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무원 아영 역을 맡은 배우 정연주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는 기자의 질문에 “다 잘 할 수 있다”며 “뭔가를 하고 싶기 보단 뭐가 왔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무원 아영 역을 맡은 배우 정연주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는 기자의 질문에 “다 잘 할 수 있다”며 “뭔가를 하고 싶기 보단 뭐가 왔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유성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무원 아영 역을 맡은 배우 정연주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무원 아영 역을 맡은 배우 정연주ⓒ 유성호


개봉 후 감동 코드로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중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엔 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웃음을 주는 캐릭터 중 이른바 '구청 3인방'은 분명 눈길을 끄는 이들이다. 그 세 명 중 배우 정연주(27)를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전출 온 민재에게 대뜸 "제가 어려보이죠? 어린 나이에 일찍 합격해서 그래요"라고 말을 건네는 아영은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8급 공무원. 그러니까 9급인 민재보단 한 직급 높은 선배다. 선배라고 윽박지르는 게 아닌 하나하나 일을 알려주거나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며 은근히 꾀려 하는 등 '오지라퍼'이기도 하다. 기능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캐릭터를 정연주가 잘 살려냈다.

정연주의 해석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잖나. 감독님도 그런 걸 주문하셨다. 배우들끼리 모여서 준비하는데 '자, 우린 업무 끝나고 회식하는 사이는 아니다' 이렇게 관계를 정해 놨다. 자기 할 일만 하고 나머지는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민재가 구청에 새로 왔고, 제 캐릭터는 8급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고 선배로서 괜한 책임감이 있는 인물로 해석했다."

마침 정연주의 친척 중 공무원 일을 하는 이가 있어 힌트를 얻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일 줄 알았던 공무원들이 알고 보면 예쁜 옷도 잘 입고, 여가도 소중히 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여기에 실제로 몇몇 공공기관을 방문하며 관찰한 모습들과 스스로 시나리오를 보며 생각한 몇 가지 정보를 아영이라는 인물에 녹였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등장하는 구청 3인방. 맨 왼쪽이 바로 정연주가 맡은 아영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등장하는 구청 3인방. 맨 왼쪽이 바로 정연주가 맡은 아영이다.ⓒ 명필름


"영화 보면 구청 내 계단에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한 기관에 갔을 때 물어본 적이 있다. 누가 스티커 붙이는지, 어떻게 붙이는지 말이다. 나머지 아영의 모습은 이미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담겨 있어서 특별히 애드리브 이런 걸 하진 않았다. 음... 아영에 대해선 서울에 살며 자취를 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웃음도 났고, 눈물도 글썽였다. 이거면 됐다 싶었다. 제가 재밌게 봤고 이게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는데 생각했던 거 보다 생생하게 나와서 뭉클하더라. 

진짜 다들 노력하셨구나 생각했다. 나문희 선생님은 특히 감사했다. 현장에서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다 뼈가 있다. 그만큼 통찰력을 가지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많이 배웠다. 가끔 제게 사탕도 쥐어주셨다. 함께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 크게 긴장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선생님과 부딪힐 때 편하게 하게 되더라. 이제훈 선배랑은 (학교 선배긴 하지만) 따로 만나서 맞추진 않았다. 그런대도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연기적 갈망

