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박열>로 첫 주연을 맡은 최희서. 그에겐 역할의 비중보단 오롯이 그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게 중요했다.ⓒ 이정민


아나키스트 박열의 평생 동지이자 글로써 자기 생각을 온전히 알리고 싶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 그리고 배우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던 최희서(본명 최문경). 모두 이름에 글월 '문'이 들어간다.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영화 <박열>을 통해 만난 후미코를 두고 최희서는 "우울함 속에서 본인의 빛을 찾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그를 온몸으로 품었다.

제목은 <박열>이지만 이 영화, 다시 보면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에게 학대받던 소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대신 일본 천황을 죽이고 권력을 조롱하는 길을 택한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희서는 후미코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비밀의 발견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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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님이 일단 자서전을 읽어보라 하셔서 봤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책 제목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자체로 아나키스트로 살던 후미코의 모습을 상징한다. 박열과의 만남 이후보단 유년기, 청소년기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었는데 여성으로, 무적자로, 가난한 계급으로 어떻게 무시당했는지 잘 나온다. 우울증이 올 정도로 암흑기였는데 어떻게 그걸 헤쳐 나갔는지….

자살을 시도하다 '지금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사고사로 생각하겠지? 아무도 나 같은 불쌍한 계급을 몰라주겠지' 생각한 대목이 있다. 14살에서 15살 때였는데 그걸 '우울한 검은빛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아나키스트가 되기로 한 출발점이었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품고 갈 길을 찾았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영화 <박열> 가네코 후미코는 적당히 치고 빠지는 보조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지려는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 <박열> 가네코 후미코는 적당히 치고 빠지는 보조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지려는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표현이지만 최희서는 후미코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블랙 코미디에 어울리는 인물"이라 표현할 정도로 후미코는 감정이 풍부했다. 최희서는 참고한 몇 편의 영화를 언급하며 "생각의 필터가 없고, 감정을 꾸미지 않는 맑은 인물"로 후미코를 이해했다. 물론 쉽진 않았다. 대본을 받고 첫 촬영이 들어가기 직전인 약 두 달 동안 최희서는 말 그대로 칩거했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 생각에 방에서만 생활했다"며 그는 "책상 스탠드만 켜놓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박열> 캐스팅 과정과 촬영 당시 소회를 한 사이트에 기고한 최희서의 글엔 '방에서 웅크리고 후미코를 상상했다'라고 돼 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 시나리오에 여백이 참 많았고 그걸 내가 채워야 했는데 그게 기쁘기도 힘들기도 했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건, 사실 여태껏 그랬다. 조연을 하든 연극을 하든 방에 박혀서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거든. <박열> 역시 자서전과 재판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함께 봤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그게 발견의 연속이었다.

실제 박열과 후미코의 말이 담겨있는데 일본어로 돼 있어서 그걸 자세히 보신 분이 안 계시더라. 아마 한국인 중에선 처음 읽는 사례였을 거다. 마치 둘만의 비밀을 발견하는 희열이 있었다. 그 기록 그대로 대사에 넣은 게 바로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걸 유린하는 천황과 왕세자는 악마적 권력' 등이다."

어떤 열등감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유년 시절(최희서는 아버지 직업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인 학교에 다녔다-기자 주)을 일본에서 보낸 최희서는 <박열> 대본의 일본어 번역을 맡기도 했다. 감독의 제안이었다. 전작 <동주> 때도 일부 번역을 맡았는데 "전문 번역가의 손을 거친 후 수정하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실 일어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 경험 등으로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등도 꽤 수준급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오디션을 위한 그의 프로필엔 학교 이름이 빠져 있다. 문경에서 희서로 직접 이름을 바꾼 것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학구적으로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학력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말씀하시는데 그게 콤플렉스가 될 정도였다. 학교라는 프레임 때문인지 역할을 맡아도 리포터, 비서를 많이 시켜주시더라. 스스로 제 프로필을 봐도 선입견이 생기겠더라(웃음). 이름은…. 소설 <토지> 속 주인공 이름이 서희잖나. 효자동에 유명한 작명소에 갔는데 희서와 연우를 주셨다. 그중에 서희랑 비슷한 희서를 고른 거다. 호적 자체를 바꾼 건 아니라 그냥 예명이다."

