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한 곳, 무자비한 곳, 목구멍 풀칠해 버텨내 살아내는 것도 벅차. 세상은 잔인한 곳. 먹고 먹히는 거지같은 세상. 붙잡히면 내빼야만 해. 일단 걸리면 물어뜯길 준비나 해." - 뮤지컬 <웃는 남자> No.02 '세상은 잔인한 곳(It's a Cruel World)' 중에서


잔인한 시대였다.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면서 막대한 부가 쏟아지던 영국. 부를 독점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부유함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희소한 물건을 넘어, 이국적 동‧식물로도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사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형의 아이들이 전시용으로, 애완용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나 선천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수요가 있는 곳에 시장이 생기는 법. 이제 전문적으로 기형의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집단이 출연했다. 콤프라치코스. 아이들을 납치해 뼈를 뒤틀고 입을 찢은 뒤 팔아넘기는 자들. 어린 그윈플렌 역시 콤프라치코스에게 붙잡혀 강제로 입이 찢어졌다. 그리고 버려졌다. 숲 속에서 추위에 떨던 그윈플렌은 동사한 한 여인의 품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우르수스와의 첫 만남 우르수스는 그윈플렌과 데아를 거두면서 세상의 잔혹함에 대해 설파한다. 그는 어떤 전사를 지니고 있던 것일까. 그는 어떤 과거를 관통했던 것일까. 현실의 부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부조리가 잘못됐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가 택한 건 구조적 변혁이 아니라 개인적 생존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 EMK뮤지컬컴퍼니


그윈플렌은 그 여자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방황하다가 떠돌이 약장수인 우르수스의 마차를 마주한다. 세상의 끔찍한 섭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렇기에 그 섭리를 지극히 혐오하면서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우르수스. 그러나 입이 찢어진 남자아이와 눈이 먼 여자아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자기 품으로 거둔다.
 
우르수스의 보살핌 아래에서 장성한 그윈플렌과 데아는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유복한 건 아니었지만, 그윈플렌과 데아는 그래도 함께 노래하고 함께 꿈꿀 수 있었다.
 
이 쇼의 주인공은 찢어진 입 덕분에 '웃는 남자'로 불리는 그윈플렌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독특한 광대의 얼굴을 구경거리 삼아 몰려들었다.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작은 그윈플렌을 보자마자 이 기괴한 외양의 남자에게 매료된다. 그윈플렌의 혈통에 대해 알게 되기 전까지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관객 앞에 선 '웃는 남자'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 당해 강제로 입이 찢긴 그윈플렌. 그는 언제나 '웃는 남자'이다. 그가 실제로 웃고 있든, 웃고 있지 않든, 사람들은 그의 찢어진 입술만을 바라본다. 그의 겉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봐 준 건 그와 곁에 있던 밑바닥 사람들 뿐이다. ⓒ EMK뮤지컬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아래 EMK)의 신작 <웃는 남자>는 '역작'이라 불릴 정도로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는 작품이다. EMK는 라이선스 작업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EMK산(産) 대형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올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다. <웃는 남자>는 그 우여곡절의 역사에 기념비가 될 만한 성과이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175억 원의 제작비를 쏟았다는 <웃는 남자>는 그 돈을 쓴 값을 톡톡히 보여준다.
 
우선 외형적으로 딱히 흠결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체에 가깝다. 모두가 경탄하는 무대가 우선 그 첫째이다. 오필영 무대감독은 자신의 결과물을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충분하다. 상하좌우뿐만 아니라 전후로도 무대를 적극 활용하면서 대극장 무대의 공간감을 극대화시켰다.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에 충실하면서도, 기존까지 관객들이 프로시니엄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깨트린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탈출하는 콤프라치코스 원작에서 나오는 개념을 무대 위에서 애써 설명하려다 보면 거추장스러운 부연에 그치고 말 때가 있다. <웃는 남자>는 그 한계를 시각적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작 중에 끊임없이 '콤프라치코스'의 이름이 거명되고, 캐릭터의 입을 빌어 그 개념이 설명될 때의 느슨함을 상쇄하고자 한다. 무대 활용이 특히나 돋보인다. ⓒ EMK뮤지컬컴퍼니

