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행> 김대환 감독.

ⓒ 권우성


장편 영화 데뷔작 <철원기행>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아 단숨에 주목 받는 신인 감독이 된 김대환 감독은 올해 12월 두 번째 장편 <초행>으로 관객들을 다시 찾았다. 결은 약간 다르나 이번에도 '가족' 영화다. '가족 영화'라 해서 <초행>을 연말에 가족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보러 가는 영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행> 속의 가족 관계는 용광로처럼 갈등을 잔뜩 안고 있다. 그 갈등은 7년 동안 연애를 해온 남녀 주인공 지영(김새벽 분)과 수현(조현철 분)이 각자의 가족을 만나러 가면서 폭발한다.

지영과 수현의 부모님이 서로 주고 받는 대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일상적이라 놀랍기만 하다. 배우들에게는 '상황'만 주고 그 상황에 따르는 대사는 현장에서 쌓았다.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초행>의 김대환 감독은 "영화 속 대사들의 80%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새벽이 <초행>서 한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라는 대사도 이러한 '즉흥극'의 산물이다.

'현장서 원하는대로 결과물이 안 나오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김대환 감독은 담담하게 "그러면 현장에서 바꾸면 된다"고 답했다. 대략의 대화 내용을 배우들에게 던져주고 좋은 대사가 나오면 건져 올리는 식이었다.

"촛불집회 현장 '그냥' 담고 싶었다"

 영화 <초행> 김대환 감독.

ⓒ 권우성


- <철원기행>에 이어 <초행> 역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호기심을 갖고 생각해 온 관계였다. 장편 영화를 만들며 그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영화적으로도 가족 관계는 흥미롭다. 가족 구성원 안에 세대 차이도 있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통해 영화를 바라봤을 때 한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
"몇 년 동안 영화를 준비하면서 사는 데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연애를 하는 중이었는데 우리 둘이 살 수 있을까? 결혼은 가능할까? 그런 막막한 지점들이 있었다. 불안을 가진 우리 세대 청춘들이 많고 그 청춘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용기를 갖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결혼을 앞둔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에게는 어떤가?
"어제(18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그걸 느꼈는데 한 어머니께서 '쟤네 둘(영화 속 주인공인 지영과 수현)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왜 그런 건(장치) 하나도 안 만들었냐'고 하시더라. 뭐랄까 어른들은 이 두 사람을 좀 더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그보다는 공감을 표했고 본질에서는 두 사람의 연애에 집중해서 봤던 것 같다. 이 두 사람이 그래서 헤어지는지 헤어지지 않는지. 어른들은 두 사람을 하나의 뭉치로 바라봤다면 우리 세대는 별개로 바라본다는?"

- 전작에서도 '철원'이라는 지역이 잘 드러났다면 이번 영화에서도 각각 지영과 수현의 부모가 사는 '인천'과 '삼척'이라는 지역이 강하게 부각된다. 이유가 있나?
"아내의 본가가 인천이기도 했고 삼척에는 외갓집이 있다. 그래서 인천과 삼척을 택한 건 아니지만 문득 떠올랐다. 인천에서 2년 정도 살았을 때 도시 전체가 회색빛 같고 좀 답답했다. 고향인 춘천을 떠나 인천에 2년을 있었는데 친구들도 춘천에 있고 외로움도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공장 같은 것도 많고 이미지도 좀 무서웠다. 삼척은 시골임에도 큰 공장들이 있고 그런 생각들이 영감으로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지역에 느꼈던 감정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초행'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간결하고 영화 전체를 잘 함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거쳐 지어진 건가?
"전통 혼례 과정을 살펴보니 남자가 여자 쪽 집안에 가서 인사를 드린다는 단어로 '초행'이라는 말이 있더라. 이런 게 있구나 싶어 흥미로웠다. 또 시나리오에 계속 나오는 내비게이션을 잘 못 봐 길을 잃는다든지 자기들이 주차해둔 차를 어디에 뒀는지 잊고 있다든지 '초행길'을 갔을 때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불안감이 잘 맞닿아 있었다. 결혼이나 작년 촛불집회나 모두 우리에게 다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고 초행길을 가는 사람들과 닮아있지 않나 싶어 '초행'으로 정했다."

