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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용 감독

한국 멜로의 거장으로 꼽을 수 있는 곽재용 감독이 일본과 협업한 영화 <바람의 색>을 들고 관객과 만난다.ⓒ 이정민


다시 멜로의 바람이 분다. 최근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2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하자 일각에선 한국 멜로 장르의 부활을 점치고 있다. 멜로하면, 이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와 2000년 초반을 통틀어 한국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었던 여러 멜로 대표작을 연출한 곽재용 감독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곽 감독의 인장이 담긴 여러 멜로 영화는 그간 몇몇 한국영화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다. 2016년 SF 영화 <시간이탈자>로 색다른 도전을 했던 그가 최근 일본과 협업한 <바람의 색>을 들고 왔다. 역시 멜로다.

홋카이도와 도쿄 사이  

언제부턴가 곽재용 감독은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 등 범 아시아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싸이보그 그녀>로 일본 배우와 작업했고, <미스 히스테리>로 중국과 합작을 경험했다. 한국을 넘어 곽재용표 멜로의 명성이 아시아 곳곳에 퍼져있다는 증거다.

<바람의 색>은 후루카와 유우키, 후지이 타케미 등 일본 신예 배우가 출연했다. 영화는 도플갱어(자신을 닮은 또 다른 존재가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라는 소재를 가지고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엇갈리고,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일본 홋카이도 지역과 도쿄를 오가며 담은 풍광이 아름답다. 영화 속 주요 배경에 인물의 감성을 풀어내며 감독은 극적 효과를 노렸다. 

 영화 <바람의 색>의 한 장면.

영화 <바람의 색>의 한 장면.ⓒ 아시아픽쳐스엔터테인먼트


- 홋카이도의 여러 마을과 도쿄, 그리고 정지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해, 사계절이 영화에 다 담긴 느낌이 난다. 총 제작 기간이 궁금하다.
"43일 만에 찍었다. 2015년 3월 5일부터 4월 25일까지. 3월에 겨울풍경을 담고, 동경에 가니 벚꽃이 질 때가 됐더라. 비 오는 장면이 담겨 여름처럼 느껴지긴 한다. 지금까지 영화하면서 배우들에게 비를 많이 맞혔는데 이번엔 겨울바다 속에 빠뜨렸다. 남자 배우가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일본 배우들이 흔히 말하는 '곤조'라고 근성들이 있다. 한국에서 온 감독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하더라."

- 기획 자체가 홋카이도 여행 중 받은 여러 느낌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도 그렇고 이걸 멜로로 정리해야 겠다는 확신이 든 건지.
"<싸이보그 그녀>(2008)가 끝나고 홋카이도 여행을 제대로 했다. 영화적 풍광을 그때 봤고, 다녀와서 기본 개요를 짰다. 일본에선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 원작 소설이 있거나, 만화 원작이 있는 게 유리하더라. 그래서 만화 <바람의 색>을 작업하도록 해서 일본 출판사인 소학사와 한국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다. 홋카이도가 정말 좋다. 도쿄가 높은 건물들로 인한 수직선 중심이라면 홋카이도는 수평선이 존재한다.

시나리오 자체는 삿포로에서 썼다. 2010년 12월 한 달 동안 썼는데 영화화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일본 자체가 워낙 오래 걸리기도 하고, 제작사도 큰 곳이 아니라. 본래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 동시 개봉하려 했는데 사드 문제 등이 있어서 좀 더 늦춰졌다. 처음 영감이 떠올랐을 때부터 멜로였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남자 마술사와 여자 캐릭터를 생각했다. 그리고 보통 도플갱어라고 하면 호러나 스릴러를 떠올리잖나. 도플갱어가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를 떠올렸다. 한 여자를 혼란에 빠뜨린 두 남자의 죄의식도 반영하려 했다."

