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순례 감독이 동명 일본 영화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로 관객과 만난다. ⓒ 이정민


차기작을 내놓기까지 만 4년이 걸렸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박사 사건을 소재로 강한 사회고발성 영화 <제보자>를 선보였던 임순례 감독이 잔잔한 자연친화적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들고 왔다.

사실 이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전작과 정서적·외형적으로 많이 닮아 있다.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감독 특유의 깊은 관심은 이미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그의 장편 데뷔작 <세 친구> 등에 잘 담겨있다. 핸드볼 국가대표 이야기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마이너 스포츠를 다룬 영화의 좋은 교본처럼 충무로에서 평가받는다. 게다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과 <고양이 키스>에선 직접 동물과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리틀 포레스트>엔 오구라 불리는 진돗개가 등장한다.

고민 많았던 작업

마침 임순례 감독은 중국 쪽 제안으로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여러 제반 문제로 지지부진 해졌을 때 지금의 제작자가 일본 영화 원작을 보고선 한국판을 만들면 어떨지 제안했고, 임순례 감독 역시 원작 만화와 영화를 차례로 보기도 했다.

"2015년 초 정도 됐을 거다. 1편과 2편이 일본에서 시차를 두고 개봉한 걸로 알고 있는데 1편을 본 제작사 대표가 제안을 한 거지. 원작을 보고 나서 '와, 진짜 괜찮은 프로젝트다'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면서 소재 자체가 파급력이 있지도 않고, 게다가 원작 자체가 되게 일본적이었다. 이걸 한국적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제작자도 그 영화로 위안을 받았고, 한국 관객에게도 그 위안을 주고 싶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엄청 규모가 큰 영화는 아니더라도 작은 규모라도 특정 분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한 장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수박


도시의 삶에서 치이고 지친 청춘이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도 만나고 요리를 해먹는다는 기본 설정만 놓고 나머지는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게 관건이었다. 극중 혜원(김태리)이 해먹는 요리는 밤 조림을 제외하곤 모두 한국 음식으로 바꿨고, 혜원을 찾아오는 친구 은숙(진기주), 재하(류준열)와의 관계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혜원을 길러놓고 떠난 엄마(문소리)와의 감성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는 것도 중요했다.

"<리플 포레스트>의 핵심은 엄마가 혜원을 떠난 뒤 혜원이 시골로 돌아와 엄마의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공간으로 다시 들어와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굉장히 성숙하게 되는 과정이지. 일본 원작에선 상처를 깊게 받아서 그걸 회복하는 과정이 뚜렷하게 나오진 않는다. 전 그걸 중요하게 봤다. 일본 친구들 몇 명과 얘기해보니 상대적으로 우리보단 일본에 그런 엄마들이 많다더라. 자녀를 키워놓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엄마들 말이다. 

근데 한국은 이혼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그런 선택이 쉽진 않잖나. 그런 개연성을 관객에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기본적으로 일본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정적이다. 한국은 그와 달리 보다 역동적이고. 원작 영화가 호흡이 길고 마니아층을 공략했다면 우리는 소수 보단 조금 더 범위를 넓히려 했다. 그래서 애초에 2편으로 나눠할 생각은 없었다. 러닝타임도 100분 안팎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지루함을 달랠 유머들도 더 넣었고, 우리 시골의 아름다움을 넣으려 했다. 또 태리씨가 90분 이상 나오는 만큼 다른 영화 보단 비주얼이나 사운드에 신경을 썼다."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기억의 소환, 그리고 치유 

영화 초반 혜원은 왜 고향에 내려왔냐는 은숙의 물음에 "배가 고파서"라고 답한다. 뒤이어 여러 요리를 하는 과정이 혜원에게 마냥 유쾌한 건 아니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엄마의 기억을 마주해야 했고, 그만큼 상처 또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걸 관객이 공감하게 하는 게 임순례 감독의 주요 과제였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가 많지는 않지만 대신 꾹꾹 눌러쓴 흔적이 느껴졌다. 내레이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혜원이가 시골에 왜 왔는지를 영화에서 설명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장면도 찍긴 했는데 중요하진 않겠더라. 그가 편의점에서 먹는 음식이 대부분 유통기한이 다 된 것들인데 그건 음식이라기 보단 생명 연장을 위해 넘기는 것들이다. 냉장고를 봐도 음식들이 다 썩어 있고. 그만큼 엄마 밥에 대한 그리움이 솟았을 것이고, 내려와서 몇 끼라도 해먹으려 하다가 눌러 앉게 된 거지(웃음).

영화 속 내레이션이 되게 중요했다. 혜원의 마음을 설명하기도 하고, 여러 기능을 한다. 전부 대본에 있었지만 후반 작업 때 영화의 결에 따라 바뀐 것들도 있다. 사실 내레이션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 그 양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태리씨의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어서 큰 부담이 없겠더라. 다소 설명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이 영화 속 모호함을 내레이션이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임순례 감독에게 특별히 공들인 대사를 물었다. "엄마의 편지에 공을 들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딸을 두고 떠난 엄마였기에 그만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했을 터. 감독의 배려와 따뜻함이 그 편지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작의 제목을 계약 상 바꿀 수 없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영어인데 어떻게 관객 분들이 받아들일까. 이걸 영화로 어떻게 끌고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원을 그리다 보면 나선형이 돼서 커진다'는 대사가 일본 원작이었다면, 이걸 '엄마만의 숲이 있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고 표현했다. 혜원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굳이 주제라는 걸 꼽자면 이 대사가 우리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다. 또 엄마의 편지에서 '내가 널 낳고 도시로 돌아가지 않은 건, 널 이곳에 심고 뿌리 내리게 해서...'라는 부분이 있다. 언제든지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지점이다."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임순례 감독은 실제로 13년 째 귀농해서 살고 있다. 2009년부터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그가 귀농하게 된 계기도 강아지 때문이었다. <리틀 포레스트> 속 시골 정서, 그리고 그의 영화에 꾸준히 등장했던 여러 동물은 임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것이지 않을까.

