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벌써 햇수로 7년 차, 이제 막 20대 중반에 들어선 고원희는 이른 시작만큼 성장통 또한 일찍 겪었다. 유명 항공사의 장수 모델로 대중에게 친숙할 법한 그는 알게 모르게 저예산, 독립영화 작품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아래 <미스터 모>)도 그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최근 출연작들의 상반되는 분위기다. 종영한 드라마 <최강 배달꾼>에선 철없으면서도 해맑은 23살 청춘 지윤을 연기했고, <미스터 모>에선 일찍 철이 든 주체적인 영화인 예원을 맡았다. 보폭을 보다 넓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주체성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예원은 말수가 적고 정적이다. 함께 영화를 공부한 남자친구가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함에도 묵묵히 곁을 지킨다. 그러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계획에 선뜻 힘을 보탠다. 자칫 신파로도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미스터 모>는 담담하게 때로는 가벼운 웃음 요소를 더해 전달한다.

"안톤 체호프 작품 등 제가 입시하면서 배운 극의 느낌이 영화에서 느껴졌다. 감독님께 여쭤보니 그런 식의 블랙코미디라고 하시더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 대본을 두 번 정도 봤을 땐 재밌었는데, 세 번째엔 슬픔이 느껴졌다.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대본으로도 예원 캐릭터가 제 마음에 들어왔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직접 차를 모는 장면도 많더라. 제가 5년 경력이다. 현장에서 한 번도 '레카'를 쓰지 않고 다했었다. (웃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안고 자신의 인생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남자친구는 문득 예원에게 '널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던진다. 무심코 혹은 속으로 쌓아오다 우연히 나온 말로 자칫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예원은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이 한 마디에 예원이라는 캐릭터가 다 드러난다.

"저 역시 실제 그런 상황이었으면 예원처럼 대답했을 거 같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누구도 내 행복을 대신할 수 없을 거 같다. 예원도 그런 마음으로 답했을 것이다. 남자친구는 마음을 공유하는 대상이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잖나. 책임을 전가하면 서로가 불행해진다. (웃음)"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다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고원희 역시 중학생 때 중국에서 1년 살고, 현재도 따로 집을 구해 사는 등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중국 관련 공부를 하려다 배우의 꿈이 커져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고, 그만큼 스스로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야 연기자든 가수든 그저 대형 기획사에서 오디션 봐서 되는 줄만 알았다. 또 선택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 '지극히 평범해서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중국 유학 당시 오디션 프로들이 한창 생기는 걸 보면서 나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웃음) 부모님을 오래 설득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제가 공부하길 바랐지. 연기를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걸 하기에도 어렵고 하니까.

그래서 편지를 써서 부모님께 드리기도 했다. 여기에 작은 고모님이 절 많이 믿어주셔서 큰 힘이었다. 부모님은 '네가 어떻게 앞으로 하는지 쭉 지켜보겠다'며 양보해주셨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이왕 시작한 거 꼭대기는 찍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며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고원희는 한계를 고백했다. <미스터 모> 이후 촬영한 <죄많은 소녀>에서였다. 이 작품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고,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 감정의 흐름이 중요한데, 제가 집중을 잘 못 해서 촬영이 진행 안 되던 때가 있었다. 결국, 제 촬영이 중단됐고, 다음날로 미뤄졌는데 그날 감독님과 많은 얘길 했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혼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밤을 새우고 나갔다. 겨우 오케이를 받았었다. 이런 얘기에 코웃음 치실 수도 있지만, 역할에 빠지게 되니까 스스로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대하더라. 부모님과 친구들이 저 때문에 그때 고생했다. 사과드리고 싶다."

이유 있는 행보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이 고민을 했을 지난해 고원희는 소속사 대표에게 털어놨고, 대표는 같은 회사 배우인 배두나 사례를 전했다고 한다. "'배두나씨 역시 작품 할 때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힌다. 시간이 결국 해결해준다'는 말에 큰 위로가 됐다"며 고원희는 "제 길이 맞는지, 혹시 억지로 연기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기가 어렵다. 평생 그럴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예전 출연작을 보면 제가 조금은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드라마 데뷔작 <꽃들의 전쟁>이 어느 채널에서 재방송하는 걸 우연히 봤는데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이 딱 저더라. 차마 더 이상 얼굴을 못 보겠더라. '그땐 내가 많은 걸 모르고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촬영 감독님도 제게 '그땐 그저 디렉팅을 따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주체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 해주셨다. 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웃음)"

새로운 꿈

 개봉 예정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예원 역을 맡은 배우 고원희.

ⓒ 이희훈


<미스터 모> 속 남자 친구 아버지처럼 고원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있다. 그의 작은 꿈이자 바람이다. "1년 정도 됐는데 아직 주제도 못 정했다"며 그가 쑥스러워하면서도 "죽기 전에 제 영화 하나는 내놓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요즘 반 농담처럼 '내년이면 반 오십이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곱씹으면 좀 슬프더라. (웃음) 한편으론 빨리 나이를 먹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많은 걸 접해보고 경험이 쌓이면 제 연기도 더 달라지지 않을까? 일을 처음 시작할 땐 조급함도 컸는데 이젠 제가 지금 가는 길이 '그냥 내 길이다' 생각하고 있다. 방향을 고민하면서 현장에서 만나는 좋은 배우들의 장점을 하나씩 습득하려 한다. 그렇게 쌓다 보면 저도 어느새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가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의 소재를 빗대 그에게 인생 영화 한 편을 물었다. "<죄많은 소녀>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이라며 그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언급했다. "하나의 신을 위해 배우들이 100번의 테이크를 연기했다"며 고원희는 "그 장면을 보며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좋은 연기를 고민하는 그는 그 길을 그렇게 제대로 가고 있었다.


고원희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기주봉 전여빈 최강배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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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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