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배우 이규형은 최근 종영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마약 중독자인 해롱이 유한양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 엘엔컴퍼니


제혁(박해수 분)은 출소해 다시 마운드에 섰고 지호(정수정 분)와 재회했다. 누명을 썼던 유대위(정해인 분)의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장기수(최무성 분)는 크리스마스 특별사면 대상자가 되어 사랑하는 딸과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됐다. 출소한 법자(김성철 분)도 김제혁의 매니저가 되어 새 삶을 살게 됐고.

모두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은 서부교도소 2상6방 식구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피엔딩을 지켜보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가장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았던 '해롱이' 유한양(이규형 분)의 충격적 결말 때문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배우 이규형은 "뽕쟁이 주제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결말이었다"고 말했다.

"해롱이가 출소하자마자 다시 약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유나 과정은 몰랐죠. 지원이랑 헤어지나보다, 정도 생각했었는데, '그냥 못 참아서'더라고요. 당황스럽기는 했죠.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분들도 몇 달 동안 정 준 캐릭터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충격받으셨을 테지만, 진짜 마약 중독자 가족들의 마음은 더하지 않을까요? 마약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건지, 이보다 명확하게 알려드릴 순 없었을 것 같아요." 

마약 다시 손 댄 해롱이... "충격적이었지만 꼭 필요했다"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뽕쟁이 주제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 엘엔컴퍼니


애정결핍인 해롱이는 엄마의 무관심과 냉정함에 받은 상처를 여러 번 이야기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던 엄마, 아들을 경찰에 신고한 엄마, 그리고 한 번도 교도소에 면회 오지 않은 엄마. 아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나, 매일 밤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킨 엄마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해롱이가 출소하던 날, 엄마는 처음으로 아들을 위해 가게 문을 닫았다. 오랜 시간 쌓인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국 해롱이는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과 연인을 만나지 못한 채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게 됐다. 해롱이가 엄마를 이해할 기회를 잃어버린 게 제일 슬펐다고 하자 "나중에 이해하면 되죠. 전 해롱이가 다시 감옥에 안 갔을 것 같아요"라며 그가 상상한 해롱이의 해피엔딩을 말했다.

"엄마가 해롱이를 빼내기 위해 모든 재력을 동원해 싸우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출소한 지 하루도 안 된 애를 함정 수사해서 다시 감옥에 넣느냐, 하고요. 엄마도 이젠 감방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잖아요. 어떻게든 해롱이를 빼낸 다음에, 제대로 된 치료시설로 보내 사랑도 주면서 치료했을 것 같아요. 지원이는 지원이 대로 곁에 있어 주고, 엄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게 문 닫고 찾아가고요. 뭐 그런 나름의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 믿어요. (웃음)" 

인터뷰 내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가는 이규형의 말투에서 밝고 귀여운 해롱이가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해롱이 보다는 지난여름 <비밀의 숲>에서 보여준 냉혹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윤과장과 더 가까웠을 정도. 이규형은 본 모습과 상반된 이미지의 해롱이를 연기하면서 "내내 재밌었다"고 했다. 특히 해롱이와 카이스트가 청양고추와 물파스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다시 봐도 너무 재밌었다고. "제혁이 빼고 모든 방 식구들이랑 다 싸운 것 같다"면서, "시청자분들도 맞아도 할 말은 하는 해롱이의 매력을 귀여워 해주셨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응팔> 보며 '내게도 기회올까' 했는데..."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박해수, 박호산, 강기둥(송담당 역), 정문성(유대위 형 유정민 역) 등 출연진 대부분이 연극·뮤지컬 공연을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온 동료들.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 엘엔컴퍼니


신원호 PD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첫 방송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좋은 배우들이 우리 드라마를 통해 발돋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그게 제작진이 생각하는 드라마 성패의 마지노선이라면서. 신 PD는 전작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이시언, 이성균, 손호준, 류혜영, 이동휘, 안재홍 등 개성 있는 연기력으로 현재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는 실력파 배우들을 대거 발굴한 바 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 편수가 많아지다 보니, 안정적인 연기 실력을 갖춘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섭외 관계자들이 많이 늘기는 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배우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또 흥행까지 이뤄내는 신 PD 작품 캐스팅 제안은 남다르지 않았을까? 

