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태희'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김지현이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시연에 나섰다.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태희'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김지현이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시연에 나섰다. 2013년 재연 당시 작품에 합류했던 김지현은, 이번 삼연에서도 작품과 함께 돌아왔다.ⓒ 서정준


"손이 차네요."
"마음이 뜨거워서 그래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속 대사 한마디. 인터뷰를 마치고 아쉬움에 건넨 인사 한마디에도 태희가 묻어난다. 시공간을 초월한 인우와 태희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지만, 오히려 활짝 웃어 보인다. 그들의 사랑이 슬픔이 아니라 행복이기를 바란다면서.

5년 만에 다시 막이 오른 <번지점프를 하다>(아래 <번점>)에서 태희로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배우 김지현을 지난 6월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태희'를 할 때의 김지현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태희'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김지현이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시연에 나섰다.

비 오는 날, 낯선 남자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 인우는 이때의 태희를 잊지 못해 한참을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우산을 든 채 서성인다. 하지만 인우만 태희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태희 역시 그를 기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우산을 씌워준 것, 운동화 끈을 묶어준 것 그리고….ⓒ 서정준


<번점>은 이병헌, 고 이은주 출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비 오는 날 뛰어든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17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재회한다는 안타까운 스토리의 작품이지만, 뮤지컬에는 '그게 나의 전부란 걸', '혹시 들은 적 있니' 등의 감성적인 넘버가 더해져,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번점>은 확실히 음악이 지배하는 작품이에요. 저도 극장에 들어와서 리허설할 때,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한 곡 한 곡이 공기까지 장악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연습실에서도 피아노 한 대로 연습하는데, 런을 돌 때나, 인트로에도 감정이 확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 오는 날 인우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의 모습은,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답다. 배우들 사이, 우스갯소리로 태희의 매력은 "예쁘니까"라고 말할 정도. 특히나 김지현은 '첫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을 정도로 (외모뿐 아니라 분위기도) 곱다. 물론 그에 반해 <카포네 트릴로지> 등에서 내보인 강렬한 이미지도 떨쳐버릴 수 없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웃음) 제가 총, 칼 들고 있는 모습이 연기인 줄 아실 거예요. <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등 다양한 작품을 보시면 '저런 면모도 있구나' 하실걸요! 처음에는 차갑고 새침하게 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얘기하면 달라진다고. (웃음)"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김지현은 너무나 밝고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사랑스러운, 어느 작품에서도 본 적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에너지가 다운돼 있거나, 차분해 보이는 순간이 있죠. 제가 즐거운 거 좋아하고, 웃긴 사람도 좋아하는데, 그 나머지 감정은 크게 나타내지 않거든요. 나머지 감정은 공연하면서 쏟아내는 거 같아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연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태희'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김지현이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시연에 나섰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인연에 관한 작품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들. 세상엔 정말 그런 사랑이 있을까.ⓒ 서정준


인우는 학생들에게 분필로 칠판에 수평선을 '쭈욱' 긋고는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암시하듯,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어렵게 맺어진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인연, 있다고 믿어요. 작품을 할 때도 다 인연으로 엮이거든요. 필석 오빠(강필석)도 얘기했는데, 작품에도 생명이 있는 거 같다고. 작품보고도 '팔자인가보다, 운명인가보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작품이 가진 기운이나, 느낌 때문에 그런 건데, 시간을 거쳐 닮기도 하기만, 이 구성원으로 만나 작품에 시너지도 나고, 밸런스가 맞는구나, 하는 거죠. 지금까지 다행히도, 모가 나거나 힘들거나 그런 적이 없어요. 작품이 끌어들이는 힘에 의해 인연이라는 게 진짜 있다고 생각되어요."

<번점>은 인우와 태희의 사랑뿐 아니라, 17년이 지나 환생을 한 현빈과 인우가 서로를 알아보고 또다시 인연을 잊는 내용을 담는다. '환생' '동성애' 등 경계 없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요소는, 보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환생, 젠더의식 등의 상황적 요소를 떠나, 단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달라진 외양이나 성향으로 다가온다면, 과연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김지현은 웃으며 "사랑해야죠"라고 답했다.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어떤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이야'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은 해봤어요. 나와 그 사람만이 아는 것만을 표현한다거나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우가 현빈을 보고, 태희를 느낀 것처럼,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던져버리면서 혼란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감정에 이끌리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게 내릴 수 없는 마음의 결정이다.

"과연 내가 인우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사랑할 거 같아요. 사랑해야죠. 태희를 사랑하는 인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태희가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거야'라고 하지만, 인우의 사랑을 보면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죠.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까지도 태희를 잊지 못하잖아요."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우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또 결혼도 했지만, 현빈에게서 느껴지는 태희를 향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흔히,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몇 년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단정 짓기는 하지만, 그런 숫자 역시 <번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흔히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유효기간이 있겠죠? 설렘이나 열정, 뜨거움 같은. 막 사랑하는, 그 감정, 서로의 체취와 눈빛과…. 어쩌면 사랑은 호르몬으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대사가 사실은 맞을지도 몰라요. 본능적인 것이고, 상대방은 보고, 목소리를 듣고, 체취를 맡고, 마음이 끌리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호기심, 이런 감정이 만족, 충족되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커지는 거 같아요.

그런 감정으로 평생을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한 선배가 '그런 감정의 사랑으로 평생을 어떻게 사느냐. 힘들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맞는 거 같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情), 전우애로 바뀐다고 하잖아요. 삶의 동반자, 제일 친한 친구로요. 힘들 때나 기쁠 때, 가장 먼저 걱정하고 기뻐해 주는 사람이 사랑이 되는 거죠."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잊고, 모든 것이 빨라지는 이 시대에 <번점>이 울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경하리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그 애틋함이 더해진다. 김지현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감정은 어떨까.

