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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지난 11월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각기 다른 강박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곽우신


연극배우 이진희의 강점은 깊은 감정 표현이다. 처연한 듯 애처로운 듯 빛 망울지는 눈매로, 가슴 깊숙이에서 꺼내온 감정에 푹 적신 목소리로 객석을 향하다 보면 관객은 눈가를 훔치게 된다. <프라이드>의 실비아가 그랬고, <킬 미 나우>의 트와일라가 그랬다. 관객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상처를 꺼내놓는 연기. 객석에서 보다가 문득, 저 연기를 하는 배우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런 이진희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다른 결로 빛나는 작품이 있다. 재연에 나선 연극 <톡톡>은 밝고 유쾌한 '코미디' 극이다. 다른 종류의 강박증을 가진 여섯 명의 환자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스텐 박사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진료실에 모여든다. 하지만 정작 스텐 박사는 비행기 문제로 발이 묶여 제때에 오지를 못 한다. 하릴없이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각자의 증상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도 때울 겸 보드게임 <모노폴리>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그룹 치료'를 시작한다. 이 와중에 서로의 증상과 사연,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난다.

10월 20일,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개막한 연극 <톡톡>. 내년 1월 28일까지 무대에 오를 이 작품에서 배우 이진희가 맡은 '릴리'는 동어반복증 환자이다. 모든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릴리는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알며 이해심 많은 인물이다. 이 릴리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배우 이진희를 만나 증폭된다. 지난 11월 2일 늦은 오후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작품의 중간 점을 돈 지금, 그녀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배우 이진희, 다른 색깔의 옷을 입다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다시 만나 반가워요, 다시 만나 반가워요"릴리를 다시 만나서 무척 반가웠어요. 역할이 많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고, 작품도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까 또 달라지더라고요. 재연 연습이 참 재밌었어요."ⓒ 곽우신


"제가 생각하는 저는 릴리에 더 가까운데, 사실 바라봐주시는 분들한테는 그쪽(실비아, 트와일라 등)에 더 가까웠나 봐요. 예전에 이윤택 선생님도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그런 역할들을 맡아왔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제가 (연극)열전하고는 워낙 많은 작품을 같이 했었고, 그래서 제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아셔서 이 역할을 제안해주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전에 코미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초연 처음 들어갈 때는 걱정했었어요.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일 수 있잖아요, 코미디는.

초연 처음 공연하는 날 그래서 당황했어요. 제가 등장하는 신에서 관객분이 우시는 거예요. '코미디인데 왜 우시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코미디를 잘 몰라서, 어떤 부분은 어느 정도 가볍게 가야 하는데 '내가 또 너무 그러나?'하고 생각했죠. (웃음) 릴리를 이해해주시기를 바란 정도였지, 저보다 더 울어주실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 (웃음) 저를 많이 보셨던 분들은 제가 표현하는 것보다 더 깊이를 가지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2016~2017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도 릴리를 맡은 이진희. 이전까지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연기가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처음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언젠가 코미디는 꼭 시도하고 싶었던 장르였고, 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도전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톡톡>의 릴리는 그녀의 다른 대표 캐릭터들과 나란히 거론될 정도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됐으니까.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말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이제는 선배가 됐어요, 이제는 선배가 됐어요“언니들하고 가끔 얘기를 하는데, 언니들도 아직 자신이 없고, 늘 자기를 의심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저 나이돼서 그러고 있겠지’하는 게 있어요. ‘언니, 내가 언니 잘 따라갈게. 언니도 언니 길 잘 걸어가줘’하는 것도 있고요. 반대로 어떤 후배들은 저에게 그런 걸 바라고 있겠죠? 그런 생각 전혀 안 했었는데, 요새는 하게 된 것 같아요. (웃음)”ⓒ 곽우신


