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엘리야

이엘리야 ⓒ 이희훈


배우 이엘리야는 본인 연기에 몇 점 정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시험지 안 내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점수 매기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질문 하나도 그냥 대충 넘기는 법이 없었다. 이엘리야는 곰곰이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대답했다. 지난 20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배우 이엘리야를 만났다.

"나도 도연이를 닮고 싶다"

이엘리야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속기사 '이도연'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속에서 도연은 막힘 없이 모든 일을 척척 해냈다. 법원 내에서 '을'로 보일 수 있는 계약직 속기사였지만, 판사들에게도 절대 지지 않았다. 드라마 중후반부에야 밝혀졌지만 도연은 낮에는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고 밤에는 웹소설을 쓰는 작가로 활약했다. 동시에 판사 정보왕(류덕환 분)과의 법원 안의 러브라인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쁘고 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엘리야는 자신이 맡은 이도연이라는 인물을 두고 "내공이 깊은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나도 도연과 같은 여자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연기하는 도연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해 먼저 고민했고 도연이가 탄생했다"라고 덧붙였다. '커리어우먼' 같은 역할이지만 이엘리야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극 중 도연은) 알파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판사님들 앞에서 당당하게 본인의 일을 하지 않나. 동시에 본인의 꿈을 위해 밤에는 글을 썼다. 본인이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완벽하게 해낸 멋지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도연에게 보왕은 "법원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엘리야는 보왕과의 첫 데이트를 떠올리며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편견과 오해로 도연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아픔과 실망이 느껴졌다"고 답했다.

"뺨을 때릴 때 너무 세게 때려 기억에 남는다. 류덕환씨가 그 손이 꿈에 나올 것 같다고 그러시더라. (웃음)"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유년시절

 이엘리야

그 인물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그 인물을 책임질 수 없겠더라. 그런 생각을 안 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그동안 해왔던) 악역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 이희훈


그간 이엘리야는 KBS <쌈 마이웨이> OCN <작은 신의 아이들> 등에서 때로는 악녀, 때로는 사연 많고 차가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밝은 연기를 해보고 싶다. 익숙하지 않은 새롭고 신선한 모습을 (시청자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 악역을 많이 했는데 악역이라 맞지 않는 건 아니었고 연기 자체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물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그 인물을 책임질 수 없겠더라. 그런 생각을 안 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그동안 해왔던) 악역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고 싶은 역할로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를 꼽았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내일도 칸타빌레>(2014)로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배우 우에노 주리가, 한국에서는 심은경이 각각 '노다메'와 '설내일'을 연기했다.

이엘리야는 "노다메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모두가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길이 아닌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밝게 나가는 캐릭터다. 자신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고 밝게 나아가는 인물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에노 주리나 심은경의 이미지와 이엘리야의 이미지가 선뜻 겹쳐지지 않아 "너무나 의외"라고 하자 이엘리야는 웃으면서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더 그렇다"고 선선하게 대답했다.

 이엘리야

"무대 위에서 내공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을 한 번 하고 나니 다른 연기를 해봐야지, 싶어 공개 오디션에 참여했고 데뷔를 하게 됐다." ⓒ 이희훈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KBS 합창단에 들어간 이엘리야는 성악, 발레 등 예술적인 분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5개월여 간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전공으로 뮤지컬을 택했다. 그것을 계기로 연기에 처음 발을 들였다.

"무대 위에서 내공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을 한 번 하고 나니 다른 연기를 해봐야지, 싶어 공개 오디션에 참여했고 데뷔를 하게 됐다."

이엘리야는 그렇게 <미스 함무라비>를 연출했던 곽정환 감독의 작품인 tvN <빠스껫 볼>(2012) 오디션을 보고 단숨에 주연 배역을 받아 배우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곽정환 감독과 만났다. 자신의 '처음'을 알고 있는 사람과의 재회는 누구라도 긴장할 법하다. 곽정환 감독은 5년 만에 다시 작품을 하게 된 이엘리야를 보고 "놀랐다"고 말했단다.

이엘리야는 "사실 무엇에 대해 놀랐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별로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며 웃었다.

"답을 듣는 것보다 '놀랐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 혼자 상상하고 싶었다. 그 설렘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웃음)  

 이엘리야

"내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느꼈던 의문에 대한 것,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글로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기를 10년 가까이 써왔다. 서툴더라도 내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 이희훈


그는 도연이처럼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느꼈던 의문에 대한 것,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글로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기를 10년 가까이 써왔다. 서툴더라도 내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는 최근 <논어>를 다시 읽고 있다.

"목소리가 좋아 라디오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뮤지컬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엘리야는 "시간은 기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할 수 있지 않을까 믿고 가겠다.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면서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서 이도연이 보였다.


이엘리야 미스 함무라비 쌈 마이웨이 작은 신의 아이들 류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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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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