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배우 서현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두루 거친 배우 서현우가 최근 <사라진 밤>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그를 '픽업'했다. ⓒ 이정민


옷을 잘 빼입고 자신의 상사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줄줄 읊는 이 형사. 무심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뺀질거림이 느껴진다. 한창 상영 중인 영화 <사라진 밤> 속 형사 동구의 모습이다. 서현우가 연기한 동구는 극중 좌충우돌 형사 중식(김상경)과 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는 진한(김강우) 사이에서 적절하게 긴장감을 이완시키며 맛을 더하는 캐릭터다.

공교롭게 서현우는 김상경과 <1급기밀>에 이어 호흡을 맞추게 됐다. 군납 비리에 연루된 간부로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오 대위와 <사라진 밤> 속 동구가 같은 배우의 연기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서현우는 다른 호흡을 보였다. 8년 차라는 경력을 뛰어넘는 탄탄한 내공이 느껴진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지난 3년간 개봉한 여러 한국 상업 영화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한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적 캐릭터를 대하는 자세

지난 8년 간 쌓아온 출연작이 드라마와 공연 포함 30여 편이다. 단역과 조연을 거치며 여러 작품에서 서현우는 작품이 요구하는 캐릭터를 입고 또 벗었다. 우선 최근작인 <사라진 밤>을 보자. 역할만 치면 형사 역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 <그놈이다>에서 배우 주원에게 경남 창원 사투리를 전수한 걸로도 유명한 그는 당시 강력계 형사 두수로 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사라진 밤>에선 형사 3인 방이 함께 했으니까 마치 기업 간부들이 회의하듯 우리끼리 종종 만나서 꼼꼼하게 작전을 짰다. 동구는 일종의 패셔니스타에 뺀질 거리는 인물이다. 상사가 지적하는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하트를 누르지 않나(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형사 역할을 꽤 했다. 처음엔 경찰서도 찾아가 보고, 여러 배우 분들이 그랬듯 거기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두어 번 다니면서 느꼈는데 형사들도 평범하더라. 직업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같은 형사라도 활동적인 사람이 있고, 어눌해 보이지만 예리하게 상황을 캐치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라진 밤>의 동구 역시 형사라는 직업 보단 인물 개인의 성격에 집중하려 했다."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 씨네그루


드라마 <맨홀>을 준비할 당시 서현우는 지역 파출소에 음료수를 들고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경찰 분들을 찾아간 건데 연기를 위한 거면 관할 경찰서 홍보팀을 찾아가라고 하시더라"며 서현우는 "그땐 형사 분들이 쓰는 말투가 따로 있을 것 같고 그랬는데 만나서 동행해 보니 누구의 남편이고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더라"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그렇게 인물에 집중해서 만들어 간 동구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형사 같지 않은 인물이었다. 극 중 숙경(이민지)이 명민한 막내 형사고, 석원(이지훈)이 진지하면서도 성실한 형사로 설정된 만큼 동구도 나름의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서현우는 "너무 콘셉트가 돋보이면 극의 흐름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며 적정한 선을 지키려 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함

지금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기능적 캐릭터'다. 입체적이기 보단 극의 재미를 위한 캐릭터인데 배우로선 자칫 자신이 소모된다고 느끼기 십상이기도 하다. 일부 동의하면서도 서현우는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분량을 떠나서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진다. 어떻게든 감독님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그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답했다.

"상업영화의 단역, 조연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연습과 훈련을 굉장히 많이 해서 현장에 갔을 때 계산 착오를 느낀 적이 있었다. 조연은 말 그대로 작품의 조력자가 돼야 하는데 배우는 기질적으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게 있잖나. 대사가 많으면 제 호흡과 리듬을 보여줄 수 있는데 단역은 보통 한두 마디 대사로 승부하는 거니까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 장면에 맞지 않는 톤을 구사한다든지 말이다.  

초반엔 그런 걸 깎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히려 제 역할이 극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 대신 긴 호흡의 연기는 독립영화나 연극 쪽에서 기회를 잡으려 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출연한 작품들 보면 절망한다! (웃음) 그럼에도 제가 성장해왔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함께 하는 선배, 후배에게서도 많이 배운다. 

