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들의 인사에 손 흔드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들의 인사에 손 흔드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유성호


"떡국은 드셨나요?"
"네."

빨간색 체육복을 입은 북측 응원단은 기자의 질문에 작게 답했다. 가타부타 답은 안 했지만 얼굴을 보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취주악대로 보이는 이들은 트럼펫, 색소폰 등 자신의 악기를 들고 복도를 오갔다. 누군가 연습 중인 듯, 열린 문 사이로 연주가 흘러나왔다.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 인제스피디움의 풍경이었다. 설 명절을 맞은 북측 응원단은 평상시와 같은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북측 응원단 중 100여 명은 이날 알파인 스키 종목에 출전하는 북측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먼저 출발했다.

응원단과 통일부 직원들의 수송을 맡고 있는 운전기사는 "그래도 처음에 비해 (응원단들이)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많이 유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공연도 기습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언제나 악기를 가지고 다니니, 운전하는 우리들도 모른다"면서 "(질문을 해도) 아무런 답이 없을 텐데"라고 웃었다.

인제스피디움 측은 이날 평소 응원단에 제공되던 호텔식 뷔페뿐만 아니라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인제군은 지난 15일 숙소 측에 인제군 오대쌀로 빚은 떡국용 떡 60kg과 내린천 두부 100모, 황태 300마리 등을 제공한 바 있다. 숙소 측은 이를 식재료로 사용해 설날 아침상을 차린 셈. 차례를 지내지 않는 북측의 입장을 감안해 따로 차례상을 차리진 않았다.

인제스피디움 관계자는 "북측에선 설 명절에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는다고 해, 만둣국도 함께 내놓았다"라며 "북측에선 송편도 설 명절에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황태구이와 오미자차 등도 아침메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측 응원단은 이날 특별한 행사 없이 하루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인제스피디움 관계자는 "응원단에서 오늘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알려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들의 인사에 손 흔드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들의 인사에 손 흔드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설날에도 공연 연습하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친 뒤 악기를 들고 연습하기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설날에도 공연 연습하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친 뒤 악기를 들고 연습하기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유성호


설날에도 공연 연습하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친 뒤 악기를 들고 연습하기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설날에도 공연 연습하는 북측 응원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인 16일 오전 북측 응원단의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북측 응원단이 아침식사를 마친 뒤 악기를 들고 연습하기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인제스피디움 측은 남측 설 음식인 떡국, 황태구이 등을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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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휠체어 탄 채 윤성빈 경기보러 온 외할머니

외손자 어릴 때 직접 키워... "성격 참 좋은 아이, 손자 키운 보람 있네요"

16일 오전 9시 30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3차 시기에 나선 윤성빈(25)이 힘차게 썰매 위에 올랐다. 그런 윤성빈의 모습을 피니시 라인 관중석의 한 할머니가 전광판을 통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윤성빈의 외할머니 하순엽(84)씨였다. 휠체어를 탄 채 온몸을 꽁꽁 감싼 할머니는 약 50초 만에 피니시 라인에 도착한 손자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던 손자는 이내 자리를 떠났고, 할머니는 난간을 붙잡은 채 손자의 뒷모습을 지켜봤다.외할머니는 "(경기를) 마쳐봐야 알겠지요"라면서도 손자의 금메달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수술을 많이 해 다리를 못 쓰고, 뱃속도 안 편해서 뭘 많이 못 먹는" 상황이지만, 외할머니가 영하 6도의 날씨를 무릅쓰고 경기장을 찾은 이유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윤성빈은 서울로 이사 오기 직전인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경남 남해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외할머니는 윤성빈을 "참 말 잘 듣는 손자"로 기억하고 있었다.최근 손자를 만날 순 없었지만, 외할머니는 "할머니 건강하세요. 경기 잘할게요"라고 말한 수화기 너머 손자의 목소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당당히 전광판 맨 위에 이름을 올린 손자의 이름을 바라보며 "기분 좋네요. 손자 키운 보람이 있네"라며 환히 웃었다.윤성빈은 이날 3차 시기에서 50초18 만에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1·2·3차 합계 1위를 굳건히 지켰다(2분30초53). 최종 순위는 4차 시기까지 합산해 결정된다. 윤성빈은 2위 마르틴 두쿠르스보다 1·2·3차 합계 기록에서 1.02초 앞서고 있다. 4차 시기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금메달 획득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스켈레톤 무서워 울던 아이, 올림픽 금메달 거머쥐다

