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 배우 신민재, 배우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 배우 신민재, 배우 백승환(왼쪽부터) ⓒ 이정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라남도 함평 소재 학교의 레슬링부 이야기. 편부모 가정 혹은 다문화 가정 소속으로 하고 싶은 건 레슬링 딱 하나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온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이렇게 한국 농촌 사회와 청소년, 장년층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코미디 장르로 푼 '수작'이다.

공식 스태프라고는 붐 마이크를 든 인원 한 명. 촬영과 편집, 각본과 연출은 고봉수 감독이 도맡았고, 종종 출연 배우들이 도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피어난 레슬링 부원 세 명의 이야기를 두고 'B급 감성'이 충만하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수십 억에서 많게는 100억 원 대 영화들이 즐비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들은 틈새를 노리고 있다. 14일 서울 용산CGV에서 감독 이하 출연 배우들을 함께 만났다.

고봉수 사단의 비밀

 영화 <튼튼이의 모험> 중 한 장면.

영화 <튼튼이의 모험> 중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106분의 분량에서 이들이 레슬링 경기에 참여하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뚝심 있게 레슬링부를 지키며 훈련에 매진하는 충길(김충길)이 운동을 관두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는 진권(백승환)을 설득하고, 마찬가지로 학교를 관두고 버스 운전기사가 된 전직 코치(고성완)을 설득하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대학입시를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동네 문제아 혁준(신민재)이 '굴러 들어오는' 과정 또한 하나의 축이다. 경기 결과가 아닌 이들이 모이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다.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다.

시작은 (<방자전>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말 한마디였다. 고봉수 감독은 "함평에 한 중학교 레슬링부가 국가대표도 배출한 곳인데 존폐 위기인 것 같다. 이 소재 가지고 <스탠 바이 미>(1986)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나"라는 김 감독의 말을 전하며, 이 영화의 시작을 설명했다.

"그래서 직접 취재를 갔다. 가서 코치님도 뵙고 학생들도 만났는데 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집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은 마치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님 같았고, 아이들 역시 착하고 예의바른 친구들이었다." (고봉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 이정민


출연 배우들은 감독의 부름에 응했고, 당장 함평으로 내려가 한 달 간 합숙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고 감독의 전작 <델타 보이즈>에 깜짝 출연했던 삼촌 고성완씨를 '공식적'으로 캐스팅했다. 실제로 서울 지역 버스를 모는 고성완씨는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10일 휴가를 내고 적극적인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 '레슬링을 다시 한다고? 포기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확 죽여불랑께~' 고성완씨의 걸쭉한 즉흥 대사들이 그래서 영화에 담길 수 있었다.

출연 배우들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 즉흥 대사로 캐릭터를 소화했다.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다. 고 감독의 전작인 단편 <쥐포>, <사면초가>, 장편 <델타 보이즈> 등에 모두 참여했다. 가히 이들을 두고 '고봉수 사단'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델타 보이즈>에서 남성 4중창 대회에 도전했던 배우들이 캐릭터를 바꿔 레슬링에 도전한 것. 

사실 <튼튼이의 모험>(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기자 주)은 상업영화로 준비 중인 작품이었다. 10억 원 예산이었고, 투자자도 있었는데 문제는 지금의 배우가 아닌 유명 배우 캐스팅을 요구한 것. 배우 신민재는 "투자하신다는 분이 유명한 배우를 썼으면 했는데 감독님이 거부해서 난항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는 취소됐다. 그리고 지금의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가 십시일반 모은 2000만 원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모든 스태프들이 투자자가 된 셈이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김충길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김충길 ⓒ 이정민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배우 백승환 ⓒ 이정민



깊은 배려심

코미디 장르라지만 배우들은 고민이 많았다. 실제 학생들을 참고하다 보니 이들이 처한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기 때문. 배우들은 그들의 밝음 뒤에 자리한 아픔을 이해했고, 영화적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하려 했다.

