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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유성호

 
40여 편의 출연작과 3편의 연출작이 대부분 인도 하층 계급의 애환에 주목하거나 인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2005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맡는 등 세계 영화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이자 감독 난디타 다스가 신작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초대된 그의 연출작 <만토>는 1940년대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인 Saadat Hasan Manto의 삶을 다뤘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나 전형적인 전기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적절한 상상력을 발휘해 작가 만토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평생 서민을 대변하는 작품을 썼는지를 그렸다. 흑백의 화면에서 구성된 이 작가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사실과 상상력 사이
 

 영화 <만토>의 한 장면.

영화 <만토>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작가의 생애 중 1946년에서 50년을 택해 묘사했다. 해당 시기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인도와 그 안에서 다시 독립한 파키스탄 간 분쟁이 벌어졌던 때. 만토는 당시 시대를 관통하면서 폭력성, 매춘부 이야기 등 논쟁이 될만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만토는 논쟁적인 작가다. 그의 작품 중에선 선정성이 강하다며 정부로부터 금서로 지정된 것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래 구해 읽기도 한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매우 독창적으로 글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남성임에도 여성에 대한 공감력이 컸다. 매춘부를 보통의 사람으로 묘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매우 힘이 있는 문체다. 또한 이웃과 친구가 어떻게 적이 되어 가는지, 폭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강하다. 

70년 전 사람이지만 요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대립은 마치 한국과 북한 대립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런 사회상을 반영하며 여러 작품을 썼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여러 성적인 내용이 있음에도 그는 자기검열을 하는 대신 표현의 자유를 추구했다. 최근까지도 계속 재발견 되고 있는 작가다."


작가의 해당 시기를 취사선택한 것에 난디타 타스 감독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직전이라 매우 중요했다"며 "두 나라의 분리는 오늘날까지도 각 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겐 여러 진보적 친구들이 있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 당시) 무슬림이었던 그에게 친구들은 왜 무슬림인데 라호르(파키스탄 도시 중 하나)로 가지 않고 뭄바이(인도의 도시 중 하나)에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뭄바이가 파키스탄으로 가지 않는 이상...' 이라 답했다. 그만큼 그의 삶에서도 두 지역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인도 사회, 큰 변화는 없지만"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유성호

 
난디타 다스 감독은 "관객에게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던 외부 이야기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픽션을 가미했다"며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에 그 바깥의 이야기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일부 가상의 사건을 넣은 이유를 밝혔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자신이 영화에 참여하는 이유를 전했다. 

"만토의 삶은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세상을 향한 일종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겐 직업이 아닌 내 걱정과 의무를 드러내는 현실이다. <만토>를 만들면서 (사회적) 폭력이, 큰 사건이 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됐다. 전 이런 식으로 제 생각을 전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인도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하고 싶다.

슬프게도 만토가 활동하던 때와 지금 인도는 큰 변화가 없다. 하위 계층 사람들은 계속 억압받고, 상류층 사람들만 많이 변했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갖게 됐고, 소유물 역시 늘었지만 성노동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여성의 불평등 문제 또한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매우 느리게 혹은 갑자기 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인도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이 미국에서 시작됐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도 여성들도 서서히 말하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진 못하지만, 변화하고 있긴 하다." 


난디타 다스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NGO 단체에서 일하다가 연기자가 됐다. 굉장히 큰 변화인데 앞서 언급했듯 그는 영화를 일종의 사회 변화 수단으로 삼고 헌신하고 있었다.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어떤 외침을 위해서다. 인도는 아주 최근에서야 영국 제국주의 법이 없어졌다. 거기엔 반동성애법도 있었다. 물론 제가 연기하고, 연출하는 게 미리 계획한 삶은 아니었지. 어떻게 해야 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계속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제가 사회 복지 일을 할 땐 아무도 절 모르다가 연기를 하니 모두가 알아본다는 것이다. 정말 겉만 보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제가 이용할 플랫폼을 통해 제가 우려하는 것들, 제가 생각하는 세상을 표현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전 스스로를 사회적 대변자(social advocator)라고 생각한다. 지난 8년간 매월 잡지에 사회 이슈에 대해 글을 기고 중이다. 인도 대학과 여러 포럼에서도 발표하기도 한다. 영화인으로서도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여성 감독의 영화제 진출이 화두"
 
