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 속 인간은 죽으면 자신의 삶을 '정산'받는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정산된 값어치는 달라지고, 그 정도에 따라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날지가 결정된다. 그러나 이 윤회의 과정은 따뜻한 성찰의 시간도 아니고, 엄정한 심판의 시간도 아니다. 그저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에 따라 계산된다. 말 그대로, 정산소에서 정산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제작된 시스템에도 오류는 발생한다. 광수가 그랬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언제나 승승장구했던 '성공'한 인간의 전형.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러 가는 길에 정산소의 착오로 그만 죽음을 맞게 된다.

정산소의 관리자들은 철저한 관료들이다. 이 실수를 굳이 상부에 알릴 필요는 없다. 보고서의 숫자만 맞추면 되니까. 그저 다른 사람으로 잠깐 돌려보냈다가, 다시 회수하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실수라고 당사자에게 통보할 필요도 없다. 마치 선의와 호혜에서 나온 일종의 기회라고 속인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잠깐 내려가서, 정해진 기한 내에 그 공간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중력을 찾는다면, 광수는 더 살 수 있다. 광수의 삶을 붙들어 맬 중력은, 본래 프러포즈하려고 했던 여자친구 '명하'의 마음이다. 광수는 명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이 게임을 수락한다.

반면, 정산소에는 환생하지 않고 계속 이 경계선에 머무는 이가 하나 있다. 자학은 자기 스스로를 혐오한다. 삶에 대한 욕구도 없고, 존재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인생이란 뻔한 설계대로 뻔하게 고통받다가 끝나는 그렇고 그런 것들. 사라지고 싶어서 자살을 택했는데, 사라지지 못하고 이렇게 영혼으로 남아 있는 것조차 괴로운 일이다. 이 골칫덩어리를 한꺼번에 치우기 위해 관료들은 은밀하게 제안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광수를 데려올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고사로 다시 정산소로 불러올 것. 이 게임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거였다. 그 조건은, 환생이 아니라 완전한 소멸. 염세주의자 자학은 이 조건을 수락하고 역시 다른 사람의 몸으로 광수와 함께 내려온다. 광수에게는 광수를 돕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산소를 아니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이다. 서로 다른 것을 욕망하는 이들의 이승 환생기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곽우신


지난 5월 18일 개막하여 오는 25일 커튼을 내리는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의 스토리이다. 1993년 초연 이후, 24년 만에 재창작 수준으로 손을 대서 돌아온 뮤지컬. 이 극의 출연 배우 중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배우 홍경인, 그가 자학을 맡아 연기하며 무대로 돌아왔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비해 공연 무대에서의 이력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마지막 공연 필모그래피는 2010년 연극 <트루웨스트>였다. 그리고 7년 만에, 그가 뮤지컬 무대를 선택했다.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 지난 11일 낮, 그의 무대가 궁금하여 일요일 낮 공연이 있기 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7년 만의 무대, 10년 만의 뮤지컬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곽우신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24년 만에 돌아온 작품 많은 것이 바뀌었고, 많은 일이 있었다. 배우들의 테이블워크만 두 달이 걸렸단다. 원작 딱 깔아놓고, 어떻게 접근하고 무엇을 추가하고 뭘 덜어낼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배우들. 조금 뜬금 없게 느껴질 수 있어도 꼭 하고 싶은 얘기(예컨대 세월호와 같은 것들)은 넣었다고 한다. ⓒ 곽우신


"작년 12월 정도에 책(대본)을 처음 받아봤는데, 연출이 학교 동기예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스케줄 맞으면 해보지 않겠느냐'라고 그래서, 일단 '책을 좀 보자'고 했죠. 24년 전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만들었던 아마추어 작품 책을 주더라고요. 연출이 '물론, 많이 달라질 거야'라고 했어요, 저도 원작을 봤을 땐 좀 애매하긴 했어요. 그런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갈 것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 작품에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어요.

2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잘 녹이면 재밌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우리가 겪었던 현대사 이야기도 좀 담고….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갔어요. 창작이다 보니까, 또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작년에 워낙 우리나라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시며 공연을 보면 다 심어져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여를 하게 됐어요."

배우 홍경인. 누구는 노동권을 외치며 스스로 산화한 '아름다운 청년'으로, 누구는 초등학교 교실의 패권을 쥔 소독재자로, 누구는 청춘 시트콤에서 밝고 화사하던 청춘으로 기억할 테다. 1976년생 배우 홍경인은 누구보다 주목 받던 아역이었고, 아직도 깨지지 않는 국내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기록을 보유한 사람이다. 1990년대 충무로의 향수를 지닌 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강렬했다.

