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생일을 맞은 아이스하키 팀 이재웅 선수의 발언을 들으며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생일을 맞은 아이스하키 팀 이재웅 선수의 발언을 들으며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 소중한


"(휠체어)컬링 선수들도 잘하셨어요."

17일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진행된 강릉 올림픽파크의 코리아 하우스. 18일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을 앞두고 선수들을 치하하기 위한 이 자리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격려사를 하기 위해 연단 위로 올랐다. 그러더니 방민자, 서순석, 정승원, 차재관, 이동하 이렇게 휠체어컬링 선수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언급했다.

이날 휠체어컬링 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캐나다에 패하며 4위에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 : 두 '마술사'의 눈물, 오벤저스 덕분에 행복했다). 같은 날 아이스하키 팀이 동메달을 거머쥐고,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신의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휠체어컬링 팀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었다. 도 장관은 이날 한국 선수단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신의현 선수와 아이스하키 팀을 축하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휠체어컬링 팀을 위로하고 치켜세웠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정승환 선수(왼쪽)와 휠체어컬링 팀 차재관, 서순석, 이동하 선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정승환 선수(왼쪽)와 휠체어컬링 팀 차재관, 서순석, 이동하 선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소중한


"정진완 (선수단) 총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로 잰 듯이 던지기 때문에 방민'자'라고. 그리고 정말 이름 그대로 순수한 돌을 던지는 '순석', 서순석. 그러니까 스킵을 바꾸자는 요구도 받아주시고, 그리고 팀 전체를 위해 하나 되는 마음으로 팀을 끌어가 주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요."

도 장관의 아재(?)개그가 섞인 위로에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휠체어컬링 팀도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재개그는 계속됐다.

"그리고 하우스 안에, 원 안에 집어넣는 거니까 정승'원'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반드시 승리의 월계관을 다시 쓰게 될 거라고 해서 '재관', 차재관이라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하하하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해서 이동'하'라고 했습니다."

이어 도 장관은 "컬링 팀 정말 잘하셨다. 우리는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라며 "정승원 선수 휠체어 루틴 카드에 '그동안 우리가 흘린 피눈물을 잊지 말자'라고 써놨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도 여러분들이 흘린 피눈물을 잊지 않겠다"라고 덧붙였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유만균, 장종호 선수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이스하키 팀 유만균, 장종호 선수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소중한


"국가는 여러분을 잊지 않겠다"

별다른 원고 없이 연단에 오른 도 장관은 신의현 선수를 응원하러 갔다가 생긴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며칠 전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응원하러 갔는데 앞줄에 신의현 선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부인 이렇게 앉아 계셨어요. 뒷줄엔 대통령님, 여사님, 저 이렇게 앉아 있었고요. 선수들이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걸 보고 신의현 선수의 딸이 '아이고, 저걸 어떻게 해'라고 말하니까 부인이 '괜찮아. 아빠는 더 많이 넘어졌어. 넘어졌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말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제가 얼른 적었어요. 그 말 속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오고 헤쳐 온 삶이 함축돼 있었습니다."

도 장관은 아이스하키 팀을 향해선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했는데, 여러분의 열정과 도전이 국민들을 움직였고, 대통령을 달려오시게 했고,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성으로 대한민국을 외치게 만들었다"라며 "여러분 정말 대단하다. 고맙다"라고 감사의 말을 남겼다(관련기사 : 무릎 굽힌 문 대통령 '포옹'에, 선수와 관중들 반응은?).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사 도중 상영된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사 도중 상영된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소중한


도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이 상영되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도 장관은 "(패럴림픽 선수들이)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일 폐회식이 있다. 폐회식 여러 공연 중 '도당살풀이'라는 춤 공연이 있다. 살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동안 부딪히는 나쁜 기운을 말한다"라며 "그 살 중엔 '곡각살'이란 게 있다. 뼈가 부러지고 팔다리를 잃는 그런 흉살인데, 그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바꿔달라고 기원하는 춤이 도당살풀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도 장관은 "여러분은 스포츠로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251만 명 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1000만 명 장애인 가족에게 희망을 줬다"라고 강조했다.

