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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보다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인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름이 아닌 캐릭터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연기를 찰떡같이 해냈다는 칭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이런 칭찬은 점점 듣기 어려워진다. 이름을 알리면 알릴수록, 필모그래피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 존재감을 지우기 쉽지 않다.

<내조의 여왕> 천지애, <넝쿨째 굴러온 당신> 차윤희, 그리고 <미스티>의 고혜란. 김남주는 그 어려운 일을 매번 해낸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6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를 통해 김남주는 긴 공백기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미스티> 고혜란으로 6년 공백기 한 방에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고혜란 역을 연기한 배우 김남주.

김남주는 오랫동안 또래 여성들의 '워너비'를 연기해왔다. 성공한 여자, 아름다운 여자, 모든 걸 가진 여자, 그래서 닮고 싶은 여자. 실력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미스티> 고혜란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더퀸AMC


"기대 이상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뜨거운 반응에) 개인적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고혜란'이라는 캐릭터가 워낙 강력하고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2030대 여성 분들이 유리천장에 갇혀 발버둥 치는 고혜란의 모습에 많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김남주는 오랫동안 또래 여성들의 '워너비'를 연기해왔다. 데뷔 초기에는 <모델> <내 마음을 뺏어봐>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로 맡았고, 결혼한 뒤에는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을 통해 일도 살림도 척척 해내는 미시족을 연기했다.

<미스티>에서 김남주가 연기한 고혜란은 현재 2030 여성들이 가장 바라고 꿈꾸는 캐릭터다. 성공한 여자, 아름다운 여자, 모든 걸 가진 여자, 그래서 닮고 싶은 여자. 실력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고혜란은 그런 인물이었다.

남다른 야망과 남다른 능력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 앉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일을 산다. 자타공인 '최고의 언론인'으로 불리지만, 회사는 뛰어난 실력과 열정보다, 혜란이 '나이든 여자'라는데 집중한다. 또, 시어머니에게는 그저 '애도 낳지 못하는 며느리'일 뿐. 여자라서 더 참아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혜란의 처지는, 또래의 많은 여성들이기도 했다. 

"젊음이 네 실력 같지?". "선배들은 <뉴스9> 앵커 맡고 1년 차에 국장 달았는데, 전 지금 7년 차에도 여전히 부장이에요"라는 혜란의 대사에 여성 시청자들이 열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고혜란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 훨훨 날아가길 바랐다. '고혜란 정도' 되는 여자도 유리천장에 갇힐 수밖에 없는 스토리도 답답하지만, '고혜란조차' 그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면 현실의 여성들은 그 천장을 부술 판타지조차 품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달리던 고혜란은 결국 자신을 향한 남자들의 맹목적인 사랑에 발목 잡히고 말았다. 고혜란을 사랑한 시청자들에게 <미스티> 결말의 가장 큰 반전은, 케빈리(고준 분) 살인사건의 범인이 강태욱(지진희 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후회하는 듯한 고혜란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성공보다 가족'... 고혜란과 다른 김남주 

 <미스티>의 한 장면

<미스티>의 한 장면ⓒ JTBC


"시청자분들이 고혜란을 이만큼이나 응원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성공을 위해 달리는 혜란의 모습에 저렇게까지 지독하고 처참하게 인생을 살아야 하나 싶었거든요. 고혜란과 김남주는 다른 사람이에요. 저는 가족의 행복이 우선인 사람이고, 현재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거든요. 혜란처럼 산 인생이 좋은 결말을 맞을 수 없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어요."

시청자들은 김남주와 고혜란의 싱크로율에 열광했지만, 정작 김남주는 자신과 고혜란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분들이 제가 굉장히 강하고 당당한 성격일 거라 생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전 매사 자신도 없고, 욕심도 없어요. 자존감도 낮고... <미스티>도 김승우씨가 할 수 있다고 권해주지 않았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도시적인 외모 때문인지 데뷔 때부터 "오피스텔에 살 것 같고, 아메리카노만 먹을 것 같다, 음식도 고급만 먹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지만 김남주는 짜장면과 떡볶이를 좋아하고, 커피는 믹스커피만 마신다며 웃었다.

"어릴 때 너무 힘들고 가난해서 밤하늘의 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건 고혜란과 비슷하지만, 고혜란은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속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전 작은 일에 행복해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모델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기뻤어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고혜란 역을 연기한 배우 김남주.

작품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진기주를 달래고 위로하는 것도 선배 김남주의 역할이었다. 신인 김남주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었는지 물으니 "내가 신인 시절 바라던 선배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더퀸AMC


고혜란은 후배 한지원(진기주 분)에게 <뉴스9> 앵커석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다. 고혜란만큼은 아니지만, <뉴스9> 앵커석은 김남주에게도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자리였다. 뉴스 브리핑 연기할 때 가장 즐거웠다는 그는 후반부 한일철강 관련 리포트를 한지원에게 양보할 때도 '저걸 내가 해야 했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웃었다. 

"어두침침한 혜란의 집과 달리 밝고 화려한 뉴스룸 세트가 좋더라고요. 앵커석에 앉으면 제가 세상의 여왕 같은 느낌도 들고. 하하하. 그런데 고혜란이 한지원에게 '어떤 이유로든 기회가 왔고, 넌 그걸 잡았어. 그럼 이제 <뉴스9>은 한지원의 <뉴스9>이야. 너는 한일철강에 대해 최초로 보도하는 앵커가 될 거다'라고 하잖아요. 전 이 대사가 그렇게 멋있더라고요. 떠날 때를 알고 멋지게 떠나주는 선배. 저도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떠나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작품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진기주에게 '이겨내라. 배우는 굳은살이 박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촬영 안 하고 욕 안 먹는 것보다, 일하면서 욕먹을 수 있는 게 행복한 거다'라며 조언해 주는가 하면, '시청자들이 고혜란 편이라 그런 거다, (한지원이) 혜란이 편으로 돌아서면 덜 욕 먹을 거다'라는 말로 후배를 위로하기도 했다.