"학생들과 훈련 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밥도 같이 먹고 운동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더라. 개인적으론 그 친구들을 보면서 반성도 했다. 이렇게 밤낮으로 운동만 하는데 저 역시 연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참 안 하는구나 싶었다." (김충길)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감독님은 웃기라고 했지만 너무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레슬링 부 코치님은 사비를 털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정말 목숨을 거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하는 것에) 책임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마치 어른 같더라. 개인적으로는 혁준 역을 하면서 욕을 너무 무분별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 (신민재) 

"레슬링부 아이들이 편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인 경우가 많더라. 근데 그 안에서 되게 끈끈했다. 시합에 나가면 다른 팀에서 외국인 나왔냐고 놀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가 돼서 한국 사람이라고 같이 싸워주고 그러더라. 그 친구들은 편부모든 다문화든 신경 안 쓰고 서로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승환)

이런 마음으로 임해서일까. 즉흥 대사라지만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충길은 고지식하면서도 강한 집념을, 진권은 진지해보이지만 허당의 면모를, 혁준은 불량 서클 소속이지만 순수한 면을 영화에 잘 담았다. 다만 정해진 대본이 아닌 매번 즉흥 대사를 해야 하는 환경은 자칫 배우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법했다. 이 물음에 세 배우 모두 확고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연극을 주로 했기에 대본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고 감독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맛을 봤다고 할까. 마치 제 안에 다른 기능이 탑재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신민재)

"전 오히려 대본이 주어지면 잘 못하는 타입 같다. 상황에 집중해서 자유롭게 하는 연기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을 만났다. 힘든 것 보단 좋은 면이 더 많다." (김충길)

"처음엔 즉흥 대사를 어렵게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원하는 신과 그 목표를 생각하면서 임하니까 지금은 편해졌다. 애드리브는 반드시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사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 그걸 깨닫게 됐다." (백승환)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다른 개성, 같은 목표

고봉수 감독과 이 세 배우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시작은 백승환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연기학원에 다닐 때인 2005년 무렵, 아는 작가를 통해 고봉수 감독을 만나게 된 백승환은 같은 학원에 다니던 신민재와 김충길을 고 감독에게 추천한다. "우리 셋은 학원에서 이미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봤다"며 백승환이 말을 이었다.

"감독님이 오라고 하기에 마침 하는 일도 없었고 그냥 갔다. 하루 이틀 만에 붐 마이크 한 대와 카메라 한 대로 영화를 찍는 모습이 새롭더라. 영화과 학생들도 그렇게 안 찍는데(웃음). 근데 또 결과물이 좋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이 감독님의 단편 <쥐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백승환)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들은 현재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만난다. 매주 월요일 마다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할 정도로 이들은 진지한 종교인이기도 했다. 참고로 영화에 나오는 음주 장면은 모두 물을 마신 것이라고 한다. "생긴 건 술과 담배 엄청 잘할 것처럼 보이죠?"라며 신민재가 웃어 보였다.

하나씩 짚어 보면 네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주류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 나름 진지하게 영화를 대했고, 실력을 쌓아왔다. 어릴 때부터 B급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왔다는 고봉수 감독은 "대학 때 전혀 관심 없던 전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다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때려 치웠고, 이후 한 영화 아카데미 3개월 과정에 등록해서 카메라 조작법과 편집 프로그램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고봉수 감독은 이 지점에서 세 배우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영씨>(배우 김충길이 주연인 로맨틱 코미디 물)를 공개한 그는 이후 50억 원 규모의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 작품에서도 세 배우들이 출연한다.

"백승환 배우를 보시라. 잘 생기지 않았나. 잘 생긴 배우와 작업하고 싶어서 인연이 됐는데 인성까지 좋더라. 그리고 그가 소개한 친구들, 특히 신민재 배우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제가 찾던 이미지였다. 마치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개성 넘치는) 말이다. 그래서 <쥐포>의 주연으로 모신 것이다. 김충길 배우는 음... 마치 한국의 호아킨 피닉스 같다. 어떤 설정을 줘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소화해 낸다. 제가 배우들의 수혜를 입는 편이다. 배우들에게 영감도 많이 얻고, 종종 이런 천재 배우들이 또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고봉수 감독)

앞서 강조했듯 고봉수 감독 사단(세 배우 외에도 윤지혜, 이웅빈 등도 단골 배우다- 기자 주)은 곧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물론 기자가 일방적으로 붙인 의미지만 이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서로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주성치 영화에 오맹달, 홍금보, 주인 등이 있다면 고봉수 감독 영화엔 이들이 있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진 않으니 날 잡고 고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배우 백승환, 배우 신민재 ⓒ 이정민


신민재, 김충길, 백승환의 '짧은' 히스토리
재기발랄하고 재능 넘치는 이들은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연기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어떤 계기로 배우를 꿈꿨고, 어떤 작품으로 대중과 접점을 마련해 왔을까. 이들이 각자 자신의 히스토리를 털어놨다.