- 사실 '결혼을 앞둔 남녀'라는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와 촛불집회가 약간 동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작년 촛불집회 현장을 영화 속에 담은 이유가 있나?
"일단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찍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혹여나 기회주의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우리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주말마다 집회가 벌어지는 상황을 모른 척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촬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순히 수현과 지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처음 가보는 길이었고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는 지점이 있었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그 인파 속을 걷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두 사람에게 매순간 놀랐다"

 영화 <초행>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 김새벽/조현철과는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됐나.
"새벽씨는 바르샤바 한국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러게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는 연기? 연기자로서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긴 한데 캐릭터에게 집중해 편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현철씨도 전작을 보면 이 사람이 실제 캐릭터야 아니면 조현철이야 싶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떨까 호기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선한 사람들이었다. 그 지점이 되게 중요했다. 그러면 나도 같이 작업하기 편하지 않을까? 시나리오 없이 즉흥 연출을 했을 때 선함이 있는 사람이 상황을 더 리얼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 원래 짜인 대본은 몇 퍼센트 정도였나?
"현장 즉흥성은 80%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흐름 정도만 시나리오에 있었다. 인천에 가서 가족들과 무슨 감정을 느낄 것인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고 어머니와 지영의 관계는 어떤지 정도의 골격은 있었는데 살을 붙이는 건 현장에서 주로 이뤄졌다. 지영의 어머니 대사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었기에 현장에서 조경숙 선배님(지영 어머니 역)이 많이 만들어주셨다. (대사가 액션과 리액션으로 구분돼있다면) 주로 액션 쪽의 대사를 내가 만들었고 리액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김새벽의 대사인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가 나왔다."

- 장편 연출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이다.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든다는 것이 불안하진 않았나.
"영화도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했다. 한 신 한 신 집중해서 치열하게 찍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의 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사실 불안하다.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항상 하루 전에 다음날 찍을 걸 고민하다 보면 찍을 것이 나오는 상황이 반복됐던 것 같다. 어느 시점부터는 불안하지 않았다. 영화는 결과의 예술이라 찍어서 나오면 되지 않나 싶었다."

- 즉흥극이다 보니 영화를 찍는 중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집중력이 좋고 영리한 사람들이라 매 순간 나를 놀라게 했다. 촬영한 첫날부터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첫 촬영이었는데 촬영에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흥미롭더라.

 영화 <초행> 김대환 감독.

ⓒ 권우성


- 이런 실험을 하게 된 배경이 있나.
"첫 영화인 <철원기행>은 스토리보드와 카메라 워킹 등 모든 준비를 하고 찍었고 그 나름의 성취가 있었다.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걸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초행>을 찍기 전 <춘천 춘천>이란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는데 그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초행>과 비슷하게 회의를 해서 다음 날 무슨 장면을 찍을까 논의했는데 그때 쾌락이 컸다. 카메라가 녹화되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마법이 펼쳐지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 한 번도 영화를 찍으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또 결혼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시나리오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그렇게 찍는 게 결혼도 하지 않은 내게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 싶었다."

- 결혼을 안 하셨나.
"50일 전에 했다. 영화를 찍고 나서 본격적으로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어떤 감정의 변화가 생겼다기보다는 이전부터 결혼하고 싶었고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9년 정도 연애를 하니까 인생에서 한 번도 무언가 책임져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 번쯤 인생의 한 과정으로 필요하지 않나 생각도 들었고. 형태가 무엇이 됐든, 도장을 찍든 안 찍든, 결혼식을 하든 안 하든, 그 형태보다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결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선택에 있어서 조금 덜 두려워해도 될 것 같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7) 포스터

ⓒ ㈜인디플러그


김대환 감독은 계속 바빴고 앞으로도 바쁠 예정이다. 김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1월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의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1월 촬영이 추울 것 같아 걱정이란다. 그가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에는 한 중년 커플이 춘천 청평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 작품 정도 더 '가족'을 화두로 찍고 그 이후로는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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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보 및 문의사항은 쪽지로 남겨주세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괴물 신인' 양세종, 골방에 자신을 가두고 얻은 것들