"관계 자체를 잘 노력해야 하는 거 같아요. 서로 간의 희생도 필요하고, 관계를 위해 더 마음을 쓰고 채우는 과정이요.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게, 다른, 더 좋은 감정으로 바뀔 수 있게요. 그래야 평생을 함께 살아가지 않을까요. 이해하고 뭔가를 얻으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서로가 배려하고, 포기하고, 희생하고, 정말 그런 게 필요한 거 같아요."

그들은 행복했을까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김지현, 강필석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대학교 MT 당일, 인우와 태희는 MT를 가는 대신 함께 산에 오른다.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다는 태희의 말을 이때의 인우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정준


김지현은 이번 무대에 오르면서 재연 때와는 다른 태희를 표현하고자 했다. 태희의 매력이라던지, 그의 감정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했다고.

"태희의 매력이 정말 어려웠어요. 필석 오빠와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함께 갈 때가 종종 있었는데, '태희의 매력이 뭘까' 물어보기도 했어요. 재연했을 때와 좀 다르다기보다, 제가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걸 표현해보고자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인우가 태희를 사랑하는 되는 매력은 뭘까. 사실 태희는 캐릭터를 많이 잡아야 하는 스타일보다, 배우 자체의 매력이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에 주어진 힌트는 있지만. 인우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잖아요. 관계에 대한 순수한, 순박한 인물로요."

태희가 되기 위해 그가 가진 매력을 고민했다. 이는 관객들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함이었을 터. 하지만 영화 속 태희와 극 중 태희는 너무 달랐다. 무대도 무대지만 표현, 즉 넘버로 인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 속 태희의 매력과 대본에 있는 태희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속 태희가 더 신비하고, 새침하고, 인우에게 손을 내밀면서 더 묘해지는 느낌이에요. 적극성을 드러내지 않고, 인연을 맺는 것에 대해서도 뜸을 들이고 산에서 하는 대사도 그렇고. <번점>은 뮤지컬 넘버가 강한 요소로 작용해, 작품의 정서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거 같아요. 넘버의 요소에 함정에 빠지는 순간도 많았고, 그런 신을 해나가기 답답하기도 해서, 재연에는 그 분위기에 쏠렸다면, 이번에는 노래에 너무 빨려 들어가지 않게, 환기를 시키려고 했어요."

장면 장면도 슬펐고, 덩달아 넘버까지 그 감정이 묻어났다고. 김지현은 슬픈 감정과 분위기에 빠져들기보다, 그 상황을 더 행복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정말 재연 때는 매회 울었어요. '우리 애인 얼굴 한번 보자' 할 때부터 감정이 벅차올라 넘버도 슬프게 불렀는데, 너무 분위기에 빠져서 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물론 남자친구의 입대 전날이니까 슬프기도 할 거고, 인우도 불안할 거예요. 태희는 인우를 기다릴 거라고 하지만, 인우는 잘 몰랐기 때문에 확신을 더 가지려고 한 거고. '걱정하지마, 난 여기 있을 거야'라는 대사가 그렇게 슬플 수 있을까요."

인우의 입대 전날,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눈물이 앞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흘러나오는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이라는 넘버는 감정을 극대화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행복' '따뜻한 마음'으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지금은 행복하게 최대한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불안한 그를 안심시키고, 내가 찾아갈 거야, 라면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런 감정으로 임하려고 해요. '울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왜 울지? 우린 너무 사랑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정말 그 순간을 소중하게, 마지막에 만났을 때도,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있지만, 인우를 보면서 웃고 싶다. 감정이 벅차오르긴 해도, 잘 추스르고 인우에게 '미안해, 내가 왔어' 모두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게."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태희' 역에 더블캐스팅된 배우 김지현이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시연에 나섰다.

불의의 사고로 인우와 함께하지 못하게 된 태희. 그러나 2막에서도 끊임없이 태희는 인우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인우는 현빈을 통해 태희를 본다.ⓒ 서정준


태희는 <번점> 2막에 등장이 많지 않다. 하지만 마치 매 순간 함께 하는 듯하다. 태희의 목소리가 울릴 뿐 아니라, 현빈의 행동에서 태희가 보이기 때문이기도.  

"뮤지컬이 영화보다 더 강점인 부분인 거 같아요. 영화에도 회상장면이 있지만, 무대에는 목소리나 선율이 깔리잖아요. 보는 분들이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되고, 음악이 가진 힘과 더해져 파급력이 생기는 거죠. 공연 내내 태희에게 지배당하는 듯한 느낌은 음악의 힘이 큰 거죠."

사랑하는 인우가 현빈을 보면서 자신을 느끼는 장면을 볼 때, 행여나 질투(?)가 나진 않을까. 물론 극 속에서는 마주할 수 없지만.

"우린(태희와 현빈) 하나인걸요. (웃음) 사실 장면마다 사랑해야 하는데 미울 때도 있어요. (웃음) 물론 무대, 조명 등 채워주는 것들이 있는데, 배우들이 연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행복하고, 가슴이 아프고, 그리워하는 감정이에요. 다른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우는 태희와 올랐던 산에 현빈과 다시 오른다. 대사와 인물은 달라도 분위기의 결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그 장면에서 울컥한다고.

"마지막에 인우와 현빈이 산에 올라갔을 때 메아리처럼 노래하는 부분에 울컥해요. 저 때 저 산에 너무나 같이 다시 보고 있다는 게 소름 끼칠 정도로. 재연 때는 두 사람의 모습에 울컥한 적 있는데, 선율이 고조되다가 흘러가잖아요, 첫 공연 때 엄청나게 울었어요. 태희와 인우가 나눴던 순간까지 떠올라서, '아 정말 음악이 미치게 만드는구나' 싶죠."