"제가 얼마나 그렇게 보이려고, (웃음) 안 되니까, 노력을 했겠어요! 의상이랑 머리랑…. 분장 선생님께 맨날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한다니깐요. 정말 '스물일곱이에요'라는 대사를 너무 없애고 싶어서…. (웃음) 연습 때 저도 모르게 '몇 살이에요?'라는 대사에 '서른... 여섯...'이라고 할 뻔했어요. 힘들었어요. (웃음) '귀여워요'라는 말, 정말 다행이죠. 그렇게 보인다니까. 귀여운 면이 원래 잘 없어요. 많이 웃고, 밝은 부분은 릴리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애교가 많거나 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무뚝뚝한데…. (웃음) 그래도 좋네요. 귀엽다는 말 들으니까. 살면서 귀엽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웃음) 역할의 힘인 것 같아요. 대본의 힘이고.

원래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어요. 초연 <톡톡> 전까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이 대본을 읽었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지금은 처음 읽은 대본과 또 많이 바뀌어있지만, 처음 읽었을 때부터 너무 재밌었고,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이 작품 하기로 굉장히 빨리 결정했죠.

사실 그래놓고 걱정도 많았어요. 제가 혼자 하는 거면, 공연 올라가서도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톡톡>이라는 공연은 개인이 재밌게 해서 코미디가 나오는 게 아니라, 여섯 명이 모여서 나오는 상황이 재밌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 제가 조금 더 집중하면 보시는 분들이 재밌어하시더라고요. 제가 만약 혼자 이 장면을 재밌게 끌어나가야 하는 거였으면 고생 많이 했었을 것 같아요. 개인기가 별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웃음)

사실 저희는 계속 의심했어요. 배우들은 '이거 우리 너무 재밌어!'라고 하지 못하거든요. 계속 '괜찮을까', '이게 맞나'하면서 연습하죠. 사실 강박증 증상 중 어떤 하나도 명확하지 않아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만들어가야 하나 싶었어요. 여섯 증상 중 하나만 놓고도 고민과 의심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원래 <모노폴리>도 많이 달랐어요. 지금은 나라로 되어 있지만, 원작에서는 프랑스 기차역이고, 그 말의 의미와 말이 갖고 있는 코미디가 많았어요. 프랑스 작품을 우리나라에 갖고 왔을 때 어떻게 바꿔야 하나도 고민이었죠. 게임도 <모노폴리>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또 다 해보면서 게임들 중에서 고른 거죠. 재밌으면서도 불안하게 연습했어요."

여섯 명의 배우, 더 나은 웃음을 위해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곽우신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애드리브 안 해요, 애드리브 안 해요"매일 하는데도 ‘저도’라고 했는지, ‘저는’이라고 했는지, 순간적으로 ‘어, 오늘 내가 뭐라고 했지’하고 헷갈려요. (웃음) 저도 모르게 어떤 리액션을 했을 때, 예를 들면 ‘아하!’라고 했을 때 또 반복하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요. 혹시 실수해도, 기침을 해도 두 번씩 해야 하니까. 그래서 사실 릴리는 되게 계산이 많이 되어져 있는 연기에요. 저는 꼭 두 번씩 해야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많이 다르면 같이 하는 배우들도 힘들고요. 약속에 따라서 리듬과 템포가 정해져 있고, 말도 정해져 있어요. 어떤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애드리브를 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저희 공연은 리듬이 굉장히 중요해서 애드리브는 잘 안 하는 편이죠.”ⓒ 곽우신


