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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영화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 해당 작품은 배우 7명이 직접 카메라를 달거나 들고 촬영한 영상을 활용했다.ⓒ 이정민


호러마니아들의 성지인 곤지암 정신병원에 얽힌 이야기를 영화화 하는 것에 애초 정범식 감독은 부정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제작사 대표에게 제안 받은 정 감독은 또 다른 케이퍼무비를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났고, 정 감독은 다시 제의를 받는다. 그때 구미를 당긴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호러'를 해보자는 제작사 대표의 말이었다. 그렇게 <곤지암>이 기획됐고 완성됐으며,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새로움의 정체를 감독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7명의 호러마니아들이 폐쇄된 병원에 침투해 직접 자신들의 활약을 생중계한다는 콘셉트. 이를 위해 감독은 배우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게 했다. 사용자가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물은 유튜브 등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매체에서 최근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기도 하다.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인터넷 생방송과 공포영화의 결합, 정범식 감독은 "무모했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체험형 공포물의 정의

이런 시도는 곧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영화 캐릭터들과 같은 경험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을 두고 '체험형 공포물'이라 정의했다. 이미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들 중 일부는 이 영화를 두고 실제 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것처럼 구성한 '파운드 푸티지' 장르물로 정의하기도 했다. 정범식 감독은 "보다 새로운 정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렇게 분류되는 게 맞다고 보지만 우리 작품은 병원으로 침투하기 직전까지는 파운드 푸티지 같아도 침투한 이후엔 사건이 실제 러닝타임과 같은 시간으로 제시된다. 흔들리는 카메라에 이야기가 담긴다는 파운드 푸티지가 처음엔 신선했지만 요즘엔 좀 식상한 면이 있다. 미국에선 이미 많이 만들어졌고, 이젠 소재 자체를 비틀며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는데 관객들도 아마 거기에 익숙할 것이다. 한국 내에선 아직 제대로 된 파운드 푸티지가 나온 적이 없는데 차별성을 위해 우린 이야기 자체를 체험에 가깝게 변형시킨 셈이다." 

 영화 <곤지암>의 한 장면.

영화 <곤지암>의 한 장면.ⓒ 쇼박스


이미 영화팬들은 기성 매체보단 유튜브 콘텐츠로 정보를 접하는 세상이다. 전통적인 기성 매체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스타 유튜버들은 이렇다 할 특별한 구성이나 서사 없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큰 관심을 얻는다. <곤지암>도 그 특징을 차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걸 상업영화 문법에 안착시키려 했다는 사실.

"저 역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필름에 대한 선호가 당연히 있다. 고전영화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전에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현상이라고 본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걸 충분히 감지했지. 그래서 이번 영화로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했다. 

이전 공포물은 서사에 집착했잖나. 근데 유튜버들의 먹방 영상을 보면 별거 없이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영화도 인물의 서사, 관계성을 다 빼버리고 공포물로만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서사를 단순하게 하는 대신 공포감을 주기 위한 요소를 위해 고전영화들의 방식을 차용했다. 사운드의 크기와 배치를 고민하고, 영화적 리듬을 조절하는 식이다.

영화를 기획하면서 차별화를 위해서 산 하나는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부터 배우들에게 직접 촬영을 시킨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콘티 작업을 해 나가다가 이래서는 미국 영화와 다를 바 없겠다 싶어서 바꾸게 된 것이다. 작업을 마친 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마지막 말이 이거였다. '영화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옆집 아이가 찍은 걸 영화로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 말이 그땐 체감이 안 됐는데 이렇게 플랫폼이 변하는 양상에서 확 떠오르더라. 가장 미니멀한 방식으로도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

정리하면 서사는 젊은층이 즐기는 방식으로 단순화시키고, 공포 조성 방식은 영화적 방법을 택한 셈.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달리 영화의 내피엔 1950, 60년대 유럽영화와 1970년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정범식 감독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곤지암> 속 음악의 비밀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다. 많은 공포물이 괴기스러운 음향과 각종 소음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줘 왔다면 <곤지암>은 오히려 그런 인위적 음악을 최소화했다. 대신 병원 내 원장실, 실험실, 샤워실 등 공간마다 다르게 들리는 공간 소음을 살려냈다. "우리 영화는 공간이 또 하나의 캐릭터였다"던 정 감독의 생각이었다. 연극 음악과 작곡 등을 두루 공부한 감독의 특기가 반영된 지점이다. 정범식 감독은 자신의 전작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와 <워킹걸>의 일부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먼저 전한다.