배우로서 김지현은 "많이 웃는 게 행복인 거 같아요"라면서 행복을 강조했다. "연습할 때 행복하고, 공연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오늘도 행복해요"라면서 "역시 작업할 때 제일 행복하고요"라고 웃어 보였다.

과연 인우와 태희는 행복했을까. 김지현이 아닌 태희가 답했다.

"그럼요! 단연코! 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포스터. 지난 6월 12일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관객을 찾는다. 재연에 이어 5년 만에 돌아온 세 번째 공연.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연기하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감정 표현이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포스터. 지난 6월 12일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관객을 찾는다. 재연에 이어 5년 만에 돌아온 세 번째 공연.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연기하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감정 표현이다.ⓒ 세종문화회관



죽고 싶었던 시인 이상... '이 사람'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인터뷰] 뮤지컬 <스모크> 시인 이상의 또 다른 자아 '홍' 맡은 배우 유주혜

시인 김해경, 필명 이상. 그는 시를 쓰는 삶에 지쳤다. 나라도 뺏기고 언어도 뺏기고 눈뜨고 날강도를 당한 이런 시국에서 그는 20세기에 나서 21세기를 살려 하지만, 다른 이들은 19세기에 나서 18세기로 향하고 있다. 결국 "미친 글쟁이의 미친 헛소리", "무력한 지식인의 할 일 없는 헛소리"라는 비난에 지쳐버린 그는 "인생의 마지막 날 만큼은" 스스로 정하고자 한다.시인은 어린 아이(孩)로 돌아간다. 바다(海)에 가서 닿고 싶은,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어린 아이. 그리고 이 날카로운 현실에 본인 대신 싸울 이를 꺼낸다. 모든 것을 초월할, 이상(李箱)의 이상(理想)적인 존재, 초월하고자 하는 그 욕망의 대리인, 지친 '해'를 대신해 종착지에 추락할 초(超). 김해경은 거울 속 세계로 들어가 해가 되고, 자기를 대신하여 글을 쓸 초를 꺼내 든다.그러나 김해경 본인이 견딜 수 없던 세계를 그의 초월적 자아가 쉬이 돌파할 수 있을 리 없다. 초는 글을 쓰고 또 썼지만 바뀌는 건 없다. 결국 초 역시 삶을 포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이상이되 이상이 아니기에 이상처럼 스스로 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역시 안으로 들어간다. 초는 어럽게 해를 마주한다. 모든 것을 잊고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사는 해를 마주한 초는 해를 꼬드겨 홍을 납치하고자 한다.붉은 머리의 홍(紅). 이들이 닿고 싶어하는 넓은 바다, 생의 의지, 고통, 동시에 아프지만 상처를 낳게 할 빨간 약, 사랑·그리움·미움·증오·열망을 담은 채 오래 전에 버려진 보따리…. 초와 해 모두 바다에 닿고 싶어 하지만 초가 바라는 바다는 너무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죽음의 바다요, 해가 원하는 바다는 너무 깊어 마르지 않고 얼지도 않는 생의 바다였다.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실체 없는 존재들이 이상 안에서 갈등한다. 이상은 그래서 생을 고를 것인가, 스스로 결심한 대로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할 것인가.뮤지컬 <스모크>, 이상의 연기 같은 존재들이 이상 안에서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며 싸우는 이상한 작품이다.트라이아웃부터 재연까지, 홍과 함께하다 트라이아웃과 초연을 거쳐 지난 4월 24일 개막한 뮤지컬 <스모크>는 재연 시즌에도 많은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이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상연되는 이 작품은 상술했던 것처럼 시인 이상에 대한 작품이다. 난해했던 그의 작품 세계처럼, 뮤지컬 <스모크> 역시 다소 난해하고 뒤틀려 있다. 언뜻 경성시대를 그린 여타 작품 같아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연기 같던 캐릭터의 실체들이 가시화된다. 초는 그저 죽고 싶어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해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으며, 홍은 미츠코시 백화점의 딸이 아니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예술가"인 그는 "미완의 박제로 천재를 꿈"꿨다. 그의 안에서 언쟁하는 자아들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뮤지컬 배우 유주혜는 트라이아웃 때부터 이번 재연 시즌까지 꾸준히 참석하며 홍이라는 캐릭터를 맡아오며 함께 성장한 배우이다. 지난 6월 14일 오후에 만난 그는 홍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입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했다. 특히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머릿속에 떴던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무대 예술에서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을 의인화한 캐릭터는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캐릭터들 중에서도 홍은 유독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초나 해의 캐릭터에 비해, 대본집에 쓰여 있는 홍은 단 한 줄이 전부이다. 고민 끝에 마주하고 홍이라는 옷을 입은 유주혜에게, 홍은 어떤 존재일까.이상 김해경 그리고 홍 유주혜 김해경은 너무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살고 싶기도 했다. 폐병으로 죽어가는 시인은 이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살고 싶은 욕망도 있다. 전자가 초라면 후자는 홍이다. 김해경은 왜 그토록 죽고 싶었을까. 그런데도 왜 죽지 않았을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왜 진즉 글이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뮤지컬 <스모크>는 유주혜라는 배우에게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안고 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 작품이니까. 시인 이상의 자아 중 하나를 표현하면서, 글을 쓰면서 괴로워했던 이상의 아픔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김해경이 글을 포기하지 않도록, 글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의지의 표상이 됐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잠시의 고통처럼, <스모크>라는 작품이 보는 관객에게도 치유의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예정된 이별 그리고... 추정화 연출의 부름을 받고 트라이아웃 때부터 <스모크>를 하게 된 유주혜. 이 배우가 대학로에 쌓아온 경력이 얕은 건 아니지만, <스모크>는 그가 자신을 대학로 관객들의 눈과 귀에 강렬하게 인식시킨 작품이다. <스모크>를 만나서, 홍을 만날 수 있게 된 걸 유주혜는 큰 행운으로 여겼다.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그 사랑에 감사할 줄 알게 된 작품이기에 더더욱….대학로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다. 여자 배우가 맡는 여자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 방점을 더 찍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한계도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비해 대학로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좋은 여자 캐릭터, 좋은 여성 서사에 대한 고민을 창작진과 배우 그리고 관객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지만, 유주혜는 이번 재연을 끝으로 <스모크>와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이처럼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다른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고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여자 동료들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유주혜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스모크>의 홍을 다시 맡든, 아니면 또 다른 극의 다른 배역을 하게 되든, 유주혜는 스스로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훌륭하게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이다. 그의 귀에는 이미, 날개가 달려 있으니까. 아무도 그를 박제할 수 없으리라.