너무 일찍 만개한 탓일까,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일까. 배우 홍경인을 자신의 재능에 비해 집중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케이스로 꼽는 이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힌 것도 아니고, 배우 자신이 스스로 지운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작품의 대중성이나 화제성이 높든 낮든,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잠깐씩의 쉼표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는 꾸준히 누군가의 옷을 입고 그들의 삶을 표현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계속 배우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일말의 주저없이 "당연하죠. 제가 뭘 하든, 저의 가장 주된 정체성은 배우"라는 답이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왜 뮤지컬이었을까. MBC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2라운드까지 간 적은 있지만, 노래와 연기를 다 해야 하는 뮤지컬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텐데.

"항상 부담감이 조금 있기는 한데, 최대한 안 갖고하려고 노력을…. (웃음) 원래 스무 살 때 제가 처음 뮤지컬 작품한 게 <명성황후> 초연이었거든요. 그 이후로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2년에 한 번씩은 서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잘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했던 것 같아요. 뮤지컬이나 연극을 가리지 않고, 무대는 꾸준히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생각처럼 잘 되지만은 않았지만?

뮤지컬은 진짜 한동안 안 하기는 했죠. 제가 마지막으로 뮤지컬했던 게 <해어화>(2007)였는데, 제 와이프가 제 공연 보고 '노래 더럽게 못한다'고…. (웃음)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마라'고…. (웃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저도 당연히 느끼죠.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분들에 비하면 당연히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점을 느끼죠. 그래도 공연 연습하면서 스스로 발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거든요. 도전하는 정신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송자학 그리고 홍경인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송자학이 아닌 홍경인이었다면 송자학의 자리에 홍경인이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즉답이 돌아왔다. "잘 기다렸다가 환생 잘 했을 것 같은데?" ⓒ 곽우신


이 작품의 원래 대본은 전문 작가가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썼다. 그것도 학창 시절, 학우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아무래도 내러티브의 치밀함이나 극적 완성도를 두고 보면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전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아쉽다. 대표적으로 송자학이 그렇다. 그는 어떤 삶의 과정을 겪었기에 그토록 죽고 싶어 했나. 왜 죽어서까지 완전한 소멸을 바라는가.

"자학이라는 인물과 저는 사실 완전 반대되는 인물이에요. 오히려 그런 인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뭔가 삶의 희망과 살고 싶다는 욕구를 줄 수 있다면, 그게 또 원하는 바이기 때문에….

송자학은 태어나면서부터 뭔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아버렸죠. 사람이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자고…. 뭔가 인간의 삶이란 부질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가득한 아이인 것 같아요, 자학은. 어떤 특별한 동기가 있다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잘 것 없다는 걸 느낀 거죠. 정산소에서 계속 올라오는 사람을 보면서 더더욱이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선한 척, 착한 척 뭔가 정의로운 척하는 게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해요. 저도 생각해보면 아닌 척 하는 것들 많고, 스스로 자제하려는 모습도 있거든요. 그런데 위선적인 게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웃음)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다 있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학은 그 위선적인 것도 하기 싫어하는 인물인 거죠."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 배우 홍경인에 비해 자학은 항상 어둡고 부정적이다. 광수가 사랑을 얻든 말든, 그저 때가 되었을 때 정해진 자리에 데리고 가서 게임을 끝내버리면 그만인 광수는 어차피 정해진 걸 거스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보고 깨달았는지 아니면 즉흥적인 변심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에 광수를 대신해 희생한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이광수를 따라 내려와서 그의 사랑과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송자학이 마음을 바꿔 먹고 달라지겠죠.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학이 감동을 해서 대신 희생하는 코드는 아니에요. 이광수도 사실 좀 잘난 척하는 인물이거든요. 처음에는 재수 없어 했겠죠. 그런데 이광수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꼼지락거리는 걸 보고 '아, 운명이 바뀌네?'하면서 게임을 뒤엎는 거죠.

작 중에 그런 말이 나오거든요. '계획된 리스트에 없는, 아무 계획 없는 백짓장 같은 인생. 대신 한 번 살아 봐'라고. 송자학이 변해서 정산소 시스템 전체에 막 저항하는 식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해진 계획을 비트는 거죠. 이후로 자학은 소멸을 바랄 것 같지는 않아요, 큰 벌을 받든지, 개로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싸울 수도 있겠죠. 대항을 할 것 같아요. 이 오류투성이 시스템을 향해서. 그런 면에서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인물이에요."

배우 홍경인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

7년 만에 무대로, 배우 홍경인 2010년 <트루웨스트>를 마지막으로 7년이 걸렸다.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에서 '자학' 역으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을 지난 11일 일요일 낮, 공연장 근처에서 만났다.

