. 유령의 존재랑 비슷한 것 같다. 북한, 북한 사람을 말하면 안 되는 비밀처럼 생각하는 것 같고. '혹시 국가보안법을 아세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몰랐다고 하면서도 북에 대한 공포감 자체가 크더라."
 
- 한국에서 군대를 갔다 온 남성이라면 끊임없이 주적이란 개념을 주입 받으니까 남성들의 공포감이 더 심할 것 같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것 같다. 2년 동안 청년들에게 주입을 하는 거니까. 이승복 기념관의 그림을 비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입을 찢는 장면이 나오잖나? 어렸을 땐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보면 그게 너무 끔찍한 거다. 또 삐라는 사진 속에 여성들이 많았지 않나. 반라 사진들. 국가적인 이데올로기 프로파간다에 여성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측면도 있었다."
 
1년의 기다림, 그 시간 동안 느낀 어떤 허망함 
 

 영화 <유령을 기다리며> 스틸컷

영화 <유령을 기다리며> 스틸컷ⓒ DMZ국제다큐영화제


- 연출 의도를 좀 더 설명해 준다면.
"언어적이니 측면도 되짚고 싶었다. 자막은 한국어가 들어가지만 독일어로 내레이션을 넣은 이유도 그래서다. 한 번쯤은 남북관계라든지, 냉전이라든지, 국가보안법까지도 다른 언어로 바라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한글, 영어, 독일어로 다 읽어 봤었다. 한국어로 읽으면 음~ 이렇게 읽힌다. 근데 영어나 독일어로 법조항을 읽으면 '어? 이렇게 무서운 법이었어?' 이렇게 되더라. 저는, 우리는 이미 익숙해진 거다."
 
- 찬양고무죄 이런 조항들?
"찬양고무도 그렇고 한글은 한문이랑 얽혀 있기도 하고, 또 워낙에 뉴스에서나 '찬양고무죄로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문장들이 친숙하지 않나. 그런데 외국어로 보고 들으면 훨씬 더 무서운 측면이 있더라. 그래서 내레이션을 독일어로 한 거고.
 
독일 또한 분단을 겪었던 나라다 보니 법조항의 언어가 더 센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독일 법에는 적이란 개념이 없다. 그래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지금까지 적이 있는 나라에 살면서 어떤 억압을 느꼈구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
 
- 1년 동안 북한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며 고생한 것과 달리 마지막을 너무 쿨하게 끝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독일 친구들은 그랬다. '미쳤구나, 너. 1년 동안 이걸 기다렸다고?' 그런. 그래도 나 이렇게 고생했어요, 알아주세요, 구구절절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사실 의도한 바는 좀 허망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다. 적어도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허망함이 일상 속에 계속 있는 것 같다. 그 1년이 남들이 보기엔 고생한 시간이지만, 몇 분으로 압축하면서 그런 허망함을 같이 느끼길 원했다."
 
- 이 작품을 만든 감독으로서, 또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관객들이 <유령을 기다리며>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
"독일에서 지내며 느낀 것은, 북에도 갈 수 없고 또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차단된 딱 그만큼의 자유가 대한민국사람에게만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베를린을 여행하다 북한 대사관을 갔다. 그런데 대사관 초인종을 누를 수 있는 자유가 전 세계 유일하게 남한 사람에게만 없구나. 그런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정치적인 계산이나 그런 걸 떠나서 북한 사람에게 '너 북에서 왔어? 커피 한 잔 할까? 파티에 술 한 잔 하러와' 그렇게 말하고 권할 수 있는 자유. 독일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를 상상도 못한다. 독일은 분단 시기에 통신도 가능했으니까. 우리는 완전히 차단됐지 않나. 그런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통일이나 그런 먼 얘기까지는 아직 아니더라도.
 
실제로 독일 친구 하나는 내 앞에서 북한 대사관 초인종을 눌렀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안녕' 하면서 그 친구 혼자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내가 넘을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사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성격이 괴팍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억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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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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