오랜 시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인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그 변화가 지지부진하다면 지칠 수밖에 없다. 영화를 통해 아동 인권, 여성 인권을 이어오면서도 지금의 인도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TV를 안 본다! (웃음) 집에 TV가 없다. 가끔 호텔 같은 곳에 묵을 때 TV를 보면 끔찍하다. 정말 부정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서로 소리치는 사람들,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끔찍한 뉴스임에도 음악이 배경에 깔리더라. 폭력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게 싫다. 차라리 부정적 사건을 모르는 게 낫다(웃음). 그것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제게 영감을 준다. 삶의 끝에서 일하는 사람들,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기자인 제 친구중 어떤 이는 살해당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 

그들에 비해 전 훨씬 많은 특권을 갖고 있고, 보호받고 있다. 시기가 나쁘면 제가 하는 사회적 운동에 당위성이 생기기에 그 자체로 동기가 된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가 '암흑의 시대에도 사람은 노래할 수 있을까, 사람은 노래할 것이다'라고 했잖나.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가면서 말이다."


사회적 운동은 세계 영화계를 감동시켰다. 칸영화제 등 영화의 축제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200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 때 일화를 물었다. 당시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 멕시코 출신 배우 셀마 헤이엑, 하비에르 바르뎀 등과 함께 격론을 벌였다.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엔 최고의 영화들을 본다는 생각에 설렜는데 정작 영화보다는 심사 회의 과정이 더 좋았다. 다양한 마음을 가진 9명의 심사위원이 저마다 이유를 내놓는다. 같은 영화를 봐도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 각자가 다른 경험을 쌓아왔기에 그럴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개개인이 이해하는 것이고, 감상은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때로는 다른 심사위원들에 동의할 수 없었고, 때론 동의하기도 했다. 성별, 나이, 문화 등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그만큼 달랐다.

영화제는 점점 우아한 장소가 돼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겐 특히 다양한 영화가 세상을 크게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영화제에도 젊은 관객이 많이 보이더라. 불행히도 인도에도 몇몇 영화제가 있지만, 부산영화제처럼 독립영화들이 폭넓게 소개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칸영화제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균형있게 소개한다."


부산영화제에 제안하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인도 영화<만토> 난디타 다스 감독.ⓒ 유성호


이 대목에서 난디타 다스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진행된 82명의 여성 영화인 퍼포먼스를 언급했다. "여러 영화인이 모였지만 그 안에 여성 감독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며 그는 "국제영화제의 위상이 여성을 중시하며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여성 감독의 국제영화제 진출이 화두다"라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뒤에서도 우린 이런 문제에 대해 꾸준히 말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이어졌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적대시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미투 운동은 성별대결이 아니라 몇몇 권력은 가진 남자들이 벌이는 문제와 관련 있다고 본다. 만토 작가 같은 세심한 남성들도 많다. 

부산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9년간 부산영화제가 받은 정치적 탄압에 대해 설명을 보탰다- 기자 주) 그간 탄압받은 사실은 몰랐다. 그럼 지금의 조직은 과거보다 나은 조직인가? 인도엔 검열이 매우 많다. <만토> 역시 대사 일부를 지적받았는데 이유를 묻는 당국에 난 '이게 만토가 실제로 한 말인데?'라고 답했다. 

영화제는 영화인만이 아닌 관객으로부터도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가 이뤄진다. 관객 스스로는 각자 힘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 제작자, 배급자 등이 목소리를 내듯 관객도 내야 한다. 인도는 영화제조차도 당국의 검열을 받는다. 절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한국은 세계 영화계의 일부다."


