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이정민


"과거 얘기가 아닌 그 아픔을 겪은 그 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배우 김해숙이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 참여한 이유는 분명했다. 1992년부터 6년 간 총 23회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관부재판'을 그린 이 영화엔 그의 말대로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견딘 할머니들의 뜨거운 모습이 담겼다.

그중 김해숙이 맡은 인물은 성노예로 끌려간 과거를 가슴 깊이 묻고 있다가 점차 세상에 진실을 알리게 되는 배정길이다. 고통의 세월을 지나 아들 하나를 두고 극중 여성사업가 문정숙(김희애)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던 그는 영화 안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겨우 가슴에 묻었는데 그 상처를 자신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울릴 만했다.

"연기할수록 무서웠다" 

앞서 말한 참여 이유, 그러니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에 더해 김해숙은 "저도 몰랐던 관부재판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보탰다. 정리하면 어떤 사명감과 배우 개인이 품고 있던 도전의식의 결합일 것이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이 영화의 좋은 뜻을 알리고 싶었다. 그 재판을 겪으신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살아계신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를 알리며 우리가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이렇게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실제 관부재판에 참여한 인원은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정신대 근로자 7명이다. 이중 김해숙은 이순덕, 하순녀, 박두리 선생 중 한 인물을 모델로 했을 법했다. 김해숙은 고개를 저었다. "배정길의 실제모델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는 "그걸 떠올리면 김해숙 개인의 생각까지 들어갈 것 같아서 (시나리오에 표현된) 배정길에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주)NEW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독님이 워낙 자료조사를 잘했고, 오래 준비하셔서 거기에 충실하려 했다. 배우들끼리도 따로 얘기할 정신이 없었다. 각자 맡은 인물들의 감정의 끝을 놓지 않으려 하면서 서로 말없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연기하면서 너무 힘들지?' 손짓 하나로 마음이 통하곤 했다. 특히 재판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누구 하나라도 쓰러지지 말자는 각오였다."

평균 나이 환갑을 넘긴 네 배우들은 잘 버텨냈지만 정작 연출자인 민규동 감독이 마지막 촬영 당시 쓰러졌다는 후문. "덕분에 배우들이 좀 쉴 수 있었다"면서도 김해숙은 "오전부터 아프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감독의 노고를 언급했다.

"실제로 그 분들의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다만 법정 장면에선 다른 생각이 들더라. 그 아픔과 모욕을 겪어낸 분들이기에 오히려 일본 법정에선 더 강해졌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스물 세 번의 재판을 견디셨겠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왔다'를 당당히 말해야 했기에 나 역시 연기하면서 울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다. 

그간 한 많은 엄마 역도 참 많이 했다. 보통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이 캐릭터는 이럴 것이다'하고 상상이 되는데 <허스토리>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아픔을 알 수가 없더라. 겁이 나고 너무 무서웠다. 제가 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그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힘이 들더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감동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 이정민


김해숙의 말은 지난 언론 시사회 때 다른 배우들이 고백했던 심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20년은 훌쩍 넘긴 경력의 배우들이 한 목소리로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없어 모든 걸 내려놓고 연기하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중압감은 일종의 책임감으로 다가왔을 터. 그래서 그 마지막 재판 신을 마쳤을 때의 김해숙의 심정은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재판을 받는 걸 끝으로 촬영이 마무리 되는 일정이었다. 배우들 모두 탈진 상태였지. 동시에 어떤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수정씨 역시 영화를 보신 후 가슴이 벅차서 말을 못하시지 않았나. 솔직히 영화를 보는 게 두려웠다. 시사회 때도 몰래 혼자 확인하고 싶더라.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분명 작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다. 확실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더라. 조금 일을 쉴까 했는데 그러면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차기작 드라마를 한 것이다. 근데 그걸 끝내고도 계속 우울감이 있으니 병원에선 약을 권하기도 했다. 일단 약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저만의 여행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괜찮아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두고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분명 <허스토리>는 쉼표를 찍게 한 작품이 된 것.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왜 연기를 하는지 돌아보고 다시금 본인의 의지와 열정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마친 뒤 그는 본래의 열정적인 '국민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누군가는 지겹다 하실 수도 있지만 전 작품 욕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는데 <해바라기> <박쥐> 등을 하면서 그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정은 하나라도 엄마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 말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음엔 삭발을 할까? 생각도 한다니까(웃음). 