"진기주씨와 1회 뉴스 분량 찍을 때 바짝 얼어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신인 때 긴장하고 떨고 얼고... 저도 다 경험해본 일이잖아요. 그럴 땐 몰아붙이면 더 안 돼요. 그 느낌이 뭔지 아는데, 실수만 더 하거든요. 그래서 (웃으며) '떨리지?' 했더니 '선배님 앞이 안 보여요. 한숨도 못 잤어요' 하고 귀엽게 우는 소리를 하라고요. 그리곤 연습을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NG도 안 내고 해냈어요. 똘똘한 친구예요." 

현장에서 얼어있는 후배를 위해 장난을 치는 일도, 선배 김남주의 역할. 신인 김남주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었는지 물으니 "없었다. 그래서 내가 신인 시절 바라던 선배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마흔여덟, 내 나이가 자랑스럽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고혜란 역을 연기한 배우 김남주.

마흔여덟이 된 김남주는 자신의 나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더퀸AMC


어느덧 나이 마흔여덟이 된 김남주. 그는 "나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인생의 탑이 자랑스럽고, 드라마를 끝내니 아이들의 키가 훌쩍 자라있는 것도 기쁘다고. 그래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20대 배우들이 부럽지도 않다고 했다.

"결혼하고 4년 만에 <내조의 여왕>을 했고, 이후 <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했어요. 이때 작품들이 다 잘 되긴 했지만, 늘 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한다는 욕도 많이 먹었어요. 이후로도 비슷한 캐릭터가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6년 공백기가 생겼죠. 

<미스티>는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제 안에 전혀 없는 모습이거든요. 어렵게 도전했고, 그 역할로 성공을 거뒀다는 건 제게도 큰 의미예요. 무엇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행운이죠. 전에는 48살에 주인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 했거든요." 

김남주는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첫 작품이 성공을 거둔 것도 의미가 있다"며 웃었다. 이제 초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은 김남주의 연기하는 모습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짓궂은 또래 아이들이 둘째 아이에게 '너네 엄마 늙어서 TV 안 나오지?' 하며 놀리는 통에 아이가 '엄마 왜 TV 안 나오느냐'고 묻기도 했단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너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이유였다.

후배들에게 희망 주는 선배 되고 싶다 

 미스티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나이 먹고 결혼하는 거, 아이 낳는 거 겁 먹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윤여정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 같은 분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갖는 것처럼요."ⓒ JTBC


김남주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은 가족. '엄마'이자 '아내'의 삶에 충실했던 6년을 보내고, 다시 배우 김남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혹독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연기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마다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이라 울컥했다"고 했다.

"시작할 땐 분명 대단한 성공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잃는 것만 없어도 만족하자'는 마음이었어요. 결과적으로는 40대의 열정을 모두 쏟아부은 기분이었죠. 현장에서도 '나 <미스티> 끝내고 은퇴할 거야'라고 말하곤 했어요. 앞으로 고혜란만큼 멋지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다시 내게 올까 싶었거든요. 

