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

장항준 감독이 9년 만에 영화 <기억의 밤>으로 돌아왔다. 웃음기를 뺀 스릴러물이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와 영화 연출을 넘나들며 장기를 발휘하는 장항준 감독은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그가 집필을 맡았던 <박봉곤 가출 사건>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코미디 물로 언급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장항준의 다이내믹한 행보가 시작됐고, 드라마 <싸인> 연출로 이어졌다.

이와 별개로 영화감독으로선 주춤했다. 9년 전 TV용 영화 연출을 맡은 이후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졌다. "상업영화에서 이제 날 원하지 않는구나" 망연자실했던 그가 다시 재기를 노리는 작품이 바로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이다. 생활 코미디로 흥했던 그가 <싸인>에 이어 또다시 스릴러라니. "코미디보다는 스릴러에 꽂혀 있다"라고 그가 지금의 상태를 전했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그의 손을 잡은 건 영화계에서 오래 알고 지낸 장원석 피디였다. <범죄도시> 등 최근까지 흥행작 다수를 제작해 낸 장원석 대표가 장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고 힘을 북돋으며 제작을 맡았다. <기억의 밤>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는 1997년, 그 중에서도 IMF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사건의 비밀을 안고 있는 가족. 불안증을 앓고 있는 삼수생 진석(강하늘)의 시선을 통해 다정해 보이지만 뭔가 수상한 형 유석(김무열)과 아버지, 어머니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는 구조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라. 언제였더라? 제목은 <기억의 밤>인데 내가 기억을 잘 못해(웃음).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때마다 내 스스로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습관이 있다. 찾아보니 2015년 1월에 이 이야기의 시작을 보낸 기록이 있더라. 그러면 2014년 연말 송년회 때가 맞다. 그때 한 술자리에서 어떤 아이가 가출한 사촌 형이 한달만에 돌아왔는데 뭔가 서먹했고, 좀 이상해졌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그 이야기를 내가 여러 술자리를 다니며 조금씩 각색하고 있더라. 다들 반응이 좋았다. 사촌이 아닌 친형이고, 그 형이 기억이 없으며, 알고 보니 낯선 사람이라면?  

장르는 그럼 스릴러가 되는데 어떤 음식을 담을 것인가. 그래! 가족 이야기를 하자. 근데 가짜 가족이다. <기억의 밤>은 가족을 상실한 두 남자의 비극적 이야기인 것이다. 제 지론 같은 건데 우리 운명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런 걸 담고 싶었다. 위기의 가족을 담다 보니 1990년대로 가야 했고, 가족이 붕괴되기 시작한 한국, 97년으로 가자!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기억의 밤> 스틸 사진.

영화 <기억의 밤> 스틸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장항준 감독은 "중산층의 붕괴, 가족 해체가 급격히 일어나던 때로 아들이 아버지를 지방 터미널에 버리고 오는 현대판 고려장이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며 "그런 이유로 영화에 망연자실한 일용직 노동자 표정 등을 정말 잘 담고 싶었다"고 시대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주특기와 희망사항

앞서 밝힌 대로 장항준 감독은 코미디가 장기다. 그런데 최근작까지 무게감 있는 스릴러물을 선보였다. 영화로 재기가 쉽지 않았던 때 코미디를 다시 맡았다면 수월했겠지만 그는 "사실 코미디를 하자는 제안도 많았는데 끌리지가 않았다"며 변화 지점을 언급했다.

"영화 하나가 이미 엎어진 뒤라 막 가라앉던 시기였다. 투자고 뭐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카페 구석에 가서, 거기가 지겨워지면 다른 카페에 가서 1년 간 찬찬히 썼다. 보통 제가 초고를 굉장히 빨리 쓰는 편이거든. 1달이면 초고를 내고 언제 촬영에 들어갈 건지 계획을 짜는데 이 작품은 그게 전혀 없었다. 