엄마는 지고지순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엄마는 상징이 아니다. 그간 정말 다양한 엄마를 제가 하지 않았나. 딸의 애인을 뺏는 엄마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제가 '엄마도 하나의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많은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 이정민



어떤 설렘

환갑을 넘겼다는 사실을 말하니 "마흔 아니었나요?"라고 답하며 그는 크게 웃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언뜻 방향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청춘들이 참고할 지점이다.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 하면서 김해숙은 "결국 본인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고 운을 뗐다.

"아마 말로는 알아도 체감은 못할 수 있는데 인생은 정말 마라톤 같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뭐든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 5년 뒤? 아마 그때도 현장에 있을 것이다. 언제든 현역으로 활동하고픈 사람이니 말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보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면 설렌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분명 작품 수가 많아질수록 무서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걸 버티게 해준다. 현장에선 배우로, 집에선 배우라는 걸 잊고 철저하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려 한다. 결국 마음가짐 아닌가. 나이 들면서 나를 내려놓을 때 행복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자신을 낙천적이라 표현했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김해숙은 보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허스토리>를 통해 중년 이후 여성 배우들이 대거 관객 앞에 등장한 현상에 대해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여배우들의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고, 훌륭한 여배우들이 많은 만큼 분명 바뀌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동시에 그는 "여배우, 남배우가 아닌 그저 다들 배우일 뿐"이라며 "자신과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준비하는 배우가 되어야 겠다"고 한 번 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확인했다.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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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을 줄 알면서도" 백종원이 고집하는 것들