 
로버트 요한슨의 연출,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곡, 잭 머피의 작사라는 트라이앵글은 권은아 협력연출의 번역과 김문정 음악감독의 손끝이 더해지며 보다 완벽해졌다. 음악의 힘은 미려한 가사를 통해 보다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었고, 그 힘은 김문정 음악감독의 지휘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객석 전체를 전율케 한다.
 
물을 튀기는 빨래터 신을 포함해 작품 전체적으로 안무의 구성도 짜임새가 확고하다. 의상은 매혹적이면서도 세련됐고, 적재적소에 쓰인 영상도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간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외적 요소들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서로 조응한다. 결과적으로 <웃는 남자>는 대극장 뮤지컬을 보러 가는 관객의 시각적‧청각적 기대를 십분 만족시킨다. 최단 기간 10만 관객 돌파에 연장 공연까지 괜히 이뤄진 게 아니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그윈플렌과 데아 그윈플렌의 세계는 데아였다. 조시아나로 대변되는 세계에 잠시 흔들렸던 그윈플렌은 다시 데아에게 돌아온다. 어디서 많이 본 구도, 많이 본 플롯이지만 전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데아의 캐릭터 묘사는 두고두고 아쉽다. ⓒ EMK뮤지컬컴퍼니


물론, 내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아쉬움은 있다. 특히, 데아와 조시아나로 대비되는 여성 캐릭터 쓰임이 그렇다. 크게 보면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와 루시의 대비에서 여전히 채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데아는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주로 그윈플렌을 기다리는 역할로 한정된다. 흰색을 활용하여 순수함을 부각시키고 이미지화하는 여성 캐릭터는 사실 많이 전형적이다.
 
화려한 색감의 조시아나 공작은 본인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내 안의 괴물'을 부르며 외양은 아름다우나 내면의 뒤틀림을 인정한 조시아나는 그윈플렌과 정반대의 위치에 놓여있던 인물이다. 오히려 그 인물이 그윈플렌의 의회 연설을 유일하게 귀담아 듣게 된다. 모순적이면서도 풍성한 매력을 더 뿜어낼 수 있었던 조시아나이지만, 안타깝게도 극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제한적이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조시아나 공작의 등장 아름다운 외모이지만 그 안에 괴물을 품은 사람. 조시아나는 그 괴물을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풀어내는 인물이다.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훨씬 풍성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조시아나를 위한 넘버가 조금 더 있어도 좋았을 것이다. ⓒ EMK뮤지컬컴퍼니


그래도 여성 원톱극을 표방했음에도 여성 혐오적 캐릭터 설정으로 수준 이하의 완성도를 보였던 <마타하리>보다 훨씬 낫다. 또한, 이는 전체적으로 주연과 조연의 밸런스가 잘 안 맞은 탓도 있다. 앤 여왕이나 더리모어 경처럼 훌륭한 신 스틸러들이 있음에도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치 않다. 바꿔 말하면, 그 적은 기회 속에서 조연 배우들 중 누구 하나를 지칭할 것 없이 모두가 제 역할의 이상을 해낸다.
 