[inter:view] "나는 누구였지?"... '배우'로 자리 잡을 수록 양세종은 혼란스럽다

지난 1월 말, <낭만닥터 김사부>를 마친 신인배우 양세종을 만났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양세종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그 사이 양세종은 지상파 주연까지 꿰찼다. 그저 롤의 크기만 키운 것도 아니다. <듀얼>에서는 극과 극 캐릭터를 오가며 1인 3역을 훌륭히 해냈고, <사랑의 온도>에서는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셰프 온정선 역을 맡아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호평받았다. 11개월 전 "이름 대신 '도인범!'하고 불러주는 게 기분 좋았다"며 "앞으로도 이름 보다 캐릭터로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던 그의 캐릭터 리스트에는 '이성준', '이성훈' 그리고 '온정선'이라는 이름까지 업데이트 됐다.자타공인 2018년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 데뷔 1년 만에 '눈에 띄는 신예'에서, '괴물 신인'으로 수식어를 바꿔 단 양세종. 단기간 높아진 위상에 들뜰 법도 하건만,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치열함과 절실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이라 걱정스럽긴 했지만.치열함 간직한 '괴물 신인' 양세종 "<사랑의 온도>는 <듀얼> 끝나고 얼마 되지 않고 들어가게 돼서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셰프님과 시간 될 때마다 만나서 칼질, 머랭 치기, 생선 손질, 스테이크 굽기 등을 배웠다. 단기간에 배우다 보니 충분치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내가 했고, 어려운 부분은 셰프님이 연기하셨다.""물론이다. 사실 <사랑의 온도>는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아 골방 작업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듀얼>을 할 때는 촬영 끝난 뒤 옷도 일부러 던져보고, 맥주 캔도 일부러 꾸깃꾸깃 접어 던져두기도 했다. 조명도 어둡게 해두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방에서 대본 연습을 하면 내가 이성훈이 된 느낌이 들었거든. <사랑의 온도>를 시작하면서는 가구 배치부터 바꿨다. 방 청소도 말끔히 했고. 온정선의 공간처럼 꾸며두고 방 안에서는 온정선처럼 행동했다. 호흡, 반응 속도, 목소리톤 모두다.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두고 오직 알람 용도로만 썼다.""편한 방법을 잘 모르겠다. 캐릭터와 나를 분리하는 일을 잘 못 하기도 하고. 배부른 소리 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 오해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요즘 별로 행복하지 않다. 작업할 때 모든 연락을 차단하다 보니 이젠 친구고 가족이고 연락이 안 온다. 내가 잘못한 거지. 답장도 잘 안 하고 하니까... 근데 이렇게 안 하면 집중을 못 하니 나로서는 선택지가 없다."양세종이 자신을 '골방'에 가두는 이유 "좋은 평가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때그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을 뿐이다. 나는 주어진 걸 잘 해내고 싶고, 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다.""그래서 골방 작업이 더 필요하다. 방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만으로 그 인물로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 더 빨리 캐릭터와 하나 될 수 있는, 내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외에도 일상에서까지 그 인물이 되어 살다 보면 분명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힘들어도 골방 작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향수? 캐릭터에 어울리는 향을 고민하는 것도 캐릭터를 만드는 시간의 일부다. 향수를 고르고 나면 연습 때나 촬영할 때 그 향수를 뿌린다. 상대 배우에게 피해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촬영 시작 전에 촥촥 뿌리고 나면 '짜라란~'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기분이 든다. 그럼 몰입도 더 쉽더라고. <사임당> 사극 파트를 연기할 때는 조선시대가 배경이라 향수를 안 썼고, <듀얼>은 여러 캐릭터를 오가야 하니 향수를 뿌릴 수 없었다."양세종이 본 온정선, 그리고 이현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연기할 땐 양세종이라는 존재를 아예 지워버린다. 그 캐릭터는 내가 아니니까. 캐릭터에 나의 말투나 제스처가 보이는 것도 경계하기 때문에 골방에 나를 가두는 거다.(웃음)양세종의 시선으로 봤을 때 분명 핀트가 안 맞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온정선이라면 모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끔 양세종의 시선이 개입돼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을 때면 대본을 들이팠다. 이미 촬영한 이전 대본까지 다시 훑으면서 온정선이 이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정당성을 찾는 거지.""아, 그런 생각, 하고 싶지도 않은데... 하하하. 분명한 건 정선이의 사랑과, 양세종의 사랑은 모든 게 다르다는 거다. 정선이는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바로 '사귈래요?' 했지만, 양세종은 처음 확 빠지는 감정을 믿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연락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다. 계속 그 감정이 유지된다면 그때서야 사귀자고 고백하는 스타일이다. 연애 할 때도 온정선은 끝에 가서야 현수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나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에게는 치부, 단점, 가족사 모든 걸 다 이야기한다.""현실에서 이현수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갈 거다. 내가 본 이현수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을 일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극복하려 하는 사람이고. 너무 멋있지 않나. 현실 온정선이나 현실 박정우(김재욱 분)는 분명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다. 하지만 현실 이현수는 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선이가 왜 첫눈에 반했는지 알 것 같다.""이상형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많이 하며 의지하는 스타일이다. 늘 의지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음처럼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너무 멋있다.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나서 아예 대놓고 기대고 싶다.(웃음)""나는 누구였지?" 양세종은 혼란스럽다 "음…. 오히려 반대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은 짧다. 골방에서 계속 온정선만 생각하고 있었더니 질려버렸거든. 더 이상 얘하고 마주 하고 싶지 않은 기분? 하하하. <사랑의 온도> 마지막 촬영 끝내는 날, 모든 걸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그래서 질문처럼 작품 텀을 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 골방 작업은 아무래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하하하. 정말? 인터뷰하면서 자꾸 온정선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가보다. 얼른 떨쳐버리겠다.""정확하다. 지금 <사랑의 온도> 끝나고 딱 4일 쉬었는데, 그 중 하루는 '나는 누구였지?', '나는 어디 갔지?',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모든 게 다 꼬여버린 기분.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고. 이전의 나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회사 사람들은 (반응 좋다고) 좋아만 한다. 잔인한 일이다.""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순간 진짜 나는 사라지고, 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된다. 시청자들 마음속엔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 마치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기억되고. 아, 이건 정말 흥분되는 경험이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내가 놓여있는 그 상황, '액션!'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공기가 너무 짜릿하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힘들지만, 여기서 느끼는 쾌감이 더 크니까."

