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의 죽음, 그 이후...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 공연 사진. 연극 <사물함>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창고 붕괴로 사망한 이후 남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어른들 사이의 계급 문제는 학생들조차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른에게서 옮겨온 냄새들이다.

▲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의 죽음, 그 이후... 연극 <사물함>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창고 붕괴로 사망한 이후 남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어른들 사이의 계급 문제는 학생들조차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른에게서 옮겨온 냄새들이다. ⓒ 국립극단


고등학생 다은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아마도,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활동이었을 테다. 그렇기에 다은은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이 자리에 버티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도, 창고에서 물건이 떨어지거나 훼손되면 다은의 월급에서 차감된다.

다은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냄새가 나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그곳으로 다은은 갈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곳을 벗어났을 때의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합리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곳은 일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얼마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은은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유튜브 방송을 한다. 비록 보는 사람은 1명에서 많아봤자 3명 정도이지만, 다은은 언제나 발랄한 표정과 말투로 SNS 공간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주제는 '편의점 폐기 음식'이다. 폐기 시간까지 팔리지 않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이에 대해 리뷰하는 방송. 장조림 김밥, 트리플 버터 치즈 샐러드, 리얼 스윗 포테이토 샌드위치, 멜론 맛 피자…. 폐기 시간까지 선택되지 않아 버려지는 건 사람인가, 상품인가? 그래도 다은은 신나게 리뷰를 하고, 리뷰하면서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해서도 투덜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영상은, 비록 별 관심은 못 받을지언정, 차곡차곡 기록이 되어 쌓인다.

편의점은 그런 곳이다. 노동의 공간이자, 유희의 공간, 다은의 삶이 끼어서 머무는 곳. 아니, 그런 곳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의 죽음, 그 이후...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 공연 사진. 연극 <사물함>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창고 붕괴로 사망한 이후 남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어른들 사이의 계급 문제는 학생들조차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른에게서 옮겨온 냄새들이다.

▲ 학생들의 관계 고성적을 노리는 학생들의 특별과외반. 이 반에 원래는 없었던 연주가 끼어 들어온다. 연주는 다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다은과 얽혀 있는 한결과 혜민은 연주가 껄끄럽다. 재우 역시 연주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가운데, 연주가 이곳에 들어오고자 했던 건 단순히 '성적 향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 국립극단


지난 6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고 폐막한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다은, 한결, 연주, 재우, 혜민 다섯 명은 각자 꼬인 관계 속에서 정체되어 있다. 직접적인 사건은 없다. 연극은 그저 다은의 죽음을 기점으로 나뉜 두 개의 시간축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걸 보여줄 뿐이다. 한 개의 시간은 다은의 유튜브 방송이다. 사고 직전에 있었던 방송부터, 그 전 방송 그리고 그 전 방송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또 하나의 시간은 남은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시험은 다가오고, 공부는 제대로 못 했고, 그 와중에 다은의 사물함에서는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다시 과외를 시작하고, 시험을 보고, 성적과 소문에 대해 하소연한다.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 사이에는, 직접적 묘사 없이 그저 설명만 될 뿐인 다은의 죽음이 있다. 다은은 죽었다. 편의점 창고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고, 다은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남는다. 사건. 이 무미건조한 두 글자에는 어떤 추모나 애도도 없다. 남은 건 그저 이 사건을 수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다. 돌아가라고 종용하는 어른들의 태도, 예컨대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심리상담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이 작품에서 어른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청소년극이니까. 그런데 그 청소년들의 처지는 결국 어른들의 처지가 대입되고 재생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편의점의 점주는 혜민의 부모였고, 그 편의점이 입점한 건물의 주인은 한결의 부모이다. 이런저런 전조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다은을 착취하는 데 급급했던 혜민의 부모. 그런 부모를 둔 혜민은 주변의 소문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은 혜민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건 혜민의 부모 잘못인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까지 줄여가며 자신들이 직접 점포를 운영해야 했던, 그렇게 해도 사실 삶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그들. 혜민의 부모는 절대 악이 아니다. 그저 여러 나쁜 어른들 중 하나였을 뿐. 그리고 그 죄악은 세입자를 착취하던 한결의 부모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자리 잡은 부동산 소유자들. 그렇다면 또 한결의 부모가 절대 악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다은의 목숨값을 서로 떠넘기며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하나의 사고로 박제하려할 뿐이다. 그 갈등에 치이는 건 그들의 자녀이고, 학생들 사이 소문에 괴로워하는 게 그들의 아이들인데도.