"영광이었죠. <응답하라 1988>에도 저랑 잘 아는 친구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류혜영은 영화 <나의 독재자> 때 함께 했고, (최)성원이나 김성균 형과도 대학로에서 함께 활동했었거든요. 보면서 '아 내게도 저런 기회가 올까' 했는데, 오더라고요.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저뿐 아니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올 것 같아요. 여기엔 신 감독님의 역할이 커요. 무명 배우들과 함께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셨잖아요. 제작사나 투자사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안정적인 배우를 원할 거 아녜요. 그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지도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잘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신 거죠." 

박해수, 박호산, 강기둥(송담당 역), 정문성(유대위 형 유정민 역) 등 출연진 대부분이 연극·뮤지컬 공연을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온 동료들이었다. 이규형은 "이들 외에도 극 중 특수강간, 유기치사, 소지 모두 친한 동료들이었다"면서, "내게 억지로 약 먹이려던 뽕쟁이도 친한 형이었다"며 웃었다.

"대본을 보니 제가 약쟁이 두 명에게 맞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쉽지 않겠군, 싶었는데 친한 형이 전화해선 '내가 뽕쟁이2야' 하더라고요. '형이었어? 다행이다' 했죠. 제 배를 때리는 역할이었는데 '살살해'라고 이야기도 하고요. 덕분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좋은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다 보니 주고받는 연기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았다. 특히 상대역 송지원 역의 배우 김준한에 대해서는 "눈빛이 너무 좋더라"고 감탄하며,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딱히 연기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감정이 전달되는 배우더라고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서로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표현이나 연기를 억지로 하지 않아도 서로 감정이 잡히고 시너지가 나니까, 보는 분들도 편안하게 보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게이 커플이지만 큰 거부감 없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도 준한이 덕분이에요." 

윤과장과 해롱이? "이건 아무것도 아녜요"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전작 <비밀의 숲>의 윤과장도 그렇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도, 이규형은 늘 작품의 '비밀 병기'였다. ⓒ 엘엔컴퍼니


이미 무대에서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매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지만, TV 시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인. 하지만 전작 <비밀의 숲>의 윤과장도 그렇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도, 이규형이 맡은 역할은 늘 작품의 '비밀 병기'였다.

연달아 극의 가장 큰 반전, 가장 큰 임팩트를 쥔 인물을 연기한 소감을 묻자 이규형은 "열심히 해오다 보니 운이 따랐던 것 같다"며 웃었다. 스스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다른 탐나는 캐릭터는 없었는지 물으니 단박에 "없었다. 단언컨대 해롱이보다 센 캐릭터는 없었다"고 했을 정도다. "해롱이를 내가 맡게 돼 다행"이라면서 말이다. 

"2016년 가을에 신원호 PD님이 제 연극을 보러 오셨어요. 그러다 2017년 1월 <도깨비>에 출연했고, 2월부터는 <비밀의 숲>을 촬영했어요. 그리고 이번 <슬기로운 감빵생활>까지 출연하게 된 거죠. 그 사이에 뮤지컬 <사의 찬미>에도 출연했고요. 정말 알찬 한해였네요.(웃음)" 

무대 위 이규형을 사랑하던 팬들은 TV로 활동 영역을 옮기자마자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그의 활약을 '이제 무대에서는 보기 어려워지겠구나'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지 모르겠다. 이규형에게 '나만 알던 동네 맛집이 체인점 내는 걸 보는 기분'이라는 댓글을 봤다고 알려주자, 내내 조용하던 그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내 고향은 무대"라던 그의 말처럼, 해롱이를 떠나보낸 그를 만날 수 있는 곳도 뮤지컬 <팬레터>다.

"해롱이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뽕쟁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웃음) 해롱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미 끝난 캐릭터는 잘 보내주고 또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죠. 

