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배우 서현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두루 거친 배우 서현우가 최근 <사라진 밤>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그를 '픽업'했다. ⓒ 이정민


옷을 잘 빼입고 자신의 상사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줄줄 읊는 이 형사. 무심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뺀질거림이 느껴진다. 한창 상영 중인 영화 <사라진 밤> 속 형사 동구의 모습이다. 서현우가 연기한 동구는 극중 좌충우돌 형사 중식(김상경)과 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는 진한(김강우) 사이에서 적절하게 긴장감을 이완시키며 맛을 더하는 캐릭터다.

공교롭게 서현우는 김상경과 <1급기밀>에 이어 호흡을 맞추게 됐다. 군납 비리에 연루된 간부로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오 대위와 <사라진 밤> 속 동구가 같은 배우의 연기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서현우는 다른 호흡을 보였다. 8년 차라는 경력을 뛰어넘는 탄탄한 내공이 느껴진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지난 3년간 개봉한 여러 한국 상업 영화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한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적 캐릭터를 대하는 자세

지난 8년 간 쌓아온 출연작이 드라마와 공연 포함 30여 편이다. 단역과 조연을 거치며 여러 작품에서 서현우는 작품이 요구하는 캐릭터를 입고 또 벗었다. 우선 최근작인 <사라진 밤>을 보자. 역할만 치면 형사 역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 <그놈이다>에서 배우 주원에게 경남 창원 사투리를 전수한 걸로도 유명한 그는 당시 강력계 형사 두수로 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사라진 밤>에선 형사 3인 방이 함께 했으니까 마치 기업 간부들이 회의하듯 우리끼리 종종 만나서 꼼꼼하게 작전을 짰다. 동구는 일종의 패셔니스타에 뺀질 거리는 인물이다. 상사가 지적하는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하트를 누르지 않나(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형사 역할을 꽤 했다. 처음엔 경찰서도 찾아가 보고, 여러 배우 분들이 그랬듯 거기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두어 번 다니면서 느꼈는데 형사들도 평범하더라. 직업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같은 형사라도 활동적인 사람이 있고, 어눌해 보이지만 예리하게 상황을 캐치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라진 밤>의 동구 역시 형사라는 직업 보단 인물 개인의 성격에 집중하려 했다."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 씨네그루


드라마 <맨홀>을 준비할 당시 서현우는 지역 파출소에 음료수를 들고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경찰 분들을 찾아간 건데 연기를 위한 거면 관할 경찰서 홍보팀을 찾아가라고 하시더라"며 서현우는 "그땐 형사 분들이 쓰는 말투가 따로 있을 것 같고 그랬는데 만나서 동행해 보니 누구의 남편이고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더라"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그렇게 인물에 집중해서 만들어 간 동구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형사 같지 않은 인물이었다. 극 중 숙경(이민지)이 명민한 막내 형사고, 석원(이지훈)이 진지하면서도 성실한 형사로 설정된 만큼 동구도 나름의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서현우는 "너무 콘셉트가 돋보이면 극의 흐름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며 적정한 선을 지키려 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함

지금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기능적 캐릭터'다. 입체적이기 보단 극의 재미를 위한 캐릭터인데 배우로선 자칫 자신이 소모된다고 느끼기 십상이기도 하다. 일부 동의하면서도 서현우는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분량을 떠나서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진다. 어떻게든 감독님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그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답했다.

"상업영화의 단역, 조연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연습과 훈련을 굉장히 많이 해서 현장에 갔을 때 계산 착오를 느낀 적이 있었다. 조연은 말 그대로 작품의 조력자가 돼야 하는데 배우는 기질적으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게 있잖나. 대사가 많으면 제 호흡과 리듬을 보여줄 수 있는데 단역은 보통 한두 마디 대사로 승부하는 거니까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 장면에 맞지 않는 톤을 구사한다든지 말이다.  

초반엔 그런 걸 깎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히려 제 역할이 극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 대신 긴 호흡의 연기는 독립영화나 연극 쪽에서 기회를 잡으려 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출연한 작품들 보면 절망한다! (웃음) 그럼에도 제가 성장해왔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함께 하는 선배, 후배에게서도 많이 배운다. 

최근 두 작품을 같이 한 김상경 선배에게서도 느꼈다. 그 정도 경력과 연배를 가진 선배들은 뭔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초심을 잃지 않으시더라. 인물 분석, 준비 과정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현장에선 자유롭게 그걸 풀어내는 게 대단했다. 제가 간과했던 것들을 반성하면서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술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일급 기밀>땐 한 잔도 안 하셨다. 군인 역할이라 관리 측면에서 그런 것 같고, <사라진 밤>에선 첫 장면이 숙취에 괴로워하며 약을 빨며 오는 거였는데 말 그대로 폐인이 한 명 걸어오는 줄 알았다(웃음)."