최근 두 작품을 같이 한 김상경 선배에게서도 느꼈다. 그 정도 경력과 연배를 가진 선배들은 뭔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초심을 잃지 않으시더라. 인물 분석, 준비 과정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현장에선 자유롭게 그걸 풀어내는 게 대단했다. 제가 간과했던 것들을 반성하면서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술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일급 기밀>땐 한 잔도 안 하셨다. 군인 역할이라 관리 측면에서 그런 것 같고, <사라진 밤>에선 첫 장면이 숙취에 괴로워하며 약을 빨며 오는 거였는데 말 그대로 폐인이 한 명 걸어오는 줄 알았다(웃음)."

독립영화 중 그의 특징과 존재감을 알게 한 작품이 꽤 있다. 그중 단편 <병구>는 2016 후쿠오카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서현우는 <그놈이다>를 위해 15kg 이상 체중을 찌운 상태에서 <병구>에 출연했다. 여자사람친구의 집에 이사를 도와주러 갔다가 여러 민폐를 끼친다는 <병구>는 당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작품이다.

선택의 순간

 배우 서현우

ⓒ 이정민


2010년 배우 오만석이 연출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난생 처음 돈을 받으며 전업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다. 그 이후 5년 간 직접 자신의 프로필을 돌리며 영화사를 찾아 다녔을 때 서현우의 목표는 "작품에 출연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오로지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연기할 기회 자체를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던 시기였다. "하다 보니 오디션을 많이 보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며 그는 "한 번 보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오디션 때마다 서현우는 자신만의 자료를 남겼다. "영화사 위치, 조감독 명함, 오디션 때 준비했던 대사와 연기를 파일로 만들어 외장하드에 저장했다"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만 약 300여 작품. 다만 시간이 좀 지나 그 외장하드는 고장 났고, 데이터 역시 복구되지 않았다. 마치 영화 <패터슨> 속 패터슨이 자신의 습작 시를 모조리 날린 것과 같았다. "싹 날리고 나니 허탈하긴 한데 좀 더 마음 편하게 새롭게 연기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때는 뭔가 제 흔적과 자취를 남기는 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다"라고 그가 고백했다. 이제 그는 따로 기록을 남기진 않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피면 알 수 있는 사실. 나이(만35)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 공부를 곧잘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자퇴 후 돌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에 응시한다. 날고 긴다는 인재들 사이에서 그는 한 번에 연극원 시험에 붙었고, 그렇게 제2 인생을 시작했다. 그 선택의 순간을 질문했다.

 영화 <병구>의 한 장면.

단편 독립영화 <병구>는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후쿠오카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극중 병구(서현우)와 민정(공민정)의 모습. ⓒ 형슬우


"부산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충남 공주에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부터 유학생활을 했는데 당시 고교가 입시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굉장히 엄격한 곳이었다.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 오셨는데 연극반을 만드시더라. 권유에 가입했는데 맛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거지(웃음). 축제 때 주변 여고생들이 구경 오잖나. 그들이 열광하는 모습에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는 맛을 알았다. 

우리 고등학교가 정말 공부만 하는 곳인데 후배 중에 박정민, 조현철 등이 있다. 배우가 나오기 참 힘든 학굔데... 그래서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다들 나름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이니까. 저 역시 고3 땐 나름 공부에 집중했는데 이미 마음엔 연기라는 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에도 없는 학과에 진학했다가 1년 만에 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관두시고 한예종에 다니고 계시더라. 한예종 시험 한 번 볼래? 그 말에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했다."

 배우 서현우

ⓒ 이정민


 배우 서현우

ⓒ 이정민



작품을 남기며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예고 출신에 끼와 능력이 다분한 동문들이 다수였고, 서현우는 수업 내내 필기하기에 바빴다. "당시 수업 분위기에 적응 못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온 몸으로 수업을 받아들이는데 나 혼자만 필기하고 있더라"며 그는 "그래서 당시 별명이 서 박사였다"고 전했다.