대학로 '인민군' 전문 배우? 북한말만 잘하는 게 아니다

[inter:view]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 북한군 이창섭 소화하는 홍우진

인민군 하전사, 개성 로씨 로기수의 친형 '로기진'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동생이 '미제 딴스'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걱정도 되어서 거칠게 말려 보지만, 끝내는 그 꿈을 응원하며 각오 높게 춤추라고 당부한다.공동경비구역에서 복무하는 오경필 상등병 역시 비슷한 인물이다. 이 경험 많고 유능한 전사는 잘 표현할 줄 모르지만, 남한 동무들과 함께 몰래 보내던 시간이 참 좋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비극으로 끝나버린 만남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동무들을 위해 애썼다. 본인이 하지 않은 많은 것을 자신이 했다고 굳이 뒤집어썼다. 김수혁 상병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대학로에서 그려지는 인민군의 모습은 대체로 이렇다. 투박한 말투에 자기표현도 서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 매번 소리 지르고, 화내며, 자기 고집 때문에 남의 말도 잘 안 듣는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마다 본인이 총대를 메고 기꺼이 손을 내민다.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이창섭 상위 동지도 마찬가지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수용소로 향하던 포로이송선에서 폭동을 일으킨 그는 다른 인민군 동지들과 함께 남한 군인을 역으로 붙잡는다. 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표착하고, 배를 고칠 때까지 꼼짝없이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배를 고쳐야 하고, 그때까지 무인도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거친 상위 동지이지만, 어느새 남한 동무들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그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배우 윤석원과 함께 이창섭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배우 홍우진은 이번 시즌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첫 합류이다. 하지만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이미 <로기수>의 로기진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을 훌륭하게 소화한 그이기에, 또 한 번의 '인민군' 역할을 맡는 데 관객의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는 그 기대를 배신치 않고 착실하게 무대에 오르는 중이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대학로 인민군 마스터' 홍우진을 만났다.좋은 사람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작품 "연극 <사이레니아> 할 때 김경육 작곡가랑 작업하면서 너무 즐거웠거든요. 정말 좋았고, 작업도 함께 잘했는데, 김경육 작곡가가 박소영 연출의 남편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와이프니까 자연스럽게 박소영 연출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경육이가 '형, 소영이가 형이랑 같이 하고 싶다는데?'라고 해서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같이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거 연습할 때도 팀워크가 진짜 좋았어요. 그런 좋은 기억이 있는 상황에서 소영이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함께 하자고 하니까, '그래, 너가 하자면야 나는 뭐...'하고 들어온 거죠(웃음)."홍우진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합류한 건,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연습을 할 때든, 작품을 할 때든 주변 사람과의 관계와 '팀 케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 창작진에 대한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합류를 결정한 작품이었고, 그렇게 꾸려진 출연진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연습 때부터 행복 에너지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팀워크가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팀워크가 장난이 아니에요, 팀워크가. 모든 작품이 다들 서로 '팀워크 좋다, 팀워크 좋다' 그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그 중 거의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다들 너무 서로 잘 위해주고, 그게 무대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실수를 하더라도 잘 받아주고, 잘 넘어가고. 