그저 시험을 잘 보라고, 성적이나 잘 유지하라고, 심리상담 후 빠르게 공부에 복귀해서 부모의 자랑이 되라고 할 뿐이다. 학생은 부모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자아의 욕망은 거세되고,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감정은 언제 터트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부풀어 오른다.

냄새의 정체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의 죽음, 그 이후...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 공연 사진. 연극 <사물함>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창고 붕괴로 사망한 이후 남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어른들 사이의 계급 문제는 학생들조차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른에게서 옮겨온 냄새들이다.

▲ 어른들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 건물주의 자녀와 세입자의 자녀 관계는, 알게 모르게 그 부모의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유한 한결보다 중산층 혜민의 공부가 훨씬 더 절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위태로운 만큼 그 편의점 알바인 다은은 아예 이 특별과외반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국립극단


삼면의 무대는 단출하고, 기이한 각도로 돌출되어 있다. 특별한 장치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이 배우의 대사와 연기로만 극을 끌고 가야 한다. 심지어 <사물함>은 불친절하다. 학생들의 전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각자의 사연이나 동기 역시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의 계급 차이는 그나마 어느 정도 설명되나, 학생들의 개인사는 어디까지나 관객이 유추해야 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학생들은 이미 그들 개인이 아니라 어른들의 대리로만 존재하는데.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진 채, 대사와 대사 사이 침묵이 극장을 짓누르는 순간들이 무겁다. 단조로운 톤의 이 극은, 70분이라는 길지 않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지루하게 혹은 관객을 지치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러나 산발되어 있던 퍼즐이 하나로 모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 치열한 감정들을 어떻게 분출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흔들리는 학생들에게 몰입된다. 이 미니멀리즘이 힘을 받는 건, 작가와 연출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연극적 장치들을 묵묵하게 소화하며 돌파해나가는 배우들의 열연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물함 속에 들어있던 물건의 정체도, 각자의 관계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억지로 좁은, 그 네모난 사물함 속으로 하나씩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네모진 사각형들의 집합체는 개성의 죽음, 영혼의 유골함, 오늘 하루도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의 분향소가 된다. 적당히 이용하고, 적당히 배신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필요하다면 '뇌물'도 '여론 선동'도 쓰이는 곳. 학생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것은 누구의 탓인가?

<사물함>은 청소년을 대상화함으로써 대상화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청소년은 어떠어떠한 존재라고 규정하거나 특별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둥도 아니고, 내일의 희망을 품은 새싹들도 아니다. 어른들에 의해 대상화되고 도구화되어 네모난 틀 안에 갇혀버린 존재들일 뿐이다. 청소년극 <사물함>은 그런 청소년들을 내세워 극 중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어른들을 호출한다. 이따위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런 관계망 안에 학생들을 가둬놓은 어른들. 고작해야 새로 건물을 짓고, 새 점포 계약을 맺어주고, 젓갈을 담그는 그들. 특별면담이나 심리상담이니 모두 사실은 그들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예수의 핏값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빌라도가 물로 그 손을 씻는 것처럼 치사한 면피용 행위일 뿐이다.

<사물함>의 학생들에게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다은의 사물함에서 나는 악취의 정체가 모호한 것처럼. 그 악취의 정체도 모호하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더 심하게 나는 냄새, 폐기 음식을 보관했다가 썩어가는 냄새,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자 했던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상…. 돈으로 거래되는, 돈으로 환산되는 무언가들. 어른들의 생존 전략을 그대로 터득해 반복하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악취는, 학생들의 영혼이 죽어가며 풍기는 '시취'일지 모른다. 나는 이 작품을 보다가 그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더 무서웠던 건, 극장을 나와 눈에 보이는 저 빌딩숲에서 그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 나왔다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의 죽음, 그 이후...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 공연 사진. 연극 <사물함>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창고 붕괴로 사망한 이후 남은 학생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어른들 사이의 계급 문제는 학생들조차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른에게서 옮겨온 냄새들이다.

▲ 사건으로 남은 죽음 시간은 흐른다. 학생들은 선택을 유보한다. 그저 공부를 한다. 누구는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과외를 받는다. 누구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 과외반에 들어온다. 누구는 떠났던 과외반에 다시 돌아온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함에 가둬놓고 외면한 물건에서 악취가 나는 것처럼, 이들이 애써 외면한 죽음은 평생 이들에게 악취의 근원으로 남을 것이다. 그 근원은 결국, 어른들이 심은 것이다.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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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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