"작곡을 좀 배웠던 덕에 스태프 분들과 같이 디테일을 찾아 간 것이지. 대학 진학 전에 음악을 하면서 영화를 할지, 영화하면서 음악을 할지 고민이 있었다. 결론은 후자였다(웃음).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겠더라. 이번 영화에선 앰비언트 음악(멜로디나 리듬을 최소화 한 채 공간감이 강조된 장르)을 활용하려 했다. 음악 감독님이 가장 많이 고민했지. 1데시벨씩, 한 프레임씩 조절해가면서 편집하고 믹싱을 해나갔다.   

또 (7명의 배우들에게 각각 장착된) 19대의 카메라로 찍었으니 일반 상업영화보다 4배 정도 많은 양의 소스가 있었다. 그걸 찾아내서 세공하고 보정해나갔다. 몇 배의 공을 들였다. 후반 작업하시는 여러 스태프들이 고생하셨다(웃음). 예산이 크지 않음에도 그 이상의 노력을 해주셨다."

이 지점에서 정범식 감독은 데뷔작 <기담> 음악에 얽힌 사연을 공개했다. 특유의 슬픈 정서와 영상미로 주목받은 해당 작품의 음악 역시 당시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다. 정 감독은 "본래 류이치 사카모토(영화음악의 대가) 선생과 조율하다가 잘 안 돼서 한 현대음악가를 소개받았는데 그 분이 박영란 선생이었다"고 운을 뗐다.

"당시 녹음실에 모든 아티스트를 모아놓고 음 하나 하나를 다 녹음하시더라. 피아노 현을 도부터 때리게 하고, 플루트, 각종 현악기의 음 하나 하나를 녹음했다. 그 소스를 기반으로 선생께서 작업한 것이다. <기담>의 오프닝 등 몇 개 장면은 제가 그 소스를 이리저리 만져서 밤을 새서 작업하기도 했다." 

이야기 발굴가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대형 투자배급사 일색의 대작이 명멸하면서 한국영화도 점차 감독의 개성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고려한 안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만큼 각 감독 고유의 재능이나 특기가 많이 증발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의 하향평준화의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요즘 흐름에서 정범식 감독의 시도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엎어질 뻔했다가 급하게 맡게 된 데뷔작 <기담>부터 정 감독은 자신만의 배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어쩌다보니 공포 장르를 꾸준히 보이고 있지만 그는 "공포 장르의 장점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사실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기 전까진 제 미학이 담긴 독립영화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쨌든 2007년 기회가 닿아 상업영화로 데뷔하게 됐는데 외피는 상업영화지만 내피는 제가 선호하는 것들로 조합하려 했다. 그 이후 호러 장르에 애착이 생겼다. 보통의 상업영화였으면 제 시도가 아마 (투자사 등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러 장르는 일단 무서운 장면만 잘 만들어 놓으면 나머지 부분에선 감독이 하고 싶은 시도를 할 수 있다. 관객 분들 역시 다른 장르에 비해 보실 때 쉽게 지루해하지 않고 일단은 집중해 주신다. 그래서 그런 시도들을 선보일 수 있다. 항상 호러 장르를 할 땐 장르물로서 지켜야 할 것들과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접목하는 방식으로 임했다."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각종 이야기들이 어쩌면 지금의 정범식 감독을 있게 한 바탕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유학파였던 그의 외조부는 중국 고사에서 한국 민담, 심지어 일본 유학 당시 겪은 일들을 손자에게 들려주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별개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했다"며 정 감독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세세하게 되묻는 편이다. 아, 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의 기질과 이종교배에 대한 호기심. 이변이 없는 한 정범식 감독의 작품 정체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답습보다는 그런 안 어울릴 듯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걸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그가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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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성향 따라 흥행영화 다르다? 곽재용 감독의 '영화론'

