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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는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혜원 역으로 분했다.ⓒ 이정민


누가 아파서 청춘이라 했을까. 청춘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시련 앞엔 모두 아픈 법이다. 다만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과 경험치가 다를 뿐.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취업과 연애, 가족 관계에 있어서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던 세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배우 김태리가 그 중 이야기의 중심 혜원 역을 맡았다.

줄거리만 보면 눈물 콧물 다 쏟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각종 재료를 거둬들여 요리하고, 술을 만들어 먹고, 서로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 모든 요리는 혜원이 직접 한다. 요리하는 행위와 먹는 행위에 일종의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배우 김태리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아픔에서 피어난 음식들

동명의 일본 원작 영화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보다 한국적 정서에 초점을 맞췄다. 겨울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이 영화엔 농촌의 사계절이 담겨있다. 도시 속 자취 생활에 지친 혜원과 그런 그를 떠나버린 엄마(문소리)와의 관계도 이 영화를 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혜원의 모습에서 오늘날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 혜원(김태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좋았다. 여백이 많고 조용한 이야기더라. 흘러간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공감이 됐다. 또 각 계절마다 촬영하고 끝내고를 반복했는데 그렇게 스태프들을 만나고 헤어지니 더 가족 같으면서 새롭더라. 개인적으로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온 혜원을 은근히 질타하는 고모를 보고 속으로 '(이모가 아닌) 고모는 고모다'라고 하는 대사가 기억에 난다. 현장에서 다들 명대사라고 했다(웃음). 

또 아주심기를 얘기하면서 양파씨를 혜원이 뿌리고 친구들이 그 다음 계절을 돌봐줄 때 흐르던 내레이션이 생각난다. 이 영화를 딱 말해주는 대사라고 본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혜원이 저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혜원처럼 저도 당면한 문제를 그때그때 풀기보단 조금 치워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 한달까. 저보고 긍정적이라는 분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전 긍정적이지 않아서 (여러 문제에 봉착하면) 가벼운 문제부터 털어버리려 하거나 잠을 자곤 한다."

마치 패배한 듯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에게 친구 은숙(진기주)은 왜 왔는지를 묻는다. 아픈 곳만 콕 짚어서 묻곤 하는 이 얄미운 친구에게 혜원은 '배가 고파서'라고 답한다. 단순히 위장만 비어서 온 게 아님은 영화를 보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물었다.

"은숙이 입장에선 참 바보 같은 소리일 수 있는데 혜원 입장에선 굉장한 진담일 수 있다. 고향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이 음식을 요리해 먹은 거니까. 가장 중요한 치유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 엄마에 대한 배고픔일 수도 있다. 그 요리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엄마와 혜원의 관계가 묻히지 않고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 농사가 쉬워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 만만하지 않다. 제가 작물을 심는 장면을 많이 찍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탈락된 것들이 꽤 있다. 일종의 자급자족 생활인데 뜻깊었다. 그게 바로 혜원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이지 않을까. 토마토를 심은 뒤 폭풍을 맞으면서 '비에 취약한 토마토 농사는 복불복인데 올해는 불복'이라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친구 재하(류준열)의 사과 농사가 망한 것처럼 망한 건데 그걸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실패를 인정한 거잖나. 도시에선 느껴볼 수 없는 실패인데 엄밀히 말해 실패가 아닌 실패더라. 그렇게 하나씩 삶을 깨달아 가는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이정민


정답 없는 삶

여백이 많은 영화였고, 서울 출신인 만큼 농촌 생활 연기도 어려웠을 법했다. 김태리는 "(뭐가 됐든) 연기는 그냥 어렵다"며 "이 당연한 사실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제일 중요했던 게 혜원이 이곳(시골)에서 자랐다는 건데 말씀하신대로 전 서울 토박이다. 고민하다가 답을 친구들(영화 속 은숙과 재하)에게서 찾았다. 고민과 불안함을 안고 고향에 왔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마음이 다 풀리잖나. 그래서 평소 연기하는 것보단 훨씬 자유롭게 가려 했다. 