<팬레터> 속 제 모습은 윤과장이나 해롱이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에요. 저는 늘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저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비슷한 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규형에게 지난 2017년은 분명 특별한 한 해였다. 그저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관심을 받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요. 탄력받았으니 앞으로 잔뜩 보여드릴 거예요. '어? 이규형은 이런 것도 하네?' 하실 수 있도록이요."

 촛불집회 무대에 섰던 이규형, "150만 명 앞에서 노래한 기분은..."

 2016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 공연 모습(오른쪽 맨 끝이 배우 이규형)

2016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 공연 모습(오른쪽 맨 끝이 배우 이규형) ⓒ 오마이TV


"너는 듣고 있는가 /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2016년 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대표곡 중 하나인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에 등장해 많은 관객을 울린 이 곡은 저항하는 민중의 마음을 담은 가사로도 유명하다. 추운 날씨에도 토요일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몰려든 수백만 시민들과 함께하기에, 그보다 어울리는 노래도 없었다.

"너는 듣고 있는가"라는 가사에 맞춰 일제히 손가락으로 청와대를 가리킨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 40인. 그 속에는 배우 이규형도 있었다.

"세월호 추모 공연이랑 촛불집회... 4~5번 정도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호산이 형(문래동 카이스트 역)과 연극 <도둑맞은 책>을 준비할 때였는데 친한 변정주 연출이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안해 함께하게 됐죠.

처음 아이디어는 배우 네다섯 명 정도 모여서 <레 미제라블> 노래 부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건 떼창으로 불러야 멋있어. 못해도 30명은 있어야 해' 했죠. 그때부터 주변에서 하나둘 배우들을 모았고 '시함뮤'가 탄생하게 됐어요."

평소 정치나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신경을 안 쓰니까 나라가 이 꼬라지가 되는구나" 실감했다고.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뉴스도 많이 보고, 정치 관련 TV 프로그램도 가능하면 챙겨보려고 하고요. 정치인들 SNS도 팔로우해서 무슨 말 하는지도 지켜봐요. 이건 수동적인 노력이죠.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적극적인 활동이고요. 사실 세월호나 촛불 집회 참여는 정치적인 활동이라기보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시민으로서의 첫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2016년 촛불 집회는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도, 무대에 올랐던 이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150만 명이 지켜보는 무대에 선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100만 명이면 300석 규모 극장에서 1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연해야 만날 수 있는 관객이에요. 정말 가늠할 수 없는 숫자죠. 무대 내려와서 저희끼리 '와 이제 우리 공연 그만해도 되겠다' 했어요. 평생 연기해도 못 만날 관객을 한 번에 다 만났다고요. '우리 이제 접자' 했죠. 하하하. 그만큼 저희에게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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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따라 작업" 수지·백현 그 곡, 이렇게 만들었다