[inter:view] 일본 협업영화 <바람의 색> 개봉... 그가 판타지 멜로 내놓은 이유

다시 멜로의 바람이 분다. 최근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2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하자 일각에선 한국 멜로 장르의 부활을 점치고 있다. 멜로하면, 이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와 2000년 초반을 통틀어 한국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었던 여러 멜로 대표작을 연출한 곽재용 감독이다.<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곽 감독의 인장이 담긴 여러 멜로 영화는 그간 몇몇 한국영화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다. 2016년 SF 영화 <시간이탈자>로 색다른 도전을 했던 그가 최근 일본과 협업한 <바람의 색>을 들고 왔다. 역시 멜로다.홋카이도와 도쿄 사이 언제부턴가 곽재용 감독은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 등 범 아시아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싸이보그 그녀>로 일본 배우와 작업했고, <미스 히스테리>로 중국과 합작을 경험했다. 한국을 넘어 곽재용표 멜로의 명성이 아시아 곳곳에 퍼져있다는 증거다.<바람의 색>은 후루카와 유우키, 후지이 타케미 등 일본 신예 배우가 출연했다. 영화는 도플갱어(자신을 닮은 또 다른 존재가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라는 소재를 가지고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엇갈리고,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일본 홋카이도 지역과 도쿄를 오가며 담은 풍광이 아름답다. 영화 속 주요 배경에 인물의 감성을 풀어내며 감독은 극적 효과를 노렸다. - 홋카이도의 여러 마을과 도쿄, 그리고 정지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해, 사계절이 영화에 다 담긴 느낌이 난다. 총 제작 기간이 궁금하다."43일 만에 찍었다. 2015년 3월 5일부터 4월 25일까지. 3월에 겨울풍경을 담고, 동경에 가니 벚꽃이 질 때가 됐더라. 비 오는 장면이 담겨 여름처럼 느껴지긴 한다. 지금까지 영화하면서 배우들에게 비를 많이 맞혔는데 이번엔 겨울바다 속에 빠뜨렸다. 남자 배우가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일본 배우들이 흔히 말하는 '곤조'라고 근성들이 있다. 한국에서 온 감독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하더라."- 기획 자체가 홋카이도 여행 중 받은 여러 느낌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도 그렇고 이걸 멜로로 정리해야 겠다는 확신이 든 건지."<싸이보그 그녀>(2008)가 끝나고 홋카이도 여행을 제대로 했다. 영화적 풍광을 그때 봤고, 다녀와서 기본 개요를 짰다. 일본에선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 원작 소설이 있거나, 만화 원작이 있는 게 유리하더라. 그래서 만화 <바람의 색>을 작업하도록 해서 일본 출판사인 소학사와 한국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다. 홋카이도가 정말 좋다. 도쿄가 높은 건물들로 인한 수직선 중심이라면 홋카이도는 수평선이 존재한다.시나리오 자체는 삿포로에서 썼다. 2010년 12월 한 달 동안 썼는데 영화화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일본 자체가 워낙 오래 걸리기도 하고, 제작사도 큰 곳이 아니라. 본래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 동시 개봉하려 했는데 사드 문제 등이 있어서 좀 더 늦춰졌다. 처음 영감이 떠올랐을 때부터 멜로였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남자 마술사와 여자 캐릭터를 생각했다. 그리고 보통 도플갱어라고 하면 호러나 스릴러를 떠올리잖나. 도플갱어가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를 떠올렸다. 한 여자를 혼란에 빠뜨린 두 남자의 죄의식도 반영하려 했다."- 제목을 <바람의 색>으로 잡은 이유는?"'바람의 색'은 홋카이도 프로덕션 회사 이름이다. 직원들 명함 색깔이 서로 다르더라. 총 7가지 색이라고 한다. 홋카이도에 장소 헌팅하러 갔을 때 그 회사 사장에게 영화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후디니라는 마술사 이름 중 후가 '바람 풍'자이기도 하다. 또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흐르는 것을 바람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감정의 색이 여러 가지이듯 바람의 색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니까." 한국을 넘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두 남녀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할 때 각각 레옹과 마틸다로 변장하는 장면이 흥미롭다."영화는 곧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잖나. 두 사람이 각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게 레옹과 마틸다 같더라. <로마의 휴일> 등 다른 영화도 생각해봤는데 <레옹>을 떠올린 이후 그 이상 적합한 걸 찾기 어려웠다. <레옹>의 포스터도 영화 속에 담으려 했는데 뤽 베송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래서 법적으로 검토하니 옷을 따라 입고 이름을 사용하는 건 괜찮더라. 결국 그 포스터를 떼고 제 과거 영화인 <미스 히스테리> 포스터를 붙이고 찍었다."- 한국 배우를 쓸 수도 있었는데 일본 배우들과 작업한 것, 한일 양 영화계의 협업 등을 고려한 것인지."그런 면도 있지만 홋카이도가 배경이라 한국 사람이 들어가는 게 더 낯설겠더라. <바람의 색> 웹툰을 보면 한국사람 이름이 나오긴 한다. 배경 역시 한국이고, 영화와 달리 여자주인공이 어릴 때 학대를 받았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애초에 제가 시나리오를 썼을 땐 지금의 영화처럼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 멜로 영화를 꾸준히 만든 감독으로서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 작업하는 등 행보가 남다르다."