'금빛 질주' 윤성빈, 세계 최강자로 군림... "한국, 쇼트트랙처럼 계속 메달 나올 것"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첫 빙상 외 종목 금메달이자, 아시아 첫 썰매 종목 금메달. 윤성빈(25)이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6년이 채 안 돼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그저 운동을 좋아하는 일반 학생이던 그는 고3 때 체육 선생님의 소개로 스켈레톤에 올랐고, 이내 무섭게 성장했다. 어머니로서는 말리고 싶은 종목이었지만...윤성빈에겐 '천재'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를 스켈레톤의 세계로 이끈 체육 선생님 김영태 교사는 "제자리 점프로 3m 5cm 농구 골대를 잡고, 제자리멀리뛰기 기록이 3m에 달했다"라고 떠올렸다. 운동 능력만 봤을 때 그는 천재인 게 확실하다.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천재라고 주어지는 게 아니다. 윤성빈에게도 굴곡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한 노력이 있었으며, 그 노력을 뒷받침한 주변 환경이 존재했다. 김 교사는 윤성빈이 처음 1300m 트랙을 완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2012년 11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 경기장에서 윤성빈은 눈물을 흘릴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처음 타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어머니께 전화를 했대요. 울면서 '스켈레톤 못하겠다'고..."(김영태 교사) 스켈레톤 주행 시 선수가 받는 최대 중력은 5G에 달한다. 평소 중력의 5배를 느끼는 것이니 사람 다섯 명이 누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최대 속도는 120km에 육박하니, 첫 주행에서 느끼는 선수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도 "엄마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턱 보호대가 장착된 헬멧 하나에 의지해, 120km의 속도로 잇단 급커브가 존재하는 1300m 빙판길을 내려오는 경기. 어머니로선 말리고 싶은 종목이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스켈레톤이란 땅은 너무도 척박했다. 윤성빈이 고3 시절 국가대표가 됐을 때, 현수막을 단 학교의 교장 선생님마저 "그런데 스켈레톤이 뭐에요?"라고 물었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김 교사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성빈이가 클 수 있다"라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윤성빈도 고민 끝에 스켈레톤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한 윤성빈은 김 교사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선생님, 이제 좀 알 것 같아요."윤성빈을 둘러싼 절호의 삼박자 앞서 윤성빈이 스켈레톤을 시작한 계기도 어쩌면 운명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전까지 스켈레톤을 비롯한 썰매 종목(봅슬레이, 루지)은 기본적 지원조차 미비한 이른바 '비인기 종목'이었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2전 3기 끝에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됐고, '대한민국 썰매 선구자'로 평가되는 강광배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체육대학에 썰매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김 교사는 마침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의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썰매팀 테스트가 있던 당일, 김 교사는 강 교수에게 윤성빈을 추천했고 자고 있던 윤성빈을 깨워 테스트가 진행되는 운동장으로 불러냈다. 장발에 허름한 운동복 차림, 게다가 테스트 시간에 지각한 윤성빈. 그가 스켈레톤에 발을 들인 첫 장면이었다.강 교수의 지원 하에 윤성빈은 2013년 한국체육대학에 입학했고, 썰매팀에 합류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해 16위를 기록한 윤성빈은 2014~15시즌 세계랭킹 6위에 이름을 올려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세계랭킹 2위를 차지한 그는 2017-2018시즌에는 무서운 기세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쟁취했고, 마침내 이날 신이 내린다는 올림픽 금메달마저 거머쥐었다. "윤성빈의 경우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하나, 고등학교 선생님의 추천이 없었으면 그리고 본인의 결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윤성빈은 없었을 것이다. 둘, 윤성빈은 그 의지에 버금가는 운동 신경을 갖추고 있다. 셋,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경기장, 장비, 전지훈련, 외국인 코치 등 운동 환경이 급격히 좋아졌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없었어도 윤성빈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강광배 교수) 대한민국이 얼마나 스켈레톤 불모지였는지 보여주는 일화 하나가 있다. 2016년 2월 윤성빈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곧장 시상식이 열리지 못했다. 대한민국 선수의 우승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회 주최 측이 애국가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30분가량 지나 겨우 시작된 시상식. 인터넷에서 급히 애국가를 다운받은 주최 측은 다시 한 번 '웃픈' 에피소드를 남긴다. 주최 측이 국가를 언제 끊어야 할지 몰라, 애국가가 4절까지 흘러나온 것이다. 윤성빈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선수와 관중들은 오랜 시간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 4절 완창'을 들어야 했다.오늘 윤성빈의 금메달은 대한민국에서 스켈레톤의 위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제는 추억이 된 '애국가 4절', 그날의 이야기를 올림픽 이후에도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올 거예요. 처음 윤성빈을 뽑을 때보다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앞으로 보세요. 제2의 윤성빈이 수없이 나올 거예요. 그러면 우리 스켈레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메달을 딸 겁니다. 쇼트트랙처럼요." (강광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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