[inter:view] '하루끝', '사랑 안 해', '폼생폼사'... 히트곡 메이커 박근태 작곡가

수지&백현 'Dream', 아이유 '하루끝', 조PD&인순이 '친구여', 백지영 '사랑 안해', 브라운아이드소울 '정말 사랑했을까', 에코 '행복한 나를',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젝스키스 '폼생폼사', 윤미래 '시간이 흐른 뒤', 성시경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를 선물해온 작곡가 겸 음악PD 박근태. 그는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이 궁금증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음악계의 흐름에 관한 시선까지 아우르며 폭넓고 깊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상수동 박근태 작곡가의 작업실에서 그와 나눈 인터뷰를 전한다.가수로부터 모티브 얻어 - 좋은 노래를 꾸준히 발표해온 비결이 있다면."나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대중이기도 하다. 음악을 분석하려면 할 순 있지만 대중의 한 명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 음악 되게 좋다' 말하게 되는 건 결국 '감정'이 반응해서고, 어떤 음악을 듣고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 비슷하다. 노래를 만들 때 대중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고민하고 그에 맞게 접근해서 음악으로 변환시킨다."- 곡을 만들 때 시작점은 무엇인지."시작점은 가수다. (곡을 받을 가수에게)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모티브가 있어야 한다. 목소리를 자세히 관찰한다."-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사람마다 타고난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는데 그것을 살려주지 않으면 매력의 정상을 볼 수 없다. 마치 사람의 생김새와 비슷한데,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 있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어떤 음악에 이 목소리를 얹었을 때 매력이 최대로 발산될까 고민한다. 그에 따라 접근 방식을 선택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음악이란 형태로 만든다." -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서 곡을 쓴 후 가수에게 준다고 생각했는데 작곡가님의 작업 방식은 완전히 반대인 듯하다."에코의 '행복한 나를', 젝키의 '폼생폼사' 등의 노래를 낸 직후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2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였는데 그때 1년 정도는 거의 곡을 발표하지 않고 지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음악을 하려면 '나의 철학'이 있어야겠다고.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소신 같은 것 말이다. 소신 있게 일을 해야 하고, 내가 정한 원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원칙을 깨지 말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만든 원칙 중 첫 번째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지 말자'다. 그럼 결국 '해야 하는 음악을 하는 것'인데, 그것(해야 하는 음악)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고 노래를 부를 가수의 상태 혹은 상황에 맞게 해야 하는 거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에 맞게, 마치 맞춤재단사처럼 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원칙을 지키고 있다."- 미리 정하는 건 정말 없나. "음악 장르도 그 사람을 만난 후 정한다." - 맞춤으로 곡을 만들면 많은 곡을 내기 어려울 것 같다. "제가 25년차인데 연차에 비해선 발표곡이 적다. 260곡 정도밖에 안 된다. 제 연차로 봤을 땐 800~1000곡 정도가 되어야 보통이다. 발표한 곡 수가 적은 이유는 정말 필요한 곡 위주로 제공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데모를 이월 처리하듯이 하지 않는다. 어떤 가수에 게 맞춰서 만든 곡을 다른 가수에게 주지 않는다."'PRODUCED BY 박근태' 프로젝트 - 수지&백현의 'Dream'은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수지와 백현의 '톤'이 있지 않나. 수지씨가 OST 부른 걸 들어봤는데 그런 맑은 느낌도 좋지만 좀 더 사랑스럽게 가면 좋겠다 싶었다. 지르는 것보다 던지는 게 더 매력 있는 가수다. 그래서 고민하다 보니, 비트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세련된 비트에 예전에 유행했던 재즈의 요소를 요즘식으로 넣었다. 그러다보니 그 음악이 주는 고풍스러운 것들이 생기는데 그것이 이 가수의 목소리와 맞으면서 특별하게 빛나게 해줄 것 같았다. 수지는 굉장히 스타성 있는 친구인데 그걸 뻔한 발라드로 풀면 스타일이 없다고 봤다. 백현은 엑소라는 그룹의 중심이고, 굉장히 노래를 잘 하는 친구다. 수지와 백현이 서로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직접 기획과 섭외를 한 건가."보통은 노래를 만들 때 기획사의 의뢰를 받아서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다. '이 가수에게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직접 구상해서 만들어내는 시리즈 같은 거다.