온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무명 시절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한 덕일까. 서현우 주변엔 유독 그를 따르는 동료들이 많다. 류준열, 변요한 등이 종종 인생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에 서현우는 "사는 고민을 나누는 거였는데 이젠 제가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언급한 <병구>도 류준열이 감독에게 서현우를 추천하면서 출연이 성사된 경우였다.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와 캐릭터 연기 모두 능숙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었기 때문.

"연기를 전공할 땐 평범한 사람이 배우가 되는 과정을 배웠다면 실제 현장에선 배우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도록 한다. 저 역시 작품에 임할 땐 학교에서 배운 걸 다 잊자는 생각으로 하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배운 기본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독립영화 작업을 할 때 연기를 배운 적 없다는 친구들이 날 것의 연기를 할 때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연기 공부는 필요한 것 같다. 일상성을 넘는 표현력이 중요한 장르물도 있으니 말이다. 

왜 연기하냐고?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도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입시할 때 교수님들이 매번 묻는 질문이잖나(웃음). 처음엔 유창한 말로 포장도 해봤다가 순수한 말로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같다. 연기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리 넓은데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다른 일을 택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살고 싶다는 분도 계시지만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연기하면서 힘든 적은 많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단단해지는 것 같다. 연기가 천직이라는 생각보단 제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젠 후회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 뒤를 돌아보진 않으려 한다."

그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2018년, 서현우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출격 대기 중이다. 당장 <7년의 밤> <나의 아저씨>가 그렇다. "만성 피로가 고민이다. 갈수록 체력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마냥 소모되지 않고, 영리하게 작업하는 방식을 고민할 것"이라는 다짐도 전했다. 

 배우 서현우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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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규 "루저같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유명해져 겁난다"

[오마이픽업] <범죄도시> 이전 그를 채운 수많은 작품들... "버티면 언젠간!"

이 말에 객석에선 '천천히 해요'라는 말이 들렸다. 지난 38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진선규는 그렇게 3분이 넘는 시간동안 눈물을 쏟으며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 이름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말했다.여운은 여전했다. 14년 연기 경력에 영화로 받은 첫 상,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듯 대학로에서 진선규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도 당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 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일 서울 홍대입구 인근에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 <범죄도시> 속 흑룡파 위성락은 온 데 간 데 없고, 차분하면서도 선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 "수상 이후 기사는 꼼꼼히 찾아봤는데 너무 지질하게 운 것 같아서 영상은 차마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그가 수상 이후의 소회부터 전했다.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 마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심혜진씨가 진선규의 동창이라며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 글을 보낸 터였다.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에 그 친구가 혹시 나오는지 궁금했다"며 "진선규는 동창들 덕에 그때 사진을 찾아보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청룡상 최대 스타? 30년 전 '까불이' 진선규를 기억한다 http://omn.kr/oowj )그의 수상소감 마지막 말을 묻고 싶었다. 수상 무대에서 내려오기 직전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마치 주문을 걸 듯 다짐처럼 들린 이 말의 참뜻은 무엇이었을까.2004년 친구들과 극단 '공연배달 서비스 간다'를 만든 이후 그는 꾸준히 달렸다. 무대에서 어느새 몸을 잘 쓰는 배우로 소문이 났고, <칠수와 만수> 같은 문제작을 비롯해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같이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트렌디 작품도 경험했다. 무대 작품만 서른 편이 훌쩍 넘은 진선규가 말한 '체크'는 관객의 호응도가 아니었다.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나 혹은 관객 분들이 아닌 동료들이 결정하는 것이더라"며 그는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지가 중요했고, 동료들에게 우리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걸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떨어졌던 <범죄도시> 오디션 사실 <범죄도시>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인생작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저 역할을 따내고 싶었다. '알려진 배우보다는 잘하는 배우'를 뽑고자 했던 강윤성 감독의 생각에 그 역시 1200명 넘게 본 오디션의 응시자로 갔으나 탈락했다. 악한 위성락의 모습과 다른 그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었다.북한군, 기자, 회사 대리 등 진선규는 영화 속에서 특별한 이름 없이 스쳐가는 단역이었다. 그러다 <사냥> 때 어엿한 배역 이름을 가졌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까진 누구와 연습하는 게 아닌 그저 제 분량만 잘 준비해 가는 정도였다"며 그는 "공동창작의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범죄도시>에서의 경험이 너무 제겐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버티다 이 지점에서 진선규는 두려움을 언급했다. 대학로에서 지낸 10여 년을 돌아보며 그는 처음 배우라는 걸 마음에 품기 시작한 계기를 언급했다. 경남 진해 고등학교 3학년이던 당시 그는 한 극단에 놀러 가서 본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었다.그러면서도 진선규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의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망설임 없이 고백했다. '전혀'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그는 자신 보다 앞서나간 동료 배우들을 소개했다.함께 연기하는 동료 그리고 아내이자 배우 박보경, 두 자녀가 그의 삶의 동력이었다. "아내가 (연기에 대해) 쓴 소리도 하고 가장 무서운 모니터"라며 "아내가 공연 보러 올 때가 가장 무섭다"고 웃으며 말했다.가위손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을 비롯해 영화 <특별시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남한산성>, <꾼>, <범죄도시> 등 올해 바쁘게 달렸던 진선규다. 현재도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번갈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극단에 공연을 잠시 쉬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름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그는 영화 <가위손>에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빗댔다. 뭔가 무서워 보이고 낯설어 보이지만 다가가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존재. 연기와 극단이 그에겐 그런 존재이자 공간이었다."정말 됩니다!" 인터뷰 말미 진선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자에게 말했다. 스스로 증명해 낸 결과라 그만큼 그 말이 묵직했다. 마침 인터뷰 당일 저녁 "대학로 동료들과 만난다"며 "못다 한 얘길 하고 싶다"고 환히 웃었다.