▲ 창작의 즐거움 라이선스 작품과 달리 창작극은 배우와 스태프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많다. 예컨대 극 중에서 자학이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장면도 바꾼 것이다. "태어낢과 죽음에 대하여" 문제를 던지기 위해 케이크를 자학이 들고있게끔 바꾸어봤다고. 그가 협의를 통해 추가한 대사 중에는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 곽우신


자기와는 정 반대의 인물을 맡아 연기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얘기하는 것. 말이 쉽지 실제로 구현하기에는 참 어려울 것 같았다. 캐릭터와 작품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는 많은 걸 털어놓았다. 그 와중에 오히려, 없을 것 같았던 홍경인과 자학의 교집합이 그려졌다. 홍경인도 자학도, 얽매여 있고 규정된 현실을 싫어한다. 다만 한쪽은 이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살았고, 다른 쪽은 바꿀 수 없다고 포기했기에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자학도 이제 웃으면서 그 시스템에 '태클'과 '딴지'를 거는 인물로 변모한다. 이제 자학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테다.

"인생이란 게 주어진 그 자체로만 해도 살 만한 가치가 있어요. 홍경인이라는 사람은 자학과는 반대로 완전히 그런 쪽(?) 사람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해요.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열심히 해보려고요. 저도 그렇게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착한 척 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다보면 진짜 바뀌는 게 있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짜릿함도 있고요.

이 극의 전체적인 목표도 그래요.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라는 것. '난 아무리 해도 안 돼'라며 포기하는 분들 많잖아요.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탓하는 분들도 많고. 아무리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꽤 하실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조금 더 하면 될 수 있다', '조금은 바뀔 수 있다'는 그냥 그 정도의 생각? 그것만 하고 가시더라도 대단하지 않을까요. 거창하진 않지만, 자학처럼 그저 그 시스템에 '딴지' 정도 걸어보는 거죠."

저는 <죽일테면 죽여봐>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웃으며 즐겁게 보시고, 감동 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 감동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고요. 다만, 이건 저희가 잘해야 할 부분인데, 마술 공연을 보면서 마술의 트릭을 밝히는 데 집중해서 보면 덜 즐기게 되잖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돌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극을 뒤집어 봤을 때 '아, 이런 게 좀 있었구나' '삶의 의미와 운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시면 제일 좋을 것 같고요. 아, 하지만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웃음) 제가 하는 연기로 인해 만 명 중의 한 명에게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선한 영향을 준다면 만족해요.

아직 살짝 부족하지만, 쉽게 편하게 보고 가시고, 눈 감고 잠자기 전에 문득 다른 생각이 나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그렇게 이 작품을 사랑해주신다면, 이 작품이 더 웰메이드가 되어서 오래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돌아오는 일요일이면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도 끝이 난다. 그리고 배우 홍경인을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끝난다. 앞으로 배우 홍경인을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특히,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지면에 다 싣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말에서는 배우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이 묻어났기에.

"저는 무대 좋아해요. 연기 자체를 쉰 지 좀 되었잖아요. 그런데 좀 쉬다가 연기를 다시 하려고 하면 무대를 항상 먼저 찾는 것 같아요. 재미있기도 하고. 특히 연습이 진짜 재밌어요. 공연보다 더 재미있다니까? (웃음) 무대만 고집하는 건 또 결코 아니지만, 다른 장르는 할 만큼 어느 저도 해봤다고 생각해요. 기회만 된다면 무대에 더 오래 많이 있고 싶어요. 좋은 작품 있으면, 꾸준히 하는 게 좋잖아요. 자주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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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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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여성을 이렇게 만들었나, 최희서가 품은 그 억울함

[inter:view]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역... "비밀 발견한 기분"