또 도 장관은 "올림픽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면서 국가의 운명을 바꿨고 치유의 패럴림픽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라며 "그래서 여러분께 감사하다. 국가는 이걸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스노보드 박항승 선수가 행사 도중 박수를 치고 있다. 박 선수는 교통사고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스노보드 박항승 선수가 행사 도중 박수를 치고 있다. 박 선수는 교통사고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 소중한


마지막으로 도 장관은 "'모든 꽃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핀다'는 시의 한 구절이 있다"라며 "스스로 운명을 바꿔 가는 여러분도 그 꽃처럼 스스로를 축복하며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여러분은 이미 인생의 금메달을 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게 꽃필 수 있도록 저희도 지원하겠다"라며 "그리고 여러분이 훌륭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평등하고 따뜻한 세상, 동행하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있는 힘을 다해 지원하고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18일 경기가 남은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스키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이 자리해 그동안의 피로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팽창패럴림픽 폐회식은 18일 오후 8시 평창 올림픽플라자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진행된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이날 대표로 메달을 받은 휠체어컬링 방민자(왼쪽), 아이스하키 한민수 선수의 메달.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가 17일 오후 강릉 올림픽플라자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했다. 이날 대표로 메달을 받은 휠체어컬링 방민자(왼쪽), 아이스하키 한민수 선수의 메달.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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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엄마 앞에서 무너졌던 신의현 "약속 지킨 것 같아 울컥했다"

여섯 번의 도전 끝에 얻은 대한민국 패럴림픽 사상 최초 금메달, "사랑한다! 가족"