- 제목을 <바람의 색>으로 잡은 이유는?
"'바람의 색'은 홋카이도 프로덕션 회사 이름이다. 직원들 명함 색깔이 서로 다르더라. 총 7가지 색이라고 한다. 홋카이도에 장소 헌팅하러 갔을 때 그 회사 사장에게 영화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후디니라는 마술사 이름 중 후가 '바람 풍'자이기도 하다. 또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흐르는 것을 바람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감정의 색이 여러 가지이듯 바람의 색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니까."

 곽재용 감독

ⓒ 이정민


한국을 넘어

-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두 남녀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할 때 각각 레옹과 마틸다로 변장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영화는 곧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잖나. 두 사람이 각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게 레옹과 마틸다 같더라. <로마의 휴일> 등 다른 영화도 생각해봤는데 <레옹>을 떠올린 이후 그 이상 적합한 걸 찾기 어려웠다. <레옹>의 포스터도 영화 속에 담으려 했는데 뤽 베송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래서 법적으로 검토하니 옷을 따라 입고 이름을 사용하는 건 괜찮더라. 결국 그 포스터를 떼고 제 과거 영화인 <미스 히스테리> 포스터를 붙이고 찍었다."

- 한국 배우를 쓸 수도 있었는데 일본 배우들과 작업한 것, 한일 양 영화계의 협업 등을 고려한 것인지.
"그런 면도 있지만 홋카이도가 배경이라 한국 사람이 들어가는 게 더 낯설겠더라. <바람의 색> 웹툰을 보면 한국사람 이름이 나오긴 한다. 배경 역시 한국이고, 영화와 달리 여자주인공이 어릴 때 학대를 받았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애초에 제가 시나리오를 썼을 땐 지금의 영화처럼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 멜로 영화를 꾸준히 만든 감독으로서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 작업하는 등 행보가 남다르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웃음). 특별히 계획을 세운다고 그렇게 일이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아쉬운 건 미국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클래식>을 할 즈음 미국에서 러브콜이 왔었다. 국내 감독 중 거의 처음일 것이다. 근데 영어를 잘 못한다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때 그냥 갔으면 영어만 배우고 왔을지라도 큰 경험이 됐을 텐데 아쉽다.

아시아에서의 기회는 <엽기적인 그녀> 덕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당시 한 해외영화제에 심사하러 온 한국 영화인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 영화로 상 받을 생각은 말라'고 하셨다. 근데 일본 심사위원과 또 다른 외국 심사위원이 <엽기적인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더라. 홍콩에서도 성공해서 아, 아시아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라는 걸 느꼈다. 아마도 제 영화에 한국적인 색이 별로 없어서인 듯하다. 이탈리아의 한 영화제에서도 제 영화 다섯 편을 상영한 적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클래식>을 가장 좋아하더라. 사실 <엽기적인 그녀> 보다 더 한국적인 게 <클래식>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웃음)."

 곽재용 감독

ⓒ 이정민


멜로의 재정의

멜로 장르 전성기를 직접 경험했기에 지난 10여 년 간 '한국형 멜로'가 잠적하다시피 한 현상에 대해 물었다. 곽재용 감독은 예상 외로 '겸손'했다. "멜로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또 다른 장르에 대한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 어느 순간 스릴러, 범죄물 등이 한국영화 내 주요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형 멜로가 자취를 감춘 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남성 중심의 영화로 바뀌었지. 정치적 원인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정권이 들면서 억압된 사람들이 뭔가 억눌림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남성 캐릭터들이 몰려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이 나왔지. 지금은 또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사람들이 다시금 멜로를 보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저도 개인적으론 열심히 촛불 집회에 나갔다. 두 번 정도 빠지고 광장에 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며 질서를 지키더라. 제겐 참 대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영화만의 멜로정서가 있다고 본다. 곽재용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형 멜로란 어떤 것인지.
"보통은 신파가 강하고,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특징도 있다. 사실 과거 한국 멜로를 보면 여성의 잔혹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970년대를 풍미한 멜로 영화들을 보면 여성들이 학대당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산업화 시대에 여성이 나름 노력하다가 성노리개로 전락한다든가 그런 영화들이 많았다. 이장우 감독님의 <바보선언> 등을 봐도 여성이 결국 술집에 나가게 되잖나."