독립영화 중 그의 특징과 존재감을 알게 한 작품이 꽤 있다. 그중 단편 <병구>는 2016 후쿠오카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서현우는 <그놈이다>를 위해 15kg 이상 체중을 찌운 상태에서 <병구>에 출연했다. 여자사람친구의 집에 이사를 도와주러 갔다가 여러 민폐를 끼친다는 <병구>는 당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작품이다.

선택의 순간

 배우 서현우

ⓒ 이정민


2010년 배우 오만석이 연출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난생 처음 돈을 받으며 전업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다. 그 이후 5년 간 직접 자신의 프로필을 돌리며 영화사를 찾아 다녔을 때 서현우의 목표는 "작품에 출연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오로지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연기할 기회 자체를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던 시기였다. "하다 보니 오디션을 많이 보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며 그는 "한 번 보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오디션 때마다 서현우는 자신만의 자료를 남겼다. "영화사 위치, 조감독 명함, 오디션 때 준비했던 대사와 연기를 파일로 만들어 외장하드에 저장했다"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만 약 300여 작품. 다만 시간이 좀 지나 그 외장하드는 고장 났고, 데이터 역시 복구되지 않았다. 마치 영화 <패터슨> 속 패터슨이 자신의 습작 시를 모조리 날린 것과 같았다. "싹 날리고 나니 허탈하긴 한데 좀 더 마음 편하게 새롭게 연기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때는 뭔가 제 흔적과 자취를 남기는 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다"라고 그가 고백했다. 이제 그는 따로 기록을 남기진 않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피면 알 수 있는 사실. 나이(만35)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 공부를 곧잘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자퇴 후 돌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에 응시한다. 날고 긴다는 인재들 사이에서 그는 한 번에 연극원 시험에 붙었고, 그렇게 제2 인생을 시작했다. 그 선택의 순간을 질문했다.

 영화 <병구>의 한 장면.

단편 독립영화 <병구>는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후쿠오카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극중 병구(서현우)와 민정(공민정)의 모습. ⓒ 형슬우


"부산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충남 공주에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부터 유학생활을 했는데 당시 고교가 입시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굉장히 엄격한 곳이었다. 국어선생님이 새로 부임 오셨는데 연극반을 만드시더라. 권유에 가입했는데 맛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거지(웃음). 축제 때 주변 여고생들이 구경 오잖나. 그들이 열광하는 모습에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는 맛을 알았다. 

우리 고등학교가 정말 공부만 하는 곳인데 후배 중에 박정민, 조현철 등이 있다. 배우가 나오기 참 힘든 학굔데... 그래서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다들 나름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이니까. 저 역시 고3 땐 나름 공부에 집중했는데 이미 마음엔 연기라는 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에도 없는 학과에 진학했다가 1년 만에 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관두시고 한예종에 다니고 계시더라. 한예종 시험 한 번 볼래? 그 말에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했다."

 배우 서현우

ⓒ 이정민


 배우 서현우

ⓒ 이정민



작품을 남기며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예고 출신에 끼와 능력이 다분한 동문들이 다수였고, 서현우는 수업 내내 필기하기에 바빴다. "당시 수업 분위기에 적응 못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온 몸으로 수업을 받아들이는데 나 혼자만 필기하고 있더라"며 그는 "그래서 당시 별명이 서 박사였다"고 전했다.

온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무명 시절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한 덕일까. 서현우 주변엔 유독 그를 따르는 동료들이 많다. 류준열, 변요한 등이 종종 인생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에 서현우는 "사는 고민을 나누는 거였는데 이젠 제가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언급한 <병구>도 류준열이 감독에게 서현우를 추천하면서 출연이 성사된 경우였다.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와 캐릭터 연기 모두 능숙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었기 때문.

"연기를 전공할 땐 평범한 사람이 배우가 되는 과정을 배웠다면 실제 현장에선 배우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도록 한다. 저 역시 작품에 임할 땐 학교에서 배운 걸 다 잊자는 생각으로 하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배운 기본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독립영화 작업을 할 때 연기를 배운 적 없다는 친구들이 날 것의 연기를 할 때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연기 공부는 필요한 것 같다. 일상성을 넘는 표현력이 중요한 장르물도 있으니 말이다. 

왜 연기하냐고?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도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입시할 때 교수님들이 매번 묻는 질문이잖나(웃음). 처음엔 유창한 말로 포장도 해봤다가 순수한 말로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같다. 연기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리 넓은데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다른 일을 택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살고 싶다는 분도 계시지만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연기하면서 힘든 적은 많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단단해지는 것 같다. 연기가 천직이라는 생각보단 제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젠 후회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 뒤를 돌아보진 않으려 한다."

그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2018년, 서현우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출격 대기 중이다. 당장 <7년의 밤> <나의 아저씨>가 그렇다. "만성 피로가 고민이다. 갈수록 체력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마냥 소모되지 않고, 영리하게 작업하는 방식을 고민할 것"이라는 다짐도 전했다. 

 배우 서현우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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