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유성호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이후 영화에 대한 꿈이 커진 박영주 감독은 이제 막 출발선에서 한 걸음을 옮겼다. 전작 단편 < 1킬로그램 >이 69회 칸영화제 씨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받았을 당시 "휘둘리지 말자"고 했던 다짐대로 그는 꾹꾹 장편을 준비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무대를 밟고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선희와 슬기>다.

유독 올해 영화제 출품작 중 아이, 청소년을 다룬 작품이 여럿인데 이 영화도 그중 하나다. 예쁘장하고 똑똑해 보이는 선희(정다은)가 따돌림을 피하기 위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다 어떤 비극을 겪게 되며, 삶의 터전을 떠돌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잔잔한 분위기지만 제법 스릴러적 요소도 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가 부모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채 나쁜 선택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계의 중요성  
 


영화제가 한창 중후반으로 넘어갈 즈음 박영주 감독을 만났다. 그는 첫 장편으로 부산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것에 대해 "칸영화제에 갔을 때보다 솔직히 더 마음에 와닿는다"라며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바로 만날 수 있으니 더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미 한 차례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온 그는 "왜 선희가 그런 선택들을 하는지 관객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셨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 영화에서 선희는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거나, 암표를 산 뒤 친구들에게 기획사에서 일하는 사촌오빠가 줬다며 티켓을 넘기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미움을 사 아무도 모르는 보육원으로 흘러가고 그곳에서 전혀 다른 이름으로 생활한다. 물론 거기서 멈추면 좋겠지만, 거짓말은 계속 이어진다. 왜 이런 이야길 구상하게 됐는지부터 감독에게 물어야 했다.

"사실 학창시절 영향이 크다. 여고를 나왔는데 제게 영향을 준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모임도 주도하고 인기가 많던 친구가 다음 학기에 어느 순간 따돌림을 당하고 있더라.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거짓말하고 이간질한 게 들통나서였다. 이동 수업으로 우연히 그 친구 옆에 앉게 됐는데 제게 서울로 유학 간다며 여러 말을 하더라. 말을 지어내는 느낌이었다. 근데 주눅 들어 있던 표정이 그 말을 하면서 살아나는 게 보이더라. 

그 표정이 오래 기억 남았다. 나쁜 의도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친구에겐 그런 말이 절실하다는 느낌이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비슷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서 이런 친구들에 대해 얘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물론 나중에 거짓말로 상처받긴 했다. 속상했고 원망도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씨앗처럼 품고 있던 궁금증을 마침 새롭게 들어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장편 제작 지원작을 뽑는다는 공고에 풀기로 했다. 물론 쉽진 않았다. 박영주 감독은 "저도 물론 평소 솔직하려고 애쓰지만, 거짓말을 하긴 하는데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를 쓰려 하니 왜 이 친구가 거짓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더라"며 나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제가 실마리를 잡은 건 관계였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서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이해했다. 저 역시 어떤 관계에서 소외된다고 느낄 때 거짓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행동을 하니까 말이다. 거짓말은 순간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고, 습관적으로 관심을 끌기 위해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자신을 잃은 아이,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
 

 영화 <선희와 슬기>의 한 장면.

영화 <선희와 슬기>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7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장편으로 치면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 박영주 감독은 "원래 100분 정도 됐는데 관객분들이 인물들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쳐냈다"고 말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여중생A>에 출연한 정다은을 캐스팅 한 이유 역시 궁금했다.

"캐스팅이 너무 어려웠다. 선희도 되었다가, 슬기도 돼야 하는데 어떤 배우가 좋을지 여러 사람을 만나보던 차였다. 지인이 <여름밤>이라는 단편에 나온 정다은씨를 추천하더라. 촬영했을 당시가 다은씨가 중3으로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번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정말 중학교 3학년의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더라.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따로 제가 디렉션을 주거나 주문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마치 선희처럼 그 대사를 할 것 같더라. 단지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전 배우를 많이 믿고 있었다."

도피처로 보육원을 택한 선희는 우연히 버스에서 들은 슬기라는 이름을 쓴다. 그리고 사진작가 지망생인 친구 방울이를 만나며 영화는 또 다른 희망을 암시한다. 물론 결말은 전혀 다르게 흐르지만, 감독의 이런 설정은 충분히 관객에게 어떤 환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선희 입장에서 보육원 원장님을 제2 엄마로 생각했을 것이다. 외롭고 사람의 관심을 갈구하는 이유가 바로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친구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선희에겐 보육원이 천국일 것이다. 천국에 왔으니 자기 자신을 살면 되는데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랑받기에 충분한데...  