"이제 약속을 지키는 남자가 됐네요."평창동계패럴림픽 노르딕 스키 국가대표 신의현(38) 선수가 웃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채였다. 그는 17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km 좌식 경기에서 우승했다. 기록은 22분28초40. 대한민국 패럴림픽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 그리고 신 선수가 '마침내' 거둔 메달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6번 도전해서 마지막 경기에야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앞서 그는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등 노르딕스키 부문 개인전 전 종목에 출전했지만 11일 크로스컨트리 15km 좌식 경기에서만 동메달을 거뒀다. 나머지 경기에선 3위 내에 들지 못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어깨에 대한민국 선수단 목표 성적의 절반 이상이 실린 탓이 컸다. 선수단은 애초 금메달 1개·은메달 1개·동메달 2개의 종합 순위 10위를 목표로 했다. 이 중 금메달과 은메달은 최근 장애인 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잇달아 1위를 기록했던 신 선수의 몫이었다. 신 선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자연스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 5, 6시에 눈이 떠진다"고 했다. 선수단은 결국 신 선수 등의 부담을 고려해 "메달 없어도 괜찮다. 즐기자"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렇지만 신 선수는 선수단의 목표 수정과 관계없이 "애국가를 울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8일 평창 선수촌 숙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을 때도 "성적을 냈으니 (주변에서) 기대하는 게 당연하고, 저도 기대 받는 만큼 해내고 싶다"고 했던 그였다. 신 선수는 지난 11일 동메달을 땄을 때도 "금메달을 땄으면 눈 위에 태극기를 꽂고 함성을 지르고 싶었는데 다음 경기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금메달 부담? 해내고 싶다" )그는 마지막 개인전 경기에서야 자신의 말을 지켰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신 선수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포효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잃은 두 다리를 대신했던 좌식 스키에서 내려서 관중들을 향해 큰 절을 했다. 태극기 역시 흔들었다. 눈밭 위에도 태극기를 박아 넣었다. 눈물도 흘렸다.마지막까지 자신이 선두인지 몰라서 더 컸던 감격이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선 "'5초 차이가 난다'고 해서 제가 5초 뒤지는 줄 알았다. 5초를 따라잡으려고 주행을 열심히 했다"라며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어깨 무거웠던 신의현, 그래도 매번 멋쩍게 웃었다 신 선수는 이날 오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부터 주먹을 움켜쥐고 흔들면서 관중의 환호에 응했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목에 걸어 준 금메달을 다시 한 번 벗어서 관중을 향해 흔들기도 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울컥했다. 제 나름대로 갖고 있었던 마음의 짐이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대회 가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음을 다 외웠는데 오늘 안 듣게 돼서 좋네요"라고 덧붙였다. 신 선수 특유의 멋쩍은 농담이었다. 그는 평창 패럴림픽 내내 속상한 경기결과가 나와도 그 마음을 우스갯소리로 감췄다. 유일하게 눈물을 보였던 때는 지난 10일 바이애슬론 남자 7.5km 좌식 경기 후 어머니 이회갑(69)씨를 만났을 때였다. 기자들 앞에선 자신의 사격 실수를 못내 아쉬워 하면서도 멋쩍은 웃음으로 감췄던 그는 어머니 앞에서 무너졌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잘했어. 우리 아들 최고여"라고 감쌌다. 신 선수는 하루 뒤인 11일 기자들과 만났을 땐 "어제 그거 눈물이 아니에요. 땀이 나가지구"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메달 없어도 괜찮아, 아들!" 국가대표 신의현-이정민의 엄마 )사실 자신이 두 다리를 잃었던 당시의 기억을 되감는 것도 어색해 했다. 그는 2006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의식이 없던 그를 대신해 하지 절단 동의서에 이름을 적은 어머니를 향해 "죽게 놔두지, 나를 왜 살려냈느냐"고 외치기도 했다. 이후 3년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재활 차원에서 시작한 휠체어 농구를 통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평창 선수촌 숙소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선 "그거야, 뭐 지난 일이니깐"이라면서 말끝을 흐리고만 말았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 신만균(71)씨는 60세 이후 앓은 질환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아들의 경기를 모두 응원했다. 가족의 귀띔과 관중들의 환호에 맞춰 응원하던 아버지는 이날 "아들 수고했다. 자랑스럽다"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신 선수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가 오늘 경기 후 눈물을 흘리셨다"는 질문에 "요새 아버지가 눈물이 많아지셨다. 계속 우신단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저는 운이 좋았지만, 스포츠는 장기적 지원 없인 성과 어려워" 그래도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고마움은 감추지 않았다. 신 선수는 앞서 경기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들을 꼽으면서 "어머니를 웃게 해드려 기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드리겠다", "(아내에게) 남은 평생 잘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단 가족들과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싶다. 그동안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깐 빵, 파스타 이런 것만 먹어서 집에서 애기 엄마가 해 준 김치찌개에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김희선(30)씨를 향해선 "내일이면 올림픽(패럴림픽) 끝나는데 집에 들어가면 잘 할게. 운동 해야 해서 가정에 확 충실하진 못하겠지만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 만들자. 사랑한다. 가족"이라고 전했다. 신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여섯 종목에 출전해 총 벌칙 코스까지 포함해 총 61.7km를 달렸다. 그뿐만 아니라 패럴림픽 노르딕 스키 대표팀 모두가 전원 낙오 없이 수십km를 달렸다. 신 선수는 이에 대해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완주하고자 했다"라면서 "그게 스포츠 하는 사람의 정신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창 패럴림픽 이후에도 장애인 노르딕 스키에 대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르딕 스키에 대한) 지원을 장기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스포츠는 단기적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과 내기가 쉽지 않다. 저는 운 좋게 잘 됐지만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해주셨으면 좋겠다."[관련기사①] "애국가 듣고 싶어요" 포기 모르는 신의현 선수 [관련기사②] 패럴림픽 첫 메달 신의현 "어제 그거 눈물 아니에요~"[관련기사③] "메달 없어도 괜찮아, 아들!" 국가대표 신의현-이정민의 엄마[관련기사④] "금메달 부담? 해내고 싶다" 신의현-이정민 선수 인터뷰

"더 많은 지원 있다면 제2의 신의현 나온다"