"고봉수 감독님처럼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돌아보면 제 속의 불만들을 영화로 해소한 것 같더라. 마음속으론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그땐 그걸 말하면 놀림받던 시기였다. 보시다시피 제가 멋있게 생기진 않지 않았나. 마침 그 무렵 송강호, 설경구 선배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마침 연극을 하기도 했고 연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연기 학원을 다녔고 지금의 승환이를 만난 것이다." (신민재)

"어릴 때는 개그맨이 꿈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품행제로>를 틀어줬는데 여학생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아, 영화로도 사람을 웃길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구나! (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연극반에 들어갔고, 대학도 연기를 전공하게 됐다. 사실 운이 좋았다. 고등학교 연극반은 인원 미달이었고, 대학교 연기과는 제가 1기였다. 그리고 승환 형과 감독님을 만났다. 전 사람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김충길)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다. 당시 사귄 여자 친구가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따라갔더니 거기 학원 선생님이 저에게 대본을 읽어보라더라. 읽었는데 칭찬받았다. 아마 학원 수강생을 끌어 모으려는 수였겠지(웃음). 처음엔 대학 가려고 연극영화과를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열정이 더 강해져서 연기학원엘 다녔고, 사실 배우 매니저도 했었다. 극단에 들어가려다 교통사고를 당해 아예 연기를 그만 두려던 차에 지금의 배우들을 만났다. 그렇게 연기를 이어가게 됐다." (백승환)

배우 신민재는 대학로에서 중소규모 연극에 출연했다. <수레바퀴> <정의의 사람들> <살아남은 자들> 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다. 배우 백승환은 여러 단편 영화에 참여했다. 상업영화로는 <뷰티 인사이드> 오디션에 합격해 출연하게 됐으나 최종 개봉 버전에선 편집 당했다. 김충길은 두 배우 보단 다소 화려하다. 드라마 단역을 주로 해왔다. <빅> 1회에선 선생님을 놀리는 고등학생 역, <응답하라 1998>은 박보검과 혜리에게 배구공을 던지던 취객으로, <오 나의 귀신님> 1회에선 보쌈 배달원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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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아픈 상처 고백... 김해숙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터뷰] 영화 <허스토리> 참여하며 우울증상까지... "말할 수 없는 감동 느꼈다"