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와 프로젝트 파트너십 관계에 있다. 'Dream'을 잇는 다음 프로젝트곡을 현재 작업 중이다. 제가 음악을 만들고 기획과 섭외도 직접 해서 제작하는데, 'Dream' 역시 그런 방식으로 작업했다."-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밴드 데이브레이크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박근태 작곡가가 만든 예전 곡을 새롭게 리메이크하는 것도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인가."그렇다. 'PRODUCED BY 박근태' 프로젝트의 하나다. 올해 총 7곡 정도 발표할 예정이다."신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프로듀싱- 작곡을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아마추어로는 고등학생 때부터 했고 대학교 2학년 때 업계에 정식으로 들어왔다. 2~3년 고생하다가 룰라의 '백일째 만남'을 작곡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룰라도 그렇고, 가수가 자신에게 맞는 곡을 불러야 성공하는 것 같다."룰라, 젝스키스, 브라운아이드소울, 쥬얼리, 샵 등 신인가수를 많이 데뷔시켰다. 불안정해도 라이징할 가능성이 보이면 걸어보는 거다. 아이비가 당시 '제2의 이효리'로 데뷔하려 할 때 아예 다른 전략으로 가자는 제안을 하면서 '유혹의 소나타'를 만들었다. 클래식 베이스에 의상도 노출 없이 완전히 몸을 다 가리자고 제안했다. 가려도 섹시한 매력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곡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 전체적인 느낌까지 잡는 건가."그렇다. 백지영의 '사랑 안해'의 경우도 그 가수의 상황, 상태 등을 반영하여 만든 곡이다. 백지영씨가 댄스 음악으로 데뷔했고 그 후에 대중의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시기가 있었다. 백지영이란 가수의 다른 면을 대중이 본다면, 노래로써 '진심' 같은 걸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댄스에서 발라드로 장르를 바꾸길 제안하고 '진심이 담긴 발라드를 만들어서 주자'는 게 제 해법이었다. 당시 그의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거다." - 정말 '맞춤제작'인 것 같다."어떤 가수가 '잘 나간다'고 하면 그건 '새로운 것을 하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가수가 했던 것에 제가 맞춰져야 하니까 그건 내가 재미가 없다. 잘나가는 아이돌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못 나간다고 해서 곡 의뢰를 거절하지도 않는다. 못 나가면 못 나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로듀서로서 그 가수의 매력을 살려내서 시장에 진입시키는 것도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이다. 돈이 된다고 다 하는 게 아니라 아까 말한 '내가 정한 룰'에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작사에도 관여를 하는 건지."노래를 만들 때 애초에 중심 같은 게 있다. 곡을 만들기 전부터 생겨서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정해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을 곡이 마무리될 때까지 잃지 않고 갖고 가는 거다. 그 중심은 가수의 여러 가지 것들이 되는데 그렇게 나오는 음악이 일관된 감정을 지닌다. 그 일관된 감정을 글로 받는 게 작사다. 그 감정선에 정말로 일치하기까지 작사가와 계속 주고 받으며 수정 작업을 한다. 마지막 믹스 작업까지 그 감정을 손실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원하는 감정선을 작사가에게 말하는 편이다." 음악을 안 듣는 이유 - 음악을 배웠나. "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쳤고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작곡가로 꿈이 바뀌었다. 기타로 수많은 곡들을 카피해서 따라 쳤는데 내가 음악의 '음'자도 모르고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콘텐츠의 비밀을 제가 알아내는 식으로 독학했고 그땐 음악을 엄청 많이 들었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작업실에 오는 편인지."저는 오후 1~2시에 나와서 작업을 하는데 금방금방 하는 편이다. 저녁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계속하고." - 하나의 곡을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한다. 곡마다 개념적으로 다 다른 작업이라서 머릿속에 각각의 방들이 있고 그걸 관리한다. 어떤 곡은 어떤 식의 접근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어떤 곡은 이렇게 마무리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각각의 방들을 손실 없게 굴리려 한다." - 음악을 많이 듣는지."인터뷰 처음에 저 자신이 '대중적'이라고 말했는데 그럴 수 있는 게 음악을 안 듣기 때문이다. 제가 알 정도의 음악이면 진짜 히트곡이다. 