[인터뷰] 월요일의 미식가, 금요일의 독설가... '음식탐구가' 백종원

"기회 있을 때마다 젊은 친구들에게 잘하는 거 하지 말고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요. 좋아하지 않는데 잘하는 일을 택하면 결국 지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밤을 새워도 즐겁고 평생 재밌거든요. 물론 베스트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주 좋아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맞닿아있거든." 요즘 우리는 TV를 통해 백종원 대표(더본코리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매주 확인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전세계 골목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고독한 미식가, 금요일에는 죽은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 식당 리모델링에 나선 냉철한 사업가. 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더본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백종원 대표는 음식을 사랑하고 외식업계에 애정을 가진 '음식탐구가'였다. '음식탐구가'는 백 대표가 불리기 원하는 자신의 직업이기도 하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아래 골목식당)에서 백 대표는 사업가로서의 냉철한 판단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안 되는 집'의 '안 되는 이유'를 콕콕 집어 설명한다. 저마다 다른 사정과 다른 특색, 다른 메뉴의 식당들이지만, 그에 맞는 솔루션과 핵심 노하우를 전수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백 대표는 "메뉴가 달라도, 사업의 기본 맥은 같다"고 했지만, 그 폭넓은 지식은 그냥 쌓인 것이 아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브랜드 상호부터 레시피, 콘셉트 100% 내가 만들었어요. 지금은 회사 규모도 커지고 해서 최근 1~2년 새 나온 브랜드들은 한 70~80% 정도. 커피집, 고깃집, 국숫집... 그런 경험이 있으니 지금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도 할 수 있는 거죠."프랜차이즈 대표의 골목상권 살리기? 백종원의 진정성 백종원 대표가 <골목식당>을 시작하던 지난 1월,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골목 상권 추락의 주범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지목되는 상황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인 그의 '골목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를 기만이라 여기는 시청자도 많았다.수많은 논란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백 대표는 <골목식당>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여론은 바뀌었다. 날카로운 직언은 물론,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식당 경영법이나 레시피, 손님 응대법 같은 것들을 꼼꼼하게 알려주는 그의 모습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사장님들도, TV를 보는 시청자들도, 그의 진정성을 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푸드트럭> <골목식당> 출연자들에 대한 백종원 대표의 남다른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1일 방송된 <골목식당> 해방촌 편에서는 원테이블 식당의 애물단지가 된 냉동고를 사서 횟집에 선물했다. 또, 카레 가게에는 80만원 상당의 업소용 튀김기도 선물했다. 100% 백 대표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방송 끝나도 직접 관리... "이것도 인연인데 다 잘 되셔야죠" 그저 돈 많은 사업가의 선심일까? <골목식당> 김준수 PD는 <오마이뉴스>에 "'저희가 돈 낼까요?' 해도 '내가 사줘야 더 고맙게 생각할 거 아니냐. 그래야 나도 열심히 해서 백종원처럼 성공해야지 싶을 거다' 하시더라"면서 그의 남다른 마음 씀을 소개했다. 출연자에 대한 백 대표의 애정과 관심은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방송이 종료된 <푸드트럭> 출연자들과, 이미 카메라가 떠난 <골목식당> 출연자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더본코리아 개발팀이 주기적으로 매장을 방문해 체크하고 있다고.김준수 PD는 "방송 이후 가격을 올린 몇몇 업주들에게는 직접 전화해서 혼내기도 하고, 초심을 잃고 변질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 단지 돈이 많고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큰 분"이라고 말했다.방송으로 맺은 작은 인연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 백종원 대표는 "방송 이후 그곳을 방문해볼 일반 식당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방송에 나오고 나면 일반 시청자분들은 재미로, 호기심으로 식당을 가보시겠죠. 근데 실제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은 진짜 보고 배우려고 가보거든요. 그런데 방송 이후에 관리가 안 되어 있으면 보고 얼마나 실망하시겠어요. 방송에 나온 중요한 팁들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안 들텐데 그럼 안 되잖아요. 그분들한테는 생업이 달린 일인데." 백종원 대표는 과거 SBS <해결 돈이 보인다>에 출연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해결 돈이 보인다>는 대박집 사장이 쪽박집 사장에게 성공 비결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백 대표는 이 프로그램에 '대박집 사장'으로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대박집 사장으로 여러 번 출연했었는데, 한 쪽박집은 다른 TV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지만 또 망한 집이었어요. 다시 도와드렸는데 또 망했죠. 방송으로 인한 관심은 잠깐이에요. 