박근혜 암시, <곤지암> 박지아가 특히 소름 돋았던 이유

[오마이픽업] <기담> 이어 다양한 상징 온몸으로 표현, 박근혜와 세월호, 그리고...

"얼마전 요가 하러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옆 사람들이 402호 얘길하더라. '설마 <곤지암> 얘긴 아니겠지?' 생각하던 찰나 계속 얘기를 들으니 <곤지암> 얘기였다. 아무래도 다수의 관객 분들은 강렬한 장면을 기억하시니까 제가 <기담>에서 아사코 엄마였고, <곤지암>에서도 병원 원장이었던 건 잘 모르실 것이다. 게다가 귀신 역할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분장을 하고 나오니까(웃음)." 누적관객 200만을 돌파하며 한국 공포 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된 <곤지암>. 다수의 신인 배우와 함께 이 배우를 주목해야 한다. 힌트는 정범식 감독의 데뷔작 <기담>이다. 눈썰미 좋은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배우 박지아가 <기담>에 이어 11년 만에 <곤지암>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200만 돌파를 목전에 둔 시점에 미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감독의 문자정범식 감독의 문자 하나가 시작이었다. "대본 하나 보낼 건데 읽어봐 줄래요?"라는 말과 함께 <곤지암>의 시나리오가 와 있었다. <기담>이 개봉한 지 10년 만인 상황에서 감독은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박지아를 염두에 뒀다. 그렇게 곤지암 정신병원을 찾은 '호러타임즈' 7명을 공포에 질리게 한 병원 원장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셨다. 또 대외비였지만 그 원장의 비하인드 정보도 적어주셨다. 저야 물론 오케이였다. <기담> 때부터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잘 안 맞으면 힘들어 하는 배우도 있지만, 제 개인적으론 매우 고마운 분이셨다. <기담>과 이번 작업 중간에 감독님께 감동받은 일도 있고." 우선, 병원 원장의 배경이다. <기담>이 그랬듯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에 다양한 상징을 숨겨 놨다. 영화 속 병원 개원일이 5월 16일로 설정된 점, 병원원장이 환자들과 함께 찍힌 사진 속 날짜 1979년 10월 26일 이라는 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작과 종말을 암시한다. 또한, 실험실 장면에 닭의 시체가 등장한다는 점, 병원 원장의 '올림머리 스타일', 호러타임즈 생중계 조회 수가 503명에서 멈춘다는 설정 등은 박근혜 대통령을 뜻한다. 여기에 더해 욕실에서 교복 입은 학생 귀신이 등장하고, 원장 귀신이 출몰한다는 방을 402호(본래 감독은 416호로 설정하려 했다-기자 주)로 설정했다는 건 세월호 참사를 암시하는 설정으로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작업이 공교롭게도 촛불집회 시작 직전에 끝난 걸로 알고 있다. 감독님이 워낙 정치, 시사에 관심이 많으셔서 영화 속 서브 텍스트를 통해 공감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 때(박정희)를 부모 세대가 살아냈고, 그 딸을 지도자로 둔 상황을 자녀들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지났지만 반복되는 세월을 표현하신 것 같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7명의 호러타임즈 대원들은 누군가를 찾겠다고 했지만 실체가 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현실 그대로를 모사할 순 없고, 은유와 영화 사이 균형을 고민하셨을 것이다."이 지점에서 박지아는 정범식 감독의 배려에 감동받은 사연을 더했다. 연극 <마술가게>를 기준으로 데뷔 27년 차 베테랑이지만 그에게도 부침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업계에선 작품이 끝나거나 공백기엔 남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며 "감독님께 아쉬운 소리를 했던 때에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피드백을 주셨다"고 전했다."좀처럼 제가 그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데 매우 절박했을 때였다. 주변의 몇몇 분들께 '저 일하고 싶다. 도와 달라'고 읍소했던 적이 있다. 