음악을 들으면 내 음악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해서 그런 건데, 대중가요뿐 아니라 음악 자체를 거의 안 들은 지는 오래됐다." - 음악을 안 듣고 음악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그게 가능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저만의 방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 집중해서 만드는 건데,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혼선이 올 수 있어서 경계한다. 음악보단, 맥락을 같이 하는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 (소스를) 찾는 편이다."가장 아끼는 곡- 가장 아끼는 곡이 궁금하다.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진하게 투영된 곡을 꼽자면. "나만의 철학을 정한 후 그 원칙에 따라 처음으로 만든 곡이 '시간이 흐른 뒤'인데 이 곡을 꼽고 싶다. 제가 정한 원칙이 제일 잘 반영된 곡 같다. 많은 가수들이 그 곡을 불렀지만 아무도 윤미래 같은 느낌을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곡은 윤미래에 정확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윤미래란 사람의 가장 좋은 소리가 나는 음역대에 맞춰서 만들었고, 윤미래라는 사람의 목소리에만 집중해서 나온 곡이다. '시간이 흐른 뒤'는 윤미래의 색깔이 들어간 윤미래의 노래다." - 그밖에 아끼는 곡이 있다면."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에일리의 '저녁하늘'도 굉장히 아낀다. - 25년 차를 지나고 있는데, 예전과 달라진 가요계의 흐름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예전처럼 울부짖으며 노래하는 게 촌스러워보이는 건 옛것과 지금 것의 차이인 것 같다. 유행은 돌고 도는데 지금은 아주 긴 유행의 가운데에 있다. 지금은 자기의 세계관을 가사로 표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동질감을 갖게 하는데, 지금의 대중은 이런 콘텐츠에 익숙해졌다. 세련되게 느껴지는 것과 아닌 것은 한 끝 차이다. 확실한 건 '자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예전의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들이 하는 것보다 엣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가요계에서 지분이 높아졌다고 본다." - 그밖에 눈여겨 보는 업계의 흐름이 있다면."예전에는 방송을 통해 음악을 접했지만 요즘은 플랫폼들이 많이 생겼다. 일상에서 얻는 정보들이 많은데 특히 SNS의 마케팅 기법들을 주목할 만하다. 개인 방송의 시대다. 휴대폰, SNS 중심으로 모든 게 재편될 거라고 생각한다.어떤 웹드라마의 누적 조회 수가 5억 건이 넘고 30만 건의 댓글이 달리는 건 놀라운 일이다. 타깃은 15~22세인데, 사랑의 감정 등 그 나이 친구들이 공감했기 때문에 그런 믿을 수 없는 조회 수가 나오는 거다. 타깃팅이 돼서 코어 팬덤을 만들어 냈구나 싶더라. 놀라웠다. 웹드라마는 SNS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본다." - 곡을 만들 때도 타깃팅을 하는지."그렇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진 않았는데 듣는 이들이 듣고 좋아할 노래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타깃팅에 신경쓴다."- 대중의 반응을 떠나서, 단지 내가 만들고 싶은 곡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싶을 때는 없나. "많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해야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저 같은 대중음악을 다루는 창작자는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되,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의 세 가지를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해서 무게중심을 어디 둘 건지 고민해야 한다."13년 후, 영화음악의 꿈 - 작곡가로서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음악은 집중도가 높아야 하는 작업이고 집중도는 밀도와 관련 있다. 밀도라는 말은 정해진 것 안에 꽉 차 있는 거다. 제가 멜로디를 밀도 있게 만드는 편인데 그건 좋은 재능 같다. 결국 모든 게 밀도가 떨어지면 아쉬운 형태이지 않을까."- 어떤 태도로 이 일에 임하는지."음악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음악 하나가 주는 위대한 힘 같은 게 있다. '위로'보다 훨씬 넓은 개념으로써 말이다. 내가 만드는 음악이 그런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음악을 만드는 건 돈이 투자되는 투자사업 같은 건데 그 안에서 제 역할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으로 가득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정확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대중음악계에서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대중음악 이외의 것도 계획하시는지."정해놓은 계획이 있다. 13년~14년 후부터는 대중음악을 안 할 예정이다. 60세 이후에는 영화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그걸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하고 있다." - 그때까진 계속 대중음악을 만드실 텐데, 시도하고 싶은 새로운 장르라든지 새로운 계획이 있는지. "음악적으로 저도 알 수가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저의 계획보다) 가수가 중요하다."

