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박열>로 첫 주연을 맡은 최희서. 그에겐 역할의 비중보단 오롯이 그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게 중요했다. ⓒ 이정민


아나키스트 박열의 평생 동지이자 글로써 자기 생각을 온전히 알리고 싶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 그리고 배우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던 최희서(본명 최문경). 모두 이름에 글월 '문'이 들어간다.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영화 <박열>을 통해 만난 후미코를 두고 최희서는 "우울함 속에서 본인의 빛을 찾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그를 온몸으로 품었다.

제목은 <박열>이지만 이 영화, 다시 보면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에게 학대받던 소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대신 일본 천황을 죽이고 권력을 조롱하는 길을 택한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희서는 후미코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비밀의 발견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준익 감독님이 일단 자서전을 읽어보라 하셔서 봤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책 제목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자체로 아나키스트로 살던 후미코의 모습을 상징한다. 박열과의 만남 이후보단 유년기, 청소년기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었는데 여성으로, 무적자로, 가난한 계급으로 어떻게 무시당했는지 잘 나온다. 우울증이 올 정도로 암흑기였는데 어떻게 그걸 헤쳐 나갔는지….

자살을 시도하다 '지금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사고사로 생각하겠지? 아무도 나 같은 불쌍한 계급을 몰라주겠지' 생각한 대목이 있다. 14살에서 15살 때였는데 그걸 '우울한 검은빛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아나키스트가 되기로 한 출발점이었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품고 갈 길을 찾았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영화 <박열> 가네코 후미코는 적당히 치고 빠지는 보조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지려는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 <박열> 가네코 후미코는 적당히 치고 빠지는 보조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지려는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표현이지만 최희서는 후미코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블랙 코미디에 어울리는 인물"이라 표현할 정도로 후미코는 감정이 풍부했다. 최희서는 참고한 몇 편의 영화를 언급하며 "생각의 필터가 없고, 감정을 꾸미지 않는 맑은 인물"로 후미코를 이해했다. 물론 쉽진 않았다. 대본을 받고 첫 촬영이 들어가기 직전인 약 두 달 동안 최희서는 말 그대로 칩거했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 생각에 방에서만 생활했다"며 그는 "책상 스탠드만 켜놓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박열> 캐스팅 과정과 촬영 당시 소회를 한 사이트에 기고한 최희서의 글엔 '방에서 웅크리고 후미코를 상상했다'라고 돼 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 시나리오에 여백이 참 많았고 그걸 내가 채워야 했는데 그게 기쁘기도 힘들기도 했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건, 사실 여태껏 그랬다. 조연을 하든 연극을 하든 방에 박혀서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거든. <박열> 역시 자서전과 재판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함께 봤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그게 발견의 연속이었다.

실제 박열과 후미코의 말이 담겨있는데 일본어로 돼 있어서 그걸 자세히 보신 분이 안 계시더라. 아마 한국인 중에선 처음 읽는 사례였을 거다. 마치 둘만의 비밀을 발견하는 희열이 있었다. 그 기록 그대로 대사에 넣은 게 바로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걸 유린하는 천황과 왕세자는 악마적 권력' 등이다."

어떤 열등감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유년 시절(최희서는 아버지 직업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인 학교에 다녔다-기자 주)을 일본에서 보낸 최희서는 <박열> 대본의 일본어 번역을 맡기도 했다. 감독의 제안이었다. 전작 <동주> 때도 일부 번역을 맡았는데 "전문 번역가의 손을 거친 후 수정하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실 일어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 경험 등으로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등도 꽤 수준급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오디션을 위한 그의 프로필엔 학교 이름이 빠져 있다. 문경에서 희서로 직접 이름을 바꾼 것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학구적으로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학력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말씀하시는데 그게 콤플렉스가 될 정도였다. 학교라는 프레임 때문인지 역할을 맡아도 리포터, 비서를 많이 시켜주시더라. 스스로 제 프로필을 봐도 선입견이 생기겠더라(웃음). 이름은…. 소설 <토지> 속 주인공 이름이 서희잖나. 효자동에 유명한 작명소에 갔는데 희서와 연우를 주셨다. 그중에 서희랑 비슷한 희서를 고른 거다. 호적 자체를 바꾼 건 아니라 그냥 예명이다."

이름을 새로 지을 정도로 배우 일에 애착이 컸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본 생활 때 학예회에서 심청전에 출연한 이후 막연하게 꿨고, 대학 진학하자마자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상업영화의 단역, 자비를 털어 만든 연극 무대에 오르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나갔다. 2년 전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대본을 외우던 그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연식 감독이 우연히 보고 이준익 감독에게 소개한 건 이젠 유명한 일화다. 그 인연이 <동주>와 <박열>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때 교대에서 경복궁을 가는 길이었는데 절실함을 보신 거 같다. 그때 스스로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돈을 버는 게 아닌 돈을 쓰면서 연기를 하던 때였는데 신인도 아닌 이미 데뷔한 지 6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연습실 가면 즐겁긴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배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웃음)"

최희서, 시선 휘어잡는 매력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을 쉬는 때면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 일부를 필사했다.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후미코의 책 일부 내용은 현장에서 최희서가 직접 자필로 필사한 내용이다. ⓒ 이정민


밝게 웃는 그 모습에 <박열> 속 후미코의 호기로운 표정이 비쳤다. 아무래도 <동주>와 <박열>이 최희서의 인생에 크게 남을 수밖에 없을 터. 최희서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지 모르지만, 이준익 감독님의 평소 지론처럼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너무도 짧게 살고 간 후미코가 안타깝다"며 새로운 포부를 밝혔다.

"아나키즘,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았다. 1920년대 평등을 외친 후미코를 알게 되면서 내가 너무 지금 세상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지 않았나 반성했다. '난 여자니까', '여배우니까' 하는 생각 말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여성을 존중해 달라'가 아닌 '남성과 같은 선에서 생각해 달라'가 핵심 같더라.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여성휴게소, 여성 주차장 이것도 마냥 반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됐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제시카 차스테인 인터뷰라든지, 엠마 왓슨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어떤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혹은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을까. 후미코의 재판기록을 보면 당시 스물두 살이었는데 정말 논리적이고 비상하더라. 그가 오래 살았다면 일본 혹은 동북아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 됐을 건데 너무 안타까웠다. 제가 꼭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건 아니지만 언젠가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미코가 내 생각의 틀을 바꿔놨다. (웃음)"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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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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