남성에게 학대당한 한국 여성들의 역사가 참 길다. 위안부부터 따지면 더 그렇지. 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하는 걸 좋아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오히려 여성이 더 강했지. 흔히 나오는 밀당 설정도 안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그려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바람의 색>을 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데뷔작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때부터 다루려 했던 감정을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배우 운용에 있어서도 특장점이 있다. 반면 평단에서의 평가가 박했다는 건 감독 개인의 아쉬움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배우들의 매력이 작품 속에서 잘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감독은 누구나 영화를 잘 만들고자 한다. 게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야 하잖나. 그만큼 수명이 짧기 쉽고,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식당은 같은 레시피로 돈을 벌지만, 감독은 계속 새롭게 이야기를 내야 돈을 번다. 그런 면에서 너무 작품을 놓고 신랄하게 비판받는 경우는 좀..."

- 그럼에도 정통멜로와 SF 요소를 결합하는 등 끊임없이 멜로 안에서 판타지성을 탐구해 온 면에선 독보적이다.
"감독마다 작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전 현실이 힘들다고 영화마저 그렇게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괴롭게 한 나머지 현실에 동참하게 하는 영화들도 의미가 있겠지만 사랑으로 살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형 멜로라는 게 어쩌면 현실 속 한국사회의 남녀를 다뤘다면 제 영화는 판타지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평단의) 인정을 못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 온 게 기적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멜로만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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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암시, <곤지암> 박지아가 특히 소름 돋았던 이유

[오마이픽업] <기담> 이어 다양한 상징 온몸으로 표현, 박근혜와 세월호, 그리고...