임순례 감독님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혜원에 대한 힌트를 내 자신에게서 거의 찾았던 것 같다. 대사 역시 그날그날 바꿔가면서 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은 대부분 그날 현장에서 만든 대사들이 중심이다. 감독님과는 밭에서 무 깎아먹으며 했던 얘기들이 생각난다. 굉장히 부드러워 보이지만 인물을 꿰뚫어 보시는 게 있다. 강단 있으면서도 날카로우셨다. 또 자연친화적이시다. 촬영 후 감독님의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제게 옮겨왔다."

<리틀 포레스트>를 찍으며 김태리 역시 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 덕분에 집밥에 대한 남다른 감성을 연기에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할머니 댁에 가면 밥이 그렇게 맛있다"며 "밖에서 음식이 아무리 맛있고 좋아보여도 집밥이 주는 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김태리가 동의했다.

그날그날 실제로 음식을 만들며 촬영한 김태리는 "어떤 절대적인 삶이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삶,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촬영하면서 느꼈다"며 "다양한 삶의 모습에 공감하면서 제 삶도 좀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치 연기처럼 삶에도 정답이 없음을 몸소 체감하는 셈이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다양한 여성 캐릭터

알려진 대로 상업영화의 시작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였다. 두 여성이 전면에 나선 영화로 데뷔했고, 그 영화가 담은 메시지를 보더라도 이후 김태리의 행보는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대 여성 배우로서 김태리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어쩌면 현재 한국 영화계가 여성 캐릭터를 소환하는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뷔 전 찍은 독립 단편영화 <문영>이 지난해 장편으로 재편집 돼 개봉했는데 그 영화 역시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학교 2학년 때 단편 모노드라마로 연극 무대에 올랐는데 그때 기분을 잊을 수 없다(김태리는 신문방송학과 전공으로 본래 아나운서 시험을 보려 했었다-기자 주). 암전되기 직전 박수 소리가 들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그 분위기가 짜릿하더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간다는 자체가 재밌었다. 그땐 제가 좀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선뜻 선택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진짜 어렵더라(웃음).

<문영>도 그렇고 여성 팬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아가씨> 속 캐릭터가 매력적이라서 그런가. 가끔 편지를 적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설계한 인물과 그 분이 생각한 인물이 비슷할 때 너무 힘이 되더라. 아직까지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남성에 비해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다. 류준열 오빠만 해도 <침묵>에 나오는 캐릭터라든지 비중이 작아도 특이한 성격의 남성 캐릭터를 꽤 했더라. 그 비중이 작더라도 그 인물의 세계가 드러나는 여성 캐릭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화 자체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태리의 취향
평소 스트레스를 영화를 보며 푸는 걸로 알려질 정도로 김태리는 영화광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취향을 인터뷰 중에 물었다.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에 빗대 사계절 중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도 덧붙여 물었다.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의 휴먼 스토리에서 치유를 얻는 것 같다"며 김태리가 말을 이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을 굉장히 좋아한다.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도 보시면 기분이 나빠지진 않으실 거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회사를 나온 친구, 영화 쪽을 준비하는 친구, 연극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일상에서 오는 불안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고민하더라. 과연 얼마나 지금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도 <리틀 포레스트> 보면서 참 찔린 게 극 중 은숙처럼 친구에게 쓴 소리를 막하는 편이라 반성 많이 했다. 친구에게 함부로 얘기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은 채 듣는 자세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계절은 사계절 다 좋아한다. 겨울은 눈이 와서 좋고, 봄은 겨울이 끝났으니 좋고, 연두색 이파리가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걸 볼 수 있어서 좋다 여름은 비가 와서 좋다. 비가 오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그리고 가을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좋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한 것 같은 풍족함이 있다고 할까. 이리 말하니 제가 참 감성적인 것 같다(웃음). 성격 자체가 어떤 감정을 오래 끌고 가진 않는다. 기쁨이 짧게 끝나면 슬프지만 고통이 빨리 끝나는 건 축복이니까. 빨리 털어내려는 성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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