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웃음). 특별히 계획을 세운다고 그렇게 일이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아쉬운 건 미국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클래식>을 할 즈음 미국에서 러브콜이 왔었다. 국내 감독 중 거의 처음일 것이다. 근데 영어를 잘 못한다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때 그냥 갔으면 영어만 배우고 왔을지라도 큰 경험이 됐을 텐데 아쉽다.아시아에서의 기회는 <엽기적인 그녀> 덕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당시 한 해외영화제에 심사하러 온 한국 영화인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 영화로 상 받을 생각은 말라'고 하셨다. 근데 일본 심사위원과 또 다른 외국 심사위원이 <엽기적인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더라. 홍콩에서도 성공해서 아, 아시아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라는 걸 느꼈다. 아마도 제 영화에 한국적인 색이 별로 없어서인 듯하다. 이탈리아의 한 영화제에서도 제 영화 다섯 편을 상영한 적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클래식>을 가장 좋아하더라. 사실 <엽기적인 그녀> 보다 더 한국적인 게 <클래식>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웃음)." 멜로의 재정의멜로 장르 전성기를 직접 경험했기에 지난 10여 년 간 '한국형 멜로'가 잠적하다시피 한 현상에 대해 물었다. 곽재용 감독은 예상 외로 '겸손'했다. "멜로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또 다른 장르에 대한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어느 순간 스릴러, 범죄물 등이 한국영화 내 주요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형 멜로가 자취를 감춘 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남성 중심의 영화로 바뀌었지. 정치적 원인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정권이 들면서 억압된 사람들이 뭔가 억눌림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남성 캐릭터들이 몰려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이 나왔지. 지금은 또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사람들이 다시금 멜로를 보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저도 개인적으론 열심히 촛불 집회에 나갔다. 두 번 정도 빠지고 광장에 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며 질서를 지키더라. 제겐 참 대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영화만의 멜로정서가 있다고 본다. 곽재용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형 멜로란 어떤 것인지."보통은 신파가 강하고,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특징도 있다. 사실 과거 한국 멜로를 보면 여성의 잔혹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970년대를 풍미한 멜로 영화들을 보면 여성들이 학대당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산업화 시대에 여성이 나름 노력하다가 성노리개로 전락한다든가 그런 영화들이 많았다. 이장우 감독님의 <바보선언> 등을 봐도 여성이 결국 술집에 나가게 되잖나."남성에게 학대당한 한국 여성들의 역사가 참 길다. 위안부부터 따지면 더 그렇지. 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하는 걸 좋아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오히려 여성이 더 강했지. 흔히 나오는 밀당 설정도 안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그려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바람의 색>을 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데뷔작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때부터 다루려 했던 감정을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 운용에 있어서도 특장점이 있다. 반면 평단에서의 평가가 박했다는 건 감독 개인의 아쉬움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배우들의 매력이 작품 속에서 잘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감독은 누구나 영화를 잘 만들고자 한다. 게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야 하잖나. 그만큼 수명이 짧기 쉽고,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식당은 같은 레시피로 돈을 벌지만, 감독은 계속 새롭게 이야기를 내야 돈을 번다. 그런 면에서 너무 작품을 놓고 신랄하게 비판받는 경우는 좀..."- 그럼에도 정통멜로와 SF 요소를 결합하는 등 끊임없이 멜로 안에서 판타지성을 탐구해 온 면에선 독보적이다."감독마다 작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전 현실이 힘들다고 영화마저 그렇게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괴롭게 한 나머지 현실에 동참하게 하는 영화들도 의미가 있겠지만 사랑으로 살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형 멜로라는 게 어쩌면 현실 속 한국사회의 남녀를 다뤘다면 제 영화는 판타지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평단의) 인정을 못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 온 게 기적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멜로만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말이다."