단편 영화 <손님>(2012) 등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받는 등 일찌감치 실력파로 알려졌지만 대중은 그를 예능 프로 < SNL코리아 >의 모습을 많이 기억한다. 20대 중반의 배우로서 자칫 이런 현실에 조급함 내진 불편함을 느낄 법 한데 돌아오는 답이 의외다. "맞아요"라고 맞장구치던 정연주는 "독립 영화도 단막극도 드라마도 했는데 참여한 여러 작품 중 하나가 잘 알려졌다면 달랐겠지만, 그 프로로 인지도가 생겼다"며 "특별히 아쉽거나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 크다. 유치원 행사 때 사회를 보고, 초등학교 장기자랑 시간에 손들고 나가 춤을 추는 등 끼가 있었던 동시에 평소엔 내성적이었던 정연주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됐지만 할수록 더 재밌고,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크다. 어릴 땐 요리사 등 여러 꿈을 갖고 있다가 고등학생 때 결심한 게 연기자였다. 처음엔 춤을 배우다가 자연스럽게 연기 선생님을 만났고, 그 분이 지금의 학교 선배이신 이상은 배우다. '연기 해볼래?' 직접 제안은 아니었지만 절 좀 특별하게 봐주셨다. 자연스럽게 이 길로 온 거 같다. 근데 제가 훌륭한 후배가 아니라 선배가 절 부끄러워 할 건 아닐지... (웃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진 배우가 되자는 목표에만 집중했었다. 그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요즘 들어 고민이 많다. 내 목표 의식이 흐려진 건 아닐까, 나태해진 건 아닐까 등등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인터뷰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본인이 갑자기 해이해진 것 같다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써왔던 일지 때문이다. 실전에서 잘 안 되는 점을 적거나, 사람들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걸 적는 등 정연주는 메모광이었다. "요즘은 잘 안 쓰게 돼서 반성한다"며 그는 "매 순간이 경험이라는 생각이 있다"고 연기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연기하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재밌다고 답할 수 있다. 제가 살아 있는 것 같다. 텍스트에 적힌 걸 실현하면 그게 살아 움직이는 거잖나. 대사와 상황을 토대로 주고받는 건데 그 안에서 소통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준비하는 건 참 힘들긴 하지(웃음). 제 경우엔 시나리오를 받으면 그 대사가 어떻게 나왔을지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해본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인물이 있는데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떨까? 그 지점을 찾아 이입하는 거지. 

그게 잘 안 되면 제가 겪었던 비슷한 크기의 사건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매순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려 한다. 지금 인터뷰처럼 제가 느끼는 어떤 기분이 있다면 그게 하나의 데이터로 생성되는 거지. 그래서 연륜과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연스러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무원 아영 역을 맡은 배우 정연주

“영화를 준비할 때 어떻게 하는가”는 기자의 질문에 “매 순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성호


연기의 폭을 넓히는 게 목표이지 특정 캐릭터나 장르를 원하고 있진 않았다. 정연주가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어떤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바로 본인이 답을 이어갔다.

"다 잘 할 수 있다! (웃음) 뭔가를 하고 싶기 보단 뭐가 왔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 음, 구체적으로 생각해볼까. 인간적인 작품을 하고 싶은 건 있다. 사실 <아이 캔 스피크>가 그런 면에서 제겐 좋은 영화였다. 사람의 마음을 대충 다루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걸 잘 표현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기본기를 잘 갈고 닦아야 할 것 같다. 

조급함을 갖고 있진 않다. 물론 느낄 때도 있지. 뭐 조급해한다고 뭔가 달라지는 건 없고, 그냥 넘긴다. 제 모습을 대중들께 특별히 어필하기 보단 그냥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아주시지 않을까? 아직 한 작품을 주연으로 이끌어 가는 걸 안 해봐서 절 엉뚱하다거나 웃긴 배우 등으로 생각하실 순 있겠지. 앞으로 또 다른 걸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납득하실 거고 이해해주실 것 같다."

다행인 건 당장 올해 말 그의 또 다른 신작 영화 <늦여름>과 <아기와 나> 등이 개봉한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여기에 활동하면서 빼먹은 학교 수업도 열심히 따라갈 계획이다. "혼자 여행을 좀 다녀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도 이뤄지면 금상첨화. 그가 참여한 작품 수 이상으로 정연주는 보일 게 많다. 더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변화할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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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이 뜰수록 욕먹는 배우 "일본인이냐고 묻지 마세요"

