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첫 만남 그리고... 연극 <하이젠버그>는 4면으로 열려있는 무대이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움과 달리 무대 위의 객석에서 보다 가까이 배우들을 관찰할 수 있다. 단순히 오픈을 위한 오픈이 아니라,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분명 독특한 매력을 지닌 무대이다. ⓒ 리앤홍 인터내셔날


영국 런던의 어느 기차역. 42살의 죠지 번스는 75세의 알렉스(알렉산더) 프리스트를 처음 만났다. 사실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아주 특별한, 지금 이 자리에 있을리 없는 사람. 죠지는 충동적으로 그의 뒷목에 입술을 댔다. 그리고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이 상황에 대한 변명과 미안함을 두서없이 털어놓던 죠지. 하지만 그냥 자신의 착각으로 정리하고 이 자리를 떠나버리기엔, 이 늙은 남자에게 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알렉스 프리스트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중년의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여자가 착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자꾸 털어놓았다. 남편이 어땠고,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던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그는 더욱 당황했다. "이상한 레일을 타고 허공을 맴도는 대화"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당신이 여기 있어서 즐거워요"라며 활달하게 끊임없이 말을 토해내는(욕설과 함께) 이 여자를 그냥 끊어버리기엔 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건조하고, 정제된 삶을 이어온 정육점 주인 알렉스. 매우 감성적이고, 유쾌하고, 충동적인 삶을 살아온 학교 직원 죠지 번스. 노년의 남성(75세)과 중년의 여성(42세)의 만남은 이처럼 정신없었고, 뭐라고 딱 정리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처음엔 끝과 끝처럼 상반된 캐릭터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갈수록 그 '무언가'가 동질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록, 이 만남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인생은 어디로,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는가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두 배우 인물의 나이와 배우의 나이가 비슷하게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이 배우들이 소화하는 인물의 매력은, 단순히 그 나이가 비슷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인물들이 겪은 삶의 굴곡들을 이 배우들도 체화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연기가 무대 위로 표출됐다. 늙음을 또 하나의 무기로 장착한 정동환 배우의 연기도, 절정의 단계에 이르른 방진의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신들이 있다. ⓒ 리앤홍 인터내셔날


지난 4월 24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극작가인 사이먼 스티븐스의 신작이다. 연극의 제목은 '하이젠베르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극 중 그의 이름이나 이론이 주요하게 인용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물리학에 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이먼 스티븐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치에 대한 정확성을 높이다 보면 운동량의 부정확성이 커지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고 하면 반대로 위치에 대한 부정확성이 커진다.

"뭔가를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말이에요. 그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빨리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요."

<하이젠버그>는 물리학 이론을 인생에 대한 관조로 풀어낸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너무 그 삶과 가까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게 나라고들 얘기하지만,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실제 나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혹은 내가 나를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자아는 내가 관찰한 나만이 아니라 타인이 관찰한 나와 융합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에야, 우리는 우리 삶의 방향과 속도를 내가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다.

죠지와 알렉스는 모두 자신의 삶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었던 이들이다. 거짓말과 수많은 자기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죠지. 아무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지 않는 시대에, 적자뿐인 이곳에서 같이 늙어가며 쇠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알렉스. 그러나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관찰하고, 간섭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게 된다.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서로 안의 서로 상반된 캐릭터가 서로의 장점으로 서로의 단점을 끌어안는 이야기였다면, 분명 그런 이야기도 매력적이지만, <하이젠버그>의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흔히들 '남자는 이성적',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비슷한 캐릭터들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들 안에 또다른 종류의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 알렉스의 말대로, '성격'이란 분류는 의미가 없다는 걸 극이 스스로 증명한다. ⓒ 리앤홍 인터내셔날


언뜻 죠지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알렉스는 지극히 이성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7년간 50단어로 매일 써온 알렉스의 일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형용사가 너무 많았다! '느낀다'는 것을 싫어했던 알렉스는 죠지 덕분에 삶의 감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면 죠지는 알렉스가 선사한 고요에 매료됐다. 원래 일방적으로 말하는 건 죠지였고, 듣는 건 알렉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죠지는 알렉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알렉스 덕분에 "음표와 음표 사이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음악을 알게 된다.

"듣는다는 건 따라가야 해요.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될지 상상을 하는 거야. 그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오. 음악이란 음표에 존재하지 않아. 음표와 음표 사이 그 공간에 음악이 존재하는 거요."