오랫동안 대학로에 여러 좋은 작품을 올리고 있는 연극열전이지만, 연극열전의 레퍼토리 중에서 <톡톡>이 가지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아니, 단순히 연극열전을 떠나서 대학로 전체를 봐도 그렇다. 유쾌한 극, 재미있는 극은 많다. 하지만 그 대학로에 많은 코미디 극 중에서 웃음을 웃음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가는 극은 정작 손에 꼽는다. 그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객은 <톡톡>을 사랑한다. <톡톡> 때문에 웃고, <톡톡> 때문에 치유받는 과정. 이건 비단 관객이 느끼기만 하는 정서가 아니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업할 때는, 한 작품을 같이 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하면, <톡톡>은 노래 한 곡을 여섯 개의 화음으로 부르는 느낌이 들어요. 각자의 역할을 다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섯 명이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극에는 더 많이 나오는 역할과 덜 나오는 역할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연기하면서도 제가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되는 배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배우도 생기잖아요. 그런데 톡톡은 그렇지 않아요. 여섯 명이 다 똑같아요. 선배부터 막내까지 다 같이 대화해야 하고,  다 같이 움직여야 하고…. 다른 작품은 배우 한 명이 빠져도 연습의 어떤 부분들은 가능해요. 그런데 저희는 한 명만 빠져도 연습 전체가 안 되는 게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거든요. 여섯 명이 다 같이 만든다는 데 특별함이 있죠.

그게 느껴져요. 다들, 함께하고 있다는 것. 다 같이 응원하고 있다는 에너지가 느껴지거든요. 다 같이 진료실에 앉아 있는 환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정도의 차이지, 사람의 대부분은 다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무대 위 역할 중에서 나의 어떤 일부분을 보는 것 같고,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위로가 되더라고요."

<톡톡>의 독특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희화화다. 특정한 대상을 유희의 소재로 삼다 보면 비하와 조롱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특히나 그 비하와 조롱이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향했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내 많은 코미디가 아직 이런 함정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톡톡>은 아픈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도 그들의 개별적인 장애를 단순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창작진과 배우들의 고민이 컸을 수밖에 없다.

"고민이 '많이' 있었어요. 특히, 초연 때는 '혹시 불편하시지 않을까?' 배우들하고도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고요. 그런데 이게 환자 개개인들의 증상이 재미있다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다각적인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게 재미있는 거니까, 환자의 개인적인 증상으로 코미디를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실제로 투레트(Tourette) 증후군을 가진 가족이 있어요. 초연 때는 못 보고, 이번 재연 때 공연을 봤는데, 제가 제일 먼저 물어봤어요. '봤을 때 혹시 불쾌한 부분들은 없었느냐'라고. 다행히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해줬어요. 더 많이 공감해줬고요. 프레드가 '나는 이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조금이라도 완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자기 마음에 와닿았다고 하더라고요. '슬프거나 기분이 안 좋거나 전혀 그러지 않으니까, 마음껏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줬어요. 저에게는 대단히 큰 힘이 되는 말이었죠."

진료실을 나간 이후, 그들의 삶은 과연?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이진희는 연극배우예요, 이진희는 연극배우예요"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같이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부족한 걸 채워가면서, 결국 어떤 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잖아요. 늘 할 때마다 '내가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느끼고. 아니면 계속 사람과 만나면서 생기는 문제들, 관계들…. 그런 걸 통해서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됐구나', '치유가 됐구나'하고요. 공연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공연 중간에, 공연 끝날 때마다 그걸 계속 느껴서 연극도 계속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좋아서."ⓒ 곽우신


끝내 스텐 박사를 만나지 못한 채, 이들의 그룹 치료는 끝이 난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다른 환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지닌 강박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기의 성과를 보이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한다. 그렇게 그들은 진료실을 떠나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실패가 씁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예컨대 극복의 단초가 될 만한 작은 순간들은 모두가 하나씩 안고 공유하게 됐으니까. 또, 사람도 사귀었다. 릴리는 밥과 사랑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진료실을 찾기 이전과 이후의 주인공들 삶은 과연 바뀌었을까.

 연극 <톡톡>의 공연 장면. 여섯 명의 환자들이 함께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플레이하던 중, 밥의 돈이 떨어지게 된다. 파산 위기에 몰린 밥에게 기꺼이 돈을 빌려주는 릴리의 모습.

