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17일, 최근 종영한 tvN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아이돌 밴드 크루드플레이의 드러머 지인호 역할을 맡았던 배우 장기용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든 생각은 "와 크다"였다.

2014년 SBS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그는, 사실 6년 차 베테랑 모델이다. 김서룡, 이상현, 최범석, 박승건, 장광효 등 정상급 모델들만 설 수 있다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무대에 두루 올랐고, 2014년 '제9회 아시아모델상' 패션모델상, 2015년 '제30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스완어워드' 남자모델상을 받기도 했다. 모델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돌연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뭔가 해보고 싶어서.

소년, 배우를 꿈꾸다

 tvN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지인호 역의 배우 장기용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교정기 낀 모델’, ‘교정기 훈남’. 모델 시절 장기용의 별명이다. ⓒ 이정민


"가만히 있는 것보다 활동적인 게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꿈꾼 것 같아요."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장기용'이라는 이름도, 그의 얼굴도 낯설지만,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교정기 낀 모델', '교정기 훈남'을 들어봤을 것이다. 모델 시절 장기용의 별명. 교정기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개구진 표정은 모델 장기용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넘치는 개성과 끼, 어릴 때부터 넘쳤느냐 물으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형이 끼가 많았어요. 비보이도 하고, 학교 축제 때 MC도 보고 그랬죠. 가족 모임에서도 노래와 춤은 형의 역할이었어요. 전 그런 형을 보며 박수치고 신기해하는 내성적인 아이였죠. 그런 제가 갑자기 연예인을 하겠다고 하니... 하하하 부모님은 지금도 제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세요."

'큰 키'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델을 꿈꿨지만, 모델은 그저 키 크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직접 모델 에이전시마다 돌아다니면서 오디션을 봤지만, 대부분 '얘는 어디서 온 촌놈이야?' 하는 반응이었다고. 그러다 겨우 현재 소속사인 케이플러스(현 YG케이플러스)와 계약하게 됐지만 그 후로 8개월간 일이 없었단다. 한 달에 한두 번, 선배들 행사장에 따라가는 일이 전부. 하지만 기회는 찾아왔다.

"두 명이 찍는 화보였는데 한 명이 펑크가 난 거예요.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죠. 콘셉트가 자유롭게 발랄한 느낌으로 찍는 거였는데, 어릴 때 끼 넘치던 형을 보면서 홀로 갈고 닦았던 끼를 한껏 발휘했죠. 에디터 분들, 포토그래퍼 선생님 모두 너무 귀엽다 신선하다 좋아해 주셨어요. 자신감도 커졌죠."

'무대 체질' 깨닫다

 tvN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지인호 역의 배우 장기용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기용은 여행을 좋아한다. 훌쩍 광주로, 광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통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을 정도다. ⓒ 이정민


그렇게 한 번 터진 끼는 그를 모델로, 방송인으로, 배우로 이끌었다. 처음 JTBC <힙합의 민족2>에 출연할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현직 래퍼 앞에서, 어떻게 랩을 하지?' 싶었지만, 이내 무대에 올라 프로 래퍼 못잖은 실력을 쏟아냈다. 그 방송을 다시 보면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 그는 자신이 '무대 타입'이라는 걸 알았단다.

"저는 오디션이면 긴장을 심하게 해요. 어색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뭘 잘 못 하겠더라고요. 배우는 어떤 상황이든 연기가 바로 나와야 하는데... 오디션 분위기에 압도돼서 무섭고 불편하고, 주눅 들고 그랬어요. 근데 '여기가 내 무대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다 내려놓아지는 것 같아요. 제 안의 또 다른 제가 나오더라고요. 아직은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까지 도달하는 게 좀 어렵지만... 점점 익숙해지겠죠?"