"과거 얘기가 아닌 그 아픔을 겪은 그 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배우 김해숙이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 참여한 이유는 분명했다. 1992년부터 6년 간 총 23회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관부재판'을 그린 이 영화엔 그의 말대로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견딘 할머니들의 뜨거운 모습이 담겼다.그중 김해숙이 맡은 인물은 성노예로 끌려간 과거를 가슴 깊이 묻고 있다가 점차 세상에 진실을 알리게 되는 배정길이다. 고통의 세월을 지나 아들 하나를 두고 극중 여성사업가 문정숙(김희애)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던 그는 영화 안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겨우 가슴에 묻었는데 그 상처를 자신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울릴 만했다."연기할수록 무서웠다" 앞서 말한 참여 이유, 그러니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에 더해 김해숙은 "저도 몰랐던 관부재판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보탰다. 정리하면 어떤 사명감과 배우 개인이 품고 있던 도전의식의 결합일 것이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이 영화의 좋은 뜻을 알리고 싶었다. 그 재판을 겪으신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살아계신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를 알리며 우리가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이렇게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실제 관부재판에 참여한 인원은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정신대 근로자 7명이다. 이중 김해숙은 이순덕, 하순녀, 박두리 선생 중 한 인물을 모델로 했을 법했다. 김해숙은 고개를 저었다. "배정길의 실제모델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는 "그걸 떠올리면 김해숙 개인의 생각까지 들어갈 것 같아서 (시나리오에 표현된) 배정길에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독님이 워낙 자료조사를 잘했고, 오래 준비하셔서 거기에 충실하려 했다. 배우들끼리도 따로 얘기할 정신이 없었다. 각자 맡은 인물들의 감정의 끝을 놓지 않으려 하면서 서로 말없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연기하면서 너무 힘들지?' 손짓 하나로 마음이 통하곤 했다. 특히 재판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누구 하나라도 쓰러지지 말자는 각오였다."평균 나이 환갑을 넘긴 네 배우들은 잘 버텨냈지만 정작 연출자인 민규동 감독이 마지막 촬영 당시 쓰러졌다는 후문. "덕분에 배우들이 좀 쉴 수 있었다"면서도 김해숙은 "오전부터 아프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감독의 노고를 언급했다."실제로 그 분들의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다만 법정 장면에선 다른 생각이 들더라. 그 아픔과 모욕을 겪어낸 분들이기에 오히려 일본 법정에선 더 강해졌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스물 세 번의 재판을 견디셨겠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왔다'를 당당히 말해야 했기에 나 역시 연기하면서 울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다. 그간 한 많은 엄마 역도 참 많이 했다. 보통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이 캐릭터는 이럴 것이다'하고 상상이 되는데 <허스토리>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아픔을 알 수가 없더라. 겁이 나고 너무 무서웠다. 제가 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그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힘이 들더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감동 김해숙의 말은 지난 언론 시사회 때 다른 배우들이 고백했던 심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20년은 훌쩍 넘긴 경력의 배우들이 한 목소리로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없어 모든 걸 내려놓고 연기하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중압감은 일종의 책임감으로 다가왔을 터. 그래서 그 마지막 재판 신을 마쳤을 때의 김해숙의 심정은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제가 재판을 받는 걸 끝으로 촬영이 마무리 되는 일정이었다. 배우들 모두 탈진 상태였지. 동시에 어떤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수정씨 역시 영화를 보신 후 가슴이 벅차서 말을 못하시지 않았나. 솔직히 영화를 보는 게 두려웠다. 시사회 때도 몰래 혼자 확인하고 싶더라.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분명 작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다. 확실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더라. 조금 일을 쉴까 했는데 그러면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차기작 드라마를 한 것이다. 근데 그걸 끝내고도 계속 우울감이 있으니 병원에선 약을 권하기도 했다. 일단 약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저만의 여행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괜찮아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스스로를 두고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분명 <허스토리>는 쉼표를 찍게 한 작품이 된 것.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왜 연기를 하는지 돌아보고 다시금 본인의 의지와 열정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마친 뒤 그는 본래의 열정적인 '국민엄마'로 돌아와 있었다."누군가는 지겹다 하실 수도 있지만 전 작품 욕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는데 <해바라기> <박쥐> 등을 하면서 그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정은 하나라도 엄마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 말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음엔 삭발을 할까? 생각도 한다니까(웃음). 엄마는 지고지순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엄마는 상징이 아니다. 그간 정말 다양한 엄마를 제가 하지 않았나. 딸의 애인을 뺏는 엄마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제가 '엄마도 하나의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많은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어떤 설렘환갑을 넘겼다는 사실을 말하니 "마흔 아니었나요?"라고 답하며 그는 크게 웃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언뜻 방향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청춘들이 참고할 지점이다.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 하면서 김해숙은 "결국 본인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고 운을 뗐다."아마 말로는 알아도 체감은 못할 수 있는데 인생은 정말 마라톤 같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뭐든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 5년 뒤? 아마 그때도 현장에 있을 것이다. 언제든 현역으로 활동하고픈 사람이니 말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보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면 설렌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분명 작품 수가 많아질수록 무서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걸 버티게 해준다. 현장에선 배우로, 집에선 배우라는 걸 잊고 철저하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려 한다. 결국 마음가짐 아닌가. 나이 들면서 나를 내려놓을 때 행복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자신을 낙천적이라 표현했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김해숙은 보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허스토리>를 통해 중년 이후 여성 배우들이 대거 관객 앞에 등장한 현상에 대해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여배우들의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고, 훌륭한 여배우들이 많은 만큼 분명 바뀌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동시에 그는 "여배우, 남배우가 아닌 그저 다들 배우일 뿐"이라며 "자신과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준비하는 배우가 되어야 겠다"고 한 번 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확인했다.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싸운 김희애의 고백... "부끄러웠다"

[인터뷰] 관부재판 이끈 문정숙 대표 역 "하루하루 과제하는 기분"