▲ <톡톡> 하래요, <톡톡> 하래요“집에서 남편이 맨날 그래요. '<톡톡> 해'라고. ‘왜?’라고 물으면, 확실히 생활이 밝아진대요, 평소에. 저는 사실 되게 자부했거든요. 공연과 공연 끝난 저는 분리가 잘 되는 편이라고. 그런데 아니래요. 옆에서 느끼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웃음)”ⓒ 연극열전


"릴리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고, 남들 앞에 내가 민폐가 될까 봐 말을 많이 안 하려고 노력해요. 또 그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 릴리가 봤을 때는 적극적이고 밝고, 그런 밥의 모습을 좋아했을 것 같아요. '부럽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좋아해 주잖아요. 두 번 말하는 것을 보고 '대칭을 이룬다'고 칭찬해주잖아요. 그걸 들어주고, 그렇게 길게 얘기해도 눈을 보며 '괜찮아요. 참지 말고 얘기해요'라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배우들끼리 얘기는 늘 했어요. '밥이랑 결혼해서 잘 살지 않겠어?'라고. 물론 쉽지 않겠죠. 선 못 밟는 남자랑 말 계속 두 번씩 해야 하는 여자랑 결혼해서…. (웃음) 예전에 토크콘서트 할 때 이후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조금씩 콩트처럼 짠 적이 있어요. 릴리랑 밥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프레드가 엄청 욕을 하면서 주례를 보고, 하객들로 다른 분들이 오시고…. 그런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네요. 사실 이후의 삶은, 그들이 결혼해서 어떻게 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친구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엄청난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면서 만났을 거로 생각해요.

그렇다고 증상이 바뀌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에 뱅상이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스텐 박사가 '단번에 고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증상들이 치료되거나 완화했을까는 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음은 바뀌겠죠. '오늘 요만큼 치료의 희망을 봤어'라는 것보다는, 내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게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 말이에요. 여섯 명 다들 자기에게 갇혀있는 사람들이었잖아요. 눈에 보이는 변화는 작겠지만, 당장 증상의 변화가 생기는 건 없겠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열린다면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스텐 박사님을 못 뵈었으니까, 이들이 이 진료를 받고 돈을 냈는지 안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불로 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굉장히 큰 치료가 됐을 거로 생각해요."

이진희, 릴리를 만나고 다시 헤어지기까지

이진희 릴리 보세요, 이진희 릴리 보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진희를 만났다. 연극 <톡톡>에서 '동어반복증'을 앓는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연극 <톡톡>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상담실에 모여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극이다. 릴리는 극 중 모든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한다.

▲ 걱정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않아요"대학로에 여자 배우로서, 저한테는, 또 숙제가 있죠. 누구나 다 서른 중반을 넘어가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같이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같이 움직이는 연극열전 대표님이나 지이선 작가님 같은 분들이 계셔요. ‘어떤 여자 역할을 하면 좋을까’,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면 좋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까지 걱정하지는 않아요. 너무 멋진 배우들, 제 나이 또래의 배우들, (김)지현 언니, (김)소진 언니, (전)미도…. 같이 무대에 서고 있지는 않아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거든요. 함께 잘 버텨봐야죠. (웃음)"ⓒ 곽우신


<톡톡>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증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그 사실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처주기 싫어서,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을 꽁꽁 싸맸던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안아주게 된다. 정상인 의사가 비정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모나고 서투르고 불완전한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는 과정에서 <톡톡>이라는 작품의 힘이 나온다. 배우 이진희도 그런 <톡톡>을 만나 잊지 못할 행복한 경험을 했다.

