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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박정민.

배우 박정민.ⓒ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동주> 회식 때 박정민은 이준익 감독과 동료 배우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랩을 했다. <변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마침 시나리오 각색 중이던 이준익 감독은 차기작 <그것만이 내 세상>을 위해 피아노 연습 중이던 박정민에게 다짜고짜 "랩 좀 하지? 아니야? 그냥 잊어!"라는 짧은 말을 남겼고 시간이 좀 지나 박정민을 다시 찾았다.

송몽규로 분해 <동주>에서 시를 썼던 박정민은 <변산>에서 랩을 쓰는 학수가 됐다. 고향을 떠난 지 10년, 뮤지션이 되기 위해 6년 째 한 힙합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고달픈 청년이다. 영화 <변산>은 학수가 아버지의 병세를 듣고 고향에 내려가면서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들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시가 됐던 랩, 랩을 쓴 시인

"잊으라 하셔서 진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것만이 내 세상> 촬영 막바지에 다음 작품은 뭐지? 생각하다가 감독님 얘기가 생각나서 전화 드렸다. 감독님 영화 얘기 하셨던 것 같은데 래퍼 이야기에요? 물었는데 다음날 바로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갔더니 시나리오를 주셔서 받아왔다."

단숨에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박정민이 가진 생각은 단순했다. "웃기고 재밌을 것 같았다"며 그는 "랩보다도 이준익 감독님과 이 영화를 찍으면 재밌겠다는 느낌이 와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웃어 보였다.

그만큼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노 천재로 분하기 위해 6개월 간 하루에 5시간 이상씩 피아노를 배운 그는 이번엔 랩을 읊조리고 가사를 쓰기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매일 연습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 친구 따라 랩 동아리에 잠깐 들어가려 했던 것 외에 힙합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던 그였다. "그때 노래방에서 발라드를 불렀어도 감독님은 절 부르셨을 것 같다"며 박정민은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전했다.

 영화 <변산>의 한 장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하릴없이 고향에 내려간 학수(박정민)는 보이스피싱 용의자로 지목받기까지 한다.

영화 <변산>의 한 장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하릴없이 고향에 내려간 학수(박정민)는 보이스피싱 용의자로 지목받기까지 한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피아노와 랩을 섭렵한 것에 마치 아이돌연습생 같다는 말에 웃으며) 이제 피아노 치면서 랩만 하면 되겠다(웃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피아노도, 랩도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고되지만 재밌게 했다. 랩 연습도 연습이지만 가사 쓰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박정민은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중 7곡의 랩 가사를 직접 썼다-기자 말).  

한 곡 당 길면 2개월, 짧은 건 2주 정도 걸렸다. 촬영 3개월 전까진 4곡을 만들었고, 얀키 형이 많이 도와주셨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앞선 4곡은 학수가 고향에 내려가기 전 '내가 다 발라버리겠어. 두고 봐' 이런 느낌이라 큰 부담은 없었는데 이후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랩을 하는 게 문제였다. 학수로 이입해야 했던 만큼 고생스러워지더라. 나머지 곡들은 거의 한 달에 한 곡씩 썼던 것 같다."


영화 중간중간에 학수의 랩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기에 감정을 잘 살리는 게 중요했다. "미리 써놓은 가사도 촬영하면서 학수의 감정이 다르게 느껴져서 다 바꾸기도 했다"며 박정민은 "개인적으론 마지막 장면 (학수를 짝사랑했던) 선미에게 마음을 전하는 랩을 할 때 가장 울컥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때 산문과 시를 썼던 몽규가 지금 시대 다시 태어나 랩을 썼다면 꼭 그런 글이 나왔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진정성이 담긴 가사들이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 

힙합과 함께 <변산>은 과거 건달이던 아버지(장항선)와 고향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학수가 품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이 영화의 주요 동력이다. 폭력과 노름에 빠져 가정을 파탄 낸 장본인, 무책임한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아버지를 학수가 어떻게 대하는지가 관전 포인트인 셈.

"아들이 품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있잖나. 영화에선 그 원망이 극대화 돼 있지만 저 역시 실제로 아버지를 살갑게 대하지 못할 때가 있고 반항하기 십상이었다. 영화에서 그런 갈등을 극복 못하면 학수는 또 다시 도망가게 되니까 조금씩 시도는 한다.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 과연 그만 잘못한 걸까 난 잘못한 게 없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과를 반복해서 하는 아버지를 이해 못하다가 선미(김고은)의 조력으로 그 상황을 정면 돌파 하는데 연기하면서도 용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용서라기 보단 가족이잖나. 그리고 학수와 아버지는 똑같은 인간이다. 학수가 가족 없이 살았다지만 마찬가지로 아버지 역시 고향에서 가족 없이 살았다. 마지막 부분에선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우 박정민.