[오마이픽업] 재일교포 3세 배우 김인우, 그가 매번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이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온 몸을 던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에 약 230만의 관객이 반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다룬 영화 <박열>은 단순히 반일을 외치지 않고 부당한 권력, 불온한 억압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 영화에 인색했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주인공과 정확히 반대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영화 속에서 내무대신까지 승진하는 미즈노 렌타로다. 이 역을 소화한 배우 김인우를 11일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정치적 희생양 찾기'조선인에겐 영웅, 우리에겐 적이 되는 적당한 놈'. 미즈노는 박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큰 대사다.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거고, 여기서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니"라고 김인우(48)는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인터넷에 사진과 행적 등 비교적 정보가 상세히 나오는 이 실존인물을 재일교포 3세인 그가 온몸으로 품었다. "간단히 말하면 미즈노는 나라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건데 잔머리가 있다.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지. <동주> 속 형사는 송몽규와 윤동주를 취조하면서 점점 변하잖나. 그 인물 역시 국가를 위해 일한 건데 동시에 국가에게 희생당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몽규와 동주 모두 죄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취조를 한다. 내 스스로는 만주에 자기 동생 역시 끌려가 있는 인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취조하면서 두 청년 모습에 자기 동생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거지.""두 영화의 메시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평화라는 걸 그리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많은 일반인들이 희생당한다. <박열>엔 그 장면이 직접 그려지고 <동주>엔 없다는 차이일 뿐이지.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역시 제국주의를 원망하며 맞서잖나. 국가가 지도하고 시킨 일에 대해 우린 알아야 하고,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묻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좋은 사이가 되려면 일본이 먼저 만행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한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로 나서야 하고. 그게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아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실제로 영화를 보며 역사를 배우는 일본인도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 거짓말하면 문제가 커지지 않나. 일본 내 우익이라고 하나? 그들은 아마 안 믿을 것이지만 일반인들은 영화로 배우는 점이 많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일본에서 인기가 있겠는가. 이런 영화로 잘 전달해나가야 한다.""감독님은 주문을 잘 안 한다. 이거 잘 말해야 하는데(웃음). <동주>에선 잔잔하게 목소리를 깔아 내뱉는 느낌으로 했다면, <박열>은 마치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최희서와 이제훈이 확 몰아치면 난 슥 빠지고, 그들이 약해지면 내가 몰아치는 거였다. 내가 오버해서 다가가지 않아야 했다.그리고 함께 일본인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한 달 반 정도 따로 홍대 쪽 연습실을 빌려서 계속 만났다. 이들 이름을 꼭 써 달라! 간수 후지시타 역의 요코우치 히로키, 다테마스 검사 역의 김준한, 내 옆에 꼭 붙어있던 경시총감 박성택. 이렇게 네 명이서 맞춰봤다. 이렇게 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일단 다들 무명배우라 시간도 많았고(웃음), 중요한 역이니 일본어가 어색하면 관객 분들이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미즈노는 기술적인 면이 요구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소품도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했다. 조감독에게 이것저것 요구했지.""그렇다. 대본엔 앉아서 말하는 신이 많았다. 관객이 지루해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만나서 연습할 때마다 아이디어를 모았다. 종종 서서 걷는다든가, 돌아가는 의자에 앉는다든가, 거울과 미즈노의 족집게, 재떨이와 펜 등 모두 우리가 연습하면서 하나씩 나온 아이디어다. 큰 건 연출부에서 준비하는데 디테일은 배우들이 직접 모의 연기하면서 채울 수 있거든." 역사 영화에 대한 갈망18세 때부터 본격 연기수업을 받기 시작한 이후 차곡차곡 쌓아온 30년의 연기경력. 그의 삶은 일본과 한국으로 나뉜다. 지난 2009년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계기로 그의 연기 인생 2막이 올랐다. 서툰 한국어 발음과 이미지로 대부분 기능적인 일본인 캐릭터를 맡아 온 그는 공식석상에서 "한국인 배우"임을 매번 강조한다. 일본 활동 당시 연기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다가 동네 이웃들의 모함으로 일거리가 끊기는 등 차별과 억압을 몸소 겪었던 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물었다."(처음 하는 얘긴데)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가 역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제 강점기를 영화화 한 게 내가 한국에 오기 전까진 많지 않았다. 하나의 목표였다. 조부모와 어머니에게 역사를 배웠고, 조총련 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다. '(비극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언젠가 영화라는 예술 안에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근데 막상 <동주>나 <박열> 대본을 읽는데 마음이 심상치 않더라. 