"저는 작품을 할 때, 원래 편하게 하지를 못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는 편이죠. 그 역을 맡은 배우로서 어느 정도 해내야 된다는 긴장감이 늘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어떤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데 이번엔 좀 그런 걸 놓을 수 있었어요. 상대에게 나를 맡기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웃음이 많이 터지기도 하지만, 극처럼 저도 다른 사람에게 더 집중을 많이 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웃음)

<톡톡>은 연습하는 과정도, 공연을 하고 있을 때도, 모니터를 할 때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좋고 행복했던 공연이 있나 싶어요. 작업을 하면서 참 행복하게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앞으로도 그런 작품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관객분들도 저랑 같은 기분을 느끼시고 그렇게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이전 작품들은 제가 어떤 걸 표현하고, 제가 표현하는 걸 관객분들이 '잘 느끼셨으면 좋겠다',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지금은 무대 위에서 릴리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기운을 함께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겨울이잖아요. 극장을 나오면 상쾌해요. 기분도 좋고. 그러면 다음 날도 기분 좋잖아요. (웃음)

끝나고 나왔을 때, 밤이잖아요. 관객분들이 저에게 웃으면서 '너무 잘 봤다'고 얘기해주시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관객분들도 기분 좋게 오늘 잠들고, 기분 좋게 내일 깰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저도 기분 좋게 인사해요. 이 공연을 놓치면 또 언젠가 후회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후회하기 싫으신 분들 꼭 한 번은 보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공연을 '에이, 괜히 봤어'라고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건 저희 배우들 몫이고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겨울과 이번 겨울. 두 번의 겨울 동안 이진희는 릴리를 만나 그녀를 소화하고 대변했다. 내년 1월에 헤어질 때 "덕분에 행복하고, 덕분에 따뜻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추운 겨울,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는 '따뜻한 웃음'을 <톡톡>은 상투적이지도 진부하지도 않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이진희의 릴리를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또요? 또…. 또…. 지금, 서른여섯에 스물일곱을 연기하는데…. (웃음) 다음에 하면 서른일곱? 여덟에? 음,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웃음) 다음엔 객석에서 봐야죠. 설사 제가 재공연을 해도, 작년에 봤던 그 아이는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상대가 달라지면, 또 나도 달라지고, 내가 이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도 1년이 지나면 좀 바뀌어요. 지금 만나는 캐릭터는, 딱 지금뿐인 것 같아요. 그러니 이번에 보러 오셔야 해요! (웃음)"

 아직 재연이지만, 이미 연극열전을 대표하는 레퍼토리 공연이 된 작품 <톡톡>의 2017~2018 시즌 포스터.

▲ 또 무슨 작품을 할까요, 또 무슨 작품을 할까요"예전에는 '이런 역할이 하고 싶다', '이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는 게 있었죠. 이제는 그런 게 좀 없어진 것 같아요.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 이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좋지 않을까, 의미있지 않을까?' 작품을 고를 때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예전에는 무조건 주어진 것만 최선을 다해서 하자는 주의였는데…. (웃음)"ⓒ 연극열전



책임 피하는 남친에게 외쳤다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해"