이름을 새로 지을 정도로 배우 일에 애착이 컸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본 생활 때 학예회에서 심청전에 출연한 이후 막연하게 꿨고, 대학 진학하자마자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상업영화의 단역, 자비를 털어 만든 연극 무대에 오르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나갔다. 2년 전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대본을 외우던 그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연식 감독이 우연히 보고 이준익 감독에게 소개한 건 이젠 유명한 일화다. 그 인연이 <동주>와 <박열>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때 교대에서 경복궁을 가는 길이었는데 절실함을 보신 거 같다. 그때 스스로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돈을 버는 게 아닌 돈을 쓰면서 연기를 하던 때였는데 신인도 아닌 이미 데뷔한 지 6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연습실 가면 즐겁긴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배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웃음)"

최희서, 시선 휘어잡는 매력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을 쉬는 때면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 일부를 필사했다.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후미코의 책 일부 내용은 현장에서 최희서가 직접 자필로 필사한 내용이다.ⓒ 이정민


밝게 웃는 그 모습에 <박열> 속 후미코의 호기로운 표정이 비쳤다. 아무래도 <동주>와 <박열>이 최희서의 인생에 크게 남을 수밖에 없을 터. 최희서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지 모르지만, 이준익 감독님의 평소 지론처럼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너무도 짧게 살고 간 후미코가 안타깝다"며 새로운 포부를 밝혔다.

"아나키즘,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았다. 1920년대 평등을 외친 후미코를 알게 되면서 내가 너무 지금 세상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지 않았나 반성했다. '난 여자니까', '여배우니까' 하는 생각 말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여성을 존중해 달라'가 아닌 '남성과 같은 선에서 생각해 달라'가 핵심 같더라.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여성휴게소, 여성 주차장 이것도 마냥 반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됐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제시카 차스테인 인터뷰라든지, 엠마 왓슨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어떤 배우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혹은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있을까. 후미코의 재판기록을 보면 당시 스물두 살이었는데 정말 논리적이고 비상하더라. 그가 오래 살았다면 일본 혹은 동북아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 됐을 건데 너무 안타까웠다. 제가 꼭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건 아니지만 언젠가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미코가 내 생각의 틀을 바꿔놨다. (웃음)"

 영화<박열>에서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가 2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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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전태일과 엄석대 연기했던 홍경인, 왜 염세주의자 됐나

