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벌써 햇수로 7년 차, 이제 막 20대 중반에 들어선 고원희는 이른 시작만큼 성장통 또한 일찍 겪었다. 유명 항공사의 장수 모델로 대중에게 친숙할 법한 그는 알게 모르게 저예산, 독립영화 작품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아래 <미스터 모>)도 그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최근 출연작들의 상반되는 분위기다. 종영한 드라마 <최강 배달꾼>에선 철없으면서도 해맑은 23살 청춘 지윤을 연기했고, <미스터 모>에선 일찍 철이 든 주체적인 영화인 예원을 맡았다. 보폭을 보다 넓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주체성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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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은 말수가 적고 정적이다. 함께 영화를 공부한 남자친구가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함에도 묵묵히 곁을 지킨다. 그러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계획에 선뜻 힘을 보탠다. 자칫 신파로도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미스터 모>는 담담하게 때로는 가벼운 웃음 요소를 더해 전달한다.

"안톤 체호프 작품 등 제가 입시하면서 배운 극의 느낌이 영화에서 느껴졌다. 감독님께 여쭤보니 그런 식의 블랙코미디라고 하시더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 대본을 두 번 정도 봤을 땐 재밌었는데, 세 번째엔 슬픔이 느껴졌다.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대본으로도 예원 캐릭터가 제 마음에 들어왔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직접 차를 모는 장면도 많더라. 제가 5년 경력이다. 현장에서 한 번도 '레카'를 쓰지 않고 다했었다. (웃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안고 자신의 인생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남자친구는 문득 예원에게 '널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던진다. 무심코 혹은 속으로 쌓아오다 우연히 나온 말로 자칫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예원은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이 한 마디에 예원이라는 캐릭터가 다 드러난다.

"저 역시 실제 그런 상황이었으면 예원처럼 대답했을 거 같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누구도 내 행복을 대신할 수 없을 거 같다. 예원도 그런 마음으로 답했을 것이다. 남자친구는 마음을 공유하는 대상이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잖나. 책임을 전가하면 서로가 불행해진다. (웃음)"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다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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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고원희 역시 중학생 때 중국에서 1년 살고, 현재도 따로 집을 구해 사는 등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중국 관련 공부를 하려다 배우의 꿈이 커져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고, 그만큼 스스로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야 연기자든 가수든 그저 대형 기획사에서 오디션 봐서 되는 줄만 알았다. 또 선택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 '지극히 평범해서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중국 유학 당시 오디션 프로들이 한창 생기는 걸 보면서 나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웃음) 부모님을 오래 설득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제가 공부하길 바랐지. 연기를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걸 하기에도 어렵고 하니까.

그래서 편지를 써서 부모님께 드리기도 했다. 여기에 작은 고모님이 절 많이 믿어주셔서 큰 힘이었다. 부모님은 '네가 어떻게 앞으로 하는지 쭉 지켜보겠다'며 양보해주셨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이왕 시작한 거 꼭대기는 찍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며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고원희는 한계를 고백했다. <미스터 모> 이후 촬영한 <죄많은 소녀>에서였다. 이 작품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고,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 감정의 흐름이 중요한데, 제가 집중을 잘 못 해서 촬영이 진행 안 되던 때가 있었다. 결국, 제 촬영이 중단됐고, 다음날로 미뤄졌는데 그날 감독님과 많은 얘길 했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혼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밤을 새우고 나갔다. 겨우 오케이를 받았었다. 이런 얘기에 코웃음 치실 수도 있지만, 역할에 빠지게 되니까 스스로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대하더라. 부모님과 친구들이 저 때문에 그때 고생했다. 사과드리고 싶다."

이유 있는 행보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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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민을 했을 지난해 고원희는 소속사 대표에게 털어놨고, 대표는 같은 회사 배우인 배두나 사례를 전했다고 한다. "'배두나씨 역시 작품 할 때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힌다. 시간이 결국 해결해준다'는 말에 큰 위로가 됐다"며 고원희는 "제 길이 맞는지, 혹시 억지로 연기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기가 어렵다. 평생 그럴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예전 출연작을 보면 제가 조금은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드라마 데뷔작 <꽃들의 전쟁>이 어느 채널에서 재방송하는 걸 우연히 봤는데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이 딱 저더라. 차마 더 이상 얼굴을 못 보겠더라. '그땐 내가 많은 걸 모르고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촬영 감독님도 제게 '그땐 그저 디렉팅을 따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주체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 해주셨다. 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웃음)"