[inter:view]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배우 고원희가 걸어온 길

벌써 햇수로 7년 차, 이제 막 20대 중반에 들어선 고원희는 이른 시작만큼 성장통 또한 일찍 겪었다. 유명 항공사의 장수 모델로 대중에게 친숙할 법한 그는 알게 모르게 저예산, 독립영화 작품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아래 <미스터 모>)도 그중 하나다.흥미로운 건 최근 출연작들의 상반되는 분위기다. 종영한 드라마 <최강 배달꾼>에선 철없으면서도 해맑은 23살 청춘 지윤을 연기했고, <미스터 모>에선 일찍 철이 든 주체적인 영화인 예원을 맡았다. 보폭을 보다 넓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주체성 예원은 말수가 적고 정적이다. 함께 영화를 공부한 남자친구가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함에도 묵묵히 곁을 지킨다. 그러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계획에 선뜻 힘을 보탠다. 자칫 신파로도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미스터 모>는 담담하게 때로는 가벼운 웃음 요소를 더해 전달한다.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안고 자신의 인생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남자친구는 문득 예원에게 '널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던진다. 무심코 혹은 속으로 쌓아오다 우연히 나온 말로 자칫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예원은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이 한 마디에 예원이라는 캐릭터가 다 드러난다.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고원희 역시 중학생 때 중국에서 1년 살고, 현재도 따로 집을 구해 사는 등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중국 관련 공부를 하려다 배우의 꿈이 커져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고, 그만큼 스스로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고 고백했다.여기서 고원희는 한계를 고백했다. <미스터 모> 이후 촬영한 <죄많은 소녀>에서였다. 이 작품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고,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이유 있는 행보 이 고민을 했을 지난해 고원희는 소속사 대표에게 털어놨고, 대표는 같은 회사 배우인 배두나 사례를 전했다고 한다. "'배두나씨 역시 작품 할 때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힌다. 시간이 결국 해결해준다'는 말에 큰 위로가 됐다"며 고원희는 "제 길이 맞는지, 혹시 억지로 연기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던 때였다"고 말했다.새로운 꿈 <미스터 모> 속 남자 친구 아버지처럼 고원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있다. 그의 작은 꿈이자 바람이다. "1년 정도 됐는데 아직 주제도 못 정했다"며 그가 쑥스러워하면서도 "죽기 전에 제 영화 하나는 내놓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영화의 소재를 빗대 그에게 인생 영화 한 편을 물었다. "<죄많은 소녀>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이라며 그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언급했다. "하나의 신을 위해 배우들이 100번의 테이크를 연기했다"며 고원희는 "그 장면을 보며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좋은 연기를 고민하는 그는 그 길을 그렇게 제대로 가고 있었다.

사투리 모르는 부산출신 배우, 표준어 못쓰는 보조작가로

[inter:view] <사랑의 온도> 황보경 역의 이초희 "스타 욕심 없다, 10년 뒤에도 지치지 않았으면"