(선희의 마지막 친구인) 방울이라는 캐릭터는 자기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인물이라 뭔가 작품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넣은 것이다. 예전에 제가 미술을 배웠는데 아그리파를 그릴 때 신기하게 다들 자신들의 얼굴이 나오더라. 어쩔 수 없이 (예술을 할 때) 자기가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같은 아그리파인데 제 친구는 얇은 선을 쓰고, 전 거친 선을 쓰고 있더라. 선희는 자기가 없어진 친구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행복해지자는 다짐에 대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유성호

 
결국 <선희와 슬기>는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극과 슬픔을 말함과 동시에 행복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역시 박영주 감독과 이어지는 질문이다. 문창과 시절 90번이 넘는 공모전에서 떨어졌던 경험, 한예종 시험에서의 첫 낙방, 그리고 상업영화 연출부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다시 한예종에 도전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을 그다.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계속 묻고 있다. 어렸을 때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도피처로 글쓰기를 했다, 지금도 자기표현, 나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긴 한다. 작품을 하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나다운 것을 고민하지만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좋아하게 됐다. 

전처럼 누가 어떻게 대한다고 해서 상처받거나 그러지 않는다. 제가 느끼는 나와 남들이 느끼는 내가 다르잖나. 누구보다 날 사랑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느끼는 내가 나일까?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조바심 느끼지 않고 편하게 알아가려 한다."