내가 듣고 배운 것보다 훨씬 심한 얘기가 나오잖나. 마음을 못 잡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근데 난 반대의 위치에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야 했다. 그 역할로 들어가기 위해 그 사람으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개인감정을 지우려했다.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게 뭔가. 이 질문을 내게 계속 던졌다.""강한 편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오히려 일본 역사를 모르는 편이다. 난 재일교포고 어릴 때부터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동주>와 <박열>이 내겐 역사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배우는 또 그걸 진짜처럼 느껴야 하잖나. 사진과 책으로만 보던 걸 연기할 때 그들의 피가 (내게) 스며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강하다. 사료엔 일부만 나와 있는데 영화 대본은 전체적으로 풀어주니까. 특히 관동대학살은 한 명에게 죄를 몰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끝까지 밀고 갔다는 게 참…. 지금 정치권과 똑같지 않나? (자기네) 이슈가 나오면 또 다른 이슈로 묻어버리려는 속성." "한국영화가 내겐 빛이었다" "(웃음) 그땐 내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꽃이 물을 안 맞으면 시들잖나. 그 영화를 보고 물과 햇빛을 받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건강, 아니면 돈 이 중 하나라도 그때 내게 있었다면 좋았을 건데 다 없었다. 힘든 생활에 너무 과음해 의사가 술을 더 마시면 죽는다고 할 정도였다. 아, 바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할 때 <집으로>가 내겐 물이자 빛,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온 몸에 소름 돋는 느낌 혹시 아시나?""종교에 잠깐 들어갔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내 걱정을 계속 해주시더라. 그곳에서 준 책에 어떤 말이 써 있었는데 그 말에 내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잡아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까진 날 위한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남을 위한 연기도 가능하단 걸 알게 됐다. <집으로>를 보고 내가 희망을 얻었듯 말이다. 사람은 도움을 주고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안 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연기 개념이 달라진 거지.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한국에 처음 와서 차별을 겪었다. 택시를 탔는데 서툰 한국말에 기사님이 반갑다고 일본인이냐고 말을 거시는데 재일교포라고 하니 안색이 싹 바뀌면서 내리라고 하더라. 내 주변 동생들도 그런 일을 겪더라. 슬펐다. 일본에서 난 외국인인데 한국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 거니까 내 나라가 없는 거 같고 화도 났다.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사명감도 생겼다. 여러 동생들이 날 믿고 따라 오는데 일본인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말한다. 어제 기사 댓글에 '재일교포 3세면 일본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있더라. 마음이 안 좋았다. '조부모가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에서 태어났을 뿐, 내 피는 한국인이다. 당신이 만약 외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산다고 한국인이 아닌가?'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귀화하면 내게 도움 될 게 많았다. 조총련이 북한 계열이니 해외에 나갈 때 미국령은 못가거든. 근데 내가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조부모가 그간 쌓아온 모든 고생을 배신하는 거다. 일본 활동 때 (잠시) 다무라 히로토라고 한 적이 있는데 소속사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런 거다. 아, 그리고 나 배우좌 출신 아니다. 어느 기자 분이 잘못 쓰신 건데 계속 언급되더라. 내게 연기를 알려주신 스승님이 배우좌 출신이지 난 여러 극단을 전전했다. 꼭 수정해 달라." 그리고 운명 "아니, 어떻게 그 내용까지 아는가? (웃음) 고등학생 때였다. 경찰에 잡힌 적이 있는데 학교 안에서 누군가의 모함 때문이었다. 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내가 잡힌 거지. 난 부모님도 안 계셨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아이였거든. 그래서 <박열>의 감정을 잘 안다. 그 무렵 <의혹>을 처음 봤다. 분명 연기인 걸 아는데 진짜 같더라. 배우란 뭔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연기가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주저 없이) 다시 돌아가도 배우 할 거다! 근데 진짜 힘들었다(웃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세 가지 중 하나에 드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 말리고 싶다. 실제로 친구가 배우하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너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왜 난 연기를 지금까지 하냐고? 내겐 지금 남은 게 이것밖에 없다.""그 마음이 크다. 단역이든 뭐든 한국인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쌓아온 경력은 신경 안 쓰고 대사를 단 한 마디만 하더라도 하고 싶다. 내겐 도전이다. 지금의 내 (어눌한) 말투와 모습을 보면 감독님들은 아마 맡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맡으면 해내는 게 배우다! 해보고 싶다."<박열> 이후 <군함도> 그리고 <공작>에서 김인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한 연기, 그리고 아직 깨보지 못한 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연기 엔진이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든 일의 원인은 내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 역시 그의 단단한 내공의 이유일 것이다.