최근 종영한 <사랑의 온도> 속 황보경은 현수(서현진 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친구다. 사투리 섞인 독특한 말투로 현수에게 때로는 직언을, 때로는 응원을 보내는 경은 적은 분량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드는 데 성공했다.여러 시청자들이 '연기 잘 하는 신인이 등장했구나' 했겠지만, 경을 연기한 이는 9년 차 배우 이초희다. 최근 2~3년 사이 출연한 작품만 해도 <후아유-학교 2015> <육룡이 나르샤> <운빨로맨스> 등 히트 드라마에 두루 출연한 배우지만, 어쩐지 아직은 이름도 얼굴도 낯설기만 배우. 하지만 이초희는 <사랑의 온도> 황보경을 만난 이후 데뷔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랑스러운 경을 더 사랑스럽게 연기한 이초희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이초희는 뜨거운 관심에 "얼떨떨하다"고 했다. 자신은 그저 "경이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서.닮은 듯 다른 황보경과 이초희 황보경은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독특한 말투로 화제를 모았다. 이는 작가나 감독의 설정이 아닌, 이초희가 황보경에게 부여한 '디테일'이었다."경이는 '지방에서 올라와 보조 작가로 고군분투하는 아이'라는 설정의 캐릭터였어요. 배우들은 그 짧은 설명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거든요. 고민하다 든 생각이 '얘가 사투리를 고쳤을까?'였어요. 제가 해석한 경이는 사투리를 고치고 싶어하지만, 못 고친 아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완벽한 사투리도, 완벽한 서울말도 아닌 말투가 나온 거예요."이초희는 부산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10살 때 서울로 이사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지역 사투리보다는 더 익숙하다 보니, 경이의 고향을 경상도로 설정했다. 이처럼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녹여낼 수밖에 없다.이초희와 황보경의 공통점은 고향만이 아니다. 극 중 황보경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아직 잘 풀리지 않은 상태다. 극 중 경은 드라마 작가인 현수의 보조 작가다. 늘 밝고 쾌활한 경이도, 자꾸만 떨어지는 드라마 작가 공모전 이야기를 할 때면 이따금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지만,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듯한 오늘을, 마냥 행복하게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이는 꾸준히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지만, 아직은 배우로서 강한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 이초희의 상황과도 닮았다. 아니,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상황과 닮았다."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일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았잖아요.사실 극 중 경이도 현실에 연연하진 않잖아요. 가끔 발끈할 때는 있지만, 이내 '9년 10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렇게 오래 한 거 아니다!' 하고 긍정적으로 웃어넘기죠. 그런 부분이 저와 비슷해요. 일이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는 그래도 이렇게 기회를 얻었잖아요. 사랑도 받았고요. 경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10년 무명, '막연한 믿음'으로 버텼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찾은 연기학원, 그곳에서 경험한 네 번의 보조출연. 이초희는 그때 연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엔 그저 학교 안 가는 게 좋았고, 그다음엔 TV에 나오는 게 좋았다.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재밌게만 느껴졌다고. 내성적이고 말수도 없는 아이였는데, 연기할 때만큼은 아니었단다."연기를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기하는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평상시엔 할 수 없던 말과 행동도 할 수 있게 됐고요. 그게 재밌었어요. 직업을 선택할 때 행복하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했어요.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만약 어릴 때 연기를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연기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을걸요?" 하지만 무명으로 보낸 10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았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경쟁력 있는 배우일까?' 회의감이 끊임없이 밀려오던 시기도 있었다. 연기가 뭐라고 스스로 자학하며, 아픈 부분 꼬집으며 일을 할까, 싶어 포기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막상 연기를 빼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은 건 막연한 믿음이었다."100세 시대잖아요.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 뭐 이런 마음이었어요. '힘들어', '다 끝났어' 하는 일도 지나고 나면 결국 다 이겨내잖아요. 이 시기를 보내고 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막연한 믿음이었죠. 그냥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밀고 온 것 같아요. 주위가 복잡해도 내가 안 흔들리면 스스로 설득이 되더라고요." "서현진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드라마 안에서 현수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경이는 현수에 대한 믿음과 응원을 보냈고, 경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현수는 경이의 기댈 언덕이 되어 줬다. 이초희는 드라마 현장에서 자신과 서현진의 관계도 비슷했다고 했다."현진 언니랑은 정말정말 좋았어요. 많이 배웠고, 제가 많이 따랐어요. 언니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고요. 저희의 이런 관계가 현수와 경이를 표현할 때도 저절로 담겼던 것 같아요. 언니를 보면서 배우가 연기만 잘 한다고 주인공 되고 사랑받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항상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왔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보인다고 믿거든요. 그런 면에서 현진 언니는 '저런 사람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현장에서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었고, 모든 스태프 이름을 다 외워서 챙겨요. 세심함이 놀라울 정도였죠. 연기 잘 하는 배우들 많잖아요. 하지만 언니에겐 연기는 물론이고, 그 이상이 있더라고요." 이초희는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외모'를 꼽았다. 자신의 외모를 "아주 예쁘지도 않고, 개성 넘치는 얼굴도 아닌, 화려하지 않다"고 평한 그는, "수더분하게 어떤 캐릭터와도 잘 붙을 수 있는 외모"라고 말했다. 어떤 특정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 없는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저 배우 잘한다' 정도의 각인만 남기고 싶을 뿐, 어떤 특정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톱이 되고 싶고, 이름을 떨치고 싶고... 그런 욕심은 없어요. 그저 10년 뒤에도 연기하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도 내가 좋아서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치지 않고 일하려면 제가 좋고 행복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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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7기 입사(2014.5). 사회부 수습을 거친 후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 시작(2014.8). 오마이스타(2015.10)에서 편집과 공연 취재를 병행. 지금은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는 기동팀 기자(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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