6명 사망한 용산참사, 겪은 사람들의 증언 엇갈리는 이유

[inter:view] 영화 <공동정범> 이혁상 감독 "용산 참사, 진상 규명보다 관계 회복 우선"

지난 18일, 막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이혁상 감독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빨간 두 볼을 한 이혁상 감독이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제작한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의 VIP 시사를 무사히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혁상 감독은 전날 있었던 VIP 시사회를 떠올리며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한 사람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여전히 용산 참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VIP 시사회 자리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과 이성호 인권위원장도 있었다. 이들은 "국가 폭력에 짓밟힌 인권에 관한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혁상 감독은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공동정범> 단체 관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에 개봉한 몇몇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예상외의 흥행을 기록했지만 당장 개봉관부터 극영화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다. <공동정범>은 특히나 벌써 9년 전의 이야기가 된 용산 참사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가한 국가 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남일당 건물 위 빨간 불길도 어느덧 용산 지대 재개발에 밀려 잊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지난 25일 <공동정범>이 개봉했다. 박근혜 정권이 준 무력감, 영화 만든 계기 돼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탄압에서 오는 '무력감'은 영화 <공동정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이혁상 감독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던 2012년 대선을 반추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일 당시 내 전작이었던 <종로의 기적> 상영회가 있었다. 마침 '관객과의 대화'가 개표 방송이 시작할 6시 즈음이라 영화관에 개표 방송을 틀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권 교체에 대한 바람도 컸고 관객들 위해 맥주도 사다 놓고 그랬다. 정권 교체하면 축배를 들자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다 준비해놓고 영화관에서 딱 개표 방송을 틀었는데 '박근혜 당선 유력' 출구조사가 나온 거다. 그 순간 모든 행사가 중단돼버렸다.(웃음) 당시 <공동정범>을 함께 만든 김일란 감독과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그런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럽고 그것과는 별개로 화가 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문재인 후보의 비판적 지지자였음에도 대중문화 예술인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물론 그게 훗날 블랙리스트가 되지만. (웃음) 분명 정권 교체가 되면 용산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기미가 보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사라지고 더 악랄하고 암울한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그날 모두 힘들었던 것 같다. 내 영화 <종로의 기적> 감상은 뒷전이었고 나조차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공동정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권 당시 <두 개의 문>(2012)을 통해 용산 참사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이 있었다. 정말 그거 하나 생각하면서 제작했다." 그런 문화예술계의 정서가 반영된 탓일까. <공동정범>의 최초 완성작은 박근혜 정권 당시 DMZ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25일 공개된 전국 극장용 개봉 버전보다 "조금 더 암울했다"고 이혁상 감독은 전했다. "2016년 처음 발표했던 <공동정범>에는 지금보다 음울한 정서를 담았다. 그러다가 2016년 겨울부터 촛불 정국으로 넘어가면서 대통령이 탄핵되고 2012년에 떨어졌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제는 <공동정범> 개봉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폐로 쌓인 시간을 보내면서 <공동정범>의 이야기가 무언가 비정상이었던 걸 제자리로 돌리는 성찰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미처 우리가 몰랐던 용산 참사 생존자들의 감정이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고민의 시간을 영화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본격적으로 개봉을 준비했다. 극장 개봉용 버전에는 용산 참사의 책임자인 김석기 국회의원 선거 저지 투쟁 장면도 더 들어갔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이명박 정권의 모습도 들어가 있다. 보다 시대적인 분위기를 담으려 노력했다. 이미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다시 손을 댄다는 건 사실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웃음)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 시대의 정신이자 시대의 변화에 교감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의 숙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재편집했다. '지금은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용산 참사 진상규명, 과연 할 수 있을까? '형법 제30조 (공동정범)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의 후속작이기도 한 <공동정범>은 자연스럽게 <두 개의 문>이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담게 됐다. 