"음악과 의사, 둘 다 쉽지 않지만.." 한 인디 뮤지션의 삶

[인터뷰]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 셀린셀리셀리느

지난 5월, 기타의 명가 '깁슨(Gibson)'이 파산 신청을 했다. 펜더(Fender)와 더불어 일렉트릭 기타 시장을 양분하는 유명 기타 브랜드였지만, 특유의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음악 시장에서의 록 음악의 침체 현상으로 인하여 이중고를 겪었고 끝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러한 깁슨의 행보는 고등학생 시절이던 2003년 무렵부터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드나들며 공연을 보고 다녔고, 아직까지도 홍대 앞 '인디 뮤지션'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애정을 갖고 다니던 오래된 라이브 클럽들,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인디 뮤지션들, 모두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하나 둘씩 자꾸만 사라져간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나의 물음에 "유행이 지난 것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하던 동료의 한 마디를 자주 생각한다. 그 말이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홍대 앞' 혹은 다른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심지어, 전기로 작동하는 일렉트릭 기타도 아니고 오롯이 나무의 소리를 담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를 선택한 이 시대의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들에 대한 스스로의 각별한 관심을 담아 그들의 삶의 다양한 여러 면모들을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주목해보고자 한다.그 첫순서로, 홍대 앞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싱어송라이터 '셀린셀리셀리느'를 소개한다.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셀린셀리셀리느"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밴드로 했는데, 그때는 희한한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하는 음악도 자극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더 실링 오브 실리 셀드 피플(The Ceiling of Silly Celled People)'이라는 영어구절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멍청하게 자기 자신을 가둔 사람들이 바라보는 천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 문장을 이어서 발음하다보니 '셀린셀리셀리느'라는 이름이 나왔고, 그 때 같이 하던 밴드 멤버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는데 밀어붙였죠. 제가 리더였으니까.(웃음)""셀린셀리셀리느라는 이름으로는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다음 카페가 있어서 그 공간에 기록이 있는데, 대학교 들어가고 바로 다음해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죠. 처음에는 3인조 밴드였고, 기타와 보컬을 제가 하고 베이스와 드럼 멤버가 있었는데, 그 때는 저는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고, 밴드 멤버가 계속 바뀌었어요. 두 번, 세 번 정도. 그 때는 약간 라디오헤드와 뮤즈가 섞였는데 한국적인 색깔이 좀 있는 그런 밴드였고, 밴드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일렉트로니카로 장르를 바꾸고 트럼펫 주자를 영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저만 남아서 혼자서 기타를 치며 1, 2집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계획 중인 3집은 다시 일렉트로니카로 돌아가서 일렉트로니카에 기반을 둔 어쿠스틱 음악을 해보려고 합니다.""다음 카페가 있어요. 그 카페에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기록을 남겨놓죠. 기록을 워낙 중요하게 여겨서 활동 처음부터 만들어놓았어요. 예전에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주관적인 공연 후기도 다 남겨놨었어요. 많이 안 볼 거라고 생각하고 적었는데, 다 봐서 크게 싸움난 적도 있고 그 뒤로는 되도록 좋은 말만 (쓰고 있어요). (웃음)""제가 기획하는 공연 중에 '빵 안에 작은 바다'라는 공연이 있는데, 공연으로 치면 그게 300회째가 될 것 같아요. 어차피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려고요. 200회, 100회 챙긴 것도 아니고.""기억해요. 처음에 부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부산의 '스테레오포닉'이라는 공연장에서 밴드로 첫 번째 공연을 했고, 그 때 같이 했던 팀이 '리트머스'라는 팀이었는데 그 보컬이었던 사람이 제가 보컬로서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죽었어요.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였어요. 젊은데 (안타깝죠). '홍양'이라고 불렀던 친군데, 이 인터뷰를 빌어서 한 번 더 기억하고 갑니다. 되게 좋아했었어요. 인간적으로, 음악적으로.""오랜 만에 섭외가 들어와서 '살롱 노마드'에서 했어요. 사장님이랑도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제가 만든 맥주 가져가서 사람들과 나눠 마시고, '키라라'라는 일렉트로니카 하는 친구 음악에 춤추고, 그러고 나서 그 위에 술집에서 아는 형, 누나들 만나서 같이 술 마시고, 그 날이 되게 재밌고 좋은 기억이었어요.""기본적으로 즐거웠던 공연은 아닌데, 부산을 떠나서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가 부산에 한 번 내려가서 공연을 했는데 아무도 안 왔던 날이 있어요. 그 때 그 심정이 기억에 남아요.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을 내 공연장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 때가 뭐 축구를 하던 기간이어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같이 공연한 팀들이랑 술 마시고 겨우 친구 한 명을 불러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날 그 순간이 다 기억이 나요. 초조해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부산의 '인터플레이'라는 공연장이었는데, 누구 왔나 왔다 갔다 하고.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그냥, 충격적(이었죠). (웃음) 그 뒤로도 관객이 안 온 공연들이 있긴 했는데, 그냥 그랬어요.""좋았던 공연은 예전에 '살롱 바다비'에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라는 공연을 기획 했을 때.