[inter:view]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의 자학 역 맡은 배우 홍경인, 그의 '딴지'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 속 인간은 죽으면 자신의 삶을 '정산'받는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정산된 값어치는 달라지고, 그 정도에 따라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날지가 결정된다. 그러나 이 윤회의 과정은 따뜻한 성찰의 시간도 아니고, 엄정한 심판의 시간도 아니다. 그저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에 따라 계산된다. 말 그대로, 정산소에서 정산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제작된 시스템에도 오류는 발생한다. 광수가 그랬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언제나 승승장구했던 '성공'한 인간의 전형.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러 가는 길에 정산소의 착오로 그만 죽음을 맞게 된다.정산소의 관리자들은 철저한 관료들이다. 이 실수를 굳이 상부에 알릴 필요는 없다. 보고서의 숫자만 맞추면 되니까. 그저 다른 사람으로 잠깐 돌려보냈다가, 다시 회수하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실수라고 당사자에게 통보할 필요도 없다. 마치 선의와 호혜에서 나온 일종의 기회라고 속인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잠깐 내려가서, 정해진 기한 내에 그 공간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중력을 찾는다면, 광수는 더 살 수 있다. 광수의 삶을 붙들어 맬 중력은, 본래 프러포즈하려고 했던 여자친구 '명하'의 마음이다. 광수는 명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이 게임을 수락한다.반면, 정산소에는 환생하지 않고 계속 이 경계선에 머무는 이가 하나 있다. 자학은 자기 스스로를 혐오한다. 삶에 대한 욕구도 없고, 존재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인생이란 뻔한 설계대로 뻔하게 고통받다가 끝나는 그렇고 그런 것들. 사라지고 싶어서 자살을 택했는데, 사라지지 못하고 이렇게 영혼으로 남아 있는 것조차 괴로운 일이다. 이 골칫덩어리를 한꺼번에 치우기 위해 관료들은 은밀하게 제안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광수를 데려올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고사로 다시 정산소로 불러올 것. 이 게임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거였다. 그 조건은, 환생이 아니라 완전한 소멸. 염세주의자 자학은 이 조건을 수락하고 역시 다른 사람의 몸으로 광수와 함께 내려온다. 광수에게는 광수를 돕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산소를 아니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이다. 서로 다른 것을 욕망하는 이들의 이승 환생기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지난 5월 18일 개막하여 오는 25일 커튼을 내리는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의 스토리이다. 1993년 초연 이후, 24년 만에 재창작 수준으로 손을 대서 돌아온 뮤지컬. 이 극의 출연 배우 중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배우 홍경인, 그가 자학을 맡아 연기하며 무대로 돌아왔다.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비해 공연 무대에서의 이력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마지막 공연 필모그래피는 2010년 연극 <트루웨스트>였다. 그리고 7년 만에, 그가 뮤지컬 무대를 선택했다.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 지난 11일 낮, 그의 무대가 궁금하여 일요일 낮 공연이 있기 전 잠시 만날 수 있었다.7년 만의 무대, 10년 만의 뮤지컬 배우 홍경인. 누구는 노동권을 외치며 스스로 산화한 '아름다운 청년'으로, 누구는 초등학교 교실의 패권을 쥔 소독재자로, 누구는 청춘 시트콤에서 밝고 화사하던 청춘으로 기억할 테다. 1976년생 배우 홍경인은 누구보다 주목 받던 아역이었고, 아직도 깨지지 않는 국내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기록을 보유한 사람이다. 1990년대 충무로의 향수를 지닌 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강렬했다.너무 일찍 만개한 탓일까,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일까. 배우 홍경인을 자신의 재능에 비해 집중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케이스로 꼽는 이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힌 것도 아니고, 배우 자신이 스스로 지운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작품의 대중성이나 화제성이 높든 낮든,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잠깐씩의 쉼표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는 꾸준히 누군가의 옷을 입고 그들의 삶을 표현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계속 배우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일말의 주저없이 "당연하죠. 제가 뭘 하든, 저의 가장 주된 정체성은 배우"라는 답이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왜 뮤지컬이었을까. MBC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2라운드까지 간 적은 있지만, 노래와 연기를 다 해야 하는 뮤지컬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텐데.송자학 그리고 홍경인 이 작품의 원래 대본은 전문 작가가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썼다. 그것도 학창 시절, 학우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아무래도 내러티브의 치밀함이나 극적 완성도를 두고 보면 다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전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아쉽다. 대표적으로 송자학이 그렇다. 그는 어떤 삶의 과정을 겪었기에 그토록 죽고 싶어 했나. 왜 죽어서까지 완전한 소멸을 바라는가.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 배우 홍경인에 비해 자학은 항상 어둡고 부정적이다. 광수가 사랑을 얻든 말든, 그저 때가 되었을 때 정해진 자리에 데리고 가서 게임을 끝내버리면 그만인 광수는 어차피 정해진 걸 거스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보고 깨달았는지 아니면 즉흥적인 변심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에 광수를 대신해 희생한다.배우 홍경인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 자기와는 정 반대의 인물을 맡아 연기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얘기하는 것. 말이 쉽지 실제로 구현하기에는 참 어려울 것 같았다. 캐릭터와 작품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는 많은 걸 털어놓았다. 그 와중에 오히려, 없을 것 같았던 홍경인과 자학의 교집합이 그려졌다. 홍경인도 자학도, 얽매여 있고 규정된 현실을 싫어한다. 다만 한쪽은 이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살았고, 다른 쪽은 바꿀 수 없다고 포기했기에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자학도 이제 웃으면서 그 시스템에 '태클'과 '딴지'를 거는 인물로 변모한다. 이제 자학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테다.돌아오는 일요일이면 뮤지컬 <죽일테면 죽여봐>도 끝이 난다. 그리고 배우 홍경인을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끝난다. 앞으로 배우 홍경인을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특히,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지면에 다 싣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말에서는 배우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이 묻어났기에.