새로운 꿈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미스터 모> 속 남자 친구 아버지처럼 고원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있다. 그의 작은 꿈이자 바람이다. "1년 정도 됐는데 아직 주제도 못 정했다"며 그가 쑥스러워하면서도 "죽기 전에 제 영화 하나는 내놓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요즘 반 농담처럼 '내년이면 반 오십이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곱씹으면 좀 슬프더라. (웃음) 한편으론 빨리 나이를 먹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많은 걸 접해보고 경험이 쌓이면 제 연기도 더 달라지지 않을까? 일을 처음 시작할 땐 조급함도 컸는데 이젠 제가 지금 가는 길이 '그냥 내 길이다' 생각하고 있다. 방향을 고민하면서 현장에서 만나는 좋은 배우들의 장점을 하나씩 습득하려 한다. 그렇게 쌓다 보면 저도 어느새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가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의 소재를 빗대 그에게 인생 영화 한 편을 물었다. "<죄많은 소녀>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이라며 그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언급했다. "하나의 신을 위해 배우들이 100번의 테이크를 연기했다"며 고원희는 "그 장면을 보며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좋은 연기를 고민하는 그는 그 길을 그렇게 제대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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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모든 말을 두 번 반복하는 여자, 보드게임으로 치료한다?

[inter:view]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 환자 '릴리' 연기하는 배우 이진희

연극배우 이진희의 강점은 깊은 감정 표현이다. 처연한 듯 애처로운 듯 빛 망울지는 눈매로, 가슴 깊숙이에서 꺼내온 감정에 푹 적신 목소리로 객석을 향하다 보면 관객은 눈가를 훔치게 된다. <프라이드>의 실비아가 그랬고, <킬 미 나우>의 트와일라가 그랬다. 관객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상처를 꺼내놓는 연기. 객석에서 보다가 문득, 저 연기를 하는 배우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그런 이진희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다른 결로 빛나는 작품이 있다. 재연에 나선 연극 <톡톡>은 밝고 유쾌한 '코미디' 극이다. 다른 종류의 강박증을 가진 여섯 명의 환자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스텐 박사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진료실에 모여든다. 하지만 정작 스텐 박사는 비행기 문제로 발이 묶여 제때에 오지를 못 한다. 하릴없이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각자의 증상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도 때울 겸 보드게임 <모노폴리>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그룹 치료'를 시작한다. 이 와중에 서로의 증상과 사연,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난다.10월 20일,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개막한 연극 <톡톡>. 내년 1월 28일까지 무대에 오를 이 작품에서 배우 이진희가 맡은 '릴리'는 동어반복증 환자이다. 모든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릴리는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알며 이해심 많은 인물이다. 이 릴리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배우 이진희를 만나 증폭된다. 지난 11월 2일 늦은 오후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작품의 중간 점을 돈 지금, 그녀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되새겨본다.배우 이진희, 다른 색깔의 옷을 입다 2016~2017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도 릴리를 맡은 이진희. 이전까지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연기가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처음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언젠가 코미디는 꼭 시도하고 싶었던 장르였고, 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도전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톡톡>의 릴리는 그녀의 다른 대표 캐릭터들과 나란히 거론될 정도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됐으니까.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말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여섯 명의 배우, 더 나은 웃음을 위해 오랫동안 대학로에 여러 좋은 작품을 올리고 있는 연극열전이지만, 연극열전의 레퍼토리 중에서 <톡톡>이 가지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아니, 단순히 연극열전을 떠나서 대학로 전체를 봐도 그렇다. 유쾌한 극, 재미있는 극은 많다. 하지만 그 대학로에 많은 코미디 극 중에서 웃음을 웃음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가는 극은 정작 손에 꼽는다. 그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객은 <톡톡>을 사랑한다. <톡톡> 때문에 웃고, <톡톡> 때문에 치유받는 과정. 이건 비단 관객이 느끼기만 하는 정서가 아니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톡톡>의 독특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희화화다. 특정한 대상을 유희의 소재로 삼다 보면 비하와 조롱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특히나 그 비하와 조롱이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향했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내 많은 코미디가 아직 이런 함정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톡톡>은 아픈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도 그들의 개별적인 장애를 단순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창작진과 배우들의 고민이 컸을 수밖에 없다.진료실을 나간 이후, 그들의 삶은 과연? 끝내 스텐 박사를 만나지 못한 채, 이들의 그룹 치료는 끝이 난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다른 환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지닌 강박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기의 성과를 보이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한다. 그렇게 그들은 진료실을 떠나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실패가 씁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예컨대 극복의 단초가 될 만한 작은 순간들은 모두가 하나씩 안고 공유하게 됐으니까. 또, 사람도 사귀었다. 릴리는 밥과 사랑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진료실을 찾기 이전과 이후의 주인공들 삶은 과연 바뀌었을까. 이진희, 릴리를 만나고 다시 헤어지기까지 <톡톡>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증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그 사실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처주기 싫어서,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을 꽁꽁 싸맸던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안아주게 된다. 정상인 의사가 비정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모나고 서투르고 불완전한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는 과정에서 <톡톡>이라는 작품의 힘이 나온다. 배우 이진희도 그런 <톡톡>을 만나 잊지 못할 행복한 경험을 했다.지난겨울과 이번 겨울. 두 번의 겨울 동안 이진희는 릴리를 만나 그녀를 소화하고 대변했다. 내년 1월에 헤어질 때 "덕분에 행복하고, 덕분에 따뜻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추운 겨울,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는 '따뜻한 웃음'을 <톡톡>은 상투적이지도 진부하지도 않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이진희의 릴리를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졸업작품이 영화제 수상작 되는 곳, '빨갱이 학교'라고?