배우 박정민.ⓒ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학수가 고향을 등한시 했음에도 학수 어머니의 산소를 매년 벌초해 온 세 친구, 구복(최정헌)과 상렬(배제기), 석기(임성재)도 주목해야 한다. 영화에선 이들의 이야기가 깊게 나오지 않지만 학수의 정서를 설명하고 보완하는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실제로 배제기는 영화 <파수꾼> 이후 박정민과 친하게 지내는 동료이고, 최정헌 역시 <동주>로, 임성재는 <순정>에서 인연을 맺었다. 세 배우 모두 이미 인연이 있는 이들이었던 것.

"10년 간 엄마의 산소를 벌초해줬다는 건 정말 친하다는 것이지. 학수가 퉁명스럽게 대해도 받아주고 그러는 걸 보면 학수에겐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다. 특히 성재는 <순정> 때에서도 친구 사이로 등장했는데 석기 역을 (감독님이) 찾는다고 할 때 불현듯 생각이 나서 수소문해서 찾아냈었다. 저를 빼곤 세 배우가 지금 서울 잠실에 같이 모여 살고 있다.

제가 촬영 일정에 바쁠 때 그들끼리는 자주 봤다더라. <변산> 촬영장에서 그들이 '정민이를 돋보이게 하는 캐릭터니까 너무 튀지 말자'고 하는 얘길 들었다. 그러지 말자고 했다. '마음은 참 고맙지만 그러면 나도 죽고 너희도 죽을 수 있다. 그냥 준비한 걸 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달라서 배우들끼리는 연기 얘긴 잘 안 하는데 우리끼린 그 일화가 있었다."


재미있는 삶 

<동주> 직전까지 박정민은 연기에 대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걸 관두고 다른 일을 진지하게 찾아볼까 생각하던 시기였다. 무명이 길고, 대체로 좋은 연기력을 보이지만 그만큼 일이 잘 안 들어오던 때 그는 성장통을 겪었다. 지금은? "현장이 재밌는 곳임을 깨닫게 됐다"며 그는 "최근 작업을 하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답했다.

"동료들과 함께 무대인사 하고 홍보하는 과정도 재밌다. 마치 친구들과 MT를 가듯이 다니거든. 오히려 <변산> 홍보 과정이 다 끝나면 좀 쓸쓸할 것 같다." 

<변산>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관객을 만난다.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 <파수꾼>을 찍은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에 각각 출연해 모든 촬영을 마쳤다. 최근엔 <타짜3> 출연을 확정지으며 새 작업을 위해 몸을 만드는 등 담금질 중이다. 재밌게 일을 즐기는 만큼 한층 더 다양한 그리고 편해진 그의 모습을 기대해보자.

 배우 박정민.

배우 박정민.ⓒ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남은 이야기, "책을 쓴다는 것은..."

올해 초 박정민은 자신의 에세이집을 냈다. 기존의 매체에 기고하던 글을 모은 책이다. 이미 <파수꾼> 때 제작 일기를 블로그에 올려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재가 될 정도 글 솜씨가 남다른 그다. 배우 외에 혹은 배우 일을 하면서 이런 글을 계속 쓸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음.. 남들에게 보여주는 글은 당분간 안 쓰려고 한다. 어찌 됐든 전 주업이 작가가 아니잖나. 배우이고 업종으로 구분하면 연예인이라는 업종에 있다. 연예인이니 어떤 일에 대해 가능성이 다른 분들보다는 좀 더 열려 있는 게 사실이잖나. 책 한 권을 위해, 음악 한 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겐 좀 불친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연예인이라는 걸 빌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까봐 고민이기도 하다.

올해 책을 내는 것도 고민이 많았다. 다만 그간 기고했던 글을 모으는 성격이라 꾸준히 봐주셨던 분들에 대한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출판하게 됐다. 와, 표지 하나 나오는 것에도 엄청 공이 들어가더라. 이렇게 어렵게 나오는 건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내고 싶진 않다. 제게도 좋지 않을 것 같고...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애기가 있고, 쓰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당분간은 진짜 안 쓰려고 한다. 이번에 곡 작업도 4분짜리 한 곡에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담겼다. 누군가의 결과물에 대해 쉽게 판단하거나 말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김고은 "이준익 감독은 청춘... 너무 멋진 어른이다"

[인터뷰] <변산> 선미 역 김고은,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려 해"