감독은 언제 어떤 작품이 자신의 유작일지 알 수 없잖나. 그런 와중에 시나리오를 딱 끝냈고, 장원석 대표에게 보여줬다. 1996년 <박봉곤 가출 사건>을 한창 쓸 때 장 대표는 제작부 막내였다. 그때 인연이지. 좀 봐달라고 했는데 보자마자 재밌다고 만들자고 하더라. 그를 믿었다. 잘 나가는 제작자니까(웃음). 아내 김은희 작가 역시 초고를 보고 '잘 될 것 같다' 하더라. 장 대표에게 스태프 인선까지 다 맡겼다. 내가 데리고 온 스태프는 음악 감독 뿐이었다. <싸인> 때 알게 됐고, 그땐 인연이 안 됐지만 이번에 같이 하자고 해서 합류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김태훈 음악 감독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휘 전공인 47세의 김 감독은 <기억의 밤>으로 데뷔하게 됐다. 영화에 적절하게 담긴 노래들은 모두 그의 의견으로 헝가리 현지에 가서 직접 악기들을 녹음한 결과물이다. 

 장항준 감독.

ⓒ 메가박스 플러스엠


코미디와 함께 그의 주특기는 이야기에 적절하게 녹이는 사회 비판 내지는 문제의식이다. 심지어 지난해 도움을 준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도 재벌의 승계 문제를 넌지시 짚었을 정도. <기억의 밤>으로 가족 해체 문제를 건드린 그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갔지. 피터지게 경쟁했더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됐다. 세계 경제 11위 국가라는데 행복이 아닌 가장 불행한 사회가 된 거지. 우리 세대는 현재를 한탄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반성해야지. 근데 모 정당은 '청년들이 열심히 안 한 탓'이라고 타박하잖나(웃음). 계층의 사다리는 없어지고 부가 세습되는 사회가 된 것 같다. 다들 어렸을 때부터 마음대로 못 놀고 공포에 질려 있다.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 없고 다 학원에 가 있더라.  

그런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전쟁처럼 공부하고 대학 나오면 비정규직이 된다. 결과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경제 발전한 게 틀렸단 게 입증된 셈이다. 천천히 가면 옆도 보고 뒤도 볼 수 있을 텐데.... 국가는 가난한 자들의 편이어야 한다. 부자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잘 살지 않나. 근데 부자 증세한다고 뭐라고 하다니. 저랑 와이프는 세금 다 내고 있다! (웃음)"

채플린의 후예

 영화 <기억의 밤>의 한 장면.

영화 <기억의 밤>에서 형제들은 납득 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애써 믿으려 하며 동시에 조금씩 의심을 쌓아간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여러 자리에서 장항준 감독은 영화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진지하면서도 전복을 꿈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후예', 다른 하나는 유쾌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찰리 채플린의 후예'다. 이 말을 그에게 적용했다. 그의 욕망과 변화 지점을 보면 장항준 감독은 아마 '히치콕을 닮고 싶은 채플린의 후예'가 아닐까.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자의 길을 동시에 가고 있는 그의 현재를 잘 설명하는 문장 같았다. 크게 웃으며 그가 "제 정체성을 유감없이 말해준 것 같다"고 화답했다. 

"그치 지금 전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지, 잘하는 걸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만족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어느 새 이야기를 짜는 건 습관이 됐다. 노트에 그때마다 메모해놓거든. 핸드폰으론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똥이 안 나오는 볼펜으로 써야 한다(웃음).

웃긴 게 집에서 IPTV로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영화는 안 보고 장면 구성을 고민하고 있더라. 저 배우 말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뭐 이렇게 상상하는 편이다. 소설을 읽다가도 판권을 따지게 되고. 솔직히 글 쓰는 것 자체는 너무 고통스럽다. 언제 영화가 될지 기약도 없고. 근데 촬영 현장에 있으면 그렇게 신난다. 대학 때 연기를 공부한 게 그땐 못 느꼈지만 지금에 와선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감정과 동선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니 말이다." 