다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시곤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정범식 감독님께 문자를 보냈다. <워킹걸>을 하신다는 소식에 '오디션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보낸 문자였다. '배우님이 하기엔 매우 작은 역할인데 혹시 보러 오실 수 있나요' 하시더라. 저의 상황을 아마 느끼신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그만큼 인간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란 걸 알게 됐다. 사실 흔쾌히 확답을 하고 연락을 안 주신 다른 분들이 잘못한 건 전혀 아니다. 제가 작품을 못하는 게 그 분들 탓이 아니니까. 다만 다르게 얘기하면 차라리 그렇게 흔쾌히 얘기 안 하셨다면 제가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품지 않았을 텐데... 그걸 통해 저도 배웠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함부로 주는 게 반대로 힘든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정범식 감독님의 말이 정말 힘이 됐다. 세상이 그렇게 차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는 <곤지암> 직전 출연한 <석조저택 살인사건> 정식 감독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투자사를 생각하면 더 인지도 있는 배우를 쓰는 게 나았을 텐데, 감독님이 제게 그 배역(성 마담)을 애초부터 주려고 생각하셨다고 들었다"며 "영화 자체가 감독님 의도와 달리 편집돼 저도 아쉽지만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귀신이 되어이렇게 박지아는 <기담>과 <곤지암>의 연결고리가 됐다. <기담> 때 엄마 귀신이 던진 방언은 많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고, <곤지암> 속 병원 원장의 알 수 없는 소리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 해당 역할의 준비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안 그래도 <기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당시 시나리오를 다시 봤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로 돼 있더라. 즉흥으로 '얼렐레~' 이런 식을 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그게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잖나.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연습했던 것 같다. 딸인 아사코 대사를 다 써놓고 거꾸로 읽어보기도 했고, 문장을 바꿔서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해 갔는데 현장에서 정말 긴장되더라(웃음). 딱 하나를 준비했는데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근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신다. 준비한 걸 하면서 중간에 하이톤으로 올라가는 걸 제가 본능적으로 했다. 그렇게 나온 게 그 결과물이었다. <곤지암>은 이렇게 준비했다. 시나리오엔 '곡소리를 내며 뒤에 서 있다'로 돼 있었다. 10년 전 것을 업그레이드 해볼까, 곡소리를 연구할까 하다가 둘 다 준비했다. 이게 반복된 죽음이잖나. 기담 때 방식으로 거칠게 내뱉는 것과 숨을 뱉고 들이는 걸 거칠 게 하는 것을 준비해갔다. 호흡 소리를 들으시곤 감독님이 '다른 건 더 안 하셔도 되겠다'고 하시더라." 정작 박지아 본인은 공포영화 자체를 즐기진 않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언제부턴가 공포영화를 보면 무섭지가 않아서 흥미를 잃었는데 <곤지암>은 보고 나서 무서웠다"며 그는 "<기담> 때보다 더 무서운 장면이 많았다"고 나름의 감상을 전했다. 수줍었던 학생의 선택앞선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박지아는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1992년 연극 <마술가게>를 기준으로 27년 차의 베테랑이지만 박지아는 언론 노출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극단 차이무와 연우무대 작품을 두루 경험하며 내공을 키워온 그다. 