그의 소속사 YG에는 대선배 차승원부터 강동원, 이종석, 이수혁, 남주혁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많다. 그에게는 "후배들의 길을 잘 닦아주신 감사한 선배님들"이다. 그중 그의 롤모델이자 동경의 대상은 차승원이다.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지난 15일, 'YG 유니세프 워킹 페스티벌'에서 만난 차승원과 함께 식사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사님이 '승원이랑 밥 먹을 건데 올래?' 하시더라고요. 망설임도 없이 달려갔죠. 제 이름 불러주시고, 안부 물어봐 주시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배우로서 커리어도 훌륭하시고, 패션모델이라는 직업도 너무 사랑하셔서 지금도 패션위크 무대에도 오르시잖아요. 자기관리도 너무 철저하시고요. 제가 선배님 나이가 됐을 때, 차승원 선배님처럼, 후배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 출연한 대선배 최민수의 카리스마도 배우로서 갖고 싶은 매력. 직접 만나기 전에는 <품행제로> 속 무서운 카리스마만 떠올라 걱정도 많이 했단다 하지만 유쾌한 유머로 현장 분위기를 밝고 부드럽게 만드는 그의 모습에 대선배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선배님 오신 날은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웃고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후배들 긴장 풀라고 일부러 장난도 더 치시고... 연기할 때도 꼭 대사대로만 하시기보다 애드리브나 다른 동선을 추구하시는데, 연기가 아니라 일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그 인물이 돼서 행동하는 느낌이랄까요?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들이 있었어요. 이번엔 함께하는 장면이 딱 두 신 뿐이라 아쉬웠어요. 다음에 작품에서 또 뵀으면 좋겠어요."

데뷔 3년차 신인, 40대 상상하며 꿈 키운다

 tvN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지인호 역의 배우 장기용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지인호 역의 배우 장기용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연기자 데뷔 3년 차. 그는 선배들의 길을 밟아가며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다. <보이스> 김재욱 같은 섹시한 살인마나, <신세계> 같은 누아르... 해보고 싶은 장르도, 역할도 많다. 지금은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 "천천히 올라가는 중"이라고. 잘 올라가고 있다 생각하는지 물었다.

"음... 그래도 데뷔 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잖아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헤쳐 나가고는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신인이라 배우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차곡차곡 경험과 내공을 쌓다 보면, 30대나 40대쯤 된 '배우 장기용'은 조금 나아져 있겠죠? 가끔 상상해요. 캐릭터 변신을 위해 수염을 기르거나 삭발을 하는 제 모습이요. '이번 캐릭터에는 이런 콘셉트 어떨까?' 고민하는 제 모습이요. 그때 전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연기를 그만둔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게 기분 좋은 상상 하면서 미래를 그리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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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한 혼인신고에 대리만족" 연기의 맛 알아버린 미술학도