간접적으로 장항준 감독은 연출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내비쳤다.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걸 한번 경험하면 중독되고 만다"며 그는 "환갑 때 촬영현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60세 생일 감독 의자에 앉아 촬영을 지시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장항준 감독 역시 활짝 웃고 있었다.

장항준이 던진 <기억의 밤> 속 떡밥들
영화 <기억의 밤>은 스릴러 장르이기에 기본적으로 추격의 요소가 있고, 수수께끼 같은 설정도 꽤 있다. 이중 장 감독이 작심하고 숨겨 놓은 설정 몇 가지를 공개한다.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하나하나를 되짚어보고,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관람하길 권한다.

1. 진석은 왜 재수생이 아닌 삼수생일까.
"형에게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동시에 존경해야 했다. 엄친아를 존경하는 동생의 처지가 절박하길 원했다. 게다가 신경쇠약이 있으니 삼수생이라면 그걸 굳이 설명 안 해도 이해될 것 같았다."

2. 유석은 왜 19일 만에 돌아올까.
"가장 유족이 애가 타는 시점, 경찰이나 수사관이 포기할만한 때가 사건 발생 후 3주일 정도더라."

3. 진석이 이사 와서 책장에 처음 꽂는 책이 <장미의 이름>인 이유.
"폐쇄된 수도원 이야기를 다룬 그 소설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싶었다."

4. 진석이 영어 공부 중 사전에 형광색으로 칠하는 단어 'hypnosis'.
"최면이라는 뜻으로 이 역시 사건의 실마리를 가늠하게 하는 키워드다"

소소한 이런 설정 이야기와 함께 장항준 감독은 지면을 빌려 출연한 김무열, 강하늘, 그리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한번도 고마움을 표현 못했는데 꼭 만나면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그가 덧붙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백석을 사랑했기에 기다렸다, 그 사랑에 이유는 없었다