이번 작품을 통해 10대 20대 여성 팬들도 많이 생기고, 좋은 말도 많이 들었잖아요. 후배 여배우들에게 희망이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해요. 저를 보면서 나이 먹고 결혼하는 거, 아이 낳는 거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윤여정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 같은 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갖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제 오래 쉬고 싶지 않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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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탱극'이라는 말의 창시자이자 '이윤지'의 최고 선배인 이석준에게, <카포네>는 지이선-김태형과의 인연 그리고 윤나무-김지현이라는 좋은 팀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다. 그의 말을 지난 4월 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들어보았다.[로키] "평생 거짓말 할 운명이네요" '올드맨', '영맨', '레이디' 중 레이디가 주인공인 '로키'는 쇼걸 '롤라 킨'의 이야기이다. 1923년,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롤라 킨은 약과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 그러던 롤라에게 갑자기 낯선 두 사람이 찾아온다. 빨간 코의 분장을 하고 멜빵바지를 입은 광대들. 두 광대의 정체를 묻는 롤라에게, 그들은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추상적인 콘셉트", "그로테스크한 상징", "당신의 인생을 의인화한 오브제"라고 설명한다."맨 마지막 대사를 올드맨만 하거든요. '어디로 나갈 거죠?' '그거 입고 나갈 거예요?' '평생 거짓말할 운명이네요'라고 얘기하잖아요. 빨간 코의 올드맨만 첫 대사로 이 여자한테 계속 자극을 줘요. 그런 걸 보면, 이 여자가 뱉기 싫어하는 말을 뱉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신기하게도 이 여자에게 중요한 자극을 주는 멘트들이 빨간 코를 한 올드맨에게 묶여있다는 건, 이 여자가 내적으로만 생각했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속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영맨은 이 여자의 긍정적인 면처럼 느껴졌고요. 이 상황을 꼬이지만 즐겁게 풀어가려고 하는 자극제로 받아들였어요."'로키'는 세 에피소드 중 가장 유쾌한 극이다. 기본적으로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하다. 롤라를 제외한 나머지 두 배우는 계속해서 퀵체인지를 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이탈리아 출신 잘생긴 남자이기도 했다가, 숫자를 섬기는 회계사였다가, 성실하고 띄엄띄엄한 벨보이이기도 하다. 롤라가 겪었던 일들을 재현해가는 과정에서, 롤라는 기억해낸다. 자기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누구를 죽였는지. 그리고 깨닫는다. 이 방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실 굉장히 '웃픈' 얘기들이잖아요. 원래 그랬어요. 코미디는 남의 비극을 볼 때 생긴다고. 한계치까지 몰아가는 극한의 고통을 캐리커처처럼 형상화시킨 게 이 작품의 매력이죠. 저희들이 다른 팀에게 가장 조언을 많이 하는 게 로키에요. 새로운 팀이 들어오면 가장 헷갈려하는 것도 로키이고요. 제일 진도가 안 나가는 것도 로키에요. 제일 연습을 많이 하는데도, 어떤 위치에 딱 못 올라오는 순간이 생기거든요. 자기가 무엇을 웃겨야 하는지 아니까 개인기는 강해져요. 그런데 이걸 합으로 몰아붙이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면 재밌긴 해요. 그런데 깔깔거리면서도 남지 않는 이유는, 이게 한 여자의 의식에서 의식의 흐름에서 나오는 얘기여야 하거든요. 그게 코미디고요.예를 들면, 실제로 이 안에 있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벌어졌는가? 아니면 여자는 '당신 아까도 사람을 죽였어', '내가?' 이미 약에 취한 여자가 자기가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도 모르니까. 이 여자가 잠에 깨어 있는 걸까? 아니면 누워있는 채로 계속 자는 걸까. 정말로 이 여자는 방을 나간 걸까.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 수녀 시체를 옮겨달라고 했지만, 두스가 진짜 롤라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될 정도이잖아요. 이 여자는 약물과다로 죽은 건 아닐까? 그런 걸 모를 정도로 이 여자의 의식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해요.그러니까 이 안에서 펼쳐지는 그 합이 어마무시하게 중요해요. 토씨는 틀릴지언정, 누가 로우(Low) 치면, 하이(High) 치고, 누가 하이 치면, 로우 치면서 '뚝딱딱딱딱 뚝딱딱딱딱 딴!'하고 결과물로 딱 내놨을 때 되게 잘 나와야 하거든요. 자다가도 입으로 나올 정도로 빠르게요. 그게 한 사람처럼 나오게 하기 위해서 연습해야 하고! 제일 빨리 해야 하는 클레이-바비나 처음 세 명이 나오는 신은 밥 먹으러 내려갈 때, 밥 먹고 올라갈 때 누가 멀리서 대사를 툭 던지면 자동재생처럼 '도로로록' 돌아요. 그 정도로 빨리 가요. 또 그게 바빠야 하지 않고, 버거워 보이지 않아야 해요. 그 합 안 놓치려고 아직도 연습하고 있어요!"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던 이 작품은, 중요한 순간 롤라가 겪는 일들이 마냥 웃을 수 없는 비극임을 느끼게 한다. 극도로 희화화된 사건들 중에서 롤라는 끊임없이 대상화되고, 비하 받으며,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그러나 평생 거짓말할 운명인 롤라는 혼자서는 나갈 수 없다는 벨보이의 말을 부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쇼를 끝낸 후 홀로 당당하게 이 방의 문을 연다. 한 손에는 그토록 잡고 싶었던 빨간 풍선을 든 채.[루시퍼] "날 그렇게 보지 마" <카포네>에서 '빨간 풍선'은 아주 중요한 오브제이다. 세 에피소드에 모두 공통으로 등장하는 오브제 중 하나이자, 가장 상징적인 오브제이다. 그 풍선이 에피소드마다 각각 상징하는 것은 다르지만, 에피소드 속 주인공들은 모두 빨간 풍선을 향한 열망을 드러낸다. '로키'의 롤라가 빨간 풍선을 무사히 들고 나가는 데 비해, '루시퍼'의 올드맨 '닉 니티'는 이 풍선을 터뜨려버리고 만다.때는 1934년, 장소는 역시나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이다. 