<웃는 남자>의 휴머니즘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낙원에 다다른 그윈플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귀족들의 세계로 안내된 그윈플렌.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기만 한 그는 자신이 귀족으로서 가지게 될 권력으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 시도는 철저하게 실패한다. 세상은 한 개인의 선의만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 EMK뮤지컬컴퍼니

 

"이제 난 뭐든 할 수 있지, 세상을 구하는 영웅처럼. 버려진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잔인한 세상 용서하기를. 하늘이 준 기회, 하늘이 준 오늘 세상 밝히리라." - 뮤지컬 <웃는 남자> No.22 '모두의 세상(I Could Change The World)' 중에서

 
어렸을 때 버려졌던 그윈플렌은 사실 고귀한 혈통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그는 '최고로 높은' 귀족이 됐다. 거대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화려한 옷을 입고, 하얀 가발을 썼다. 그윈플렌은 '모두의 세상(I Could Change The World)'을 부르며,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르수스에게 보낸 금화는 '배달 사고'로 인해 대부분 전달되지 못했다. 의회에서 부르는 '그 눈을 떠(Open Your Eyes)'의 울림은 여왕과 귀족에게 전혀 닿지 못했다. 그가 천국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사실 진정한 천국이 아니었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를 배경으로 쓴 <레미제라블>과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혁명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뒤엎으려고 시도하는 <레미제라블>에 비해, <웃는 남자>는 그윈플렌이 부와 신분을 포기하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바꿀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구조를 바꾸는 건 개인 혼자서 불가능하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눈을 뜨지 않는 이들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음에도 벽 너머의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귀족들. 시각장애를 지녔지만 상대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데아와 상반된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속해야 할 세계가 어디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돌아갈 세계 역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 EMK뮤지컬컴퍼니

 

"그 눈을 떠. 지옥 같은 저 밑바닥 인생들. 그들이 견뎌야 할, 치러내야 할 참혹한 대가. 눈 속에서 길을 잃고 뼛속까지 얼어붙어 굶어주길 기다려 본 적 있는가. 빵 한 조각, 석탄 조각 구걸하며 우는 기분 모를 거야. 그 눈을 더. 지옥같은 가난과 고난 속에 저 벽을 무너뜨려." - 뮤지컬 <웃는 남자> No.27 '그 눈을 떠(Open Your Eyes)' 중에서

 
그윈플렌이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그가 눈물을 흘리며 의회에서 혼자 절규하더라도,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이 스스로 그 기득권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웃는 남자>는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저 한 사람의 대화와 설득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윈플렌의 노래를 향한 관객의 박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앤 여왕이 그윈플렌을 향해 날리는 조롱과 멸시는, 기실 이 사회의 기득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한 단편이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웃는 남자>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지옥에 있는 이들은 낙원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 낙원을 등지고 기꺼이 지옥으로 발걸음을 돌린 그윈플렌을 통해, <웃는 남자>는 누가 더 '인간적'인지 역설한다. 장애를 지니고 있고, 상처 받고, 소외당하며 버려진 이들이지만 서로 연대하여 희로애락을 나누는 밑바닥 인생들. 이 낮은 자들은 카르텔 안으로 똘똘 뭉쳐 착취에 열을 올리는 높으신 분들과 강렬하게 대비된다. 민중 지향적이었던 빅토르 위고의 휴머니즘이 뮤지컬 <웃는 남자>에도 남아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메시지 탓에 <웃는 남자>를 보고 나오는 뒷맛이 매우 씁쓸해진다.
 
이 거대한 형용모순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데아와 함께 밑바닥으로 돌아와 데아와 재회하지만, 심장이 약했던 데아는 그윈플렌의 곁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데아의 죽음은 이 밑바닥 세계 역시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착취당하는 이들의 삶은 고단하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천국의 바탕이 된 지옥, 지옥으로 세워진 천국 그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다. 그윈플렌이 행복할 수 있는 세계는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가. ⓒ EMK뮤지컬컴퍼니