한국 선수단 패럴림픽 결산 기자회견, "평창 이후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

"계속 관심 가져달라. 열심히 하는 신의현 되겠다."평창 동계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가 19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결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명호 대한장애인체육회(KPC) 회장과 정진완 선수단 총감독도 평창 패럴림픽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한국선수단은 그야말로 이번 대회를 통해 패럴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획득하고, 장애인 아이스하키에서 동메달을 얻었다.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도 함께 얻었다. 신의현 선수가 거둔 금메달은, 한국 선수단이 1992년 알베르빌 동계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26년 만에 획득한 것이었다. 또 한국 크로스컨트리 스키 역대 최초의 메달이기 하다. 장애인 아이스하키팀의 동메달 역시 사상 최초다. 성적뿐만 아니다.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자체가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6개 전 종목에 선수 36명을 포함, 83명을 파견했다. 26년 전 첫 패럴림픽 파견 때 한국 선수단의 규모는 선수 2명과 임원 3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새 역사를 쓴 선수단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번 대회가 국내에서 열린 덕에 상대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컸기에, 평창 패럴림픽 이후의 상황도 같을 것이라고 낙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동참해주신다면..." 장애인 역도선수 출신인 이명호 회장은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기까지 정부가 지난 몇년간 45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 경기력 향상 부분을 적극 지원해주셨다"라면서 "패럴림픽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전문 체육만 아니라 생활 체육에 대한 지원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장애인은 (선천 장애가 아닌) 중도 장애가 많아서 생활 체육을 통해 선수들이 발굴되는 편"이라면서 장애인 생활체육 지원 확대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한 (장애인들의) 의료비 절감 효과는 1조7000억 원이나 된다. 우리 장애인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데도 가장 큰 힘이 된다"라면서 "그러나 사실 17개 시·도에 장애인들이 가까운 곳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아직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정부에 협조를 구해서 각 시·도의 공공체육시설을 개선한다든지, 하다 못해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각 구별이라도 따로 만들 수 있다든지 그런 방안을 정부와 긴밀하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정진완 총감독은 "이제 다음을 준비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평가하고 다음 2022년 베이징동계패럴림픽에 대비해 선수 중심의 종합 계획을 수립하겠다"라면서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배동현 선수단장처럼 민간 기업에서 선수들을 위한 정책에 동참해주신다면 우리 선수들이 더욱 힘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감독이 언급한 배동현 선수단장은 지난 2015년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장애인 노르딕스키(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 스키) 실업팀을 창단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나타났 듯 국내에선 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인 탓에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었지만 배 단장은 선수들을 꾸준히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한국 첫 패럴림픽 금메달도 그 덕이다. 당초 휠체어농구·핸드사이클 등을 했던 신의현 선수는 실업팀이 창설되면서 종목을 전향했다. 그러나 배 단장은 "사실 처음 실업팀을 만들 때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신 선수가 열심히 해준 덕"이라고 공을 선수에게 돌렸다. 또 "(실업팀 창설 땐) 홍보 효과보다 선수들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시작한 지원이 큰 일로 이어져서 저도 꿈만 같다"라며 "선수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면 제2의 신의현도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88 패럴림픽 이후 많은 것이 변했듯 평창 이후에도..." 한편, 선수단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바뀌리라 전망했다. 이 회장은 "88올림픽과 함께 열렸던 패럴림픽 이후 장애인 복지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 당시에는 장애인에게 운전면허도 안 내주던 시절이었다"라며 "30년 만에 국내에서 개최된 패럴림픽을 통해서 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리라 본다.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라고 말했다. 배 단장은 "개인적으로는 많은 국민들이 패럴림픽을 응원하고 관심 가져주신 것이 큰 의미라 생각한다"라며 "저도 예전에는 패럴림픽에 대해 잘 몰랐다. 자국에서 열린 패럴림픽을 통해 장애인 선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큰 의미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 총감독 역시 "저는 1987년 사고로 장애를 입고, 1988년 서울에서 열린 패럴림픽을 보면서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라면서 공감했다. "평창 패럴림픽 이후에 많은 것이 변화할 것 같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앰블럼인) '아지토스'는 '동등하게·함께·나란히'라는 뜻이다. 앞으로 교육·체육활동·여행 등 여러 분야에 변화가 오리라 생각한다. 특히 국민 인식에 가장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장애인들도) 함께 같이 할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다고. 88 패럴림픽 때부터 30년 동안 보면서 변화했기에 평창 패럴림픽 후에도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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