알 카포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사이, 카포네의 조직은 닉 니티라는 한 남자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닉은 카포네와 피를 섞은 사람은 아니지만, 유능하고, 조직을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직접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대신 '속삭임'을 이용한다. 모두가 그에게 카포네가 되라고, 렉싱턴 호텔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올라가라고 하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닉에게 중요한 건 그가 사랑하는, 그의 부인 '말린 니티'일 뿐이다."'루시퍼'에서 빨간 풍선은 사실은 말린이기도 해요. 말린의 마음이기도 하고요. 말린이 말하는 그 '평범한 생활'이라는 것이기도 하죠. 말린이 부러워했던 건,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생활인데 항상 잡으려고 했지만 못 잡았죠. '내가 평범해질 수는 없어', '평범해지기는 힘들었어', '난 평범해지고 싶었는데, 평범해지지 못했어', '네가 바라는 그걸 내가 해주지 못했어' 같은…. 그런데 말린이 갖고 싶었던 건 그 풍선 자체가 아니었잖아요, 행복이었는데, 나(닉)는 잘못된 방법으로 그 풍선을 주려고 했고, 말린이 바라는 행복은 그 행복이 아니었어요. 이미 시선이 잘못 맞았죠. 닉에게 말린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풍선이었어요.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선이 실제 풍선일까, 아니면 닉이나 말린의 환상일까 하는 부분은 정확하지 않아요. 실제로 매번 그 창문에만 풍선이 지나갔다는 건 웃기지만…. 밑에 풍선가게 큰 데가 있나? (웃음) 그 당시에는 아이들 장난감이 별로 없으니까, 풍선이 꽤 많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늘에 둥 떠다니는 상징이 실제로 창문 밖으로 올라갔을 것 같고…. 풍선을 보고 실제로 닉이나 말린에게 든 생각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풍선이 지나갈 때마다 둘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어요. 하나씩."닉과 말린의 생활은 언뜻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분명 행복한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말린의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새장 속의 새처럼, 이 좁은 렉싱턴호텔 661호에서 말린은 감금되어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비록 레슨 선생님도 만나고, 쇼핑도 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호텔 룸이 그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인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닉은 조직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으며, 갈등을 회피할 뿐이다.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결국 닉의 속삭임 하나가 파국을 일으키고 만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자동차 폭발 사고로 위장한 암살을 꾸몄으나, 피해자는 말린의 어린 조카들이었다. 가족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린의 앞을 닉이 가로막는다. 닉에게서 다시 광기 어린 폭력이 엿보이고, 그는 그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카포네가 되어 있었다. 말린이 울부짖으며 애원해도 닉은 말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말린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아니까요. 닉 니티가 '나한테 그런 눈빛 보이지 마'라는 그 눈빛은, 말린이 닉 니티에게 보여준 눈빛은 아마, 공포가 아닐까 싶어요. 닉 니티는 밖에 있을 때 말고 집 안에 들어와서 말린한테 다정다감을 보여줬잖아요. 그런데 서로 행복했던 순간의 눈빛이 아니라, 일을 할 때 조직원들이 나(닉)를 봤을 때의 눈빛, 그 공포감을 말린의 눈에서 보는 것에 대한 고통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닉 니티도 공포를 느꼈겠죠. 내가 이렇게 변해가는데, 말린을 너무 사랑하는데, 말린의 눈에서 내 모습이 투영되니까 그걸 거부했던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표정 짓지 마. 날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마. 점점 이상해져.'누군가를 내(닉)가 죽이러 갔을 때, 죽는 순간에 그 사람이 내(닉) 눈을 바라봤을 때 '죽는구나'하는 공포심을 주잖아요. 닉은 누군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인데, 그 방법을 말린한테 쓰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나는 이 여자를 그런 데에서 최대한 멀리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공포심을 주게 된 거죠. 닉 니티한테는 굉장한 혼란을 줬을 거고, 그게 두려웠을 거고, 그리고 이 여자가 닉 니티한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감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결국 터져버린 빨간 풍선. 말린만이 아니라 닉도 봤던 빨간 풍선. 닉도 그 풍선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창문밖 풍선은 너무 멀리 있었다. 뷰익 사건이 없었다면, 이 위태로운 조직 관리가 카포네가 돌아올 때까지 잘 이루어졌다면, 그렇다면 닉과 말린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순간순간의 행복을 계속 이어서 그들의 삶으로 엮어낼 수 있었을까."말린이 마지막에 '나는 내 가족한테 갈 거야', '협박하는 거야?', '난 당신 사랑하지 않아'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말린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에요. 말린은 닉보다 더 큰, 어떤 다른 종류의 보스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닉 니티가 견디지 못했겠죠. 말린은 계속 자신의 품 안에 있어야 하거든요.뷰익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문제가 없었더라도 이 상태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파멸의 길을 갔을 것 같아요. 