아나키스트 박열의 평생 동지이자 글로써 자기 생각을 온전히 알리고 싶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 그리고 배우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던 최희서(본명 최문경). 모두 이름에 글월 '문'이 들어간다.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영화 <박열>을 통해 만난 후미코를 두고 최희서는 "우울함 속에서 본인의 빛을 찾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그를 온몸으로 품었다.제목은 <박열>이지만 이 영화, 다시 보면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에게 학대받던 소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대신 일본 천황을 죽이고 권력을 조롱하는 길을 택한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희서는 후미코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비밀의 발견 "이준익 감독님이 일단 자서전을 읽어보라 하셔서 봤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책 제목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자체로 아나키스트로 살던 후미코의 모습을 상징한다. 박열과의 만남 이후보단 유년기, 청소년기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었는데 여성으로, 무적자로, 가난한 계급으로 어떻게 무시당했는지 잘 나온다. 우울증이 올 정도로 암흑기였는데 어떻게 그걸 헤쳐 나갔는지…. 자살을 시도하다 '지금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사고사로 생각하겠지? 아무도 나 같은 불쌍한 계급을 몰라주겠지' 생각한 대목이 있다. 14살에서 15살 때였는데 그걸 '우울한 검은빛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아나키스트가 되기로 한 출발점이었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품고 갈 길을 찾았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표현이지만 최희서는 후미코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블랙 코미디에 어울리는 인물"이라 표현할 정도로 후미코는 감정이 풍부했다. 최희서는 참고한 몇 편의 영화를 언급하며 "생각의 필터가 없고, 감정을 꾸미지 않는 맑은 인물"로 후미코를 이해했다. 물론 쉽진 않았다. 대본을 받고 첫 촬영이 들어가기 직전인 약 두 달 동안 최희서는 말 그대로 칩거했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 생각에 방에서만 생활했다"며 그는 "책상 스탠드만 켜놓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박열> 캐스팅 과정과 촬영 당시 소회를 한 사이트에 기고한 최희서의 글엔 '방에서 웅크리고 후미코를 상상했다'라고 돼 있다."그러고 보면 저도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 시나리오에 여백이 참 많았고 그걸 내가 채워야 했는데 그게 기쁘기도 힘들기도 했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건, 사실 여태껏 그랬다. 조연을 하든 연극을 하든 방에 박혀서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거든. <박열> 역시 자서전과 재판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함께 봤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그게 발견의 연속이었다.실제 박열과 후미코의 말이 담겨있는데 일본어로 돼 있어서 그걸 자세히 보신 분이 안 계시더라. 아마 한국인 중에선 처음 읽는 사례였을 거다. 마치 둘만의 비밀을 발견하는 희열이 있었다. 그 기록 그대로 대사에 넣은 게 바로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걸 유린하는 천황과 왕세자는 악마적 권력' 등이다." 어떤 열등감 유년 시절(최희서는 아버지 직업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인 학교에 다녔다-기자 주)을 일본에서 보낸 최희서는 <박열> 대본의 일본어 번역을 맡기도 했다. 감독의 제안이었다. 전작 <동주> 때도 일부 번역을 맡았는데 "전문 번역가의 손을 거친 후 수정하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실 일어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 경험 등으로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등도 꽤 수준급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오디션을 위한 그의 프로필엔 학교 이름이 빠져 있다. 문경에서 희서로 직접 이름을 바꾼 것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학구적으로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학력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말씀하시는데 그게 콤플렉스가 될 정도였다. 학교라는 프레임 때문인지 역할을 맡아도 리포터, 비서를 많이 시켜주시더라. 스스로 제 프로필을 봐도 선입견이 생기겠더라(웃음). 이름은…. 소설 <토지> 속 주인공 이름이 서희잖나. 효자동에 유명한 작명소에 갔는데 희서와 연우를 주셨다. 그중에 서희랑 비슷한 희서를 고른 거다. 호적 자체를 바꾼 건 아니라 그냥 예명이다."이름을 새로 지을 정도로 배우 일에 애착이 컸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본 생활 때 학예회에서 심청전에 출연한 이후 막연하게 꿨고, 대학 진학하자마자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상업영화의 단역, 자비를 털어 만든 연극 무대에 오르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나갔다. 2년 전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대본을 외우던 그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연식 감독이 우연히 보고 이준익 감독에게 소개한 건 이젠 유명한 일화다. 그 인연이 <동주>와 <박열>까지 이어진 것이다."그때 교대에서 경복궁을 가는 길이었는데 절실함을 보신 거 같다. 그때 스스로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돈을 버는 게 아닌 돈을 쓰면서 연기를 하던 때였는데 신인도 아닌 이미 데뷔한 지 6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연습실 가면 즐겁긴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배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웃음)" 밝게 웃는 그 모습에 <박열> 속 후미코의 호기로운 표정이 비쳤다. 아무래도 <동주>와 <박열>이 최희서의 인생에 크게 남을 수밖에 없을 터. 최희서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지 모르지만, 이준익 감독님의 평소 지론처럼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너무도 짧게 살고 간 후미코가 안타깝다"며 새로운 포부를 밝혔다."아나키즘,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았다. 1920년대 평등을 외친 후미코를 알게 되면서 내가 너무 지금 세상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지 않았나 반성했다. '난 여자니까', '여배우니까' 하는 생각 말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여성을 존중해 달라'가 아닌 '남성과 같은 선에서 생각해 달라'가 핵심 같더라.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여성휴게소, 여성 주차장 이것도 마냥 반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됐다.칸 영화제에 참석한 제시카 차스테인 인터뷰라든지, 엠마 왓슨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어떤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혹은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을까. 후미코의 재판기록을 보면 당시 스물두 살이었는데 정말 논리적이고 비상하더라. 그가 오래 살았다면 일본 혹은 동북아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 됐을 건데 너무 안타까웠다. 제가 꼭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건 아니지만 언젠가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미코가 내 생각의 틀을 바꿔놨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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