<사라진 밤> '병맛' 형사 서현우, 파출소에서 쫓겨난 이유

[오마이픽업] 단역과 조연으로도 묵직한 존재감, 서현우는 소모되지 않는다

옷을 잘 빼입고 자신의 상사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줄줄 읊는 이 형사. 무심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뺀질거림이 느껴진다. 한창 상영 중인 영화 <사라진 밤> 속 형사 동구의 모습이다. 서현우가 연기한 동구는 극중 좌충우돌 형사 중식(김상경)과 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는 진한(김강우) 사이에서 적절하게 긴장감을 이완시키며 맛을 더하는 캐릭터다.공교롭게 서현우는 김상경과 <1급기밀>에 이어 호흡을 맞추게 됐다. 군납 비리에 연루된 간부로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오 대위와 <사라진 밤> 속 동구가 같은 배우의 연기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서현우는 다른 호흡을 보였다. 8년 차라는 경력을 뛰어넘는 탄탄한 내공이 느껴진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지난 3년간 개봉한 여러 한국 상업 영화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한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기능적 캐릭터를 대하는 자세지난 8년 간 쌓아온 출연작이 드라마와 공연 포함 30여 편이다. 단역과 조연을 거치며 여러 작품에서 서현우는 작품이 요구하는 캐릭터를 입고 또 벗었다. 우선 최근작인 <사라진 밤>을 보자. 역할만 치면 형사 역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 <그놈이다>에서 배우 주원에게 경남 창원 사투리를 전수한 걸로도 유명한 그는 당시 강력계 형사 두수로 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사라진 밤>에선 형사 3인 방이 함께 했으니까 마치 기업 간부들이 회의하듯 우리끼리 종종 만나서 꼼꼼하게 작전을 짰다. 동구는 일종의 패셔니스타에 뺀질 거리는 인물이다. 상사가 지적하는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하트를 누르지 않나(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형사 역할을 꽤 했다. 처음엔 경찰서도 찾아가 보고, 여러 배우 분들이 그랬듯 거기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두어 번 다니면서 느꼈는데 형사들도 평범하더라. 직업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같은 형사라도 활동적인 사람이 있고, 어눌해 보이지만 예리하게 상황을 캐치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라진 밤>의 동구 역시 형사라는 직업 보단 인물 개인의 성격에 집중하려 했다." 드라마 <맨홀>을 준비할 당시 서현우는 지역 파출소에 음료수를 들고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경찰 분들을 찾아간 건데 연기를 위한 거면 관할 경찰서 홍보팀을 찾아가라고 하시더라"며 서현우는 "그땐 형사 분들이 쓰는 말투가 따로 있을 것 같고 그랬는데 만나서 동행해 보니 누구의 남편이고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더라"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그렇게 인물에 집중해서 만들어 간 동구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형사 같지 않은 인물이었다. 극 중 숙경(이민지)이 명민한 막내 형사고, 석원(이지훈)이 진지하면서도 성실한 형사로 설정된 만큼 동구도 나름의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서현우는 "너무 콘셉트가 돋보이면 극의 흐름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며 적정한 선을 지키려 했다고 덧붙였다.꾸준함지금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기능적 캐릭터'다. 입체적이기 보단 극의 재미를 위한 캐릭터인데 배우로선 자칫 자신이 소모된다고 느끼기 십상이기도 하다. 일부 동의하면서도 서현우는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분량을 떠나서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진다. 어떻게든 감독님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그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답했다."상업영화의 단역, 조연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연습과 훈련을 굉장히 많이 해서 현장에 갔을 때 계산 착오를 느낀 적이 있었다. 조연은 말 그대로 작품의 조력자가 돼야 하는데 배우는 기질적으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게 있잖나. 대사가 많으면 제 호흡과 리듬을 보여줄 수 있는데 단역은 보통 한두 마디 대사로 승부하는 거니까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 장면에 맞지 않는 톤을 구사한다든지 말이다. 초반엔 그런 걸 깎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히려 제 역할이 극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 대신 긴 호흡의 연기는 독립영화나 연극 쪽에서 기회를 잡으려 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출연한 작품들 보면 절망한다! (웃음) 그럼에도 제가 성장해왔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함께 하는 선배, 후배에게서도 많이 배운다. 최근 두 작품을 같이 한 김상경 선배에게서도 느꼈다. 그 정도 경력과 연배를 가진 선배들은 뭔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초심을 잃지 않으시더라. 인물 분석, 준비 과정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현장에선 자유롭게 그걸 풀어내는 게 대단했다. 제가 간과했던 것들을 반성하면서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술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일급 기밀>땐 한 잔도 안 하셨다. 군인 역할이라 관리 측면에서 그런 것 같고, <사라진 밤>에선 첫 장면이 숙취에 괴로워하며 약을 빨며 오는 거였는데 말 그대로 폐인이 한 명 걸어오는 줄 알았다(웃음)."독립영화 중 그의 특징과 존재감을 알게 한 작품이 꽤 있다. 그중 단편 <병구>는 2016 후쿠오카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서현우는 <그놈이다>를 위해 15kg 이상 체중을 찌운 상태에서 <병구>에 출연했다. 여자사람친구의 집에 이사를 도와주러 갔다가 여러 민폐를 끼친다는 <병구>는 당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작품이다. 선택의 순간 2010년 배우 오만석이 연출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난생 처음 돈을 받으며 전업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다. 