경찰 1명을 포함해 총 6명이 사망한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의 '공동정범'으로서 4~5년의 복역을 마치고 돌아온 참사 생존자들을 <공동정범>은 카메라에 담았다. "<두 개의 문>은 어떻게 보면 가진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중간에 수사기록 3000쪽도 사라지고 당시 사건에 개입한 경찰을 인터뷰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정된 자원으로 꾸역꾸역 만들어 냈고 그랬기에 내부적으로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망루에서 대체 왜 화재가 일어났고 어떻게 5명의 철거민들과 1명의 경찰이 사망했는지 망루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나. 그런데 생존한 철거민들은 모두 감옥에 있었고 이분들이 감옥에서 나오면 그 입을 통해 당시의 기억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많은 활동가들과 용산 참사 진상규명위원회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카메라를 들고 구치소로 갔고 처음으로 생존자 중 한 사람인 이충연씨를 그날 처음 봤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날의 진실을 찾는 진상규명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을 해낸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생존자인 분들의 기억조차 서로 많이 다르고 때로는 맞지 않기도 하고. 워낙 큰 트라우마였기 때문에 그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었다. 저희가 확보한 사실들과 증언들을 맞추는 게 너무 힘들더라. 여전히 퍼즐이 구멍 난 상태라고 해야 하나? 과연 용산 참사 진상 규명이 가능할까 싶은 타이밍에 생존자들의 감정을 듣기 시작했다. 이분들의 기억만으로 망루 안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에는 빈약하고 구멍이 많았지만 진상 규명과는 별개로 생존자들은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다. 지금도 지옥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분들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것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진상 규명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공동정범>은 진상 규명의 전 단계로서 진상규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다큐멘터리인 것 같다. 같이 싸웠던 동지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공동정범>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겠지만 '관계 회복의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공동정범>이 결국에는 요청이자 압박이 됐으면 한다. 이렇게 우리 용산 철거민들과 당시 연대했던 철거민들의 모든 것을 <공동정범>을 통해 내보였으니 다음 차례는 당시 개입했던 경찰이나 검찰이라는 요구를 하는 다큐멘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최대한 퍼즐을 맞춰봤지만 어쩔 수 없는 빈틈이 있었고 그 구멍을 당시 용산 현장에 있었던 경찰 특공대 내부의 진술이나 증언들로 메워야 온전한 진상 규명이 가능할 거라는. 변하지 않는 용산 참사의 진실이 있다. 국가가 그런 식으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국가 폭력을 자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진실. 거기서 파생된 철거민들 사이의 내부적인 갈등 상황은 결국 그 국가 폭력의 결과인데 이를 이렇게까지 만든 '너희들이 답할 차례야'라는 말. 그게 영화 <공동정범>이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다." 용산 참사 생존자들에게 2009년 1월 20일은 기억 속에서 무한하게 반복되는 날이다. 생존자들은 인터뷰 도중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눈물을 흘린다. 이혁상 감독은 그중에서도 최종본에서는 편집된 생존자 김창수씨의 눈물을 떠올렸다. "김창수씨가 인터뷰 중에 '이 노래 듣자'면서 김광석이 부른 '그날들'을 틀다가 갑자기 울었다. 눈물이 조금 진정된 다음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날들'의 가사가 자꾸 (용산 참사의) 그날을 생각나게 만들었던 거다. 2009년 1월 20일을. 이분들의 머릿속에서는 용산 참사의 그날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그날들'을 들어도 길을 가다가도 경찰 사이렌이 들려도 모닥불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는 거다. 단추만 눌리면 망루에서 불이 났던, 인생의 한순간으로 무한하게 회귀한다는 게 과연 어떤 고통일까. 너무 안타까웠다." 다음 영화 "김일성 닮은 청년이 벌이는 소동극" 이혁상 감독은 현재 <공동정범> 제작을 마치고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몇 년 전 갔던 일본 여행에서 조총련계(일본에 거주하는 '친북한계' 재일동포 단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났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그 분들이 내가 '수령님'을 닮은 것 같다며 김일성이 그려진 배지를 주시더라. 당시 내가 검은 코트에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굉장히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는데 문득 그 분들의 삶이 궁금해지더라."우연히 김일성의 막내아들로 오인 받은 한 청년이 일본의 조총련계 마을에 들어가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조선의 태양>(가제)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혁상 감독. "시놉시스가 무척 재밌다"는 기자의 반응에 이 감독은 웃으며 "아휴, (시나리오가) 잘 안 풀린다. 김일성 닮은 배우를 잘 섭외해야 하는데"라며 짐짓 걱정 어린 얼굴을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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