"강아지에게 더 맞는 환경을 주고 싶기도 해서 교외로 나간 건데 살다 보니 제게도 잘 맞더라. 그때만 해도 되게 한가할 때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서울에 가고 나머진 이곳에서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터가 좋아서인지 그 이후로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더라. 그만큼 운전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매우 좋다. 자연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그런데 누구나 자연에 대한 판타지는 있는 것 같다. 주변에, 특히 중년 남성들이 귀농하겠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근데 그걸 실행하는 사람은 되게 드물지. 현실에 다들 발을 두고 있기에. 이 영화를 보고 귀농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간다고 해도 어차피 귀농을 하려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웃음).

꼭 제 (전작 속의) 정서를 (이 영화에) 의도해서 표현한 건 아니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했다는 자체가 어쩌면 마이너에 관심이 있는 제 기호의 반영일 순 있다.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인물들에 끌린 것 같다. 그런 점에서 20대 분들은 우리 영화에 공감할 수도 있지만 '쟤네 지금 저러고 있을 때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돌아갈 집도 있고 좋겠네' 하실 수도 있지. 그건 사실 곁가지고, 제가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건 '지금까지 달려온 삶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일까'라는 질문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장면. ⓒ 영화사 수박


희귀한 여성 영화인? "결국 구조문제"

"획일화된 삶의 모습에 대한 질문." 이것이 <리틀 포레스트>가 지금의 한국에서 개봉하는 이유였다. 임순례 감독은 "누구나 똑같이 열심히 공부해 대학 가고, 취업해서 아파트 사고, 차를 사는 게 도시인의 패턴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욕망 패턴"이라면서 "하지만 이것이 행복을 주는 라이프스타일인지, 내가 원하는 게 아닌 부모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질문에 대해 임순례 감독 본인의 답은 매우 분명하다. 고등학교를 그만 둔 뒤 영화를 택한 그는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영화감독에 속한다. "좋아하는 걸 해 보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온 흔적이 그의 작품에도 짙게 묻어있었다.

"지금이야 학교를 관둬도 대안학교 등 여러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40년 전, 학교를 관둔다는 건 과격한 반란이었다. 제가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시작한 게 아마 고등학교를 그만 둔 때가 아닐까 싶다. 1984년이었다. 한국영화산업이 화려했던 시절도 아니었고, 여성 감독도 없었고, 안정된 삶이 보장된 길도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실패해도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다. 지금 이렇게 시골에서 사는 것도 남들과는 다르지만 제게 맞는 삶을 찾아간 결과일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를 막 찾아봤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보다가 학생 주임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그땐 관객으로서 영화를 좋아했던 수동적 자세였다면 대학 때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기존에 본 상업영화들과 다르더라. 상업영화가 여러 감각적 즐거움을 준다면, 프랑스 영화는 보고난 뒤 오는 게 크더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거나, 제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제기를 한다거나. 어떤 문학 작품을 보고 삶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작가주의 영화가 그 기능을 수행하더라. 이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게 시작이었다."

감독이 사라진 시대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가 영화계에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2017년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 여성제작자 비율은 22%, 심지어 여성 촬영감독 비율은 3% 대에 머물고 있다. 남녀 성비에 비할 때 턱없이 적은 수치다.

"홍보 마케팅 쪽에 여성 인력이 집중돼있고, 연출이나 기술 직군에선 여전히 적다. 여성 감독들도 상당히 많이 데뷔했지만 1년에 몇 편 정도만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배급 구조 문제 아닐까. 멀티플렉스가 독과점 하면서 첫 주에 물량을 때려 넣는 시스템이 보편화 됐다. 블록버스터 같은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가 주목받고, 상대적으로 저예산은 소외되는 것이다. 

영화의 성패가 2주안에 결정되잖나. 여성 감독은 사실 블록버스터보단 적은 예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좀 더 강점이 있는데 투자배급 시스템에서 제외되니까 결국 신인 여성 감독이 등장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로 가는 것 같다. 투자배급과 관객, 제작과 기획 이렇게 맞물려 있다. 각 분야가 원활하게 맞물리며 돌아가야 활력이 생기는데 어떤 면에서 획일화 돼 있다. 비슷한 남성 배우들이 톤만 바꿔가며 여러 작품에 등장하고 이들을 잡기 위해 투자자들이 줄 서 있고. 관객 입장에선 피로감이 상당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리틀 포레스트>가 잘됐으면 하는 게 우리 영화라서가 아니라 이런 색다른 영화를 하는 피디나 제작자들에게도 기획만 잘하면 관객들과 만날 지점이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어서다. 실패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일정한 규칙으로 영화를 만들면 손익분기점은 넘기겠지만 그만큼 감독의 개성이 들어간 작품은 나오기 어렵다."

임순례 감독의 이 잔잔한 제언은 곧 지금 우리가 시급히 풀어야 할 우선 과제 중 하나다. '미투 운동'이 곧 권력의 독점과 왜곡된 성의식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나선 연대라면, 영화계야말로 그런 권력과 자본의 독식이 심화된 곳이 아닐까. 그만큼 임 감독의 말이 따끔하다.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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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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