그 이후 5년 간 직접 자신의 프로필을 돌리며 영화사를 찾아 다녔을 때 서현우의 목표는 "작품에 출연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오로지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연기할 기회 자체를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던 시기였다. "하다 보니 오디션을 많이 보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며 그는 "한 번 보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오디션 때마다 서현우는 자신만의 자료를 남겼다. "영화사 위치, 조감독 명함, 오디션 때 준비했던 대사와 연기를 파일로 만들어 외장하드에 저장했다"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만 약 300여 작품. 다만 시간이 좀 지나 그 외장하드는 고장 났고, 데이터 역시 복구되지 않았다. 마치 영화 <패터슨> 속 패터슨이 자신의 습작 시를 모조리 날린 것과 같았다. "싹 날리고 나니 허탈하긴 한데 좀 더 마음 편하게 새롭게 연기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때는 뭔가 제 흔적과 자취를 남기는 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다"라고 그가 고백했다. 이제 그는 따로 기록을 남기진 않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피면 알 수 있는 사실. 나이(만35)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 공부를 곧잘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자퇴 후 돌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에 응시한다. 날고 긴다는 인재들 사이에서 그는 한 번에 연극원 시험에 붙었고, 그렇게 제2 인생을 시작했다. 그 선택의 순간을 질문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충남 공주에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부터 유학생활을 했는데 당시 고교가 입시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굉장히 엄격한 곳이었다.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 오셨는데 연극반을 만드시더라. 권유에 가입했는데 맛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거지(웃음). 축제 때 주변 여고생들이 구경 오잖나. 그들이 열광하는 모습에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는 맛을 알았다. 우리 고등학교가 정말 공부만 하는 곳인데 후배 중에 박정민, 조현철 등이 있다. 배우가 나오기 참 힘든 학굔데... 그래서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다들 나름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이니까. 저 역시 고3 땐 나름 공부에 집중했는데 이미 마음엔 연기라는 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에도 없는 학과에 진학했다가 1년 만에 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관두시고 한예종에 다니고 계시더라. 한예종 시험 한 번 볼래? 그 말에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했다." 작품을 남기며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예고 출신에 끼와 능력이 다분한 동문들이 다수였고, 서현우는 수업 내내 필기하기에 바빴다. "당시 수업 분위기에 적응 못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온 몸으로 수업을 받아들이는데 나 혼자만 필기하고 있더라"며 그는 "그래서 당시 별명이 서 박사였다"고 전했다.온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무명 시절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한 덕일까. 서현우 주변엔 유독 그를 따르는 동료들이 많다. 류준열, 변요한 등이 종종 인생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에 서현우는 "사는 고민을 나누는 거였는데 이젠 제가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언급한 <병구>도 류준열이 감독에게 서현우를 추천하면서 출연이 성사된 경우였다.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와 캐릭터 연기 모두 능숙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었기 때문."연기를 전공할 땐 평범한 사람이 배우가 되는 과정을 배웠다면 실제 현장에선 배우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도록 한다. 저 역시 작품에 임할 땐 학교에서 배운 걸 다 잊자는 생각으로 하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배운 기본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독립영화 작업을 할 때 연기를 배운 적 없다는 친구들이 날 것의 연기를 할 때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연기 공부는 필요한 것 같다. 일상성을 넘는 표현력이 중요한 장르물도 있으니 말이다. 왜 연기하냐고?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도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입시할 때 교수님들이 매번 묻는 질문이잖나(웃음). 처음엔 유창한 말로 포장도 해봤다가 순수한 말로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같다. 연기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리 넓은데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다른 일을 택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살고 싶다는 분도 계시지만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연기하면서 힘든 적은 많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단단해지는 것 같다. 연기가 천직이라는 생각보단 제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젠 후회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 뒤를 돌아보진 않으려 한다."그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2018년, 서현우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출격 대기 중이다. 당장 <7년의 밤> <나의 아저씨>가 그렇다. "만성 피로가 고민이다. 갈수록 체력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마냥 소모되지 않고, 영리하게 작업하는 방식을 고민할 것"이라는 다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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