뷰익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가는 길은 뻔해져 있고, 말린은 성장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그늘에 들어와 있는 철없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빈디치] "사람들은 '아니요'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 1943년, 렉싱턴 호텔 661호. 한때 경찰이었으나 지금은 복수를 꿈꾸고 있는 남자가 혼자 몸을 다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빈디치. 복수의 대상은 시카고의 경찰청장 '프랭크 두스'이다. 루시 두스의 아버지이자, 시카고 정의의 상징, 카포네의 조직을 몰아내고 도시를 탈환한 영웅. 하지만 프랭크를 옆에서 보아온 빈디치는 잘 알고 있다. 프랭크가 얼마나 위선적인 쓰레기인지, 그의 실체가 무엇인지.정의의 빙하기에 살아남은 마지막 공룡, 멸종위기에 놓인 빈디치는 단 하루라도 시카고에 정의가 승리하기를 꿈꾼다. 빈디치의 곁에는 역시나 프랭크에게 복수하고 싶어하는, 프랭크의 딸 루시가 있다. 그들은 카포네의 자리를 대신한 또다른 카포네, 프랭크를 무너뜨리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프랭크는 카포네에요. 이 사람은 애초부터 조직에 더 가까운, 그런 생활이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경찰이 된 것도 정의에 대한 본분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성공에 대한 욕망이 더 컸을 거예요. 베테랑이 되었을 때도, 그 욕망이 이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자라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겠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본인 능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 테고, 이걸 놓치면 자기가 잃을 거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거예요. 자기가 저지른 불법이, 자기한테는 합법적인 느낌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남의 것을 갈취하는 데 있어서 죄책감 같은 건 갖지 않을 테고, 그러니까 와이프도 자동차 사고로 위장해서 죽일 만큼…. 중요한 건 본인밖에 없었겠죠.프랭크는 카포네랑 똑같은데…. 만약 이 사람이 조직에 들어간다면 카포네를 능가할 수 있는 자신은 없었을 것 같아요. 카포네와 비등한 힘을 가지려면 반대쪽으로 가서 그 힘을 키울 사람이죠. 경찰 쪽에서의 카포네라고 불릴 정도였잖아요. 그러면서도 정의의 상징이고.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카포네와 연대해서 범죄를 소탕하는 거예요. 그 많은 일들이 이 이야기에 의하면, 카포네가 도와준 일이에요. 반대파를 숙청하거나 본인이 숙청해야 할 일들을 대거 도와주고, 그 일을 도움 받으면서 이 자리까지 왔어요. 카포네와 협력하며 대등한 입장이 된 것 같을 것이고, 말 그대로 부패경찰의 선봉이죠." 프랭크 두스는 빈디치의 아내인 그레이스를 성적으로 착취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레이스는 자살하고 만다. 아내가 고통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빈디치는 자신의 승진에만 들 떠 있었다. 자신이 한때 믿고 따랐던 선배에게 배신당한 그는, <햄릿>처럼 고뇌하며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낭만적 엔딩을 꿈꾼다. 그런데 프랭크는, 왜 하필 그레이스였을까. 누군가가 '아니오'라고 하는 걸 '네'라고 하도록 만드는 데 희열을 느끼던 그는, 왜 모자를 내려놓고 그레이스를 타깃으로 삼았을까."두스는 빈디치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을까요? 이런 사람들은 어떤 선 이상으로 누군가를 키우지 않아요. 얘(빈디치)는 진짜 정의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있거든.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튕겨져 나가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이게 세컨드가 될 재목일지, 퍼스트가 될 재목인지는 단번에 알 것 같아요. '우리 일만 하면 돼.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못해'라고 카포네의 일에 개입하지 않도록 던져놓고 하는 말이 '그레이스, 잘 있어?'잖아요. 그레이스를 무너트리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두스는 치고 올라오면서 점점 똑똑해져 가는 빈디치를 무너트릴 방법으로도 그걸 택했을 것 같아요."<카포네>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빈디치'는 프랭크 두스가 늙어가는 과정을 장면마다 짧지만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 렉싱턴 호텔 661호에 처음 방문했을 때, 웨딩 드레스를 입은 롤라(로 분장시킨 수녀)의 시체를 보고 프랭크는 이게 진짜일까 의심한다. 조금 더 나이가 들은 프랭크는, 조직과 경찰 간의 검은 연결고리에 대해 이미 눈치를 챘으면서도 애써 빈디치에게 진실을 가린다. 그리고 그 다음, 그는 또 다른 카포네가 되어 있었다. 프랭크는 원래부터 그런 끔찍한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서서히 타락해간 것일까."김태형 연출은 (처음부터 나쁜 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빈디치가 본받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유능한 형사. 몇 가지만 딱딱 보고도 의문이 생기고, 형사 콜롬보 같고…. 그렇지만, 그때도 선함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능력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사람의 어떤 것들이, 어떤 인자들이 이 사람을 타락하게 만들었겠죠. 빈틈의 구멍은 혹은 악의 구멍은 되게 작은 거거든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거죠. 프랭크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이런 전체적인 상황을 게임처럼 생각하잖아요.처음 빈디치의 눈에 두스는 시체 앞에서 태연히 땅콩을 먹을 수 있고, 죽음에 대해 별로 공포심을 갖고 있지 않은, 그냥 어떤 프로페셔널의 모습인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빈디치가 이를 부러워하지만, 시카고라는 환경은 이 사람(프랭크)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으로 악의 물이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을 것 같아요. 그게 사리사욕으로 점점 벌어졌을 것 같고요."☞ 이어지는 기사 : "대학로에 동상 세우고 싶었다"던 배우, 그가 꿈꾸는 것은