inter:view -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배우 곽선영의 여백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인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작품의 재연 공연 오디션이 있던 날, 현장은 '이 배우'가 자야 역에 지원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에 술렁였다고 한다. 아직 이 배우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없는 오세혁 연출은 속으로 다짐했단다.'아무리 유명한 배우라고 해도, 나는 연출이니까 인지도와 관계없이 엄격하게 심사해야지.'하지만 한복도 입지 않은 채 이 배우가 오디션장에 들어선 순간, 오세혁 연출은 속으로 외쳤다고 한다.'자야다!'그렇게 오디션을 치른 배우 곽선영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재연 1차팀에 더블 캐스팅으로 무사히 합류하게 된다. 정작 배우는 이런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며 부끄러워했다. 곽선영은 그런 배우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실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로에서 신뢰받는 배우이지만, 그 스스로 항상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낮춘다. 스스로 칭찬하는 데 인색하고, 자신의 모자람을 아쉬워하면서도, 작품과 인물에 대한 애정과 신념은 굳건하다.지난해 뮤지컬 <줄리 앤 폴> 리딩 때 만난 이후(관련 기사: 사랑은 세상을 바꾼다, 그녀는 아직 기적을 믿는다) 1년 여 만에 재회했지만, 그는 변한 게 없었다. 질문 하나마다 숙고해서 천천히 뱉어내는 대답도 그대로였고, 달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눌변도 아닌 담담한 화법도 여전했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하기 보다는, 순리대로 흘러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연기하며 노래하는 배우. 이 작품을 만나서도 그는 거스름 없이 자야의 애달픔을 받아들였고 그대로 무대에서 객석으로 옮기고 있었다.지난 6일, 서울 대학로의 카페에서 배우 곽선영이 덜어낸 여백을 들여다보았다.그냥 좋아서 고른 작품, 그 인연 "그냥 지냈어요, 잘. (웃음) '열일'하겠다는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바로 작품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좋은 작품이 바로 있었다면 시작했겠지만 그때는 잡혀 있는 스케줄이 없었죠. 뮤지컬 <사의 찬미>도 이야기는 되고 있었지만 확정은 아니었고요. 다행히 복귀를 생각할 무렵에 제안을 받아서 모든 게 딱딱 떨어졌죠. 대본도 열심히 보고, 노래도 다시 연습하고 광고도 열심히 찍고…. (웃음) 차근차근 준비했어요.원래 <사의 찬미> 끝나고 <줄리 앤 폴>은 하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사의 찬미> 연습하는 기간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오디션 제의를 받았죠.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역할이기도 했기에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아서…. 갑자기 몰아서 열일을 하게 됐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좋죠 저는. 사실 연말에 <줄리 앤 폴> 이후엔 또 없는데? (웃음)"<줄리 앤 폴> 리딩 공연 당시 인터뷰 때 '열일'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작품으로 돌아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가 대학로로 돌아온 건 예상치 못한 잉태 소식에 중도 하차했던 '윤심덕'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면서부터였다. 뮤지컬 <사의 찬미>를 마친 후 연말에 본 공연으로 돌아오는 <줄리 앤 폴> 합류도 예상했던 바였다.하지만 <사의 찬미>와 <줄리 앤 폴> 사이에 그의 새 필모그래피가 추가되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많은 배우가 참여하고 싶었던, 그래서 꽤나 치열했던 오디션을 통과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곽선영은, 자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음을 애써 증명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물론 어디까지나 외부의 여러 평가 중 하나일 뿐, 곽선영 개인은 이런 이야기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다만,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초연을 봤는데, 이게 가사의 전부 그리고 대사의 일부가 백석의 시잖아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신기하게 인물의 정서가 다 와 닿는 거예요.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이런 거야?' 저는 시에 대해 잘 모르고, 시집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충격을 받았죠. 또, 이 작품의 넘버(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도 대단하더라고요. 서정적인 느낌을 노래를 통해서 콱콱 쏘니까….공연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여운 끝에 '아, 나도 하고 싶다. 저거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디션 보러 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죠."그렇게 본 오디션이었는데, 곽선영은 자신이 "어쩌다 보니" 통과했다고 설명한다. 그저 기억나는 건, 노래와 대사가 끝난 후 오세혁 연출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자신이 내놓은 답이었다. 