<범죄도시> 마석도의 따뜻함 뒤에 이 배우 있었다

[오마이픽업] 연극배우 출신 윤병희의 단역 인생... "할 수 있다는 믿음 항상 있다"

2007년 영화 <7급 공무원>으로 데뷔 후 20편이 넘는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웨이터, 사채꾼, 미결수, 교도관1, 병원환자1 등. 이름은 없었지만 배우 윤병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 오디션 첫 합격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7급 공무원> 때였다."연극 오디션은 소극장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내 것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영화 오디션은 제작사의 작은 사무실에서 보더라. 작은 방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카메라를 통해 날 바라보시는데 기댈 곳이 없었다. 내 모든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 쌀국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는데 바쁜 와중에 전화가 오더라.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 받았더니 합격했다는 연락이었다. 사장님이 축하한다고 맛있는 쌀국수 한 그릇을 내주셨다(웃음)."그때부터 카메라와 친해지려 했다. 이미 연극 무대에선 3년째 공연을 올리고 있던 그는 첫 영화 오디션 이후 절치부심했다. 이름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단역, 조연 캐릭터를 따냈다. 그리고 최근 흥행한 <범죄도시>에서 휘발유라는 배역으로 당당히 엔딩 크레딧의 한 줄을 채웠다. 휘발유가 누구냐고? 조선족 범죄자들의 일망타진을 노리는 마석도 형사(마동석)에게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중국 공안으로 위장해 결정적 도움을 주는 바로 그 캐릭터다.휘발유가 되기까지 흥행도 흥행이지만 <범죄도시>는 그간 전면에 드러나지 않던 실력파 배우들을 대거 발탁, 운용의 미를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진선규, 임형준, 허동원, 김구택 등 중견 조연으로 활약하던 이들이 주요 캐릭터를 고르게 맡았다. 이들을 뽑기 위해 강윤성 감독은 약 1000명이 넘는 배우들의 오디션을 진행했고, 윤병희도 그중 하나였다."자유연기와 지정연기를 보였다. <황해>에서 조선족 웨이터를 한 경험이 있고, <서부전선>에서 중공군 역을 해서 조선족 말투 연기를 준비해갔다. 오디션이 잡히는 순간 긴장과 압박의 연속이다. 이 분들이 날 원할까를 생각하며 그 지점을 정확히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보고 나면 아쉽거나 후련하거나 둘 중 하난데 <범죄도시>는 그 중간 정도의 감정이 들더라. 아니나 다를까 두 달 동안 연락이 없어 떨어졌구나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이 직접 오디션 본다고 연락이 왔다. 감독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감동받았습니다' 하시더라. 그냥 인사치레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절 신뢰했다는 생각이 들어 진짜 감사하더라. 현장에서 배우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다. 작은 역할임에도 스스럼없이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는데 본인 연락처를 주시며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 하시더라." 그렇게 해서 윤병희는 장첸(윤계상) 조직을 교란시키고 정보를 빼내는 평범한 조선족 휘발유로 분할 수 있었다. 영화에 많은 분량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나름 그는 "마석도 형사의 따뜻함이 왠지 휘발유를 통해 비춰질 수 있을 거 같아 그런 면을 중심으로 톤을 잡아갔다"고 말했다. 유효한 분석이었다."마석도가 악당에겐 무서운 영웅이지만 일반 조선족들에겐 용돈도 쥐어주는 따뜻한 형사지 않나. 휘발유로서 마 형사를 오래 알고 지낸 형처럼 대했다. 이걸 또 마동석 형이 너무 잘 받아주셨다. 그래서 마음 편히 할 수 있었지. 그리고 중국어 좀 하는 한국 배우가 아닌 정말 중국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휘발유가 중국 공안으로 위장했을 때 치던 대사를 지금도 할 수 있다(웃음). 진짜 많이 연습했거든.중국어 선생님에게 이런 상황과 대사에선 어떤 정서가 담겨있는지 하나하나 물었다. 대본 외적인 부분을 찾아보고 준비했던 거 같다. 이 말에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마음일지 등. 이렇게 작품 외적으로 준비를 해가야 내 스스로 안심이 된다."강한 확신올해로 서른일곱인 그는 두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하다. 14년의 연기 경력에 무대와 영화판을 전전해왔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확신에 찬 답을 했다. 