관리가 안 되면 결국 다시 망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방송이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계속 잘들 되셔야죠." 백 대표는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 '너네 점주들 관리나 잘해라'라는 댓글이 달리더라"며 말을 이었다."<골목식당>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우리 점주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내가 천 명 넘는 점주들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이야기할 수도 없고, 전국에 계신 식당 사장님들을 일일이 도와드릴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골목식당>이나 <푸드트럭>을 음식 장사하시는 분들을 위한 교재 만든다 생각하고 찍어요. 공중파를 통해 교육하는 거지." 이런 과정을 통해 백 대표가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보람"과, "내 방법이 맞다는 확신"이라고 했다."강남역 핫도그 푸드트럭 사장님처럼 내가 드린 팁을 제대로 흡수하고, 방송 후에도 초심 잃지 않고 장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끼죠. 사실 보람을 느낄 때보단 실망할 때가 더 많아요. 하지만 핫도그 사장님 같은 분들 보면서 하는 거예요. 지금 모르고 계신 분들도 방송을 계속 보다 보면 결국 깨닫게 되시겠죠." "곱빼기 시킬 걸 그랬다" 아쉬움에 담긴 음식 사랑 <골목식당>을 통해 백종원이 가장 '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아래 스푸파)를 통해서는 백종원이 가장 좋아하는 것, '음식'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아, 맛있다. 두 개 살 걸" "양념에 밥 비벼 먹고 싶다" "곱빼기 시킬 걸 그랬구나" <스푸파> 애청자들은 백종원 대표에게 '후회 전문가'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내내 더 많이 먹지 못한 것, 더 맛있게 먹지 못한 것, 더 다양하게 먹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입에 넣으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요리사에게 양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골목식당>이랑 표정부터 다르더라'하고 농담하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며 밝게 웃었다. <스푸파>에서 음식을 맛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면 '저렇게 맛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미각도 결국 자극인데, 이미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봤을 그에게, 더 이상 새로운 맛,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랄 게 있을지 궁금했다. "더 설레죠. 기억에 있는 음식은 먹기 전에 더 흥분되고 침도 질질 흐르고. 기대되잖아요. 입맛 없을 때? 아플 때 말고는 없어요. (웃음)" <스푸파> 제작발표회에서 백 대표는 이 프로그램을 두고 "사업성이 없는 프로그램"이라면서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안 되면 PD가 회사에 욕 많이 먹을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통 해외 제작 프로그램이 2박 3일 촬영해 3~4회 분량의 방송을 만드는 것과 달리, <스푸파>는 '한 도시에 한 편'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4~5일 해외 촬영 뒤 한 회분을 만드는 것도 비효율적인데, 스태프도 50명이 넘는다. 촬영 내내 "이렇게 돈 많이 들여 어떡할 거냐" 걱정했다던 백종원 대표. 하지만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스푸파>는 다큐멘터리 뺨치는 영상미와 색다른 재미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촬영할 때 박희영 PD가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나 했어요. <집밥 백선생> PD였는데, 첫 방송 보고 그랬어요. 이 끼를 어떻게 감추고 있었냐고. 고생했다고 했죠." 처음엔 <삼대천왕>과 비슷한 포맷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자꾸만 무겁게 해달라, 진지하게 해달라는 박 PD의 요청에 "참 희한하다. 다들 가볍고 편하게 해달라는데 왜 그러냐" 했다고. 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에서 보여준 모습과 비슷했다고 이야기하자 "그땐 방송을 몰라서 진짜 굳었던 거고!"라며 웃었다. 국경 없는 '백과사전급' 음식 지식 일찍이 <한식대첩>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그의 백과사전급 지식을 엿보긴 했지만, 중국·태국·일본·미국 등 국경을 넘나드는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그의 지식은 놀라울 지경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음식에 대한 역사, 의미, 재료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라치면, 곧이어 음식에 대한 실감 나는 맛 표현과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침샘을 자극한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긴 하지만, <스푸파>는 진행자인 백종원의 개인기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대본이 있으면 못 찍어요. 그냥 음식 앞에 두고 빠져들어서 설명하는 거지. 혼자 조그만 카메라 하나 두고 떠들다 보면 옆에 외국인들이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봐요. 한국에서야 내가 누군지 아니까 '촬영 하는구나' 하겠지만 그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뭐 하는 사람인가 싶겠죠. 그런 시선이 신경 쓰이고 어색할 때도 있지. 근데 음식 보면 순간적으로 빠져버려요. 하나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고... <스푸파>는 내가 실제 한 얘기의 1/10밖에 안 돼. 약간 미쳐서 하는 거예요. 하하하." 