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설렘이 없는데, 그 공연은 하면서 막 내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게 엄청 느껴졌어요. 연극이랑 섞어서 연기도 하고 그래야하는 공연이어서, 관객 수와 상관없이 끝내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 찰나에 마치, 연극을 끝내고 커튼콜을 받는 연기자와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뭐, 공연장에 사람이 많이 오고 그런 거보다는 제가 그린 그림이 확 펼쳐져서." "1집은 활동 10년간 쌓인 노래들을 군대에 들어가기 한 달 전에 '뭐라도 남기고 가야겠다' 싶어가지고 프로듀서를 섭외해가지고 바로 녹음을 했는데, 그전까지 10년간 활동을 하며 나온 곡들이 워낙 많아가지고 그 중에서 베스트인 노래들만 꼽아서, 다른 악기 필요 없고 기타와 목소리로만 할 수 있는 곡들로 한 달 만에 다 만들었어요. 레코딩은 일주일 만에 끝냈고, 엔지니어도 원래 알고 있던 사이여서, 진짜 일사천리로 한 달 만에 나왔어요. 신기하게 나왔었죠. 그 때 생각하면, 운명같이 나왔어요. 디자인도 저를 정말 오래 알고 있던 분께 맡겨서, 진짜 바로 나왔어요. 그림을 새로 그렸는데도, 이미지가 있으니까, 한 달 만에 다 잘됐어요. 마스터링을 다 하고, 프로듀서와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그 때가 겨울이어서 밖에 첫 눈이 내려서, 둘이서 울었죠.(웃음)""우리 울었다는 얘기 하지 말자고 맨날 그러는데, 내가 맨날 얘기하고 다녀요.(웃음)""그 때는 그냥, 아쉬울 게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앨범내고 활동을 시작하는데, 저는 앨범을 내고 첫 쇼케이스를 하고 군대를 들어갔어요. 훈련소 들어가서 3주 동안 소식이 아예 단절이 되니까, 반응을 몰랐어요. 반응을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고. 훈련소를 나오면서 핸드폰을 찾아서 처음 들었던 앨범이 제 앨범이었는데, 그 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러고 핸드폰을 확인해봤는데 TBS 라디오에서 섭외가 들어왔고, 네이버에서도 이 주의 앨범에 선정되어있고 그래서, 그 때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군대 동기랑 맥주 마시면서 자랑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그러니까 왜 2집을 그렇게 빨리 냈는지 모르겠는데, 1집을 내고 남은 곡들이 이미 많이 있었어요. 당시 일과 음악을 병행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집 때처럼 레코딩에 한 번에 몰아서 쓸 에너지가 없어서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곡 녹음하고, 또 한 달 있다가 한 곡 녹음하고, 그렇게 레코딩을 일상처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레코딩 자체는 1년 정도 걸렸죠. 그래서 1집에 못 넣었던 곡이 절반이 되고, 그동안에 새로 내 삶에 들어온 곡이 절반이 됐죠. 그래서 재미있는 앨범이 됐어요. 1집의 느낌과 새로운 느낌이 혼재되어있어요.그리고 사운드 적으로도 1집보다는 많이 열렸어요. 1집 작업할 때는 묘한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기타줄을 안 갈았어요. 기타줄이 한 3년 된 거였는데, 나는 그 소리가 좋다고, 1집에는 기타줄이 안 갈린 소리를 담았고, 2집 앨범을 할 때는 매번 기타줄을 바꿨어요." "네, 태도가 무척 달랐어요. 1집을 할 때는 내 거를 무조건 다 넣겠다는 생각이었고, 2집 때는 변화한 모습과 앨범이 앨범답게 나오는 거에 관해 조금 더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다른 악기를 넣지는 않았어요. 기타와 보컬 외에는""1집은 일단 편곡에 공들일 여유가 없었어요. 라이브를 10년간 해오면서 기타 하나로만 살릴 수 있는 노래들만 넣었죠. 2집을 하면서는 다른 요소들을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 노래들만 모았습니다.""아뇨, 뭔가 포크라고 하면 오히려 좀 더 푸근한 악기들을 넣을 생각이 있는데 1집 때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과 내가 해온 것들의 원석 그대로를 넣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2집 때는 좀 더 여유가 있긴 했지만, 다른 악기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작곡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후반 편곡을 더해서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 곡들만 모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2집의 첫 번째 노래에는 보컬 더블링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사운드 적으로도 좀 더 잘 들리게끔 기타줄도 갈고, 엔지니어랑도 상의해서 좀 더 밝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앨범의 색감 자체도 달라졌죠." "그렇죠. 타이틀이 중요하니까. 그 곡의 느낌으로 디자이너 분한테도 부탁을 했었고, 그 분도 새로 유화로 그림을 다 그리셨죠. 사실, 이것도 선택하는 과정에서 추천해주신 그림이 몇 개 됐었는데, 그건 다 싫다고 하고, 방 안에 걸려있던 원래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림을 제가 골랐어요. 디자이너분도 워낙 저랑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크게 저항은 없었고요. (웃음) 앨범이 워낙 예쁘게 나와서, 나중에 다른 데서 앨범을 몇 장 보내줬으면 하는 요청도 있었어요. 종이 자체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재질이었는데, 유화 같은 느낌을 주려고 직접 가서 다 고르고." "그러니까, 3집은 좀 '괴작'을 만들고 싶어요. 1,2집 때 내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들은 대략 다 들려드렸다고 생각해서. 물론 내가 괴작이라고 한다고, 괴작이 되는 건 아니지만, 뭔가 3집은 포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걸 해보고 싶어요.""나는 실험적으로 하고 싶은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혀 실험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딴에는 포크 싱어로서의 괴작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전체 사운드로 따지면, 굉장히 안정된 사운드겠죠. 사실 요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엄청 발달되어 있어서, 낯 뜨겁긴 한데 내 머릿속에 있는 그런 것들을 좀 표현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거죠.""계속 진행 중이죠. 요즘 공연은 죄다 그런 곡들만 하고 있어요. 앨범은 아직 언제 착수할지는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곡이 나오면." "그전에도 소박하게 몇 개가 있었는데, 사실은 처음 기획에 들어갔던 게 내가 기획을 하지 않으면 공연을 설 자리가 없었어요. 