"세월호 조작 증거 더 있다... <그날, 바다>엔 10%만"

[inter:view] 김지영 감독의 호소 "앵커침몰은 하나의 가설... 상식의 눈으로 봐달라"

'세월호는 4월 15일 정상적으로 출항한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끝까지 그랬어야만 했다.'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 속 정우성의 내레이션은 세월호 참사가 곧 사회적 참사임을 암시한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였다. "제발 살려달라"던 유가족의 절규는 4년이 지날 때까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참사 직후 사건을 쫓아온 여러 영화들이 있었다. <그날, 바다>는 침몰 원인에 다가간 영화로선 가장 처음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지난 12일 개봉 후 25만 관객들이 <그날, 바다>를 찾아 성원했다. 반면, '음모론'이라는 비난부터 영화가 제시한 몇몇 근거들에 빈틈이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제작자이자 출연자인 김어준 총수는 "모든 가설은 입증되기 전까진 음모론의 성격을 갖는다. 의지만 담긴 부실하고 입증 불가한 결론이 음모론이라면 지난 정부가 발표한 침몰 원인이야 말로 음모론 아닐까"라고 반문했고, 김지영 감독은 "부디 기초적인 공부를 한 뒤 제대로 된 비판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앵커설에 얽힌 비하인드, "이젠 말할 수 있다"영화는 왼쪽 앵커(닻)에 의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이른바 '앵커침몰설'을 내놓으며 마무리 된다. 적재돼 있던 차량들의 블랙박스 영상, 공중에 매달려 있던 올가미의 기울기, 컨테이너 박스가 움직인 방향과 각도 등을 물리학적으로 추론한 결과라고 한다. 사실 이 앵커침몰설에 대해 SNS상에선 이미 활발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이에 대해 먼저 물었다. - 여러 영상을 보니 앵커 작업은 보통 서너 명 이상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고, 불꽃이 튀기도 하며 소음 또한 크더라. 짧은 시간 내 과연 앵커를 내리고 올릴 수 있나 하는 지적이 있다. "짧은 시간의 기준이 뭔지? 충분히 올릴 수 있다. 앵커를 내린 의도에 대해선 따로 말하진 않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앵커가 내려왔고, 배가 45도 기울어졌다. 이 순간부터 앵커를 올릴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둘라에이스호에서 세월호 오른쪽 부분을 봤다는 건 이미 드러난 사실이니까. 그 시간이 8시 50분에서 9시 사이다. 정확한 사고 시점은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어떤 현상을 사고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기에 우리 영화에선 '마지막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건 배가 약 45도로 기운 상태를 얘기한다. 둘라에이스가 세월호 근처에 와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가 9시 30분경이다. 왼쪽 앵커 모양이 (오른쪽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진이다. (누군가가) 레버를 당겨 끌어올리고자 했다면 30분 정도 시간이 있는 것이다.카멜레온 효과로 볼 수도 있다. (출항 때 양쪽 다 검은색이었기에, 그 휴대폰 속에서도) 앵커는 검은색으로 보여야 하는데 4월 16일 낮 1시에 찍힌 사진에선 왼쪽 앵커의 검은 도색이 벗겨져 있다. 둘라에이스호에서 찍은 핸드폰 사진이 화질이 좋았다면 확정할 수 있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 다만 여러 핸드폰 사진을 분석한 경험으로는 이렇게 추정한다. 이미 앵커는 (올라와서) 배에 매달려 있는데 (해저 지형과 충돌 등으로 인해) 도색이 많이 벗겨져 뒤의 배경과 비슷한 색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카멜레온 효과로 회색 배경과 비슷하게 앵커도 회색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앵커를 내린 후 다시 올릴 시간은 충분했다?"그렇다."- 여러 인원이 움직여야 했을 텐데 작업을 본 목격자는 없었을까."그런 건 없었다. 첫 목격자가 결국 둘라에이스라 그들이 목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뿐 아니라 9시 35분 헬기가 와서 배를 찍은 사진이 있다. <파파이스>에 나가서도 제시했는데 확실히 왼쪽 앵커와 오른쪽 앵커 색이 다르더라. 왼쪽은 브라운에 가까웠다. 그리고 (유가족이신) 수현 아버지께서 특조위가 갖고 있는 사진을 입수했다. 역시 헬기에서 찍은 화질이 좋은 사진이었는데 (왼쪽) 앵커 페인트가 거의 벗겨진 모습이었다. 그걸로 확정된 거지."- 앵커가 투척됐다면 배가 좌측으로 한 번 기울었다가 왜 오른쪽으로 갔는지 그 움직임에 대한 의문도 있다."우선 이 영화로 침몰 원인 문제가 공론화 되면 앵커침몰에 대한 건 모형실험이나 시뮬레이션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겠다. 물리학적으로 모든 데이터를 종합했을 때 (세월호에 영향을 준) 중간매개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세월호가 해저 지형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단서들이 나왔잖나. 해저 지형도와 해군 레이더 항로가 일치한다는 것. 절 찾아온 한 물리학 교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다.'해군 레이더 상 이런 항로는 그 해저 지형도의 영향을 받았을 경우에만 만들어 질 수 있다. 전 우주에서도 다른 바다에 가더라도 이런 행적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다. 다른 바다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항적이 (한국의 병풍도) 해저 지형과 연관성을 가질 확률은 거의 없다. 물리학적으로 해저 지형과 해군 항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탄생했다'라고 하셨다.지금까지도 세월호가 언제, 어디에서 급회전해서 45도 기울어졌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근데 제가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둘라에이스 선장이 레이더로 본 바로 그 지점이다. (영화에 나오듯) 사고 직전 바다를 바라봤던 승객들 두 분의 증언에서도 일치하잖나. 그 지점과 해군 레이더 항적이 겹쳐졌을 때 전 우주 안에도 일어날 수 없는 적합성을 보였다. 세월호에서 중간매개물을 내려 해저 지형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다. 추정이 아닌 물리학적 결론이다."- 병풍도 인근 해저 지형의 파괴 흔적을 찾아보진 않았는지."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비가 적긴 했지만 김어준 총수에게 말했다. 