백 대표의 맛 표현은 객관적인 지식과 분석,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취향'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마리텔>을 시작으로 '백종원표' 레시피와 '백종원 취향'의 맛집에 관심이 쏠리면서 그의 맛 표현이 일종의 '바이블'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레시피에 찬양을 보내고, 어떤 이들은 '짜다' '달다'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레시피 알려주고 욕 안 먹는 법? 쉬워요. 싱겁게 알려주면 돼요. 싱겁게 먹는 사람들의 어필이 제일 세거든. 식당 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짜거나 달면 한마디씩 해도 싱겁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이나 요리책에 나오는 레시피는 대부분 싱거워요. 그대로 따라 해도 맛이 안 나는 이유예요." "욕먹을 줄 빤히 알면서도 간을 세게 잡는 덴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기왕 사람들에게 따라 해보라고 알려줄 거라면,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요리 못하는 사람은 네 맛도 내 맛도 아닐 때 뭘 더 넣어야 하는지 아예 몰라요. 근데 짜고 달아도 그 음식 맛이 나면 그다음은 쉽잖아요. '맛있는데 짜' 하는 사람들은 소금이나 간장을 줄이면 되는 거고, '맛있는데 달아' 하는 사람들은 설탕을 줄이면 되는 거고."문어발, 유령 브랜드... "오해 억울" '백종원 레시피'에 대한 호/불호는 백종원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호/불호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방송을 통해 얻은 유명세가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됐을 거라 말하지만, 백 대표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유명세 때문에 받게 되는 오해와 관심이 '독'이 될 때가 더 많다면서. "유명세는 마이너스 요소이기도 해요. 우리 브랜드에는 내 얼굴이 다 박혀 있잖아요. 인식이 쉬우니 피해 다니기도 쉽죠. 내가 한창 <마리텔> 출연할 때 빽다방 가맹점 수가 확 늘었어요. 근데 그땐 우리뿐 아니라 저가형 커피 브랜드가 확장되던 시기였어요. 그 시기의 필요요소였다고 봐야죠. 유명세가 전부라면 유명 연예인들이 오픈하는 가게들, 연예인 얼굴 내건 상품들 다 대박 나야 하는데 아니잖아요." 준 연예인인 '백종원'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면서, 그의 사업에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백 대표는 수긍이 가는 비판과 지적도 있지만, '문어발식 확장'이라든가, '유령 브랜드'라든가 하는 지적은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종원의 더본코리아는 20개 브랜드, 1411개(2018년 6월 현재) 매장을 보유 중이다."브랜드가 많다고 문어발이다, 브랜드 등록만 해두고 가맹점 없으니 유령 브랜드다 욕하는데, 나는 그게 제일 억울해요. 아니, 칼 장수가 과도만 만들어 팔 수 있나요? 회칼도 팔고 연필 깎는 칼도 팔고 하는 거죠. 사실 순수하게 돈만 생각한다면 브랜드 한두 개만으로 집중적으로 영업하는 게 더 수익성이 좋아요. 프랜차이즈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사람들에게 시스템을 알려주고 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길라잡이예요. 그래서 브랜드 하나 오픈할 때 테스트 매장을 최소한 3~5년 정도 운영하면서 데이터를 쌓죠.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빽다방, 전부 이런 식으로 5년 넘게 적자 보면서 만든 브랜드예요. 우리가 10억, 15억씩 투자해 시스템을 만들고, 그걸 점주들에게 전수해주는 거죠. 직영점만 있는 브랜드는 현재 테스트 중인 곳이고, 테스트를 마친 브랜드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도록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직영점 한두 개만 있고 가맹점 하나 없다고 욕하는 기사보면 어휴... 정작 지적해야 할 건 직영점 하나 없이 가맹점 모집하는 신생 브랜드예요. 축적된 데이터도 없이, 노하우도 없이, 도대체 뭘 전수해주겠다는 건지." 백종원 대표는 프랜차이즈를 학원에 비유했다. 과목별로 훌륭한 전문 강사들이 많다면 자신도 한 과목에만 몰두하겠지만, "문제집 팔아먹을 생각만 하는" 강사들이 많으니, 수학도 자신 있고, 과학도, 영어도 자신 있는 자신이 종합학원을 운영하는 것이라면서.내가 방송하는 이유? 가증스럽겠지만... 방송을 통해 외식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면 자연히 외식 사업의 파이도 커지고, 발전할 거라는 믿음. 백 대표의 이런 믿음은 <삼대천왕> <푸드트럭> <골목식당>까지 이어지며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백종원 대표는 <삼대천왕>을 통해 요식업자들의 위상과 자긍심을 높였고, <푸드트럭> <골목식당>을 통해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을 통해 '쉽게 요리하는 법'을 알려줬지만, 정작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요리의 어려움'과, '만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이었다."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내가 방송을 좋아해서 하는 줄 알아요. 뭐, 싫으면 못하겠지. 근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음식이에요. 난 음식 관련 예능만 하지 다른 프로그램은 출연 안 하잖아. <마리텔> 이후로 여기저기 출연 제의가 많았는데 선을 그었어요. 음식 관련 프로그램 아니면 안 한다고. 내 나름의 소신이에요. 물론 방송으로 얻는 득이 전혀 없다곤 말 못 하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손해가 커요. 그래도 계속 방송을 하는 이유는, 방송을 통해 얻고 싶은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이에요. 방송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도 방송을 내가 일하는 외식 분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자, 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을 때, 그 관심을 외식업으로 향하게 하자, 싶었던 거지. 내가 이런 얘기를 각 잡고 하면 가증스럽겠지만, 방송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 기사에도 가증스럽다는 댓글이 달리겠지? 사람들이 알아줄지 안 알아줄지 몰라도 내 마음은 그래요."