[오마이픽업] <불어라 미풍아> 장세현, 8년간 한 계단씩 오르다

주연으로 전면에 선 배우들 모두 주말극이 처음이었다. 걱정이 많았고, 일종의 모험이었으나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속 이들은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의 보상일까. 종영을 앞두고 평균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경쟁작과 함께 제법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손호준과 임지영이 각각 장고-미풍 커플로 분하며 각종 사건에 얽히는 동안 꾸준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장세현의 이장수와 황보라의 조희라 커플이다. 이들은 일명 고구마 전개라며 드라마의 주요 사건이 막힐 때도, 급박한 전환점을 맞을 때도 꾸준히 사랑했고, 시원한 모습을 유지했다. 시청자들이 그만큼 감정 이입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이 두 사람 중 장세현을 21일 서울 충무로 인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연습량이 곧 분량 종영까지 2화가 남은 가운데 <불어라 미풍아>는 지난 20일 마지막 촬영을 끝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 것 같았는데 막상 마치니 공허하더라"며 장세현이 이른 종영 소감부터 전했다."드라마 내용 자체가 이산가족상봉이잖아요. 지난 7개월간 매주 두 번씩은 다들 만났는데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선생님들, 또 파트너로 함께 했던 보라 누나에게도 참 감사해요.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면 저희끼리 따로 모여 연습하곤 했거든요. 분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연습량을 늘려서 이것저것 시도하려 했어요."극 중 이장수는 달래 할머니(김영옥 분)와 유대 관계가 깊고, 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막내아들로서 엄마 황금실(금보라 분)과 장남 이장고(손호준 분)에겐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을 터. 장세현은 "실제 집에선 장남이지만 애교가 많은 편이라 스스로 장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며 "시청자분들이 이입하기 가장 쉬운 캐릭터라고 봤고, 그렇게 준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이 많은 면은 저랑 비슷한데 또 어떤 면에선 완전 다르기도 해요. 사랑에 빠져 몰래 혼인신고하기가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런 면을 연기할 땐 나름대로 대리만족을 느꼈다랄까(웃음). 집에서 부모님이 제가 출연한 걸 종종 보셨는데 '장수가 그냥 네 모습인데?' 이런 반응이었어요. 굉장히 모범적 인물이면서 또 백수기도 한데, 적극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에요. 제겐 색다른 경험이었죠."주말극이 처음인 만큼 세세하게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짝꿍인 황보라와 이런저런 호흡을 미리 맞춰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커플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극 중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장세현은 "혼인신고 사실 때문에 놀이터에서 장고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그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역시 기존 설정에 아이디어를 보태 코믹하게 재탄생한 경우였다.다재다능함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장세현은 영화 <바람>과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데뷔해 벌써 8년 차 경력이 쌓였다. 올해로 서른하나, 데뷔 이후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고루 경험했다. 대학에서 전공은 산업디자인으로 이 또한 이색 이력이다.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입대 전 학교를 나왔고, 말 그대로 한 계단씩 올라오고 있는 전형적인 노력파다. 한 달에 평균 4, 5번의 오디션을 다니며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겪었고, 그로 인해 나름 굳은살 역시 튼실하게 배어있다."디자인도 연기도 모두 제 꿈이었어요. 학교는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오디션 볼 때도 이걸 장점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캐릭터 분석표를 드릴 때 제가 상상한 캐릭터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드린 경우도 있었죠. <화랑> 땐 주령구(주사위의 일종)라고 대본에 나온 소품을 직접 만들어 가기도 했고요(웃음).어렸을 때부터 반에서 그림 하면 제가 손꼽히는 편이었어요. 특별활동 부서도 만화부에 들 정도로 좋아했죠. 예술고등학교에 떨어진 이후 제대로 준비하고 싶어서 부모님과 상의했고, 흔쾌히 지원해주셨어요. 사실 집안 환경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는데 믿고 맡겨주신 거죠. 그러다 대학교에서 갑자기 연기한다고 하니 어떻겠어요? 그런데도 '후회하지 않을 거냐'라고 물어보시곤 그 이후로 쭉 믿어주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 이야기에 되게 놀라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감사한 일입니다.오디션은 일단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겐 소중하죠. 그런 점에서 회사에 참 감사합니다. 저만 잘하면 돼요! (웃음) 너무 떨어져서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붙으면 같이 즐거워해 주고 떨어지면 슬퍼해 줄 분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큰 힘이에요."그림이란 게 흰 도화지에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표현하는 행동이라면 연기 역시 장세현에겐 빈 도화지에 몸으로 생각과 감정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떤 도구가 아닌 온몸을 쓸 수 있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다"며 그가 전환의 계기를 설명했다.시작은 할 수 있어도 버티기 어려운 게 이쪽 업계의 생리다. 재능 있고 젊은 자원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작품 자체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에 뒤늦게 입대하면서도 그는 군악대, 군 행사 진행 등을 거치며 끼를 숨기지 않았고,느리지만 길게 이런 이유로 장세현은 급히 부상한 스타보단 "과정을 거쳐 하나씩 배워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역할을 떠나 일단 연기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하다"며 "조급증은 이미 버렸고, 주어진 기회를 좀 더 많이 살리는 게 내 숙제"라고 답했다."빠르게 주목받고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그 반대의 경우도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 분들이 어깨에 진 짐이 그만큼 무겁겠죠? 전 비행기보단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웃음) 친한 친구와 꿈에 관해 얘기할 때 서로 이루면 꼭 방송국에서 만나자고 했거든요. 그 친구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고, 마침 지난해에 KBS에 합격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저도 마침 KBS 드라마를 했고요. 아, 우리가 좀 느리긴 해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밝은 어투로 말했지만, 장세현의 이 말엔 그가 지금까지 해온 고민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오디션을 보든 섭외가 오든 장세현은 "열린 자세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열>이 뜰수록 욕먹는 배우 "일본인이냐고 묻지 마세요"