[inter:view] 유영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 이전과 이후를 고민하다

졸업 작품이 그대로 주요 영화제 수상과 동시에 곧바로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학교. 지난 수년 동안 한국영화아카데미(아래 KAFA)가 이룬 가시적 성과 중 하나다. 영화 <파수꾼> <소셜 포비아> <잉투기> 그리고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은 <죄 많은 소녀> 등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세계 영화계 역시 주목했다.1984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약 700명이 넘는 영화인들을 배출한 KAFA는 이름 그대로 신진 영화인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기성 영화인 재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이 최근 국내 영화계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부산으로의 이전 문제 때문이다. 유영식 KAFA 원장 역시 이 지점을 크게 고민 중이었다.눈에 띄는 성과... 하지만 지난 2014년 11월부터 3년째 KAFA를 맡은 유영식 감독은 프로듀서와 연출, 영화평론을 두루 경험한 인물. 그래서인지 취임 초기 그는 비즈니스 프로듀서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한동안 KAFA에서 사라졌던 프로듀서 과정을 다시 만들었다. 이에 더해 애니메이션 과정 역시 강화했고, 비 포트폴리오 전형(영화 연출 및 제작 경험이 없어도 KAFA에 지원 가능하게 한 제도)도 만들어 비영화인에 대한 문호를 개방했다.이 덕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부산 이전 문제가 걸려있음에도 2018년 KAFA 영화연출 전공 등은 15대 1에서 20대 1 수준으로 예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올랐다. 다만 프로듀서 전공은 경쟁률이 떨어졌다. "인프라가 다 서울에 있기 때문"이라고 유 원장은 분석했다. 그의 말을 받아 바로 부산 이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그렇다. 2009년경에 결정된 거로 알고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 때 대통령이 방문하셨고 우리 학생들이 의견을 전했는데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그간 아카데미가 부산에 못 내려간 이유로는 남양주에 있는 종합촬영소가 매각이 안 됐기 때문이기도 한데 지금은 매각됐잖나. 저 역시 이전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내려갈 거면) 잘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카데미가 지켜오고 선도해 온 나름의 것들이 부산에서도 유지돼야 한다. 자칫 부산에 새로 생긴 (그저 그런) 영화학원이 될 위험도 있다고 본다.""일단 지역성을 고려하자면 올해도 지역 출신 분들이 꽤 지원했는데 전형을 진행하면서 상당수가 탈락했다. 지역을 위한 쿼터제 얘기도 있는데 좀 비현실적인 게 우린 실력과 가능성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 (지방 사정에 맞는 기관에 대해선) 부산엔 아시아필름스쿨이 있는데 이걸 원래 부산시가 하던 거였다. KAFA가 그 옆 공간으로 가게 됐다. 애초에 KAFA랑 아시아필름스쿨은 노선이 다르다. 그쪽은 프로듀서 전문이고, 아시아 피디 교류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KAFA는 사실 서울 홍대에 있는 게 가장 좋긴 하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학생 입장에선 일종의 트렌드를 느낄 수도 있으니. 하지만 나라의 정책이고, 이미 이전 예정지 건물도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 이전 반대를 외치시는 분들에겐 감사하다. 근데 KAFA가 잘 내려갈 수 있게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또 다른 한편에선 KAFA가 범용 교육기관이라고 보시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전하는데 왜 기숙사까지 만드냐, 독립영화와 혜택을 나눠야 한다 하신다."정체성의 문제 "KAFA는 태생 자체가 소수 정예를 뽑아서 곧바로 나가 일할 수 있게 하자는 주의다. 또 범용 교육뿐만이 아니라 영화인 재교육도 담당한다. 이런 특수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어떤 특별한 혜택을 받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그걸 나누라고 한다면 그래도 KAFA는 운영이 되겠지만 (아까 말했듯) 일종의 학원 같은 곳처럼 될 것이고 교육의 질 역시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한예종 같은 전문학교가 있는데 왜 KAFA가 있어야 하냐는 등.