"얼마전 요가 하러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옆 사람들이 402호 얘길하더라. '설마 <곤지암> 얘긴 아니겠지?' 생각하던 찰나 계속 얘기를 들으니 <곤지암> 얘기였다. 아무래도 다수의 관객 분들은 강렬한 장면을 기억하시니까 제가 <기담>에서 아사코 엄마였고, <곤지암>에서도 병원 원장이었던 건 잘 모르실 것이다. 게다가 귀신 역할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분장을 하고 나오니까(웃음)." 누적관객 200만을 돌파하며 한국 공포 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된 <곤지암>. 다수의 신인 배우와 함께 이 배우를 주목해야 한다. 힌트는 정범식 감독의 데뷔작 <기담>이다. 눈썰미 좋은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배우 박지아가 <기담>에 이어 11년 만에 <곤지암>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200만 돌파를 목전에 둔 시점에 미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감독의 문자정범식 감독의 문자 하나가 시작이었다. "대본 하나 보낼 건데 읽어봐 줄래요?"라는 말과 함께 <곤지암>의 시나리오가 와 있었다. <기담>이 개봉한 지 10년 만인 상황에서 감독은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박지아를 염두에 뒀다. 그렇게 곤지암 정신병원을 찾은 '호러타임즈' 7명을 공포에 질리게 한 병원 원장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셨다. 또 대외비였지만 그 원장의 비하인드 정보도 적어주셨다. 저야 물론 오케이였다. <기담> 때부터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잘 안 맞으면 힘들어 하는 배우도 있지만, 제 개인적으론 매우 고마운 분이셨다. <기담>과 이번 작업 중간에 감독님께 감동받은 일도 있고." 우선, 병원 원장의 배경이다. <기담>이 그랬듯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에 다양한 상징을 숨겨 놨다. 영화 속 병원 개원일이 5월 16일로 설정된 점, 병원원장이 환자들과 함께 찍힌 사진 속 날짜 1979년 10월 26일 이라는 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작과 종말을 암시한다. 또한, 실험실 장면에 닭의 시체가 등장한다는 점, 병원 원장의 '올림머리 스타일', 호러타임즈 생중계 조회 수가 503명에서 멈춘다는 설정 등은 박근혜 대통령을 뜻한다. 여기에 더해 욕실에서 교복 입은 학생 귀신이 등장하고, 원장 귀신이 출몰한다는 방을 402호(본래 감독은 416호로 설정하려 했다-기자 주)로 설정했다는 건 세월호 참사를 암시하는 설정으로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작업이 공교롭게도 촛불집회 시작 직전에 끝난 걸로 알고 있다. 감독님이 워낙 정치, 시사에 관심이 많으셔서 영화 속 서브 텍스트를 통해 공감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 때(박정희)를 부모 세대가 살아냈고, 그 딸을 지도자로 둔 상황을 자녀들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지났지만 반복되는 세월을 표현하신 것 같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7명의 호러타임즈 대원들은 누군가를 찾겠다고 했지만 실체가 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현실 그대로를 모사할 순 없고, 은유와 영화 사이 균형을 고민하셨을 것이다."이 지점에서 박지아는 정범식 감독의 배려에 감동받은 사연을 더했다. 연극 <마술가게>를 기준으로 데뷔 27년 차 베테랑이지만 그에게도 부침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업계에선 작품이 끝나거나 공백기엔 남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며 "감독님께 아쉬운 소리를 했던 때에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피드백을 주셨다"고 전했다."좀처럼 제가 그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데 매우 절박했을 때였다. 주변의 몇몇 분들께 '저 일하고 싶다. 도와 달라'고 읍소했던 적이 있다. 다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시곤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정범식 감독님께 문자를 보냈다. <워킹걸>을 하신다는 소식에 '오디션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보낸 문자였다. '배우님이 하기엔 매우 작은 역할인데 혹시 보러 오실 수 있나요' 하시더라. 저의 상황을 아마 느끼신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그만큼 인간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란 걸 알게 됐다. 사실 흔쾌히 확답을 하고 연락을 안 주신 다른 분들이 잘못한 건 전혀 아니다. 제가 작품을 못하는 게 그 분들 탓이 아니니까. 다만 다르게 얘기하면 차라리 그렇게 흔쾌히 얘기 안 하셨다면 제가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품지 않았을 텐데... 그걸 통해 저도 배웠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함부로 주는 게 반대로 힘든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정범식 감독님의 말이 정말 힘이 됐다. 세상이 그렇게 차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는 <곤지암> 직전 출연한 <석조저택 살인사건> 정식 감독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투자사를 생각하면 더 인지도 있는 배우를 쓰는 게 나았을 텐데, 감독님이 제게 그 배역(성 마담)을 애초부터 주려고 생각하셨다고 들었다"며 "영화 자체가 감독님 의도와 달리 편집돼 저도 아쉽지만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귀신이 되어이렇게 박지아는 <기담>과 <곤지암>의 연결고리가 됐다. <기담> 때 엄마 귀신이 던진 방언은 많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고, <곤지암> 속 병원 원장의 알 수 없는 소리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 해당 역할의 준비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안 그래도 <기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당시 시나리오를 다시 봤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로 돼 있더라. 