펜보단 카메라를 드는 것이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고 박영주 감독은 말했다. 칸영화제 경험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단다. 다만 조금 관심을 더 가져주시는 분들이 생긴 정도라고. 그래왔듯 그는 자신의 작품을 뚜벅뚜벅 준비할 기세다. 전부터 꿈꿔온 코미디 소재가 있지만 당장은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첫 장편을 찍고 나니 관객분들에게 조금 더 가가간 느낌이다. 제가 엄청난 대작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기도 했다. 근데 (영화 일이) 생각과 다르고 어렵더라. 겸손하게 하겠다. 당장 제가 무슨 거장이 될 순 없겠지만 제 나이에 맞는 솔직한 감독이 되자는 생각이다. 타협하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근데 절대 타협하지 말자. 유혹이 있어도 끝까지 고민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보이는 영화를 하고 싶다. 저만의 시선과 연륜이 필요한 부분이라 일단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커런츠 초청작 영화<선희와 슬기> 연출한 박영주 감독.ⓒ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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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중 가장 활기 띠었다" 20만 못 넘겼지만, 가능성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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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는 20만을 못 넘겼으나 정상화 원년의 체면은 살렸다. 올해 새로 시작한 커뮤니티 BIFF는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뉴커런츠 상등 4개 부문을 수상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저력은 올해도 확인됐고, <메기> 이옥섭 감독은 4관왕을 차지하며 일약 부산의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3일 오전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3회 영화제를 결산했다. 지난 2년간의 영화단체 보이콧이 풀린 가운데 정상화를 선언했으나 태풍의 영향을 받은 것이 주말 관객 수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체 관객도 3년째 20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영화제를 외면했던 영화인들이 대거 부산을 찾으면서 축제 분위기는 되살아났고, 커뮤니티 비프 등 남포동 원도심에서 진행된 행사들이 예상 밖의 호평을 받으며 전체적으로는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지난 2년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다. 보이콧을 주도했던 한국영화감독조합은 10월 5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행사를 열었고, 중단됐던 한국영화감독조합상도 재개하면서 부산영화제에 힘을 실어줬다. CJ, 롯데, NEW, 쇼박스 등 대형 배급사들의 파티가 재개된 것도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몫 했다. 최근 3년간 영화제에 참여했던 한 언론 관계자는 "지난 3년 중에 가장 많은 영화인들이 모여들고 활력과 생기를 띤 영화제였다"며 "최근 2년 간의 행사와 크게 비교될 정도"라고 말했다. 태풍에 관객 수 1만 정도 영향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 9월 4일 기자회견 때 말씀드렸던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기대에 부응하게끔 성공적으로 (영화제가) 치러지게 돼 감사한다"며 "프로그램 운영문제와 남포동의 커뮤니티 비프, 아시아필름마켓, 부산 클래식 등 새로운 섹션 등을 운영하게 됐는데 첫 시도임에도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또한 "올해 강조했던 세 개의 키워드가 화합, 정상화, 재도약이었는데, 화합과 정상화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다 완벽하지는 않았고 재도약의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며 "내년에 더 다듬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작년 수준을 뛰어넘을 것 예상했으나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주말 야외상영장 관객이 줄었다"라며 "19만 5081명이 찾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관객이 가장 몰리는 첫 주말에 태풍이 오면서 대략 1만 명 정도 관객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 아시아필름마켓에 대해서도 그는 "전반적으로 아시아 종합 콘텐츠 마켓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여전이 더 많은 바이어들을 부산에 불러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독립영화인들의 네트워크 행사인 '플랫폼 부산'의 경우 "아시아의 독립영화 감독들을 만족시켰고 결과도 좋았다"며 "호응도 커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성과는 부산영화제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가장 많은 영화인들이 왔고, 축제 분위기가 완벽하게 회복됐다. 지역민 참여도 심도 있게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커뮤니티 비프 성공, 마켓은 더딘 성장 올해 눈에 띄는 점은 '커뮤니티 BIFF'의 성공이었다. 시민과 관객들이 참여해 직접 만들어가는 영화제를 표방한 '커뮤니티 비프'의 경우 높은 관심과 열기 속에 참석자들의 만족감이 상당히 컸다. 부산영화제가 원도심 도시재생 역할을 담당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도시재생전문가인 커뮤니티 비프 프로그래머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모두 37회의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영화는 64편이 상영됐다. 참여한 관객 수는 6634명으로 집계됐다. 이용관 이사장은 "재도약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됐다"며 "내년이나 내후년쯤까지 가 봐야 지속가능성 확대 가능성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준비기간이 부족했어도 잘 치르고 호응을 얻었다. (이후) 예산 뒷받침을 활발하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포동에 영화를 상영하는 부분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양준 집행위원장도 "커뮤니티 비프의 경우 예매율이 80% 이상인 것도 있었고, 서부산권에서 영화제 행사가 치러지길 바라는 지역민들의 염원도 읽을 수 있었다"며 "현재의 관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필름마켓은 전년대비 참가업체가 20% 이상 늘고 미팅이 100건 이상 증가해 역대 미팅 건수 기록을 경신했으나 더딘 성장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용관 이사장은 마켓이 진행 중인 7일(일요일) 오전에 전시장 주위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린 것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교통이 통제되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행사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아시아피름마켓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마켓의 성패는 예산 및 노하우와 인력인데, 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 확보인데도 10년 전 출발한 이래로 꾸준히 감소했고, 출범 전과 비교해 현재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산 결정 과정에서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발전방향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전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 시작 전부터 효율적인 부산영화제작 활성화를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논의 중"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용관 이사장도 "조만간에 로드맵을 제시하겠다"면서 "중앙정부와 부산시 등 지자체 움직임도 활발해 토털마켓으로 전환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커런츠 수상작 외 8편 모두가 특별 언급 이날 결산 기자회견에선 올해 주요 수상작들도 발표됐다. 부산영화제를 대표하는 뉴커런츠 상은 중국 추이시웨이 감독의 <폭설>과 권만기 감독의 <호흡>이 각각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폭설>에 대해 "놀라운 완성도로 관객을 사로잡는 데뷔작으로 다차원적인 등장인물과 스릴 넘치는 액션 시퀀스를 통해 숙달된 장르영화 연출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호흡>에 대해선 "디테일한 인물 설정과 완벽한 컨트롤, 능숙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독창적이고 놀라우며 심오한 정서를 표현한 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 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홍준 심사위원장은 10개 작품의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올해 부산영화제의 지향점과 완성도 및 예술성을 고려했다"면서 "부산영화제가 존중하는 역동성과 다양성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두 편의 영화"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특별언급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영화의 국적이나 성별에 있어서 차이, 그 나라 역사의 특수성을 마주하는 영화 및 장르영화의 공식이나 대중성과 작가주의에 충실한 전통적인 영화, 실험적인 추구 등이 보였다"며 "모든 영화들이 뉴커런츠 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다고 봤다. 나머지 8편의 영화가 모두 특별언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예년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다큐멘터리 대상인 비프 메세나 상은 박경근 감독이 <군대>와 제임스 홍 감독의 <기억과 망각>에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군 문제와 관련된 다채로운 관점을 다루는데 있 사회에 뿌리 박힌 폭력을 본질을 드러내는 능력이 뛰어나며 동시에 유창하면서도 미묘함을 잃지 않은 편집으로 영화적인 효과를 더욱 극대화 했다"고 <군대>를 평가했다.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소재에 집중하는 헌신을 높이 사고 싶다"면서 "역사라는 주제의 중요성을 볼 때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밝혀낸 깊은 통찰력과 인간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은 정치적 문제를 다룬 대담함과 동시에 우아한 접근법을 보여줬다며 특별언급했다. 이혁상 감독은 경쟁에 오른 한국 다큐 6편에 대해 "사회적 이슈에서부터 개인적 이슈까지 아울렀다며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나 다른 심사위원들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프메세나상 심사위원인 중국의 자오 리앙 감독은 "편수도 많았고 굉장히 많은 정치와 사회를 담아내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라며 "심사를 통해 동남아의 영상수업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메기> 4관왕, 한국영화아카데미도 4개 부문 수상 올해 수상작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옥섭 감독의 <메기>였다. <메기>는 올해의 배우상을 비롯해 시민평론가상, CGV아트하우스상, KBS 독립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영화 <메기>는 코믹하면서도 줄거리를 쉽게 요약할 수 없을 만큼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이주영, 구교환 배우 외에 문소리, 명계남, 권해효, 김꽃비 등 카메오 군단도 화려하다. 이옥섭 감독은 전날인 12일 비전의 밤을 통해 시민평론가상, CGV아트하우스상, KBS 독립영화상 등을 수상하면서 "부산영화제에서 상받을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출연배우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활약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올해 부산으로 이전한 아카데미는 권만기 감독이 <호흡>으로 뉴커런츠 상과 KTH상을 받아 2관왕이 됐고, 안주영 감독의 <보희와 녹양>도 KTH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한가람 감독의 <아워바디>는 최희서 배우가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출품작 5편 중 경쟁에 오른 3편이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안았다. 지금은 학교에서 물러난 유영식 전 원장과 김태균 전 교수 등 교수진들이 지도 능력이 평가받는 대목이다. 이옥섭 감독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다. 최희서 배우가 수상한 올해의 배우상은 남자 배우에게 돌아가야 하는 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올해의 배우상은 심사위원을 맡은 고현정 배우와 유준상 배우가 각각 남녀 배우를 선정해 주는 상인데, 고현정 심사위원이 <메기>의 이주영 배우를, 유준상 심사위원은 남자가 아닌 <아워바디> 최희서 배우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유준상 심사위원은 "여자배우의 활약이 돋보이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선정 작품 경향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남자배우 대신 여자배우를 수상자로 결정했다"면서 "<아워바디>에서 최희서가 보여준 좋은 연기는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고, 인물의 변화를 몸과 마음과 표정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후보작 모두에서 좋은 연기를 봤다"면서 "모두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고 싶다" 덧붙였다. 지난 4일 개막한 2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3일 폐막식에서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식과 함께 폐막작 <엽문 외전> 상영을 끝으로 내년을 기약한다. 부산영화제 측은 2019년 영화제는 10월 3일 개막해 12일까지 진행된다고 밝혔다.