그때의 질문과 답변을 배우가 복기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 작품에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디션을 마쳤는데, '이 작품을 왜 하고 싶으세요?'라고 오세혁 연출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그냥 좋다'고만 얘기했어요. 그냥 좋더라고요. 물론,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들이 당연히 있긴 했죠. 하지만 마냥 좋았고, 좋으면 그런 세세한 이유는 굳이 필요 없는 거잖아요. 연출께서 그 대답이 마음에 드셨대요. 연출도 그냥 좋으면, 그게 좋으신 분인가 봐요. (웃음)"'좋아한다'는 감정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을 다 하나하나 풀어내기 보다는 그저 뭉뚱그려 '좋아서'라는 말로 표현할 때가 더 적확한 때가 있다. 배우가 작품에 매료된 것도, 연출이 배우를 마음에 들어한 것도 그저 '좋아서'였다. '좋다'라는 말의 함의가 이렇게 크고 넓은지를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아마도 자야가 바보 같을 정도로 백석을 기다린 것도 그가 '좋아서'였을 테다. 이런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곽선영과 자야는 어쩌면 비슷한지도 모른다."저와 자야 여사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대가 다르니까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그녀가 이해됐어요. 나도 그때 태어났으면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자야가 백석을 기다리는 것에 공감해요. 그녀에게는 백석이 전부이니까요. 멀리 돌고 돌아서 오더라도 어쨌든 결국 나에게 돌아오잖아요.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은 나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 오랜 기다림을 감내했던 것 같기도 해요.물론 후회도 했을 것 같아요, 수없이. 때로는 원망도 하고. 때로는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다독이기도 하고…. 그런 게 반복됐겠죠, 평생. 그러다가 백석의 시가 세상에 나오면서, 그 시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을 것 같아요. '백석이 나를 사랑했구나'라고. 나를 사랑하는 백석을 그 시 안에서 발견했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했다는 확신이 생겼으니 그거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오로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살았다는 것으로 풀어가는 극이지만, 그게 정말 맞다면, 다른 건 필요 없는 상태이지 않았을까요.그렇다고 실제로 백석 같은 사람은 싫어요. 싫어요!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사랑하면, 그 말에 책임지는 건 곁에 있어주는 거잖아요.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좋을 때 같이 나눠주는 게 사랑인데, 그분은…. (웃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이 여인도 주고, 저 여인도 주고, 나(자야)도 주고! 그걸 자야 여사가 알았을지 몰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자유로운 영혼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전 싫어요. 어, 그러네! 자야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네요. 그 사람이 왜 좋을까?이건 사실 <사의 찬미>에서 윤심덕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김우진이 왜 좋을까?'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왜 좋을까'라는 이유를 세세히 찾지 않았어요. '좋았으니까. 너무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랬겠지'라고만 남겨뒀어요. 그 사랑을 믿고, 저는 그 외의 것들을 수행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저는 말할 수 없거든요. 진짜 사랑하면, 그 이유를 세세하게 찾을 수 없잖아요." 감정은 자주 논리적이지 않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도 않고, 특별한 계기나 분명한 조건 없이 타오르기도 하고 사그라지기도 한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또 어떨 때는 그 부분을 굳이 만들지 않고 여백으로 남기는 게 더 와닿을 때도 있다. 자야가 백석을 사랑한 이유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야를 만드는 과정에서 곽선영이 접근하는 방법도 약간은 여지를 남기는 식이었다."지금 참여한 배우들이 모두 <백석 평전>과 <내 사랑 백석> 두 권은 기본적으로 읽었어요. 자야 여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그 책을 중점적으로 봤고, 그 둘 사이의 관련된 기사라든가, 자야 여사가 백석의 연인이라고 주장했을 때 아니라고 반박했던 글들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그만뒀어요. 이 작품이 얘기하고 싶은 건 백석에 대한 자야의 사랑이고, 그녀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잖아요.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이 너무 주관적이기도 하고 미화된 그녀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걸 온전히 믿어주자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랑에 중점을 두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정보는 차단을 했어요."덜어내는 법에 대하여 지난 초연 때 자야 역을 맡았던 최연우 배우는, 인터뷰 때 자야를 만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입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했다고 답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천재시인 백석의 연인, '논란의 나타샤'를 되살린 여인) 절제미가 돋보이는 담백한 작품이기에, 배우도 자연스레 색을 덧칠하기 보다는 빼내는 것일까.