즉흥으로 '얼렐레~' 이런 식을 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그게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잖나.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연습했던 것 같다. 딸인 아사코 대사를 다 써놓고 거꾸로 읽어보기도 했고, 문장을 바꿔서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해 갔는데 현장에서 정말 긴장되더라(웃음). 딱 하나를 준비했는데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근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신다. 준비한 걸 하면서 중간에 하이톤으로 올라가는 걸 제가 본능적으로 했다. 그렇게 나온 게 그 결과물이었다. <곤지암>은 이렇게 준비했다. 시나리오엔 '곡소리를 내며 뒤에 서 있다'로 돼 있었다. 10년 전 것을 업그레이드 해볼까, 곡소리를 연구할까 하다가 둘 다 준비했다. 이게 반복된 죽음이잖나. 기담 때 방식으로 거칠게 내뱉는 것과 숨을 뱉고 들이는 걸 거칠 게 하는 것을 준비해갔다. 호흡 소리를 들으시곤 감독님이 '다른 건 더 안 하셔도 되겠다'고 하시더라." 정작 박지아 본인은 공포영화 자체를 즐기진 않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언제부턴가 공포영화를 보면 무섭지가 않아서 흥미를 잃었는데 <곤지암>은 보고 나서 무서웠다"며 그는 "<기담> 때보다 더 무서운 장면이 많았다"고 나름의 감상을 전했다. 수줍었던 학생의 선택앞선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박지아는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1992년 연극 <마술가게>를 기준으로 27년 차의 베테랑이지만 박지아는 언론 노출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극단 차이무와 연우무대 작품을 두루 경험하며 내공을 키워온 그다. 일부 대중에겐 영화 데뷔작 <해안선> 등 김기덕의 여성 페르소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배우 입장에서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 몇 개를 던져야 했다. 방황의 시기에 대해서다."학창시절 워낙 성격이 어두웠고, 학교도 잘 안 가고 그랬다. 그런데 연극반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가서 해보고는 싶은데 말은 못 하겠고, 그래서 오디션장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제가 청소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눈치 채신 것 같더라. '한번 연기해볼래?' 그 말에 시작했다. 하면서 칭찬을 받으니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시작했지. 근데 대학에 가니 안 되겠더라. 당시 제 동문이 안재욱, 신동엽, 류승룡씨 등이었는데 다 저보다 잘하고 멋져 보였다.사춘기를 그때 앓았다. 방황하고 학교도 안 나갔다. 혼자 남산 주변을 걸어 다니곤 했다. 그때 박광정 오빠의 제안으로 <마술가게>를 했는데 와, 제가 방황할 틈이 없더라. 맨날 혼나고, 정신도 안 차려지고 그랬다. 선배들이 보시기에 제가 얼마나 성에 안 찼겠나. 그래서 편지를 써놓고 또 도망 나왔다. 다시 방황한 거지..."두 번의 방황 끝에 박지아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배우를 해야겠다"였다. "도망간 입장에서 면목이 없었다"면서도 겨우 용기를 내 자신을 무대로 이끈 선배 박광정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했다. "절 미워하셨을 텐데 문을 조금 열어주셨다"며 박지아는 "그때 그 선배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전 연기를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 회상했다.물론 그렇다고 꾸중과 질책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러 선배들에게 혼나면서도 박지아는 버텼다. 할 수 있는 게 연기였고, 연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과거를 돌아보고 앞을 생각해 봐도 연기란 건 평생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힘든 시기이긴 한데 달라진 게 있다면 버티는 방법이 생겼다는 점이지. 지금보다 인지도가 올라가도 연기는 힘들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귀신 역할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만 전전긍긍했을 텐데 이젠 좋다. 제가 다른 걸 해내면 훨씬 돋보일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론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 원래 코믹 연기를 했던 분이 코미디를 하면 식상할 테지만 제가 하면 신선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웃음).그만큼 연기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엔 작품에 임할 때 준비를 엄청 했던 때가 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날 보러 와요> 땐 화성에 두 세 번씩 가서 주변을 탐문하고 눈으로 직접 동네를 살피고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 근데 언제부턴가 이런 방식이 오히려 절 가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상대 배우에 대한 여지가 없어지기도 하고. 지금은 준비는 많이 하되 그걸 잘 소화시켜서 영양분으로 가지고 있자는 생각이다. 상대방에 따라 그걸 꺼내거나 받을 수 있게 말이다. 요즘은 여유에 대한 걸 많이 생각하고 있다."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다는 굴레를 벗어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그다. 그만큼 배우 박지아로서 오롯이 보일 영역이 더 커보였다. 박지아는 곧 개봉할 영화 <창궐>,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로 대중과 만날 예정. 그는 "소박한 목표라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호러, 무서운 장면 잘 만들면..." '곤지암' 감독의 공포론