꼰대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좀 그랬을 텐데, 일단 (김)신의 형, 제일 큰 형이 너무 웃겨요. 아, 진짜 웃긴 사람이에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뭐 하자 맨~', '헤이 맨~', '이겨내야지 맨~' (웃음) 별명이 진두신의에요. 진두지휘한다고. 항상 '야, 오늘은 내가 진두지휘한다. 맨~' (웃음) 제일 큰 형이 이렇게 웃겨주니까 저도 마음대로 편하게 막 웃길 수가 있어요. 동생들도 마음 편하게 쭉쭉 가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연습하는 기간부터 행복했어요. 큰 행운이죠. 연습실 가는 게 되게 즐거웠거든요. '빨리 애들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연습이 일찍 끝나면 오후 7~8시, 늦게 끝나면 10시 그랬는데 집에 그냥 간 날이 거의 없어요. 다 같이 끝나고 나와서도 서로 '가냐?', '가냐?' 이러다가 결국 아무도 안 가요. 그대로 치킨 먹으러 가기도 하고…. 술 먹는 애들은 맥주 사 가지고, 안 먹는 애들은 음료수 사서 30분이라도 수다 떨고 가고 그랬어요.10년 넘게 연기하면서, 아직까지 계속 연락하는 팀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오랜만에 그런 작품을 만났어요. 스태프와 배우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그런 의미의 '인생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배역을 떠나서요. 그런 의미에서 <여보셔> 육연 때도 그냥 이대로 계속 가자는 얘기하고 있어요. (웃음) 그때까지밖에 못할 거 같아요, 만약에 하면! 너무 힘들어가지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딱 한 번만 더."물론, 기본적으로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이런 분위기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2013년 초연을 시작으로 이번 2017~2018 공연이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일 만큼 관객에게 사랑받는 인기 대학로 레퍼토리 극이다. 본공연에 오르기도 힘들고, 한 번 오르더라도 이후로 다시는 보기 어려운 창작극이 많은 게 대학로의 현실이다. 관객 성원에 힘입어 꾸준히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곧, 관객을 매료시킬 만한 포인트가 있는, 관객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한정석 작가가 일단 잘 썼죠. 영화 <웰컴 투 동막골>도 있었고…. 남과 북의 군인이 함께 화합한다는 게 사실 별 거 아닌, 좀 뻔한 소재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좋은 가사들과 좋은 대사들을 쓴 것 같아요. 런(Run) 돌면서 배우들 엄청 많이 울었어요. 카톡방에 동영상도 있어요. (웃음) 다 같이 이별할 때 '이거 왜 이렇게 슬퍼'하면서 울고….노래도 너무 잘 썼죠. 연습 때는 별명이 '소름맨~'들이었어요. 노래만 부르면 다들 '와, 소름, 소오름' 그랬어요. (이)선영이가 진짜 노래를 잘 써가지고…. 들으면 들을수록 부르면 부를수록 어떻게 노래들을 변형했는지, 어떻게 흘러가게 만들었는지, 리프라이즈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게 되면서 소름 돋는 것도 있었죠. 사실 작품들 중에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곡을 쓴 것도 있고, 그냥 뮤지컬에는 리프라이즈 있어야 하니까 리프라이즈 넣기도 하고, 작품 형식에 맞지 않게끔 글을 쓴다든지…. 그런 경우가 많은데, 정석이랑 선영이 둘이 만들어낸 시너지가 엄청나요. 연습 내내 배우들도 이 작품 하면서 되게 행복해했어요."인물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고민 그렇게 들어온 작품이고, 이전까지 해왔던 작업들과 분명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성격이 비슷할지언정, 이창섭은 로기진도, 오경필도 아니다. 엄연히 다른 작품의 다른 인물이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똑같은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일, 홍우진의 선택은 말투를 바꾸는 거였다. 이전까지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 이창섭을 맡았던 배우들은 모두 평안도 사투리를 기본으로 대사를 뱉었다. 홍우진 역시 다른 작품에서 평안도 사투리를 썼기에, 평안도 화법을 구사하는 게 익숙할 터였지만 일부러 다른 지역의 말투를 쓰는 인물을 표현하기로 했다."<로기수>나 <공동경비구역 JSA> 때는 평안도 말을 했죠. 그 전 창섭이들도 다 평안도 말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연출께서도 좀 말을 하셨고, 북한말 가르쳐주는 선생님께 말을 좀 다르게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함경도 말투로 바꾼 거예요. 억양이나 어미가 <로기수>나 <공동경비구역 JSA> 때와는 좀 달라요. 사실 아시는 분들이 들으면 억양도 많이 다르고 해가지고, 좀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웃음)" 약간의 겸양을 표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느껴졌다. 홍우진의 이창섭만이 가진 특장점 중 하나도 특유의 대사 소화력이다. 