작품이 없을 땐 각종 아르바이트와 단기 직장을 다닌다. 기자를 만났던 때도 그는 6살, 4살짜리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작은 쇼핑백 안에 담아 놓고 있었다. "신혼 때 배우와 가장으로서 잘해내야지 매우 강하게 다짐했던 적이 있다. 정작 그땐 1년에 두 번밖에 오디션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항상 난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가끔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생각할 때는 있지만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순간 그 생각이 들더라도 빨리 치워버린다. 가장으로서 이기적인 것 같지만 연기로 성공해야지, 다른 걸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거 같다. 이제 겨우 바닥에서 한 걸음 뗀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올라갈 계단이 매우 많은 거지.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교육자셨다. 제가 늦둥이에 외아들이라 어렸을 때 변호사나 법관이 되겠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다. 어른이 되면 그걸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커지면서 또 학업과 내가 멀어짐을 느꼈다. <교실 이데아>라는 작품을 중3때 봤고, 그 기억이 크게 남았다. 잊고 살다가 이왕이면 내가 하고 싶고 궁금한 걸 하자 생각한 게 바로 연기였다." 호기심과 강한 확신으로 시작한 연기자의 길. 단역임에도 그는 작품마다 느꼈던 바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중 그는 네 작품을 언급했다."(영화계 많은 조연, 단역 분들이 모인) <범죄도시> 현장은 아는 분들이 가장 많았다. 그냥 촬영장 공기 자체가 편했다. 배우들 중 숫기 없는 분들이 참 많은데 저도 낯가림이 심한데도 그곳은 편했다. 특별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아도 가벼운 인사를 하더라도 서로 힘을 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7급 공무원>은 영화 데뷔작이면서 어머니를 시사회에 모시고 갔던 첫 작품이었고, <황해>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사람들이 절 기억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부전선>은 크레딧에 '조연'이라는 걸 처음 달아봐서 기억에 남는다(웃음)."오디션 킬러이 정도 경력이면 친한 제작사나 영화인들은 당연히 있는 법. 인맥으로 알음알음 작품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윤병희는 한사코 오디션을 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아는 분이 제작하는 작품이라도 그 분 몰래 내 프로필을 넣은 후 오디션을 기다린다"고 말했다."지금은 스스로 증명하는 단계 같다. 내 입장에선 오디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장 큰 공부의 시간이다. 방금 전 오디션을 되새기면서 가는데 그게 묘하게 내게 맞아 떨어진다. 떨어지면 물론 후유증이 있지. 하지만 아쉽고 아프다는 건 그만큼 내가 열정적으로 준비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희일비 하진 않으려 한다. 내가 못해서 떨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날 제대로 못 보여준 오디션이 있으면 그게 그렇게 괴롭더라. 윤병희를 보여주는 시간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날 힘들게 한다. 지금까지 두세 번 정도 있었는데 그 기억이 참 오래간다."타인에게 처음 하는 얘기라며 윤병희는 자기 전 매일 떠올리는 주문 같은 말을 고백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한 배우가 되자'. "의식하든 안 하든 이 생각을 매일 하고 있더라"며 그 스스로도 놀라워했다.앞으로 출격 대기 중인 작품이 꽤 있다. 드라마 <투깝스>, 영화 <곰탱이>와 <국가 부도의 날> 등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영화와 드라마로 입지를 키워가면서 동시에 그는 무대에 대한 애틋함도 드러냈다."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무대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선배가 계신데 약속했다. 행복한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을 꼭 같이 무대에 올리자고. 막연한 약속이 되지 않게 내게 주어지는 걸 열심히 해야지. 어쨌든 배우는 쓰임을 받는 존재니까 찾아주시면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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