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작품, 같은 역을 맡은 다른 배우가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참 신기하게도, 배우 곽선영도 자야를 통해 배운 바가 최연우와 비슷했다."자야는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하다못해 전작(<사의 찬미>)에서는 '널 사랑해', '널 증오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직접적으로 다 표현했잖아요. 하지만 여기선 '가지 마'라고 하고 싶어도 '갔다 와'라고 보내주고…. 제가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표현하지 않고 담아내는 점, 참아내는 점, 아끼는 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참아내고 살아냈는지.덕분에 비워내는 것과 덜어내는 것의 '귀함'을 배웠어요. 저희가 작품을, 캐릭터를 맡아서 작업을 할 때 실존인물의 경우에는 그의 역사가 있잖아요. 배경과 자료들이 많으니까, 그거를 안고만 있어도 충분히 인물이, 역할이 창조가 되는 건데…. 생각으로 그렇게 하고, 마음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사람 본능이 자꾸 무대에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윤심덕은 여기서 더 치명적이어야 해'라든지, 아니면 '여기서 이런 사연의 슬픔을 더 보여주고 싶어'라는 욕심이 생기죠.그런데 이 작품은 안 하면 안 할수록,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담백해지고 더 멋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뭐를 안 해야겠구나. 뭔가가 채워졌다면, 무언가를 더 안 해도, 그게 더 좋을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그렇게 비워둔 만큼,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곳이 생겼다. 작품이 올라오는 무대가 바뀌었기에 조금은 공간감이 달라지고, 동선 등 자잘한 요소들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초연에 이어 재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관객의 사랑을 널리 받고 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관객들이 보내주는 사랑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 더 애쓰고 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작품에 감동했던 배우이기에, 자신이 느낀 감동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관객분들께서 이 작품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걸 느껴요. 일단 많이 우신다는 건, 그만큼 같이 느끼고 공감해주신다는 얘기니까요. 집중해주신다는 얘기니까요. 객석도 많이 차고. (웃음) 관객분들이 다 촉촉해지시더라고요.어쩌면 제가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공연을 봤을 때, 보고 나서 여운이 한참 남았던 것 같은 게 아닐까요? 저도 그 여운이 남았고 백석이 궁금해졌고 백석의 시가 궁금해졌어요. 생활이 바빠서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그 몇 가지 찾아본 것에서도 또 깊은 감명을 받았죠. 그렇게 백석의 시를 알고 나니까 이 작품을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 순환이 생겼는데, 관객 분들도 그런 걸 똑같이 느끼지 않으셨을까요? 자꾸자꾸 궁금하고, 자꾸자꾸 새로운 걸 발견하시니까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자야와 같이 느끼고,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재밌으니까 또 보러 와주시고, 웃음과 감동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자야의 마음을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그냥 시를 한 편 본 것 같은 여운을, 제가 느꼈던 여운을 관객 분들도 똑같이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10월 19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오는 2018년 1월 28일까지 상연된다. 하지만 이번 재연에 새롭게 합류한 1차 팀 배우들은 곧 하차하고, 초연 때 같이했던 배우들의 2차 팀으로 개비된다. 곽선영의 자야는 오는 12월 10일이 마지막 공연이다. 남은 회차는 이제 단 여섯 번뿐이다."너무 아쉬워요. 저희들 다 똑같이 그 얘기 하거든요. 두 달 동안 연습 정말 뜨겁게 했고, 그에 비해 공연이 너무 짧은 거 아니냐는 생각을 전부 다 하고 있어요. 뭐 아쉬우면,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또 기회가 닿으면 더 잘 만들어서 와야죠. 아, 그래도 아쉬워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정말 이상한 공연이에요. 그만큼 애정이 있는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자야랑 재회할 수 있을까요? 음…. 나 쓸 거예요,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나 쓸 거예요? (웃음) 잘 모르겠어요. 음, 오세혁 연출이 절 불러주실까요? 만나고 싶어요. 한 번은 불러주겠...죠? (웃음) 특별한 일정은 아직 없고요. 당분간은 쉽니다. 또 좋은 기회가 오면, 오디션이든 작품이든 참여해야죠. 내년 봄 전까지는 쉬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은. 일부러 광고만 찍는 건 절대 아니고요! 광고 쪽에서 저를 찾아주셔서요. 왜 공연은 나 안 찾아주지? 공연도 저 찾아주면 좋은데, 무대하고 싶은데…. 작품이 없네, 나를 찾는 작품이 없어. (웃음) 아직 이야기가 되고 있거나 연락을 받은 작품은 없어요. 좋은 기회가 또 오겠죠."