[inter:veiw] 유튜브 영상과 고전영화방식의 묘한 결합... 정범식 감독 "자신감 생겼다"

호러마니아들의 성지인 곤지암 정신병원에 얽힌 이야기를 영화화 하는 것에 애초 정범식 감독은 부정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제작사 대표에게 제안 받은 정 감독은 또 다른 케이퍼무비를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났고, 정 감독은 다시 제의를 받는다. 그때 구미를 당긴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호러'를 해보자는 제작사 대표의 말이었다. 그렇게 <곤지암>이 기획됐고 완성됐으며,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그 새로움의 정체를 감독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7명의 호러마니아들이 폐쇄된 병원에 침투해 직접 자신들의 활약을 생중계한다는 콘셉트. 이를 위해 감독은 배우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게 했다. 사용자가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물은 유튜브 등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매체에서 최근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기도 하다.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인터넷 생방송과 공포영화의 결합, 정범식 감독은 "무모했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체험형 공포물의 정의이런 시도는 곧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영화 캐릭터들과 같은 경험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을 두고 '체험형 공포물'이라 정의했다. 이미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들 중 일부는 이 영화를 두고 실제 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것처럼 구성한 '파운드 푸티지' 장르물로 정의하기도 했다. 정범식 감독은 "보다 새로운 정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그렇게 분류되는 게 맞다고 보지만 우리 작품은 병원으로 침투하기 직전까지는 파운드 푸티지 같아도 침투한 이후엔 사건이 실제 러닝타임과 같은 시간으로 제시된다. 흔들리는 카메라에 이야기가 담긴다는 파운드 푸티지가 처음엔 신선했지만 요즘엔 좀 식상한 면이 있다. 미국에선 이미 많이 만들어졌고, 이젠 소재 자체를 비틀며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는데 관객들도 아마 거기에 익숙할 것이다. 한국 내에선 아직 제대로 된 파운드 푸티지가 나온 적이 없는데 차별성을 위해 우린 이야기 자체를 체험에 가깝게 변형시킨 셈이다." 이미 영화팬들은 기성 매체보단 유튜브 콘텐츠로 정보를 접하는 세상이다. 전통적인 기성 매체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스타 유튜버들은 이렇다 할 특별한 구성이나 서사 없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큰 관심을 얻는다. <곤지암>도 그 특징을 차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걸 상업영화 문법에 안착시키려 했다는 사실."저 역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필름에 대한 선호가 당연히 있다. 고전영화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전에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현상이라고 본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걸 충분히 감지했지. 그래서 이번 영화로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했다. 이전 공포물은 서사에 집착했잖나. 근데 유튜버들의 먹방 영상을 보면 별거 없이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영화도 인물의 서사, 관계성을 다 빼버리고 공포물로만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서사를 단순하게 하는 대신 공포감을 주기 위한 요소를 위해 고전영화들의 방식을 차용했다. 사운드의 크기와 배치를 고민하고, 영화적 리듬을 조절하는 식이다.영화를 기획하면서 차별화를 위해서 산 하나는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부터 배우들에게 직접 촬영을 시킨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콘티 작업을 해 나가다가 이래서는 미국 영화와 다를 바 없겠다 싶어서 바꾸게 된 것이다. 작업을 마친 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마지막 말이 이거였다. '영화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옆집 아이가 찍은 걸 영화로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 말이 그땐 체감이 안 됐는데 이렇게 플랫폼이 변하는 양상에서 확 떠오르더라. 가장 미니멀한 방식으로도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정리하면 서사는 젊은층이 즐기는 방식으로 단순화시키고, 공포 조성 방식은 영화적 방법을 택한 셈.