연극‧뮤지컬 배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군 중 하나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6년에 발표한 '2015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연극‧뮤지컬 배우의 평균 초임연봉은 703만 원, 평균연봉은 980만 원이었다. 3년 전 조사이지만, 2018년의 현실이 2015년과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반면, 어떤 배우는 회당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게 현실이다. 1년에 980만 원을 버는 배우와 한 회차에 5000만 원을 버는 배우가 공존하는 걸 그저 자본과 시장의 논리로만 이해해도 되는 걸까. 스타마케팅에 의존한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주연 배우와 조연‧앙상블 배우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동시에 앙상블에서 조연을 거쳐 주연까지 성장할 기회의 사다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정 배우의 회차당 출연료가 갱신되면, 다른 인기 주연급 배우들의 몸값도 덩달아 상승하게 된다. 물론, 그만큼 객석을 채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계약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주연 배우의 몸값을 위해 어딘가에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 <웃는 남자>에 출연 중인 한 배우는 최근 자신의 SNS에 부실한 무대 환경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 열악한 처우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배우만이 아니다. <웃는 남자>는 화‧수‧목 평일 티켓값과 금‧토‧일 주말 티켓값이 다르다. 주말 티켓값이 평일보다 1만 원 더 비싸다. 같은 공연의 평일과 주말가에 차등을 둔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웃는 남자>는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VIP석 14만 원'이란 관객들의 심리적 상한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이 훌륭한 선례를 오디컴퍼니의 <지킬 앤 하이드>도 그대로 따라했다. 주말을 이용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피해가 더 쏠리는 건 덤이다.
 
관객이 지불하는 티켓값이 오르는 만큼 주연뿐만 아니라 그 외 배우들의 처우도 개선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연습 기간 동안 아무런 페이를 받지도 못하고, 차기작 캐스팅을 빌미로 출연 단가를 후려치기 당하고, 그나마 정산조차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올라가기로 했던 공연이 갑자기 엎어져도 어디 호소할 곳도 없는 게 다수 배우의 현실이다. 앙상블들의 페이는 동결된 지 꽤 오래이다.
 
스태프는 또 어떠한가. 어떤 회사가 갑작스럽게 폐업을 해도 그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른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또 하지만, 일반 스태프는 퇴직금조차 못 받고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2500시간 넘게 무료노동을 해야 했던 충무아트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5월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해결된 것 없이, 노동쟁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6일, 김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를 준비하던 조연출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조연출은 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회사는 '또' 페이가 밀리기 시작했다는 뒷말이 들려온다.

이 모든 게 EMK의 혹은 <웃는 남자>의 탓은 아니다. 몇몇 작품에서 높은 몸값을 받는 배우 개인의 문제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웃는 남자>의 메시지에서 굉장한 형용모순이 느껴진다. <웃는 남자>라는 무대 자체가 부자들의 낙원이라면, 이 낙원은 어떤 사람들의 지옥으로 세운 것일까. 귀족들을 향해 "끝도 없는 욕망 속에, 길들여진 시선 속에, 누군가의 지옥으로 세운 천국"이라고 그윈플렌은 일갈하지만, 정작 그 그윈플렌의 낙원을 위해 희생된 누군가는 없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그 문장 자체를 <웃는 남자>는 가장 잘 표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뮤지컬 산업의 외양적 화려함과 내면적 부실함, 밖으로는 낭만을 팔면서 안으로는 착취로 굴러가는 거대한 모순이 이 작품 하나에 다 집약되어 있는 것일지 모른다.
 
<웃는 남자>를 보며 내가 웃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대형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대형 창작극이다. 어릴 때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당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우르수스에게 몸을 위탁한다. 무사히 성장한 그윈플렌은 데아와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꾸지만, 갑작스레 자기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궁으로 소환된다. 오는 11월 4일까지.

▲ 분명한 수작, 하지만... 뮤지컬 <웃는 남자>는 초연임에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몇몇 단점을 지녔지만, 쇼 비즈니스에 충실한 이 대극장 극은 장점으로 단점을 상쇄하고 남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이 자꾸만 입안에 맴돈다. 예술의전당을 거쳐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로 온 <웃는 남자>는 11월 4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간다. ⓒ EMK뮤지컬컴퍼니

웃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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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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