남이 기획을 해서 나를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공간 사장님과 마음이 잘 맞아서 내가 기획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정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열망이 생겨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를 시작하게 됐죠.""그렇지는 않아요. 마지막 공연을 하고나서 '바다비'라는 공간 자체가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어요. 더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처음에는 그렇게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고, 비슷한 성향의 뮤지션을 만나서 같이 컬래버레이션 라이브를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공연을 엮어내자고 시작하게 됐는데, 둘이서 어차피 작업하는 거 음원을 만들어내서 발표하면 좋으니까, 음원도 발표하고, 또 어떻게 하다보니 책에 극적인 요소가 있으니까 그걸 또 연극처럼 풀어보자고 해서 극단도 끌어들여가지고 극단이랑 극도 만들고.일 벌이는 걸 그 당시에는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여유가 좀 많아서, 좋은 걸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패배주의에 절어있는 인디 신의 기획들이 싫었어요. 화이팅도 없고, 공연 한다 오려면 와라. 그런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뭔가 하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패기가 넘쳤죠, 그 때는.""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음원들은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아직도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고. 스스로와 같이 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어떤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그렇게 관객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왔다갔고, 적지 않은 리스너들이 음원을 들었고,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공연은 반의 성공, 반의 실패라고 생각해요. 어쨌건 했다는 데서 의미를 크게 느끼고 있어요. 그 때 고생했던 스태프들도 느낀 게 많았을 거고. 개인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그때는 일 벌이는 걸 참 좋아했었죠. (웃음) 그래서 그 때 (피드 마이 피나) 사람들이랑 엮어서 '책장을 넘기는 노래'도 같이 진행했고. 음악쪽으로만 계속 하다가 잘 풀리지 않던 에너지를 그쪽으로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그런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중에 춤 쪽으로 연관이 있는 분이 한 분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 소개를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음악하는 팀이 있는데 같이 해보자고 회의를 하게 돼서 좋은 걸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피드 마이 피나' 를 하게 됐고, 그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아직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어요. 순수한 사람들이고. 작은 데서 출발했어요, 전부 다. 아는 사람 한 명으로 인해서.""이번에는 솔직히 할지 말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서.""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있었다고 생각되고, 어느 정도 책임감도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같이 할 팀이 솔직히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이라거나,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올해는 할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있는데 여름 지나면서 페스티벌 시즌이 오면 또 미쳐가지고 할 수도 있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여력이 별로 없고. 예전에는 팀들을 모았을 때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해본 적이 없어요. 각 팀들하고 친하니까 '같이 열심히 하자. 내가 조금 더 고생한다.' 는 생각으로 했는데 지금은 아예 페스티벌로 굳어져서 내가 섭외하고 내가 모든 걸 케어해야하는 상황이 돼버려서 이건 내가 원래 의도한 것과도 안 맞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몇 팀은 있는데 페스티벌을 꾸릴 만큼은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진짜. 옛날 같은 분위기가 안 나요.""그 때는 막 '새뮤페' 같은 아이디어 올리면 다들 '와, 우리 같이 하자' 그런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어떠한 프로젝트도 같이 신나서 하자는 느낌이 아니고 기획자와 섭외자가 있는 느낌밖에 안 돼서 그게 속상하죠. 다들 수동적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다들 힘드니까. 다들 힘들고, 자기한테 여유가 없고, 나도 없고. 그러니까, 좋은 페스티벌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자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들겠죠.새뮤페는 웬만하면 다른 좋은 분에게 넘겨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거야말로 처음부터 내가 기획한 게 아니고 아이디어만 내가 냈고 다 주변에서 같이 한 거기 때문에, 내가 안 한다고 안하게 되는 건 너무 슬픈 일이고. 진짜. 좋은 기획을 하시는 분이 있으면 드렸으면 좋겠어요.""그렇죠. 왜냐하면 단순한 공연은 공연일 뿐이고, 페스티벌은 즐기는 느낌이잖아요. 그러니까, 즐기는 느낌이 되는 게 좋아요.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가 주입식으로 '우리는 공연을 한다.' 그러면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냥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뭔가 신나고 가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공연 기획 자체도 그런 재미를 많이 추가한 거고,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서 페스티벌로 하고 싶었어요.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들 큰 페스티벌을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웃음) 그래서 우리만의 페스티벌을 하고 싶었어요.""