[오마이픽업] 재일교포 3세 배우 김인우, 그가 매번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이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온 몸을 던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에 약 230만의 관객이 반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다룬 영화 <박열>은 단순히 반일을 외치지 않고 부당한 권력, 불온한 억압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 영화에 인색했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주인공과 정확히 반대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영화 속에서 내무대신까지 승진하는 미즈노 렌타로다. 이 역을 소화한 배우 김인우를 11일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정치적 희생양 찾기'조선인에겐 영웅, 우리에겐 적이 되는 적당한 놈'. 미즈노는 박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큰 대사다.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거고, 여기서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니"라고 김인우(48)는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인터넷에 사진과 행적 등 비교적 정보가 상세히 나오는 이 실존인물을 재일교포 3세인 그가 온몸으로 품었다. "간단히 말하면 미즈노는 나라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건데 잔머리가 있다.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지. <동주> 속 형사는 송몽규와 윤동주를 취조하면서 점점 변하잖나. 그 인물 역시 국가를 위해 일한 건데 동시에 국가에게 희생당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몽규와 동주 모두 죄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취조를 한다. 내 스스로는 만주에 자기 동생 역시 끌려가 있는 인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취조하면서 두 청년 모습에 자기 동생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거지.""두 영화의 메시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평화라는 걸 그리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많은 일반인들이 희생당한다. <박열>엔 그 장면이 직접 그려지고 <동주>엔 없다는 차이일 뿐이지.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역시 제국주의를 원망하며 맞서잖나. 국가가 지도하고 시킨 일에 대해 우린 알아야 하고,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묻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좋은 사이가 되려면 일본이 먼저 만행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한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로 나서야 하고. 그게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아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실제로 영화를 보며 역사를 배우는 일본인도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 거짓말하면 문제가 커지지 않나. 일본 내 우익이라고 하나? 그들은 아마 안 믿을 것이지만 일반인들은 영화로 배우는 점이 많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일본에서 인기가 있겠는가. 이런 영화로 잘 전달해나가야 한다.""감독님은 주문을 잘 안 한다. 이거 잘 말해야 하는데(웃음). <동주>에선 잔잔하게 목소리를 깔아 내뱉는 느낌으로 했다면, <박열>은 마치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최희서와 이제훈이 확 몰아치면 난 슥 빠지고, 그들이 약해지면 내가 몰아치는 거였다. 내가 오버해서 다가가지 않아야 했다.그리고 함께 일본인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한 달 반 정도 따로 홍대 쪽 연습실을 빌려서 계속 만났다. 이들 이름을 꼭 써 달라! 간수 후지시타 역의 요코우치 히로키, 다테마스 검사 역의 김준한, 내 옆에 꼭 붙어있던 경시총감 박성택. 이렇게 네 명이서 맞춰봤다. 이렇게 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일단 다들 무명배우라 시간도 많았고(웃음), 중요한 역이니 일본어가 어색하면 관객 분들이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미즈노는 기술적인 면이 요구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소품도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했다. 조감독에게 이것저것 요구했지.""그렇다. 대본엔 앉아서 말하는 신이 많았다. 관객이 지루해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만나서 연습할 때마다 아이디어를 모았다. 종종 서서 걷는다든가, 돌아가는 의자에 앉는다든가, 거울과 미즈노의 족집게, 재떨이와 펜 등 모두 우리가 연습하면서 하나씩 나온 아이디어다. 큰 건 연출부에서 준비하는데 디테일은 배우들이 직접 모의 연기하면서 채울 수 있거든." 역사 영화에 대한 갈망18세 때부터 본격 연기수업을 받기 시작한 이후 차곡차곡 쌓아온 30년의 연기경력. 그의 삶은 일본과 한국으로 나뉜다. 지난 2009년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계기로 그의 연기 인생 2막이 올랐다. 서툰 한국어 발음과 이미지로 대부분 기능적인 일본인 캐릭터를 맡아 온 그는 공식석상에서 "한국인 배우"임을 매번 강조한다. 일본 활동 당시 연기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다가 동네 이웃들의 모함으로 일거리가 끊기는 등 차별과 억압을 몸소 겪었던 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물었다."(처음 하는 얘긴데)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가 역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제 강점기를 영화화 한 게 내가 한국에 오기 전까진 많지 않았다. 하나의 목표였다. 조부모와 어머니에게 역사를 배웠고, 조총련 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다. '(비극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언젠가 영화라는 예술 안에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근데 막상 <동주>나 <박열> 대본을 읽는데 마음이 심상치 않더라. 내가 듣고 배운 것보다 훨씬 심한 얘기가 나오잖나. 