10억 거부, '박보검에 공 던진 취객'...'튼튼이'에 얽힌 사연들

[인터뷰] 알고 보면 더 정이 가는, B급 코미디 <튼튼이의 모험> 배우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라남도 함평 소재 학교의 레슬링부 이야기. 편부모 가정 혹은 다문화 가정 소속으로 하고 싶은 건 레슬링 딱 하나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온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이렇게 한국 농촌 사회와 청소년, 장년층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코미디 장르로 푼 '수작'이다.공식 스태프라고는 붐 마이크를 든 인원 한 명. 촬영과 편집, 각본과 연출은 고봉수 감독이 도맡았고, 종종 출연 배우들이 도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피어난 레슬링 부원 세 명의 이야기를 두고 'B급 감성'이 충만하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수십 억에서 많게는 100억 원 대 영화들이 즐비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들은 틈새를 노리고 있다. 14일 서울 용산CGV에서 감독 이하 출연 배우들을 함께 만났다.고봉수 사단의 비밀 106분의 분량에서 이들이 레슬링 경기에 참여하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뚝심 있게 레슬링부를 지키며 훈련에 매진하는 충길(김충길)이 운동을 관두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는 진권(백승환)을 설득하고, 마찬가지로 학교를 관두고 버스 운전기사가 된 전직 코치(고성완)을 설득하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대학입시를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동네 문제아 혁준(신민재)이 '굴러 들어오는' 과정 또한 하나의 축이다. 경기 결과가 아닌 이들이 모이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다.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다.시작은 (<방자전>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말 한마디였다. 고봉수 감독은 "함평에 한 중학교 레슬링부가 국가대표도 배출한 곳인데 존폐 위기인 것 같다. 이 소재 가지고 <스탠 바이 미>(1986)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나"라는 김 감독의 말을 전하며, 이 영화의 시작을 설명했다."그래서 직접 취재를 갔다. 가서 코치님도 뵙고 학생들도 만났는데 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집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은 마치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님 같았고, 아이들 역시 착하고 예의바른 친구들이었다." (고봉수) 출연 배우들은 감독의 부름에 응했고, 당장 함평으로 내려가 한 달 간 합숙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고 감독의 전작 <델타 보이즈>에 깜짝 출연했던 삼촌 고성완씨를 '공식적'으로 캐스팅했다. 실제로 서울 지역 버스를 모는 고성완씨는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10일 휴가를 내고 적극적인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 '레슬링을 다시 한다고? 포기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확 죽여불랑께~' 고성완씨의 걸쭉한 즉흥 대사들이 그래서 영화에 담길 수 있었다.출연 배우들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 즉흥 대사로 캐릭터를 소화했다.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다. 고 감독의 전작인 단편 <쥐포>, <사면초가>, 장편 <델타 보이즈> 등에 모두 참여했다. 가히 이들을 두고 '고봉수 사단'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델타 보이즈>에서 남성 4중창 대회에 도전했던 배우들이 캐릭터를 바꿔 레슬링에 도전한 것. 사실 <튼튼이의 모험>(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기자 주)은 상업영화로 준비 중인 작품이었다. 10억 원 예산이었고, 투자자도 있었는데 문제는 지금의 배우가 아닌 유명 배우 캐스팅을 요구한 것. 배우 신민재는 "투자하신다는 분이 유명한 배우를 썼으면 했는데 감독님이 거부해서 난항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는 취소됐다. 그리고 지금의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가 십시일반 모은 2000만 원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모든 스태프들이 투자자가 된 셈이다. 깊은 배려심코미디 장르라지만 배우들은 고민이 많았다. 실제 학생들을 참고하다 보니 이들이 처한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기 때문. 배우들은 그들의 밝음 뒤에 자리한 아픔을 이해했고, 영화적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하려 했다."학생들과 훈련 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밥도 같이 먹고 운동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더라. 개인적으론 그 친구들을 보면서 반성도 했다. 이렇게 밤낮으로 운동만 하는데 저 역시 연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참 안 하는구나 싶었다." (김충길)"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감독님은 웃기라고 했지만 너무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레슬링 부 코치님은 사비를 털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정말 목숨을 거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하는 것에) 책임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마치 어른 같더라. 