1980년대 청춘스타로 급부상 했던 배우 김희애의 최근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종종 여전한 추억의 대상이자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 안에 머물기도 했지만 드라마 <밀회>에선 파격적이고도 주체적인 여성이었고, 이후 다양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대중 앞에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자리매김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습이다.그리고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허스토리>로 김희애는 다시 보폭을 넓혔다. 1992년부터 6년 간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들을 이끌고 일본 정부를 법정에 세운 사건, 실제 '관부재판'을 이끈 문정숙 대표 역이었다. 부산 지역 여성 사업가로 재산을 탕진하다시피 하면서 할머니 10명을 도운 인물. 김희애는 "너무 하고 싶었다"며 시나리오를 읽었던 당시 심경부터 전했다.이어졌던 난관 "할 것들이 많아 보였고 겁도 없이 참여했다. 뒷일은 생각도 못한 거지. 막상 시작하니 벽이 높았다.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 같더라. 정말 다 지우고 신인처럼 임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방법들은 다 시도해보려고 했다. 욕심 만큼 너무 하고 싶었기에 끝나고 난 뒤 후회는 남지 않더라."김희애가 느꼈던 가장 높은 벽은 언어 문제였다. 설정 상 완벽한 부산사투리와 일본어를 써야 했던 그는 촬영 직전까지 지도 선생과 매일 접촉하고, 심지어 부산에 내려가 시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등 다각도로 준비했다. "도저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사실 사투리를 아예 안하는 설정도 생각했다. 감정만 잘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제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니 사투리가 없으면 도저히 안 되겠더라. 사투리가 일단 돼야 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의 영화였으면 어느 정도 연습하고, 망신 좀 당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배우가 작품마다 최선을 다 하지 않겠나. 저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사투리 다음은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 캐릭터는 김문숙 정신대문제 대책 부산협의회 이사장을 참고로 했다. "실제로 뵙진 못했다"며 김희애는 "그 분의 사진이나 관련 기사 등을 참고했고, 사실 시나리오 한 권만으로도 벅찼다"고 말했다. 성공한 지역 사업가가 사람들의 눈총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피해자들을 보듬고 재판을 이어 나가는 모습은 김희애는 그대로 받아들였다."충분히 공감이 갔다. 문정숙은 처음부터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 도의적으로 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강해진 것이지. 그렇게 한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에 여성 사업가가 목소리를 낸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기생 관광을 했다며 영업정지도 당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일상을 산 사람이다. 앞만 보고 달린 사람이지. 그러다 우연하게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사람이란 게 결국 한 끗 차이 아닐까. 처음부터 좋거나 나쁜 사람은 없고 어떤 순간에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정숙이라는 인물도 60세가 넘어서 재산을 다 털어 넣은 건데 대사 중에도 '부끄러버서!'라는 말을 하잖나. 연출하신 민규동 감독님도 김학순 할머님의 최초 증언 이후 부끄러운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고 이번 영화를 만드셨다. 저로선 진심을 다해 마음을 다해 작품에 참여하려 했다." 연대의 힘김희애 역시 <허스토리>를 하면서 느낀 자신만의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관부재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그는 "늦게나마 알게 된 게 너무 부끄러웠고, 조금이나마 진심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말을 이었다."그 끔찍한 뉴스를 애써 보지 못했다. 할머님들의 아픔과 이야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알지도 못했고... 그저 저는 이 작품에 피해를 안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함께 참여하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선생님들은 역시 연륜이 있으셔서 현장에서 순수하게 임하시는 것 같더라. 한 신도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경력이 20년이든 50년이든 정말 초심을 잃지 않으시는구나. 나도 그런 배우가 돼야한다고 생각했다.개인적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여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고 피해 입은 분들이 결국 재판에 참여하고 할 말을 다 하시는 인간적 승리가 있는 영화라고 봤다. 얼마나 한이 맺혔겠나. 그리고 함께 행동하셨다. 함께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극중 문정숙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분노, 한국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지치지 않는다. 자연인 김희애로서는 어떨까. 고등학생 때 데뷔한 이후 톱스타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삶의 동력을 물었다. "그 얘길 하려면 몇 날 밤을 새야 하는데..."라며 그가 웃어보였다. "순간순간 감사하려 한다. 또 좋은 자극이든 나쁜 자극이든 자극을 느끼려 한다. 최근 어떤 영화를 보면서도 와, 저런 연기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가 여전히 현역임에 새삼 감사하고 있다. 물론 데뷔할 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시스템이 돼 있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일했지. 보호받지 못했고, 그땐 일의 소중함도 잘 몰랐다. 이렇게 지금까지 일을 할 줄 몰랐지. 운명인 것 같다. 나문희 선생님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고, 현장에서 또래 배우들과 선생님들이 현역으로 뛰시는 게 그렇게 반갑더라. 외국 배우들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여전히 활동하는 걸 보면 참 힘이 된다."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비결은 소박했다. "제 삶이 참 심플하다"며 김희애는 "매일 스스로에게 주는 과제가 있는데 그걸 하나씩 이뤄가고 늘려가고 있다. 그게 어쩌면 비결일 수 있다"고 말했다."하루살이 인생처럼 말이지(웃음). 그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0년이 된다.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제 일상은 평범하게 보낸다. 배우라고 산 속에 혹은 매일 파티장에만 있을 수 없잖나. 평범한 제 일상을 잘 살아가다 기회가 오면 연기하고,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게 제가 계속 연기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과제를 해내면 스스로 칭찬한다! 부정적이기 보단 긍정적이기를 택한다. 일부러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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