전 우수한 학교의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기숙사는 결국 서울에 사는 재학생이 90%기에 꼭 필요하다. 이들이 부산에서 많은 작품을 찍을 것이다. 현재 부산엔 상업 영화 제작사가 거의 없다. 이들이 제작사를 만들 수도 있고, 영화제 측과 공조해서 아시아 영화 교육의 허브 역할도 할 수 있다.""프로듀서 분야에선 교수진들이 함께 공조하고 있긴 하다. 양 기관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서울에 근거를 두고 부산에 KAFA 분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중국, 베트남 등에 분교를 내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결국 예산의 문제다(웃음). 또 KAFA가 아직 영비법상 독립기관이 아니다(KAFA는 검색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상 영화진흥위원회의 인력 양성을 맡은 산하 기관으로 정의되고 있다-기자 주). 근데 마치 독립 기관처럼 알려진 건 순전히 선배들과 동문의 노력 덕이다. KAFA가 국립영화학교로 확실히 인정받고 예산을 받아 서울에 분교를 내는 식이면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없다고 본다. 차기 영진위원장이 누가 오실지 모르겠으나 의견 수렴은 이미 끝났다. 사실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서울에 있는 게 좋다는 여러 평가가 나왔지만, 기숙사 문제와 커리큘럼 개선, 교수진 문제 등을 점검하면서 지금의 안이 된 것이다."성과들 유영식 원장은 지난 수년간 KAFA가 이뤄놓은 성과들을 하나씩 열거했다. "영화인 교육에 대한 일종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련됐고, 이젠 도약을 꿈꾸는 때였는데 이전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며 그는 "이전 이후 아마 조금 적응 기간이 필요할 거 같다"고 내다봤다."맞다. 영화 <붉은 바람> 등이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았다. 1년에 장편을 3개씩 선보이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러려면 최소 9팀이 돌아가는 셈이다. 현재도 촬영 중인 영화가 있다. 다들 새로움을 모색하고 있다. 관습에 눌러앉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학생들이 그런 면에서 열정이 강하기에 (좋은) 신진 영화인들이 계속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학생들에겐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구분은 없다고 얘기하곤 한다. 개인 노력에 따라 영화적 가치가 달라지니까 그 안에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우린 다들 어떤 영화가 가치 있고, 좋은 영화인지 알고 있다. 배가 고파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할 때도 분명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영화적 가치를 계속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다만 요즘 나오는 작품의 키워드를 뽑아 보니 10개 중 9개가 좌절, 우울이더라. 안타깝지만 이게 또 우리 사회 현실이니까." "되게 당혹스러운 순간이 몇 가지 있었지. 그중 하나가 등급분류 면제 문제이고. 음…. 제가 국회 포럼에 들어갔을 때 국회 교문위원 중 한 분이 'KAFA가 빨갱이 학교로 소문났는데 그런 곳을 운영하시느라 힘들죠?'라고 묻더라. 황당했다. 그땐 그 발언 자체가 이해가 안 됐는데 국정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아 그런 연결고리들이 있었구나' 알게 됐다. 참고로 그분은 지난 선거에서 떨어져 현직 의원은 아니다(웃음).""영화인 재교육 사업도 의미가 크다. <죽여주는 영화>가 그런 사례였고, 스크린 X, 3D, VR 영화들도 계속 만들고 있다. 그만큼 KAFA의 일이 굉장히 범위가 넓다는 것이지. 직업 훈련 부문도 우리가 맡게 됐는데 이런 사업도 정돈이 필요할 것이다. 나름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는데 부산 이전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최대한 적응 시간을 줄이는 게 숙제다. 또 지금 홍대 부지에 (상암동에 있는) 영화인 재교육 센터가 들어올 건데 여기도 체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임기 이후를 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유영식 원장은 감독으로서 프로듀서로서 현장에 남겠다는 생각이다. "현장에 있을 때 원 없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기도를 종종 하곤 했는데 지금 정말 그러고 있다"고 웃으며 그는 "이젠 정말 제 작품을 만들어야겠지"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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