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 이희훈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하!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갱이 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 어딨어? 깎아 달라고 졸라대니 아이고 내 팔자!"

"수고했어. 이제 빨리 학교로 가!"


웃음이 와르르 터졌다. <전국노래자랑> 예심 첫 무대, 두 명의 중학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쑥스러운지 연신 꺄르르 대다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노래 '서울구경'을 부른다. 몇 마디 부르기도 전에 심사위원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자 이들은 웃으면서 다급히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전국노래자랑> 1차 예심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초에서 30초 사이, 무반주로 불러야 하는 1차 예심에서 참가자들은 노래를 잘 하면 30초 이상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대체로 여지없이 "수고하셨습니다!"는 소리를 듣고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땡' 대신 '수고하셨습니다'로 불합격 통보

 리허설을 보며 원고를 정리하던 송해는 출연자들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췄다.

리허설을 보며 원고를 정리하던 송해는 출연자들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췄다. ⓒ 이희훈


지난달 14일, 인천 남구청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는 약 400팀의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 중 방송에 참여하는 팀은 약 15팀. 약 27:1의 높은 경쟁률이다. 한 번은 예심에만 2300팀이 모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웬만큼 노래 좀 한다 싶은 사람도 어김없이 "수고하셨습니다" 행이다. 그냥 떨어뜨리기 아쉽거나 떨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경우 즉석에서 심사위원이 다른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불합격!'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니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일단 볼거리가 많고 눈에 띄어야 해요. 노래를 잘하지만 떨어지는 분들도 계시고 간혹 소주 잔뜩 들고 와서 '나 왜 떨어트렸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즐기세요."

5살부터 90살이 넘는 참가자까지 남녀노소 모두 온갖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나와 자신의 기량을 뽐낸다. 비록 1차 예심에서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한 참가자에게는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간혹 심사위원의 불합격 판정에 납득하지 못하는 관객들은 "아니 목소리도 좋고 잘 하는구만 (왜 떨어트려)" 하면서 탄식하기도 한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예심 시작에 앞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있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예심 시작에 앞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있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 유지영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 유지영


웬만큼 노래를 잘 해서는 힘드니 다른 장기를 갖고 나와 승부를 보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차 예심에서는 장기나 사연을 뺀 채로 오로지 무반주 노래와 퍼포먼스로만 승부를 본다. 노래에는 영 자신이 없는지 하던 노래를 멈추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여기서 팔굽혀펴기하면 안 돼요?"라고 묻던 한 참가자는 "노래를 마저 하라"는 말에 성급히 '태세 전환'을 해 노래를 끝마쳤다.

1차 예심을 통과한 참가자는 어떨까? 예심에서 합격하면 '딩동댕' 실로폰 소리 대신 '2차 예심지'를 한 장 준다. 종이를 받자마자 기뻐서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참가자들을 두고 무대 아래서는 다시 와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미 다른 민요 대회에서 3번 이상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 어느 90대 '실력파' 남성 참가자는 예심에 합격했다면서 환하게 웃어보인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얼마든지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는 2차 예심을 위해 적어야 하는 인적 사항 및 노래 곡명을 적지 못해 현장 자원가의 도움을 받은 참가자도 있었다. 가히 '전국민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예심은 총 2차까지 하루종일 치러진다.

변장하고 3번이나 예심에 참가하기도

1차 2차 예심을 치른 며칠 뒤, 근처 야외 무대에서 <전국노래자랑> 본선이 개최된다. 녹화가 시작되는 오후 1시가 되면, 준비된 의자가 동날 정도로 붐빈다. 관객들에게는 <전국노래자랑> 마크가 새겨진 종이 선캡과 응원용 풍선이 제공된다. 이런 풍경은 몇 십년 동안 이어져온 <전국노래자랑>만의 고유한 '트레이드 마크'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전국노래자랑> 팬들은 리허설 때부터 무대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진을 친다.  한글로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수를 놓은 모자를 쓴 한 관객은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리허설 때부터 격한 응원을 한다. 어떤 관객은 그간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초대가수들과 찍은 사진을 붙여둔 커다란 사진첩을 양 팔로 들고 무대 아래를 활보한다. 먼 곳에서부터 오로지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보기 위해서 모인 '골수' 관객들이다.

인천 남구에 산다는 이경임씨는 <전국노래자랑> 무대가 보이는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는 온가족을 데리고 <전국노래자랑> 본선 현장에 구경을 왔다. 이씨는 "내 나이가 <전국노래자랑> 볼 나이지 않나. 평소에 즐겨본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상헌씨는 "교회에 가지 않을 때는 <전국노래자랑>을 악착같이 보려고 한다"면서 "오늘 근처에서 녹화한다길래 송해 선생님 얼굴 보러 왔다. 91세인데 너무 정정하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호출되는 엠넷 < 슈퍼스타K >에 버금가는 끼와 재능을 가진 참가자들로 <전국노래자랑> 무대는 한층 풍성해진다. <전국노래자랑>은 1950년대 < KBS배 라디오 전국노래자랑 >을 거쳐 1980년 11월부터 TV를 통해 38년째 방송되고 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숨은 '노래' 고수들을 찾아내 이들의 노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전국노래자랑>. 2009년 처음 시작한 < 슈퍼스타K >에 비하면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원조의 원조의 원조'쯤 될 것이다.