진선규 "루저같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유명해져 겁난다"

[오마이픽업] <범죄도시> 이전 그를 채운 수많은 작품들... "버티면 언젠간!"

이 말에 객석에선 '천천히 해요'라는 말이 들렸다. 지난 38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진선규는 그렇게 3분이 넘는 시간동안 눈물을 쏟으며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 이름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말했다.여운은 여전했다. 14년 연기 경력에 영화로 받은 첫 상,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듯 대학로에서 진선규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도 당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 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일 서울 홍대입구 인근에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 <범죄도시> 속 흑룡파 위성락은 온 데 간 데 없고, 차분하면서도 선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 "수상 이후 기사는 꼼꼼히 찾아봤는데 너무 지질하게 운 것 같아서 영상은 차마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그가 수상 이후의 소회부터 전했다.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 마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심혜진씨가 진선규의 동창이라며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 글을 보낸 터였다.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에 그 친구가 혹시 나오는지 궁금했다"며 "진선규는 동창들 덕에 그때 사진을 찾아보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청룡상 최대 스타? 30년 전 '까불이' 진선규를 기억한다 http://omn.kr/oowj )그의 수상소감 마지막 말을 묻고 싶었다. 수상 무대에서 내려오기 직전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마치 주문을 걸 듯 다짐처럼 들린 이 말의 참뜻은 무엇이었을까.2004년 친구들과 극단 '공연배달 서비스 간다'를 만든 이후 그는 꾸준히 달렸다. 무대에서 어느새 몸을 잘 쓰는 배우로 소문이 났고, <칠수와 만수> 같은 문제작을 비롯해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같이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트렌디 작품도 경험했다. 무대 작품만 서른 편이 훌쩍 넘은 진선규가 말한 '체크'는 관객의 호응도가 아니었다.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나 혹은 관객 분들이 아닌 동료들이 결정하는 것이더라"며 그는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지가 중요했고, 동료들에게 우리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걸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떨어졌던 <범죄도시> 오디션 사실 <범죄도시>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인생작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저 역할을 따내고 싶었다. '알려진 배우보다는 잘하는 배우'를 뽑고자 했던 강윤성 감독의 생각에 그 역시 1200명 넘게 본 오디션의 응시자로 갔으나 탈락했다. 악한 위성락의 모습과 다른 그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었다.북한군, 기자, 회사 대리 등 진선규는 영화 속에서 특별한 이름 없이 스쳐가는 단역이었다. 그러다 <사냥> 때 어엿한 배역 이름을 가졌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까진 누구와 연습하는 게 아닌 그저 제 분량만 잘 준비해 가는 정도였다"며 그는 "공동창작의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범죄도시>에서의 경험이 너무 제겐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버티다 이 지점에서 진선규는 두려움을 언급했다. 대학로에서 지낸 10여 년을 돌아보며 그는 처음 배우라는 걸 마음에 품기 시작한 계기를 언급했다. 경남 진해 고등학교 3학년이던 당시 그는 한 극단에 놀러 가서 본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었다.그러면서도 진선규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의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망설임 없이 고백했다. '전혀'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그는 자신 보다 앞서나간 동료 배우들을 소개했다.함께 연기하는 동료 그리고 아내이자 배우 박보경, 두 자녀가 그의 삶의 동력이었다. "아내가 (연기에 대해) 쓴 소리도 하고 가장 무서운 모니터"라며 "아내가 공연 보러 올 때가 가장 무섭다"고 웃으며 말했다.가위손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을 비롯해 영화 <특별시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남한산성>, <꾼>, <범죄도시> 등 올해 바쁘게 달렸던 진선규다. 현재도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번갈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극단에 공연을 잠시 쉬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름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그는 영화 <가위손>에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빗댔다. 뭔가 무서워 보이고 낯설어 보이지만 다가가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존재. 연기와 극단이 그에겐 그런 존재이자 공간이었다."정말 됩니다!" 인터뷰 말미 진선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자에게 말했다. 스스로 증명해 낸 결과라 그만큼 그 말이 묵직했다. 마침 인터뷰 당일 저녁 "대학로 동료들과 만난다"며 "못다 한 얘길 하고 싶다"고 환히 웃었다.

  • inter:view 다른 기사

  • 옆으로 쓸어 넘길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