월남전 참전 할아버지의 고백, 민간인 학살 목격자의 증언

[BIFF 리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다룬 <기억의 전쟁>(2018)

1960년대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노래 중에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냐면, 1971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될 정도였다. 노래 가사와 영화 줄거리를 종합해보면 대략 이러하다. 동네 어른들의 걱정 근심을 한 몸에 받던 동네청년이 월남전(베트남전)에 파병되어 돌아온 이후 조국근대화에 이바지하는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주류 언론과 대중문화가 월남전을 기억하는 방식은 '승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사실 월남전은 한국군이 동맹국으로 참여했던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과 미국의 패배로 끝난 전쟁이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승자의 역사로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월남전은 '베트남특수'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한국 경제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덕분에, 박정희 정부의 성공적인 업적으로 기록됨과 동시에 참전용사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사실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려지게 된 것 또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단체들의 꾸준한 활동과 노력 덕분이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2018)은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시선에서 베트남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영화다. <기억의 전쟁>에는 크게 세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생존자들이다. 특히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던 응우옌 티 탄씨는 민간인 학살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몸에 큰 상처까지 얻게 되었다. 그녀 나이 고작 8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억의 전쟁>은 과거 월남전에 참전했던 이길보라 감독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길 감독의 할아버지는 감독에게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후 베트남에 부채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던 감독은 월남전 당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큐를 찍기로 결심한다. 수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한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와 메시지는 명료하다. 월남전은 1960년대 일어난 과거이고, 당시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는 언제나 이를 반대하는 참전용사들의 거센 항의 및 시위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렇다고 <기억의 전쟁>은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참전용사들을 '악의 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 또한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박정희 정부가 만든 희생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월남전 참전용사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대신,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당위성을 차분히 제시하는 영화는 오직 자신의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상처만으로 학살을 증언하는 탄 아주머니와 매우 닮아 있다.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 곳에 생존자들의 증언을 덧입은 영화적 전략 또한 인상적이다. 월남전과 관련하여 한국에 유리한 기억만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 <기억의 전쟁>이 일깨워주는 새로운 사실들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선대에 일어났던 과거라고 해도, 1968년 베트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생존자들과 여전히 침묵 중인 대한민국 정부와 학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참전용사들 사이, 우리는 월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한편 <기억의 전쟁>은 제23회 BIFF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 당시 정치적 문제를 다룬 대담함과 동시에 우아한 접근 방법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특별언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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