짝사랑 전문에 존재감 없는 여고생. 그러면서도 폭발하는 욕과 거침없는 랩 구사자.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의 소설가. <변산>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선미의 모습이다. 조금 엉뚱하지만 깊고 성숙한 내면을 지닌 여성. 이런 선미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내뱉는 대사들에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있다. 오는 7월 4일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의 주연배우 김고은의 인터뷰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후져지는 것 경계해야 "값나가게 살진 못혀도 후지게 살진 말어."김고은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그는 "제가 살고 싶은 삶의 이상향이 막연했는데 그걸 대사로 정리해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값나가게 사는 게 무엇일지 묻자 김고은은 이렇게 답했다. "그건 계속 바뀔 것 같다. 하지만 후져지지 않는 건 뭔지 알 것 같다." 김고은은 "후져지는 걸 항상 경계하면서 살고 싶다"며 "특히 무언가에 대한 맹목성을 띠는 걸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고등학생 때 학수(박정민 분)를 짝사랑한 선미는 성인이 된 후 고향 변산으로 학수를 '강제소환'한다. 김고은은 선미가 학수를 대하는 마음을 설명하며 "맹렬한 첫사랑의 상대였던 학수를 다시 만났을 때 선미는 내가 좋아했던 아이의 본질이 흐트러졌다는 것에 실망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어 "학수한테 선미가 직언을 하는 건 조용한 선미의 성격으로서는 큰 노력이었다. 그 표현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이 필요했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친한 대학선배 박정민 김고은은 박정민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선후배사이다. 재학 당시 서로 고민하는 지점이나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넌 어떻게 봤느냐는 이야기에서부터 연기적으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걸까 하는 고민상담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런 친분 때문에 박정민 캐스팅 소식을 들은 그가 흔쾌히 <변산> 출연을 결정했지만, 동시에 이 친분 때문에 걱정도 됐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작품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오히려 연기할 때 어색함을 느낄까봐 염려됐던 것. 하지만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웃어보였다. 친해져야하는 과정이 생략된 게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됐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일 것이다 하고 알 수 있어서 호흡이 한결 편했다. 이준익 감독님은 진짜 어른그렇다면 이번에 처음 만난 이준익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김고은은 한 마디로 "너무 멋진 어른인 것 같다"고 했다. "선배들이 이준익 감독님과 같이 작업하면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셔서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게 어떤 건지 궁금했다"고 한다. "촬영하다보면 분명 예민할 수 있는 순간이 있고 어떤 실수들이 나와서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변산> 촬영 때도 분명 예민해질 수 있는 상황이 있었고 그래서 혼자 괜히 조마조마해서 '화나시면 어떡하지' 했는데 그 찰나에 감독님이 '하하하하 내 잘못이야 하하하하' 하고 넘어가고 덮어버리시더라. 누가 실수했는지 알려고도 않으신다. 촬영장의 가장 큰 어른인데 그렇게 해주시니까 모든 게 다 웃음으로 연결될 수 있더라. 이렇게 인터뷰할 때는 칭찬을 하지만 감독님이나 정민선배나 저나 셋 다 칭찬 받으면 몸서리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감독님께 현장에서 칭찬할라치면 늘 '차라리 디스를 해줘' 하고 말씀하신다."김고은은 청춘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도 "저는 이준익 감독님이 청춘 같다"며 "청춘이란 나이와 상관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언가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있고 그것들이 계속 샘솟는다면 그게 청춘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도깨비> 이후 책임감 생겨 tvN 드라마 <도깨비> 종영 이후 <변산>을 찍은 김고은에게 <도깨비>의 흥행이 이후의 작품을 고르는 데 영향을 줬는지 물었다.이에 김고은은 "작품선택에 있어서 <도깨비>가 영향을 끼친 것은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도깨비>가 잘 된 건 이응복 감독님과 김은숙 작가님이 하신 거고 또 공유 선배님도 계셨고, 저는 거기에 잘 따라가기만 했던 작품이었다. 다만 <도깨비> 이후에 인지도가 더 생겨서 다음 작품 제안을 주시는 분들께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돼서 그에 대한 책임감은 생겼다"고 말했다.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김고은은 작품을 선택하거나 배우로서 방향을 잡아갈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이 질문에 그는 "시나리오, 감독님, 배우 등 중요한 요소는 너무 많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배우 본인의 상태를 우선적으로 점검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저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봤을 때 나의 지금 감정이나 상태가 어떤지를 고려해가면서 그에 맞게 작품을 선택하는 게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하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하는지 덧붙여 물었다. "어렵기 때문에 그 부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 순간순간 자기 점검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힘들수록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썼는데 그런 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데뷔 7년차인 김고은에게 그동안 얼마나 성장한 것 같은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그의 엄격한 태도가 느껴졌다. "제가 데뷔작 <은교>(2012)를 찍을 때가 21살이었다. 그때 '아직 나는 너무 어리니까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도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달렸다. 좋은 선배님과의 작품 기회가 생기면 다 달려갔고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법한 작품을 했다. 그게 <계춘할망>(2016) 때까지였다. 그때부턴 자신에게 '너는 이제 스스로 신인이라고 생각하면 안돼. 네 몫을 해내야하는 연차야' 하고 주문했다. <계춘할망> 이후의 작품에 있어서는 전보다 신중하려고 했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총상 입는 장면까지... '마녀'에 온몸 던진 배우 조민수