'윤종신 애제자' 박재정, 발라더 새싹이 그리는 큰 그림

[inter:view] ‘시력’ 발표한 박재정, 그가 노래하는 이유

박재정은 발라더다. 스스로 그렇게 정의한다. 많은 가수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리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발라드 가수로 자리 잡고 싶고, 발라드를 잘 부르고 싶고, 어떻게 해야 박재정 고유의 발라드를 부를 수 있을지 찾고 싶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박재정을 만났다.신곡 '시력', 2년 준비한 이유 지난 2013년, 엠넷 < 슈퍼스타K5 >에서 우승을 거머쥔 박재정은 1995년생이다. 올해 23살인 그는 2015년 윤종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발라더로서 방향성을 잡은 것이다.그런데 좀처럼 자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017년 6월이 돼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첫 솔로곡 '시력'을 선보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지난해 5월 규현과 함께 듀엣곡 '두 남자'를 불렀고, 올해는 <월간 윤종신> 5월호 '여권'의 가창자로 참여하긴 했지만 미스틱에 온 후 박재정의 솔로곡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다. 자세랄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였다. 발라드를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표현하기까지 생각을 많이 했다. 2년 동안 준비했는데 '왜 내가 가수를 해야 하고 노래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포함됐다. 윤종신 선생님 노래를 들었을 때 내가 위로를 받았지, 하며 나도 그런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시력'은 박재정을 위해 윤종신이 작사하고 015B 정석원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이별 후의 심정을 흐릿해진 시력에 비유한 곡인데, 박재정을 위해 '맞춤 제작'된 곡이란 점이 흥미롭다. 정석원은 박재정의 음역대를 고려했고, 윤종신은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사랑 노래를 하고 싶다는 박재정의 의사를 반영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시력'을 들었다. 이어폰을 빼며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들린다"고 소감을 말하자 박재정은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했다. "미성을 써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을 선생님께서도 원하셨고 그렇게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회사 분들과 윤종신 선생님이 기다려주셨다."윤종신 '애제자' 맞지만 '제2의 윤종신' 아냐 윤종신은 박재정을 두고 "발라드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흔치 않은 젊은 아티스트"라고 이야기했다. '윤종신 애제자'가 된 배경을 묻자, 박재정은 발라드적으로 잘 통하는 감성에 대해 언급했다."윤종신 선생님과 작업할 때 '이건 재정이만 알겠다' 하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실 때가 있어요. 저도 노래 중에 '이 부분이 윤샘이 좋아하는 부분 아니에요?' 하고 여쭤보면 '맞다'고 하세요. 예전부터 윤종신 선생님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 부를 때 감성적으로 비슷한 게 있다고 윤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윤종신에게 많이 배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2의 윤종신"은 아니라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윤종신이 프로덕션한 가수 박재정, 여기까지는 제 정체성이 맞지만, 그 이상은 제가 찾아야 한다"며 "윤종신 선생님은 제가 잘 걷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고, 제가 스스로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제가 저를 만들어 한다"고 덧붙였다.'시력'을 2년에 걸쳐 다섯 번 이상 녹음한 이유에 대해선 "'시력' 하나로써 제가 어떤 발라더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종신과 함께했지만, 윤종신이 아닌 박재정의 색깔이 나는 발라드를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진정한 위로'... 내가 노래하는 이유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고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많이 못 받았다고, 내가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사랑을 받기 위해 노래하는 게 아니라 제가 진짜 노래하는 동기와 의미를 다시 다듬고 갖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박재정은 자신이 어떤 발라더가 될 것인지 방향성을 찾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것이 방향을 잡는 첫 단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앨범을 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건 어쩌면 '내가 이런 이런 사랑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과 같다. 사랑을 못 받으면 상처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보다 내가 '왜' 사랑받아야 하는지, 내가 '왜' 노래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박재정은 이렇듯 이상적 발라더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발라더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묻자 "위로를 주는 발라더 박재정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위로 안에 되게 많은 것들이 있다"면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고, 제 노래가 힘이 되는 5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림 선배님은 외국인 노동자 등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분들을 위해 공연도 많이 하신다"고 예를 들며 "외로운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것들(위로)을 꿈꾸고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큰 그림은 이게 다가 아니다. 작사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고 있고, 지금도 계속 곡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또 말하길 "10년 후쯤엔 제가 쓴 곡을 들려주고 싶다"고 해서 "10년이면 너무 늦지 않느냐, 빨리 선보이고 싶지 않느냐" 되묻자 이렇게 답했다."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10년을 해보라고 하지 않나. 10년 동안 많이 느끼고 배워서 오래 걸려도 좋은 곡을 쓰고 싶다."많은 걸 이루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조급하지 않기란 힘들 법도 한데 박재정은 나이에 비해 꽤 성숙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 중에도 중간중간 꾸준히 터뜨린 '웃김'은 그의 반전 포인트였다. 평소에도 '웃긴다'는 박재정은 "어색한 것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좋으니까요"라며 잔잔한 유머를 예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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