병풍도 인근 수심이 30미터밖에 안 되니까 수중 촬영하자. 그리고 사이드스캐너 장비를 갖고 계신 분이 있었다. 해저 옆면을 스캔할 수 있는 장비인데, (영화 제작 중) 갑자기 그 분의 회사가 화재로 소실됐다. 팩트다. 그래서 사이드스캐너 작업이 중단됐고, 이후 과학자 분들과 얘기하는데 한 지질학자께서 똑같은 이야길 하시더라. 해저 지형을 촬영한 적이 있냐고 해서 2014년 그땐 생각을 못했고, 이제 내려가려 한다고 했다. 그러니 아쉽다고 하시더라. 이미 지금은 흔적이 안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퇴적 작용 등을 설명해주셨다. 2014년 그때 내려갔어야 했는데 지금 들어가는 게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서는 한 물리학자의 실험을 통해 왼쪽 앵커가 해저지형에 박혀서 세월호 위에 적재된 컨테이너가 갑자기 왼쪽으로 쏠려 튀어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왼쪽에서 당기는 외력 외에 다른 이유로도 그런 현상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어떤 분이? 우회전해서 그런 현상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선체에 슬라이딩 트위스트 록이라고 있다. 하나당 32톤을 받칠 수 있는 일종의 쇠말뚝이다. 영화에서도 보고서 형식으로 나오잖나. (정부 발표로는) 배가 부드럽게 우회전했다고 하는데 천천히 회전하면 컨테이너도 천천히 쓰러지겠지? AIS 데이터 상으로도 당시 속력이 17노트(1노트 당 1.852km/h- 기자 주)에서 매우 서서히 감소한다. (올해 1월에 진행한) 네덜란드 실험을 통해서도 나왔지만 물살은 선미 쪽으로 밀고 있고, 쇠말뚝이 바닥에 박혀있으며, 부드럽게 우회전한 배 위에서 컨테이너가 어떻게 튀어나가 (왼쪽) 노란 안전바(bar)에 충돌했을까. 여기까지만 일단 설명하겠다."이후 세월호 움직임에 대한 물리적 설명에 김지영 감독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요약하면 해저 지형보다 앵커의 강도가 강하며, 오른쪽 보다 왼쪽의 속도가 감소했기에 지금의 움직임이 나왔다는 것이다. - 결국 누가? 왜? 그래야만 했냐라는 질문이 남는다."그 질문에 대해 김어준 총수의 조언이 있었다. 국가가 한 일이다!라고. 농담이다(웃음). 우리 역시 그게 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다스는 누구 것인가' 이 질문을 수많은 국민이 해주셨기에 검찰과 국가가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통해 수많은 국민들이 '왜'라고 물으시면 결국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준 모든 자료가 조작됐다"기사 '김어준 제작 <그날, 바다>의 충격적 결론... 남는 질문들'에서 언급한 대로, 영화 <그날, 바다>를 지탱하는 가장 강한 논리적 축은 정부가 제시한 선박자동식별장치(아래 AIS, Auto Identification System)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세월호는 정상운행 중이었고 침몰 원인은 '무리한 증축, 과적, 미숙한 운항 등이 직접적이었다'고 발표했다. 영화는 침몰 순간을 최초 목격한 선박인 둘라에이스호 데이터, 해군 레이더, 진도 관제센터 데이터 등을 AIS 데이터와 비교해 '원문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 주장한다. 이와 관련한 의문점을 감독에게 물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주장한 내용과 영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2016년 이후 누리꾼 '자로'가 <세월X>를 통해 'AIS는 조작될 수 없다'고 했고, <뉴스타파>는 지금까지 '외력설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보도를 이어 오고 있다."제가 아는 바 최근 <뉴스타파>는 블랙박스와 CCTV의 싱크를 맞췄다고 보도했다. 근데 17일 KBS에서 블랙박스를 복원한 보도가 나오지 않았나. 선체조사위원회에서도 <뉴스타파> 보도를 지적한 바 있다. <뉴스타파>는 블랙박스에 표기된 시간, CCTV 표기 시간이 믿을 만하다고 봤다가 (최근엔) 블랙박스 시간은 RTC 타이머 문제로 빨라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CCTV 64개 채널의 데이터가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해서도 DVR 전원이 꺼져서 녹화가 안 됐다고 보도했는데, 특조위 청문회에서 그 이후로도 CCTV를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이 지점에서 감독과 동석한 <그날, 바다> 최진아 피디가 말을 보탰다) 물론 CCTV 문제를 처음 보도했을 때는 그런 증언이 나올 줄 몰랐으니, 그 상황에선 접근할 수 있는 지점에서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자료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은 덜 한 게 아니었는지. 그게 아쉽다. 사고에 대한 보고시간도 조작한 정부다. 또 자로는 AIS가 조작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한 기술적 근거가 없다."- 이런 주장도 있다. AIS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선박항해기록장치(VDR, 비행기의 블랙박스 같은 역할)와 레이더 자료 또한 함께 조작됐어야 성립하는 말이라는. "우선, 세월호에는 VDR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나머진 세월호 외부에서 스캔한 자료들이고 세월호에서 직접 송신한 자료는 AIS 하나뿐이다. 이걸 설명하려면 진도VTS(해상교통관제시스템)의 관제자료를 짚어야 한다. 관제자료라는 게 일종의 퓨전데이터다. 그러니까 VTS 자체 레이더 정보와 세월호에서 보내는 AIS 데이터를 합친 형태라는 것이다. 레이더와 AIS가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10에서 20미터 정도다. 예전엔 정밀도가 떨어졌다지만 지금은 발전해서 그 정도다.그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AIS가 조작됐다면 관제자료도 조작된 것이다? 맞다. 조작된 것이지. 그 증거들을 우린 갖고 있고, 이미 특조위 1기에서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둘라에이스 선장님과 생존자들 말이 사실이면 세 가지가 조작인 셈이다. AIS, 진도VTS 관제자료, 그리고 세월호 CCTV 영상까지다. 그래서 우린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세월호 관련 자료는 다 조작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그걸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 레이더 전문가에게 가서 물어보시라. 레이더 영상이 마치 게임 속 버그처럼 한 두 번은 튈 수 있다. 근데 750미터 오차가 30분 간 이어진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AIS 데이터 조작의 근거로 영화에선 '특별메시지' 패턴과 정부가 제시한 AIS 원문 데이터 간의 모순을 짚었다. 