개인적으로는 혁준 역을 하면서 욕을 너무 무분별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 (신민재) "레슬링부 아이들이 편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인 경우가 많더라. 근데 그 안에서 되게 끈끈했다. 시합에 나가면 다른 팀에서 외국인 나왔냐고 놀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가 돼서 한국 사람이라고 같이 싸워주고 그러더라. 그 친구들은 편부모든 다문화든 신경 안 쓰고 서로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승환)이런 마음으로 임해서일까. 즉흥 대사라지만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충길은 고지식하면서도 강한 집념을, 진권은 진지해보이지만 허당의 면모를, 혁준은 불량 서클 소속이지만 순수한 면을 영화에 잘 담았다. 다만 정해진 대본이 아닌 매번 즉흥 대사를 해야 하는 환경은 자칫 배우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법했다. 이 물음에 세 배우 모두 확고하게 아니라고 답했다."연극을 주로 했기에 대본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고 감독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맛을 봤다고 할까. 마치 제 안에 다른 기능이 탑재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신민재)"전 오히려 대본이 주어지면 잘 못하는 타입 같다. 상황에 집중해서 자유롭게 하는 연기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을 만났다. 힘든 것 보단 좋은 면이 더 많다." (김충길)"처음엔 즉흥 대사를 어렵게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원하는 신과 그 목표를 생각하면서 임하니까 지금은 편해졌다. 애드리브는 반드시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사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 그걸 깨닫게 됐다." (백승환) 다른 개성, 같은 목표고봉수 감독과 이 세 배우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시작은 백승환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연기학원에 다닐 때인 2005년 무렵, 아는 작가를 통해 고봉수 감독을 만나게 된 백승환은 같은 학원에 다니던 신민재와 김충길을 고 감독에게 추천한다. "우리 셋은 학원에서 이미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봤다"며 백승환이 말을 이었다."감독님이 오라고 하기에 마침 하는 일도 없었고 그냥 갔다. 하루 이틀 만에 붐 마이크 한 대와 카메라 한 대로 영화를 찍는 모습이 새롭더라. 영화과 학생들도 그렇게 안 찍는데(웃음). 근데 또 결과물이 좋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이 감독님의 단편 <쥐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백승환)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들은 현재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만난다. 매주 월요일 마다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할 정도로 이들은 진지한 종교인이기도 했다. 참고로 영화에 나오는 음주 장면은 모두 물을 마신 것이라고 한다. "생긴 건 술과 담배 엄청 잘할 것처럼 보이죠?"라며 신민재가 웃어 보였다.하나씩 짚어 보면 네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주류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 나름 진지하게 영화를 대했고, 실력을 쌓아왔다. 어릴 때부터 B급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왔다는 고봉수 감독은 "대학 때 전혀 관심 없던 전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다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때려 치웠고, 이후 한 영화 아카데미 3개월 과정에 등록해서 카메라 조작법과 편집 프로그램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고봉수 감독은 이 지점에서 세 배우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영씨>(배우 김충길이 주연인 로맨틱 코미디 물)를 공개한 그는 이후 50억 원 규모의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 작품에서도 세 배우들이 출연한다."백승환 배우를 보시라. 잘 생기지 않았나. 잘 생긴 배우와 작업하고 싶어서 인연이 됐는데 인성까지 좋더라. 그리고 그가 소개한 친구들, 특히 신민재 배우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제가 찾던 이미지였다. 마치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개성 넘치는) 말이다. 그래서 <쥐포>의 주연으로 모신 것이다. 김충길 배우는 음... 마치 한국의 호아킨 피닉스 같다. 어떤 설정을 줘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소화해 낸다. 제가 배우들의 수혜를 입는 편이다. 배우들에게 영감도 많이 얻고, 종종 이런 천재 배우들이 또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고봉수 감독)앞서 강조했듯 고봉수 감독 사단(세 배우 외에도 윤지혜, 이웅빈 등도 단골 배우다- 기자 주)은 곧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물론 기자가 일방적으로 붙인 의미지만 이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서로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주성치 영화에 오맹달, 홍금보, 주인 등이 있다면 고봉수 감독 영화엔 이들이 있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진 않으니 날 잡고 고 감독의 작품을 쭉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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