일부 대중에겐 영화 데뷔작 <해안선> 등 김기덕의 여성 페르소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배우 입장에서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 몇 개를 던져야 했다. 방황의 시기에 대해서다."학창시절 워낙 성격이 어두웠고, 학교도 잘 안 가고 그랬다. 그런데 연극반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가서 해보고는 싶은데 말은 못 하겠고, 그래서 오디션장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제가 청소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눈치 채신 것 같더라. '한번 연기해볼래?' 그 말에 시작했다. 하면서 칭찬을 받으니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시작했지. 근데 대학에 가니 안 되겠더라. 당시 제 동문이 안재욱, 신동엽, 류승룡씨 등이었는데 다 저보다 잘하고 멋져 보였다.사춘기를 그때 앓았다. 방황하고 학교도 안 나갔다. 혼자 남산 주변을 걸어 다니곤 했다. 그때 박광정 오빠의 제안으로 <마술가게>를 했는데 와, 제가 방황할 틈이 없더라. 맨날 혼나고, 정신도 안 차려지고 그랬다. 선배들이 보시기에 제가 얼마나 성에 안 찼겠나. 그래서 편지를 써놓고 또 도망 나왔다. 다시 방황한 거지..."두 번의 방황 끝에 박지아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배우를 해야겠다"였다. "도망간 입장에서 면목이 없었다"면서도 겨우 용기를 내 자신을 무대로 이끈 선배 박광정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했다. "절 미워하셨을 텐데 문을 조금 열어주셨다"며 박지아는 "그때 그 선배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전 연기를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 회상했다.물론 그렇다고 꾸중과 질책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러 선배들에게 혼나면서도 박지아는 버텼다. 할 수 있는 게 연기였고, 연기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과거를 돌아보고 앞을 생각해 봐도 연기란 건 평생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힘든 시기이긴 한데 달라진 게 있다면 버티는 방법이 생겼다는 점이지. 지금보다 인지도가 올라가도 연기는 힘들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귀신 역할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만 전전긍긍했을 텐데 이젠 좋다. 제가 다른 걸 해내면 훨씬 돋보일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론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 원래 코믹 연기를 했던 분이 코미디를 하면 식상할 테지만 제가 하면 신선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웃음).그만큼 연기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엔 작품에 임할 때 준비를 엄청 했던 때가 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날 보러 와요> 땐 화성에 두 세 번씩 가서 주변을 탐문하고 눈으로 직접 동네를 살피고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 근데 언제부턴가 이런 방식이 오히려 절 가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상대 배우에 대한 여지가 없어지기도 하고. 지금은 준비는 많이 하되 그걸 잘 소화시켜서 영양분으로 가지고 있자는 생각이다. 상대방에 따라 그걸 꺼내거나 받을 수 있게 말이다. 요즘은 여유에 대한 걸 많이 생각하고 있다."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다는 굴레를 벗어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그다. 그만큼 배우 박지아로서 오롯이 보일 영역이 더 커보였다. 박지아는 곧 개봉할 영화 <창궐>,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로 대중과 만날 예정. 그는 "소박한 목표라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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