[인터뷰] 극악한 두 여성의 혼합... "기대치 깨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영화에서 조민수의 위치는 독특하면서 독보적이다.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30년을 훌쩍 넘긴 경력 안에서 그는 폭이 큰 변화를 주저하지 않았다. 도회적이고 도도했던 모습에서 때론 억척스러운 아내로, 현실감 넘치는 엄마에서 때론 매정한 중년 여성이기도 했다.그런 그가 최근 개봉한 영화 <마녀>에선 그 어떤 관계성도 없는 극악의 인물이 됐다. <신세계> <대호>의 박훈정 감독의 부름을 받은 조민수는 극 중 '닥터 백' 역을 맡았다. 저명한 유전공학자이자 정체불명의 기업을 위해 일하는 인물로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인간병기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초라는 인장"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장면, 캐릭터가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그는 <마녀>를 소개했다. 마치 게임을 하듯 살인을 즐기는 아이들, '마녀 아가씨'라는 별명처럼 최고의 병기로 태어났지만 기억을 잃고 평범한 가정으로 숨어들어간 자윤(김다미)이 모두 닥터 백의 손에서 탄생했다. 어찌 보면 악의 원인처럼 보이는 닥터 백은 동시에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머지는 조작된 병기들이었으니 말이다."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박훈정 감독님에게 혹시 게리 올드만? 아니면 <인디펜더스 데이>에 나오는 그 박사를 모티브로 했는지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이름은 밝힐 수 없는 실존하는 두 여성(본래 닥터 백은 남성 캐릭터였다가 각색 과정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 - 기자 말)을 얘기하셨다. 그 두 사람이 섞인 캐릭터가 닥터 백이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극악한 여성을 보이고 싶다더라.이 여자의 가족은 있을까?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며, 사람의 피를 매우 자연스럽게 대하는 사람이다. 또 회사를 위해선 몸을 굽힐 줄 아는 비겁한 사회성도 있는 사람이었다. (피칠갑 된 아이들 사이를 걷는) 첫 신이 중요했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게 아닌 마치 일상처럼 담담하게 걸었다. 감독님이 좋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톤을 맞춰 나갔다."<마녀>를 두고 조민수는 세간의 평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만큼 애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여러 평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던 신선한 작품인 건 분명하다"며 그는 "여성 캐릭터들이 전면에 나서는 건 맞지만 여성영화는 아니다. 박훈정 감독이 예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그의 색깔이 잘 담긴 영화"로 정의했다.인간의 본성 쉽게 나올 수 없는 캐릭터임을 알기에 그는 현장에서 대역을 쓰거나 마네킹을 써도 될 장면에서까지 스스로 연기하기를 고집했다. 닥터 백이 거친 액션을 소화하진 않지만 총상을 입는 장면에서 사실상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지만 현장에서 직접 그 연기를 소화했다는 후문이다. "스치는 장면이라도 관객 분들은 다 알아차린다"며 "남은 쉽게 죽이면서도 자신이 다치면 씩씩 거리는 그 모습이 닥터 백의 인간적 면모였다"고 설명했다.살인병기로 태어난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탄생시킨 닥터 백은 과연 악인가. 영화에선 여러 작은 반전 요소를 넣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한다. 박훈정 감독 역시 "성선설, 성악설 등 여러 철학적 이론이 있는데 <마녀>를 통해 그 부분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조민수의 생각은 어떨까."철저하게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본다. 자라면서 악을 학습하고 악이 침범하는 것 같다. 뇌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을 보면 모든 걸 잘 학습하잖나. 흔히 나은 정 기른 정 얘기하는데 기른 정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자윤의 아빠 대사 중에 '예쁘다 예쁘다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게 있다. 그 말에 인간 본성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본다. 닥터 백의 본성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능력자, 상급자에게 잘 보이려 하다가 그게 이어지면 스스로 그걸 즐기게 되잖나.감독님과 닥터 백에 대해 얘기할 때 유년 시절 사랑받지 못한 인물로 잡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지. 필요에 의해서만 감정을 드러내는데 그러다 자윤이라는 좋은 물건을 만들게 됐다. 아마 예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윤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은 박수치며 '최고야!'하는 게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후에 닥터 백 캐릭터가 (내게) 붙기 시작하더라." <마녀>를 보면 자윤 자체가 마녀 소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긴 하지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마녀가 누구인지 모호해지기도 한다. 