뭐, 이런 얘기를 하려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한발자국 뒤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그냥 뮤지션이 아니고 '인디펜던트' 뮤지션이잖아요. 그러니까, 인디 뮤지션이라고 하면 그런 공연 기획에 대해서도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셀프 매니지먼트를 하고 셀프 프로듀싱을 하니까, 그 모든 것을 감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인디 뮤지션으로서 음악만 할 거면 음악만 하면 되는데, 공연을 할 거라면 공연 기획을 으레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생각해요.물론 그에 대한 피로도가 크긴 한데, 이런 어려움을 현 상태의 어려움으로 보기보다는 원래해야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자기가 공연하려고 포스터 뽑아가지고 벽보 붙이고, 그런 건 옛날부터 다 했던 일들이고. 그러니까, 우리도 생각하는 바가 있고 그렇다면 그런 기획 부분에 대해서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수가 하고 싶다면 소속사에 오디션을 봐서 들어가면 되는 거지만, 인디 뮤지션으로서 꿈을 꾼다면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고." 처음에는 햄버거를 좋아해서, 햄버거를 먹으러 다니다가 햄버거 가게에서 수제맥주를 함께 파니까 마셔봤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걸 매일 마시고 싶은데, 수제 맥주가 너무 비싸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만들어먹으면 된대서 원가를 따져보니까 훨씬 싼 거예요. 그래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죠."동호회 가입은 되어있는데 나가지는 않고. 혼자, 그냥 맨 땅에 헤딩하듯이 만들었어요.""처음부터 잘됐어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요. 그건 되게 신기해요. (웃음) 한 번도 맥주를 버려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솔직히 안 어려워요. 온도만 잘 맞춰주면, 효모가 워낙 강해서 망치기가 쉽지 않아요. 누구든 애정이 있어서 자기 맥주를 만들려고 하면, 제 모든 노하우를 가르쳐 줄 거예요.""그것도 한 1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빵 안에 작은 바다'를 시작하면서.""그런 것도 좀 생각했죠.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잘할지 안할지를 모르니까 나만 마시려고 시작했는데 괜찮아서 공연 때 내놓게 됐죠. 처음에는 아주 쉬운 코스부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스스로 중급 정도라고 생각해요. 고급이나 마스터는 전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정도까지는 내가 해먹는 정도. 요리사로 따지면 쉐프 정도는 아니고 동네 맛집 아줌마 정도? 그 정도라고 생각해요.""한달에 한 번 정도는 계속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들어낸 종류가 열몇가지가 넘었거든요. 20리터씩 열개를 했으니까, 200리터 넘게 만들었죠.제 인생은 맥주를 만들기 전과, 맥주를 만든 후와 많이 나뉘는 것 같아요, 진짜. 맥주를 만들기 전에는 더 폐쇄적이고 내성적이었는데, 맥주를 만든 후부터는 맥주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런 것이 됐어요. 성격이 달라진 것 같아서, 되게 좋아요. 제가 아는 형도 제가 그렇게 즐거워한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랬어요.왜냐면, 제가 음악을 만들어서 남한테 들려주는 건 사실 음악이 슬프고 그러면 남한테 나쁜 영향을 미칠 수가 있잖아요. (웃음)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그치만 맥주라는 건 마시면 기분 좋고, 내가 줄 수 있는 거라서 그게 너무 고마워요. 왠만큼 별 일 없는한 맥주를 계속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도 집에서 맥주가 하나 익어가고 있고." "요리나 남한테 베풀 수 있는 걸 배우는 건 되게 좋은 일인것 같아요. 이런 걸 만들면서 즐거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이 공간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체 운영위원 중에서 아는 분이 계셔서, 이런 공간이 있는데 여러명이 모여서 주체로 들어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덜컥 들어오게 됐어요. 한시적인 공간이라서 계속 진행되지는 않고, 여유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일단 재미난 걸 해보려고 하죠. 영화상영회도 그래서 하게 된 거고.최종적인 계획은 '싸운드 연구소'라고 이름 붙였으니 사운드에 관련한 걸 최종 결과물로 내려고 하고 있죠. (플라스틱 컵을 손으로 눌렀다 폈다 하시면서) 이런 소리라든지, 이런 걸 재편집해서 어떤 음악적인 걸로 만들어내는 걸 기획하고, 매달 회의하고, 아직까지는 그러고 있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결정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힘들어요. (웃음) (깊은 한숨) 열정이 있던 젋은 때는 하는게 전혀 무리가 안 됐는데..저는 음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처음에 저는 메탈을 하고 싶었는데, 메탈은 전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메탈을 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머리는 좋았으니까, 처음에는 의대를 가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생명공학쪽에도 원래 관심이 있어서 생명공학을 수시로 하나 붙여놓고, 수능을 쳤는데 점수가 꽤 괜찮게 나와서 의대를 갔죠. 그건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그런데 의대를 가서 보니까, 거기서 오는 기쁨이나 철학적인 부분들도 되게 커요. 원래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의사는 진짜 그냥 돈 버는 직업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내 삶에서 거의 반반이 됐어요. 이쪽 삶도 중요해서, 포기하지 않을 거고.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게 아니고 이 삶에서 얻는 의미들이 크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을 거고.체력도 좋고 그럴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수능 한 달 전에도 공연했고, 인턴 레지던트 하면서 몇밤 며칠밤 새고 클럽와서 리허설 하고 한시간 자고 공연하고 막 그래었는데, 밤새 뒷풀이하고 들어가서 일하고, 지금은 그런데 여기에 결혼생활이라는 또 하나의 삶이 들어와서, 세가지를 동시에 운용하다보니까 힘든 부분이 분명 있어요. 