홍우진은 자연스러운 북한말 구사를 위해서 이전부터 꾸준히 노력해온 사람이었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성취를 이뤘다. 반쯤 우스갯소리로 북한어 선생님이 '넌 배울 거 없으니까 그만 와라'라고 한다고 할 정도라니까. 여기에 덧붙여, 선생님께 배운 건 단순히 말투만이 아니었다."제 북한어 선생님이 북한 군인 출신이세요. 선생님께서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군인이 됐고, 참전하게 됐는지를 얘기해주셨어요. 6.25 때 북한의 1차 침략과 2차 침략이 있었는데, 1차 침략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상위' 계급을 줬대요. 산 사람들은 무조건 계급을 줘서 또 다음 전쟁에 내보내고 그랬대요. <로기수> 때 로기진은 앞서 싸우고, 싸움도 잘하는 캐릭터이지만 창섭이는 아니거든요. 창섭이는 잘 싸워서 진급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계급을 받은 거죠. 이념이니 뭐니, 잘 싸우고 멋있는 상위 동지라기보다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다보니 여기까지 온…."<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총 등장하는 군인은 6명이나 된다. 북한군 4명에 국군 2명 각자가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풀어놓다 보니 개개인을 집중적으로 비춰줄 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 여섯 캐릭터가 모두 매력적이고 독특한 인물임에도, 그들의 전사나 사연이 다 드러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법도 하다. 이창섭도 그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병사를 위해 장단을 맞춰준다.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국군 포로들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한다. 그런 성격이, 자연인 홍우진과도 맞닿는 면이 있었다."제 평소랑 비슷해요. 비슷한 면이 있어요. 아니, 많이 비슷한 거 같아요. 약간 '츤데레' 같은? 애들한테 뭔가 사주는 걸 좋아하면서도 좀 부끄러워하거든요. 잘 베풀기는 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자체가 스스로 어색해서, 사 가지고 와서 딴짓하기도 하고…. (웃음) 창섭이도 본인이 지켜야 하는 것들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힘이 있으면서도 또 정은 있는 인물이잖아요. 아마 저도, 그 상황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곤 생각해요. 그 덕에 더 편하게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았나 싶고요.아, '돌아갈 곳이 있어' 노래 있잖아요. 그 노래를 처음에 (조)동현이가 먼저 솔로를 부르고, 창섭이 따라서 부르는데. 연습 때 음악감독도 얘기하고, 작곡가도 얘기하고, 연출도 얘기하고…. '노래 시작부터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북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해야 하니까 시작부터 미안해하지 마라, 너처럼 하지 마라'고요. 제가 원래 괴롭혀놓고 되게 미안해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 게 좀 반영된 것 같아요. 그냥 제 성격 같아서는, 그렇게 질러 놓고도 창섭이에게 정말 친동생 같은 동현이고, 이미 다 정들어버린 동생들이잖아요. 그런 동생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인 게 미안하죠. 그 어머니랑 얘기할 때 그 말 하잖아요. '나는 내가 싫소'라고. (류)순호가 여신님이랑 여기 남겠다고 할 때, 화를 내다가도 멈추는 이유가 '나는 내가 싫소'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잖아요. 미안함과 자괴감이 들어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관객에 대한 감사함으로 그래도 아쉬움은 있다. 작품은 달라도, 비슷한 성격의 인민군 캐릭터가 반복해서 무대 위로 올라오는 걸 분명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마치 여러 작품에 유사하게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라든가, 기능적으로만 단조롭게 소비되는 인물이 문제적인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서 표현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새터민의 위치가 특수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이번에 연습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왜 북한군은 항상 이렇게 그려지고 이렇게 쓰일까?', '왜 나는 항상 이렇게 소리 지르는 북한군 역할만 할까?' 자꾸 이런 작품만 계속 보이니까, 관객분들 인식도 그렇게 박혀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는 이미 전쟁과 관련된 북한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북한 사람 역할을 이제 그만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자신도 '점점 너무 뻔해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물론, 탈북한 분들 중에서 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분만 계시는 건 아니죠. 