과연 진짜 마녀는 누굴까? 조민수의 닥터 백과 함께 이 질문을 안고 영화를 봐도 좋을 것이다.조급증을 버리다 데뷔 33년차. 앞서 언급한 대로 드라마에선 다양한 역할로 변신을 꾀했지만 영화에선 필모그래피가 많진 않다. <관능의 법칙>(2014)년 이후 4년 만에 <마녀>를 만나게 됐고, <관능의 법칙> 전작 역시 4년 전인 <피에타>였으니 말이다. 몇몇 인터뷰에서 "80년대 (유행햇던) 에로영화를 찍기 싫었다"며 "그때 충무로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 수가 적을지언정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를 갖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대중에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조급증이 들기 쉽다. 어려서부터 제가 버려야 할 게 바로 조급증이었다. 답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요즘 뭐 해요 잘 지내요 물으면 '되게 잘 지내요'라고 답하곤 했다. 매번 조급증을 반복하면서 고민도 했다. 그러다 이렇게 (오랜만에)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기자 분이 제 출연작을 읊어주시는데 속으로 '난 참 복 받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영화계에서 사장되지 않고 나름 계속 작품을 잘 찍어왔구나 생각한 것이지.언제부턴가 주변에서 제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을 때, 거기에 대한 기대치를 깨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민수는 이런 배우야' 이런 말에 '그래 앞으로 몇 작품을 할지는 모르지만 연기를 하다가 흉하게 마무리 하진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연기자로서 연기만 잘 해왔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이른 바 꾼들에게 칭찬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김종수(영화 <1987>에 출연) 선배랑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그냥 되는대로 일했으면 지금쯤 건물 하나는 샀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선배는 '건물을 바라보며 갔으면 그 건물에 묻혀버렸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말에 아, 나답게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무슨 소신 있게 산 것도 아니고, 단지 연기를 잘하고 싶은 연기자였을 뿐이다. 이게 답이더라. 그러니까 뭔가 부족해보이면 자꾸 노력해서 채우려는 것이지."어떤 소명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회사에 취직해야만 했던 그였다.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우연히 한 전자제품 광고모델로 발탁됐고 조민수는 10만 원을 받았다. "직장인 초봉이 10만 원이던 때였다"며 "이후 영화 <청 블루스케치>라는 작품이 들어왔고, 광고를 찍으려면 연기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며 연기자로서 정체성을 다지기 시작했을 때를 언급했다. 바로 그가 지금까지 계속 연기를 하는 이유기도 하다."아무 것도 몰랐다가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고민한 거지. 그리고 그 이름에 책임을 지려고 했던 것이고. (다른 진로는 생각 안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별 생각 다 했지! 아는 동생이 운영하던 카페에 찾아가서 서빙이라도 한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동대문 시장에 있는 다른 동생에게 가서 옷 도매 일 좀 배워보겠다고 했는데 역시 안 된다고 그랬다. 어느 새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연기)밖에 없게 됐더라. 그만큼 공간이 좁아져 있던 것이지. 제 또래 배우들이 다들 고민했던 지점이다. 그래서 연기를 더 열심히 잘 해야지 결심한 것이다."대중적으로 알려진 만큼 실제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조민수는 "그럴수록 더욱 일과 일상을 잘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실 일상을 잘 지내는 것 이상으로 조민수가 현재까지 영화계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인디포럼 등 독립영화제 행사를 진행하거나 용산 참사를 다룬 <공동정범> 같은 영화의 좌석 200여석을 직접 구매해 관객과 나누는 등 그는 독립예술영화계에선 행동하는 영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언급하니 오히려 그는 신중해 하는 모습이었다. 조민수는 "제가 한 건 아무 것도 없어서 창피하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오히려 제가 그 분들에게 받은 게 더 많다"며 말을 아꼈다."어떤 부귀나 명성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는 업계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그는 나지막이 드러냈다. 인기 정도에 따라 빠르게 소모시키고 다른 대체재를 찾는 최근의 흐름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제가 걸은 길, 후배들이 제 뒤통수를 보고 올 거잖나. 잘 해나가야지" 마치 다짐처럼 뱉은 말이 기자와 배우 조민수 사이에 약속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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