마음을 못 잡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근데 난 반대의 위치에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야 했다. 그 역할로 들어가기 위해 그 사람으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개인감정을 지우려했다.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게 뭔가. 이 질문을 내게 계속 던졌다.""강한 편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오히려 일본 역사를 모르는 편이다. 난 재일교포고 어릴 때부터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동주>와 <박열>이 내겐 역사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배우는 또 그걸 진짜처럼 느껴야 하잖나. 사진과 책으로만 보던 걸 연기할 때 그들의 피가 (내게) 스며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강하다. 사료엔 일부만 나와 있는데 영화 대본은 전체적으로 풀어주니까. 특히 관동대학살은 한 명에게 죄를 몰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끝까지 밀고 갔다는 게 참…. 지금 정치권과 똑같지 않나? (자기네) 이슈가 나오면 또 다른 이슈로 묻어버리려는 속성." "한국영화가 내겐 빛이었다" "(웃음) 그땐 내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꽃이 물을 안 맞으면 시들잖나. 그 영화를 보고 물과 햇빛을 받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건강, 아니면 돈 이 중 하나라도 그때 내게 있었다면 좋았을 건데 다 없었다. 힘든 생활에 너무 과음해 의사가 술을 더 마시면 죽는다고 할 정도였다. 아, 바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할 때 <집으로>가 내겐 물이자 빛,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온 몸에 소름 돋는 느낌 혹시 아시나?""종교에 잠깐 들어갔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내 걱정을 계속 해주시더라. 그곳에서 준 책에 어떤 말이 써 있었는데 그 말에 내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잡아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까진 날 위한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남을 위한 연기도 가능하단 걸 알게 됐다. <집으로>를 보고 내가 희망을 얻었듯 말이다. 사람은 도움을 주고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안 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연기 개념이 달라진 거지.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한국에 처음 와서 차별을 겪었다. 택시를 탔는데 서툰 한국말에 기사님이 반갑다고 일본인이냐고 말을 거시는데 재일교포라고 하니 안색이 싹 바뀌면서 내리라고 하더라. 내 주변 동생들도 그런 일을 겪더라. 슬펐다. 일본에서 난 외국인인데 한국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 거니까 내 나라가 없는 거 같고 화도 났다.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사명감도 생겼다. 여러 동생들이 날 믿고 따라 오는데 일본인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말한다. 어제 기사 댓글에 '재일교포 3세면 일본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있더라. 마음이 안 좋았다. '조부모가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에서 태어났을 뿐, 내 피는 한국인이다. 당신이 만약 외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산다고 한국인이 아닌가?'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귀화하면 내게 도움 될 게 많았다. 조총련이 북한 계열이니 해외에 나갈 때 미국령은 못가거든. 근데 내가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조부모가 그간 쌓아온 모든 고생을 배신하는 거다. 일본 활동 때 (잠시) 다무라 히로토라고 한 적이 있는데 소속사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런 거다. 아, 그리고 나 배우좌 출신 아니다. 어느 기자 분이 잘못 쓰신 건데 계속 언급되더라. 내게 연기를 알려주신 스승님이 배우좌 출신이지 난 여러 극단을 전전했다. 꼭 수정해 달라." 그리고 운명 "아니, 어떻게 그 내용까지 아는가? (웃음) 고등학생 때였다. 경찰에 잡힌 적이 있는데 학교 안에서 누군가의 모함 때문이었다. 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내가 잡힌 거지. 난 부모님도 안 계셨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아이였거든. 그래서 <박열>의 감정을 잘 안다. 그 무렵 <의혹>을 처음 봤다. 분명 연기인 걸 아는데 진짜 같더라. 배우란 뭔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연기가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주저 없이) 다시 돌아가도 배우 할 거다! 근데 진짜 힘들었다(웃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세 가지 중 하나에 드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 말리고 싶다. 실제로 친구가 배우하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너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왜 난 연기를 지금까지 하냐고? 내겐 지금 남은 게 이것밖에 없다.""그 마음이 크다. 단역이든 뭐든 한국인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쌓아온 경력은 신경 안 쓰고 대사를 단 한 마디만 하더라도 하고 싶다. 내겐 도전이다. 지금의 내 (어눌한) 말투와 모습을 보면 감독님들은 아마 맡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맡으면 해내는 게 배우다! 해보고 싶다."<박열> 이후 <군함도> 그리고 <공작>에서 김인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한 연기, 그리고 아직 깨보지 못한 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연기 엔진이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든 일의 원인은 내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 역시 그의 단단한 내공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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