실제 방송 출연만 3만여 명, 예심 심사에만 85만 명, 총 녹화 관객수 천만 명 이상을 자랑하는 이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은 여전히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만큼 세대별로 폭넓은 사랑을 받다 보니 출연자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3월 KBS <전국노래자랑> '광주광역시 남구' 편에 최초로 외계인 백댄서가 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송해는 방송에서 "누구나 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오고 싶어한다. 진행을 하다 보니 외계인이랑 이야기할 기회도 온다"며 웃었다.

지난 3월 KBS <전국노래자랑> '광주광역시 남구' 편에 최초로 외계인 백댄서가 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송해는 방송에서 "누구나 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오고 싶어한다. 진행을 하다 보니 외계인이랑 이야기할 기회도 온다"며 웃었다. ⓒ KBS


1991년에는 "안경을 쓰고 옷을 바꿔입는 등 나름대로 변장을 하고 하루에 세 번이나 예심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고 1993년엔 출연자가 키우는 흰사슴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등 이른바 <전국노래자랑> '진기록'도 있다. 지난 5월에는 3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노래자랑> 최초로 '외계인'(분장을 한 출연자)이 무대에 올라 베테랑 진행자 송해의 눈길을 사로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주 같은 방송처럼 보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의 역사는 해가 거듭할수록 새로 쓰이고 있다.

"송해를 복귀시켜라" 송해의 존재감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에 인천 미추홀구 주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에 인천 미추홀구 주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 이희훈


1988년 5월 진행자 송해가 처음 무대에 오른 이후로 30년이 넘게 이 프로그램은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 그대로다. 1994년 송해에서 다른 진행자로 한 번 교체가 되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의 "복귀시키라"는 강력한 항의 끝에 송해는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온 지 반 년만에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명실상부 <전국노래자랑>을 대표하는 MC로 자리잡게 된다.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은 "오늘 송해를 보러 왔다"고 답했을 정도다.

"사회자 송해씨가 무대에서 녹화 시작을 알린 직후 첫번째 출연자인 20대의 정윤미씨가 민속주인 머루주를 송씨에게 건네주며 "못 부르더라도 '땡'하지 말아달라"고 청탁, 노래를 불러 합격신호인 '띵똥땡' 소리를 듣고 퇴장했다." (1990년 <동아일보>)

"남녀노소가 똑같이 맨땅에 앉아서 공연을 즐기다 흥에 겨우면 아무때나 일어나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열린 마당'에서 진행하는 덕분이다. 더구나 한낮이므로 굳이 조명도 필요없다. 그런 무대에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또 올해 일흔을 맞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가 횟수로 10년째 지키고 있는 격의 없는 무대에는 근엄한 표정의 기관장이나 유명 인사는 결코 어울리지 못한다. 물론 이 '유랑극단'이 가는 곳마다 '높은 분'들의 출연 요청이 쇄도하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프로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국민가수'들이기 때문이다." (1996년 <한겨레>)

몇십 년간 이어진 안정된 진행은 <전국노래자랑>을 어쩌다 한 번씩 돌아오는 지역(마을) 축제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또 변하지 않는 구성 덕분에 시청자들은 보다 출연자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폐지되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간단하기 짝이 없는 <전국노래자랑>이 폐지되지 않고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몇십 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쌓아둔 단단한 팬층, 10대부터 9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 '악마의 편집'이 없는 예측 가능한 경쟁, 또 안정적인 진행이 결합한 것이 아닐까.

 송해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자 시작된 밴드의 연주에 관중석은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송해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자 시작된 밴드의 연주에 관중석은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 이희훈


현존하는 한국 최장수 MC인 송해는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 결선 현장에 나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출한 참가자들을 격려한다. "예심에 통과하신 분들은 모두 다 1등"이라는 송해의 찬사 한 마디에 긴장한 채 있던 결선 참가자들은 모두 반색했다. 송해는 '사랑의 배터리'를 부르기로 한 참가자를 보면서 "오늘 초대 가수로 홍진영이 오니까 '사랑의 배터리'로 한 번 겨루어 봐"라면서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콩트를 준비한 참가자는 송해의 바로 앞에서 직접 리허설을 하고 조언을 얻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아낌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도록 긴장을 풀어주는 진행자 송해의 방식이다.

리허설이 모두 끝났다. 해가 높이 떴다. 녹화 시간으로 예정된 오후 1시가 되자 송해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리고 외쳤다. "전구우우우우욱!" 그 다음은 시청자들이 모두 아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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