하지만 또 꽤 평범한, 잘 사는 분들도 많거든요. 저 탈북자분들을 꽤 만나봤는데, 정말 다양한 분들이 계세요. 북한 사람을 소재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다양한 얘기들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꼭 삶의 애환이나 트라우마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요. 그런 작품을 누군가 하나 써주신다면, 또 괜찮지 않을까요. 저도 해볼 수 있고. (웃음)"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배우 개인의 아쉬움에서만 기인한 게 아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물을 받아들일지까지 고민하는 자세에서 나온 아쉬움이기도 했다. 홍우진은 자신의 연기를 보러 와주는 관객이,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까지 오는 팬들이 항상 신경 쓰인다. 그렇지 않은 배우가 없겠지만, 홍우진 스스로 자신의 연기가 아직 어떤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고 느끼기에 더 그렇다. 그런 연기를 보고 고마워해주는 관객이 항상 감사하다.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길이 연기밖에 없다는 걸 또 잘 알고 있다. 그가 연기를 계속하는 추동력 중 하나는 관객이다. "그런 생각을 해요. '언제쯤 좀 더 만족스럽게 연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 예전에는 '서른 되면 좀 더 잘하겠지' 했었어요. 지금은 '마흔이 넘어서면 조금 더 만족할 수 있을까' 싶어요. 공연 중에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하면서 재미있기는 한데, 뭔가 내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장인들은 그냥 연륜이 쌓임과 동시에 해내는 것들이 있잖아요. 왜 내 연기에는 그런 게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 답답하고…. 동시에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가득 차면 꼰대가 되잖아요. 최소한 연기적인 측면에서 꼰대는 되지 않겠다 싶어서 다행이죠.'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하지만, 지금 제 역량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나보다 싶기도 하고 그런 상태인데, 그런 와중에 팬들의 응원이 힘이 돼요. 이렇게 확고하게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하는구나 싶어요. '또 보러와 줬구나'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도 계속 들고, 위안도 되고요."행복한 작품을 만나, 행복한 동료들과 함께 오늘도 행복하게 연기하고 있는 배우. 그 행복감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되기를, 유니플렉스를 나가는 관객들도 행복하기를 홍우진은 바란다. 오는 2018년 1월 21일 폐막할 예정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그만의 상처를, 그만의 온기를 지닌 이창섭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이제 한 달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홍우진은 자신이 받는 것 이상의 더 많은 걸 관객에게 주고 싶다."어쨌든 이 한 사람, 한 사람, 등장인물 모두가 자기들이 원하는, 바라는 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그 힘을 받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밤에 '인스타 라이브' 할 때 보면 다들 그렇게 힘들어하세요. 우스갯소리로 '이 자식들 힘내'라고 얘기는 하는데, 사실 제가 해줄 말이 그거 말고 딱히 없는 거예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인데 제가 그 상황에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뿐인 거죠. 공연을 보면서 회복이 된다고 하시니, 그게 그저 감사할 뿐이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놓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살아왔고, 이 여섯 명의 인물들도 전쟁이라는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려는 걸 놓지 않으려고 살아가니 그 모습을 보고 관객분들도 희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이런 분들이 공연을 보러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또 이분들은 우리한테 공연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니까…. 저는 그게 또 너무 고맙더라고요. 관객과 배우가 서로 잘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고마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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