육체적으로 현저하게 힘들어진 것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이겨내기가 힘든 게 있긴 한데, 그래도 그런 부분을 느끼면서도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 의지가 있어서.""제 선택이었죠. 의사 직종 중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과와 생명을 다루지 않는 과로 크게 나뉘는데, 소아과는 생명을 다루는 과거든요. 피부과에서 죽지는 않지만 소아과는 내가 잘못하면 애들이 죽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소아과를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정신과같이 음악적 커리어와 맞는 그런 걸 유지하고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그런 생명을 살리고 생명에 깊게 들어가는 것도 스스로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멘탈이 약해서 어른들이나 노인들이 죽어가는 걸 못보겠어요.다른 과들은 어쩔 수 없이 쇠퇴하는 것들에 대해서 진료를 하게 되거든요. 당뇨라거나, 피부병이라고 해도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들, 노인성 질환들, 그런 건 제가 고쳐줄수 있는게 아니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런데, 소아과는 내가 약을 쓰고 하면 생명이 살잖아요? 신생아나 그런 애들을 내가 살리니까. 힘들지만, 그런 부분들이 크게 다가와서 선택하게 됐어요. 제 가장 큰 실수랄까..? (웃음)""힘들어서. (웃음) 지금은 개업의는 아니고 봉급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도 위급한 케이스도 몇 건 다루고 하는데 예전처럼 입원 환자를 다루는 건 아니라서 병의 경중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 인터뷰하기 전까지도 아침에 나가서 일하고 온거고, 쉬긴 쉬는데 이틀 연달아 쉬는 것도 없고 해서, 저만 힘든 게 아니고 다들 힘든 게 있어요.""휴가는 있어요. 휴가마저 없으면 못살것 같아서, 그건 분명하게 하는데, 휴가를 가기 전에 일이주를 연속 근무를 하고 간다던가, 메꾸는 식으로 하고 가야하긴 해요.(일과 음악을) 병행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긴 한 것 같아요. 저는 두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세마리가 돼서. (웃음) 그게 좀 힘든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괜찮아요.""그 스트레스가 나올 때는 있지만, 그게 모티브가 돼서 곡을 쓰거나 한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 거기서는 일단 생각하는게 달라야 하니까. 의사를 하면서 비관적인 생각을 하거나, 슬픈 생각을 하는 건 안 맞기 때문에 그런쪽으로 나온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저는 뭔가 찾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들어와요. 내가 한다고 생각안하고, 매번 인터뷰때 밝히는 건데 음악의 신이 나한테 하나하나 던져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받기 위해서 내가 생각을 하고 몰두를 해야 오거든요. 가만히 있다보면 놓쳐요. 계속 연습하고, 생각하고 그러면 와서, 그걸 붙잡고 확장을 하는 식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뭐에 대해서 '뭘 하자'고 생각하고 쓴 건 없어요. 왜냐면 그런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뭘 하려고 하자고 생각하고 한 건 남들이랑 콜라보를 할 때나 영화음악을 만들거나 할 때. 근데 실제 내 음악에서 그랬던 적은 없어요." "그건 있어요. 그런데서 곡도 많이 나왔어요. 확실히 뭐 어떤 다른 것보다, 내 인격적인 부분에서 일취월장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됐어요. 당연히 인격수양을 하려고 결혼을 한 건 아닌데, 결혼이란게 일단 전혀 다른 두 객체의 만남이기 때문에, 정말 힘든 것도 있고, 진짜. 생전 듣도보도 못한 힘든 것도 있는데, 그걸 통해서 배우는게 엄청 많고, 되게 경험으로 치면 이런 경험이 어디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힘들고 좌절스러울때도 분명 있어요. 근데 그게 극복이 되면 되게 해볼만한 경험이다, 싶고. 거기에 관해서 곡도 많이 나왔죠, 진짜로.결혼 이후에 나왔던 곡들이 거의 그런 상황에 대한 노래들이 많고, 그 이후에 제 곡의 가사중에서 '우리'라거나 '너'라거나 그런 가사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전에는 '나'라거나 '그'라는 식으로 제3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그렇죠. 그 사람을 투영해서 진짜 가까이에서 바라본 인간 객체에 대한 경험이 생긴거죠. 그게 인생에서 의미가 있죠. 몰랐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제 알았기 때문에. (웃음)""이게 우리 부부생활에서 나온 곡이기도 하고 해서. 그리고, 저 스스로는 내가 처음으로 남에게 어떻게 하자, 고 권유하는 곡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내가 생각한 어떤 스토리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 거라면 이 곡은 "우리 이렇게 하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물론 우리 부부관계에서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그리고 요즘 갈등이 많은 시대이고, 사람들의 생각들도 대립이 많잖아요. 정권이 넘어가기 전에도 싸움이 많았고, 요즘은 그동안 쉬쉬하던 사회갈등이 다 치고 나오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 사람의 뮤지션과 인간으로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노래이기도 하고. 그런 노래가 사실 나한테 없었으니까, 그런 노래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곡을 하고 싶었어요.""요즘 음악을 많이 안 들어서.. 멜론에서 요즘 찾아듣고 좋다고 생각한 노래들은, 전부 대중가요들이에요. '크러쉬'라는 가수랑 '재휘'라는 작곡가의 'Dear Moon'이라는 노래가 너무 천재적인 메이킹이라서. 이런 고급스러운 걸 원래 좋아하는 것 같긴 하고, 옛날에 '노리플라이'를 들었을 때 충격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로 찾아서는 잘 안들어요. 미군방송 AFKN 라디오 틀어놓고 출근하고, 그래요.""일단 저는 2집에 있는 '가난한 마음', 왜냐면 저는 그 노래가 참 좋거든요. 그리고, 1집의 '외팔소녀'도 '이런 노래를 내가 또 언제 써보지'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노래도 아주 꾸밈없이 쓴 노래라서 애착이 가요.""지금처럼 그냥 쭉 가늘고 길게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한 달에 한번씩 날 불러줘서 공연하고, 나는 나대로 음악하고, 그러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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