특별메시지란 선박이 항로를 급하게 바꾸거나 눈에 띄게 속도 변화가 있을 경우 등장하는 AIS 상 기계 언어다. 모순이 있었다는 건 애초 정부가 제시한 원문 데이터대로 세월호를 운행할 경우, 정부가 발표한 항적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 혹시 세월호 외에 인천과 제주를 오고 간 다른 선박에서도 원문 데이터와 실제 항적 간 오차 혹은 모순이 발견됐나?"다른 배의 데이터도 구해서 검토했다. 다 AIS 규격에 맞는다. 배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데 특별메시지가 나온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AIS 데이터가 조작이 용이한 데이터인가?"정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정부 측을 변호하던 업체도 'AIS는 참고용으로만 써야 한다'고 했다. 레이더는 그걸 관리하는 곳이 정직하다는 가정 하에 조작이 용이하지 않다. 영상데이터고 픽셀덩어리로 표기되기에 조작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AIS는 텍스트 데이터다. 디지털 문자 아스키코드일 뿐이라 저 같은 사람도 좌표를 조작한 AIS 원문을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다. 공부하면서 나도 놀랐다. 프로그래밍 경험자가 3일 정도만 공부하면 조작된 원문을 만들 수 있다. 조작을 방어하는 보안 장치도 전혀 없다. 조작이 쉬운 정도가 아니라 무방비 상태라고 보면 된다."- AIS 데이터, 해군 레이더, 군산VTS 관제자료 간 차이가 크다(약 750미터)는 사실이 데이터 조작 말고 다른 가능성을 의미하진 않을지? 선박과 해군, 관제센터 간 기록방식이 달라서 각 데이터의 차이가 생길 수 있도 있나?"취재해봤다. 진도VTS는 엑스밴드 레이더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로 유명해진 그 레이더고, 해군 레이더는 GPS100이라고 조금 정밀도가 떨어지는 기기다. 그렇다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다. 국토방위에 쓰일 정도로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기에 실전 배치된 것이겠지. 그런 기기들이 500미터 이상의 오차가 있다? 그 정도라면 해상 사고가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조작일 수밖에 없다?"그렇다. 이 영화엔 제가 발견한 조작일 수밖에 없는 증거들의 10프로밖에 안 담겼다. 나머지는 특조위 2기 위원 중 믿을 만한 분에게 전달할 것이다." 진짜 의도는 무엇?AIS 조작과 함께 영화는 의미심장한 주장을 한다. 선원 중 일부가 사고 발생 시각에 대해 상이한 진술을 했다는 것. 직접 드러내진 않지만 영화는 국정원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 대목에서 김지영 감독은 그간 밝히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놨다.- 영화에선 8시 30분경 사고를 감지한 사람들의 증언과 50분경이라 말한 선원들의 증언을 배치하면서 후자가 누군가에 의해 증언을 바꾼 정황을 담았다. 사실상 국정원을 지목하는 것 아닌가."의심이 좀 된다. 조사 과정 초반에 선원들 진술이 나왔다면 수사방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사고 당시 잠을 자거나 한 사람을 빼고 전수조사를 했다. 8시 50분경이라고 한 선원은 단 두 명이다. 이준석 선장과 박한결 항해사. 그리고 30분이라 한 사람이 5명이다. 이준석 선장과 박한결 항해사의 공통점이 있다. 사고 발생일 팽목항에 와서 목포 해경까지 가는 동안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박근혜의 7시간만 신경 쓰시는데 이준석 선장의 사라진 7시간이 있다. 영화에 담으려던 내용이다. 조사를 위해 선장을 이동시키던 중 지프차가 따라와 멈춰 세우더니 선장을 데리고 사라졌다. 특조위에서 그 부분을 물었었다. 선장을 데려간 남자들은 누구며, 무슨 얘길 했는지 등. 선장이 내린 곳은 한창 구조작업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구조 작업에 도움이 될까봐 데려간 걸로 알고 있다"고 선장이 진술했는데 거긴 이미 강원식 항해사가 남아서 모든 정보를 주고 있었다. 선장은 그곳에 올 필요가 없었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밤늦게 해경 측에 돌아갔다. 박한결 항해사도 다른 선원들과 달리 함께 진도 체육관으로 오지 않았다. 특조위가 경로를 조사했다. 그날 어디에 있었냐는 물음에 혼자 있고 싶어서 체육관 근처에서 울고 있었다더라. 이처럼 중간 동선이 파악되지 않는 두 사람이 50분이라고 말했다. 수적으로 봐도 30분 그룹이 훨씬 많은데 검찰은 사고 시각을 50분경으로 발표했다. 참 특이하지 않나?"- 30분으로 증언한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따로 불려가거나 행적이 묘연한 경우는 없었나?"없다. 이 말씀을 드리겠다. (종이에 세월호 항로를 그리며) 30분경 세월호는 좌회전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세월호가 좌로 기울어 대참사가 났다는 건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을 것이다. 좌회전 구간에서 좌로 기울었다면, 이건 무조건 외력으로 인한 사고로 가게 돼 있다. 50분경 항로를 보자. 여긴 우회전 코스다. 우회전 코스에서 좌로 기울었다면 단순 교통사고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30분에서 50분으로 옮겨진다는 건 외력에서 단순사고로 바뀌는 큰 차이가 벌어진다. 이걸 설명하고 싶었다. 역시 영화에 넣었다가 뺐는데 언론에서 사실 이걸 분석했으면 했다."- 선조위 조사 결과가 오는 8월 중 나올 예정이다. 최근 중간보고 과정에서 선조위는 잠수함 충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영화의 주장과 다를 가능성이 있는데 이후 추가로 해명 및 검증할 것인지."(다소 격앙된 어투로) 제발 상식이 통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조사과정에서 상식만 통한다면 기꺼이 반론을 받고, 토론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KBS 보도가 기뻤다. 제 분석과 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서로 만나서 즐겁게 토론할 수 있다. 근데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기초 공부를 하지않는다면 ... 그건 유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세월호 조사에 대해 남들보단 조금 많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선조위 결과가)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얘기하고 지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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