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달리 영화의 내피엔 1950, 60년대 유럽영화와 1970년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정범식 감독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곤지암> 속 음악의 비밀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다. 많은 공포물이 괴기스러운 음향과 각종 소음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줘 왔다면 <곤지암>은 오히려 그런 인위적 음악을 최소화했다. 대신 병원 내 원장실, 실험실, 샤워실 등 공간마다 다르게 들리는 공간 소음을 살려냈다. "우리 영화는 공간이 또 하나의 캐릭터였다"던 정 감독의 생각이었다. 연극 음악과 작곡 등을 두루 공부한 감독의 특기가 반영된 지점이다. 정범식 감독은 자신의 전작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와 <워킹걸>의 일부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먼저 전한다."작곡을 좀 배웠던 덕에 스태프 분들과 같이 디테일을 찾아 간 것이지. 대학 진학 전에 음악을 하면서 영화를 할지, 영화하면서 음악을 할지 고민이 있었다. 결론은 후자였다(웃음).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겠더라. 이번 영화에선 앰비언트 음악(멜로디나 리듬을 최소화 한 채 공간감이 강조된 장르)을 활용하려 했다. 음악 감독님이 가장 많이 고민했지. 1데시벨씩, 한 프레임씩 조절해가면서 편집하고 믹싱을 해나갔다. 또 (7명의 배우들에게 각각 장착된) 19대의 카메라로 찍었으니 일반 상업영화보다 4배 정도 많은 양의 소스가 있었다. 그걸 찾아내서 세공하고 보정해나갔다. 몇 배의 공을 들였다. 후반 작업하시는 여러 스태프들이 고생하셨다(웃음). 예산이 크지 않음에도 그 이상의 노력을 해주셨다."이 지점에서 정범식 감독은 데뷔작 <기담> 음악에 얽힌 사연을 공개했다. 특유의 슬픈 정서와 영상미로 주목받은 해당 작품의 음악 역시 당시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다. 정 감독은 "본래 류이치 사카모토(영화음악의 대가) 선생과 조율하다가 잘 안 돼서 한 현대음악가를 소개받았는데 그 분이 박영란 선생이었다"고 운을 뗐다."당시 녹음실에 모든 아티스트를 모아놓고 음 하나 하나를 다 녹음하시더라. 피아노 현을 도부터 때리게 하고, 플루트, 각종 현악기의 음 하나 하나를 녹음했다. 그 소스를 기반으로 선생께서 작업한 것이다. <기담>의 오프닝 등 몇 개 장면은 제가 그 소스를 이리저리 만져서 밤을 새서 작업하기도 했다." 이야기 발굴가 대형 투자배급사 일색의 대작이 명멸하면서 한국영화도 점차 감독의 개성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고려한 안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만큼 각 감독 고유의 재능이나 특기가 많이 증발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의 하향평준화의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요즘 흐름에서 정범식 감독의 시도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엎어질 뻔했다가 급하게 맡게 된 데뷔작 <기담>부터 정 감독은 자신만의 배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어쩌다보니 공포 장르를 꾸준히 보이고 있지만 그는 "공포 장르의 장점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사실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기 전까진 제 미학이 담긴 독립영화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쨌든 2007년 기회가 닿아 상업영화로 데뷔하게 됐는데 외피는 상업영화지만 내피는 제가 선호하는 것들로 조합하려 했다. 그 이후 호러 장르에 애착이 생겼다. 보통의 상업영화였으면 제 시도가 아마 (투자사 등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러 장르는 일단 무서운 장면만 잘 만들어 놓으면 나머지 부분에선 감독이 하고 싶은 시도를 할 수 있다. 관객 분들 역시 다른 장르에 비해 보실 때 쉽게 지루해하지 않고 일단은 집중해 주신다. 그래서 그런 시도들을 선보일 수 있다. 항상 호러 장르를 할 땐 장르물로서 지켜야 할 것들과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접목하는 방식으로 임했다."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각종 이야기들이 어쩌면 지금의 정범식 감독을 있게 한 바탕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유학파였던 그의 외조부는 중국 고사에서 한국 민담, 심지어 일본 유학 당시 겪은 일들을 손자에게 들려주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별개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했다"며 정 감독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세세하게 되묻는 편이다. 아, 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의 기질과 이종교배에 대한 호기심. 이변이 없는 한 정범식 감독의 작품 정체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답습보다는 그런 안 어울릴 듯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걸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그가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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