외로웠던 두 사람, 불완전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 의해 이전과는 다른, 하지만 오히려 본래의 자신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된다. 죠지는 생각보다 과학적이고 계획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고, 알렉스는 생각보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들은 서로를 물들이며, 서로의 안에 감춰진 각자의 면모를 끄집어낸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보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죠지와 알렉스의 관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단순히 '성애적' 혹은 '연애적' 관계에 국한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애인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친구이자, 알 수 없는 내일로 함께 발을 내딛는 동반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보다 큰 사랑이다. ⓒ 리앤홍 인터내셔날


작품 속 시공간을 특정할 만한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고, 신과 신 사이의 구멍은 이따금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후반부에 밀려들 감정의 파고를 만들기 위해 전반부에 감정을 쌓아가고 있는 과정들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온전히 두 배우의 대사와 감정 표현에 집중하고 봐야 하는 이 작품이 과연 대부분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33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마냥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나이 많은 남자와 상대적으로 젊은 여자의 로맨스가 차고 넘친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로맨스에서 여자는 남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원받는 존재이거나, 혹은 나이가 많은 남자도 의외로 매력적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쓰인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불행이나 장애, 그를 향한 폭력이 과하게 전시되기도 한다. 종류가 무엇이든, 결국 귀결되는 건 하나였다.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여성 캐릭터. 혹시 이 연극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하이젠버그>가 그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죠지와 알렉스는 동등한 관계이다. 비록 알렉스가 죠지에게 1만5000파운드를 주지만, 알렉스에게는 평생을 모은 돈이었고, 그게 알렉스의 경제적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건 결코 아니었다. 알렉스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죠지는 그런 알렉스의 살결이 "유럽 같아요"라면서 오래돼서 좋다고 하지만 그건 남자의 늙음을 상대적으로 미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대사는 아니다. 그건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낸 그의 삶을 존중하는 의미에 가깝다

비록 33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죠지도 알렉스도 모두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자기 인생을 살아온, 경험치가 꽤 쌓인 인물이다. 그들은 같이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고, 함께 많은 감정을 공유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구원도, 착취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와 각자의 장애를 지닌 인물이었다.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동질감 덕분에 평등한 관계를 구축해나가며, 이 작품은 그 동질감 위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더 빛을 발한다. <하이젠버그>의 이 빛은, 노란 색깔의 텅스텐 전구처럼 혹은 카페의 창문 밖으로 옅게 깔린 노을 빛깔처럼 따뜻하다. 그건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 쓰인 텍스트이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탱고를 추는 이유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두 사람의 탱고 죠지와 알렉스는 그들의 관계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 대신 탱고를 춘다. 그들에게 있어서 어차피 내일은 예측 불가능한, '불확정성'의 영역일 뿐이다. 다만, 그래서 불안한 게 아니라, 그렇기에 이 삶이 더 아름답고 가치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 리앤홍 인터내셔날


아들을 찾기 위해 미국까지 온 죠지. 죠지를 위해 기꺼이 함께 날아온 알렉스.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죠지는 알렉스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는다.

"내가 한 주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하면 당신은 기꺼이 그렇게 할 거야. 그렇죠? 내가 다른 곳에 같이 가자고 하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당신은 기꺼애 해줄거야. 그렇지? 기꺼이. 그렇지?"

"물론, 기꺼이 그렇게 해줄 거야"라는 알렉스의 대답. 죠지는 알렉스에게 데이트가 아니라 연애를 제안한다. 하지만 앞으로 몇 번의 생일이 남았을지 모르는 알렉스에게, 죠지와의 만남은 두렵기만 하다. 자신이 죽은 듯이 잠을 잘 때, 잠시 자신이 죽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슬퍼서 눈물을 흘린 죠지이니까. 알렉스에게도 죠지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떠났을 때에 죠지가 자기 때문에 그토록 슬퍼하는 걸 견딜 수 없다.

"우린 얼마간의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겠지. 나이가 들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실은 모든 게 너무 짧다는 거야. 너무나 짧아. 인생이 불공평한 것 같아. 이제야 조금 뭔가 알아가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야 인생의 중요한 걸 알게된 두 사람. 서로 사랑하면서도 앞으로의 관계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간절히 필요한 두 사람. 두 사람은 마지막에 키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번의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탱고를 춘다. "전문 댄서"하고만 춤을 춘다며, 죠지가 가르쳐달라는 걸 알렉스가 거절했었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죠지는 알렉스와 탱고를 추려고 이 춤을 배워왔다.

즉흥의 춤. 우리 인생처럼, 다음의 발걸음에 주저앉거나 넘어질지 아니면 또 한 번의 멋진 스텝이 될지는 그 한걸음을 내딛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갈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든, 그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관찰하고 있으니까.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지난 4월 24일에 개막한 연극 <하이젠버그>의 공연 및 콘셉트 이미지. 75세의 알렉스 프리스트와 42세의 죠지 번스의 만남, 성장, 변화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작품에 녹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오는 20일까지.

▲ 가까워질수록 닮아가는 두 사람의 연극 <하이젠버그> <하이젠버그>는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한 번은 봐두고 머리와 가슴에 저장해둘 만한 작품이다. 취향에 따라 호일 수도 있고, 불호일 수도 있으나, 이 정도의 관록 있는 배우들이, 이런 텍스트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건 결코 흔한 기회가 아니다. 오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리앤홍 인터내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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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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