난디타 다스 감독은 "<만토>를 만들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며 "좀 더 자주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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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BIFF] 커뮤니티 비프, 춤추고 수다 떨고 영화보기에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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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빠져 허송세월 보낸 두 음악가...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

[넘버링 무비 108]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블레이즈>

많은 사람들이 영화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의 주연 배우로 알고 있는 에단 호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연기는 물론, 책을 쓰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한다. 무대 연출가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음악가이자 작곡가로도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가 연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리 없다. 영화 <첼시 호텔>(2001)과 <이토록 뜨거운 순간>(2007)을 통해 극장편 연출을 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아직 사랑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의외의 연출력을 선보인 작품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그의 재능이 엿보였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서는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참여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영화 <블레이즈>는 에단 호크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한층 더 섬세해진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컨트리 포크 음악의 성지라고 불리는 미국 텍사스 지역의 전설적인 작곡가 블레이즈 폴리(벤 딕키 역)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생전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또 어떤 음악들을 만들어 남겼는지 되짚어 나간다. 전체적으로 그가 출연했었던 <본 투 비 블루>(2015)와 유사한 모습이다. 그가 자신의 출연작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예술가 기질이 넘쳤던 쳇 베이커와 블레이즈 폴리의 삶이 닮아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품이 주목하고 있는 삶과 성격, 분위기와 같은 부분에는 분명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쳇 베이커의 블루스와 플레이즈 폴리의 컨트리 음악은 같지만 다른 듯, 슬픔을 자아내는 감성이 깃들어 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블레이즈 폴리 음악은 분명 컨트리 음악의 잔잔하지만 흥겨운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도 삶의 무게와 아픔들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플롯과 하나의 곡이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 또한 과거 실존했던 뮤지션을 소재로 하는 전기물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에단 호크 감독은 이 작품 <블레이즈>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해석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크린 위에 투영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함께 소화하고 나면, 블레이즈 폴리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관객들도 그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그의 음악을 찾아서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지향점이 아닐까. 내러티브로 구분할 때 영화는 크게 세 지점으로 나뉜다.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연인 시빌 로젠(앨리아 쇼캣 역)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 토막난 형태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근원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는 그의 삶과 죽음이 주변에 미친 영향과 그가 요절하기 직전 마지막 밤에 대한 대한 이야기다. 세 내러티브 모두 블레이즈 폴리라는 뮤지션의 삶 전체에 녹아있는 요소들이기에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그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아버지와 커피에 대한 일화를 언급하는 장면이다. 술과 커피를 좋아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턱이 부서진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어 관장을 계속 하면서까지 커피를 마셨다는 것.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장면들을 보더라도 그는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다른 이야기나 음악을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시빌 로젠에게도 마찬가지다. 넉넉치 못한 사정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순간에도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좋으니 나를 잊지만 말아달라는 모호한 표현을 전한다. 그의 재능을 방해했던 단 한 가지 문제는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자신이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술에 빠져 허송 세월을 보낸다. 앞서 이야기 했던 <본 투 비 블루>의 쳇 베이커와는 이 지점 또한 일정 부분 닮았다. 술을 마시고 폭력성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이들의 믿음을 저버린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드러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쳇 베이커와 달리, 블레이즈 폴리의 삶은 요절이라는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했다는 점일까. 그런 그의 곁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는 시빌 로젠의 모습 또한 쳇 베이커 곁의 제인의 슬픔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감내해내는 사랑. 양 쪽 모두가 아니라 어느 한 쪽만이. 에단 호크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블레이즈 폴리의 삶을 영화화 하기로 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모든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만이 스크린에 투영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생전에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음악가의 삶도 알려질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 <블레이즈>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줬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작품을 연출하는 기간 동안, 이 작업과 동시에 제시 페레츠 감독의 <줄리엣, 네이키드>(2018)라는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그의 다재다능함과 동시에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멀티 능력까지 갖춘 에단 호크. 앞으로 그가 보여줄 더 다양한 모습들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에서 에단 호크와 함께 했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의 등장은 매우 짧은 순간 이루어지지만, 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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